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6

 

 

루시피나가 불러서 찾아왔다라는 말을 두고 여러 가지 상황을 생각해보자. 내가 과연 루시피나를 무서워하기 때문에 제 발로 찾아온 걸까? 만약 나에게 볼일이 있었다면, 내가 가는 쪽이 아니라 루시피나가 오는 쪽을 선택했을 것이다. 당연하게도 키르갤이 안 오면 유성로 만들어버리겠데.”라는 말만 아니었어도...

 

하늘에서 떨어지는 유성우중에 하나가 되고 싶지 않으니, 7용사와 더불어 시나까지 한꺼번에 우루루 몰려오자. 격변 이전에는 화사한 웃음으로 맞이했겠지만, 지금은 격변 이후의 루시피나다.

 

-콰지지직!

 

. 동굴의 벽은 그리 강하지 않은 모양인...

 

어이. 어째서 이 사람들이 내 소중한 레어에 발을 들여놓고 있는 거야? 키르갤?”

 

그야 내 동료니까. 아 저 성녀님은 빼고.”

 

잡화점 주인이라고 몇 번을 말해.”

 

잡화점 주인이 여자란 이유로 성녀취급을 받는 건 좀 그렇다. 아니, 차라리 날 성녀라고 부를 거면 잡화점을 성당으로 만들어 놓고 그런 소리를 하던가? 다른 이들에게 오해의 여지를 살만한 발언을 하지 않는 것이야 말로 평화로 가는 지름길이다.

 

저 올빼미는 또 뭐야? 오늘은 거물을 너무 많이 만나는데?”

 

저는 람파시나. 마스터의 사역마입니다.”

 

오오! 말했어!”

 

하긴 오랫동안 시나와 루시피나도 같이 보고 살아왔으니, 올빼미 상태에서 이야기를 하는 건 그리 위화감이 없지만, 7그룹의 용사들에겐 꽤 강력한 자극이 되었나 보다. 저 꼬마 용사가 탄성을 지르는 것도 그렇고, 내 바로 옆에 있던 거한을 무표정하게 쏜 주제에, 올빼미가 말한다고 하여 눈썹이 살짝 움직인 남자이며...

 

뭐야? 이 올빼미 인형인가? 혹시 복화술사야?”

 

날 복화술사로 보고 눈을 반짝이는 키르갤을 마지막으로 하나부터 열까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나저나 그 기사는 다른 곳에 간 건가? 아니 애초에 찾질 말자. 사람이 조금이라도 줄어든 상태가 마음이 편하다.

 

골치거리가 많이 있다는 생각은 내 앞에 붉은 머리를 한 여성도 마찬가지. 고운 이마가 다 찌그러진 상태로 살기를 끌어 모았다. 근데 왜 눈은 나를 바라만 보고 있는 걸까나?

 

우리 잠깐 밖에서 좀 이야기 할까?”

 

루시피나의 가녀린 팔에 비해 내 어깨는 타 들어가는 감각만이 날뛰고 있었다. 내 어깨를 안마해주는 건 확실하게 아닐 테고, 밖으로 나가지 않으면 내 팔을 잡아 뜯겠다는 의지가 가득했다. 그만둬! 내 팔의 라이프는 이미 제로야!

 

결국 질질 끌려 나와 레어 밖에 있는 들판에서...

 

푸하아악!”

 

어처구니 없게도 땅바닥에 굴렀다. 흙과 풀의 일부가 어느 정도 내 입에 들어간 듯한데, 씹지 않고 퉤퉤! 하며 뱉어냈다.

 

대체 너 정체가 뭐야!”

 

, 잡화점 주인인데요...”

 

아무래도 루시피나가 이렇게 화내는 이유 중에 큰 이유가 있다면, 람파시나의 존재 때문일까? 다른 차원의 여신은 이곳에선 영향력을 크게 줄 수 없지만, 아직까지 내 사역마로 취급되고 잡화점 멤버라는 인식이 있다면, 이곳에서도 거대한 영향력을 준다는 의미다. 다른 차원에 있다고 해서 힘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다.

 

그런 거물이 자신의 레어에 쳐들어왔으니...

 

잡화점 주인이 이런 일을 할 리가 없잖아! 아무리 봐도 그 올빼미는 초월급의 개체인데! 너 정말 성녀라도 되는 거야? 마왕이라면 싸울 수 있어도 저런 걸 이길 리가 없잖아!”

 

저런 걸이라면 람파시나를 말하는 건가? 아니, 그건 상관 없다. 지금 루시피나의 말을 듣고 기괴한 전투력의 차이를 실감하고 있으니까. 이전 잡화점에 있을 땐 레시아와 람파시나는 대등할 정도로 힘이 강하다면, 지금의 마왕인 레프리시아는 람파시나를 이길 수 없을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다. 물론 인간의 입장에서는 마왕이라는 카테고리가 너무 강하지만, 지금은 람파시나의 등장으로, 밸런스가 한쪽으로 치우쳐버렸으니까.

 

그건 그렇고...”

 

흙먼지를 터는 나를 향해 손가락질을 하며 입을 열기를...

 

본 모습으로 돌아가봐.”

 

그건 왜요?”

 

그야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하기 때문이지! 내가 반할 정도로 잘 생겼는지, 아니면 뭔가 사고가 있어서 강제로 결혼하게 된 건지! 그 이유를 알아봐야겠어!”

 

그런걸 알아 봤자 뭐에 쓴다고?

 

강제로 결혼을 당한 건 접니다만..., 믿기지 않겠다고 생각은 해도 어차피 이해를 구하지는 않아요.”

 

이해를 구할 필요도 없다.

그러니 루시피나의 요구를 들어줄 필요도 없다.

 

이해를 구하지 않는다니?”

 

당연히, 지금의 세계는 격변 이전과는 전혀 다른 세계니까요. 제가 꼭 본 모습으로 돌아가서 확인시킬 이유도 없습니다. 게다가 지금 본 모습으로 변하면 힘의 팽창을 막을 수 없어요. 그림이나 사진이 있었다면 좋겠지만...”

 

왜 하필 남아있는 게 백장미뿐이냐?

그 전에 너무 잘 찍어놔서 전부 다 태워버리고 싶잖아.

이건 보여주지 않는 걸로 하자.

 

그런데 그 말을 하려고 온 것이 아닐 텐데요?”

 

바람이 바뀐다. 굳이 따로 부른 이유라고 한다면 아마 지금 루시피나가 해야 할 말이 진짜겠지. 생각과 감정을 정리한 듯한 루시피나는 또박또박 말하기 시작했다.

 

네 힘은 봉인할 수 없어. 이미 너무 늦었던 거야.”

 

이미 너무 늦어 버렸다.

별로 감흥이 없다.

 

이미 늦었다면 어쩔 수 없네요. 그래도 도와주려고 하는 걸 보면 그리 나쁜 사람은 아니네요? 아니, 드래곤이었지.”

 

난 그리 좋은 드래곤이 아냐. 이건 전부 잠깐의 흥미였을 뿐이지. 그런데, 그 목에 있는 용족혼인의 문양은 정말 나와 결혼 한 거야?”

 

용족혼인의 문양을 지니고 별 탈 없이 일정기간이 지나면, 부부를 선언하는 거잖아요? 그러니 저와 격변 이전의 루시피나는 별 탈 없이 행복하게 지냈었죠. , 만약 그 기억이 보고 싶다면 제가 어느 정도 힘을 써드릴 수 있긴 한데.”

 

?”

 

루시피나가 듣던 중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는 듯이 뚱한 표정을 지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보여줄 방법이 없었지만, 어차피 내 힘을 막을 수 없다고 하니, 무한정으로 늘어나는 그 힘을 잠깐이나마 이용해서, 용족혼인의 문양을 매개체로 내 기억을 보여줄 생각이다.

 

내 품속에서 나온 수정구는 당연하게도 평범한 수정구가 아니다.

 

이건 안리아스의 수정구에요. 원본이 온전하다면 무수한 복제품을 만들고, 이 수정구로 어느 차원이든 어떤 곳이든 통신이 가능하게 만들죠. 당연히 녹화기능도 있고 아직까지 알아내지 못한 기능이 많이 있지만, 이걸 통해 제 기억도 녹화해서 투영하는 게 가능하답니다. 그러니 루시피나도 이쪽에 손을 올려보세요.”

 

, 손을 올리라고? 설마 함정은 아니겠지?”

 

이걸로 함정을 만든다고 해서 제가 무슨 이익이라도 있습니까? 어차피 함정인 걸 알면 제가 이런 말 하기도 전에 초광속으로 냅다 집어 던졌을 텐데요?”

 

, 그건 맞지만...”

 

수줍게 얼굴을 붉히면서 그 사실을 인정하지마. 정말 날 초광속으로 내던질 참이냐? 이 행성 궤도 밖으로 내던지려고 했다고? 아니다, 잡다한 생각은 그만둬. 지금은 행복한 시간대를 보여줘야지 지금 당장 이런 바보 같은 태클을 생각하면, 초광속이 아니라 그 이상을 넘나드는 속도로 슈팅스타를 부르며 갈지도 몰라.

 

그러면 시작할게요.”

 

수정구에 의식을 집중하자 서서히 떠오르는 기억. 그 안에서는...

 

-흐헤헤…! 신랑! 이것도 한 번 입어봐!”

 

-그렇다. 주인. 모든 입어봐야 옷을 알 수 있는 법이다.

 

잠깐만? 왠지 불길한 분위기가...

 

-싫어! 그만둬! 남자에게 그딴 옷 입히지 말란 말이야! 어디서 그런 전대물에서 나올 법한 쫄쫄이를 입히냐고요! 그보다 그 외형을 보아하니 여성용 맞죠! 그렇죠!

 

루니아 누나에 의해 제압당한 내가 처절하게 목소리를 외치며 몸부림치고 있었다. 그 주변에는 사심이 가득한 여성들이 나를 포위하고, 각자 자신들이 내가 입길 원하는 여성용 의복을 하나씩 양손에 들고, 어마어마한 가학적인 미소와 더불어 음흉한 눈길이 내 온 몸을 구석구석 훑고 지나갔다.

 

-마스터. 역시 안목이 뛰어나시군요. 이제 어느 정도 여장에 익숙해졌나 봅니다.

 

-익숙해지긴 개뿔! 이거 끝나면 너희들 모두 아이언 클로야! 아이언 클로에 당하기 싫으면 제발 이것 좀 풀어달란 말이야!

 

-카일? 옛말에 이런 말이 있답니다아. “혼날 거 같으면 일단 저지르자아!”

 

-옛말에 그딴 말 없거든요! 그만둬! 입히지마! 아아아아아악!

 

-Wasted

 

그런 흑백 엔딩으로 끝내지마!”

 

이번엔 내가 수정구를 초광속의 세계로 날려보냈다. 용족혼인의 문양을 매개로 삼으면 루시피나와 내가 알콩달콩하며 꽁냥꽁냥거리는 그런 아름다운 풍경이 보일 줄 알았는데, 지금 그 빌어먹을 백장미인지 뭔지 하는 것 때문에, 수도 없이 털려버린 그런 트라우마를 꺼내게 될 줄이야.

 

푸하하핫! 아하하하하핫! , 바보같아! 아하하하! 배아파아아악!”

 

얼마나 웃겼는지 웃음인지 고통의 비명인지 알 수 없는 소리만, 평원에서 계속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만 웃어요.”

 

, 남자가 여러 여자에게 여장을 푸히히힛!”

 

웃지 말라고 소리칠 수도 없고, 웃음소리를 계속 듣자니 내 인내심이 끊어질 거 같고, 이걸 대체 어찌하면 좋을까? 그냥 세계를 다시 갈아 엎어버리고 목격자를 없애버려?

 

제길...”

 

들리지 않게 내뱉은 단어는 루시피나의 웃음소리에 처참히 부셔졌다. 앞으로 이 치욕을 어떻게 견디며 살아야 할지, 아무리 초월체가 되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한들, 부끄러운 과거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을 수 있지. 아마 창조신도 생명을 만들고 자기들끼리 개판을 만들어가는 모습을 보며 . 내가 진짜 이걸 왜 만들었지?”라고 후회할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어디 구약에서는 홍수로 물갈이 한번 하고, 다시 생명을 만들어내지 않았는가?

 

미안, 좀 많이 웃었네. 그래도 네가 적군이 아니라 아군이라는 사실을 알았으니, 그것만으로도 만족해. , 맞아. 이전에 있던 친구라는 녀석은 나를 실컷 이용해먹으려고 했던 나쁜 녀석이었지만, 그래도 키르갤의 말대로...아니, 키르갤의 말을 떠나서 너는 좋은 사람이네.”

 

그 어처구니 없는 상황을 어떻게 아군이라고 판명할 수 있는지가 신기할 따름이지만, 그러면 저는 이제 초광속으로 날아가거나 그러지 않아도 되겠네요?”

 

그건 아니지.”

 

아군으로 식별해도 초광속으로 날아가는 건 똑같나?

 

마스터.”

 

하얀 올빼미가 날아와 내 어깨에 앉았다. 무언가 쫓기듯 다급하게 왔나 했더니, 저 멀리서 제 7그룹의 용사일행이 뛰어오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말하는 올빼미가 너무 신기한 나머지 과한 관심 끝에, 부담감을 이기지 못하고 이곳까지 오게 되었단 건가?

 

성녀님! 그 올빼미 여신 맞죠! 그렇죠!”

 

그런 눈동자로 나에게 물어본들, 알려주지도 않을 거야.”

 

역시 여신이죠!”

 

이 어린 용사를 어찌하면 좋을까...기억을 지워버리고 시공의 폭풍으로 보내버릴까?

아니, 그러면 저 질투의 오러를 뿜어내고 있는 키르갤이 날 죽이려고 할 거야.

 

하아...맞아. 여신이야. , 이 세계에 영향력을 주는 여신이 아니고, 다른 차원에서 나를 위해 찾아온 여신이라고 해야겠지.”

 

내 오른손이 자연스럽게 올빼미의 머리를 쓰다듬자, 내 손에 기대어 안식을 취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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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일이 너무 바빴어요.


매일 같이 새벽2시에 퇴근해도 아침 8시에 일어나야 하는데

몸이 힘들어서 매번 회사에 지각했죠.


다행히 이런 거에는 자유로운 회사라 일을 아직까지 다니고 있습니다.


그나마 틈나면 쓰는 글이지만...

일에 집중하고 난 뒤에 이야기를 쓰려면 그에 따른 머리의 회전력이 필요해서.


사실상 내용의 진도는 나아가지 않고 있네요...

빨리 쉬고 싶다;

 

602

 

 

 

어째서인지 잡화점 근처에서 야영을 하게 된 용사그룹은 아직까지 탐지마법에 대한 기초가 부족하다고 보고 있다. 마왕이 근처에서 나에게 치근덕거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찾아오지 않으니까. 그러나 이걸 반대로 생각해보면 마왕은 탐지마법을 모두 회피하고 이곳에 침입한 셈이다. 물론 여심을 사로잡기보단 사람 하나 잡아버릴 듯한 강력한 벽 치기를 선보였고, 어떻게든 자신의 편으로 유혹하고자 저런 미남으로 바꾸면서까지 찾아왔으니까.

 

. 내 입장에선 별 의미도 없는 노릇이지만, 리제로트의 경우에는 매우 달랐다.

 

저런 백마탄 왕자님이 나만의 카린 씨를 빼앗아 가려고 하다니!”

 

자신의 초능력을 봉인하는 렌즈를 빼먹은 듯한 짙은 보라 빛의 불꽃이, 아름답게 피어 올랐다. 두 손을 굳게 쥐면서 결심한 리제로트가 나에게 성큼성큼 다가와 입을 열었다.

 

이대로라면 그 마왕에게 빼앗겨버리고 말아요! 그러니 그 전에 제가 먹...보호해 드리도록 하겠어요!”

 

방금 무엇을 말하려다가 고쳤는가에 대해 깊이 파고들지 않았지만, 두 번 다시 저 발언을 한다면 그대로 땅속에 집어 넣어버려야지.

 

네가 날 보호하기엔 그 체력부터 단련해야 하지 않을까? 아니 보호받기 이전에 내가 널 보호해야 할 입장인데? 월터라도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지만, 이 세상에는 월터와는 차원이 다른 강자들이 사방에 널렸으니까. 그리고 방금 전에 마주하지 못하고 피했으면서 어떻게 날 지키려고 한 거야?”

 

, 그거야. 조금이라도 더 쳐다보면 죽거나 심하면 침을 흘릴 정도로 위험한 상태였기 때문이죠...그 남자 대체 뭔가요? 어떻게 그 남자를 보면서도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 할 수 있는 거에요?”

 

정신방어가 강해지면 리제로트도 마왕과 맞서는 게 가능할까? 정신방어는 일시적으로 올릴 수 있지만, 마왕의 카리스마를 견뎌야 한다면, 일시적으로 올리는 건 턱 없이 부족하다. 마법에 영향을 받지 않는 반지가 있긴 하지만, 그 반지를 낀다면 회복마법이나 이로운 마법도 받지 않으니까...

 

아니, 리제로트는 마법과는 별반 다른 초능력이니까 별로 상관 없지 않나?

뜬금없지만 3층으로 올라갈 일이 생겼다. 결심을 한 몸은 거침없이 일어나 3층으로 올라가기 위해 계단을 향해 움직였다. 세린도 내 모습을 보고 따라오고, 리제로트도 내 행동에 당황한 기색을 보이지만 따라왔다.

 

2층을 지나 3층에 올라올 무렵. 여전히 3층 중앙을 차지하고 있는 사키엘의 문을 중심으로, 주변에 가지런히 장식 되어있는 물품들 한 가운데에, 검은색 작은 반지 상자가 존재했다. 그 상자 안에 요염하게 빛을 내는 반지 하나. 리제로트와 세린에게 들으라는 식으로 입을 열었다.

 

자신에게 영향을 주는 모든 마법을 무시하는 반지. 솔직히 적임자가 없다기보단 이게 세상에 발견되면 꽤나 귀찮아지는 일이 많아질 거라 생각해서 봉인을 했지만, 지금 리제로트가 마법에 영향을 전혀 관계없는 초능력자이기에, 이걸 착용해도 별 무리가 없으리라고 봐. 다만, 이걸 착용하면 마나와는 근절된 삶을 살게 될 거고...어차피 예전부터 그렇게 살아온 리제로트니까.”

 

나는 반지를 빼내 리제로트 손가락에 걸어줬다. 어디 손가락이든 상관은 없지만 검지에 걸어주며 다시 입을 열었다.

 

마법의 영향을 받지 않는 다는 의미는 검사의 길 최상급이 내뿜는 검강<Aura Blade>에도 맨몸으로 거뜬하게 견딜 수 있지. 검강이 감싸고 있는 검에 직격으로 맞으면 죽겠지만, 마나, 마기, 신성력에 관련된 모든 에너지에 대해 방어가 된다는 소리야.”

 

리제로트는 자신의 손가락을 보며 투덜댔다.

 

기왕이면 약지에 걸어서 혼인신고를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데...”

 

당장 반지 빼기 전에 입 다물어.”

 

고맙다고 말하지 못할 망정 약지가 아니라고 투덜대는 건 뭐야?

 

농담이에요, 카린 씨. 고마운 게 당연하잖아요! 절 아끼고 있는 증거니까요!”

 

그러면서 나를 껴안았다. 작은 몸으로 내 몸에 잔뜩 기대며 행복해 하는 얼굴을 짓고 있는 모습을 보니, 이런 일을 하는 것도 그리 쓸모 없진 않았다. 어쨌든 잡화점에서 같이 살아가는 멤버니까, 서로 아끼고 지켜줘야 하는 건 당연하지.

 

어른이 다 되었네. 저런 꼬마애도 쉽게 다루고?”

 

세린.”

 

리제로트가 듣는 앞에서도 세린의 존재를 거론했다. 당연하게도 리제로트에게 있어선 인지할 수도 없고 확인할 수도 없는 존재이기에 혼잣말처럼 느껴지겠지만, 별로 신경 쓰지 않고 내 할말만 했다.

 

우선 내 쪽에는 그렇게 오래 붙어있지 않아도 괜찮으니까, 리제로트를 최우선으로 보호하도록 해. 지금은 내가 잡화점 주인이긴 해도, 차기에 주인이 될 사람을 꼽으라고 한다면, 아무래도 지금 남아있는 리제로트가 될 확률이 매우 높으니까.”

 

다음 후계자로 저 아이를 지목한 거라면, 이번 일 이후로 이곳과 영영 이별할 생각이야? 네가 남자로 되어 반신의 규격을 뛰어넘고 정말로 신이 된다면...”

 

그때는 잡화점과 이별이지 뭐. 그래도 후계자는 찾았잖아?”

 

어라? 저기? 누구하고 이야기 하시길래 제가 이 잡화점의 후계자라고 하는 거죠?”

 

뜬금없는 나의 발언에 혼란이 가중되어버린 리제로트의 머릿속이, 곧이어 심하게 떨리는 눈과 당황스러움의 미소까지 단계를 거쳐서 오염되고 있었다.

 

후계자를 찾는 게 문제가 아니잖아!”

 

세린은 버럭 소리를 쳤지만, 그 소리는 리제로트 귀에 닿지 않는다. 오직 나만이 세린의 분노를 마주할 뿐이며, 나는 꾸준히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아니. 나는 이 일을 하기엔 너무 멀리 와버렸어. 네가 날 이런 모습으로 구속하려고 한들, 힘이 점점 더 강해지는 게 느껴지거든. 그게 언제가 될지 몰라도 지금 네가 하는 행동은 임시방편에 지나지 않아.”

 

아니! 그러니까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거냐고요! 카린 씨!”

 

이번엔 리제로트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울렸다. 금발의 머리카락은 매번 봐도 신기한데, 빛에 반사되면 태양처럼 눈부셨다. 어처구니 없는 소리 퍼레이드에 견디지 못하고 이리저리 발을 동동 구를 때마다, 약간 웨이브 진 머리카락은 미약하게 흔들렸고, 화로 인한 상기된 볼은 하얀 피부로 인해 명백히 드러났다.

 

그야 다음 잡화점의 주인은 너더러 하라는 거야. 애석하게도 잡화점의 규칙에는 인간이 운영할 수 있고, 주인과 같이 할 동반자가 있어야 하지. 너는 초능력자라서 마법이나 연금술에는 무지하지만, 그건 어차피 엘티노스의 자서전만으로도 가능...”

 

그만! 그만하란 말이야!”

 

이번에는 리제로트의 절규가 터져 나왔다.

 

어째서...갑자기...그런 말을 하는 거에요...”

 

말 그대로. 내 힘이 점점 강해지고 있기 때문이지. 처음에는 힘을 가졌을 때 좋다고 생각하지만, 3개의 에너지원을 합치고 나서부터 내 힘은 쇠약해지거나 줄어들기는커녕, 오히려 그 힘은 더욱 더 성장해가고 있어. 일전에 창조신은 세상을 만들 때 에너지를 3개로 나눴지. 그 환경에 걸맞게 피조물들이 창조되었거든. 마나, 마기, 신성력은 근본으로 보았을 때, 상당히 강한 에너지 원이야. 그런데 그걸 합쳤다고 생각을 해봐.”

 

본래 인간의 규격을 한참 전에 뛰어넘고 반신의 상태가 되었지만, 아직까지 인간적인 사고를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그 이상 넘어가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내 사고는 천천히 인간의 틀을 깨기 시작했고, 주변을 둘러보면 알고 싶지 않아도 환각처럼 기원이나 과거, 앞으로의 미래가 보이기 시작했다. 예를 들면 내가 리제로트를 보았을 때, 내 다음을 이어 잡화점을 정리하고 있는 모습이라던가, 잡화점은 오랫동안 남아있어도 멀쩡하게 살아있다거나. 아니면 돌을 보았는데 그 돌이 알고 봤더니 머나먼 우주에서 날아온 소행성인데, 그 소행성 안에는 걃스와 욟스가 살았...아니, 이 정도면 근본이 아니라 정말 마약을 해서 환각을 보는 거 같잖아.

 

걃스와 욟스는 사실이라고!

아무튼 사실이라니까!

 

사실 이렇게 여체화를 한 것도 잡화점에서 억지로 나를 구속하기 위함이거든. 그런데 그 구속을 뚫고 나는 인간과 반신을 넘어 그 무언가로 변하려고 해. 신이 될지 재앙이 될지 아무도 모르지만, 뭐 그건 나중에 보도록 하고 슬슬 체력단련의 시간이니까 옷이나 갈아입어. 그런 복잡한 원피스로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니까.”

 

-손님 나가신다!

 

잡화점 문이 열리면서...

아니, 손님을 알리는 종은 대체 어디 가고 걸걸하고 우렁찬 노장의 외침이 들리지?

 

잡화점 주인 있나?”

 

용사에겐 한 없이 부드럽지만 남들에겐 신경이 살짝 곤두서게 만드는 날이 서있는 음색. 7그룹의 여마법사 키르갤 혼자 아직 영업도 하지 않은 잡화점에 나타났다. 아직 3층에 있으니 내 행적이 그리 쉽게 보이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분명 문을 잠갔을 텐데 어떻게 들어온 거지?

 

천천히 내려오면서 그 모습을 확인했을 땐, 로브를 서서히 내리고 날카로운 눈매로 나를 지그시 바라볼 뿐이다.

 

이야기 좀 나눌 수 있을까?”

 

무슨 이야기?”

 

내 정체를 단숨에 알았던 것은 둘째치고, 네 목에 있는 그 용족혼인의 문양은 누구의 것에 대한 이야기지.”

 

무의식적으로 왼손이 내 목을 가렸다. 하긴 이 옷은 목까지 다 감싸주지 못하니, 들켰다고 한들 그리 이상할 것은 없다. 아직 이곳의 세상은 레드 드래곤의 위치가 어디인지 잘 모르겠지만, 어차피 이걸 말한다고 한들 머나먼 미래에 크게 달라질 것은 없지.

 

이 문양은 루시피나와 혼인했다는 증거. 드라고니스에 루시피나가 잘 있는진 잘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루시피나를 찾고 있다거나 만나려는 건 아니야.”

 

루시피나...드래곤 로드의 딸인가? 그보다 언제 너와 혼인을 한 거야?”

 

그야. 이곳 평행세계에 오기 전이지. 그래도 루시피나는 나름 현모양처였어. 잡화점 멤버가 날 가지고 장난칠 때마다, 루시피나는 나를 아껴준 유일한 멤버였어. 만약 루시피나까지 장난치고 다녔다면, 아무래도 과도한 사랑을 받아 죽어버렸겠지.”

 

레드 드래곤은 인간을 싫어하지만 사랑에 빠지게 되는 그 순간부턴 그 한 사람만 바라보고 산다. 용족혼인의 문양이 많은 역할을 하지만, 기본적으로 혼인한 사람들끼리는 서로 잘 살게 만들어주는 다리역할을 한다.

 

그래서 저번에 루시피나가...”

 

? 루시피나가 뭐라고 말했어?”

 

아니. 아무것도 아냐. 그런 재미있는 일은 너에게 알려주기엔 너무 이르네.”

 

의미심장한 말을 남긴 키르갤은 다음 질문을 했다.

 

그러면 이곳에 온 이유는 정확하게 뭐야? 용사에게 협조하기 싫은 이유는 그 마왕과 애증관계에 있기 때문인가?”

 

마왕과 애증관계는 이전에 있던 평행차원이면 충분해. 그리고 너는 내 성별이 원래 남자라는 것도 알잖아. 그런 미남이 껴안아주든 말든 그런 거엔 별 감흥이 없어.”

 

지금은 귀여운 여자애잖아? 그래도 내 용사님은 빼앗지 말아줘?”

 

안 뺏어. 그리고 귀엽다고 하지마.”

 

매번 이런 태클도 하기 힘들다. 그렇다고 그냥 넘어가기엔 마음이 찝찝하지. 그런데 마왕이 일방적으로 나에게 꽁냥거리는 것도 봤으면, 맨 처음부터 공격을 하거나 추궁을 했을 텐데. 키르갤은 나의 존재에 대해 놀랍지도 않고, 이해를 했다는 듯이 눈을 감고 고개를 끄덕였다.

 

나에게 확인하고 싶은 게 뭐야?”

 

그야 당연히. 지금 마왕보다 더 위험한 재앙에 대해서지. 마왕의 침공은 우리가 나서면 어떻게든 저지하거나 되돌아가게 만들 수 있어. 토벌까지 했으면 좋겠지만 마왕 레프리시아는 쉽게 토벌을 당할 마왕이 아니지. 하지만, 마왕과 인간이 싸우는 와중에 그 둘의 생존을 위협하는 존재가 나타난다면, 결국 일시적으로 동맹을 하지 않을까?”

 

이 녀석 설마?

 

검은 달의 여왕을 부를 생각이야?”

 

아무리 생각해도 이 계획밖에 없다. 그 전에 키르갤은 뭘 원하는 거지?

 

흐음? 더 위험한 존재에 대해 추측이 아니라, 정확하게 집어낼 줄은 몰랐는데?”

 

그런 미친 짓은 그만두는 게 좋아.”

 

검은 달의 여왕이 진심으로 세상 하나 없애겠다고 마음을 먹으면, 강림하자마자 아무것도 못하고 차원 하나가 없어진다.

 

그러면 어떻게 할래? 네가 그 존재를 대신 해주겠어?”

 

나더러...최종보스가 되라는 소리야?”

 

저 여자...대체 무슨 생각으로 나에게 저런 소리를 하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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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주말 반납하고 일해야 할듯하네요.

주말에 글쓰기 힘들듯한...

 

601

 

 

 

용사도 이곳에 찾아오고 마왕도 이곳에 찾아오니, 이 정도면 내 잡화점은 이론상 먼지가 되어 허공에 뿌려지거나, 어마어마한 손님으로 북적거리게 되는 극과 극으로 이루어져있다. 그러나, 아무리 봐도 내 잡화점에 온 손님들은 정상적인 경우가 거의 없는데, 이번에는 제 7그룹으로 참여해달라는 프리트론 왕국의 기사나, 아무리 봐도 10대 초반의 어린애가 용사이며, 마왕은 프리트론을 밟고 차근차근 진격하고 있다. 프리트론 왕국을 점령하고 동쪽으로 가게 되면 칸포리우스 제국과 하란국이 존재하는데, 그 곳에서 시간을 얼마나 버느냐에 따라, 마왕군의 침공을 막을 수 있는지에 대해 알 수 있다.

 

그러거나 말거나 제 7그룹은 잡화점에 와서 한다는 일은, 어린 용사에게 잡화 물품에 대해 설명해주고 부족한 물품을 사는 중이다. , 체크포인트 같은 역할이라면 잡화점이 당연하지만...

 

! 키르겔!”

 

~ 용사니임~!”

 

저 안에서 애정행각 비스무리한 건 그만 뒀으면 좋겠다. 아무리 봐와도 키르겔이라는 저 여성은 용사를 심상치 않은 눈으로 보고 있는 듯 한데, 조만간 은팔찌를 채우고 아공간에 던져놔도 할 말이 없을 법한, 범죄를 꾸미고 있는 것이 아닐까?

 

아니지...

그런걸 내가 신경 써서 어쩌겠다고?

우선 이 상황을 어떻게든 빠져 나와 두 번 다시는 귀찮은 일에 휩싸이지 않도록 해야지.

 

아까부터 내 앞에 있는 기사는 뭔가 당황스럽다는 듯이 가만히 멀뚱멀뚱 지켜보고 있었다. 관심법을 사용하지는 못해도 이 상황으로 보면 꽤 어처구니 없는 상황을 마주한 거 같은데.

 

왜요? 뭐라도 묻었나요?”

 

아뇨. 성녀님께서 지금 안고 계시는 고양이는 뭡니까? 키우시는 겁니까?”

 

고양이?”

 

잠깐 고개를 밑으로 내려다보니 검은 고양이 하나가 내 무릎 위로, 기분 좋게 앉아있다가 나와 눈을 마주치듯 ?”하고 올려다 봤다. 무심결에 쓰다듬고 있는 손을 멈추고는...

 

아이 깜짝이야! 뭐야 이거!”

 

냐아앙!”

 

뭐야! 언제 내 무릎 위에 앉아서 저렇게 기분 좋다는 듯이 앉아 있었던 거야! 그나저나 검은 고양이라니? 내가 알고 있는 검은 고양이라면 분명...

 

[설마 용사들과 접촉했을 줄이야. 역시 짐의 예상대로군.]

 

[마왕!?]

 

그 깜찍한 모습으로 내 무릎 위에 올라와서 동태를 이미 다 살펴보고 있었나. 게다가 키르겔마저 알아차리지 못하다니?

 

[그보다 그대의 말대로 귀찮은 일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 하는 모습이로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잡화점에 용사 일행이 도착했다면, 그대가 귀찮아하지 않도록 지금 당장 쓸어버리는 것쯤은 간단하다.]

 

[그럼 지금 해치우던가...]

 

옛날부터 전승된 이야기로 용사와 마왕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면, 변수가 생기기 전에 빠르게 처리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이다. 다만, 나에게 다시 다가와 앞발을 핥는 고양이의 대답은 다음과 같았으니...

 

[아니, 좋은 시나리오가 생각났다. 그대가 용사의 대열에 참전하여 짐이 있는 마왕성까지 끌고 온 다음에 끝에 타락을 하여 배신을 하는 것이 어떻겠는가?]

 

[그런 흔한 레퍼토리를 내가 왜 해줘야 하는데?]

 

그 놈의 타락과 배신으로는 이야기를 진행할 수 없는 거냐?

 

[성녀가 악의 힘에 굴복해 타락하는 것이야 말로 흔하지만 좋은 기믹으로...]

 

[성녀 아니라고!!!]

 

머리에 분노라는 점화장치가 터지자마자, 거칠게 고양이 머리를 한 손으로 붙잡고 그대로 끌어올렸다. 고양이의 두개골을 부셔버리겠다는 심정으로 오랜만에 아이언 클로가 나와버렸고, 그 덕에 작은 4개의 다리가 허우적거리면서 고양이의 날카로운 비명이 허공을 갈랐다.

 

몇 번을 말하지만 나는 잡화점 상인일 뿐이란 말이야!!!”

 

, 저기! , 고정하세요! 무슨 일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성녀님은...!”

 

순간 내 눈빛을 본 기사의 헬멧이 덜그럭거릴 정도로 큰 소리가 났다. 살의를 담았기에 평범한 사람이라면 질겁을 했겠지만...

 

, 그래도 그 고양이는 죄가 없습니다. 물론 신성한 성녀님의 무릎을 침범하는 행위를 했지만...”

 

방금 전에도 말했지만 저는 성녀 아니에요. 그리고 고양이 하나가 그저 앉아있을 뿐이었으니까, 그렇게까지 신경 쓰시지 않으셔도 되요.”

 

성녀가 아니고 잡화점 상인이라고 몇 번을 말해도 어차피 듣지도 않고...

 

[, 이것이 성녀의 힘인가...가녀린 체구에 비해 역시 신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 자로다. 하마터면 방심할 뻔했노라.]

 

한눈 판 사이에 마법으로 순간이동 했는지, 내 손에서 벗어나 저 멀리서 노려보고 있는 고양이 한 마리. 사실 마왕이 고양이가 될 필요가 없지만, 마왕이 고양이가 되어 인간계를 살펴보고 전략을 세운다는 그 자체가 이상하지 않을까?

 

이제 좀 돌아가주세요. 잡화점 청소도 겨우 했고, 지금 잡화점 개방시간이 아니니까요.”

 

이제 다 좋으니까 모두 사라져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너무 앞선 나머지, 입이 자동으로 위와 같은 말을 했다.

 

, 그러면 저희도 이 근처에서 야영을 준비하겠습니다.”

 

왜 잡화점에서 야영을 준비하는 건데요...”

 

잡화점 근처에서 야영을 준비한다는 의미는 이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면 그대로 찾아오겠단 소리인가? 아니 어떤 모험가가 잡화점 근처에서 야영을 즐기는 걸까? 내가 모르는 사이에 메타가 바뀐 건가? 잡화점 야영 메타는 어디서 나온 거지? 최근에는 간절하게 기도하면 우주가 나서서 도와준다는 속설은 들었지만, 잡화점 근처에 야영을 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포션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도 아닌데?

 

성녀님! 무슨 일이 있으면 절 불러주세요!”

 

도저히 저 꼬마 용사에게 뭔가 부탁하기에는 너무 빈틈이 많았다. 그렇다고 한들 자랑스럽게 웃어 보이고 있으니, 한숨을 내쉬며 알았다고 말했다. 눈동자가 밝게 빛나면서 한 사람의 몫을 했다는 듯한 기쁜 발걸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잡화점 밖으로 빠르게 빠져 나온 용사 일행. 그리고 그 모습을 끊임없이 바라보며 타이밍을 읽고 있는 검은 고양이 한 마리가 내 옆을 지키고 있을 뿐이었다.

 

저 사람들이 마왕을 타도할 제 7용사라고 하는데?.”

 

확실히 저 꼬마아이에겐 어마어마한 잠재력이 보이긴 한다. 허나 짐은 마왕이니라. 저런 아이 하나 이기지 못하고 어찌 마계를 이끌 것인가? 그러니 침공을 하는 동안에도 제 7그룹을 절대 얕보지 않을 것을 이곳에서 선언하노라.”

 

시끄럽고 그만 내 발목에서 그만 떨어지시지?”

 

안 된다. 그대는 짐의 것이니라.”

 

저 고양이 목에 방울 걸어서 진도8.0으로 흔들어버릴까?

 

그나저나 용사도 갔으니 짐도 이런 불편한 모습을 그만둬야겠군.”

 

순식간에 마기를 끌어 모아 변한 모습은 편하게 보이는 검은 면바지와 맞췄는지 검은 와이셔츠가 눈에 보였다. 옅은 회색으로 줄무늬를 넣어 심플하면서도, 깔끔한 이미지를 띄고 있으면서도, 손목에 있는 금빛의 장신구가 여럿...잠깐만?

 

어째서 남성체로 변한 거냐!”

 

말 그대로 여성체의 마왕은 카리스마가 있으면서도 주변을 현혹시킨다면, 남성체의 마왕은 모든 것을 압도하고 굴복시키는 무언가를 뿜어낸다. 형용할 수 없는 입장이라면 네크로노미콘을 보는 듯한 기분. 사실 네크로노미콘이 어떻게 생겨먹은 건지 모르겠지만, 분위기와는 관계없이 어울리지 않은 짧은 자색의 머리를 긁적이며 마왕은 입을 열었다.

 

그야 당연히 그대는 여성체이고 여성체와 같이 한 쌍을 이루는 것이야 말로 남성체라는 것을 배웠기 때문이니라. 아직 짐은 마왕이지만 다른 방면에서 지식이 계속 들어와도, 끊임없는 무한한 지식은 아직까지 짐의 고뇌를 뿌리치지 못하게 하는...”

 

그 지식이 어느 정도 맞긴 하지만 대체 누구에게 들었는데?”

 

색욕의 공작에게 들었다.”

 

아무래도 색욕의 공작 특유의 성교육을 마왕에게 가르친 거 같지만, 마왕은 그와 다르게 깊이 있고 심도 있는 고뇌와 고찰로 인해 전혀 효과가 없는 모양이다. 리제로트는 문 밖으로 나오다가 마왕을 보고는 다시 문을 닫아 들어갔으니...

 

아무래도 리제로트의 입장에선 지금의 마왕을 이겨내기엔 무리인가...”

 

마왕에게는 특유의 오러가 뿜어져 나온다. 그 중 13대 마왕인 레프리시아만의 오러는 상대방을 순식간에 죽이거나 심한 경우 침을 흘리게 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강도가 전혀 반대인 거 같지만, 리제로트가 마왕을 보자마자 바로 문을 닫아 피한 것은 현명한 대처라고 볼 수 있다.

 

마왕은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 천천히 다가왔고, 강압적으로 밀어붙이는 분위기는 나도 모르게 발걸음을 뒤로 움직였다. 그러나 벽에 다다르고 나서 갈 길이 없어진 것을 확인한 마왕은, 내 얼굴 바로 옆에 있는 벽을 쾅!하고 치면서 박력을 내세...

 

-파아아아앙!

 

우려고 했으나 어마어마한 파괴력으로 잡화점 벽 일부가 날아가면서, 남자의 박력보단 이 무식한 파괴력은 어디서 나오는 가에 대해 고찰하게 생길 판이다.

 

. 그대는 강압적으로 밀어붙이는 상대에게 약하다고 생각했는데.”

 

아니, 이건 강압적으로 밀어붙이는 게 아니라 거의 사형선고잖아.”

 

로맨틱하지 않은 건가?”

 

로맨틱이 어디 죽어버렸냐!”

 

누가 가르쳤는지 모르겠지만 그 어떤 것도 살인기술로 승화하는 마왕을 볼 수 있었다.

 

지금 당장 옆에서 뭐가 폭발하는 마당에 장르가 로맨스가 아닌 스릴러로 변해야 하는 게 맞지 않을까?”

 

그러면 짐이 마이클 마이어스가 되어 할로윈마다 나타나면 되는 건가?”

 

그 빌어먹을 정보는 어디서 나왔길래, 아무런 거부감 없이 술술 튀어나오는 거야!”

 

이 세상.

이 시간대는 아무리 봐도 잘못 되어있었다. 결국 내가 존재하기 때문에 원래 없어야 할 지식이 이곳에 오염되어있는 것일까? 아니, 모든 차원의 융합으로 인한 붕괴도 막았고, 그런 일을 꾸미는 사회자도 사라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가끔씩 이런 오염된 정보가 나타나고 있으니, 결국 이렇게 마왕과 한가하게 만담이나 하는 것도 누군가에 의해 쓰여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마왕.”

 

나는 진지하게 이 세상의 비밀 같은 것을 풀어보려고 했다. 그리고 마왕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뭔가? 불을 꺼야 그나마 부끄럽지 않은 것인가?”

 

뭘 끄긴 꺼! 이 미친 마왕아! 댁 정신부터 꺼줄까!”

 

아무리 봐도 예전에 레시아와 별반 다를 바가 없는 마왕이잖아? 이곳까지 와서 태클의 사명을 이끌고, 최선을 다해 오늘도 태클을 거는 충실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니, 나란 인간은 도대체 언제쯤 평화를 맞이할까?

 

이번엔 짐이 그대를 쓰다듬고 싶군. 아까 고양이었을 때 잠깐 느꼈지만, 쓰다듬을 받는 쪽은 기분이 좋아도 쓰다듬는 쪽은 기분이 어떠한 가에 대해 알고 싶다.”

 

어째서 댁 같은 마왕이 마왕이 되어 마왕 같은 일을 마왕처럼 하다가 나를 만난 이후로 마왕 같지 않은 일을 마왕이 하는 건지부터 알고 싶은데요. 어떤 마왕이 쓰다듬는 쪽과 쓰다듬을 받는 쪽에 대해 고민을 하냐고!!!”

 

끊임없는 폭주와 태클로 인해 심신이 모두 예민해진 상태였다. 그저 잡화점 안에 쓸쓸히 있는 흔들의자에 앉아 평화롭게 창 밖을 바라보고 싶었지만, 내 오른 팔을 붙잡은 따듯한 감각이 내 몸을 확 끌었다. 마왕의 온화한 미소를 본 적이 있는가? 아마 지금이 그런 미소겠지. 저게 연기일지도 모르겠지만 내 뒷머리와 허리를 살짝 끌어 안은 마왕은 다음과 같이 입을 열었다.

 

그대의 중심으로 마나가 소용돌이를 치고 있는 현상은 모든 생물들에게도 이로운 영향을 주지. 결혼을 하기 싫다면 짐의 마나 창고라도 되는 것이 어떠한가?”

 

나는 누군가의 마나 창고가 되어준 적은 있어도 너는 아니거든?”

 

. 그리 서두르지는 않지. 천천히 공들인다면 그대도 결국 짐에게 타락하게 되어있을 테니 말이다.”

 

아무래도 이 마왕은 단단히 착각하고 있나 본데...

내 성별은 본래 남자라고, 그런 말을 들어봤자 전부 쓸모 없는 이야기란 말이다.

그나저나, 나는 언제쯤 본래의 성별을 되찾고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을까?

 

그래도 한달 안에는 어떻게 해결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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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은 진행하면서 더 바빠질 예정이라네요.

...망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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