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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본가를 제외한 이후로 세계는 대격변이 일어났고, 각본가가 있었어도 세계는 대격변이라고 말할 만큼 세계가 변했다. 리제로트는 대격변 이전의 마지막 인간이라고 봐도 좋고, 지금은 칸포리우스 제국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하란국에 빨리 지원이 와서 마왕을 토벌하는 척만 하고 이곳의 진정한 흑막에게 진심펀치를 날린 후, 빨리 나는 남자로 되돌아가고 싶은 마음만 굴뚝같았다. 솔직히 흑막까지 안가도 남자로 되돌아가기만 했으면 좋겠지만, 잡화점 주인임에도 불구하고 성녀로 오해 받는 내 입장을 무엇이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

 

머리가 청색이었다가 검은색으로 물들은 전신거울을 보며, 오히려 더 단조롭게 청순해졌다는 표현이 맞을까? 의식하지도 않은 옆머리를 귀 옆으로 쓱 올려보았다.

 

후후...후후훗...후헤헤...”

 

뭔가 소름 끼치는 웃음 소리가...

 

세린. 침 닦아.”

 

쓰읍!”

 

머리색상만 다른 쌍둥이 자매처럼 생긴 세린의 눈에서 알 수 없는 빛이 난반사되었다. 나를 볼 때마다 눈이 공허해지는 것 같기도 하고, 동공 안에 붉은 하트 모양이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솔직히 말하면 이건 무섭다고 해야겠지.

 

이번 흑장미는...이대로 가도오...”

 

거기. 카메라 내려요.”

 

...”

 

루니아 누나는 아쉬운 표정으로 카메라를 천천히 내려놓았다. 저번에 멋대로 찍었다가 카메라 자체를 소멸시킨 이후 조심스럽게 행동을 하고 있는 모양이다. 여전히 TS빔을 반 강제로 맞아 여자로 있는 것도 불편하다고...

 

익숙해지지 않는 건 아닌가?

설마...아닐 거야.

 

카일이여? 주변의 공기가 왜 이리 숨이 막히는 것이냐? 첩은 아직까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만?”

 

그거야 마리아와 제가 엑시즈 소환...아니, 링크가 되어있으니까요. 그 덕에 매력의 랭크가 한 단계 올라가서 시시각각 우리를 노리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뿐이에요.”

 

노린다고 한들 지금 카일을 포박하려고 하는 루니아 뿐 아닌가?”

 

아뇨. 잡화점의 인격인 세린마저도 노리고 있...뭐라고요!?”

 

뜬금없이 날아오는 루니아 누나를 피했다. 인간 미사일이라고 하면 루니아 누나를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날아왔는데, 잡화점 벽 하나가 무너져 내림과 동시에 제 2파로 날아드는 미사일을 겨우겨우 막아냈다.

 

지금 뭐 하는 거에요!”

 

그치마안! 카린은 이렇게까지 해주지 않으면, 백장미와 흑장미에게 관심이 없는 걸요오!”

 

그 저주받을 잡지는 태초부터 관심도 없었어!”

 

어디서나 나오는 그치만!’이라는 단어를 무시하고, 오늘도 성녀인지 잡화점 주인인지 정체성에 혼란이 오기 전에, 어디서 날아올지 모르는 변수를 위해 대책을 새워야만 했다. 변수라고 한다면 어릿광대가 내 예상과 다르게 각본가가 아니었다는 것. 혹은 이 공간의 창조주가 변질 되었을 가능성.

 

7그룹 용사들이 나오기 전까지 마왕이 손쉽게 용사들을 모두 격파한 것은, 되려 모든 것이 각본에 의한 것이 아닐까? 아니라면...

 

되려 각본과는 다른 방향으로 나가고 있었나?”

 

각본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과 똑같다. 그러니까, 지금 내가 이곳에 있는 상황이 되려 각본가에게 있어선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건가?

 

각본과 다른 방향으로 나가다니요오?”

 

각본가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가니까, 그러니까 지금 현 마왕이 용사들을 초기에 다 죽여버리고 제 7그룹 용사까지 제거하려고 하니까...”

 

마치 용사들이 전혀 필요 없는 것처럼...

 

마왕이 빨리 죽인 것도 뭔가 문제가 있지만, 7그룹의 암살까지 노릴만한 정보까지 어떻게 얻었을까요? 각본대로 움직였다면 아예 용사가 다 사라지고 암울한 미래가 남았다가 끝 아닐까요?”

 

어떤 미래든 좋고 나쁨에 관계없이 결과가 나오기 마련, 아마 이곳은 배드앤딩으로 갈뻔했다가 내가 오고 나서 천천히 개선되어가는 모양이다.

 

그러면 현재 각본가의 힘은 매우 약하다는 의미잖아요오? 그러면 더욱 더 어릿광대가 아니게 되죠오.”

 

아니, 어릿광대가 힘이 약해졌을지도 모르잖아. 섣부르게 판단하면 안 되는 거 아냐?

 

다른 차원의 영향력으로 힘이 약화될 수도 있...진 않겠구나.”

 

다른 차원으로 나아가도 영향을 받지 않은 라는 존재가 있었다. 수많은 차원이 무너지고 부러져도 다른 시공에 나타났을 때, 나만 패널티를 입지 않는 모양이다. 어쩌면 이게 잡화점의 비밀 중 하나일지도 모르고...

 

마리아는 내 머릿속에서 다시 생각에 잠기기 시작했다. 세린 또한 아무런 말 없이 가만히 나를 지켜만 볼뿐.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내가 답을 내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닌데...

 

각본가가 없는 건 아니지만, 어쩌면 데드엔딩을 향해 나아가던 진로가 다시 바뀌기 시작하면서 서서히 희망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죠. 아직까지는 정보가 너무 없어서 추측은 이 정도로 끝냅시다.”

 

히드라를 감싼 왼팔이 살짝 저려오기 시작했다. 비록 히드라는 월식에 거의 연결하지 않고 살아남았다고 하지만, 어디선가 어릿광대가 조소라도 하듯 움찔거리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야? 히드라?”

 

[끊어진 연결을 누군가가 억지로 연결하려는 느낌이 들었기에, 지금 차단방벽을 높이고 있는 중이다.]

 

. 어릿광대가 있을 거라곤 생각했지만, 여전히 날 찾고 있는 중인가 보네.”

 

유랑극단에 이제 하나 밖에 남지 않은 어릿광대는 끝까지 날 쫓아와서 죽이려고 할까? 아니면 다른 이유로 나를 찾아와 도와달라고 할까? 지금 당장 급한 불은 아무래도 용사그룹들인 거 같지만, 하란국에서 일방적으로 버티기만 하는 이 상황에서 급하게 움직일 필요가 없어졌다고 판단한 나는 조금 더 잡화점에 있기로 했다.

 

오랜만에 잡화점도 영업하고, 생각도 정리할 겸 청소를 시작하기 위해 빗자루를 들었다.

 

그러면 저는 요리를 하러 가볼게요오~”

 

하지마!”

 

루니아 누나는 히잉...”하며 죽는 소리를 늘어뜨렸다. 누굴 암살하려고 요리를 하겠다는 거야?

 

***

 

잡화점이 열린 새벽에 마왕은 여김 없이 놀러 왔다. 이제 마리아가 이곳에 동기화를 하여 자리잡는 순간, 내가 기억하는 레시아와 마왕이 서로 대면을 할 거 같은데, 그 이후로 무슨 일이 일어날까? 일단 잡화점이 폭발한다는 건 당연한 일이다. 여기가 어딘가의 하얀 병원은 아니지만, 어째서인지 자주 폭발하는 잡화점 속에서, 세린은 거의 체념한 표정으로 멍하니 바라만 보겠지.

 

그래서 짐의 정예병들은 결국 잡화점 주인의 소속이 되었다는 건가?”

 

정확하게는 검은 달의 여왕이지만, 이 검은 머리도 검은 달의 여왕으로 인해 생긴 거고, 지금 상황에서 마왕뿐만이 아니라 신도 때려잡을 수 있을 거야.”

 

그러면 그대가 세계정복을 하면 되지 않는가?”

 

나는 용사그룹에 소속되어있는 잡화점 상인이니까.”

 

성녀이지 않는가?”

 

성녀 아니라고!”

 

아직까지 객관적인 눈으로 보았을 때, 나는 성녀로 취급되고 있는 모양이다. 엘티노스 잡화점의 주인이라고 절대적으로 이야기 하지 않고, 잡화점 앞에 엘티노스라고 버젓이 들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냥 잡화점 주인이라는 말만 반복하는 걸로 봐선, 정말로 이곳에 엘티노스가 없는가에 대해 생각도 해봐야 한다.

 

하지만 마왕 레프리시아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엘티노스는 한번쯤 거론되어야 하는 대영웅 중 하나. 솔직히 그 양아치 같은 아저씨가 어떻게 상급 신이 되고 영웅소리까지 듣는지는 정말 의문이지만...

 

엘티노스부터 찾아봐야겠어.”

 

나는 결정을 내렸다.

 

죽었을지도 모르는 엘티노스라는 자를 찾기 위함이라?”

 

마왕은 검은 고양이의 모습이 되어 자신의 앞발을 그루밍 하고 있었다. 그나저나 왜 고양이 모습으로 찾아 온 거야?

 

솔직히 엘티노스가 죽은 이유라면 2가지로 추측되거든. 하나는 마왕이 수작을 부려서 미리 암살을 했다. 또 다른 하나는 각본가가 하나가 아니라 둘이라서 서로 기 싸움을 하는 와중에 엘티노스가 죽어버렸다.”

 

그러면 그 둘을 전부 타개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가?”

 

당연히 있지.

 

시간대를 찾아서 뒤집어 엎으면 돼. 복수자들도 양자영역까지 들어가서 되돌리곤 했잖아?”

 

시간대를 찾아서 뒤집어 엎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인 줄 아는가? 지금 이 차원의 시공간을 전부 찢어발길 셈인가?”

 

시간여행의 부작용을 생각하질 못했네. 확실히 지금 과거를 뒤바꿔버리면 미래가 어떻게 산산조각이 날지 모르는 일이잖아?

 

아니지. 미래가 산산조각 나도 돼. 그 놈의 백장미인지 흑장미인지 빌어먹을 잡지책을 다 불태울 수 있다면 말이야!”

 

그렇다고 시공간 하나를 멸망시킬 셈인가?”

 

시공간 하나로 내가 그 잡지를 찍지 않아도 된다면 바꿀 수 있다고 본다. 그런데 자세히 생각을 해보면 루니아 누나는 시공간을 찢어서라도 찍지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하네...

 

조만간 백장미 특집이 시.... 로 바뀌는 건가.”

 

그 기괴한 폭풍으로 들어가는 건 짐도 사양이다만...”

 

무릎 위에 올라간 검은 고양이의 머리를 거칠게 쓰다듬었다. 도대체 시공의 폭풍은 왜 알고 있는 거야? 조만간 거기에 들어갔다 나오는 거 아닐까? 고양이는 다시 입을 열기 시작했다.

 

그 폭풍이야기는 그만두고 정말로 과거로 가서 찾아올 셈인가?”

 

과거로 가서 찾아오는 거 말고 현실적인 방안이라면, 다른 평행차원에서 소환하는 수 밖에 없어. 그럼 그 평행차원은 난리가 날 거고 시공간 2개가 찢겨질 위기가 찾아오는 거지. 일이 잘 해결되면 시공간 중 적어도 1개만 찢어지고 나머지 하나는 무사해. 좋은 일이긴 하지.”

 

아니. 절대적으로 좋지 않다. 잘 해결되는 전제가 이미 시공간이 찢겨나가고 있지 않는가? 그보다 현실적이 아니다!”

 

2번째도 실패인가. 그럼 3번째로...

 

엘티노스의 환생체를 만든다.”

 

이번엔 환생인가?”

 

보통 윤회라는 건 육체와 영혼이 분리될 뿐이지, 결국에는 그 영혼은 깨달음을 얻기 전까진 이 세상으로 다시 되돌아오거든. 내가 보았을 때 엘티노스는 절대적으로 부처나 그런 게 될 수 없어. 상급신도 연줄이 있어서 승천한 거지, 500년이 지난 이 시점에서 나타나는 것도 좀 어처구니 없겠지만, 대마법사 엘티노스라면 가능성이 높다고 봐.”

 

어쩌면 이미 환생을 해서 다른 사람의 등을 쳐먹거나.

여자 뒤나 졸졸 쫓아다니면서 어떻게든 꼬시려고 하겠지.

 

가능성이 많은 건 좋지만, 확률은 아무래도 길을 걷다가 개구리가 나에게 인사하는 정도의 확률인 거 같아.”

 

내가 생각한 모든 답안은 전부 가능성이 없었다.

 

환생체를 만든다고 하여도 이미 환생했을지도 모르고...다른 차원에서 엘티노스가 객사하여 그 차원의 영혼을 납치한다고 해도, 사실상 윤회라는 체계는 어느 누구도 섣부르게 건드릴 수 있는 이야기지.”

 

지금의 내 힘이라면 가능할까?

아니, 그런 미친 짓을 감행한다면 난 정말 인간을 포기해야 한다.

어디서 로드롤러를 끌고 와서 죠스타 가문에게 내려찍지 않는 이상...

 

터무니 없는 상상에 짐은 아직도 머리가 어지럽구나.”

 

그건 내가 머리를 거칠게 쓰다듬어서 그런 거야.”

 

아직은 명확한 해답이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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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상부터 남다른 카린(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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