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7

 

 

 

마리아와 잡화점 멤버가 이곳으로 넘어왔다는 건 잘 알겠지만, 루니아 누나를 제외하고 다른 멤버들이 이곳으로 모습을 드러내기 위해선, 마리아의 몸이 안정을 되찾아야 한다. 다시 말해 마리아의 숙주가 필요한 것. 마리아와 나는 동화를 할 수 있지만 검은 달의 여왕의 신도는 마리아가 숙주로 만들지 않는다. 그것만으로도 우선 정신기생으로부터 영향이 없다는 말이 된다.

 

결국 코발트 블루의 머리색상의 끝에는 마리아의 짙은 흑발이 서서히 자리잡으며 동화율을 올리고 있고, 이곳에서 적응하기 시작한 마리아는 세린처럼 나만 보이게 하여 말을 걸어왔다.

 

그나저나 카일도 고생이 많구나. 첩이 이러고 있으면 또 마왕의 간계에 빠져 타락하고 있다는 둥. 그러는 것이 아니더냐?”

 

그나마 마리아가 카린이 아니라 카일이라고 불러주니까요, 지금 내 본래 성별이 남자라는 것을 다시 한번 일깨우게 돼요. 애초에 격변 이후의 레시아와도 그렇게 이야기가 진행하는 중이니. 지금 이런 모습을 보여주면 용사 일행은 좀 더 강경하게 나오겠네요. 하란국이 성공적으로 막든, 실패를 하든, 이 세계의 혼란을 빨리 잠재우고 우리는 조용한 곳에서 잠적을 타는 게 좋겠죠.”

 

내 무릎 위에 올려진 마리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나에게 요구하는 것이 무릎베개와 귀청소라니. 그보다 정신기생체도 귀가 가려운 건가?  실제로 어떻게 생겼는지 잘 모르겠는데?

 

첩은 실체가 없노라. 그저 마지막에 숙주의 모습 그대로 이어 나아갈 뿐이니 말이다.”

 

내 생각을 읽거나 독백을 간파할 때는 3골드씩 받아야겠어, 그럼 나는 순식간에 부자가 될 거야.”

 

아까 저 멀리 있던 잡초에게도 3골드를 받아야지.

그럼 난 부자가 될 거야!

 

아무리 그래도 고작 풀무덩이에게 3골드씩이나 받는 것인가?”

 

먼저 3골드 내놔요.”

 

첩은 아쉽게도 정신기생체라 낼 수가 없노라. 대신...이 몸이라도 괜찮다면?”

 

실체가 없는 주제에 잘도 그렇게 유혹하네요? 마리아를 통해 모순이라는 단어를 한 단계 깊이 알아가는 거 같아요. 그보다 언제부터 그런 캐릭터였는데요?”

 

그럼 카일이야 말로 언제부터 자신의 존재가 잡화점에게 먹힐 것이라고 생각하고, 여성체로 살아가는 것인가? 확실히 잡화점의 힘이 아직까지 강한 것은 맞지만, 세린이라는 인격체의 말만 듣고, 통제 당하면서 살기를 원하는 것인가? 첩이 알고 있는 카일은 불가능한 일도 아주 간단하고 빠르게 해내는 그런 남자다. , 이런 모습도 귀여우니 첩은 아무 말없이 봐주고 있는 거지만.”

 

대체 봐주지 않으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거지?

그렇다고 나도 본래 모습으로 돌아가기 위해 생각해놓은 것은 있다고? 예를 들어서 카일과 카린이라는 존재를 둘로 나눠서 힘을 분산시킨다거나, 또 다른 거라면 아예 잡화점을 나가고 다른 차원의 신이 된다는 것도 있는데, 일단 이쪽의 일은 해결해야 하니, 카일과 카린으로 이등분을 해야 할까?

 

카일과 카린으로 이등분이라, 애석하게도 그건 좀 힘들 것이라 본다.”

 

그건 왜요?”

 

태클 거는 사람이 2명이 되면, 만담으로 4화는 날로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니라.”

 

어디서 뭘 보고 온 겁니까?”

 

마리아는 만담만으로 4화를 날려먹은 미래를 본 것일까?

 

-벌컥!

 

, 성녀님! 큰일 났습니다!”

 

무슨 일 있으면 오라고 했지만, 그래도 노크는 할 줄 알았는데...뜬금없이 문을 열고 온 기사의 말에 다급함이 내 고개를 있는 힘껏 돌리게 만들었다. 야야, 그 각도 이상으로 돌아가면 목이 뒤틀린다고!

 

큰일이라면 뭔가요? 설마 하란국의 여제가 쓰러지기라도 했나요?”

 

, 아뇨. 그건 아니지만...아무튼 큰일 났습니다!”

 

뭐지? 아무튼 큰일이 났다는 말은?

다급하게 기사의 말을 듣고 밖으로 나아갔다. 하란국 내부는 아수라장이 되었는데, 주변을 둘러보니 모두 다치거나 기절한 사람이 태반이었다. 가구들은 이곳 저곳 다 날아가있는데, 의외로 사상자는 없는 모양.

 

싸움에서 지면 모든 것을 잃는 이런 거친 생활 속에서 기절과 부상만으로 끝낼 정도의 강자라.

 

지금 성녀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당장 내놓지 않으면, 이곳을 백장미인지 흑장미인지 아무튼 물들인다고 했습니다. 이 자는 마왕군의 첩자가 맞죠? 그렇죠!”

 

, 잠깐만? 백장미? 흑장미?

 

, 안돼! 그만둬!”

 

아무래도 용사마저 그 괴한에게 진 모양이다. 확실히, 지금 이 소란의 주동자가 내가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이 곳이 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더 신기했다. 그건 그렇고 저 멀리서 용사를 깔아 뭉개고 귀엽고 여린 용사의 목에 코를 박아 냄새를 맡는 모습. 저거 영락없이 팔찌와 발찌가 세트로 채워지는 경우잖아?

 

하아~ 좋네요오! 카일만큼은 아니지만 이 아이도 재능이 보여요오! 메이드 복? 차이나 드레스? 계량 한복? ~ 어떤걸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네요오!”

 

, 당장 용사를 놔주지 못해! 그리고 메이드 복이 아니라 발키리 복장이 더 잘 어울린단 말이야!”

 

키르갤 너 용사에게 뭘 할 생각이야?

 

, 발키리이?! 그것도 좋네요오! 나중에 카일에게 입혀야지이~”

 

키르갤의 욕망을 거침없이 받아주지 말란 말이야.

 

, 키르갤!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도와달란 말이야!”

 

용사는 당황하면서도 태클을 걸고 도움을 요청하는 모습이 너무 처량하게 느껴졌다.

 

...

인생 진짜...

시공간을 접어 키르갤 바로 앞으로 이동했다. 나 아니면 이 상황이 끝나지 않을 거 같으니까. 그리고 용사에게 이상한 트라우마를 심어주기도 싫고, 희생자는 카일 하나만으로 충분하다.

 

그 이상 그만두시죠. 루니아 누나.”

 

언니.”

 

하아, 언니. 어쨌든! 그 애는 저렇게 보여도 제 7용사니까, 나중에 마왕하고 싸우려면 이상한 트라우마는 없어야 한다고요.”

 

온화한 얼굴과는 다르게 투쟁심으로 가득한 붉은 눈과 마주했다. 파도를 닮은 긴 웨이브의 금발. 그리고 릴리 기사단을 상징하는 흰색의 갑주...는 어디로 가져다 치웠는지, 왠 사이버틱한 금속제질의 보호구가 눈에 띄었다.

 

이제서야 카린을 체대로 찾아왔네요오. 그래도 아쉬우니까 바니걸 복장은 입혀도 되요오?”

 

안 돼요! 그만 좀 해요! 당장 풀어주라고요!”

 

, 성녀님...”

 

울먹거리는 용사가 귀엽...아니, 불쌍하게 올려다 보았다. 용사여 자신의 실력이 부족하다고 자책하지 말거라. 루니아 누나가 원래 마왕보다 더 강한 인간이라서 그래.

 

흐응...그러면 카린은 저에게 뭘 해주실건가요오? 인질을 해방하는 조건에 있어서 그와 상응한 대가가 아니라며언? 저는 이 아이를 오늘 밤에...우후훗♡

 

요즘 대격변 때문에 자신의 입지가 없어질 거 같아서 그런지, 격변 이전의 멤버들이 하나 같이 모두 성격이 바뀌어서 온 거 같은데 제 기분 탓입니까? 언제부터 그렇게 적극적인 인간이 되었다고 빈하트까지 써가면서 협박을 하는 거에요?”

 

, 방금 오타로 거에여라고 말할 뻔했죠?”

 

웃기고 있네! 말 돌리지 마시죠!”

 

배열상 바로 옆에 가 있을 뿐...아니,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어디다 태클을 걸고 있냐고! 그보다 저 눈은 정말 상응한 대가가 없다면, 오늘 밤 저 용사는 루니아 누나의 마수로 인해 엉망진창으로 여장 당할 기세다. 분명 마왕에게 졌을 때도 ! 죽여라!”라며 마음을 다 잡겠지만, 되려 죽음 보다는 여장 당하는 게 더 싫었는지, 나를 바라보며 울먹거리고 있었다.

 

어쩌다 이런 일이 되었을까?

 

하란국의 병사는 모조리 다 포위하고 있는 상황에, 류하 씨마저 이곳에 모습을 드러낼 참이었다. 그 전에 빨리 끝내야 한다. 이 흉악스러운 백장미 창조자를 어디론가 숨겨야 한단 말이야.

 

오늘 밤 같이 씻죠.”

 

모두가 얼어붙었다. 아니, 내가 시간을 정지한 줄 알았다. 아니, 더 월드나 스타 플래티나가 시간을 정지 한 줄 알았다. 결국 루니아 누나가 바라는 것은 남을 여장시키는 질병이 발병하기 전에, 그걸 가라 앉혀줄 임시방편이 필요하다는 거지. 결국 내가 희생할 수 밖에 없다. 이건 그렇다고 쳐도...

 

, 방금 뭐라고 하셨죠오?”

 

같이 씻...자고요...”

 

루니아 누나

 

언니.”

 

루니아 언...

 

아니! 독백까지 침범하지 말라고요! 3골드 내세요!”

 

그보다, 정말 같이 씻는 건가요오? 카린의 몸을 훔쳐보는 것도 힘들었는데에 직접 터치하고 만지면서 놀 수 있는 건가요오?”

 

제 몸이 어디 지능형 휴대폰입니까! 터치하고 만지면서 놀게! 그런 짓 하기만 해봐요! 시공의 저편으로 날려버릴 테니까!”

 

, 하지만 가, 같이 씻는 거라고요오? 농후한 민달팽이의...”

 

진짜 대격변 이후의 입지가 안 좋을 거 같으니까 성격하나 개조해서 온 거에요? 어린애 앞에서 못할 말이 없어!!!”

 

뭐라고 해야 하지? 서로 등을 밀어주는 것까지는 허락하겠다는 마음으로 입을 열었는데, 루니아 누나가 생각하는 건 전연령으로 볼 수 없는 무언가로 뻗어나가 버렸다. 그보다 왜 하필이면 민달팽이야?

 

카린과 목욕. 흐음...이 타이밍에 루니아 봄버를 날려도 되는 건가요오?”

 

디럭스 파이터 부르기 전에 그만하시죠.”

 

흐음...”

 

뭘 그리 고민하고 있는 거야.

설마 용사를 풀어주는 조건으로 민달팽이인지 나발인지 그것까지 포함시킬 생각이냐? 그것까지 바란다면 어쩔 수 없다. 일단 내 몸부터 지키고 용사를 포기할 수 밖에...

 

그럼 터치하고 만지면서 놀지 않으면 되는 건가요오?”

 

. .”

 

. 그래도 루니아 누나가 정상적인 사고방식을 유지해서 다행...

 

그럼 민달팽이처럼 온 몸을 사용하여 매끈매끈한 오일과 함께...”

 

이긴 개뿔 저럴 줄 알았다.

 

그냥 용사 여장시키시죠. 저도 발키리 복장이 어떤 건지 좀 미리 구경을...아야! 왜 때려요!”

 

옆의 키르갤이 내 머리가 부셔져라 마법 지팡이로 후려쳤다.

 

지금 용사가 이상한 여자에게 빼앗겨서 이리저리 능욕당하게 생겼는데! 네 몸 하나 지키자고 용사를 포기하겠다는 거야!”

 

그럼 댁이 오일과 함께 루니아 누나와 이리저리 얽혀보던가! 민달팽이가 아니라 무슨 뱀마냥 난리를 쳐보던가! 생각만해도 온몸에 소름이 돋아나서 무기로 사용할 것만 같은데, 그런 일에 내가 참여할까 보냐!”

 

나도 용사의 발키리 복장이 보고 싶긴 하지만, 그래도 용사의 정신과 몸은 깨끗하게 유지해야 한단 말이야! 그래야 내가 더럽힐...마왕을 무찌를 수 있지!”

 

마왕 처단에 필요한 게 아니라 그냥 네 욕망을 채우기 위한 수단이잖아!”

 

너희가 마왕을 하세요 그냥. 마신도 이거보고 , 이건 좀...”이러겠다.

 

. 카일? 어떻게 하실 건가요오?”

 

지금 내 뇌속에서 토론이 일어났다. 오랜만에 난장판이 되기 시작한 이 상황에서 시작한 상태에서 용사와 순결. 과연 무엇이 우선시가 되어야 하는가?’에 대해 어마어마한 토론을 하고 있었다. 뇌세포가 미친 듯이 달궈지면서 용사를 희생하는 것이 옳다. 어차피 죽는 것도 아니고 아주 약간의 트라우마만 심는 것이 아닌가? 게다가 의외로 좋은 경험이 될 수 있다.”라는 주장이 있고, “애초에 카린의 모습으로 루니아 누나에게 습격을 당한 사례가 있으니, 한번 더 당한다고 해서 무엇이 두려우냐.”라는 게 있는데.

 

일단 확실한 것은 저 제안을 꺼낸 뇌세포 자체를 뜯어서 태양에 말려버릴 예정이니, 생각은 잠깐 멈추기로 했다.

이 일을 과연 어떻게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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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7화를 쓰고도 올리지 못할 정도로 일이 바빴네요...

이 건은 죄송합니다.

 

616

 

 

 

살려줘어어어어!!!”

 

여자다! 잡아라!”

 

크헤헤헤헤!”

 

이 소리는 마왕군에게 잘못 발견되어 죽기 살기로 뛰어다니는 리제로트의 소리입니다.’라고 해설자가 설명할 법한 동물의 왕국이 그대로 보이기 시작했다. 당연하게도 리제로테에겐 월터라는 집사인형이 있지만, 그 인형은 지금 잡화점 지하 한 구석에 봉인을 해버린 상태고, 지금은 리제로트가 마왕군 3군단에게 쫓기고 있는 시나리오...라기 보단, 저건 실제 상황이니 혹시나 마왕군을 보면 절대로 따라 하면 안 된다.

 

이 상황이 오기까지 3시간 전으로 올라가서, 여전히 참매미마냥 붙어있는 레시아를 떨어뜨리기 위해 온갖 힘과 태클을 걸고 있는 동안, 마왕군에게 공격을 받는 가련한 미소녀가 가장 잘 먹히는 클리셰로 잘 알려져 있지만, 어떻게 이용할 것이냐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그런데 간단하게 생각하면, 실제로 리제로트가 공격을 받으면 될 것이 아닌가? 하는 그 상황까지 나왔고...

 

, 잠깐만요? 카린 씨? 그건 아니죠. 저와 같이 연약하고 여린 미소녀를 그런 살벌한 장소에 보내실 건가요?”

 

네가 스스로 미소녀라고 자칭한 시점부터 그 장소에 보낼 생각이야.”

 

그래도 리제로트는 지금까지 내가 단련을 시켰으니, 칸포리우스까지 거침없이 달릴만한 체력까지 만들어줬다. 대략 42.195km였나? 당연하게도 그 거리를 목숨 걸고 달리면 죽는 건 당연하고, 1km정도는 거침없이 달려야 한다. 인간은 위기의 순간에 초능력을 발휘한다고 하는데, 300m정도 달려도 숨이 차던 리제로트는 현재 800m정도 전속력으로 달렸지만, 살고 싶다는 욕망이 더 강하기 때문에 숨이 차도 속도가 줄지 않았다.

 

카린 씨! 저주할 거야! 언젠가 야밤에 습격해버릴 거야아아아!”

 

오늘은 여관에서 문을 잠그고 자야겠다.

잡화점에서 자면 큰일 나겠어.

 

그래도 걱정이 안 되는가? 2대 잡화점 주인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괜찮아. 나는 언제나 비장의 카드는 남겨놓거든. 다만, 저걸 극복하지 못하면 앞으로도 극복할 수 없어. 이제 근처에 여관을 알아보고 숨어서 지내야겠다. 마왕...아니, 레시아도 이제 슬슬 마왕군을 통솔할 시간이야.”

 

잡화점의 주인은 여관을 알아보기 전에 용사들에게 가야 하지 않는가? 아무튼 합법적으로 그대를 포로로 만드는 것을 기대하고 있겠다.”

 

음흉한 눈초리로 서서히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마왕...

 

레시아다.”

 

사라질 거면 당장 사라져! 독백에 태클 걸지 말고!”

 

끝까지 소리치게 만드는 마왕을 뒤로 한 채, 마지막으로 리제로트가 성기사들에게 구출된 것을 보며, 나도 용사들이 있는 곳으로 나아갔다. 이제 슬슬 월터를 리제로트에게 보내라고 세린에게 연락하는 사이에, 하란국에는 대결계의 보호아래 마왕군의 이목을 집중시키려는 작전을 위해 사전작업을 하는 중이었다.

 

남녀노소 누구나 할 것 없이 자신의 할 일을 최대한 하면서, 희망을 잃지 않고 언젠가 마왕을 타도할 수 있을 것이란 미래를 꿈꿔온다. 그건 약간 환상이 향신료로 첨부되면 그렇게 받아들일 수 있고, 실질적으론 내일 당장 죽을지도 모르는 미래에 별 다른 감정이 없으리라 본다. 지금 당장 오늘이라도 어떤 변수로 인해 초목의 대지가 황폐화가 될 수 있는 현실.

 

그런 현실 속에서 어떻게든 버텨나가는 사람들의 눈물 나는 삶의 이야기만 있을 뿐이다. 당연하게도 대다수는 죽으면 먼지처럼 사라질 이름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사라는 이름이 함께하면 그 고통도 잊고 살아나갈 수 있다는 것인가? 희망이라는 단어는 아무래도 산소호흡기 같은 모양이다.

 

죽어가는 것을 억지로 질질 끌어 살린다는 기분. 이런 기분은 그리 좋지 않았다. 그저 용사 하나만 보고 살아가는 이들밖에 안 된다니.

 

성녀님...저희 딸 아이가 아픕니다.”

 

아니, 그러니까 잡화점 주인이고요 나는...

다만, 잡화점안에 어디선가 계속 공급중인 원인 모를 엘릭서가 계속 인기를 끌고 있었다. 한 노모는 7세정도 되어 보이는 아이를 안고 내 앞에서 구걸했고, 그 뒤로는 아직까지 아픈 아이들과 다친 사람들이 서있었다.

 

시야를 가득 매울 정도로 가득 모인 사람들은 각자 엘릭서 하나씩 받아갔고, 오늘 하루 소비된 엘릭서만 300개 이상이 되었다. 그래도 공급이 더 많이 들어오기도 하고, 300개의 엘릭서 양도 많기 때문에 엘릭서 하나를 나눠 쓴다면 완전치유까지는 힘들더라도, 3일 뒤에는 4명이 정상적으로 움직이는 기적을 볼 수 있다.

 

이렇게 하루 1200명씩 아픈 사람들을 건강하게 만드는 비약은 성녀가 아니라 연금술사라고 칭해야 하는 거 아냐?”

 

카린님은 그래도 많은 사람들을 도와주고 있지 않습니까? 엘릭서 뿐만이 아니라 불구가 된 병사의 신체도 어느 사이에 팔다리가 돌아오는 기적을 보여주셨고요.”

 

옆에 있는 기사는 호들갑을 떨면서 내 옆을 굳건하게 지키고 있었다.

 

그건 기적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마법이에요. 시간 마법으로 그 사람의 신체를 팔, 다리가 붙어있는 시간대로 되돌린 거에요. 어떻게 보면 그 만큼 회춘할 수 있다는 거지만, 시공간 마법은 의외로 다른 형태의 부작용으로 찾아오기 때문에...”

 

엘릭서를 모두 나눠준 이후에 내 앞에 보이는 여성을 보고 말을 멈췄다. 연한 초콜릿을 녹여낸 듯한 피부. 그리고 깊은 흑색의 눈동자를 지닌 소녀. 언젠가 한번 봤을 법한 검은 고딕 롤리타 형태의 복장.

 

마리아...?”

 

? 카린님? 무슨 소리를 하시는 겁니까?”

 

잠깐 기사가 내 앞을 가로막자마자 시야에 방해된다는 듯이 내 몸은 자동으로 일어서서, 다시 정면을 쳐다보았지만 그 앞에는 엘릭서를 나눠서 바르고 마시는 사람들만 있을 뿐. 마치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있을 뿐이었다. 이건 피곤해서 헛것을 보게 되는 것일까?

 

아니.

내 목에는 용족혼인의 문양이 있지만, 검은 달의 여왕을 의미하는 문양까지 존재했다. 검은 달의 여왕은 여성의 정신을 지배하여 현현하는 초월적인 존재.

 

시간이 없네. 상상하지도 못한 변수가 생겨나다니.”

 

변수요?”

 

아니, 이건 이쪽의 이야기야. 지금의 마왕군과는 다른 위협이지.”

 

아직까지 칸포리우스 제국의 지원이 오려면 시간이 더 걸리지만, 검은 달의 여왕이 출현했다는 것은 내가 아는 마리아인지, 아니면 대격변 이후의 검은 달의 여왕이 완전히 초기화가 되었는지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나는 먼저 들어가서 쉬고 있을게. 무슨 일이 있으면 숙소로 찾아와.”

 

. 알겠습니다. 카린님.”

 

기사를 뒤로하고 숙소에 찾아와 고풍스러운 침대에 누웠다. 부드러운 실크의 감촉이 맞닿는 피부의 긴장을 부드럽게 풀어주고 있을 때. 천천히 옆으로 돌려 눈을 떠보니 아니나 다를까...

 

! 카일이여! 첩이 보이는가! 아니, 이때는 카린인가? 어째서 그런 모습을 하고 있는 거지? 혹시 그 모습이 귀엽다는 걸 알고 그 모습으로 살겠다는 것인가?”

 

활짝 웃으며 나에게 껴안긴 마리아가 정신 없이 입을 열었다. 그 와중에 내가 태클 걸어야 하는 구간엔 태클을 걸도록 하자.

 

마리아는 어떻게 시나하고 비슷한 반응을 보일 수 있어요?”

 

오오! 첩을 보자마자 그 반응! 첩이 알고 있는 카일이로구나!”

 

다행히 내가 알던 마리아가 맞지만, 아무래도 이쪽 세계에 필요한 몸은 찾지 못한 모양이다.

 

익숙한 파장이 느껴져서 다급하게 찾아왔는데, 모습이 카린이어서 금방 찾을 수 있었다. 카린의 외형은 첩이 반할만큼의 미소녀이니 말이다. 그렇지만 당분간 첩은 카린의 정신 안에서 안정을 찾고, 첩이 움직일 수 있는 소녀의 몸을 찾기 전까진 신세를 져야겠구나.”

 

다른 희생자들마냥 정신자체를 말소시키지 않는 것에 대해 다행이라고 생각하자.

 

검은 달의 여왕은 세계가 멸망하기 전에 자신의 신도와 같이 이동한다면서요? 그렇다는 건 마리아가 부활할 때...”

 

. 당연히 잡화점의 모든 멤버가 이쪽에 나타나는 거다. 잡화점의 멤버들은 신도가 아니지만, 이미 우리는 반지 하나로 이어진 운명이 아니더냐? ! 이것이 절대반지라는 것인가?”

 

아니, 여기는 사우론이나 그런 거 없으니까, 반지원정대라고 말하지도 마세요.”

 

잠깐만? 그럼 레시아가 두 명이 되어버리잖아. 루시피나도 그렇고...

 

잡화점의 모든 멤버라면 루나까지 이곳에 오겠네요?”

 

그렇다! 루나링도 이곳에 찾아오는 거다. 그런데 이곳의 분위기는 꽤나 흉흉하군? 하란국이 사방팔방으로 전쟁대비 중인 거 같은데, 이곳은 무슨 일이 있는 것인가?”

 

말하자면 좀 길어요.”

 

나는 이곳의 상황을 간략하게 이야기 했다. 마리아는 프리트론이 망한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만, 하란국까지 이렇게 밀릴 줄은 꿈에도 몰랐다는 표정이었다. 눈이 동그랗게 떠진 어린아이마냥...아니, 외형은 어린아이여도 나이가 수천, 수억을 넘나드는 세월을 살아온 초월체다.

 

그러니까 어린아이마냥...’이라는 단어가 성립될 수 있는 거지.

 

치근덕거리면서 내 품 안에 계속해서 몸을 비비고 있는 모습을 보면, 아무래도 어린애가 맞긴 한 거 같지만, 지금은 그게 문제가 아니라...

 

그럼 루니아 누나도 마리아와 같이 왔겠네요?”

 

루니아 말인가?”

 

루니아 누나의 행방을 묻자 마리아는 되려 놀란 모양으로 나에게 말했다.

 

아니, 루니아는 첩과 같이 움직이지 않았다.”

 

마리아와 같이 움직이지 않았다니요? 잡화점 멤버가 다 모인다는 소리를 했잖아요?”

 

그야. 당연히 잡화점 멤버가 모두 모이는 것도 맞고, 루니아 또한 첩과 같이 움직이자고 제안한 건 맞다. 다만, 루니아는 다른 생각이 있었는지 자신이 직접 카일을 찾겠다며 먼저 다른 곳으로 행방불명 되어버렸노라.”

 

행방불명이 되었다고?

대체 무슨 수단을...

 

. 설마...

 

시공섬으로 차원을 이동하고 있는 거에요? 루니아 누나가?”

 

맞노라. 루니아는 먼저 시공간을 잘라 넘나들면서 카일을 찾고 있노라. 검사가 무식하게 시공간을 잘라서 이동하면, 그 앞이 허수공간일지 아무것도 없는 보이드일지 그 누구도 모르는데, 안전하게 첩과 같이 움직이자고 해도 다음 백장미 신작은 누구보다 빨리 카일을 찾아서 찍어야 해요오.”라는 말과 함께 사라져버렸으니 말이다.”

 

그 놈의 백장미 때문에 차원을 찢고 돌아다니는 거냐!

 

빨리 찾았으면 좋겠네요. 프리트론 왕국에는 릴리 기사단은 없고 루니아라는 이름을 가진 기사도 없었는데, 아무래도 이브센티아에 살아있거나 죽었거나, 어딘가에 있거나 셋 중 하나겠네요.”

 

그 루니아는 대격변 이후의 루니아인가?”

 

, 그렇죠.”

 

하지만 이상하군?”

 

이상하다니? 또 무슨 기괴한 이야기를 꺼내려고?

 

이 곳에는 루니아가 없다. 정확하게 말하면 대격변 이후의 루니아가 없다는 말이다.”

 

루니아 누나가 없다?

하긴, 검은 달의 여왕은 여성의 정신에만 주로 기생하니 루니아 누나를 찾을 수 있나 보다.

 

대격변 이후의 루니아 누나가 없다면, 잠깐만? 그럼 지금 대격변 이전의 루니아 누나는 이곳에 있어요?”

 

확실히 그런 것 같다. 첩이 생각하기론 카일...아니, 지금은 카린인가?”

 

굳이 수정하지 않아도 되잖아요! 어차피 독자들은 제가 본래 성별이 다 남자인 것도 알고 있을 텐데?”

 

, 그런 건가!”

 

왜 놀래! 이 빌어먹을 흑색 비슷한 생명체야!”

 

내가 여성체로 있는 게 그렇게도 자연스러운 거냐!

그보다 독자들은 다 알고 있다고!

...아닌가?

 

아무튼 카일이여! 오랜만에 만났으니 흡!!을 한번 해보자꾸나!”

 

대체 그건 뭔데요?”

 

대체 그 놈의 흡!!이 뭐길래?

마리아가 내 몸을 꽉 끌어안은 채 내 가슴에 얼굴을 묻..., 그렇군 이제 알겠네.

 

뭐 하는 짓이야!!!!”

 

으갸아아악! 첩의 머리가 박살 난다! , 그만둬라! 그마아아안!”

 

철저하게 아이언 클로로 응징한 이후, 마리아는 내 정신에 녹아 들며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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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 늦은 이유야 다 아시다시피

중소기업 태그에 따른 야근때문이죠.

아침 8시 30분까지 출근하고 새벽 3시에 퇴근하는게 일상이 될 거 같아요.

전 이만 과로사로 먼저 갑니다.(?????????????????????)

 

615

 

 

 

대체 무슨 소리를 하시는 겁니까. 마스터.”

 

감정이 1도 들어가지 않은 사무적인 어조에서 파악할 수 없지만, 내용적인 면에서는 얼마나 당황했는지 알 수 있었다. 게다가 시나는 내가 류하 씨에게 그런 대답을 내자마자, 내 팔을 붙잡고 거칠게 다른 곳으로 끌고 갔다.

 

아니, 올빼미 형태였으니 정확하게는 내 어깨를 붙잡고 낑낑거리며 날아갔다. 그렇게 구석에서 모두의 시선이 박혀있었지만 계속해서 입을 열었다.

 

제가 이곳의 여신을 설득하다니요? 마스터의 계획은 분명 저를 이용해서 하란국에서 칸포리우스로 가도록 협박 아닌 협박을 넣는 거 아니었습니까?”

 

. 그렇기는 한데. 언제나 예정은 변경되는 거야. 그러니까 내가 해야 할 일은 어쨌든 마왕군을 몰아내는 상황을 만드는 거잖아?”

 

마왕과의 약속은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마스터?”

 

, 사실 그것도 있긴 한데. 그건 하란국을 점령할 때 도와달라는 경우지, 계속해서 교착상태로 가는 동안 그 약속은 유효한 거야. 그리고 그 이전에 마왕이 작전을 읽고 밀고 쳐들어가서 하란국을 점령해도 유효야. 그리고 이 결계를 가장 빨리 제거하는 방법이 뭐라고 생각해?”

 

그건...”

 

나는 올빼미의 부리를 검지손가락으로 쓰다듬으며 입을 열었다.

 

당연히 자신들이 강하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거지. 칸포리우스 제국의 지원과 각종 여신들의 지원, 그리고 용사까지 이곳에 와서 방어전을 펼친다고 생각하면, 이런 불필요한 결계를 유지할 필요가 있을까? 게다가, 자연의 법칙상 현상을 유지하려면 그에 따른 대가가 필요해. 이런 완벽한 대결계를 광범위로 설치했는데, 무한동력이 아닌 이상 소비에 대한 대가가 꼭 필요하다는 거지.”

 

그리고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것과 얼마나 크나큰 대가인가에 대한 고찰.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결정적인 하나가 존재한다.

 

그건 하란국 여제의 마나라고 봅니다. 전에 있던 세계의 하란국 여제는 상당한 마나를 소유하고 있습니다. 물론 사상에 간섭하는 사기적인 냥캣의 계략으로 당하긴 했지만, 그때 진심으로 싸웠다면 적어도 냥캣의 몸에 상처는 낼 수 있겠지요.”

 

하지만 지금 류하 씨는 모든 마나를 결계에 집중하고 있어, 그러니 전에 있던 세계보다 호위병력이 많은 것이고...그런데 초량과 해연은 보이지가 않네. 이쪽 세계에서는 없는 사람인가? 아니면 전사를 한 건가?”

 

마왕군과의 치열한 전투로 전사했을 가능성을 뒀지만, 사실상 있으나 없으나 계획에는 변수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끼워 맞출 수 있는 경우의 수가 더 많은 법. 어쨌든 시나에게 이곳의 여신들을 설득하도록 다독여주자.

 

그럼 마스터. 이 일은 제가 보기엔 상당한 실패확률이 예상됩니다. 성공했을 경우의 보상을 요구해도 괜찮겠습니까?”

 

이상한 거 빼고 말해.”

 

!”

 

너 방금 혀 찬 거야?”

 

올빼미가 그런 것도 가능하다고? 아니, 지금 핀 포인트는 그걸 태클 거는 게 아니지.

 

아닙니다. 혀를 잠시 깨물었을 뿐입니다.”

 

올빼미가 어떻게 혀를 깨물어!”

 

혀를 깨물 수 있기에 가능합니다.”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

 

핀트가 어긋났다. 아무튼 작전을 설명했으니 다시 구석에서 벗어나 연회장으로 발걸음을 나아갔다. 여전히 류하 씨는 내 오른쪽 어깨에 앉아있는 올빼미를 보며 무표정한 얼굴을 바꾸지 않았다.

 

여가 보기에는 평범한 올빼미...는 아닌 듯 하군. 자신의 주인을 어깨로 들어서 저 멀리 날아가는 경우는 없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그 올빼미가 아우리스 여신을 설득할 수 있는 신적인 존재란 말인가?”

 

. 맞아요. 이름은 람파시나. 다른 차원에서 온 빛의 여신이죠.”

 

그런가. 빛의 여신의 보살핌을 받았으니 그대가 성녀라고 불렸던 것이로군.”

 

아니, 빛의 여신이 없어도 나를 성녀로 멋대로 부르는 생각 없는 인간들 덕에, 그게 하필이면 고정이 되어버려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 경우다. 결국 나는 다시 잡화점의 주인이라고 어필을 하지만, 그들의 눈에도 결국 나는 성녀로 박혀버린 모양이다.

 

여신이라는 말과 성녀라는 말이 저 주변에서도 오고 가기 시작했다.

 

여신을 설득시켜서 칸포리우스 제국과 그 외에 지원을 얻는다. 그리고 마왕군을 격퇴할 최종방어선을 이쪽으로 한다면...”

 

하란국은 마왕군 방어 및 마왕 토벌에 대한 1등공신이 되겠죠. 아 정확하게는 2등정도 되겠네요. 1등은 용사가 다 가져갈 테니까요. 사실상 위상이나 체면, 명성 같은 것에 대해 신경 쓸 분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어쨌든 이곳을 최종방어선이 된다면 자연스럽게 다 따라오는 것들입니다.”

 

그만큼 황폐화가 되어 칸포리우스 제국이나 다른 곳에 침략을 곧바로 받을 확률이 높지만, 그건 여신에게 부탁해서 보호해달라고 하면 그만이다.

 

물론, 마왕군을 막는다는 전제하에 말이지.

 

그렇다면 그대의 말대로 하겠다.”

 

내 말대로 하겠다는 의미는 잘못되면 나더러 책임지라는 소리가 된다. 물론 내가 멋대로 한 행위에 대해 책임을 지겠다만, 솔직히 나를 믿어서는 안 되는 입장이 아니던가? 한 제국을 움직일 수 있는 지도자가, 배신할 확률이 매우 높은 성녀의 말을 듣고 그렇겠다고 하다니?

 

정말 제 말대로 하려고요? 보통 용사의 말이 더..., 저런 꼬마에게 계획을 물어봤자, 다짜고짜 마왕을 무찌른다라는 말밖에 안 하겠구나. 그보다, 저기 보이는 마법사에게...라고 해도 지금 용사에게 집중하고 있으니 안 되는구나...그러면 현...령은 어차피 침묵을 고수하는 스타일이니, 그대로 물 흐르듯이 다른 사람의 의견에 따라갈 것이고, 저 기사...는 대체 어디서 대포를 들고 온 거야! 들어가지마!”

 

인간대포로 전직하기 직전인 기사에게 소리지르며 뛰어갔다. 이 파티에 부족한 점이 뭐냐고 물어보면 정상인이라고 대답해야 하는가? 만약에 진짜로 누군가가 물어보면 저렇게 답해보자.

 

하아~ 머리야.”

 

두통이 다시 엄습해왔다.

이제 독도 듣지 않는 몸이 되었지만, 아무래도 스트레스는 해소를 해야 할 필요성이 크게 느껴졌다. 성녀라는 타이틀이든 말든 태클을 걸어야 하는 이런 삶에서, 시나가 어깨에서 사라진 것을 보아 천계에 찾아간 모양이다. 아우리스 여신은 과연 어떤 여신일까? 귀여운 남자에게는 아무래도 흥미가 있긴 하겠지만, 귀여운 여자에게는 흥미가 없을 거라 판단했다.

 

그러니까 용사에게 치근덕거리지 나에게 치근덕거릴 확률이 매우 낮다는 소리가 된다. , 그건 아무런 관계가 없으니 없는 걸로 치고, 이번 연회에는 류하 씨와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

 

그래서 잡화점의 주인은 하란국을 최종방어선으로 삼아서 마왕군이 그곳을 정복하게 만드는 것이다?”

 

당연하게도 힘을 좀 써줘야겠어. 어차피 다른 마계공작들은 각 구역에서 나타날 게릴라 전에 대비한다는 것 때문에 움직이지도 않잖아? 진짜로 움직이는 군단은 1군단과 지원역할을 맡고 있는 7군단. 그리고 별동대로 움직이는 11군단이니까. 이곳에 화력을 집중하게 된다면 하란국을 비롯한 연합군들을 이길 수 있지.”

 

마왕은...

 

슬슬 레시아로 불러도 되지 않는가? 언제까지 짐을 마왕이라고 부를 생각인가?”

 

아니, 남의 독백에 뜬금없이 간섭하지 말라고!”

 

마치 뱀이 똬리를 틀 듯 가녀린 팔이 내 목을 휘감기 시작했다. 새하얀 팔이 기어올라 내 뺨에 닿았을 때 매혹적으로 웃고 있는 마왕...

 

그러니까 레시아로...”

 

아 진짜! 사사건건 내 독백에 침범하는 이유가 뭐야!”

 

조만간 내 독백이 어디 공유기에 걸쳐서 흘러가고 있는지에 대해 고찰을 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연회가 끝나고 잡화점에 돌아와 마왕...

 

레시아.”

 

아오! 내가 더러워서라도 그렇게 부른다! 아무튼 레시아와 이야기를 나눴을 때 상당히 마음에 들은 눈치였다. 위기에 몰렸을 때 인간은 매우 강하다. 하지만 반대로 강력한 힘을 가진 인간은 빈틈이 보이기 쉽다. 그것은 사소한 것에 경계를 하는가와 하지 않는 가에 대한 차이인데, 그 강대한 힘을 가진 인간을 두 번 다시 저항하지 못하도록 더욱 더 강력한 힘으로 짓누르면 그만이다.

 

애초에 하란국을 점령하는데 도와달라는 이유도, 하란국의 대결계를 뚫지 못한 것에 있으니...나는 해줄 것 다 해줬어. 칸포리우스의 지원병력 때문이라도 대결계를 해제하고 하란국의 수도로 들어갈 거야. 당연히 그 주변에는 일부 마왕군으로 포위하는 척을 하다가 뚫려야 앞뒤가 잘 맞겠지만...그보다 언제까지 그런 흡족한 얼굴로 보고 있을 거야? 안 떨어져?”

 

참나무에 붙은 매미마냥 떨어지지 않는 마...아니, 레시아 때문에 세린과 더불어 리제로트의 눈치도 봐야만 했다.

 

아 맞다. 리제로트. 너에게 중대한 임무를 내려줄게.”

 

게슴츠레한 눈으로 보다가 내 말에 눈동자가 갑자기 살아난 리제로트.

 

? 카린 씨가요? 어떤 임무죠? 혹시 밤 자리에 같이 들어가달라는 건가요!? 이제서야 저의 실력을 발휘할 때가...”

 

도대체 어떤 임무가 밤 자리에 같이 들어가는 거냐? 조만간 네 두개골도 열어서 오른쪽으로 비틀어줄까?”

 

!하고 혀를 차는 소리가 내 귀에 거슬렸지만, 넓은 호수와 같은 마음으로 넘어가기로 하자.

 

그래서 어떤 일이에요?”

 

네가 하란국 여제에게 최면을 좀 걸어야 할 거 같아. 상당히 강인한 정신력의 소유자인 건 맞지만, 여체화라고 하지만 내 정신방어를 뚫는 그 초능력이라면, 간단하게 성공할 수 있을 거야.”

 

설마 밥만 축내던 리제로트가 이런 상황에서 쓰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사실상 리제로트의 초능력은 눈을 통해 상대에게 최면을 걸어, 나중에는 인형으로 만들어버리는 무시무시한 힘을 가지고 있는데. 그건 인형이 되라는 암시 때문에 벌어진 일이지, 다른 방향으로 암시를 건다면 예상하지 못한 파괴력을 보인다.

 

최면이라면 제 인형으로 만들라는 소리인가요?”

 

인형이 아니라, 판단력 저하만 해줘도 크게 도움이 되거든. , 너의 인형으로 만들어도 상관없어. 기왕 이렇게 된 거 레시아와 같이 가서 마왕군 간부 역할이나 좀 해봐.”

 

간부요?”

 

리제로트의 동공이 심하게 흔들렸다.

 

잡화점의 주인. 이 아이를 데리고 하란국을 망하게 하는 건 손쉬운 일이 아니니라.”

 

하긴, 마왕성의 간부로 일하게 되면 오히려 대결계에 들어가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하지. 생각을 잘못했네.”

 

잠깐 생각을 바꿔보면 지금 이 상황에서 마왕군에게 습격 받은 민간인 역할도 할 수 없다. 1군단에 포위된 지 그러면 하란국에 들어갈 계기가 확실히 필요하다는 건데.

 

간부도 안 되면 리제로트를 무슨 수로 들여보내지. 좀 더 확실한 방법이 있을 텐데? 1군단이 하도 정밀하게 포위를 하는 바람에 민간인 A역할을 시킬 수가 없잖아! 그보다 내 목에 있는 팔이나 좀 풀어! 이러다 목 디스크 걸리면 책임 질 거냐!”

 

그건 짐의 치밀한 작전계획에 대해 칭찬하는 것인가? 그리고 짐은 잡화점 주인 정도는 책임지고 반려로 맞이할 수 있노라.”

 

아냐! 그 치밀한 작전계획 때문에 리제로트를 하란국에 침투시킬 방법이 없잖아! 아니, 한가지는 있지. 리제로트가 칸포리우스에 가서 수녀로 지원 오는 수 밖에 없네. 그리고 은근슬쩍 반려로 맞이 한다는 소리 하지 마!”

 

지원군으로 오는 방법이야 있지만, 언제까지나 시나가 아우리스를 잘 설득하여 칸포리우스를 움직였을 때의 이야기다. 확신을 가지고 계획을 진행할 수 없지만, 어쨌든 진득하게 붙은 마왕...

 

레시아다.”

 

아 진짜 독백 그만 읽어!!!”

 

레시아를 떨어뜨릴 방법부터 생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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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마왕도 조ㄱ...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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