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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란국의 상황은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다. 말 그대로 수도 외에 전역이 마왕군의 깃발로 가득 매워져 있고, 곳곳에서 비명소리가 나는 것으로 보면, 아직까지 저항하고 있는 세력이 존재하고 있으나, 그 힘이 미약하여 타파할 수 있는 처지도 안 된다. 급기야 마왕이 직접 나서서 제국을 점령한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애석하게도 마계 12공작의 힘을 내가 너무 물로 본 탓도 있다.

 

12공작 중 1명의 공작이 자신만의 군단을 이끌고 하란국의 대부분을 삼켜버린 것. 아무래도 내가 단독으로 마계에 찾아갔을 무렵 나를 내려다 봤던 12명의 공작 중 하나라고 하지만, 그 공작의 힘도 잘 모르겠거니와 내가 알던 마계공작들과는 차원이 다른 모습이었다. 이웃집 아저씨 목소리가 나던 보라색 슬라임 또한 보이지 않고, 하나를 행동하는 데 수십 초가 걸리는 나무늘보 또한 보이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기괴한 모습을 하고 있으나, 상세하게 알아본 것은 나를 장난감마냥 취급하겠다고 자신에게 달라던 그 빌어먹을 작자뿐. 상상이상의 취향인지 유희인지 모르겠지만 그런 쓰레기 같은 녀석은 반드시 죽여야 앞으로의 평화가 찾아오겠지만, 애석하게도 지금 이 상황에서 게릴라 부대가 할 수 있는 건 없다.

 

게다가...

 

[마왕과 이곳을 점령하겠다고 약속한 것 어찌할 건가? 잡화점의 주인.]

 

히드라는 남자목소리와 여자목소리를 죄다 믹서기마냥 갈아 넣은 듯한 음성으로, 내 머리에 직접 퍼트렸다. 꽤 골치 아픈 상황이라면 마왕과의 약속도 어느 정도 완수해야, 나의 위치가 용사편도 아니고 마왕편도 아닌 중립에 가까운 위치로 옮겨지니까. 고작 바퀴벌레 하나 무섭다는 성녀에게 기대고 있는 용사 그룹도 신기하지만...

 

[그건 시나가 잘 해줄 거야. 그러니 내가 언급한 시나리오에 맞춰서 행동하면 결과는 괜찮아.]

 

괜찮기 하지만...

들켰을 때의 뒷감당을 어찌 짊어질 수 있을지...

 

그냥 마계고 인간계고 싹 다 갈아 엎어버릴까?

 

성녀님. 안 추우신가요?”

 

성녀가 아니라 잡화점 주인이라고 몇 번을 말합니까...”

 

매번 성녀가 아니라고 말하지만, 애석하게도 내 포지션은 성녀인 모양이다. 이럴 때마다 빨리 남자로 되돌아가서 나는 사실 신입니다. 우헤헤헤!”라는 전개를 하고 싶지만, 저런 건 맨정신으로 할 수 없는 노릇이고, 설령 모든 능력을 개방한다고 해도 적과 아군 구별할 것 없이 죄다 날아가는 일 밖에 없다.

 

?

일시적인 한계 개방이라.

좋아. 그런 설정으로 나아가서 세린 몰래 남자로 변신하자.

내가 내 능력의 한계를 조정할 수 있는 물품은 잡화점에 존재할 거 같으니, 그걸로 고정을 시킨다면 어느 정도는 괜찮으리라 본다. 일부 힘을 봉인하는 아이템은 내 힘을 감당하지 못하고 다 깨져나갔지만, 잡화점의 물품이라면 마법을 완전하게 막아주는 반지도 있었으니 찾다 보면 나오겠지.

 

하지만 성녀님을 성녀님이라고 부르지 못하면 무엇으로 불러야.”

 

잡화점의 주인이라고 부르기엔 전투에서 좀 긴가? 하긴 급박한 상황에서 커다란 목소리로 잡화점의 주인! 괜찮습니까!” “잡화점의 주인! 어디 안 다치셨습니까!”이런 식으로 말하면 부르는 입장에서 짜증날 수 밖에 없다.

 

카린이라고 부르세요.”

 

이름입니까? 성은 어떻게 되시는지?”

 

성은 없어요.”

 

...”

 

투구를 눌러쓴 기사는 잠깐이나마 어째서 성이 없지?”라고 중얼거렸지만, 이내 결심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카린님. 모포라도 드릴까요? 그 모습으로 있으면 감기에...”

 

감기에 걸릴 일은 없으니 괜찮습니다. 그런데 이곳에서 얼마나 있어야 하는 거죠?”

 

수도 안에 펼쳐진 것은 금빛의 결계와 더불어 절대적인 불가침의 영역이라고 불린다. 하란국의 여제가 발동할 수 있다고 하는데, 이 결계를 거론한 적도 없고 들어본 적도 없다. 류하 씨만이 알 거 같지만, 지금 하란국의 여제가 류하 씨인지 다른 사람인지는 불명. 어쨌든 지금은 수도 근처에 있는 언덕에서 대기하고 있는 용사 그룹만이, 그 결계에 안으로 들어가기 위한 작업을 하고 있는 모양이다.

 

놀랍게도 그 결계 안에 먼저 들어가서 협상을 보고 있는 건, 침묵의 궁수...라고 내가 멋대로 이명을 붙였지만, 아무튼 그 남자가 하란국 출신이기 때문에 아무런 탈 없이 결계에 들어가고 20분이 흘렀다.

 

용사님. 오늘은 추우니까. 이렇게 꼭 붙어있어야 한답니다~”

 

키르갤...숨막히는데...”

 

저 옆에는 따듯해야 한다는 핑계로 용사를 멋대로 안고 풀어주지 않았지만, 용사의 경우엔 마왕군을 토벌하기 전에 키르갤의 가슴에 질식사를 하지 않을지 더 걱정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저런 커플이 꽁냥거리고 있는 동안, 기사는 용사의 상태를 보고 달려가 키르갤님! 용사님의 얼굴이 몹시 안 좋아 보입니다만!”이라며 태클을 걸었고, 키르갤은 용사님의 얼굴은 원래 보라색이야.”라는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늘어뜨렸다.

 

용사의 얼굴이 보라색이라니?

어디 호러 장르에나 나오는 청귀<> 라도 되는 거냐? 뭐 자일리톨 청귀라도 나오는 그런 거? 그 전에 진짜로 용사가 암살 당할 거 같으니 그만 좀 놔줬으면 좋겠는데? 용사가 아둥바둥 빠져 나오더니 나와 눈이 마주치자 마자, 곧바로 내 앞까지 달려와 내 등 뒤로 숨었다. 시나도 그렇고 너도 그렇고 왜 다 내 등 뒤에 숨는...어라? 잠깐만?

 

오호? 카리이이이인?!”

 

뭐냐 요즘 마법사는 광폭화<Berserker>도 사용하는 거냐? 눈에 금빛 안광이 날 산화시키는 듯 노려보고 있는 걸로 보아, 이 여마법사는 아무래도 마법사가 아니라 광전사로 전직해야 할 것만 같았다.

 

, 잠깐만? 아이어에 목숨이나 바치지 말고, 용사가 내 등 뒤에 숨은 것뿐이잖아. 난 손대지 않았어!”

 

“3일 전에 네가 용사의 머리를 쓰담쓰담 한 것까지 다 기억하고 있어어어어!”

 

, 잠깐만! 팀을 죽일 셈이야!? 그만둬! 마법은 사용하지마! 마왕군에게 들킨단 말이야!”

 

당장 용사님을 내놔!”

 

용사가 무슨 마약이냐!

금단 증세라도 보이는 거냐고!

 

키르갤을 진정시켜야 할지, 아니면 덩달아 나도 마법으로 대응해야 할지 고민에 빠진 찰나, 모두가 움직임을 멈추고 자연스럽게 각자의 무기를 뽑았다.

 

흐응~ 아무래도 이건 내가 소리쳐서 들켰다기 보단, 벌써 마왕군의 척후병이 이곳까지 찾아냈다는 건데?”

 

분명 침묵<Silence>마법을 광역으로 사용하고 있으니까, 이렇게 시끄럽게 떠들어도 상관이 없다고 하지만, 혹시 마나를 뒤늦게 추적해서 찾아온 것이 아닐까?”

 

마족은 지식의 종족.

매번 하루가 다르게 쌓여가는 방대한 지식의 양이기에, 이런 역추적은 손쉽게 할 수 있다. 설령 그게 검을 사용하는 마족이라도, 평생의 지식을 습득하는 양이 방대하기 때문에, 마족의 백인대장만 두고 보면 전문지식의 일부는 어느 정도 습득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오호라? 오랜만에 포식을 할 수 있겠군, 적어도 100여마리 정도 되는데?]

 

[그거 좋겠네. 다만 저 척후병을 다 전멸시켜야 100여마리로 끝나지, 또 놓쳐서 보고라도 들어가면 그거 나름대로 골치 아파. 그러니까 척후병을 포함한 전령까지 모조리 다 제거해야 해.]

 

[일단 노력은 해보도록 하지. 다만 전쟁이나 전투의 변수는 언제나 뜻대로 되지 않게 만드니, 잡화점 주인의 바램은 이루어질 확률이 극히 적어.]

 

아예 없다고 봐야 하나. 그러면 최대한 수를 줄일 수 밖에 없다.

 

포위당한 거 같습니다.”

 

당연히 100여명의 물량으로 4명을 포위하는 건 쉽지.

뭘 그리 긴장하며 말하는 걸까?

 

그 궁수가 돌아오기 전까지 몸이나 풀어두라고, 7 그룹의 용사 일행의 실력을 내가 봐야 신뢰하지 않겠어?”

 

나는 일부러 도발했다.

격려가 아니라 도발을 한 이유는 이 상황이 여유로운지에 대해 농담을 던져본 것이고, 애초에 골드 드래곤이 유희로 용사 일행을 돕고 있는데, 용사는 여신의 보호와 축복을 겸비했는데, 이런 수로 버겁다거나 힘들다거나 그런 맥없는 소리를 하면 내가 용서 못한다.

 

정말 많은 걸 바라네. 너야 말로 바퀴벌레가 무서워서 뒤쳐지지나 말라고?”

 

성녀님은 제가 지킬 테니 걱정 마세요!”

 

키르갤과 용사는 내 도발에 응수해왔다.

 

-쉬이이익! !

 

하아. 투창의 기본이 안 되어있는 녀석들이란 좀 더 섬세함이 부족해.”

 

기사는 날아오는 투창을 가볍게 붙잡고 한숨을 내쉬었다. 마왕군에게 처참히 깨져서 약하다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제 밥값은 하는 모양이다.

 

그러면 한 명도 죽지 말라고.”

 

각기 다른 방향으로 뛰쳐나감과 동시에 투창과 화살이 하늘에서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전면에 마법방패<Magic Shield>를 내세워 돌격하는 동안, 용사는 여신의 축복을 사용했는지 광채가 나기 시작하면서 투사체가 스스로 비켜주기 시작했다. 키르갤은 보호마법을 펼치면서 광역마법을 준비한 사이, 기사는...언제 저기까지 간지 모르겠지만 벌써부터 마왕군의 병사 하나를 처치했다.

 

[히드라. 엄호해줘.]

 

[알았다.]

 

왼쪽의 사슬이 풀려나기 시작하면서 9개의 이빨이 각자 적을 노리기 시작했다. 그 틈을 타 양손에 창조마법을 사용했다. 달 아래에 환히 빛나는 은빛 송곳니의 유산과 같은 단검을 꽉 쥐며 가속도의 탄력을 받아 그대로 회전하며 휘둘렀다.

 

-차자자자작!

 

갑옷이라고 말하기 어설플 정도로 종이처럼 잘려나가는 흑색의 방어구는, 이윽고 검은 피와 함께 분수처럼 쏟아져 내렸다.

 

반월!<Half Moon>”

 

전방의 원뿔 모양으로 지나가는 밝은 실선, 그 죽음의 실선에 걸려버린 마족병사들은 허무하게 양단이 나버리고,

 

만월!<Full Moon>”

 

이윽고 내 주변으로 만월이 나타나자 수도 없이 많은 비명과 피가 터지는 소리에, 적들의 사기를 푹푹 깎아 나아갔다.

 

, 성녀라고 생각했더니! 완전히 검사와 다를 바가 없잖아! 궁수! 이곳으로 지원...!”

 

신성마법을 사용하지 않고 왠 단검 두 자루와 이상한 사슬들이, 마족병사의 목을 꿰뚫자마자 온 몸으로 느껴지는 적들의 두려움을 만끽하고 있었던 찰나.

 

-쐐애애액! !

 

어둠을 틈타 날아드는 할버드를 쳐냈다고 생각했더니, 어느 틈에 내 뒤에서 강압적인 살기가 흐르고 있었다. 설마 내가 뒤를 잡혔다고 생각을 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건 마법을 통해 공간이동을 한 것으로 추측했다.

 

-샤아아악! !

 

내가 있었던 자리에 거대한 홈이 파졌을 무렵. 순식간에 내 뒤를 잡아 기습하려던 상대를 확인하기 위해 고개를 들었다.

 

오호호? 꽤나 날렵하시군요. 반반한 얼굴을 보아하니 마왕님께서 점을 찍으신 약혼녀 아닙니까? 중립이라고 하셨으면서 지금은 용사의 편에 붙어 있군요?”

 

익살스러운 남성의 목소리. 꽤 가벼워 보이지만 일격은 상당히 무거웠다. 막지도 않고 피했다는 판단이 오히려 옳았을 정도. 대략 3M가 넘어 보이는 거구의 사내에게 신세한탄을 좀 할 겸 입을 열었다.

 

. 그건 너희 마왕도 허락한 거라서. 이렇게 붙든 저렇게 붙은 내 맘대로잖아?”

 

오호호! 그렇군요! 그러면 제가 직접 포로로 잡아서 맘대로 부려도 상관 없으시겠죠?”

 

내 몸을 음침하게 훑고 지나갔다. 거대한 뿔이 솟아난 투구에 알 수 없는 투기까지 느껴졌고, 일단 알아두면 대책이라도 마련할 수 있을 거 같아서 물어보았다.

 

덤으로 뭘 할건데?”

 

오호호! 그러면 그대의 손발을 구속한 다음에...”

 

희망사항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지만 뜸을 들이며 군침이 도는 듯한 혀 놀림을 한 뒤.

 

마왕군이 인간계를 모두 점령하면 유명한 맛집 투어에 강제로 동참을 시킬 겁니다!”

 

, ! 잠깐만! 군침이 도는 듯한 혀 놀림이 맛집 탐방에 기대되는 그런 의미였냐! 그럴 거면 왜 손발을 묶어!”

 

그거야 줄 듯 안줄 듯 하면서 괴롭히기 위해서입니다.”

 

너는 진짜 여러 의미로 나쁜 녀석 맞다.”

 

세상에...손발을 다 묶어놓고 하는 짓이 음식으로 고문하는 거냐!

대체 이런 녀석은 뭐했길래 마계 12공작이 된 거야?

이것도 일단 생각난 김에 물어보도록 하자.

 

대체 너희 마계 12공작을 뽑는 기준이 뭐냐?”

 

오호호? 그거야 당연히 가위바위보이지 않습니까?”

 

그 빌어먹을 가위바위보가 왜 나오냐고!!!”

 

이 세상도 제대로 된 세상은 아닌 모양이다.

아니, 사실 제대로 된 세상이 아니란 건 알고 있었지만, 진지함이 떨어지는 그런 바보 같은 세계일 줄은 누가 알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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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호호! 한입 줄까? 말까? 안준다! 오호호호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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