622

 

 

 

마왕군과 하란국의 공방전은 서서히 끝날 기미를 보이고 있었다. 대략 2주가 흐른 뒤에 아직까지 용사가 루니아 누나의 표적으로 지내는 동안, 리제로트가 칸포리우스 제국의 성기사단을 이끌고 찾아왔기 때문이었고, 결계를 해제한 하란국의 여제 또한 다시 강력해진 상태였다. 아직까지 피해복구를 하느라 밖에서 힘을 쓸 때쯤. 하란국 내부의 외교에서는 의외로 상황이 좀 심각해지고 있었으니...

 

성녀는 지금 용사일행과 같이 움직이고 있는데, 지금 칸포리우스의 성녀가 없다는 것을 빌미로 넘기라는 말 자체가 이상한 거 아닙니까?”

 

대주교님은 그녀의 신변을 보호하고자 내린 방침입니다. 지금 천계로부터 지원을 받을 수 없는 상황에서, 성녀의 이름으로 여신님과 연결되어야 합니다.”

 

여신은커녕 천계가 거의 전멸 되었다는 시나의 말을 기억했다. 다만, 아직까지 이 사람들이 나에 대한 인식을 좀 깨달을 필요가 있는데.

 

저는 성녀가 아니라 잡화점 주인이라니까요...”

 

리제로트가 대체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얄미운 웃음이 저절로 피어 오르고 있었다. 금발 인형처럼 잘 가꿔놓은 소악마적인 웃음이라니. 직접 당하는 입장인 나에게 있어선 속에 기름을 붙고 불을 부었는데, 또 다시 기름을 붇는 그런 상황이다.

 

칸포리우스 제국의 협력 조건이 성녀를 데리고 가는 것이니까요! 아무런 조건도 달지 않고 성녀만 주시죠?”

 

제가 어디 사고 파는 물건입니까? 리제로트 씨.”

 

사고 파는 물건은 아니지만...잘 간직해야 할 물건인 것은 확실하죠. ‘카린?”

 

말 한마디도 안 지겠다는 의지가 저 두 눈에서 피어 오르기 시작했다. 이런 극적인 희생장면을 내가 당해야 한다고? 용사그룹이야 루니아 누나에게 맡기면 상관 없지만, 지금 당장 떨어져서 걱정되는 것보단, 칸포리우스 제국으로 가서 무슨 일을 당할 지가 더 걱정이 되었다.

 

보통 광신도들이 넘쳐흐르는 곳에 들어가면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진압할 수도 없고, 어떻게든 나에게 목줄을 채워놓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것이다.

 

일단 가도록 하죠. 어차피 성녀도 아닌데 보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다면, 잠깐만 보고 오면 해결 될 일이잖아요?”

 

하지만 나에게 힘이 있으니, 그렇게 썩어빠진 녀석들이 대신관들이라면 교육을 하면 되고, 만약 아니라면 차분하게 다음을 향해 나아갈 생각을 하면 될 뿐이다. 어차피 잡화점에 수시로 다녀올 수 있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차라리 칸포리우스 제국 자체를 지도 밖으로 날려버리면 될 뿐이다. 아마 최후에 실행해야 할 일은 칸포리우스 제국을 없애는 것이 되지 않을까?

 

성녀님...”

 

옆에 있던 용사가 걱정되는지 작게 중얼거렸다. 저 애는 이 와중에 왜 이렇게 귀여운 거야...사람 화나게...

 

저는 괜찮아요. 당분간 루니아 누...언니를 붙여놓을 테니 전력이 될 거에요. 다만, 칸포리우스 제국에서 마왕성까지 용사들을 지원한다는 건 왜 없는 거죠?”

 

차라리 내가 없다면 나를 대신할 사람은 칸포리우스 제국에서 보내야 하는 거 아닌가? 생각의 꼬리를 물려고 할 때, 얄밉게도 내 앞에 불쑥 고개를 들이민 리제로트가 친히 입을 열었다.

 

그거야 당연히 하란국을 지원하러 온 것뿐이지. 용사를 지원하러 온 것이 아니랍니다. 하란국은 칸포리우스 제국에게 있어서 마왕군의 진격을 저지할 배틀필드. 그곳을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지원하고, 거의 무료로 수도를 넘어 마왕군이 정복한 땅까지 되찾아드리는 거죠. 하지만 그 과정에서 병력을 쪼개 용사들을 지원하기에는 힘들고, 비용도 만만치 않으며 전투력의 공백이 생기고, 최후방에도 마왕군의 특수병사들이 침입할 수 있는 가능성을 고려해, 성녀님을 빛의 대성당으로 모시며 힘과 정신적인 지지를 얻는 것이야 말로, 칸포리우스 제국의 뜻이랍니다.”

 

이 녀석 죽을 위기를 넘겨서 칸포리우스 제국으로 가더니, 완전히 빛의 교도에 교화되어 돌아왔잖아. 대체 거기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

 

그러면 우리들은 개고생을 해서 마왕성으로 가야 한단 소리잖아!”

 

키르갤은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안 그래도 드래곤 피어가 모든 공간을 옭아매기 시작하자, 진한 살기를 내뿜는 성기사단들이 전부 무기를 꺼내 대치하고 있었고, 용사 그룹마저 무기를 빼며 싸울 의지를 보였다.

 

그만! 제가 가면 되잖아요!”

 

나의 소리가 허공을 가득 메우고 분위기가 양극화되기 시작했다.

 

잘 생각하셨어요.”

 

넌 좀 나중에 보자.”

 

리제로트가 환희에 가득한 얼굴로 나를 바라봤지만, 뭔가 꿍꿍이가 숨겨진 웃음은 내 눈을 피하지 못했다. 빛의 대성당에서 무엇을 봤길래 리제로트가 날 끌어들이려고 작정한 건지...

 

아무래도 또 다른 사건의 시작이 나를 반기는 듯 했다.

 

***

 

마차라는 건 많이 타보지 못했다.

잡화점에는 사키엘의 문이라는 편리한 이동수단이 있으니까.

자신이 원하는 공간을 생각하고 문을 열면 그 광경이 펼쳐지는데, 집중력이 조금이라도 흐트러지면 곧바로 하늘에서 번지점프를 할 수 있다.

 

그것도 줄 없이.

 

다만, 마차를 타고 칸포리우스 제국으로 가는 길은 매우 따분한 여정이 되고 있지만, VVVIP 대우를 해주는 리제로트가 옆에서 꾀꼬리마냥 재잘거렸다.

 

그러니까...빛의 대성당에 뭔가 터질 거 같아서 나를 부르는 거지?”

 

. 용사 그룹들과 떨어뜨리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이건 카린 씨가 나서서 해결해야 할 문제인 거 같거든요.”

 

그보다 그 광신적인 표정과 연기는 언제 연습한 거야?”

 

저는 의외로 연기에 소질이 있었다는 설정이 첨부되어있던 거죠.”

 

스스로 설정이라고 말하지마. 정신 사나우니까.”

 

그보다 너무 딱 붙어있잖아? 마차는 마주보면서 가는 거 아니었어?

 

그리고 그거 잊지 않으셨죠?”

 

아니. 잊었어. 완벽하게 잊었어.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 안나.”

 

웃기지 마요! 아무리 오래되었다고 해도 진짜 몬스터를 풀어놓고 죽어라 달리던 저를 흐뭇하게 보셨잖아요!”

 

흐뭇하게 본적 없어. 그냥 잘 뛰네...라고 생각했지.”

 

봐요! 기억하잖아요!”

 

제길. 유도심문에 걸려버리다니.

내 옷을 붙잡은 리제로트의 힘이 점차 강해졌다. 꽉 잡고 더 이상 놔주지 않겠다는 듯한 의지가 느껴졌다.

 

이번 밤에 습격할 거니까 문은 잠가놓지 마시죠?”

 

“3중 잠금에 양자 잠금까지 할 테니 기대해도 좋을 거야.”

 

밤에 습격하겠다는 예고를 직접 날리는 리제로트.

조만간 잡화점에서 내쫓아야겠다.

 

농담은 그 정도로 하고 마왕군이 진격하는 와중에 아직까지 정신차리지 못한 제국은 칸포리우스 제국이란 소리겠네?”

 

어차피 최후의 보루가 칸포리우스 빛의 대성당이잖아요? 그렇기에 기고만장해진 고위급 관리들은 자신의 배만 채우기 바쁘죠.”

 

그러면 그 녀석들을 전부 갈아 없애는 것이 주된 임무인가. 아무래도 성녀라는 직함에 집착하는 사람들이 걸리기도 하고...

 

그럼 나를 어떻게든 구속해서 자기 좋을 대로 써먹겠다는 의미네. 지금 이렇게 나를 끌고 가는 의미 또한...”

 

. 맞아요. 하지만 카린 씨는 잡화점의 주인이잖아요? 성녀가 아니라?”

 

성녀가 아닐뿐더러 지금은 마리아가 나에게 동화되어있기 때문에, 다른 여신을 담을 수도 없는 몸이야. 시나는 어디에 있길래 너와 같이 있지 않은 거야?”

 

여신님은 지금 천계수복작업을 하고 있어요. 천계의 생태계가 말도 아니라는 말과 함께, 빛의 대성당에서 보자고 하셨거든요.”

 

어쨌든 칸포리우스 제국으로 가자는 건가. 하지만 천계의 생태계가 말이 안 된다는 말은 지금 모든 영혼이 어디로 빠져나가고 있다는 소리일까? 사실 윤회를 거쳐서 환생을 한다는 작업은 천계에서 상급 신이나 하급 신 등. 깨끗한 영혼을 가진 영혼이 아닌 다른 모든 영혼들을 환생할 수 있게 만드는 시스템이다.

 

지금 시나가 하는 일은 천계의 생태계를 복원하는 과정이 아냐. 빛의 대성당에 있는 일원들이 이상하다는 것을 깨닫고 피신한 것뿐이지. 다른 차원의 여신마저 피신할 정도로 뭔가 꺼림칙한 것이 있다는 거야.”

 

시나가 무엇을 보았길래….

복구작업을 그만두고 숨어버린 것일까?

 

이 세상에는 정화가 필요한 사람들이 많이 있을 거야. 다른 외계문명에서는 행성자체를 정화한다고 하는데, 이 행성도 불바다로 만들면 모조리 정화가 되겠지? 그러면 내가 칸포리우스 제국에 들어가지 않아도 되고? 시답지 않은 녀석들이 날 구속하고 지 멋대로 하는 행위 또한 안 봐도 되니까. 좋아 전부 다 불질러 버리자.”

 

안 돼요! 저희가 살 곳이 없어지잖아요! 그보다 용사나 다른 사람은 무슨 죄에요!”

 

가장 빠르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하지 않겠다니.

사실상 그렇게 해결했으면 30번은 더 하고도 남았지.

 

그렇다고 칸포리우스의 빛의 대성당이 초콜릿 공장마냥 좋은 곳은 아니잖아. 윌리 왕카가...”

 

윌리 웡카에요.”

 

넌 대체 그런 건 어디서 보고 말하는 거야?”

 

초콜릿 공장이라도 다녀왔나? 그거 황금티켓이 아니면 안 되는데?

 

그렇다면 지금 이 고착상태를 만들고 있는 이유와 천계가 거의 망해가는 이유가, 칸포리우스 제국과 관련이 있다는 소리인데.”

 

그러면 빛의 대성당은 신을 죽이기 위한 준비를 한 것이 아닐까? 마왕군과 긴밀하게 진행해온 일일까?

 

그건 나중에 조사해보면 생긴 일이죠. 그나저나 오랜만에 좀 안아주시죠?”

 

내가 널 평소에도 안아줬다는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거짓말 하고 있는데?”

 

그래도 칸포리우스 제국 내에 들어가서 성공적으로 지원군까지 불러왔잖아요! 그 기나긴 시간 동안 제가 이 위치에 올라오는데 얼마나 오랜 세월이 걸렸는데요!”

 

오랜 세월 치고는 1년도 안 된 시간 속에서 병력과 물자를 지원한 사신으로 왔잖아? 그것만으로도 네가 얼마나 고생했는지는 가늠이 오긴 해. 그리고 왜 멋대로 내 무릎에 누워있는지 알려줄래?”

 

은근슬쩍 내 무릎에 머리를 놓은 리제로트는 세상을 다 가진 편안함으로 기지개를 쭉 폈다. 마차가 아무리 넓다고는 해도 사람이 눕는다는 것에 대해 어느 정도 제약이 있는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편안한 얼굴로 고양이 같이 고개를 이리저리 비벼댔다.

 

거기는 예쁜 애들이 없거든요. 뭐 정확하게 성녀와 더불어 성녀를 지망하는 무녀조차 없는 상황이었으니까요.”

 

무녀마저 없다고?”

 

빛의 대성당에선 신을 받을 그릇으로 모두 불충분하다며 내쫓았다고는 하지만, 이건 역으로 현재 천계에 신이 없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잖아요? 하지만, 이걸 알고 있으면서도 숨기고 있는 걸지도 몰라요.”

 

알면서도 숨길 가능성은 매우 높지만, 천계는 어째서 멸망을 했는가? 아마 그건 엘티노스가 상급신으로 되지 않아서 그런 걸까?

 

엘티노스가 없는 세계는 천계의 몰락과 함께, 마왕군과 인간의 끝없는 전쟁으로 인한, 칸포리우스 제국의 이익만을 챙길 수 있는 그런 부패된 세계라...

 

어차피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는 법.”

 

고양이마냥 애교부리는 리제로트의 머리를 천천히 쓰다듬으며 말했다.

 

이 바보 같은 짓을 확실히 끝내야겠어.”

 

덜컹거리는 마차만큼이나 심란한 마음은 여김 없이 나를 뒤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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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 이 에피소드도 끝내야 하는데...

잦은 출장과 잦은 야근이 초래한 최악의 연재를 만들어냅니다.

(아무리 그래도 날밤샌 사람에게 곧바로 광주출장가라고 하다ㄴ...)

 

그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사실 감기기운까지 도져서 몸과 정신이 신비와 모험으로 가득한 멘붕의 나라로 가고 있습니다.

감기 조심하세요

 

621

 

 

 

각본가를 제외한 이후로 세계는 대격변이 일어났고, 각본가가 있었어도 세계는 대격변이라고 말할 만큼 세계가 변했다. 리제로트는 대격변 이전의 마지막 인간이라고 봐도 좋고, 지금은 칸포리우스 제국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하란국에 빨리 지원이 와서 마왕을 토벌하는 척만 하고 이곳의 진정한 흑막에게 진심펀치를 날린 후, 빨리 나는 남자로 되돌아가고 싶은 마음만 굴뚝같았다. 솔직히 흑막까지 안가도 남자로 되돌아가기만 했으면 좋겠지만, 잡화점 주인임에도 불구하고 성녀로 오해 받는 내 입장을 무엇이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

 

머리가 청색이었다가 검은색으로 물들은 전신거울을 보며, 오히려 더 단조롭게 청순해졌다는 표현이 맞을까? 의식하지도 않은 옆머리를 귀 옆으로 쓱 올려보았다.

 

후후...후후훗...후헤헤...”

 

뭔가 소름 끼치는 웃음 소리가...

 

세린. 침 닦아.”

 

쓰읍!”

 

머리색상만 다른 쌍둥이 자매처럼 생긴 세린의 눈에서 알 수 없는 빛이 난반사되었다. 나를 볼 때마다 눈이 공허해지는 것 같기도 하고, 동공 안에 붉은 하트 모양이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솔직히 말하면 이건 무섭다고 해야겠지.

 

이번 흑장미는...이대로 가도오...”

 

거기. 카메라 내려요.”

 

...”

 

루니아 누나는 아쉬운 표정으로 카메라를 천천히 내려놓았다. 저번에 멋대로 찍었다가 카메라 자체를 소멸시킨 이후 조심스럽게 행동을 하고 있는 모양이다. 여전히 TS빔을 반 강제로 맞아 여자로 있는 것도 불편하다고...

 

익숙해지지 않는 건 아닌가?

설마...아닐 거야.

 

카일이여? 주변의 공기가 왜 이리 숨이 막히는 것이냐? 첩은 아직까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만?”

 

그거야 마리아와 제가 엑시즈 소환...아니, 링크가 되어있으니까요. 그 덕에 매력의 랭크가 한 단계 올라가서 시시각각 우리를 노리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뿐이에요.”

 

노린다고 한들 지금 카일을 포박하려고 하는 루니아 뿐 아닌가?”

 

아뇨. 잡화점의 인격인 세린마저도 노리고 있...뭐라고요!?”

 

뜬금없이 날아오는 루니아 누나를 피했다. 인간 미사일이라고 하면 루니아 누나를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날아왔는데, 잡화점 벽 하나가 무너져 내림과 동시에 제 2파로 날아드는 미사일을 겨우겨우 막아냈다.

 

지금 뭐 하는 거에요!”

 

그치마안! 카린은 이렇게까지 해주지 않으면, 백장미와 흑장미에게 관심이 없는 걸요오!”

 

그 저주받을 잡지는 태초부터 관심도 없었어!”

 

어디서나 나오는 그치만!’이라는 단어를 무시하고, 오늘도 성녀인지 잡화점 주인인지 정체성에 혼란이 오기 전에, 어디서 날아올지 모르는 변수를 위해 대책을 새워야만 했다. 변수라고 한다면 어릿광대가 내 예상과 다르게 각본가가 아니었다는 것. 혹은 이 공간의 창조주가 변질 되었을 가능성.

 

7그룹 용사들이 나오기 전까지 마왕이 손쉽게 용사들을 모두 격파한 것은, 되려 모든 것이 각본에 의한 것이 아닐까? 아니라면...

 

되려 각본과는 다른 방향으로 나가고 있었나?”

 

각본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과 똑같다. 그러니까, 지금 내가 이곳에 있는 상황이 되려 각본가에게 있어선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건가?

 

각본과 다른 방향으로 나가다니요오?”

 

각본가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가니까, 그러니까 지금 현 마왕이 용사들을 초기에 다 죽여버리고 제 7그룹 용사까지 제거하려고 하니까...”

 

마치 용사들이 전혀 필요 없는 것처럼...

 

마왕이 빨리 죽인 것도 뭔가 문제가 있지만, 7그룹의 암살까지 노릴만한 정보까지 어떻게 얻었을까요? 각본대로 움직였다면 아예 용사가 다 사라지고 암울한 미래가 남았다가 끝 아닐까요?”

 

어떤 미래든 좋고 나쁨에 관계없이 결과가 나오기 마련, 아마 이곳은 배드앤딩으로 갈뻔했다가 내가 오고 나서 천천히 개선되어가는 모양이다.

 

그러면 현재 각본가의 힘은 매우 약하다는 의미잖아요오? 그러면 더욱 더 어릿광대가 아니게 되죠오.”

 

아니, 어릿광대가 힘이 약해졌을지도 모르잖아. 섣부르게 판단하면 안 되는 거 아냐?

 

다른 차원의 영향력으로 힘이 약화될 수도 있...진 않겠구나.”

 

다른 차원으로 나아가도 영향을 받지 않은 라는 존재가 있었다. 수많은 차원이 무너지고 부러져도 다른 시공에 나타났을 때, 나만 패널티를 입지 않는 모양이다. 어쩌면 이게 잡화점의 비밀 중 하나일지도 모르고...

 

마리아는 내 머릿속에서 다시 생각에 잠기기 시작했다. 세린 또한 아무런 말 없이 가만히 나를 지켜만 볼뿐.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내가 답을 내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닌데...

 

각본가가 없는 건 아니지만, 어쩌면 데드엔딩을 향해 나아가던 진로가 다시 바뀌기 시작하면서 서서히 희망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죠. 아직까지는 정보가 너무 없어서 추측은 이 정도로 끝냅시다.”

 

히드라를 감싼 왼팔이 살짝 저려오기 시작했다. 비록 히드라는 월식에 거의 연결하지 않고 살아남았다고 하지만, 어디선가 어릿광대가 조소라도 하듯 움찔거리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야? 히드라?”

 

[끊어진 연결을 누군가가 억지로 연결하려는 느낌이 들었기에, 지금 차단방벽을 높이고 있는 중이다.]

 

. 어릿광대가 있을 거라곤 생각했지만, 여전히 날 찾고 있는 중인가 보네.”

 

유랑극단에 이제 하나 밖에 남지 않은 어릿광대는 끝까지 날 쫓아와서 죽이려고 할까? 아니면 다른 이유로 나를 찾아와 도와달라고 할까? 지금 당장 급한 불은 아무래도 용사그룹들인 거 같지만, 하란국에서 일방적으로 버티기만 하는 이 상황에서 급하게 움직일 필요가 없어졌다고 판단한 나는 조금 더 잡화점에 있기로 했다.

 

오랜만에 잡화점도 영업하고, 생각도 정리할 겸 청소를 시작하기 위해 빗자루를 들었다.

 

그러면 저는 요리를 하러 가볼게요오~”

 

하지마!”

 

루니아 누나는 히잉...”하며 죽는 소리를 늘어뜨렸다. 누굴 암살하려고 요리를 하겠다는 거야?

 

***

 

잡화점이 열린 새벽에 마왕은 여김 없이 놀러 왔다. 이제 마리아가 이곳에 동기화를 하여 자리잡는 순간, 내가 기억하는 레시아와 마왕이 서로 대면을 할 거 같은데, 그 이후로 무슨 일이 일어날까? 일단 잡화점이 폭발한다는 건 당연한 일이다. 여기가 어딘가의 하얀 병원은 아니지만, 어째서인지 자주 폭발하는 잡화점 속에서, 세린은 거의 체념한 표정으로 멍하니 바라만 보겠지.

 

그래서 짐의 정예병들은 결국 잡화점 주인의 소속이 되었다는 건가?”

 

정확하게는 검은 달의 여왕이지만, 이 검은 머리도 검은 달의 여왕으로 인해 생긴 거고, 지금 상황에서 마왕뿐만이 아니라 신도 때려잡을 수 있을 거야.”

 

그러면 그대가 세계정복을 하면 되지 않는가?”

 

나는 용사그룹에 소속되어있는 잡화점 상인이니까.”

 

성녀이지 않는가?”

 

성녀 아니라고!”

 

아직까지 객관적인 눈으로 보았을 때, 나는 성녀로 취급되고 있는 모양이다. 엘티노스 잡화점의 주인이라고 절대적으로 이야기 하지 않고, 잡화점 앞에 엘티노스라고 버젓이 들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냥 잡화점 주인이라는 말만 반복하는 걸로 봐선, 정말로 이곳에 엘티노스가 없는가에 대해 생각도 해봐야 한다.

 

하지만 마왕 레프리시아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엘티노스는 한번쯤 거론되어야 하는 대영웅 중 하나. 솔직히 그 양아치 같은 아저씨가 어떻게 상급 신이 되고 영웅소리까지 듣는지는 정말 의문이지만...

 

엘티노스부터 찾아봐야겠어.”

 

나는 결정을 내렸다.

 

죽었을지도 모르는 엘티노스라는 자를 찾기 위함이라?”

 

마왕은 검은 고양이의 모습이 되어 자신의 앞발을 그루밍 하고 있었다. 그나저나 왜 고양이 모습으로 찾아 온 거야?

 

솔직히 엘티노스가 죽은 이유라면 2가지로 추측되거든. 하나는 마왕이 수작을 부려서 미리 암살을 했다. 또 다른 하나는 각본가가 하나가 아니라 둘이라서 서로 기 싸움을 하는 와중에 엘티노스가 죽어버렸다.”

 

그러면 그 둘을 전부 타개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가?”

 

당연히 있지.

 

시간대를 찾아서 뒤집어 엎으면 돼. 복수자들도 양자영역까지 들어가서 되돌리곤 했잖아?”

 

시간대를 찾아서 뒤집어 엎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인 줄 아는가? 지금 이 차원의 시공간을 전부 찢어발길 셈인가?”

 

시간여행의 부작용을 생각하질 못했네. 확실히 지금 과거를 뒤바꿔버리면 미래가 어떻게 산산조각이 날지 모르는 일이잖아?

 

아니지. 미래가 산산조각 나도 돼. 그 놈의 백장미인지 흑장미인지 빌어먹을 잡지책을 다 불태울 수 있다면 말이야!”

 

그렇다고 시공간 하나를 멸망시킬 셈인가?”

 

시공간 하나로 내가 그 잡지를 찍지 않아도 된다면 바꿀 수 있다고 본다. 그런데 자세히 생각을 해보면 루니아 누나는 시공간을 찢어서라도 찍지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하네...

 

조만간 백장미 특집이 시.... 로 바뀌는 건가.”

 

그 기괴한 폭풍으로 들어가는 건 짐도 사양이다만...”

 

무릎 위에 올라간 검은 고양이의 머리를 거칠게 쓰다듬었다. 도대체 시공의 폭풍은 왜 알고 있는 거야? 조만간 거기에 들어갔다 나오는 거 아닐까? 고양이는 다시 입을 열기 시작했다.

 

그 폭풍이야기는 그만두고 정말로 과거로 가서 찾아올 셈인가?”

 

과거로 가서 찾아오는 거 말고 현실적인 방안이라면, 다른 평행차원에서 소환하는 수 밖에 없어. 그럼 그 평행차원은 난리가 날 거고 시공간 2개가 찢겨질 위기가 찾아오는 거지. 일이 잘 해결되면 시공간 중 적어도 1개만 찢어지고 나머지 하나는 무사해. 좋은 일이긴 하지.”

 

아니. 절대적으로 좋지 않다. 잘 해결되는 전제가 이미 시공간이 찢겨나가고 있지 않는가? 그보다 현실적이 아니다!”

 

2번째도 실패인가. 그럼 3번째로...

 

엘티노스의 환생체를 만든다.”

 

이번엔 환생인가?”

 

보통 윤회라는 건 육체와 영혼이 분리될 뿐이지, 결국에는 그 영혼은 깨달음을 얻기 전까진 이 세상으로 다시 되돌아오거든. 내가 보았을 때 엘티노스는 절대적으로 부처나 그런 게 될 수 없어. 상급신도 연줄이 있어서 승천한 거지, 500년이 지난 이 시점에서 나타나는 것도 좀 어처구니 없겠지만, 대마법사 엘티노스라면 가능성이 높다고 봐.”

 

어쩌면 이미 환생을 해서 다른 사람의 등을 쳐먹거나.

여자 뒤나 졸졸 쫓아다니면서 어떻게든 꼬시려고 하겠지.

 

가능성이 많은 건 좋지만, 확률은 아무래도 길을 걷다가 개구리가 나에게 인사하는 정도의 확률인 거 같아.”

 

내가 생각한 모든 답안은 전부 가능성이 없었다.

 

환생체를 만든다고 하여도 이미 환생했을지도 모르고...다른 차원에서 엘티노스가 객사하여 그 차원의 영혼을 납치한다고 해도, 사실상 윤회라는 체계는 어느 누구도 섣부르게 건드릴 수 있는 이야기지.”

 

지금의 내 힘이라면 가능할까?

아니, 그런 미친 짓을 감행한다면 난 정말 인간을 포기해야 한다.

어디서 로드롤러를 끌고 와서 죠스타 가문에게 내려찍지 않는 이상...

 

터무니 없는 상상에 짐은 아직도 머리가 어지럽구나.”

 

그건 내가 머리를 거칠게 쓰다듬어서 그런 거야.”

 

아직은 명확한 해답이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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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상부터 남다른 카린(카일)

 

 

620

 

 

 

무분별하게 힘을 휘두른다는 건 두 가지 경우가 있는데, 하나는 힘을 제대로 조종하지 못하는 경우와 또 다른 하나는 그 힘에 심취한 나머지 중독이 된 경우다. 어처구니 없게도 나는 그 전자에 속했으며, 마리아와 동화된 상태로 검은 달의 여왕의 권능을 억지로 끌어올려 사용한 결과...

 

여왕님! 이쪽 한번만 보시죠!”

 

여왕님! 이쪽으로 와서 저희들에게 축복을...”

 

.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걸까. 이렇게 되기까지 20분 전의 상황으로 되돌려보자.

사실상 무력으로 참살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마리아는 무력이 아닌 자신의 권능을 이용하면, 자신이 다른 차원의 환경으로부터 더 쉽게 적응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니 나는 검은 성배를 불러오는 것까지 성공하고 휘두르는 걸 생각했는데, 애초에 내가 마리아와 자주 동화는 되었어도 그 권능이 뭐가 있는지 잘 몰랐으니, 어떻게든 권능을 사용해서 이 상황을 정리해야겠다는 심산으로 대충 휘저으며 검은 성배의 물이 폭포수처럼 흐르기 시작했고...

 

, 잠깐만 카일이여! 그 권능은!”이라는 마리아의 소리를 들은 것으로 내 본능이 , 이거 완전히 소나무 잣이 되어버렸는데요?”라고 답했다. 의문사이긴 하지만 아무튼 그렇게 답한 것처럼 보인다. 그보다 소나무 잣이 되었다는 말이 왜 이리 거슬릴까? 이게 그나마 15세까지 볼 수 있게 만들어서 그런가? , 그건 둘째치고...

 

. 아무래도 마왕성에 있어야 할 자들이 아니라, 그대 옆에서 보필해야 할 거 같구나...짐은 마왕이긴 하나 이런 상황까지 오게 된다면, 눈물이 앞을 가리는 현상은 피하지 못하겠노라.”

 

자신의 정예병을 단 한방에 다 잃어버린 마왕과 심복들은 그저 허탈하게 마왕성으로 돌아갔고...아니, 이러니까 마왕이 로켓단처럼 보이잖아. 너무 허망하게 돌아간다고!

 

애초에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가장 좋다고 하지만, 싸우지 않고 이 많은 병사들을 내 부하로 만드는 건 계획에 없었다. 생각을 해보면 마리아의 주특기는 정신공격이었지? 내가 그걸 생각하지 않고 멋대로 검은 성배를 휘두른 대가가 이건가?

 

이래서야 성녀라고 볼 수도 없잖아?”

 

어차피 모두 검은 달의 일원들이니 모조리 첩에게 맡기기나 하거라.”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는 마리아의 손짓으로 인해, 수많은 정예병들이 모두 검은 성배 속으로 들어갔다. 생각보다 저 성배는 많은 기능을 가지고 있구나? 나중에 요긴하게 써먹을 구간이 있을 거 같지만...그보다...

 

마리아? 내 머리카락이 검은색에서 안 바뀌는데요?”

 

. 완벽하게 동화되었으니 그런 거다. 신경 쓰지 말거라.”

 

. 그렇구나.”

 

잠깐? ?

 

완벽하게 동화라뇨! 벌써 적응하신 거에요!”

 

그야 그 정도 힘을 무지막지하게 휘둘러도 이렇게 안정적인 걸 보면, 카린의 몸과 첩이 잘 맞는 것일지도 모르지. 그보다 카일이었을 시절에도 몇 번 그대의 몸에 숨어들지 않았는가?”

 

하긴...그렇긴 한데...

이렇게 되면 용사 일행이 머리가 검은색이 되었단 이유로 마녀재판을 시작하지 않을까? 아니면 탄환논파를 시작해서 초고교급 검정이 될지도 몰라. 그렇게 되면 초고교급 벌칙을 받는 것이 아닐까?

 

어이. 카린이여? 초고교급에서 빨리 벗어나지 못하겠느냐?”

 

그치만 마리아? 초고교급이에요? 초고교급이 얼마나 파괴력이 높은데요? 초고교생만이 얻을 수 있는 호칭이에요? 그런데 제가 과연 초고교급의 검정이 될 수 있을까요?”

 

하아...어째서 다른 이야기로 튀어나갔는지 모르겠지만 빨리 돌아오거라. 안 그러면 그대의 머리에 직접적으로 지금까지 백장미 컬렉션을 모조리 다 보여주는 것이 가능하노라?”

 

! 제발! 그것만은! 그러지마! 마리아! 이 나쁜 사람! 그러지 마!”

 

안 돼! 내 머리 속에 다른 영상이 들어오고 있어! ! 제발 그만! 남자에게 토끼 복장을 입히는 거 아냐! 2초만에 끝나버린다고! 24시간 내내 발정기가 아니란 말이다! 제발 그만해!

 

정신적인 충격이 어느 정도 사라지고 있을 때, 초고교급이 무엇인지도 생각하기 전에 잡화점으로 돌아왔다. 아직까지 리제로트가 칸포리우스 제국으로부터 지원군을 이끌고 오기 전까지 시간을 벌어야 하지만, 이 정도면 하란국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벌어준 것이 아닐까? 그보다 왜 이렇게 오지 않는 거지? 보통 지원군을 부른다면 1주일 이내에 가능할 것이라 생각하는데...

 

카일이여. 보통 사람이 신뢰를 얻고 지원군까지 부르는 단계를 얻고자 하는 것은, 최소 6개월 이상이 걸린다.”

 

그렇게 길게 걸려요?”

 

대체 그대는 외교를 무엇으로 보고 있는 건가? 평소에는 꽤나 치밀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이럴 때만큼은 정말 터무니 없는 생각을 지녔노라.”

 

터무니 없는 생각만 있는 건 아니다.

절대 아니야.

 

그러면 어쩌다 보니 첩은 군사를 얻었고, 상은 무엇으로 해주는 것이 좋은가?”

 

우선 남자로 되돌아갔으면 좋겠네요. 마리아라면 제 힘을 억누를 수 있잖아요.”

 

. 그건 곤란하군. 그렇지! 첩이 귀청소를 해주겠노라!”

 

남자로 돌아가고 싶어요!”

 

. 곤란하다. 그렇지! 첩의 성배의 기능을 자세히 알려주도록 하지!”

 

남자로 되돌아가고 싶다고!!!!!!”

 

도대체 몇 일째야?

아니 몇 주째야?

아니 얼마나 더 있어야 해!!!

 

그 모습 그대로 귀여우니 앞으로 그래도 살면 되지 않는가? 어차피 카일의 근본이 중요한 거지, 겉모습이 중요한 것이 아니니라.”

 

어떻게든 이 모습에서 안 바꾸려고 온갖 노력을 다 하시네요?”

 

그러면 첩이 남자의 모습으로 되돌리는 걸 협조해주는 대신 백장미 프레스티지 에디션을 해야 하니라.”

 

그건 또 무슨 에디션이야!!!”

 

돈이 꽤 많이 나갈 거 같은 에디션이잖아? 마리아의 터무니 없는 제안은 결국 강제로나마 날 여자로 있게 만들었다. 남자로 변해도 백장미 때문에 고통을 받는다. 지옥을 넘어도 지옥이란 소리인가? 아니, 지옥을 넘었더니 연옥이었다는 결말인가?

 

***

 

용사 일행을 만나기엔 검은 머리카락으로 변해버린 터라 마음이 걸린다. 하지만 어차피 난 성녀도 아니고, 용사와 루니아 누나가 연습하고 있는 연무장으로 들어갔...

 

, 살려주세요오!”

 

아아~♥ 용사는 왜 이리 귀여운 거에요오~

 

...도대체 이건 뭐가...

아니지, 내가 할 행동은 따로 있지.

 

, 그럼 좋은 시간 보내세요.”

 

그게 아니에요! 성녀님!”

 

일단 지금 당장 설명할 수 있는 건, 대충 귀여운 걸 보면 미쳐 날뛰는 루니아 누나가 용사를 덮치는 장면이었다. 이건 마치 맹수가 사람을 공격할 때 그 모습.

 

어라아? 카린? 머리가 검은색으로 되었네요오?”

 

마리아와 싱크로 되었거든요. 이제 엑셀 싱크로의 길만 남았...아니, 이게 아니라. 지금 뭐하고 있는 거에요? 제가 용사에게 쓸 때 없는 트라우마는 남기지 말라고 했죠?”

 

그래도 우리 용사는 배우는 속도가 빠른 걸요오?”

 

그렇게 정당화해도 안 돼.

당장 떨어져.

안 그러면 저 멀리 있는 포돌이를 강제로 소환할 거야.

아니, 포순이인가?

 

아 몰라! FBI까지 같이 와라!

 

“FBI OPEN UP!”

 

순식간에 모든 창문에서 폭발이 일어나고 그와 동시에 모든 특수대원들이...

 

[Take 2]

 

그래도 우리 용사는 배우는 속도가 빠른 걸요오?”

 

배우는 속도가 빠른 게 아니라 루니아 누나가 용사를 습격하는 속도가 더 빠른 거 아닐까요?”

 

언니에요오.”

 

루니아 언니...아무튼! 지금 당장 용사를 해방하지 않으면, 두 번 다시 같이 안 잘 거에요. 알겠어요?”

 

.”

 

방금 혀를 찬 루니아 누나의 모습에서 다크한 암흑의 오러가 보인 거 같은데? 용사는 그러거나 말거나 내 등 뒤까지 숨어서 루니아 누나를 기피하고 있었다. 다만, 등 뒤에서 들려오는 건 고마워요...”라는 수줍은 용사의 한마디였다.

 

키르갤이 왜 용사에게 빠졌는지 알 거 같네.”

 

?”

 

아무것도 아니에요. 용사님은 어서 일행에게 돌아가세요. 제 머리에 대해선 마왕이 아니라 다른 요인에 의해서 바뀐 거라고 미리 알려주시고요. 아무 말 없이 제 머리가 검은 색으로 변해서 난리가 나는 건 보고 싶지 않으니 말이죠.”

 

마굴에서 빠져나가는 듯이 재빠른 발걸음으로 도망가는 용사를 뒤로하고, 루니아 누나와 잠깐이나마 진지한 이야기를 하기로 했다.

 

진지한 이야기라면 저와 카린의 2세 계획이죠오?”

 

어느 방면에서는 그게 정말 진지한 이야기가 될 수 있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진지한 이야기로 받아들일 수 없잖아요. 제가 말하고 싶은 건 이곳은 엘티노스가 없고, 이 세계는 누군가의 각본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는 거라고요.”

 

각본가는 모조리...”

 

모조리 날렸어요. 다만, 각본가라는 역할 자체만큼은 날려보낼 수 없었다는 게 크죠.”

 

지금 어느 누군가는 각본가를 하고 있고,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는 거라면...

 

어릿광대. 어째서인지 그 녀석의 행보를 알 수 없다고 했더니만, 어처구니 없게도 어릿광대의 각본일 가능성이 매우 커요.”

 

유랑극단 중 한 명.

최고이자 최악의 도플갱어.

만인을 속이기 위해 누구든 연기할 수 있는 최고의 광대.

 

어릿광대가 각본가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요오? 그건 말도 안 될 거 같은데에...”

 

내 말에 동의를 할 줄 알고 내심 기대를 했지만, 루니아 누나는 인상을 살짝 찡그리면서 부정을 표했다. 어릿광대가 각본가일 가능성이 있다는 건 동의를 하는 바이지만, 뭔가 의심적인 모습이 나의 의문을 끌어올렸다.

 

그건 왜요?”

 

그치마안...어릿광대가 각본가의 역할을 충실하게 이행한다며언, 카린이 지금쯤 휘둘려야 하는데 용사가 휘둘리고 있잖아요오?”

 

그야 제가 각본에 쓰여지지 않으니까.”

 

그때 각본가도 카린이 각본에 쓰이지 않아서, 주변인물을 통해 수 백, 수 천 번을 더 굴리고 또 굴린 거 기억 안나세요오? ! 물론 백장미 촬영은 굴리는 것이 아닙니다아? 그건 성스럽고 절대적인 행사 중 하나였죠오.”

 

황홀한 표정으로 그런 소리 하지 마시죠.”

 

루니아 누나는 마치 천사를 보았어.”라는 표정으로 허공을 향해 멍 때리고 있었다. 그래도 지금 각본가가 누구인지 밝혀내야 하는 게 더 좋지 않을까? 아니면 각본가가 없어질 때마다 세상이 다 갈려버릴 테니 방치하는 것이 좋은 건가?

 

그런데 용사를 길러서 마왕을 무찌르게 할 생각인가요오?”

 

글쎄요? 그나저나 저 용사는 어때요?”

 

귀엽고 순진한 것에 비해 전투만큼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잘 하더라고요오. 물론 너무 직선적인 움직임만 있어서 교정해주는데 시간이 좀 걸리겠지마안, 조금씩 조금씩 세ㄴ...아니, 교육을 해가면서 성장한다면, 분명 좋은 백장미 소재...가 아니라 용사가 될 수 있을 거에요오.”

 

지금 백장미 소재라고 했죠! 검술교육을 하라니까 뭘 하고 있는 거야!”

 

하지만 루니아 누나는 요염한 눈을 하며 나를 바라봤다.

 

어라아? 혹시 카린의 백장미 자리가 사라질 거 같아 걱정되나요오? 괜찮아요오! 백장미는 언제나 카일이 담겨질 구간을 비워두고 있답니다아~”

 

그걸 걱정하는 게 아냐!!!”

 

누가 그런 저주받을 잡지에 실리지 않는 걸 걱정하겠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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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개월 뒤에 올렸다

이번엔 3개월 뒤에 올렸네요.

이제 4개월 뒤에 ㅂ...<-퍽!

 

619

 

루니아 누나에게 검을 배운다는 건 매우 가혹한 일 중 하나다. 당연하게도 목숨을 걸고 배워야 하는 건 기본이긴 한데, 사실상 목숨을 걸어서 배우는 것보다 더욱 더 극한의 상황까지 가고 있으니.

 

...스승님?”

 

네에?”

 

여린 용사는 루니아 누나에게 애처로운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

 

, 이건 마법소녀의 옷이잖아요!”

 

마법소녀 옷 맞아요오.”

 

루니아 누나의 취향에 맞게 백장미를 찍는 걸로 인해, 연보라색을 베이스로 한 마법소녀로 변한 용사였다. 과할 정도로 프릴이 달려있지만, 애초에 용사의 외모는 귀여운 외모에 속했으니, 누구 하나 할 것 없이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특히 키르갤은 피로 적혀진 손수건으로 코를 막고 있었다. 그러다 과다출혈로 죽는 게 아닐까?

 

자아! 검술 훈련을 하기 전에 커여운 목소리를 5초간 발사해보아요오.”

 

커여운 목소리는 뭐야?

귀여운 목소리겠지.

그보다 전투 중에 귀여운 목소리를 발사하면 어쩌자고?

 

후에에!”

 

진짜 하냐!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루니아 누나에게 검을 배웠을 당시에 저러지 않았는데, 어쩌면 시공섬으로 인한 다중차원도약을 통해 이상한 걸 배워서 온 모양이다. 나는 그 전에 졸업해서 다행이구나.

 

자아. 카린도 5초간 발사아!”

 

하겠냐아아아아!!!”

 

그렇게 내 귀여운 목소리는 하겠냐아아아아!!!”로 되어버렸다. 가 아니라! 그런 일 없어! 절대로 없어! 우주가 빅뱅과 빅크런치를 5번 왕복해도 그런 일 절대로 없어!

 

이게 용사의 수련에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은 1도 하지 않지만, 루니아......니의 밑에서 검술을 제대로 배우는 건 흔하지 않는 기회는 맞아. 그래도 이상한 요구를 하면 제발 안 한다고 좀 해줘...”

 

안쓰러워서 용사에게 부탁했다.

당연하게도 그게 씨알도 안 먹히겠지만.

 

카리인? 용사와 마법소녀의 공통점은 뭐죠오?”

 

뜬금없는 질문을 하는 루니아 누나를 바라보는 내 눈이 정상적인 눈은 아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바보 같은 질문의 대답을 해야 하는 나의 사명이 내 머리를 근질거렸다.

 

악과 맞서 싸운다는 건가요?”

 

틀렸어요오. 정답은 기합이에요오.”

 

그래서 그 기합이 지금 마법소녀 옷을 입은 용사와 무슨 관계인데요!”

 

보통 전투시의 기합이란 건 사기진작에 도움을 주는 거지, 김빠지는 소리로 용사에게 측은함을 느끼게 하는 동정심 유발 스킬이 아니란 말이야. 아니, 단순히 소리지르는 것만으로도 스킬이라고도 할 수 없다. 그냥 전투행위 중 하나잖아?

 

제대로 검이나 가르쳐놔요. 그 용사는 그대로 잠재능력이 뛰어난 아이니까.”

 

그렇긴 하네요오. 카린 다음으로 백장미의 후계자가 결정될 수 있는 중요한...”

 

백장미가 아냐!!!”

 

소리지르고 밖으로 나와 답답함을 신선한 공기로 달래보려고 했다. 가까운 곳에서 마리아가 날 기다리고 있었는데. 나만 보이고 다른 이들에게 보이지 않은 거라면, 환각이나 귀신이라고 취급할 수 있겠구나. 그렇다고 해서 꺄악! 귀신이야!”라고 소리칠 수 없다.

 

방금 첩에 대해 이상한 생각을 하지 않은 건가?”

 

아무것도...그래서 마리아는 무슨 일로 나온 거에요?”

 

밖으로 나가자! 밖에 무슨 일이 있는지 정보가 부족하다!”

 

마왕군이 밖에 얼마나 있는지도 모르는데 밖으로 나가자고 하는 마리아. 당연하게도 마리아는 이 세상에서 모습이 보이지 않지만 간섭할 수 있는 유일한 정신체다. 안정화를 위해 숙주를 나로 삼고 있지만, 솔직히 안에 가만히 있는 것도 답답하고 밖으로 나가보도록 할까?

 

그래도 하란국에선 제가 마왕하고 내통하고 있다거나, 배신할 수 있는 가능성이 매우 높아서 격리조치만 하지 않아도 다행이라고 생각하는데?”

 

잠깐 잡화점에 다녀온다고 하면 되지 않는가?”

 

, 그것도 일리가 있네.

결정을 했다면 신속하게 움직일 때. 잡화점에 잠깐 들렸다가 다시 하란국 근처로 사키엘의 문을 이용했다. 밖의 초목은 여전히 살아있다고 생각하지만, 마왕군과의 전투에서 황폐화된 장소도 여럿 있었다.

 

꽤 화려하게 저질렀군. 정신적인 사념으로 보아하니 기괴한 돼지 하나 잡는데 본 모습으로 돌아갔구나.”

 

그야 사로잡아서 맛있는 음식을 안주고 농락하겠다는데, 어느 누가 진심으로 안 때리겠어요?”

 

이곳도 이상한 간부들밖에 없구나. 흐음...”

 

그리모스라는 간부도 좀 이상한 녀석이었지. 처음 보자마자 항복을 하거나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가자고 꼬드기니까. 그때는 내가 모든 뼈를 박살 내는 바람에 순살치킨이 되었을 지도 몰라. 얼마 안 있으면 다시 부활하겠지만, 한동안 나 때문에 하란국에 접근하는 건 꺼려하겠지.

 

이런 세계는 카일의 손짓 한번이면 모든 것이 뒤바뀌지 않는가?”

 

그거야 가능은 하죠. 하지만 이질적인 무언가가 자꾸 걸려서요. 분명 제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세계라면 이런 고민은 하지 않지만, 이 또한 누군가의 개입이 들어간 거 같아요.”

 

세계를 뒤집어 엎는 것도 확실히 그 세계의 관리자가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이곳은 내가 관리자가 아니다. 어떻게 창조의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렇게 결정지을 수 있냐고 물어본다면, 매번 이질적인 기분과 근본도 없는 정체불명의 이 나를 통제하고 있다. 관리자가 아닌 녀석이 차원을 뒤흔드는 건 커다란 상처가 남을 테니 말이지.

 

이질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그 차원의 관리자를 제거해야 한다는 건가?”

 

아니면, 우리가 이 차원을 떠나는 방법이 있죠. 그런데 아시다시피 이곳에도 의뢰를 몇 가지 받은 바람에 잡화점이 이동을 하려고 하지 않아요.”

 

잡화점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주인보다 더 강하게 만들어놓으면 어떻게 하냐? 아니, 애초에 잡화점 자체만으로 미스터리잖아? 언젠가 한번 잡화점을 뜯어보던가 해봐야겠다. 세린은 분명 흔쾌히 거절할 거야.

거절 당하는 거구나.

 

차원의 관리자라기 보단 이곳도 각본가처럼 임의대로 만들어낸 공간 같은데, 애석하게도 각본가는 이제 존재하지 않는단 말이죠?”

 

각본가가 존재하지 않아도 그 자리를 대신 할 수 있다는 의미로군?”

 

마리아는 내가 최종적으로 하고 싶은 말을 미리 이야기 했다. 각본가를 자청하는 존재가 사라질지언정, 그 자리는 아직까지 사라지지 않았다. 사라지지 않은 그 역할은 여전히 내 근처에서 서성이며, 무언가를 바라고 있는 듯한 기분이다.

 

도대체 나에게 무엇을 바라고 있을까?

 

오호? 우연이로군? 짐을 찾으러 온 것인가?”

 

마왕?”

 

하긴, 이곳에서는 누군가가 보고 있을 수도 있으니 그렇게 부르는 것을 허락하노라.”

 

대격변 이후의 마왕은 자신의 심복 몇 명만 이끌고 하란국 주변을 돌아다니고 있는 듯했다. 그보다 허락은 무슨 허락을 말하는 걸까?

 

그런데 잡화점 주인 안에서 무언가 이질적인 것이 느껴지는군? 짐의 타락의 영향으로는 보이지 않는데? 끝에 검은 머리는 누구의 짓인가?”

 

마왕은 나에게 생긴 이상현상에 대해 경계했다. 격변이전의 레시아라면 검은 달의 여왕과 비등하거나 더욱 더 높은 서열에 있겠지만, 지금의 마왕은 검은 달의 여왕에게 간단히 죽을 수도 있다.

 

염색을 잘못했다는 말은 통하지 않을 거 같네. 이전 세계에 있던 동료가 찾아왔지. 검은 달의 여왕이라고 하면 아실지 모르겠지만...”

 

일부러 정체를 말한 이유는 2가지.

이곳을 만든 각본가가 내가 예상하고 있는 자라면 확신을 가질 수 있고, 만약 아니더라도 나름대로의 혼란을 더욱 더 가중시킬 수 있다. 검은 달의 여왕이 누구인지 모르는데 그걸 섣불리 건드리다가 전멸할 수 있으니 말이지.

 

검은 달의 여왕이면 멸망하는 차원의 구세주인가?”

 

마왕은 손쉽게 답을 말했다.

그러면 내가 아는 각본가는 하나로 좁혀지지.

다만, 지금은...

 

격변이전의 세계에선 수많은 동료들 중에 하나야.”

 

[아니. 신부 중 하나라고 하거라.]

 

[마리아. 아무리 그래도 지금 이 상황에서 그렇게까지 말을 해야 합니까?]

 

[첩도 대격변이 지나간 이후 오랫동안 출연하지 못했단 말이다!]

 

[이게 무슨 버라이어티 쇼인줄 알아요? 출연이 아니라 출현이겠죠!]

 

멸망하는 차원의 구세주는 무슨...

멸망해버린 맞춤법부터 구제해야 할 판이다.

 

[다만, 첩이 생각하기엔 이건 확인 방법이 되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첩이 간섭한 차원이 많을뿐더러, 격변 이전의 차원 또한 첩이 공식적으로 있는 자리가 있으니 말이다. 첩이 생각하는 초점은 어째서 엘티노스가 거론되지 않고 이어져가는 가에 대한 것이 아닌가?]

 

[그 유명한 양반이 거론되지 않았다고요? 그럴 리가 없...]

 

그럴 리가 없을 텐데...?

내가 만났던 사람들의 대화에서 엘티노스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이 많지 않았나? 그보다 엘티노스라는 이름이 거론되긴 했을까?  아니면 이곳은 엘티노스가 없는 세상이 아닐까?

 

그렇네. 잘 생각해보니 그랬어.”

 

? 무슨 소리인가?”

 

엘티노스는 이전 모험을 떠난 기록이 있다. 그 과정에서 마왕을 일방적으로 구타하는 바람에 인간계의 침략을 막아버렸으니까. 지금 엘티노스가 그런 일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하면, 지금 이 마계의 침략은 엘티노스라는 키워드가 빠져버린 상태다. 그러면 제목도 잡화점 이야기로 되어버리잖아?

 

제길...그 성질 나쁜 아저씨를 어디로 날려버린 거지?

 

엘티노스. 알아?”

 

나는 마왕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그리고...

 

? 그 자는 누구이지?”

 

대답을 듣고 확신을 했다.

엘티노스가 빠져버린 차원에서 내가 할 일은, 엘티노스가 없어 벌어진 일을 수습하는 것과 아니면, 엘티노스라는 키워드를 빠뜨린 각본가를 찾아서 뒤집어 엎어버리거나...

 

지금 내가 있는 잡화점은 엘티노스 잡화점이야. 그리고 엘티노스라는 자는 500년전 모험을 떠나면서 영웅이라고 칭송 받을 정도로 업적을 이룬 대마법사이기도 하지. 물론 이 잡화점은 내가 물려받았으나, 현재는 엘티노스라는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도 의문이기도 해.”

 

하지만 짐은 살아생전 그 이름을 듣지 못하였노라. 그렇게 크나큰 위인이라면 짐이 살아오면서 지식이 습득될 터.”

 

그러면 대격변의 이유는 각본가를 제외시키면서, 엘티노스까지 사라져버린 세계가 되어버렸다. 이건 마치 직소퍼즐이 500피스인데 하나가 사라졌다고 생각했더니, 두 개가 사라진 것처럼 느껴졌다. 1개 없어진 건 그나마 봐줄 수 있어도, 두 개가 비어있는 건 사람에게 어마어마한 스트레스를 주니까.

 

나만 그런가?

 

그렇군. 확실히 짐이 모르는 지식이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 그대는 기괴하다고 볼 수 있노라. 다만, 지금은 전쟁 중이기도 하고 그대는 세간에서 용사그룹의 일원 중 하나.”

 

숲 속에서 중무장 된 병사들이 차례대로 나왔다.

매복을 하고 있었던 건가?

 

내가 나올 줄 알고 있었나 보네?”

 

그대의 세계와 짐의 세계의 차이점은 마왕성에서 듣도록 해보도록 할까? 아니면, 그대가 이 포위망을 뚫고 도망가는 편이 더 신빙성이 높은가?”

 

마왕의 사기가 끓어오르자 주변의 병사들의 사기 또한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 적당히 저항해서 도망친다면 그게 더 신빙성이 높지 않을까?”

 

아직까지 마왕과 나는 세계를 상대로 연기를 하는 중이니 말이지.

그래도...투쟁의 기운을 한 몸에 받은 나 또한 즐겁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너희들이 지금의 나를 이길 수 있다면 말이야?”

 

연기라는 것은 보는 사람에게 있어서 실감나야 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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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내놓고 거의 한달이 지난 이후에 아니, 두달인가???

아무튼 꽤 오랜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때까지 일을 하면서 바쁜 스캐쥴을 소화하고...

일하면서 욕도 먹고 칭찬도 먹고 돈도 먹으면서 그나마 안정권이 되었는데

글을 자주 안쓰다보니까 내용이 어떻게 된 건지 까먹는 바람에

 

제 글을 정주행하고 어느 정도 갈피를 잡아서 썼습니다.

 

사실상 글쓰는 걸 접어야 하나 생각은 했는데...

게임 안하면 유튜브 보는 일인데 그것도 안하면 글을 쓰는 거였네요...

 

결국 오랜시간동안 안올리다 지금에 와서 올립니다.

어차피 연재중지라는 말도 안 했는데 계속 이어져도 되겠죠...

 

여러분은 일하지 마세요

일하면 패배...당신들 누구야! 읍읍!

 

618

 

 

 

가능하면 어느 누구도 손해를 보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용사의 트라우마를 하나라도 줄이기 위해선, 루니아 누나에게 무릎베개와 귀청소를 하겠다고 하자, 흔쾌히 승낙을 하고는 지금 하란국의 숙소 안에서 귀청소를 하는 중이다. 루니아 누나의 귀에는 딱히 청소를 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깨끗하지만, 마사지로 인해 편안해지는 것 때문인지 조용히 있는 루니아 누나.

 

그래서 이곳에 오기 전까지 무슨 일이 있었길래, 릴리 기사단 복장을 집어 던지고 사이버틱한 복장으로 오신 거에요?”

 

소녀는 신기한 일에 자주 휘말린답니다아.”

 

아무리 그래도 소녀가 공간을 찢지는 않아요. 게다가 루니아 누나 나이를 생각해서라도...흐아앗!”

 

흐응? 역시 카린의 허벅지는 부드럽네요오? 그리고 언니라고 불러야죠오?”

 

지금 귀이개가 루니아 누나의 뇌까지 관통할 뻔했잖아요! 그리도 둘이 있을 때는 누나든 언니든 그냥 들어요! 은근슬쩍 더 허벅지 안쪽까지 들어가지 마시고요!”

 

지금 당장이라도 손을 치워버리고 싶었지만, 지금은 설득으로 시작을 해보자. 좀 더 좋은 결과를 내기 위해 말이지. 어쨌든 루니아 누나는 지금까지 차원을 찢어가면서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 이야기를 했는데.

 

그러니까아. 트리케라캅 씨하고 바바리아나 씨하고 같이 쿵퓨리 씨를 도와서어, 히틀러를 제압하고 다녔답니다아?”

 

대체 누가 그런 일을 하냐고요! 그보다 트리케라캅 씨는 또 뭐에요?”

 

얼굴이 트리케라톱스인데 멀쩡하게 이족보행을 하는 의무감 넘치는 경찰이랍니다아.”

 

도대체 그런 생명체와 왜 일한 거에요!”

 

모든지 해킹할 수 있는 해커맨에게 도움 받기 위해서죠오?”

 

누가 들으면 그 해커맨이 시공간도 해킹할 수 있는 줄 알겠다.

...진짜냐?

 

아니, 그것보다 쿵퓨리라는 사람은 뭐 하는 사람인데요?”

 

그거야. 형사죠.”

 

아마 정상적인 형사는 아니겠지? 어디서 뛰어내리는 와중에 권총으로 차를 쏴서 시동을 걸만한 그런 인간일 거야. 한쪽의 귀청소가 끝나서 반대편으로 돌아달라고 말했는데, 루니아 누나의 붉은 눈이 나와 마주하는 순간, 고개를 살짝 갸웃거리며 입을 열었다.

 

어라아? 마리아가 카린의 몸 속에서 적응하는 건가요오?”

 

. 그렇죠.”

 

아무래도 코발트 블루 색상의 머리카락 끝에는 검게 물든 흑발이 서서히 올라오고 있으니까. 마리아가 완전히 적응되면 비상시에 내 몸을 이용해서 권능을 발휘할 수 있게 되겠지만, 그럴 바에 차라리 내 힘으로 둘로 쪼개서 카린의 몸은 마리아에게 양도하고, 나는 본래 모습인 카일의 몸으로 살아가면 된다.

 

! 그렇게 되면 완전한 힘으로 뭉쳐지지 않고 양분하니까, 본래 성별인 남자의 모습으로도 잡화점에게 흡수당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지도 몰라!

 

그러면 카린과 카일을 묶어놓고 백장미와 흑장미 콜라보로 찍으면언?”

 

그런 대재앙적인 발언을 서슴없이 하는 겁니까?”

 

대재앙이라뇨오? 이것은 신화창조라고 볼 수 있습니다아. 혹은 빅뱅이 터진다고 하죠오?”

 

백장미와 흑장비를 콜라보하면 우주가 멸망했다가 다시 재탄생하는 건가? 아니...도대체 그 망할 잡지가 뭐길래!

 

잘 모르겠지만 이상한 일은 하지 마세요. 그리고 전 백장미든 흑장미든 찍지 않...흐아앗!”

 

또 다시 루니아 누나의 나쁜 손이 허벅지 안쪽을 향해 진로를 틀었다.

 

백장미와 흑장미를 찍지 못하게 할 거라면, 백장미와 흑장미가 없이 못사는 몸으로 만들어드리죠오?”

 

무슨 바보 같은 마개조를 할 생각이에요! 그만둬요! 제 귀이개가 루니아 누나의...”

 

언니.”

 

아무튼! 귀이개로 아이스크림 퍼 올리듯이 뇌를 꺼내게 만들지 말라고요!”

 

그렇게 엉망진창인 귀청소가 끝나고 루니아 누나는 기지개를 피며, 내 무릎베개에서...아직까지도 떠나지 않았다. 다 끝났다고 한들 내 복부에 얼굴을 맞대고 있는 루니아 누나. 잠깐 눈이라도 붙일 심정으로 아무 말 없이 잠들어버렸다. 쓸 때 없는 말만 하지 않으면 누구나 다 사로잡힐 듯한 절세미인인데.

 

...무심코 머리를 쓰다듬었다.

상관없나?

 

일단, 시나가 올 때까지 특... 서비스를 해드려야죠. 무차별적으로 시공간을 찢고 넘나들면서 고생이 많았을 텐데...”

 

루니아 누나도 잠...

 

......”

 

어째서 자면서까지 내 독백을 알아차리고 잠꼬대를 할 수 있지? 이제 개와 소를 뛰어넘어 잡초뿐만이 아니라 공기 속에 있는 원자와 분자까지 내 독백을 읽을 수 있게 된 거냐? 어쨌든 피로회복과 안정에 효과가 뛰어난 무릎베개를 계속 대여해주는 동안, 생각을 정리하기 좋은 숨소리가 숙소 안에서 퍼졌다.

 

-똑똑똑

 

성녀님?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내가 들어오라고 하자 조용히 문이 열렸다. 경첩이 녹슬지 않아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지 않아 좋았다. 다만, 들어온 사람은 기사가 아닌 용사였다. 가여운 동물 같은 모습을 하고 있지만, 저렇게 보여도 마왕군이 포위했을 때 혼자서 무쌍을 찍은 사람. 다만, 마왕군보다 더 무서운 루니아 누나가 내 무릎에 잠들고 있자, 안 좋은 트라우마가 떠올랐는지 움찔거렸다.

 

...성녀님. 이 분은 위험한 사람입니까?”

 

저는 성녀가 아니지만 이 사람은 매우 위험한 사람이라고 분류하면 됩니다.”

 

솔직한 감상으로는 위험한 사람 맞다.

아니, 솔직히 루니아 누나가 있을 때마다 매번 백장미 찍자고 난동을 부려서, 하루는 가출을 설산으로 하고, 나를 굶겨 죽일 때까지 임시은신처에서 포위를 한 체 협상을 하던 인간이다.

 

그래도 제대로 된 교섭을 통해 아군으로 끌어들일 수 있죠.”

 

, 성녀님은 정말 인자하신 분이군요!”

 

아니, 성녀 아니라고 분명 앞에서 말했잖아!

 

저는 인자하지 않아요. 제가 아는 사람에게만 잘 대해주려고 노력할 뿐이죠. 진정한 성녀의 인자함은 적과 아군을 구분 없이 모두 포용할 수 있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성녀가 아니고, 잡화점의 주인이라고 몇 번을 이야기해야...”

 

카리인?”

 

졸음에 살짝 힘겨워하는 듯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루니아 누나. 누군가가 보면 평상시와 다른 갭에 심장을 부여잡을지도 모르겠구나. 다만, 나는 오른손으로 루니아 누나의 눈을 가리며 입을 열었다.

 

아직 피곤해 보이니 더 자고 계세요.”

 

사실 루니아 누나의 시야에 용사가 포착된다면 꽤나 귀찮은 일이 일어나니,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고자 함이었다. 목소리는 잘 몰라도 귀여운 것만 보면 발광을 한다는 기괴한 단점이 있으니까.

 

내 목소리를 수면제 삼아 다시 잠들고 있는 루니아 누나. 용사는 그러한 내 모습을 보며 눈을 더욱 더 반짝였다.

 

, 정말 굉장...!”

 

. 지금 사람이 자고 있으니 조용히.”

 

나는 돌아보며 일부러 입을 열었다. 기껏 이 용사가 위협에서 지키기 위해 내가 희생하고 있는데, 오히려 잠든 사자의 코털을 건들이며 난장판으로 만들어 혼돈의 도가니로 만들 생각인가? 이 사람이 일어나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일이 귀찮아진단 말이야.

 

그나저나 볼일이라도 있나요? 없다면...”

 

아뇨. 볼일이라면 있는데...그 사람이 제 스승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요.”

 

?

스승?

지금 저 용사가 뭐라고 한 거지?

 

제 검을 간파하고 단 1합만에 제압하는 그 실력을 보고 전 알았어요.”

 

잠깐만, 그렇게 진지하고 진부한 이야기를 늘어뜨리지 않아도 돼. 용사가 검만으로 해결하는 직업은 아니잖아? 마법도 배우고 동료들에게 도움을 받아서 막타만 먹는 직업 아니었냐고? 아니, 최근의 용사물이 그렇다는 게 아니라, 기존에 옛날 형식에서는 그렇다는 거지. 어쨌든 그걸 따지려고 하는 게 아니라, 지금 네가 스승으로 받들려고 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검사란 말이야!

 

좀 더 강해지려면 저에게 체계적인 검술이 필요하다는 사실을요!”

 

언제부터 시공간을 잘라먹는 검술이 체계적인 검술이 된 거냐? 저건 이론상으로도 못한다고!

 

이 사람에게 검술을 배우면 그 이상으로 혹독한 대가가 따름에도 불구하고요?”

 

그 혹독한 대가라면 아마 여장이겠지. 아니면 백장미에 특수한 페이지로 추가 되거나.

 

, 상관없어요! 모두를 지키고 마왕을 처단할 수 있다면!”

 

인생...

난 모른다.

네 결정에는 네가 후회해라.

 

그래도 키르갤에게는 제대로 이야기 해주셔야 되요. 안 그러면 별 이상한 이유로 싸우게 될 테니까. 이 사람에게는 제가 말할 테니 다른 용무가 없다면 나가보셔도 되요.”

 

사실은 성녀님께 검을 배우고 싶었지만...”

 

저에게요?”

 

그보다 성녀 아니라고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들을까?

아니, 이렇게 독백으로 집요하게 마음속으로 트집잡는 것도 지치는데.

그래도 순수하게 놀란 이유라면, 용사가 나에게 검을 배우고 싶다는 말 때문일까? 내가 제자를 가르친 적은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맞춤형으로 조언만 해줬을 뿐. 매우 뛰어난 제자들은 그것만 알아듣고 나머진 알아서 했다. 용사는 천재라기보단 하나부터 열까지 다 알려줘야 하는 평범한 인간의 범주이긴 한데...

 

저에게 배운다는 건 그나마 옳은 선택일지 몰라도, 검사의 길 한정으로는 지금 자고 있는 이 사람이 가장 뛰어나거든요.”

 

당연하게도 어떤 마법을 사용한들 루니아 누나를 이길 방도가 없었다는 게 더 큰 이유였지만, 시공섬이라는 말도 안 되는 기술을 쓰는 게 무서운 것이 아니라, 루니아 누나는 아마 시공간의 흐름까지 읽었으리라 생각한다.

 

그래도 많이 피곤했는지 이렇게 떠드는데도 일어나지 않았다.

무의식적으로 루니아 누나의 머리를 계속 쓰다듬었다.

 

그나저나 성녀님은 그분과 어떤 관계인가요?”

 

순진한 눈망울로 물어보는 용사.

 

부부에요.”

 

무의식적으로 이야기를 이렇게 해버렸지만, 틀린 것도 아니고 혹은 농담으로 알아들을 수 있는 가능성도 있다.

 

그렇군요.”

 

납득했냐!!!

아무래도 이 용사의 매우 순진한 성격을 계산에 집어넣지 않은 것이 화근인 듯하다.

 

그러면 같이 침대에 손잡고 자면 아이가...”

 

안 생겨요. 키르갤에게 나중에 자세히 물어보던가 하세요. 참고로 황새가 물어다 주는 것도 아니고, 다리 밑에서 주워오는 것도 아니고, 알에서 깨어나는 것도 아니니까 그 이상 묻지 마세요.”

 

알에서 깨어나는 건 신화에나 있을 법한 일이지만, 확실히 인류가 맨 처음 태어나기 전에, 창조신이라는 작자는 어디서 태어난 걸까? 우주에 알에서 태어난 걸까? 아니, 쓸 때 없는 생각으로 용량을 사용하지 말자.

 

아기요오? 그거라면 직접 보여드릴 수 있긴 한데에...”

 

잠깐만요. 일어나는 타이밍이 좀 이상하지 않아요? 다시 안 자요?”

 

카린이 절 수면마법으로 재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마안! 제 정신력은 그렇게 약하지 않아요오!”

 

어디서부터 일어난 거에요? 그보다 지금 어린애 앞에서 뭘 보여줄 생각인데요?”

 

뭐긴 뭐에요오? 사랑의 교미죠오?”

 

집어 던져버릴까?

행선지는 집게리아다.

 

웃기지 마세요! 지금 당장 깊은 저 바다 속 파인애플에 던져버리기 전에, 제 허벅지를 은근히 추행하고 있는 그 손 안 때요!”

 

안 되요오! 저 아이에게 우리의 관계가 끈~적하고 농후한 사이라는 걸 보여줘야죠오?”

 

그 빌어먹을 민달팽이 그만 안 둬? 하지마! 잠깐! 일어나지마! 꺄아악!”

 

그 와중에 순식간에 일어난 루니아 누나가 사냥감을 덮치는 맹수로 돌변해, 순식간에 그 안이 아수라장이 되어버렸지만, 소란을 듣고 찾아온 용사 일행에 의해, 용사의 눈 앞에서 민달팽이인지 뭔지는 당하지 않았다.

 

용사도 나도 서로 트라우마가 되지 않아 다행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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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용사도 지옥행 열차를...아닙니다.

 

617

 

 

 

마리아와 잡화점 멤버가 이곳으로 넘어왔다는 건 잘 알겠지만, 루니아 누나를 제외하고 다른 멤버들이 이곳으로 모습을 드러내기 위해선, 마리아의 몸이 안정을 되찾아야 한다. 다시 말해 마리아의 숙주가 필요한 것. 마리아와 나는 동화를 할 수 있지만 검은 달의 여왕의 신도는 마리아가 숙주로 만들지 않는다. 그것만으로도 우선 정신기생으로부터 영향이 없다는 말이 된다.

 

결국 코발트 블루의 머리색상의 끝에는 마리아의 짙은 흑발이 서서히 자리잡으며 동화율을 올리고 있고, 이곳에서 적응하기 시작한 마리아는 세린처럼 나만 보이게 하여 말을 걸어왔다.

 

그나저나 카일도 고생이 많구나. 첩이 이러고 있으면 또 마왕의 간계에 빠져 타락하고 있다는 둥. 그러는 것이 아니더냐?”

 

그나마 마리아가 카린이 아니라 카일이라고 불러주니까요, 지금 내 본래 성별이 남자라는 것을 다시 한번 일깨우게 돼요. 애초에 격변 이후의 레시아와도 그렇게 이야기가 진행하는 중이니. 지금 이런 모습을 보여주면 용사 일행은 좀 더 강경하게 나오겠네요. 하란국이 성공적으로 막든, 실패를 하든, 이 세계의 혼란을 빨리 잠재우고 우리는 조용한 곳에서 잠적을 타는 게 좋겠죠.”

 

내 무릎 위에 올려진 마리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나에게 요구하는 것이 무릎베개와 귀청소라니. 그보다 정신기생체도 귀가 가려운 건가?  실제로 어떻게 생겼는지 잘 모르겠는데?

 

첩은 실체가 없노라. 그저 마지막에 숙주의 모습 그대로 이어 나아갈 뿐이니 말이다.”

 

내 생각을 읽거나 독백을 간파할 때는 3골드씩 받아야겠어, 그럼 나는 순식간에 부자가 될 거야.”

 

아까 저 멀리 있던 잡초에게도 3골드를 받아야지.

그럼 난 부자가 될 거야!

 

아무리 그래도 고작 풀무덩이에게 3골드씩이나 받는 것인가?”

 

먼저 3골드 내놔요.”

 

첩은 아쉽게도 정신기생체라 낼 수가 없노라. 대신...이 몸이라도 괜찮다면?”

 

실체가 없는 주제에 잘도 그렇게 유혹하네요? 마리아를 통해 모순이라는 단어를 한 단계 깊이 알아가는 거 같아요. 그보다 언제부터 그런 캐릭터였는데요?”

 

그럼 카일이야 말로 언제부터 자신의 존재가 잡화점에게 먹힐 것이라고 생각하고, 여성체로 살아가는 것인가? 확실히 잡화점의 힘이 아직까지 강한 것은 맞지만, 세린이라는 인격체의 말만 듣고, 통제 당하면서 살기를 원하는 것인가? 첩이 알고 있는 카일은 불가능한 일도 아주 간단하고 빠르게 해내는 그런 남자다. , 이런 모습도 귀여우니 첩은 아무 말없이 봐주고 있는 거지만.”

 

대체 봐주지 않으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거지?

그렇다고 나도 본래 모습으로 돌아가기 위해 생각해놓은 것은 있다고? 예를 들어서 카일과 카린이라는 존재를 둘로 나눠서 힘을 분산시킨다거나, 또 다른 거라면 아예 잡화점을 나가고 다른 차원의 신이 된다는 것도 있는데, 일단 이쪽의 일은 해결해야 하니, 카일과 카린으로 이등분을 해야 할까?

 

카일과 카린으로 이등분이라, 애석하게도 그건 좀 힘들 것이라 본다.”

 

그건 왜요?”

 

태클 거는 사람이 2명이 되면, 만담으로 4화는 날로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니라.”

 

어디서 뭘 보고 온 겁니까?”

 

마리아는 만담만으로 4화를 날려먹은 미래를 본 것일까?

 

-벌컥!

 

, 성녀님! 큰일 났습니다!”

 

무슨 일 있으면 오라고 했지만, 그래도 노크는 할 줄 알았는데...뜬금없이 문을 열고 온 기사의 말에 다급함이 내 고개를 있는 힘껏 돌리게 만들었다. 야야, 그 각도 이상으로 돌아가면 목이 뒤틀린다고!

 

큰일이라면 뭔가요? 설마 하란국의 여제가 쓰러지기라도 했나요?”

 

, 아뇨. 그건 아니지만...아무튼 큰일 났습니다!”

 

뭐지? 아무튼 큰일이 났다는 말은?

다급하게 기사의 말을 듣고 밖으로 나아갔다. 하란국 내부는 아수라장이 되었는데, 주변을 둘러보니 모두 다치거나 기절한 사람이 태반이었다. 가구들은 이곳 저곳 다 날아가있는데, 의외로 사상자는 없는 모양.

 

싸움에서 지면 모든 것을 잃는 이런 거친 생활 속에서 기절과 부상만으로 끝낼 정도의 강자라.

 

지금 성녀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당장 내놓지 않으면, 이곳을 백장미인지 흑장미인지 아무튼 물들인다고 했습니다. 이 자는 마왕군의 첩자가 맞죠? 그렇죠!”

 

, 잠깐만? 백장미? 흑장미?

 

, 안돼! 그만둬!”

 

아무래도 용사마저 그 괴한에게 진 모양이다. 확실히, 지금 이 소란의 주동자가 내가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이 곳이 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더 신기했다. 그건 그렇고 저 멀리서 용사를 깔아 뭉개고 귀엽고 여린 용사의 목에 코를 박아 냄새를 맡는 모습. 저거 영락없이 팔찌와 발찌가 세트로 채워지는 경우잖아?

 

하아~ 좋네요오! 카일만큼은 아니지만 이 아이도 재능이 보여요오! 메이드 복? 차이나 드레스? 계량 한복? ~ 어떤걸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네요오!”

 

, 당장 용사를 놔주지 못해! 그리고 메이드 복이 아니라 발키리 복장이 더 잘 어울린단 말이야!”

 

키르갤 너 용사에게 뭘 할 생각이야?

 

, 발키리이?! 그것도 좋네요오! 나중에 카일에게 입혀야지이~”

 

키르갤의 욕망을 거침없이 받아주지 말란 말이야.

 

, 키르갤!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도와달란 말이야!”

 

용사는 당황하면서도 태클을 걸고 도움을 요청하는 모습이 너무 처량하게 느껴졌다.

 

...

인생 진짜...

시공간을 접어 키르갤 바로 앞으로 이동했다. 나 아니면 이 상황이 끝나지 않을 거 같으니까. 그리고 용사에게 이상한 트라우마를 심어주기도 싫고, 희생자는 카일 하나만으로 충분하다.

 

그 이상 그만두시죠. 루니아 누나.”

 

언니.”

 

하아, 언니. 어쨌든! 그 애는 저렇게 보여도 제 7용사니까, 나중에 마왕하고 싸우려면 이상한 트라우마는 없어야 한다고요.”

 

온화한 얼굴과는 다르게 투쟁심으로 가득한 붉은 눈과 마주했다. 파도를 닮은 긴 웨이브의 금발. 그리고 릴리 기사단을 상징하는 흰색의 갑주...는 어디로 가져다 치웠는지, 왠 사이버틱한 금속제질의 보호구가 눈에 띄었다.

 

이제서야 카린을 체대로 찾아왔네요오. 그래도 아쉬우니까 바니걸 복장은 입혀도 되요오?”

 

안 돼요! 그만 좀 해요! 당장 풀어주라고요!”

 

, 성녀님...”

 

울먹거리는 용사가 귀엽...아니, 불쌍하게 올려다 보았다. 용사여 자신의 실력이 부족하다고 자책하지 말거라. 루니아 누나가 원래 마왕보다 더 강한 인간이라서 그래.

 

흐응...그러면 카린은 저에게 뭘 해주실건가요오? 인질을 해방하는 조건에 있어서 그와 상응한 대가가 아니라며언? 저는 이 아이를 오늘 밤에...우후훗♡

 

요즘 대격변 때문에 자신의 입지가 없어질 거 같아서 그런지, 격변 이전의 멤버들이 하나 같이 모두 성격이 바뀌어서 온 거 같은데 제 기분 탓입니까? 언제부터 그렇게 적극적인 인간이 되었다고 빈하트까지 써가면서 협박을 하는 거에요?”

 

, 방금 오타로 거에여라고 말할 뻔했죠?”

 

웃기고 있네! 말 돌리지 마시죠!”

 

배열상 바로 옆에 가 있을 뿐...아니,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어디다 태클을 걸고 있냐고! 그보다 저 눈은 정말 상응한 대가가 없다면, 오늘 밤 저 용사는 루니아 누나의 마수로 인해 엉망진창으로 여장 당할 기세다. 분명 마왕에게 졌을 때도 ! 죽여라!”라며 마음을 다 잡겠지만, 되려 죽음 보다는 여장 당하는 게 더 싫었는지, 나를 바라보며 울먹거리고 있었다.

 

어쩌다 이런 일이 되었을까?

 

하란국의 병사는 모조리 다 포위하고 있는 상황에, 류하 씨마저 이곳에 모습을 드러낼 참이었다. 그 전에 빨리 끝내야 한다. 이 흉악스러운 백장미 창조자를 어디론가 숨겨야 한단 말이야.

 

오늘 밤 같이 씻죠.”

 

모두가 얼어붙었다. 아니, 내가 시간을 정지한 줄 알았다. 아니, 더 월드나 스타 플래티나가 시간을 정지 한 줄 알았다. 결국 루니아 누나가 바라는 것은 남을 여장시키는 질병이 발병하기 전에, 그걸 가라 앉혀줄 임시방편이 필요하다는 거지. 결국 내가 희생할 수 밖에 없다. 이건 그렇다고 쳐도...

 

, 방금 뭐라고 하셨죠오?”

 

같이 씻...자고요...”

 

루니아 누나

 

언니.”

 

루니아 언...

 

아니! 독백까지 침범하지 말라고요! 3골드 내세요!”

 

그보다, 정말 같이 씻는 건가요오? 카린의 몸을 훔쳐보는 것도 힘들었는데에 직접 터치하고 만지면서 놀 수 있는 건가요오?”

 

제 몸이 어디 지능형 휴대폰입니까! 터치하고 만지면서 놀게! 그런 짓 하기만 해봐요! 시공의 저편으로 날려버릴 테니까!”

 

, 하지만 가, 같이 씻는 거라고요오? 농후한 민달팽이의...”

 

진짜 대격변 이후의 입지가 안 좋을 거 같으니까 성격하나 개조해서 온 거에요? 어린애 앞에서 못할 말이 없어!!!”

 

뭐라고 해야 하지? 서로 등을 밀어주는 것까지는 허락하겠다는 마음으로 입을 열었는데, 루니아 누나가 생각하는 건 전연령으로 볼 수 없는 무언가로 뻗어나가 버렸다. 그보다 왜 하필이면 민달팽이야?

 

카린과 목욕. 흐음...이 타이밍에 루니아 봄버를 날려도 되는 건가요오?”

 

디럭스 파이터 부르기 전에 그만하시죠.”

 

흐음...”

 

뭘 그리 고민하고 있는 거야.

설마 용사를 풀어주는 조건으로 민달팽이인지 나발인지 그것까지 포함시킬 생각이냐? 그것까지 바란다면 어쩔 수 없다. 일단 내 몸부터 지키고 용사를 포기할 수 밖에...

 

그럼 터치하고 만지면서 놀지 않으면 되는 건가요오?”

 

. .”

 

. 그래도 루니아 누나가 정상적인 사고방식을 유지해서 다행...

 

그럼 민달팽이처럼 온 몸을 사용하여 매끈매끈한 오일과 함께...”

 

이긴 개뿔 저럴 줄 알았다.

 

그냥 용사 여장시키시죠. 저도 발키리 복장이 어떤 건지 좀 미리 구경을...아야! 왜 때려요!”

 

옆의 키르갤이 내 머리가 부셔져라 마법 지팡이로 후려쳤다.

 

지금 용사가 이상한 여자에게 빼앗겨서 이리저리 능욕당하게 생겼는데! 네 몸 하나 지키자고 용사를 포기하겠다는 거야!”

 

그럼 댁이 오일과 함께 루니아 누나와 이리저리 얽혀보던가! 민달팽이가 아니라 무슨 뱀마냥 난리를 쳐보던가! 생각만해도 온몸에 소름이 돋아나서 무기로 사용할 것만 같은데, 그런 일에 내가 참여할까 보냐!”

 

나도 용사의 발키리 복장이 보고 싶긴 하지만, 그래도 용사의 정신과 몸은 깨끗하게 유지해야 한단 말이야! 그래야 내가 더럽힐...마왕을 무찌를 수 있지!”

 

마왕 처단에 필요한 게 아니라 그냥 네 욕망을 채우기 위한 수단이잖아!”

 

너희가 마왕을 하세요 그냥. 마신도 이거보고 , 이건 좀...”이러겠다.

 

. 카일? 어떻게 하실 건가요오?”

 

지금 내 뇌속에서 토론이 일어났다. 오랜만에 난장판이 되기 시작한 이 상황에서 시작한 상태에서 용사와 순결. 과연 무엇이 우선시가 되어야 하는가?’에 대해 어마어마한 토론을 하고 있었다. 뇌세포가 미친 듯이 달궈지면서 용사를 희생하는 것이 옳다. 어차피 죽는 것도 아니고 아주 약간의 트라우마만 심는 것이 아닌가? 게다가 의외로 좋은 경험이 될 수 있다.”라는 주장이 있고, “애초에 카린의 모습으로 루니아 누나에게 습격을 당한 사례가 있으니, 한번 더 당한다고 해서 무엇이 두려우냐.”라는 게 있는데.

 

일단 확실한 것은 저 제안을 꺼낸 뇌세포 자체를 뜯어서 태양에 말려버릴 예정이니, 생각은 잠깐 멈추기로 했다.

이 일을 과연 어떻게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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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7화를 쓰고도 올리지 못할 정도로 일이 바빴네요...

이 건은 죄송합니다.

 

616

 

 

 

살려줘어어어어!!!”

 

여자다! 잡아라!”

 

크헤헤헤헤!”

 

이 소리는 마왕군에게 잘못 발견되어 죽기 살기로 뛰어다니는 리제로트의 소리입니다.’라고 해설자가 설명할 법한 동물의 왕국이 그대로 보이기 시작했다. 당연하게도 리제로테에겐 월터라는 집사인형이 있지만, 그 인형은 지금 잡화점 지하 한 구석에 봉인을 해버린 상태고, 지금은 리제로트가 마왕군 3군단에게 쫓기고 있는 시나리오...라기 보단, 저건 실제 상황이니 혹시나 마왕군을 보면 절대로 따라 하면 안 된다.

 

이 상황이 오기까지 3시간 전으로 올라가서, 여전히 참매미마냥 붙어있는 레시아를 떨어뜨리기 위해 온갖 힘과 태클을 걸고 있는 동안, 마왕군에게 공격을 받는 가련한 미소녀가 가장 잘 먹히는 클리셰로 잘 알려져 있지만, 어떻게 이용할 것이냐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그런데 간단하게 생각하면, 실제로 리제로트가 공격을 받으면 될 것이 아닌가? 하는 그 상황까지 나왔고...

 

, 잠깐만요? 카린 씨? 그건 아니죠. 저와 같이 연약하고 여린 미소녀를 그런 살벌한 장소에 보내실 건가요?”

 

네가 스스로 미소녀라고 자칭한 시점부터 그 장소에 보낼 생각이야.”

 

그래도 리제로트는 지금까지 내가 단련을 시켰으니, 칸포리우스까지 거침없이 달릴만한 체력까지 만들어줬다. 대략 42.195km였나? 당연하게도 그 거리를 목숨 걸고 달리면 죽는 건 당연하고, 1km정도는 거침없이 달려야 한다. 인간은 위기의 순간에 초능력을 발휘한다고 하는데, 300m정도 달려도 숨이 차던 리제로트는 현재 800m정도 전속력으로 달렸지만, 살고 싶다는 욕망이 더 강하기 때문에 숨이 차도 속도가 줄지 않았다.

 

카린 씨! 저주할 거야! 언젠가 야밤에 습격해버릴 거야아아아!”

 

오늘은 여관에서 문을 잠그고 자야겠다.

잡화점에서 자면 큰일 나겠어.

 

그래도 걱정이 안 되는가? 2대 잡화점 주인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괜찮아. 나는 언제나 비장의 카드는 남겨놓거든. 다만, 저걸 극복하지 못하면 앞으로도 극복할 수 없어. 이제 근처에 여관을 알아보고 숨어서 지내야겠다. 마왕...아니, 레시아도 이제 슬슬 마왕군을 통솔할 시간이야.”

 

잡화점의 주인은 여관을 알아보기 전에 용사들에게 가야 하지 않는가? 아무튼 합법적으로 그대를 포로로 만드는 것을 기대하고 있겠다.”

 

음흉한 눈초리로 서서히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마왕...

 

레시아다.”

 

사라질 거면 당장 사라져! 독백에 태클 걸지 말고!”

 

끝까지 소리치게 만드는 마왕을 뒤로 한 채, 마지막으로 리제로트가 성기사들에게 구출된 것을 보며, 나도 용사들이 있는 곳으로 나아갔다. 이제 슬슬 월터를 리제로트에게 보내라고 세린에게 연락하는 사이에, 하란국에는 대결계의 보호아래 마왕군의 이목을 집중시키려는 작전을 위해 사전작업을 하는 중이었다.

 

남녀노소 누구나 할 것 없이 자신의 할 일을 최대한 하면서, 희망을 잃지 않고 언젠가 마왕을 타도할 수 있을 것이란 미래를 꿈꿔온다. 그건 약간 환상이 향신료로 첨부되면 그렇게 받아들일 수 있고, 실질적으론 내일 당장 죽을지도 모르는 미래에 별 다른 감정이 없으리라 본다. 지금 당장 오늘이라도 어떤 변수로 인해 초목의 대지가 황폐화가 될 수 있는 현실.

 

그런 현실 속에서 어떻게든 버텨나가는 사람들의 눈물 나는 삶의 이야기만 있을 뿐이다. 당연하게도 대다수는 죽으면 먼지처럼 사라질 이름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사라는 이름이 함께하면 그 고통도 잊고 살아나갈 수 있다는 것인가? 희망이라는 단어는 아무래도 산소호흡기 같은 모양이다.

 

죽어가는 것을 억지로 질질 끌어 살린다는 기분. 이런 기분은 그리 좋지 않았다. 그저 용사 하나만 보고 살아가는 이들밖에 안 된다니.

 

성녀님...저희 딸 아이가 아픕니다.”

 

아니, 그러니까 잡화점 주인이고요 나는...

다만, 잡화점안에 어디선가 계속 공급중인 원인 모를 엘릭서가 계속 인기를 끌고 있었다. 한 노모는 7세정도 되어 보이는 아이를 안고 내 앞에서 구걸했고, 그 뒤로는 아직까지 아픈 아이들과 다친 사람들이 서있었다.

 

시야를 가득 매울 정도로 가득 모인 사람들은 각자 엘릭서 하나씩 받아갔고, 오늘 하루 소비된 엘릭서만 300개 이상이 되었다. 그래도 공급이 더 많이 들어오기도 하고, 300개의 엘릭서 양도 많기 때문에 엘릭서 하나를 나눠 쓴다면 완전치유까지는 힘들더라도, 3일 뒤에는 4명이 정상적으로 움직이는 기적을 볼 수 있다.

 

이렇게 하루 1200명씩 아픈 사람들을 건강하게 만드는 비약은 성녀가 아니라 연금술사라고 칭해야 하는 거 아냐?”

 

카린님은 그래도 많은 사람들을 도와주고 있지 않습니까? 엘릭서 뿐만이 아니라 불구가 된 병사의 신체도 어느 사이에 팔다리가 돌아오는 기적을 보여주셨고요.”

 

옆에 있는 기사는 호들갑을 떨면서 내 옆을 굳건하게 지키고 있었다.

 

그건 기적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마법이에요. 시간 마법으로 그 사람의 신체를 팔, 다리가 붙어있는 시간대로 되돌린 거에요. 어떻게 보면 그 만큼 회춘할 수 있다는 거지만, 시공간 마법은 의외로 다른 형태의 부작용으로 찾아오기 때문에...”

 

엘릭서를 모두 나눠준 이후에 내 앞에 보이는 여성을 보고 말을 멈췄다. 연한 초콜릿을 녹여낸 듯한 피부. 그리고 깊은 흑색의 눈동자를 지닌 소녀. 언젠가 한번 봤을 법한 검은 고딕 롤리타 형태의 복장.

 

마리아...?”

 

? 카린님? 무슨 소리를 하시는 겁니까?”

 

잠깐 기사가 내 앞을 가로막자마자 시야에 방해된다는 듯이 내 몸은 자동으로 일어서서, 다시 정면을 쳐다보았지만 그 앞에는 엘릭서를 나눠서 바르고 마시는 사람들만 있을 뿐. 마치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있을 뿐이었다. 이건 피곤해서 헛것을 보게 되는 것일까?

 

아니.

내 목에는 용족혼인의 문양이 있지만, 검은 달의 여왕을 의미하는 문양까지 존재했다. 검은 달의 여왕은 여성의 정신을 지배하여 현현하는 초월적인 존재.

 

시간이 없네. 상상하지도 못한 변수가 생겨나다니.”

 

변수요?”

 

아니, 이건 이쪽의 이야기야. 지금의 마왕군과는 다른 위협이지.”

 

아직까지 칸포리우스 제국의 지원이 오려면 시간이 더 걸리지만, 검은 달의 여왕이 출현했다는 것은 내가 아는 마리아인지, 아니면 대격변 이후의 검은 달의 여왕이 완전히 초기화가 되었는지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나는 먼저 들어가서 쉬고 있을게. 무슨 일이 있으면 숙소로 찾아와.”

 

. 알겠습니다. 카린님.”

 

기사를 뒤로하고 숙소에 찾아와 고풍스러운 침대에 누웠다. 부드러운 실크의 감촉이 맞닿는 피부의 긴장을 부드럽게 풀어주고 있을 때. 천천히 옆으로 돌려 눈을 떠보니 아니나 다를까...

 

! 카일이여! 첩이 보이는가! 아니, 이때는 카린인가? 어째서 그런 모습을 하고 있는 거지? 혹시 그 모습이 귀엽다는 걸 알고 그 모습으로 살겠다는 것인가?”

 

활짝 웃으며 나에게 껴안긴 마리아가 정신 없이 입을 열었다. 그 와중에 내가 태클 걸어야 하는 구간엔 태클을 걸도록 하자.

 

마리아는 어떻게 시나하고 비슷한 반응을 보일 수 있어요?”

 

오오! 첩을 보자마자 그 반응! 첩이 알고 있는 카일이로구나!”

 

다행히 내가 알던 마리아가 맞지만, 아무래도 이쪽 세계에 필요한 몸은 찾지 못한 모양이다.

 

익숙한 파장이 느껴져서 다급하게 찾아왔는데, 모습이 카린이어서 금방 찾을 수 있었다. 카린의 외형은 첩이 반할만큼의 미소녀이니 말이다. 그렇지만 당분간 첩은 카린의 정신 안에서 안정을 찾고, 첩이 움직일 수 있는 소녀의 몸을 찾기 전까진 신세를 져야겠구나.”

 

다른 희생자들마냥 정신자체를 말소시키지 않는 것에 대해 다행이라고 생각하자.

 

검은 달의 여왕은 세계가 멸망하기 전에 자신의 신도와 같이 이동한다면서요? 그렇다는 건 마리아가 부활할 때...”

 

. 당연히 잡화점의 모든 멤버가 이쪽에 나타나는 거다. 잡화점의 멤버들은 신도가 아니지만, 이미 우리는 반지 하나로 이어진 운명이 아니더냐? ! 이것이 절대반지라는 것인가?”

 

아니, 여기는 사우론이나 그런 거 없으니까, 반지원정대라고 말하지도 마세요.”

 

잠깐만? 그럼 레시아가 두 명이 되어버리잖아. 루시피나도 그렇고...

 

잡화점의 모든 멤버라면 루나까지 이곳에 오겠네요?”

 

그렇다! 루나링도 이곳에 찾아오는 거다. 그런데 이곳의 분위기는 꽤나 흉흉하군? 하란국이 사방팔방으로 전쟁대비 중인 거 같은데, 이곳은 무슨 일이 있는 것인가?”

 

말하자면 좀 길어요.”

 

나는 이곳의 상황을 간략하게 이야기 했다. 마리아는 프리트론이 망한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만, 하란국까지 이렇게 밀릴 줄은 꿈에도 몰랐다는 표정이었다. 눈이 동그랗게 떠진 어린아이마냥...아니, 외형은 어린아이여도 나이가 수천, 수억을 넘나드는 세월을 살아온 초월체다.

 

그러니까 어린아이마냥...’이라는 단어가 성립될 수 있는 거지.

 

치근덕거리면서 내 품 안에 계속해서 몸을 비비고 있는 모습을 보면, 아무래도 어린애가 맞긴 한 거 같지만, 지금은 그게 문제가 아니라...

 

그럼 루니아 누나도 마리아와 같이 왔겠네요?”

 

루니아 말인가?”

 

루니아 누나의 행방을 묻자 마리아는 되려 놀란 모양으로 나에게 말했다.

 

아니, 루니아는 첩과 같이 움직이지 않았다.”

 

마리아와 같이 움직이지 않았다니요? 잡화점 멤버가 다 모인다는 소리를 했잖아요?”

 

그야. 당연히 잡화점 멤버가 모두 모이는 것도 맞고, 루니아 또한 첩과 같이 움직이자고 제안한 건 맞다. 다만, 루니아는 다른 생각이 있었는지 자신이 직접 카일을 찾겠다며 먼저 다른 곳으로 행방불명 되어버렸노라.”

 

행방불명이 되었다고?

대체 무슨 수단을...

 

. 설마...

 

시공섬으로 차원을 이동하고 있는 거에요? 루니아 누나가?”

 

맞노라. 루니아는 먼저 시공간을 잘라 넘나들면서 카일을 찾고 있노라. 검사가 무식하게 시공간을 잘라서 이동하면, 그 앞이 허수공간일지 아무것도 없는 보이드일지 그 누구도 모르는데, 안전하게 첩과 같이 움직이자고 해도 다음 백장미 신작은 누구보다 빨리 카일을 찾아서 찍어야 해요오.”라는 말과 함께 사라져버렸으니 말이다.”

 

그 놈의 백장미 때문에 차원을 찢고 돌아다니는 거냐!

 

빨리 찾았으면 좋겠네요. 프리트론 왕국에는 릴리 기사단은 없고 루니아라는 이름을 가진 기사도 없었는데, 아무래도 이브센티아에 살아있거나 죽었거나, 어딘가에 있거나 셋 중 하나겠네요.”

 

그 루니아는 대격변 이후의 루니아인가?”

 

, 그렇죠.”

 

하지만 이상하군?”

 

이상하다니? 또 무슨 기괴한 이야기를 꺼내려고?

 

이 곳에는 루니아가 없다. 정확하게 말하면 대격변 이후의 루니아가 없다는 말이다.”

 

루니아 누나가 없다?

하긴, 검은 달의 여왕은 여성의 정신에만 주로 기생하니 루니아 누나를 찾을 수 있나 보다.

 

대격변 이후의 루니아 누나가 없다면, 잠깐만? 그럼 지금 대격변 이전의 루니아 누나는 이곳에 있어요?”

 

확실히 그런 것 같다. 첩이 생각하기론 카일...아니, 지금은 카린인가?”

 

굳이 수정하지 않아도 되잖아요! 어차피 독자들은 제가 본래 성별이 다 남자인 것도 알고 있을 텐데?”

 

, 그런 건가!”

 

왜 놀래! 이 빌어먹을 흑색 비슷한 생명체야!”

 

내가 여성체로 있는 게 그렇게도 자연스러운 거냐!

그보다 독자들은 다 알고 있다고!

...아닌가?

 

아무튼 카일이여! 오랜만에 만났으니 흡!!을 한번 해보자꾸나!”

 

대체 그건 뭔데요?”

 

대체 그 놈의 흡!!이 뭐길래?

마리아가 내 몸을 꽉 끌어안은 채 내 가슴에 얼굴을 묻..., 그렇군 이제 알겠네.

 

뭐 하는 짓이야!!!!”

 

으갸아아악! 첩의 머리가 박살 난다! , 그만둬라! 그마아아안!”

 

철저하게 아이언 클로로 응징한 이후, 마리아는 내 정신에 녹아 들며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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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 늦은 이유야 다 아시다시피

중소기업 태그에 따른 야근때문이죠.

아침 8시 30분까지 출근하고 새벽 3시에 퇴근하는게 일상이 될 거 같아요.

전 이만 과로사로 먼저 갑니다.(?????????????????????)

 

615

 

 

 

대체 무슨 소리를 하시는 겁니까. 마스터.”

 

감정이 1도 들어가지 않은 사무적인 어조에서 파악할 수 없지만, 내용적인 면에서는 얼마나 당황했는지 알 수 있었다. 게다가 시나는 내가 류하 씨에게 그런 대답을 내자마자, 내 팔을 붙잡고 거칠게 다른 곳으로 끌고 갔다.

 

아니, 올빼미 형태였으니 정확하게는 내 어깨를 붙잡고 낑낑거리며 날아갔다. 그렇게 구석에서 모두의 시선이 박혀있었지만 계속해서 입을 열었다.

 

제가 이곳의 여신을 설득하다니요? 마스터의 계획은 분명 저를 이용해서 하란국에서 칸포리우스로 가도록 협박 아닌 협박을 넣는 거 아니었습니까?”

 

. 그렇기는 한데. 언제나 예정은 변경되는 거야. 그러니까 내가 해야 할 일은 어쨌든 마왕군을 몰아내는 상황을 만드는 거잖아?”

 

마왕과의 약속은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마스터?”

 

, 사실 그것도 있긴 한데. 그건 하란국을 점령할 때 도와달라는 경우지, 계속해서 교착상태로 가는 동안 그 약속은 유효한 거야. 그리고 그 이전에 마왕이 작전을 읽고 밀고 쳐들어가서 하란국을 점령해도 유효야. 그리고 이 결계를 가장 빨리 제거하는 방법이 뭐라고 생각해?”

 

그건...”

 

나는 올빼미의 부리를 검지손가락으로 쓰다듬으며 입을 열었다.

 

당연히 자신들이 강하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거지. 칸포리우스 제국의 지원과 각종 여신들의 지원, 그리고 용사까지 이곳에 와서 방어전을 펼친다고 생각하면, 이런 불필요한 결계를 유지할 필요가 있을까? 게다가, 자연의 법칙상 현상을 유지하려면 그에 따른 대가가 필요해. 이런 완벽한 대결계를 광범위로 설치했는데, 무한동력이 아닌 이상 소비에 대한 대가가 꼭 필요하다는 거지.”

 

그리고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것과 얼마나 크나큰 대가인가에 대한 고찰.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결정적인 하나가 존재한다.

 

그건 하란국 여제의 마나라고 봅니다. 전에 있던 세계의 하란국 여제는 상당한 마나를 소유하고 있습니다. 물론 사상에 간섭하는 사기적인 냥캣의 계략으로 당하긴 했지만, 그때 진심으로 싸웠다면 적어도 냥캣의 몸에 상처는 낼 수 있겠지요.”

 

하지만 지금 류하 씨는 모든 마나를 결계에 집중하고 있어, 그러니 전에 있던 세계보다 호위병력이 많은 것이고...그런데 초량과 해연은 보이지가 않네. 이쪽 세계에서는 없는 사람인가? 아니면 전사를 한 건가?”

 

마왕군과의 치열한 전투로 전사했을 가능성을 뒀지만, 사실상 있으나 없으나 계획에는 변수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끼워 맞출 수 있는 경우의 수가 더 많은 법. 어쨌든 시나에게 이곳의 여신들을 설득하도록 다독여주자.

 

그럼 마스터. 이 일은 제가 보기엔 상당한 실패확률이 예상됩니다. 성공했을 경우의 보상을 요구해도 괜찮겠습니까?”

 

이상한 거 빼고 말해.”

 

!”

 

너 방금 혀 찬 거야?”

 

올빼미가 그런 것도 가능하다고? 아니, 지금 핀 포인트는 그걸 태클 거는 게 아니지.

 

아닙니다. 혀를 잠시 깨물었을 뿐입니다.”

 

올빼미가 어떻게 혀를 깨물어!”

 

혀를 깨물 수 있기에 가능합니다.”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

 

핀트가 어긋났다. 아무튼 작전을 설명했으니 다시 구석에서 벗어나 연회장으로 발걸음을 나아갔다. 여전히 류하 씨는 내 오른쪽 어깨에 앉아있는 올빼미를 보며 무표정한 얼굴을 바꾸지 않았다.

 

여가 보기에는 평범한 올빼미...는 아닌 듯 하군. 자신의 주인을 어깨로 들어서 저 멀리 날아가는 경우는 없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그 올빼미가 아우리스 여신을 설득할 수 있는 신적인 존재란 말인가?”

 

. 맞아요. 이름은 람파시나. 다른 차원에서 온 빛의 여신이죠.”

 

그런가. 빛의 여신의 보살핌을 받았으니 그대가 성녀라고 불렸던 것이로군.”

 

아니, 빛의 여신이 없어도 나를 성녀로 멋대로 부르는 생각 없는 인간들 덕에, 그게 하필이면 고정이 되어버려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 경우다. 결국 나는 다시 잡화점의 주인이라고 어필을 하지만, 그들의 눈에도 결국 나는 성녀로 박혀버린 모양이다.

 

여신이라는 말과 성녀라는 말이 저 주변에서도 오고 가기 시작했다.

 

여신을 설득시켜서 칸포리우스 제국과 그 외에 지원을 얻는다. 그리고 마왕군을 격퇴할 최종방어선을 이쪽으로 한다면...”

 

하란국은 마왕군 방어 및 마왕 토벌에 대한 1등공신이 되겠죠. 아 정확하게는 2등정도 되겠네요. 1등은 용사가 다 가져갈 테니까요. 사실상 위상이나 체면, 명성 같은 것에 대해 신경 쓸 분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어쨌든 이곳을 최종방어선이 된다면 자연스럽게 다 따라오는 것들입니다.”

 

그만큼 황폐화가 되어 칸포리우스 제국이나 다른 곳에 침략을 곧바로 받을 확률이 높지만, 그건 여신에게 부탁해서 보호해달라고 하면 그만이다.

 

물론, 마왕군을 막는다는 전제하에 말이지.

 

그렇다면 그대의 말대로 하겠다.”

 

내 말대로 하겠다는 의미는 잘못되면 나더러 책임지라는 소리가 된다. 물론 내가 멋대로 한 행위에 대해 책임을 지겠다만, 솔직히 나를 믿어서는 안 되는 입장이 아니던가? 한 제국을 움직일 수 있는 지도자가, 배신할 확률이 매우 높은 성녀의 말을 듣고 그렇겠다고 하다니?

 

정말 제 말대로 하려고요? 보통 용사의 말이 더..., 저런 꼬마에게 계획을 물어봤자, 다짜고짜 마왕을 무찌른다라는 말밖에 안 하겠구나. 그보다, 저기 보이는 마법사에게...라고 해도 지금 용사에게 집중하고 있으니 안 되는구나...그러면 현...령은 어차피 침묵을 고수하는 스타일이니, 그대로 물 흐르듯이 다른 사람의 의견에 따라갈 것이고, 저 기사...는 대체 어디서 대포를 들고 온 거야! 들어가지마!”

 

인간대포로 전직하기 직전인 기사에게 소리지르며 뛰어갔다. 이 파티에 부족한 점이 뭐냐고 물어보면 정상인이라고 대답해야 하는가? 만약에 진짜로 누군가가 물어보면 저렇게 답해보자.

 

하아~ 머리야.”

 

두통이 다시 엄습해왔다.

이제 독도 듣지 않는 몸이 되었지만, 아무래도 스트레스는 해소를 해야 할 필요성이 크게 느껴졌다. 성녀라는 타이틀이든 말든 태클을 걸어야 하는 이런 삶에서, 시나가 어깨에서 사라진 것을 보아 천계에 찾아간 모양이다. 아우리스 여신은 과연 어떤 여신일까? 귀여운 남자에게는 아무래도 흥미가 있긴 하겠지만, 귀여운 여자에게는 흥미가 없을 거라 판단했다.

 

그러니까 용사에게 치근덕거리지 나에게 치근덕거릴 확률이 매우 낮다는 소리가 된다. , 그건 아무런 관계가 없으니 없는 걸로 치고, 이번 연회에는 류하 씨와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

 

그래서 잡화점의 주인은 하란국을 최종방어선으로 삼아서 마왕군이 그곳을 정복하게 만드는 것이다?”

 

당연하게도 힘을 좀 써줘야겠어. 어차피 다른 마계공작들은 각 구역에서 나타날 게릴라 전에 대비한다는 것 때문에 움직이지도 않잖아? 진짜로 움직이는 군단은 1군단과 지원역할을 맡고 있는 7군단. 그리고 별동대로 움직이는 11군단이니까. 이곳에 화력을 집중하게 된다면 하란국을 비롯한 연합군들을 이길 수 있지.”

 

마왕은...

 

슬슬 레시아로 불러도 되지 않는가? 언제까지 짐을 마왕이라고 부를 생각인가?”

 

아니, 남의 독백에 뜬금없이 간섭하지 말라고!”

 

마치 뱀이 똬리를 틀 듯 가녀린 팔이 내 목을 휘감기 시작했다. 새하얀 팔이 기어올라 내 뺨에 닿았을 때 매혹적으로 웃고 있는 마왕...

 

그러니까 레시아로...”

 

아 진짜! 사사건건 내 독백에 침범하는 이유가 뭐야!”

 

조만간 내 독백이 어디 공유기에 걸쳐서 흘러가고 있는지에 대해 고찰을 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연회가 끝나고 잡화점에 돌아와 마왕...

 

레시아.”

 

아오! 내가 더러워서라도 그렇게 부른다! 아무튼 레시아와 이야기를 나눴을 때 상당히 마음에 들은 눈치였다. 위기에 몰렸을 때 인간은 매우 강하다. 하지만 반대로 강력한 힘을 가진 인간은 빈틈이 보이기 쉽다. 그것은 사소한 것에 경계를 하는가와 하지 않는 가에 대한 차이인데, 그 강대한 힘을 가진 인간을 두 번 다시 저항하지 못하도록 더욱 더 강력한 힘으로 짓누르면 그만이다.

 

애초에 하란국을 점령하는데 도와달라는 이유도, 하란국의 대결계를 뚫지 못한 것에 있으니...나는 해줄 것 다 해줬어. 칸포리우스의 지원병력 때문이라도 대결계를 해제하고 하란국의 수도로 들어갈 거야. 당연히 그 주변에는 일부 마왕군으로 포위하는 척을 하다가 뚫려야 앞뒤가 잘 맞겠지만...그보다 언제까지 그런 흡족한 얼굴로 보고 있을 거야? 안 떨어져?”

 

참나무에 붙은 매미마냥 떨어지지 않는 마...아니, 레시아 때문에 세린과 더불어 리제로트의 눈치도 봐야만 했다.

 

아 맞다. 리제로트. 너에게 중대한 임무를 내려줄게.”

 

게슴츠레한 눈으로 보다가 내 말에 눈동자가 갑자기 살아난 리제로트.

 

? 카린 씨가요? 어떤 임무죠? 혹시 밤 자리에 같이 들어가달라는 건가요!? 이제서야 저의 실력을 발휘할 때가...”

 

도대체 어떤 임무가 밤 자리에 같이 들어가는 거냐? 조만간 네 두개골도 열어서 오른쪽으로 비틀어줄까?”

 

!하고 혀를 차는 소리가 내 귀에 거슬렸지만, 넓은 호수와 같은 마음으로 넘어가기로 하자.

 

그래서 어떤 일이에요?”

 

네가 하란국 여제에게 최면을 좀 걸어야 할 거 같아. 상당히 강인한 정신력의 소유자인 건 맞지만, 여체화라고 하지만 내 정신방어를 뚫는 그 초능력이라면, 간단하게 성공할 수 있을 거야.”

 

설마 밥만 축내던 리제로트가 이런 상황에서 쓰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사실상 리제로트의 초능력은 눈을 통해 상대에게 최면을 걸어, 나중에는 인형으로 만들어버리는 무시무시한 힘을 가지고 있는데. 그건 인형이 되라는 암시 때문에 벌어진 일이지, 다른 방향으로 암시를 건다면 예상하지 못한 파괴력을 보인다.

 

최면이라면 제 인형으로 만들라는 소리인가요?”

 

인형이 아니라, 판단력 저하만 해줘도 크게 도움이 되거든. , 너의 인형으로 만들어도 상관없어. 기왕 이렇게 된 거 레시아와 같이 가서 마왕군 간부 역할이나 좀 해봐.”

 

간부요?”

 

리제로트의 동공이 심하게 흔들렸다.

 

잡화점의 주인. 이 아이를 데리고 하란국을 망하게 하는 건 손쉬운 일이 아니니라.”

 

하긴, 마왕성의 간부로 일하게 되면 오히려 대결계에 들어가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하지. 생각을 잘못했네.”

 

잠깐 생각을 바꿔보면 지금 이 상황에서 마왕군에게 습격 받은 민간인 역할도 할 수 없다. 1군단에 포위된 지 그러면 하란국에 들어갈 계기가 확실히 필요하다는 건데.

 

간부도 안 되면 리제로트를 무슨 수로 들여보내지. 좀 더 확실한 방법이 있을 텐데? 1군단이 하도 정밀하게 포위를 하는 바람에 민간인 A역할을 시킬 수가 없잖아! 그보다 내 목에 있는 팔이나 좀 풀어! 이러다 목 디스크 걸리면 책임 질 거냐!”

 

그건 짐의 치밀한 작전계획에 대해 칭찬하는 것인가? 그리고 짐은 잡화점 주인 정도는 책임지고 반려로 맞이할 수 있노라.”

 

아냐! 그 치밀한 작전계획 때문에 리제로트를 하란국에 침투시킬 방법이 없잖아! 아니, 한가지는 있지. 리제로트가 칸포리우스에 가서 수녀로 지원 오는 수 밖에 없네. 그리고 은근슬쩍 반려로 맞이 한다는 소리 하지 마!”

 

지원군으로 오는 방법이야 있지만, 언제까지나 시나가 아우리스를 잘 설득하여 칸포리우스를 움직였을 때의 이야기다. 확신을 가지고 계획을 진행할 수 없지만, 어쨌든 진득하게 붙은 마왕...

 

레시아다.”

 

아 진짜 독백 그만 읽어!!!”

 

레시아를 떨어뜨릴 방법부터 생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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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마왕도 조ㄱ...아닙니다.


 

614

 

 

 

시나와 같이 사키엘의 문을 열고 나온 곳은...어라?

 

벌써 왔어?”

 

키르갤이 아직까지 자고 있는 용사에게 무릎베개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렇다면 내가 잡화점을 운영하고 문을 닫고 다시 찾아오는 그 시간과는 별개로 이 시간이 멈춰있었단 소리일까? 아니면 사키엘의 문은 결국 시공간까지 간섭해서 원하는 장소만이 아닌, 시간까지 정해서 갈 수 있는 것인가?

 

조만간 잡화점이 아니라 파란색 경찰박스로 만들어놔야 할지도 모르겠다. 이제 우주로 진출해서 외계인들과...

 

어딜 가려고 하는지 잘 모르겠지만, 일단 현실부터 직시하시지?”

 

머나먼 우주로 진출해있는 잡화점의 생각을 단숨에 지워버렸다.

 

보통 다녀오면 연회를 할 줄 알았는데, 아니면 다 끝났다거나?”

 

잡화점은 아침까지 한다는 소리를 듣고 나도 역시 못 온다고 생각했어. 그런데 그 여신님은 같이 온 거야?”

 

내 옆에 앉아있는 시나는 올빼미 형태로 있었지만, 말하는 올빼미가 얼마나 인상에 깊었는지 단숨에 여신이라고 말했다.

 

어라 성녀님? 언제 오셨습니까?”

 

그 사이에 졸았는지 자고 있었는지 벽에서 졸고 있던 기사가 입을 열었다.

 

성녀님이라고 부르지 말라고 했잖아요.”

 

그렇군요. 카린님이라고 해야...하지만, 성녀님이라고 부르는 게 상황적인 면에서는 좋지 않습니까?”

 

상황적인 면에서는 용사의 동료니까 잡화점 주인이라고 할 수 없고 성녀라고 말하는 건가? 어쨌든 나는 성녀가 아니다.

 

상황적인 면에서는 그렇게 말해도 상관은 없지만, 그 이외에는 성녀가 아니니까 되도록이면 이름으로 부르세요.”

 

그러도록 하겠습니다.”

 

아직까지 자고 있는 용사 앞에 서서 연회의 시작시간을 기다렸다. 키르갤과 별일 없이 잡담을 하고 있는 끝에, 침묵을 고수하는 궁수가 문을 활짝 열었다. 내 기준으로는 어제였지만, 여기는 1시간도 되지 않는 시간이었는지, 아직까지 껄끄러운 공기가 나와 그 궁수 사이에 고이기 시작했다.

 

고여서 썩기 직전에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우선, 연회에는 나가야 하는 거 맞죠? ...그러니까 침묵의 현령?”

 

그냥 현령이다. 침묵의 현령은 무슨 의미냐?”

 

...그저 마음속으로 말해야 했던 이명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이걸 대체 뭐라 해명해야 하지? 내 왼손에 히드라가 꿈틀거린다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거니와...아니, 그 때는 흑염소였던가? 흑염룡이었던가? 어쨌든, 지금 당장의 혼돈을 잠재울 다른 무언가가 필요하다. 그래. 그냥 연회를 들먹이며 이 상황을 타개하자.

 

혀를 깨문 것뿐입니다. 그러니 연회에...”

 

아니. 혀를 어떻게 깨물어야 그런 소리가 나와?”

 

키르갤이 마지못해 태클을 걸어왔지만 무시한 채 현령이 열어놓은 문 밖으로 나왔다.

 

마스터. 침묵의 현령이라는 것보단 심연의 론도(윤무곡) 현령이라는게...”

 

누가 그런 이명에 대한 의견을 내놓으라고 했어!”

 

애꿎은 시나에게 목소리를 높혔다.

그보다 심연의 론도(윤무곡)이라니?

멋있잖아?

 

나중에는 이명에 대해 고찰을 할 필요가 있어 보여.”

 

막상 실수로 저지른 일이긴 해도 저런 이명을 가지고 있다면, 손발이 다 사라지긴 하더라도 자기만 멋있으면 그만이다. 그러니 내가 나에 대한 이명도 지어보도록 하자. 그 빌어먹을 백장미만 들어가지 않으면 될 거 같긴 한데...

 

마스터. 연회가 시작되었는데 아직도 그런 생각만 하고 있는 겁니까?”

 

어라? 언제 또 시작했지?

주변을 둘러보니 용사는 언제 일어났는지 키르갤의 보살핌에 따라 음식을 먹고 있었고, 다른 곳에서는 음악을 연주하는 사람들은 있어도, 춤을 추는 사람들은 없었다. 아직까지 연회라고 해도 상황이 상황인지라 언제 풀릴지 모르는 대결계 속에서도 마음 놓고 즐길 수 있는 분위기는 아니다.

 

그대가 이곳에 포위한 마계공작을 처치한 자인가?”

 

제가 아니라 용사가 했습니다. 그리고 처치한 것이 아니라 도망갔으니, 물러났다라는 말밖에 할 수 없네요. 그리고 저는 단순히 백업만...”

 

호오? 의외로 겸손할 줄 아는 자로군. 아니면 거짓을 고하는 것이 특기인가?”

 

나에게 말을 걸어온 사람이 대격변 이후의 류하 씨였다. 어떻게 그리 확신하냐고 물어본다면 붉은 적색을 하염없이 장식해놓은 금색의 용. 하란국 특유의 수려하고 단아한 외모에서도 뿜어져 나오는 알 수 없는 위엄. 그녀가 용사가 아닌 나에게 직접 찾아와 이런 말을 한 걸로 보아. 현령이라는 남자가 사실대로 상황을 말한 것이 틀림 없었다.

 

거짓을 고하는 게 특기라고 한들, 저는 그저...”

 

평범하게 살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청색으로 매끄러운 곡선을 지닌 형물 안에는 투명한 액체가 가득 채워져 있었다. 그리고 술잔을 나에게 주며 따르는 동안 입을 열기를...

 

강한 힘에는 강한 책임이 따른다는 말이 있지. 그대는 그 책임을 전부 놓고 싶어서 평범하게 살고 싶다는 건가?”

 

아뇨. 그건 아니고, 좀 평범하고 조용하게 살고 싶어서요. 그보다 이런 대사를 나누는 건 용사의 동료인 제가 아니라 용사에게...”

 

“‘가 보기에는 그대야 말로 이 시대를 구원해줄 자로 보이는구나.”

 

격변 이전에도 류하 씨는 자신을 칭할 때 라는 단어를 사용했지만, 이곳은 별반 다를 것이 없구나. 별반 다르지 않아서 쉽게 적응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다만, 지금 하란국의 미래를 들먹여서 이곳에서 당장 모두 철수 시켜야 하는 내 입장이, 앞으로 내뱉을 말에 대해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대로 그냥 막아내고 전선을 유지시킨다는 것도 괜찮긴 하지만, 칸포리우스 제국까지 밀려나지 않으면 인간들은 단합이 되지 않는다.

 

저는 시대를 구원할 사람이 아닙니다. 솔직히 저는 이 시대가 망하든 말든 상관이 없어요.”

 

호위로 보이던 여성이 내 목에 창을 겨눴다.

 

지금 뭐라 했소!”

 

사실 내가 방금 전에 말한 건 실수가 있었다. 안 그래도 마왕군의 침공으로 인해 정신적으로 많이 힘든데, 시대가 망하든 말든 상관 없다는 소리를 들으면, 어느 누구라도 화가 나기 마련이다. 지금 당장 멸망할 수 있는 와중에 어처구니 없는 소리를 들었으니...

 

실례. 이 시대가 망하든 말든 상관 없다는 의미는, 하란국이 멸망해도 된다는 소리가 아니라, 마왕군이 어딜 점령하든 인간이 단합해서 마왕군을 몰아내든, 저는 저대로 조용히 살아가 평화롭게 지내면 그만이란 소리였습니다.”

 

마왕군을 몰아내야 평화가 찾아온다. 단순한 이치도 도달하지 못하는 자가 어찌 성녀라고 칭할 수 있소?”

 

미안하게도 저는 성녀가 아니라 잡화점 주인입니다. 누가 그런 보고를 했는지 모르겠지만, 향후 저를 성녀가 아니라고 생각하시면 매우 감사하겠습니다만...”

 

잔뜩 살기를 받아도 나는 꿋꿋하게 류하 씨가 따라준 술을 단숨에 들이켰...

 

푸후우욱! 으엑! 너무 쓰잖아!”

 

들이켰다가 내 혀가 다 날아가는 줄 알았다. 쓴맛이 뇌를 거쳐 온 신경에 강타를 했을 때, 류하 씨가 잠깐 호리병 안쪽을 보더니...

 

. 미안하군. 아무래도 여가 잘못 들고 온 모양이다. 귀빈용으로 줄 술이 아니라 여가 자주 마시던 소주를 줘버렸노라.”

 

알코올이 내 몸을 아직도 휘젓는 것과 동시에 이 몸이 아무래도 술에 약하다는 걸 인지시키듯, 몸이 정밀하게 움직여지지 않았다. 도수 높은 걸 주면 어쩌자는 거냐!

 

미안하군. 그런데 이곳에 온 목적이 뭐지?”

 

목적? 대체 그걸 왜 묻는...

 

. 그렇군. 설마 그 안에 약물을 탄 거야? 자백제라던가 그런 비스무리한 거? 그래서 이 술의 맛이 더 쓴 거였구나.”

 

연회는 진행중이고 내 이야기는 음악소리에 묻혔다. 다만, 내 주변에 있던 류하 씨나 측근들은 나의 혼잣말을 정확히 들어버렸다.

 

이거 실례했습니다. 애석하게도 저는 약물에 대해 영향을 받지 않는 몸이라서요. 알코올은 잘 모르겠지만 머지않아 빠르게 분해되겠죠. 그건 그렇고 솔직하게 말해달라고 하지, 왜 이런 쓸 때 없는 짓을 했는지 잘 모르겠지만, 제가 여기에 온 목적은 단 한가지...”

 

모두가 내 말을 귀담아 들었다. 언제 어디서든 내 입에서 폭탄발언이 나올 수 있는 그 긴장감. 팽팽하게 당겨진 고무줄 같은 상황에서...

 

그보다 안주 좀 주세요. 입안에 고기라도 넣어야 할 거 같은데...”

 

내 입은 안주를 찾기 시작했다. 그 결과로 류하 씨의 벙찐 얼굴과 주변 측근들은 전부 쓰러지듯 휘청거렸다.

 

““ 목적부터 말해!!!””

 

전원 소리치는 것보다 음악소리가 더 크기 때문에 묻혔지만, 그래도 주위 20M반경의 사람들에겐 시선이 집중될만한 목소리였다. 분노, 당혹감 등. 여러 감정이 버무려지는 공간에서 고기 한 점을 입에 넣고 천천히 씹었다. 그나마 고기의 육즙과 향이 엉망이었던 입 안을 정화하고 있었다.

 

저는 여러분을 칸포리우스 제국으로 안전하게 보내드리려는 것과 이곳에서 최종방어선을 구축하여 마왕군의 세력을 밀어낼까에 대해 제안을 하러 온 것뿐입니다.”

 

내 말에 모든 분위기가 흔들렸다. 심지어 꿋꿋하게 내 말을 무시하던 음악마저 멈췄으니, 언제 얼마든지 배신을 할 수 있는 사람이, 같이 마왕군을 몰아내는데 칸포리우스에 의탁을 할 것이냐, 아니면 직접 방어선을 구축하여 몰아낼 것인가에 대해 질문을 받았으니 말이다.

 

최종방어선을 하란국으로 하겠다? 칸포리우스의 의탁하는 걸 최우선으로 삼았을 것 같아 보이는데, 어째서 이곳을 최종방어선으로 하겠다는 거지?”

 

당연히 내 옆에 있던 시나마저 둥그런 올빼미 눈으로 쳐다봤다.

아니, 올빼미의 눈은 원래부터 둥그런 눈이던가?

 

그저 대결계 안에서 자멸하고 있었다면 칸포리우스에 의탁을 하겠지만, 의외로 수도 전역을 덮는 대결계 안에 의식주를 해결할 수 있는 수단과, 보급을 지속적으로 받는 것이 아닌 생산을 하는 것에 있어서, 이곳을 최종방어선으로 만들고 지원을 받는 것으로 끝을 내려고 합니다. 그러면 칸포리우스에게 의탁하는 것보다 더 적은 요구가 들어올 것이고, 어떻게 보면 마왕군이 칸포리우스 제국을 침공하지 못하는 이유가, 아직까지 하란국이 버텨주기 때문이 아닙니까? 아우리스 여신에게 전달하는 것은 용사의 몫이지만, 적어도 1주일만 농성을 더 해주면 칸포리우스 제국에서도 하란국을 구원하기 위해 움직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칸포리우스 제국은 탐욕에 물든 국가이거늘! 어떻게 확신할 수 있소!”

 

류하 씨 옆에 측근 중 창을 내 목에 들이밀었던 자가 입을 열었다. 아직까지 의심하고 있는 눈초리와 분위기는 가시지 않는 모양. 불신 덩어리를 보는 눈은 편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넓은 이해심을 바탕으로 입을 열었다.

 

칸포리우스 제국에 용사일행이 설득을 하면 되는 일이기도 하고, 다른 차원의 여신이 나타나서 협력을 요구하면 됩니다. 제가 보기엔 두 번째 방안이 더 빠르겠네요. 전력을 분산하는 것보다 그래도...”

 

여가 보기에는 두 번째보단 첫 번째 방안이 더 빠르다고 보는데, 그대가 말한 방안이 더 빠르다는 이유를 알 수 있는가?”

 

나는 답했다.

 

제 어깨 위에 있는 존재가 다 해결할 거라서요.”

 

그렇게 시나는 한 번 더 나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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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정은 늘 바뀌기 마련...

 

613

 

세계를 망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언제나 티끌이라도 살아있다면 재생이 가능 한 것이 세계이기 때문.

그러기 때문에 나는 이런 세계가 싫다.

아니, 싫다고는 해도 나 역시 이런 세계에 적응하고 살아가는 것인가?

-시나와 레시아에게 목욕탕으로 끌려가는 카일...아니 카린의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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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동안 자다 일어난 것은 기억했다.

당연히 꿈에서도 6번째 양의 활약과 태클로 인해 깨어날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 상황은 또 무엇일까?

 

오오! 잡화점 주인의 목욕탕은 넓구나!”

 

! 마스터! 어서 이곳에 오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이 녀석들에게 끌려가면서 목욕을 해야 할 의무는 없는데, 어처구니 없는 약속 하나 때문에 이리 된 것인가? 그보다 시나의 눈이 예사롭지가 않다. 내 본능이 이곳에서 빨리 도망치라고 외치고 있다. 아니, 외치다 못해 이제 절규까지 하고 있다. 실질적으로 남성체가 되었든 여성체가 되었든 내가 내 알몸을 본다고 해서 부끄러워하는 시기는 한참 지나버렸지만, 역시 남들에게 보여진다는 그 자체부터가 익숙하지 않은 상황이다.

 

오히려 그게 더 좋다고 봐달라고 하면 그건 정신적으로 약간 삐끗한 선이고...

 

어서 들어오거라! 잡화점의 주인! 차고로 여자는 알몸을 보이며 친구가 되는 것이다!”

 

시끄러워. 난 내가 알아서 씻고 나갈 테니까...꺄악!”

 

내 귀에 물보라가 힘껏 일어났다. 분명 나는 탈주를 하려고 했으나 나를 붙잡았다. 제길...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난 거지?

 

여자가 왜 알몸을 보이며 친구가 되는 건지 이해가 안 되지만, 지금 당장이라도 좋으니 나 혼자 씻도록...으하아악!”

 

볼품 없는 목소리를 내게 된 원인이라면, 내 배를 감싸고 있는 시나의 팔 때문이다. 뱀처럼 휘감아 절대로 놔주지 않겠다는 의지가 보이는 행동. 그리고 시나는 나를 올려다 보며 입을 열었다.

 

괜찮습니다. 마스터는 제가 하나부터 48가지를 전부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어째서 숫자가 불길하게 한정되어있는 거야!”

 

기본적으로 목욕이라는 건 몸의 피로를 회복시키고자 청결을 유지하도록 하는 행위지만, 어째서인지 더욱 더 귀찮고 몸의 피로가 더 쌓이는 듯한 기괴한 효과를 낳을 듯 했다. 그보다 48의 의미는 대체 뭔데?

 

거의 광기에 가까운 목욕을 끝냈다. 시나는 둘째치고 소녀의 모습을 한 마왕까지 나에게 달라붙어, 나쁜 손들이 내 몸을 휘젓기 전에 둘 다 아이언 클로를 걸어버렸다. 겨우겨우 마수에서 빠져 나와 시계를 보았을 땐, 아직까지 새벽 1시도 되지 않은 시간에 뒤따라 나온 시나와 마왕은...

 

짐은 레시아라고 부르지 않는 것인가?”

 

뜬금없이 저런 말을 들으면 내가 지금까지 해온 독백이 모두 다 날아가버리잖아?

 

레시아라고 부르는 건 격변 전의 세계의 사역마를 부르는 말이지만, 지금은 마왕이잖아. 레시아라고 부를 이유가 없어. 그리고 다른 사람들 앞에서 실수로 마왕을 레시아라고 부르는 언행을 방지하기 위해서 지금까지 마왕이라고 가려서 부르는 거야.”

 

그 말은 즉 짐을 걱정해서 그런 소리를 했다는 거로군.”

 

내 말에 대체 어디에 너를 걱정했다는 소리가 있는데?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잖아?”

 

심안으로 대사를 바라보면 있노라.”

 

웃기고 있네!”

 

정말 웃긴 말이라서 지금 당장 저 마왕의 머리를 잡고, 검은 하늘 저 멀리 날려버리고 싶었다. 아니면 지금 당장 잼 아저씨에게 저 마왕의 머리를 날려버리고 다시 바꿀 수 있는 빵을 구워달라거나.

 

아무리 짐이라도 머리를 교체할 수 없노라. 버터 언니라도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어째서 너는 내 이상한 독백을 기이한 각도로 받아 치는 거야!”

 

지금 당장 날아간 내 독백이 담장을 넘어가 만루홈런을 선언했다. 여전히 오염된 정보가 멋대로 들어가는 것도 있지만, 마족은 무한한 지식이 살아가면 갈수록 쌓이는 종족. 그런데 하필이면 잼 아저씨와 버터 누나의 정보가 마왕에게 들어갔다.

 

별 쓸모도 없는 정보임에도 불구하고 말이지.

 

마스터. 오늘은 같이 잘 수 있는 겁니까?”

 

오늘은 같이 잘 수 없지. 잡화점 운영을 끝내고 용사 일행과 합류해서 움직여야 하니까. 잠을 자는 건 좋긴 하지만, 피곤하거나 잠을 안자면 면역력이 떨어진다는 그런 이유가 슬슬 없어지고 있어. 어쩌면 이제 잠을 안자고 계속 활동해도 괜찮을지도 몰라.”

 

그건 곤란합니다. 마스터의 정신적인 건강을 위해서라도 수면은 필요한 요소입니다.”

 

그래도 내 몸을 걱정해주는 건 시나 밖에 없었ㄷ...

 

그리고, 마스터는 한번 자기 시작하면 일어날 때까지는 누가 그 옆에서 뭘 하든 자고 있기 때문에, 그 틈을 이용해서 습격을 하는 것도...”

 

시나야. 너의 쓸 때 없는 소리 하나 때문에 나의 감동이 가득 담긴 독백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잖아. 어떻게 할 거야? 너 때문에 독백이 다 깨져버렸으니까 책임져.”

 

그러면 마스터. 이런 모습으로는 약간 부족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기분 좋은...”

 

멈춰! 멈추라고! 책임지라는 말이 그런 뜻은 아니잖아! 그나마 가린 수건을 풀려고 하지마! 아니, 그보다 하프로 기타소리를 내는 그런 센스를 보이란 말이다!”

 

확실히 하프에서 전자기타 소리가 나는 건 이상하지만, 어쨌든 내가 말했던 의도와는 전혀 다른 움직임에 무척이나 당황했다.

 

짐이라면 그렇게 노골적으로 가지 않았을 것이다. 비둘기여.”

 

올빼미입니다. 냥캣.”

 

냥캣은 또 뭔가! 아무리 짐이 고양이 수인이 기초베이스라고 하지만, 짐은 무지개를 달고 우주에서 날아다니지 않는다!”

 

아무리 격변을 했다고 한들 저 주제로 싸우는 건 오랜만에 봤다.

 

마왕 하나만 있어도 이렇게 시끄러울 줄이야.”

 

마치 거울을 보듯이 여성체의 나와 매우 닮아있는 세린은, 한숨을 내쉬며 내 옆에 앉았다. 마왕이 없어도 시끄럽긴 했지만, 지금은 이렇게 보니 오랜만에 안심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빛의 여신을 데리고 하란국에 가서 나가라는 것까진 좋지만, 애석하게도 칸포리우스는 아우리스 여신이 있잖아? 하란국을 칸포리우스에 데려가는 것도 결국, 아우리스 여신이 다른 차원의 여신이라거나, 이단의 낙인을 찍게 된다면 어떻게 하려고?”

 

그때는 나도 본래 모습으로 돌아가서 천계를 뒤집어 놓을 거야. 물론 격변 전의 아우리스 여신은 뭔가 나사 하나가 빠진 그런 여신이지만, 지금의 여신은 절대 그런 생각은 들지 않아. 인정하긴 싫지만, 그 놈의 백장미가 그래도 모든 사건을 완화하게 만들어준 원인이나, 지금은 백장미가 없는 세계에서는 좀 더 강압적으로 과감하게 해결할 필요가 있어.”

 

그러고 보니 카린?”

 

내 이름은 카일이야.”

 

세린은 거침없이 여성체였을 때의 내 이름을 부르자, 나는 거침없이 남성체였을 때의 이름으로 반박했다.

 

잠깐 동안 본 모습으로 되돌아갔지?”

 

최대한 억제를 했어, 다시 되돌아왔으니 그걸로 다행이잖아?”

 

하지만 세린의 질문은 내가 예상한 것보다 많이 빗나갔다. 솔직히 잡화점의 양식이 되려고 작정했냐는 소리를 무지막지하게 큰 소리로 나만 들을 줄 알았더니...

 

시간에 간섭을 했다면 이미 천계에선 너의 존재를 알아차렸을 거야. 비록 그 찰나의 시간까지는 아니지만, 짧은 시간 안에 그렇게 많은 정보를 얻지는 못했겠지. 네가 천계에서 뒤집는다는 말을 멋대로 하라는 소리가 아니지만, 지금 상황에서 용사에게 붙어있는 존재가 또 다른 차원에서 넘어온 초월체라고 한다면, 지금 이곳에 있는 창조신은 어떻게 생각할까?”

 

설마?

, 그렇군.

이 세계에는 창조신이라는 이름의 초월체가 두 명이 되어버리는 경우구나.

 

그건 또 그거 나름대로 머리가 아픈 일이네. 각본가가 없고 용사와 마왕이 서로 유혈난무하고 있는 정상적인 이야기에, ‘라는 존재가 하나 끼어버렸으니 이 세계도 잘못하면 다른 방향으로 흔들릴 가능성이 높다는 거네.”

 

흔들릴 가능성이 높다는 말은 정상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방향이라는 것이, 뜬금없이 탈선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소리다. 비록 내가 그런 일에 하나하나 신경 쓰지 않아도 되지만, 그로 인해 다시 한번 대격변을 겪는다면 또 다시 한숨만 나오는 상황이 되겠지. 격변 이전의 일 또한 각본가를 멋대로 치워버린 건 내가 한 일이다. 그 각본가는 나라는 존재를 쓸 수도 없고, 예측할 수도 없고, 자신의 이야기에 넣을 수도 없는 존재. 자신이 이야기를 만드는 와중에, 뜬금없이 또 다른 자아가 충돌해서 멋대로 내용을 휘젓는 느낌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더 확실하게 말하자면 모래성을 쌓았는데, 뜬금없이 다른 녀석이 찾아와서 모래성을 모래 탱크로 만드는 그런 기분이다.

 

...아닌가?

그보다 탱크가 왜 나와?

 

각본가도 꽤나 고생을 많이 한 걸로 알고 있는데, 지금 각본가가 없는 이 상황에서 내가 이 세계의 흐름을 흩트린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또 다른 각본가가 각성을 해서 막으려고 할까?”

 

신인류 사건, 켈모리아가 멋대로 아리엘이 마신으로 각성시킨 사건, 시간이 납치된 사건, 가상의 시공간인 300년 후로 넘어간 사건.

 

그 모든 것을 다 겪고 나서도 나란 존재는 이야기를 훼손하려고 한다. 그것도 이상한 정보가 계속 흘러나와 오염시키면서 말이지.

 

다른 각본가가 각성한 것이 아니라면, 이번에는 이 세계의 창조주와 싸우게 될지도 몰라.”

 

그건 뭐 마왕보다 더 심각한 포지션이잖아? 내가 마계를 담당하는 여신도 아니고?

 

잡화점의 주인. 계속 누구와 이야기를 하길래 혼잣말을 하는 것인가?”

 

마왕이 내 앞에 쪼그려 앉아 입을 열었다. 고개를 살짝 갸우뚱하는 모습마저 귀여웠지만, 저 행동 하나하나가 나를 노리고 한 것이다. 그보다...

 

옷은 안 입어?”

 

이곳은 온도가 따듯해서 옷이 필요 없노라.”

 

보는 눈이 있으니까 옷은 입어줄래?”

 

오히려 이 모습이 더 끌리지 않는가?”

 

소녀의 모습으로 이런저런 포즈를 잡으며 우아하게 있어봤자, 내 시신경을 통해 뇌에 내려진 명령은 버드 미사일을 처박아주지라는 명령뿐이었다. 하지만 그건 박사님의 허가가...아니, 나 지금 뭐라고 독백을 하는 거니?

 

그보다 버드 미사일은 또 무엇인가? 혹시 독수리 5남매에서 나오는 그 미사일 아닌가?”

 

대체 마왕이 그걸 알아서 뭐에 쓰려고!!!”

 

소리친 이후에 다시 찾아온 정적.

태클을 걸고 난 이후에 찾아온 것은 쓸 때 없는 곳에 태클을 걸었다는 후회뿐이었다.

 

그보다 아까 목욕탕에서 이런 저런 곳을 만져가면서 친분을 다져가는 시간을, 아이언 클로 하나로 단숨에 박살내버린 이유는 무엇인가?”

 

이런 저런 곳을 만진다라는 그 말부터 이미 내 시점에선 아웃이야.”

 

하지만 모든 여자가 그렇다고 하진 않아도, 잡화점 주인과 짐의 친목을 위해서라면, 지금쯤 뜨거운 몸을 안으며...”

 

카놀라유로 튀겨버리기 전에 그 입 다물어!”

 

자동차마저 놀란다는 전설의 기름으로 박살내버리겠다는 내 살기가, 마왕은 다시 입을 다물었다.

 

그래도 마스터. 이야기마다 한번씩은 서비스를 해야 인원이 유지되는 법입니다.”

 

무슨 서비스냐고 그게! 난 누구에게 서비스를 하는 거냐!”

 

과연 한번씩 서비스를 한다는 의미가 무엇인가?

설마 백장미와 관련 있는 건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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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린 : 그래서 작가님 저는 언제쯤 남자로 되돌아갈 수 있을까요?

작가 : 남자로 돌아가면 다시 백장미 촬영이 시작될텐데?

카린 : ......루니아 누나말고도 또 그 빌어먹을 잡지를 찍을 사람이 있어요?

작가 :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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