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3

 

세계를 망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언제나 티끌이라도 살아있다면 재생이 가능 한 것이 세계이기 때문.

그러기 때문에 나는 이런 세계가 싫다.

아니, 싫다고는 해도 나 역시 이런 세계에 적응하고 살아가는 것인가?

-시나와 레시아에게 목욕탕으로 끌려가는 카일...아니 카린의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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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동안 자다 일어난 것은 기억했다.

당연히 꿈에서도 6번째 양의 활약과 태클로 인해 깨어날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 상황은 또 무엇일까?

 

오오! 잡화점 주인의 목욕탕은 넓구나!”

 

! 마스터! 어서 이곳에 오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이 녀석들에게 끌려가면서 목욕을 해야 할 의무는 없는데, 어처구니 없는 약속 하나 때문에 이리 된 것인가? 그보다 시나의 눈이 예사롭지가 않다. 내 본능이 이곳에서 빨리 도망치라고 외치고 있다. 아니, 외치다 못해 이제 절규까지 하고 있다. 실질적으로 남성체가 되었든 여성체가 되었든 내가 내 알몸을 본다고 해서 부끄러워하는 시기는 한참 지나버렸지만, 역시 남들에게 보여진다는 그 자체부터가 익숙하지 않은 상황이다.

 

오히려 그게 더 좋다고 봐달라고 하면 그건 정신적으로 약간 삐끗한 선이고...

 

어서 들어오거라! 잡화점의 주인! 차고로 여자는 알몸을 보이며 친구가 되는 것이다!”

 

시끄러워. 난 내가 알아서 씻고 나갈 테니까...꺄악!”

 

내 귀에 물보라가 힘껏 일어났다. 분명 나는 탈주를 하려고 했으나 나를 붙잡았다. 제길...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난 거지?

 

여자가 왜 알몸을 보이며 친구가 되는 건지 이해가 안 되지만, 지금 당장이라도 좋으니 나 혼자 씻도록...으하아악!”

 

볼품 없는 목소리를 내게 된 원인이라면, 내 배를 감싸고 있는 시나의 팔 때문이다. 뱀처럼 휘감아 절대로 놔주지 않겠다는 의지가 보이는 행동. 그리고 시나는 나를 올려다 보며 입을 열었다.

 

괜찮습니다. 마스터는 제가 하나부터 48가지를 전부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어째서 숫자가 불길하게 한정되어있는 거야!”

 

기본적으로 목욕이라는 건 몸의 피로를 회복시키고자 청결을 유지하도록 하는 행위지만, 어째서인지 더욱 더 귀찮고 몸의 피로가 더 쌓이는 듯한 기괴한 효과를 낳을 듯 했다. 그보다 48의 의미는 대체 뭔데?

 

거의 광기에 가까운 목욕을 끝냈다. 시나는 둘째치고 소녀의 모습을 한 마왕까지 나에게 달라붙어, 나쁜 손들이 내 몸을 휘젓기 전에 둘 다 아이언 클로를 걸어버렸다. 겨우겨우 마수에서 빠져 나와 시계를 보았을 땐, 아직까지 새벽 1시도 되지 않은 시간에 뒤따라 나온 시나와 마왕은...

 

짐은 레시아라고 부르지 않는 것인가?”

 

뜬금없이 저런 말을 들으면 내가 지금까지 해온 독백이 모두 다 날아가버리잖아?

 

레시아라고 부르는 건 격변 전의 세계의 사역마를 부르는 말이지만, 지금은 마왕이잖아. 레시아라고 부를 이유가 없어. 그리고 다른 사람들 앞에서 실수로 마왕을 레시아라고 부르는 언행을 방지하기 위해서 지금까지 마왕이라고 가려서 부르는 거야.”

 

그 말은 즉 짐을 걱정해서 그런 소리를 했다는 거로군.”

 

내 말에 대체 어디에 너를 걱정했다는 소리가 있는데?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잖아?”

 

심안으로 대사를 바라보면 있노라.”

 

웃기고 있네!”

 

정말 웃긴 말이라서 지금 당장 저 마왕의 머리를 잡고, 검은 하늘 저 멀리 날려버리고 싶었다. 아니면 지금 당장 잼 아저씨에게 저 마왕의 머리를 날려버리고 다시 바꿀 수 있는 빵을 구워달라거나.

 

아무리 짐이라도 머리를 교체할 수 없노라. 버터 언니라도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어째서 너는 내 이상한 독백을 기이한 각도로 받아 치는 거야!”

 

지금 당장 날아간 내 독백이 담장을 넘어가 만루홈런을 선언했다. 여전히 오염된 정보가 멋대로 들어가는 것도 있지만, 마족은 무한한 지식이 살아가면 갈수록 쌓이는 종족. 그런데 하필이면 잼 아저씨와 버터 누나의 정보가 마왕에게 들어갔다.

 

별 쓸모도 없는 정보임에도 불구하고 말이지.

 

마스터. 오늘은 같이 잘 수 있는 겁니까?”

 

오늘은 같이 잘 수 없지. 잡화점 운영을 끝내고 용사 일행과 합류해서 움직여야 하니까. 잠을 자는 건 좋긴 하지만, 피곤하거나 잠을 안자면 면역력이 떨어진다는 그런 이유가 슬슬 없어지고 있어. 어쩌면 이제 잠을 안자고 계속 활동해도 괜찮을지도 몰라.”

 

그건 곤란합니다. 마스터의 정신적인 건강을 위해서라도 수면은 필요한 요소입니다.”

 

그래도 내 몸을 걱정해주는 건 시나 밖에 없었ㄷ...

 

그리고, 마스터는 한번 자기 시작하면 일어날 때까지는 누가 그 옆에서 뭘 하든 자고 있기 때문에, 그 틈을 이용해서 습격을 하는 것도...”

 

시나야. 너의 쓸 때 없는 소리 하나 때문에 나의 감동이 가득 담긴 독백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잖아. 어떻게 할 거야? 너 때문에 독백이 다 깨져버렸으니까 책임져.”

 

그러면 마스터. 이런 모습으로는 약간 부족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기분 좋은...”

 

멈춰! 멈추라고! 책임지라는 말이 그런 뜻은 아니잖아! 그나마 가린 수건을 풀려고 하지마! 아니, 그보다 하프로 기타소리를 내는 그런 센스를 보이란 말이다!”

 

확실히 하프에서 전자기타 소리가 나는 건 이상하지만, 어쨌든 내가 말했던 의도와는 전혀 다른 움직임에 무척이나 당황했다.

 

짐이라면 그렇게 노골적으로 가지 않았을 것이다. 비둘기여.”

 

올빼미입니다. 냥캣.”

 

냥캣은 또 뭔가! 아무리 짐이 고양이 수인이 기초베이스라고 하지만, 짐은 무지개를 달고 우주에서 날아다니지 않는다!”

 

아무리 격변을 했다고 한들 저 주제로 싸우는 건 오랜만에 봤다.

 

마왕 하나만 있어도 이렇게 시끄러울 줄이야.”

 

마치 거울을 보듯이 여성체의 나와 매우 닮아있는 세린은, 한숨을 내쉬며 내 옆에 앉았다. 마왕이 없어도 시끄럽긴 했지만, 지금은 이렇게 보니 오랜만에 안심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빛의 여신을 데리고 하란국에 가서 나가라는 것까진 좋지만, 애석하게도 칸포리우스는 아우리스 여신이 있잖아? 하란국을 칸포리우스에 데려가는 것도 결국, 아우리스 여신이 다른 차원의 여신이라거나, 이단의 낙인을 찍게 된다면 어떻게 하려고?”

 

그때는 나도 본래 모습으로 돌아가서 천계를 뒤집어 놓을 거야. 물론 격변 전의 아우리스 여신은 뭔가 나사 하나가 빠진 그런 여신이지만, 지금의 여신은 절대 그런 생각은 들지 않아. 인정하긴 싫지만, 그 놈의 백장미가 그래도 모든 사건을 완화하게 만들어준 원인이나, 지금은 백장미가 없는 세계에서는 좀 더 강압적으로 과감하게 해결할 필요가 있어.”

 

그러고 보니 카린?”

 

내 이름은 카일이야.”

 

세린은 거침없이 여성체였을 때의 내 이름을 부르자, 나는 거침없이 남성체였을 때의 이름으로 반박했다.

 

잠깐 동안 본 모습으로 되돌아갔지?”

 

최대한 억제를 했어, 다시 되돌아왔으니 그걸로 다행이잖아?”

 

하지만 세린의 질문은 내가 예상한 것보다 많이 빗나갔다. 솔직히 잡화점의 양식이 되려고 작정했냐는 소리를 무지막지하게 큰 소리로 나만 들을 줄 알았더니...

 

시간에 간섭을 했다면 이미 천계에선 너의 존재를 알아차렸을 거야. 비록 그 찰나의 시간까지는 아니지만, 짧은 시간 안에 그렇게 많은 정보를 얻지는 못했겠지. 네가 천계에서 뒤집는다는 말을 멋대로 하라는 소리가 아니지만, 지금 상황에서 용사에게 붙어있는 존재가 또 다른 차원에서 넘어온 초월체라고 한다면, 지금 이곳에 있는 창조신은 어떻게 생각할까?”

 

설마?

, 그렇군.

이 세계에는 창조신이라는 이름의 초월체가 두 명이 되어버리는 경우구나.

 

그건 또 그거 나름대로 머리가 아픈 일이네. 각본가가 없고 용사와 마왕이 서로 유혈난무하고 있는 정상적인 이야기에, ‘라는 존재가 하나 끼어버렸으니 이 세계도 잘못하면 다른 방향으로 흔들릴 가능성이 높다는 거네.”

 

흔들릴 가능성이 높다는 말은 정상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방향이라는 것이, 뜬금없이 탈선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소리다. 비록 내가 그런 일에 하나하나 신경 쓰지 않아도 되지만, 그로 인해 다시 한번 대격변을 겪는다면 또 다시 한숨만 나오는 상황이 되겠지. 격변 이전의 일 또한 각본가를 멋대로 치워버린 건 내가 한 일이다. 그 각본가는 나라는 존재를 쓸 수도 없고, 예측할 수도 없고, 자신의 이야기에 넣을 수도 없는 존재. 자신이 이야기를 만드는 와중에, 뜬금없이 또 다른 자아가 충돌해서 멋대로 내용을 휘젓는 느낌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더 확실하게 말하자면 모래성을 쌓았는데, 뜬금없이 다른 녀석이 찾아와서 모래성을 모래 탱크로 만드는 그런 기분이다.

 

...아닌가?

그보다 탱크가 왜 나와?

 

각본가도 꽤나 고생을 많이 한 걸로 알고 있는데, 지금 각본가가 없는 이 상황에서 내가 이 세계의 흐름을 흩트린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또 다른 각본가가 각성을 해서 막으려고 할까?”

 

신인류 사건, 켈모리아가 멋대로 아리엘이 마신으로 각성시킨 사건, 시간이 납치된 사건, 가상의 시공간인 300년 후로 넘어간 사건.

 

그 모든 것을 다 겪고 나서도 나란 존재는 이야기를 훼손하려고 한다. 그것도 이상한 정보가 계속 흘러나와 오염시키면서 말이지.

 

다른 각본가가 각성한 것이 아니라면, 이번에는 이 세계의 창조주와 싸우게 될지도 몰라.”

 

그건 뭐 마왕보다 더 심각한 포지션이잖아? 내가 마계를 담당하는 여신도 아니고?

 

잡화점의 주인. 계속 누구와 이야기를 하길래 혼잣말을 하는 것인가?”

 

마왕이 내 앞에 쪼그려 앉아 입을 열었다. 고개를 살짝 갸우뚱하는 모습마저 귀여웠지만, 저 행동 하나하나가 나를 노리고 한 것이다. 그보다...

 

옷은 안 입어?”

 

이곳은 온도가 따듯해서 옷이 필요 없노라.”

 

보는 눈이 있으니까 옷은 입어줄래?”

 

오히려 이 모습이 더 끌리지 않는가?”

 

소녀의 모습으로 이런저런 포즈를 잡으며 우아하게 있어봤자, 내 시신경을 통해 뇌에 내려진 명령은 버드 미사일을 처박아주지라는 명령뿐이었다. 하지만 그건 박사님의 허가가...아니, 나 지금 뭐라고 독백을 하는 거니?

 

그보다 버드 미사일은 또 무엇인가? 혹시 독수리 5남매에서 나오는 그 미사일 아닌가?”

 

대체 마왕이 그걸 알아서 뭐에 쓰려고!!!”

 

소리친 이후에 다시 찾아온 정적.

태클을 걸고 난 이후에 찾아온 것은 쓸 때 없는 곳에 태클을 걸었다는 후회뿐이었다.

 

그보다 아까 목욕탕에서 이런 저런 곳을 만져가면서 친분을 다져가는 시간을, 아이언 클로 하나로 단숨에 박살내버린 이유는 무엇인가?”

 

이런 저런 곳을 만진다라는 그 말부터 이미 내 시점에선 아웃이야.”

 

하지만 모든 여자가 그렇다고 하진 않아도, 잡화점 주인과 짐의 친목을 위해서라면, 지금쯤 뜨거운 몸을 안으며...”

 

카놀라유로 튀겨버리기 전에 그 입 다물어!”

 

자동차마저 놀란다는 전설의 기름으로 박살내버리겠다는 내 살기가, 마왕은 다시 입을 다물었다.

 

그래도 마스터. 이야기마다 한번씩은 서비스를 해야 인원이 유지되는 법입니다.”

 

무슨 서비스냐고 그게! 난 누구에게 서비스를 하는 거냐!”

 

과연 한번씩 서비스를 한다는 의미가 무엇인가?

설마 백장미와 관련 있는 건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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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린 : 그래서 작가님 저는 언제쯤 남자로 되돌아갈 수 있을까요?

작가 : 남자로 돌아가면 다시 백장미 촬영이 시작될텐데?

카린 : ......루니아 누나말고도 또 그 빌어먹을 잡지를 찍을 사람이 있어요?

작가 :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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