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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을 먹겠다는 나의 단결된 의지가 마왕 하나 때문에 엉망진창이 되어버렸다. 리제로트는 계속해서 자고 있는데, 아무래도 자고 있는 척을 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래도 일단 속아주는 척을 하면서 침실까지 데려갔지만, 세린은 그 모습을 보며 한숨만 내쉬었다. 한숨의 내용은 과연 무엇일까?

 

그래서, 저 암흑물질은 어디다 버릴 거야? 또 벽난로에 집어넣으면 가만두지 않을 거야?”

 

들켰네.”

 

너 진짜...!”

 

세린은 지금 당장이라도 날 죽일 듯이 노려봤다. 암흑물질과 이전 루니아 누나의 무지개 푸드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파괴력을 지니고 있으니, 지금에 와서 생각을 해보면 추억이라고 부를 수 없을 정도의 재앙이었다. 트라우마라고도 불리기도 하고, 그걸 먹고 저승까지 다녀와보지 않았는가? 그러니 벽난로에 버리는 행위는 그만두고, 문을 열고 저 머나먼 곳으로 날려보냈다.

 

잡화점의 주인은 입맛이 까다롭구나.”

 

아니, 그러니까 저걸 먹고 살아남은 사람이 없다고. 지금 리제로트가 살아있는 것도 기적이라니까.”

 

상세하게 보았을 때 혀끝에만 대고 기절했는지, 삼키지 않아 입안에 있는 독극물을 제거할 수 있었다. 내장까지 들어갔다면 모든 장기가 녹아 내리는 대참사가...

 

그러면 이제 하란국을 점령하러 가면 되는가?”

 

점령을 한다고 해도 다른 사람들의 피난이 우선이야. 바보같이 또 일이나 벌리지 말라고, 그랬다간 계약이고 부탁이고 없는 줄 알아.”

 

상당히 까칠해지지 않았는가? 아무리 그렇다고 한들 부부 사이에 스킨십은 중요하다고...”

 

누가 부부야! 그 머리 열어서 화분이라도 심어줄까!”

 

아직까지 끈적한 감각만이 남아있는 양쪽 귀를 무의식적으로 쓸어 내렸다. 보통 저런 미남에게 스킨십은커녕 호감이 가득한 눈빛과 말만 걸어와도 다른 이들의 정신은 날아오르겠지만, 애석하게도 내 정신상태의 기본상태는 남자다. 오히려 이런 상태에서도 남자와 여자 중에 어느 쪽을 더 선호하냐고 물어보면 여자라고 대답한다.

 

하란국의 주민들을 대피시킨다? 그건 무슨 의도라도 있는 건가?”

 

마왕군이 가장 점령하기 어려운 칸포리우스 제국에 다 집어넣을 거야. 그리고 거기서 최종방어선을 구축하고 용사와 함께 마왕군을 기적적으로 밀어낸다. 그런 식으로 계속해서 이리저리 대치를 하고만 있다가 휴전을 선언하고, 그 사이에 상호간의 오해라던가 정복의지가 없다는 걸 알려주면, 종전까지 갈 수 있는 형태가 만들어지지. 마왕이기에 꼭 대륙을 정복할 이유도 없고, 마족이라고 해서 꼭 인간에게 피해를 입히면서 살아갈 종족이 아냐. 오히려 전쟁이라는 것을 통해 상호간의 성장을 확인하고, 그걸 토대로 발전하면서 살아가는 게 중요한 거지.”

 

상호간의 성장이라...확실히 인간계를 정벌하고 나서 남아있는 게 있는가에 대하여 고뇌한 적이 있노라. 짐의 머리로도 그 어떤 결론도 도출할 수 없었지만, 오히려 전쟁을 통한 성장을 가장하려면 지금까지 마계공작들을 설득해야만 한다. 하지만, 마계공작들을 설득하기엔 그들이 반란이라도 하면 짐은 꼼짝없이 숙청을 당하겠지.”

 

지도자가 약한 모습을 보이는 걸로 착각하고 멋대로 마왕을 끌어내리기 위한 움직임을 펼칠 것이다. 마계 12공작을 홀로 상대하기엔 그 힘은 너무 막대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마왕도 살고 인간계와 서로 공존하기 위해선 내가 용사 일행과 함께 마계공작들을 전부 처리하거나, 설득이라는 걸 시켜야겠지만...

 

그런 일은 없어. 용사 일행과 다 죽을 테니 말이야.”

 

그러면 짐의 간부들이 다 잘려나가는 셈이로군? 그러면 짐은 어찌되는 것인가?”

 

마왕의 붉은 눈에는 분노나 적대가 서려있지 않았다.

 

그쪽은 내 사역마나 되는 거야. 어차피 마왕이라는 거 따분했잖아?”

 

오히려 큭큭하고 웃는 마왕은 웃음기를 머금고 입을 열었다.

 

그렇군! 그대가 봐도 역시 짐은 따분하다고 보인 것인가? 애석하게도 그 말이 너무 당연하여 웃음 이외엔 다른 건 나오지 않는구나. 아직까지 머나먼 생에 따분함만 있는 줄 알았더니, 역시 끝까지 살아남아봐야 아는 것이구나. 다만, 의문이 있다면 어찌하여 짐이 그대의 사역마가 되야 하는가?”

 

싫으면 말고.”

 

굳이 사역마로 삼고 싶은 마음은 없다. 오히려 사역마로 다시 삼았다간 시나와 세린의 눈치를 살피는 것이 더 귀찮아질 뿐. 그나저나 시나는 어디에 있길래 아직까지 모습을 보이지 않는 거지?

 

여기에 하얀 올빼미는 못 봤어?”

 

. 그 비둘기 말인가?”

 

너도 비둘기라고 부르냐?

 

, 비둘기가 아니라...! 올빼미...입니다.”

 

주방 쪽 어디선가 미약하게 소리가 울렸다. 주방에는 폭발로 인해 엉망이었을 텐데, 터져버린 밀가루 속에서 올빼미 머리가 쑥하고 튀어 올랐다. 추측하는 것으로 보아 마왕의 암흑물질을 시식하다가, 시나마저 기절하고 정신이 메두사 폭포까지 날아갔는데, 비둘기 소리를 듣자마자 올빼미라며 자신의 존재를 부각시키기 위해 정신을 차린 모양이다.

 

아무리 기절을 하든 죽을 위기에 처했어도 비둘기가 아니라 올빼미임을 강조하기 위해 살아나는 건가? 불사조도 그렇게 못살아오겠다.

 

마스터. 죄송합니다. 저 간사한 마왕의 생각을 미처 읽지 못하고 독극물을 먹는 바람에...”

 

너도 예전에 많이 당했잖아. 왜 그런걸 아직까지 먹고 탈나는 거야?”

 

하지만, 이것을 먹게 되면 마스터가 저를 좋아할 것이라는 소리를 듣고...”

 

암흑물질과 무지개 푸드 때문에 고생했을 텐데, 또 저런 말에 넘어가서 먹고 기절해있다니. 그래도 어느 정도 기력을 회복한 걸까. 내 어깨까지 날아서 온 소녀는...잠깐? ?!

 

-콰앙!

 

마스터는 그 누구에게도 주지 않습니다. 마왕. 그런 모습으로 마스터를 현혹한다고 한들, 마스터는 결국 남자이기 때문에 저와 같은 여성을 선택할 것입니다.”

 

그런가? 확실히 남자로 살아가다가 여자로 되는 저주에 걸린 자들도 많이 보았노라. 다만, 짐이 그 자들을 겁...아니, 교육을 하며 알아낸 것은, 한번 적응을 한 몸으로 인해 결국 여성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 많다.”

 

어딜 주든 뭘 적응시키든 둘 다 입 다물어!”

 

오늘도 제발 정상적인 15세 이상 관람작이 되게 해주세요...

아니, 내가 누구에게 부탁을 하는 거야?

 

시나. 일단 내려와. 일단 너도 날 도와서 하란국을 점령하는데 도와줘야지.”

 

안 됩니다. 저와 같이 목욕한다고 약속해주시면 내려오겠습니다.”

 

제기랄...평생 올라가있던가 그럼.’라는 말을 할 수 없으니, 목 바로 밑까지 올라온 단어들을 꾸역꾸역 삼켰다.

 

알았으니까 내려와.”

 

짐은?”

 

네가 왜 같이 들어가! 그 남성체로 같이 들어갈 생각이냐! 네오 제트 싸이클론 암스트롱 포를 자랑하고 싶은 거냐고!”

 

아무리 비정상적인 생각을 지녔어도 저건 아니지. 윤리적으로도 그렇고 삼진 아웃밖에 되지 않는다.

 

괜찮다. 짐은 신경 쓰지 않는다.”

 

이쪽이 신경 쓰여!”

 

그럴 때는 참을 인을 3번 외우면 된다. 참을 인 3번이면 살인도 면한다고 하지.”

 

그거 300번을 해도 네가 살해당하는 건 면하지 못해!”

 

그 때는 300하고도 1번을 더 하면 된다.”

 

너 그냥 같이 들어가고 싶은 마음만 가득하잖아!”

 

조만간 저 마왕도 같이 날려버릴 생각을 좀 해보자. 아니 조만간이 아니라 지금 당장이라도!

 

죽어어엇!”

 

-파아아앙!

 

매번 잡화점의 벽이 무너질 때마다 눈초리를 주는 세린이 옆에 있기에, 식은땀이 마구 흘렀어도 나는 해야 할 도리를 했다. 사람들 중에서도 자신의 할 도리를 다 했다면, 실패를 해도 떳떳한 법. 그러니 나는 스스로에게 떳떳해지기로 하자.

 

그러면 짐이 여성체로 다시 되돌아가면 같이 들어갈 수 있는 것 아닌가?”

 

어느 사이에 여성체...라기보단, 어린 소녀가 된 마왕은 의기양양한 웃음과 함께, 작은 가슴을 활짝 내밀며 당당한 웃음을 선보였다. 그보다 저 모습은 내가 예전에 레프리시아와 처음 만났을 때의 모습이잖아? 나에게 은팔찌와 전자발찌를 선물할 생각인가? 현실로도 받지 않고 마음으로도 받지 않겠다.

 

왜 굳이 내가 꼭 목욕을 같이한다는 전제로 이야기가 되고 있는지 설명해줄래?”

 

그야 저 비둘기...”

 

올빼미입니다.”

 

아무튼 같은 소녀의 외형이면 그대가 거부감이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외형은 둘째치고 그 생각이 이미 거부감으로 가득 채워지고 있어.

곧 우주까지 채워지겠지.

 

지금은 피곤하니까 좀 놔둬. 게다가 잡화점을 운영해야 할 시간이니까, 목욕은 나중에 하는 걸로 하고 제발 좀 떨어지라고!”

 

아직까지 엉겅퀴마냥 붙으려는 시나와 마왕을 떨쳐냈다. 다만, 잡화점 창가에 있는 흔들의자만큼은 양보해줄 수 없는 강박관념에 몸을 맡겨, 흔들의자에 앉아 언제 만들어졌는지 이유를 알 수 없는 허브티를 찻잔에 따랐다.

 

앞으로의 행동과 계획.

일단 하란국은 수도를 내주고 후퇴를 해서 칸포리우스 제국에 의탁하게 만들면 되지만, 그때는 정말 국가간의 문제이기 때문에, 전후처리를 한다면 꽤 복잡하게 흘러가리라 본다. 당연히 그 전후처리 과정에는 내가 끼어들 이유도 없지만, 기왕 평화가 찾아온다면 국가간의 갈등을 남겨서는 안 된다.

 

갈등을 남겼다간 하란국에선 내 제안으로 인해 그리 되었으니, 나에게 책임을 물고 책임은 곧 평화와 평온이 깨져나간다는 뜻이니까, 귀찮은 일의 시작과 더불어 파멸의 길을 걷는다고 보면 된다.

 

철저하게 칸포리우스 또한 하란국에게 빛을 지어야만 되...는데?”

 

잠깐 눈을 감았다고 생각했더니 들푸른 초원이 눈앞에 나타났다. 아니, 잠깐만? 이 초원은 설마?

 

-메에에~

 

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상황.

그리고 양들이 울타리를 하나씩 넘어가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여기는 세계를 갈아엎어도 나오는 공간이냐?”

 

하긴, 이건 다른 신들이 만들었다는 기이한 공간이기도 하니까. 그런데...

 

“6번째 양은 어디 있는 거야?”

 

5마리까지 보이고 남은 한 마리는 아무리 찾아봐도 없었다. 혹시 이곳도 개편되어 5마리밖에 없는 건가? 그렇다면 정말 다행...

 

-메에에~

 

이라고 생각하는 그 순간을 산산조각 내고, 이마부분에 6이라고 적혀있는 양이 저 멀리서 나타났다. 자세히 보니 몸통 쪽에 뭔가 짊어지고 있는데 홀스터가 양쪽에...아니, 잠깐만? 왜 석양이 지려고 하고 있는 건데!

 

한동안 울타리를 바라보던 6번째 양은 건조한 서부에서나 볼 수 있는 건초더미가 자신의 앞을 굴러가도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언제나 자신의 적은 넘을 수 없는 울타리이며, 그 울타리를 뛰어넘어야 성장을 할 수 있기에, 오랫동안 자신을 괴롭혀왔던 울타리의 악몽에서도 졸업을 할 때가...아니! 잠깐만! 나에게 이런 독백을 하게 만들지 마!

 

-메에에!

 

질풍같이 쇄도하는 6번째 양. 그리고 하늘을 나는 듯한 도약을 하며 울타리를 뛰어넘었...

 

-타아앙!

 

?”

 

자연스럽게 얼빠진 소리가 나왔다. 6번째 양은 뛰어넘지 못하고 그대로 바닥에 추락하였고, 장의사모자를 쓴 양이 6번째 양을 끌고 저 멀리 사라졌다. 내 시선이 울타리로 향하고 있을 때, 어디선가 나타난 총을 자신 뒷 편에 홀스터로 슬쩍 넣었다. 이윽고 울타리는 자신의 본연의 임무를 완수했다는 만족감과 함께...

 

대체 어디서부터 태클을 걸어야 하는 거야아아아아!”

 

소리지르며 깨어난 나와 어리둥절하게 바라보는 마왕과 시나.

나도 모르게 헛기침을 하고 다시 창가를 바라보며, 무안한 감정이 밖으로 빠져 나오려는 것을 다 식어버린 허브티로 집어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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