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 587
587
어떤 삶을 살고 있던 나는 과연 정상을 위해 도약하는가? 아니면 절벽에서 추락하는가? 그걸 알아내는 방법은 다양하지만, 굳이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다른 사람이 그걸 꿋꿋하게 보여주겠다고 절벽에서 밀어버린다면, 이 세상을 떠나고 싶은 기분이 수 십 차례나 맴돌게 된다. 그런고로, 우리는 사람을 마주할 때 그 사람이 내 인생에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가에 대해 멋대로 사고하는 바가 있다.
그래도 지금은 내 멋대로라도 생각하고 있지만, 아무래도 루니아 누나는 내 인생에 있어서...
“카일~ 아~”
“제가 먹을 수 있다니까요.”
“소녀는 언니가 받아주는 걸 먹어야 한답니다아!”
“남자거든요!”
정말로 중요한 듯하면서도 불필요한 포지션이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보통 4사분면으로 모든 기준을 나누는데, 가장 중요하고 가장 필요한 사람의 기준은, 그 사람과 같이 있을 때 이익이 존재하고 무엇보다 합이 잘 맞아서 행복해야 한다. 반대로 가장 중요하지 않고 가장 불필요한 사람이라면, 손해만 있고 같이 있으면 매우 불편한 것. 그것들이 각각 1사분면과 3사분면에 속해있다고 했을 때. 루니아 누나의 경우는 확실하게 중심을 차지하고 있었다.
어쨌든 지금은 받아먹고 있는 케이크가 내 입 안에서 뭉개지는 동안, 어떻게 해야 이곳에서 빠져나가 여장을 풀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을 하기로 하자.
“잡화점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사이가 좋네요.”
나와 단 둘이 있을 때는 비꼬는 말투겠지만, 앞에 루니아 누나와 루비아가 있는 한, 리제로트는 매우 부럽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홍조를 띠면서도 반짝이는 눈으로 바라보고 있자니, 내 마음 한 구석에는 ‘세상 하나 없어져도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했다.
그래도 평행세계 모두가 사라지니까, 지금 내 개인적인 감정에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참기로 하자.
얼마나 참을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으나, 그래도 지금은 케이크를 받아먹으면서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아 그러고 보니, 내가 고분고분하게 받아먹는다고 생각하는데, 지금 이 상황에서 루니아 누나가 주는 케이크를 받아먹지 않으면, 커다란 사건 하나를 더 만드는 셈이 되니까, 얌전히 가만히 있는 것뿐이다. 사실상 케이크는 좋아하긴 하지만, 수틀리면 또 다른 난장판이 되는 것을 바라지 않으니, 얌전하게...
“자. 아~ 하세요. 안 하면 또 다시 구속을 하고 질질 끌고 갈 겁니다.”
“루비아. 케이크를 준다면 준다는 건 고맙지만, 너도 좀 먹는 게 어때?”
“저는 이미 충분히 먹고 있습니다.”
아니, 절대로 충분히 먹고 있지 않았다. 오히려 시켜놓고 나에게만 다 먹이고 있잖아. 초콜릿 케이크도 한 조각만 주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비싼 가격을 지불해야 하는데, 그 접시만 5개가 쌓였다.
그리고...
“그 공허한 눈으로 먹고 있다고 말해봤자 아무도 안 믿거든! 너 여태까지 케이크조각 하나도 먹지 않고, 나에게만 퍼 먹이고 있잖아!”
“퍼 먹이다라는 표현은 너무 남성적이니, 여성스러운 단어로 떠 먹여준다는 표현으로 바꾸시길 바랍니다.”
“애초에 말하는 것에 대해 남성적과 여성스러움이 뭐가 중요해!”
“그렇게 제가 먹는 모습이 보고 싶다면 차라리 저에게도 떠먹여주시죠?”
“접시까지 다 넣어줄 테니 입 벌리고 있...크앗!”
살기를 감지한 것일까? 루니아 누나는 포크 뒷부분으로 내 이마를 때렸다. 다만, 내 주관적으로 표현하기에는 때렸다는 게 아니라, 강타했다는 표현이 가장 적절하겠지. 뇌를 흔드는 충격이 아직까지 머리에서 뛰어 놀고 있는 동안, 매우 흐뭇하게 지켜보고 있는 리제로트와 다른 손님들.
이게 뭐가 흐뭇하게 바라보는 상황인가?
“그래서 리제로트 양은? 우리 카일의 뭐죠오?”
“은인이에요. 적어도 제가 레이베리아로부터 살려줬죠. 그 이후에는 뜨거운 밤을 보낸...”
“그 어느 누구도 살려준 은인과 뜨거운 밤을 보내지 않아. 알아들어?”
“절 그렇게 엉망으로 만들어 놓...”
“헛소리 말고! 제대로 이야기를 하란 말이야!”
소리지르는 것도 목에 한계가 있는데, 조만간 득음을 할 지경이다. 한숨이 기가 막히게 튀어나가는 동안 리제로트가 입을 열었다.
“그래도 당신의 친구는 당신의 은인에게 암살하려고 시도하잖아요?”
“네가 아이리스를 인형으로 만든 게 시작지점이잖아.”
“그때는 너무 귀여워서 그만...”
귀여우면 모두 인형을 만들어야 직성이 풀리겠냐? 한숨이 한 가득 나오게 되는 답변을 들었지만, 리제로트는 잡화점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자신의 인형으로 만드는 게 아닐까? 하는 그런 불안감도 살짝 맺히기 시작했다. 다만, 그런 일을 하기 전에 리제로트가 오히려 굴복하게 되지 않을까?
잡화점에 있는 사람들은 대체 얼마나 강한 거야?
내가 걱정을 따로 안 해도 될 정도라니.
아니지. 내가 걱정을 끼치는 입장이었네.
“인형으로 만드는 게 무슨 재미가 있나요오?”
“그야 제 말에 복종하잖아요.”
잡화점에 돌아가기 전까지 한 번도 말을 섞지 않을 것 같은 루니아 누나가, 리제로트에게 질문을 던졌다. 굴러오는 질문을 보기 좋게 받아 친 리제로트의 대답에, “흐응~ 그렇군요오.”라고 입을 열었다.
“말에 복종한다는 의미는 잘 알고 있는지요오?”
“말에 복종한다는 말은 말 그대로 제 명령에...”
“아뇨오. 당신은 타인의 진심을 여태껏 모르고 살아왔다는 말이에요오.”
얼어붙기 시작했다.
루니아 누나의 분위기는 항상 극과 극으로 나뉘어지는데, 이럴 때마다 항상 무서워 죽겠다. 천진난만하고 사람을 곤란하게 만들 정도로 바보 같은 일을 벌여도, 루니아 누나의 본 모습을 보통 사람이 견딜 일은 없으니까.
리제로트가 쥐고 있던 컵이 살짝 떨기 시작했다.
“사람의 진심이 왜 필요한 거죠?”
“당신의 그 나락 같은 삶을 벗어나기 위함이죠오.”
나락 같은 삶이란 소리에 또 다시 리제로트는 흠칫하고 놀란다. 옆에 있던 월터가 그에 동요했는지, 얼어붙는 살기가 우리 주위를 몰아치기 시작했고, “월터. 가만히 있어.”라며 리제로트의 당돌한 한마디가 분위기를 다시 돌아오게 만들었다.
“조만간 싸움이 일어나는 줄 알았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글레이프니르를 꺼낸 루비아 씨가, 다시 상황을 보고 서서히 주머니 속으로 넣었다.
그보다 그거 주머니에서 꺼내는 거였어?
그 밧줄이 그렇게 작은 주머니에 다 들어가던가?
“루비에몽이라고 불러주시죠.”
“남의 생각을 읽고 거기에 맞게 태클 걸어달라고 자신을 꾸미지 말라고!”
저럴 때마다 내 정신이 대나무 헬리콥터를 타고 저 멀리 날아간다. 그러나 내가 루비아와 대화를 주고 받아도, 루니아 누나와 리제로트는 서로 공방전을 하느라 바쁜데, 자세한 이야기는 귀담아 듣지 않았다.
그리고는...
-달그락!
“웃기지 마세요! 당신이야 말로 저에 대해 뭘 안다는 거에요!”
“저는 카일의 누나이기 이전에 기사단장이랍니다아. 많은 사람들을 봐오면서 이끌었기 때문에 잘 알고 있지요오. 당신도 근본적으로 착한 아이이긴 하지마안, 우리와 함께 걸어가기 위해선 자신의 능력을 버려야 해요오. 바로 저 뒤에 있는 집사 인형도 같이 말이죠오.”
태연하게 자신의 모든 힘을 포기하라는 루니아 누나. 그걸 부정하는 리제로트 사이에는 불길한 기운이 맴돌기만 했다.
“다른 이들이 지켜보고 있으니 조금 더 조용하게 이야기 해주시길 바랍니다.”
일하는 종업원에게 한 소리를 듣자마자, 갑자기 싸해지는 분위기.
“그걸 줄이면 갑분싸가 됩니...”
“제발 내 생각 읽고 멋대로 입 열지 말아줄래!”
루비아는 내 생각 하나하나 전부 다 읽는 게 가능한 건가? 호문쿨루스의 특수능력이 언제부터 사람의 생각을 읽는 게 되었을까? 티르야 말로 최고의 연금술사다운 제작솜씨다.
“이건 티르와 관계 없습니다.”
“제발 같은 태클 3번 걸기 전에 자중할 수는 없는 거냐?”
“없습니다.”
“자중하라고!”
속도가 빠른 공방전은 이곳도 마찬가지. 각기 다른 토론대회나 만담대회를 진행하는 와중에도 사람들의 눈치가 보여서 이쯤 나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게다가 나는 중대한 사명이 있으니, 이런 한가로운 곳에서 케이크나 강제로 받아먹으며 앉아있을 위인이 못 된다. 애초에 여장 당한 상태인데, 그 옷까지 저주받아서 벗지를 못하고 있으니, 지금 당장 저주를 풀기 위해 바삐 움직여야 한단 말이지.
“저는 슬슬 자리에 일어나도 될까요?”
“안돼요오. 카일은 누나와 백장미를 촬영해야 한다고요오.”
대체 왜 백장미를 찍자고 하는 거냐.
“백장미를 찍기 전에 전 이 옷의 저주부터 풀고 싶다고요. 일단 저주를 풀어야...”
“다른 여성의류도 입기 때문이죠오?”
“아니라고!”
도대체 어떤 남자가 다른 여장을 하기 위해 저주를 푼다는 건가? 정상적인 사고방식이 아니다. 그러니 루니아 누나의 사고방식은 정상범주에서 벗어나있다. 결국 비정상중의 비정상은 루니아 누나인...
-파악!
“켁!”
뭔가가 빠르게 날아와 내 머리를 힘껏 때렸다. 가만히 보니까 별이 5개정도 떠있는 걸 보면, 어디 돌침대가 생각나는데...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저는 언제까지나 정상이랍니다아. 오히려 카일이 비정상이 아닐까요오? 자신의 귀여움을 멀리 퍼트릴 생각을 하지 않고, 숨기시려고 하시다니이...혹시! 즐길 사람만 즐기라는 뜻의 배려인가요오?”
“호수 같은 배려 좋아하시네! 어떻게 자매끼리 남의 생각을 읽고 자기 멋대로 해석하는 것에 능통한 것부터가 비정상이거든요!”
애초에 붉은 눈을 가진 사람은 대부분 비정상이라는 소문이 들리긴 했는데, 루니아 누나 또한 붉은 눈을 가지고 있다. 모두 주변에 붉은 눈을 가진 사람을 보면, 거기를 멀리하고 집을 가까이 하는 편이 좋다.
“붉은 눈을 가진 사람은 천성적으로 착하고 자유롭기 때문에, 가까이 해도 좋답니다아~”
“내 생각 좀 그만 읽어!!!”
본래 독백은 남들에게 읽히라고 하는 것이 아닌데, 어째서 이런 일이...
“그전에 리제로트에게 무슨 의도로 그런 말 했는진 잘 모르겠지만, 지금 싸우자는 의도는 아니라고 보는데요.”
“싸워도 득이 없는 건 저 소녀도 잘 알고 있답니다아. 다만, 저는 카일에 대해 1%라도 위험을 없애기 위해 그리 말한 것이지요오.”
나를 생각해서 말했다는 말은 진심이겠지.
이전에 리제로트는 나를 납치했던 전과가 있으니까, 더 이상 나에게 위험이 되지 않도록 인형들을 포기하라는 것. 아마 인형을 만드는 그 자체를 포기하라는 거니까, 자신의 초능력을 포기하라는 셈이 된다.
내가 알던 인형사 사브누아는 영혼을 집어넣기 위해 노력을 하지만, 리제로트는 인간의 영혼을 제거하려고 노력한다.
“인간은 영혼이 없을 때야 말로 가장 순수해! 그러니 귀여운 아이들을 순수한 채로 남아야 한다고!”
영혼이 없는 게 순수해?
그러니까 아무것도 담지 않은 그릇자체가 보기 좋다는 건가?
“그건 꽤 기발한 헛소리네.”
저 말을 듣자마자 내 입에서 자동반사마냥 튀어나갔다.
“영혼이 없는 상태가 가장 순수하다고? 그래서 내 딸을 그렇게 만들었냐!”
그저 본능적으로 외친 소리. 다른 시간대일지 몰라도 카렌을 지키지 못했던 무기력한 자신. 그리고 엉망이 된 카렌을 처음 마주했을 때의 분노가 리제로트에게 단번에 몰아쳤다. 오늘의 일을 과거까지 끌고 가고 싶지 않았지만, 내 분노에 반응한 마나들이 주변을 요란하게 뒤흔들었다.
“넌 정말 구제할 수 없을 정도로 쓰레기 같은 인간이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너의 의뢰를 들어주기 위해 이곳에 있지만, 말 한마디를 듣고 내가 정말 무르다는 걸 깨달았다. 자신이 한 행위에 대해 아무런 죄책감도 없고 잘못하지 않았다는 듯한 그런 소리를 한번만 더 하면...
내 분노를 마주한 리제로트에게 성큼 다가가선 나지막하게.
그리고 최대한 조용하게 입을 열었다.
“내 모든 걸 걸고 너 하나만큼은 꼭 죽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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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제 회사는 쉬는 날이 없을까요?
요즘은 그나마 페이스 조절을 하는 거 같았는데,
일정이 당겨진 거 비해, 다른 업체에서 아직까지 일할 준비가 안 되었다니...
조만간 백수되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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