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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전개 중에 생각해보자면 마왕의 간부를 무찌르고 나서 그 간부가 사실 나는 마왕 간부 중 최약체다! 나를 쓰러뜨려도 이하생략-” 같은 분위기로 나오는 적이 많을 터. 그러나, 이곳 마왕의 간부라고 할 수 있는 마계 12공작 중 탐욕의 공작은 나와 상성이 맞지 않아 빠르게 재기불능 상태가 되어버린 경우다. 절대적으로 약하거나 강한 존재는 없고, 조금이라도 약해지면 강자에게 삼켜지는 것이 마계의 생활. 마왕 레프리시아의 통치가 내가 바라는 방향과 정 반대로 나가거나, 조금이라도 내 방향과 맞지 않으면 결국 약육강식이란 말은 마계 언제 어디서나 있다. 심지어 가까운 자신의 가족이나 친구가 될 수도 있다.

 

저기, 성녀님? 마지막에는 광고가 살며시 들어간 거 같은데요?”

 

착한 용사는 신경 끄도록. 그보다 너도 이제 내 독백을 읽고 태클을 거는 거야?”

 

왜 나는 행복할 수가 없지?

내 주변사람들은 독백을 읽는 괴물들만 존재하는 걸까?

 

하란국의 대다수가 점령을 당해도 한 곳만큼은 강한 보호막이 막고 있다. 절대적인 불가침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면, 그건 정확한 단어선정이 아니며, 가장 확실한 단어선정이라면 자신이 허락한 자들만 들어올 수 있는 장소다.

 

먼저 들어갔던 침묵의 궁수..., 내가 지어낸 이명이긴 하지만, 아무튼 그 남자를 따라가 도착한 곳에 인자해 보이는 남자신하가 우리를 보며 입을 열었다.

 

하란의 궁궐에 당도한 것을 환영하오 낯선이여. 나는...”

 

, 잠깐만요.”

 

멈춰.

훈민정음이라도 만들 생각이냐?

 

마왕을 과학승리로 이길법한 대사의 일부를 들은 나는, 신하인지 황제인지 분간할 것도 없이 말을 멈춰 세웠다.

 

말씀해 보시오.”

 

조만간 그쪽이 집현전이라도 만들기 전에 묻는 이야기이긴 하지만, 이곳 궁궐이 이렇게 넓었나요?”

 

내가 다른 것에 대해 태클을 걸기 전에 스스로 화제를 전환했다.

 

전쟁이라도 난다면 수도에 있는 민간인들은 보호해야 하오. 그러니 궁궐의 크기와 맞먹는 보호막이 존재하는 것이오.”

 

차라리 하란국을 가지 못했다면 원래 이런 크기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보호막은 하란국의 궁궐뿐만이 아니라 시장이라고 생각했던 장소까지 다 덮고 있었다. 무분별하게 보호막으로 버티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도 생활을 하고 힘을 길러서 방어할 능력까지 갖추고 있던 것.

 

그보다 용사님들은 탐욕의 공작을 타개하고 이곳에 당도했다고 들었네만?”

 

그거야 전부 성ㄴ...”

 

전부 용사가 잘 해냈으니 다행이죠.”

 

용사가 나에 대해 이야기를 하기 전에 말을 가로막아 용사의 공으로 돌렸다. 내 능력의 일부를 아는 것만으로도 계획이 비틀어지기 때문에, “? 하지만 성녀님?”이라고 용사가 말하기 전에, 용사의 머리를 깊게 눌러 쓰다듬기 시작했다.

 

키르갤의 시선이 따갑긴 하지만 입을 막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고, 계획이라면 이곳에 있는 모든 민간인과 여제까지 모두 탈출시킨 뒤, 마왕이 이곳을 점령하기만 하면 된다. 그렇게 약속을 잡고 움직이는 거니까 밑밥을 깔기 시작해야겠지. 그러기 위해선 여제와 만나야만 했다.

 

그렇군요. 이거 참으로 경사가 아닐 수 없소이다. 저희 폐하께서 작게나마 연회를 준비하셨으니 부디 참석을 바라오.”

 

연회! !”

 

키르갤이 반응을 했다.

 

그리고 남자!”

 

아무래도 다른 목적까지 끼어있었나 보다.

분명 용사바라기였을 텐데.

 

연회! !”

 

저기 있던 기사도 반응을 했다. 마지막에는 여자라고 외칠 생각인가?

 

그리고 중장비!”

 

아무래도 자신의 장비를 새로 맞출 생각에 들떠...

 

그거 연회와 아무런 상관 없잖아!!!”

 

결국 기사에게 버럭! 하고 소리를 쳐버렸다. 이상한 곳에 틀어진 기사와 남자를 왜 만나고 싶어하는지 이유를 알 수 없는 여 마법사. 대체, 이 녀석은 언제쯤 말을 할지 알 수 없는 궁수. 그리고 내 무릎 위에서 자고 있는 어린 용사까지 5명이서 커다란 방 하나에 모여 앉아있었다.

 

저기. 키르갤. 용사에게 무릎배게는 네가 해야 하지 않아?”

 

아무래도 용사님은 지금은성녀를 잘 따르는 모양이야. 게다가 하나부터 열까지 너에게 눈치를 줘봤자 소용없다는 것도 알았고.”

 

...그래?”

 

그러니까, 이 치욕은 계속해서 모아놨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한방을...”

 

! 음침한 목소리로 해도 다 들리거든!”

 

결국 마지막에는 저 녀석 때문에 내가 팔려나가는 건가?

차라리 네가 흑막을 해라.

 

슬슬 잡화점으로 돌아가고 싶다. 너무 지쳤어.”

 

너무 지쳤다는 건 체력적으로 고갈된 것이 아니라 심신이 지쳐버렸다. 이 시간만 되면 오지도 않는 손님을 기다리면서 책이나 읽고 있을 터인데, 오랜만에 여행을 떠나서 그런지 연회고 뭐고 빨리 자고 싶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여행은 사람을 지치게 만드네.”

 

여행은 사람을 성장하게 만드는 게 아닙니까?”

 

기사가 내 한마디에 위와 같이 반문했다. 여행이라는 건, 식견도 넓어지고 사람을 성장하게 만드는 요소가 맞지만 리스크도 매우 크다. 이상한 산적이나 그런 녀석들과 시비가 붙을 수도 있고, 취미가 안 좋은 귀족에게 괜히 잡혀 사는 경우도 있다. 아니면 죽거나...

 

굳이 성장이라고 할 수 없어요, 사람은 목숨을 잃으면 모두 끝이니까. 조금이나마 경험을 쌓기 위해서 모든 걸 잃을 필요도 없잖아요? 여행을 하는 진정한 의미라면, 자신이 정하는 것을 행동에 옮기는 것뿐. 그 과정 속에서 성장을 하든 말든 결과는 여행이 끝난 이후에 나타나죠.”

 

그렇군요. 역시 성녀...아니, 카린님. 그런 넓은 혜안을 가지고 계시다니!”

 

감격하지 마시죠. 내 멋대로 말하는 거에 감격하지 말라고요. 너희들은 누군가 높은 사람이나 위대한 사람이 말한다고 해서 다 믿거나, 그걸 목숨처럼 여기고 다니지 마세요. 자신이 관철하고 싶은 신념이라는 건 없는 건가요?”

 

? 그야 있긴 하죠. 저는 마왕을 타도하기 전까지 성녀님을 지키는 것만을 일념으로 하면 됩니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모르겠다...”

 

나지막하게 안 들릴 정도로 중얼거렸다. 아무래도 자신만의 규칙이나 그런 거라도 있어야 성장의 발판이 되기도 할 텐데. 굳이 나를 지키겠다는 그 일념 하나만으로 여행을 다니겠다니. 그렇게 되면 쉽게 목숨을 버리는 걸 정당화 해버린다. 오직 사람은 살아 남아야 그 다음의 변수를 준비할 수 있기 마련.

 

이건 숙제에요. 자신만을 위해. 그리고 자신만이 이 험난 세상을 앞으로 살아가는 데에 있어서 신념을 찾으세요. 목숨을 함부로 버리거나 그런 일은 절대로 용서하지 않으며, 누군가를 희생해서 다른 이들을 구하는 것이 아닌, 최우선으로 모두가 다같이 살아남는 행복한 결말을 위해, 자신이 무엇을 하면 좋을지. 그리고 어떤 것을 해야 할지 정해놓으세요. 그렇지 않으면 전 당신을 더 이상 신뢰할 수 없습니다.”

 

그런...”

 

기사가 아무 말 없이 가만히 고개를 숙이고 있는 동안, 저 멀리서 낮은 음성의 남자 목소리가 나왔다.

 

모두가 다 같이 살아남는 결말이라. 성녀는 진정으로 그렇게 말하는 것인가?”

 

내가 멋대로 이명을 지어놓은 침묵의 궁수가 드디어 말을 하기 시작했다.

 

. 진정으로 그리 말하는 겁니다. 모두가 살 수 있는 방안을 도모하는 것은 최우선으로 행해야 하는 일이에요.”

 

그렇게 말하는 것치곤 혼자서도 마왕의 간부를 잘도 날려버리던데? 그것은 압도적인 힘을 가지고 있는 강자이기 때문에, 우리를 지켜줄 여유라도 된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말하는 것인가?”

 

뭐냐?

내가 그리모스를 날려버린 걸 본 건가? 아니, 어쩌면 저 궁수의 시력이 좋아 멀리서도 내 상황을 지켜볼 수 있으리라. 다만, 극도의 냉정을 지키고 있는 저 남자가 저렇게 기분 나쁘게 말할 정도라...

 

당신이 비아냥거릴 정도로 제 말이 불쾌했다면 죄송하다는 말을 먼저 드리죠. 다만, 제가 말하는 최우선의 선택사항에서는 힘의 차이가 있고 없고를 떠난 이야기입니다.”

 

힘이 없으면 그런 일도 행하기 불가능에 가깝다. 아닌가?”

 

잠깐만, 어째서 그게 말싸움으로 번진 거야? 동료잖아?”

 

키르갤이 나타나서 중재를 하려고 했지만, 오히려 반대편의 남자 측에서 나를 쏘아붙이기 시작했다.

 

아니. 나는 아직까지 신용할 수 없다. 성녀인지 잡화점주인인지 그리고 아까 그 돼지가 말했던 마왕의 신부후보인지 알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대한 힘을 감추고 전력으로 싸우고 있지 않아.”

 

그건 부작용이 있으니까 그런 거지. 나도 마법을 쓸 때 좀 생각을 고려해서 쓰잖아?”

 

아냐. 달라. 저 가녀린 성녀 안에는 또 다른 초월체가 잠들어있다. 오히려 마왕보다 더 악질로 될 수 있다면 이상하지 않지.”

 

그렇군. 그 짧은 시간의 일을 놓치지 않고 본거로구나. 순간 집중력만큼은 꽤 자신이 있는 모양이다. 확실히 2초간 남자로 변했을 때 누군가에게는 그 짧은 시간이, 무언가의 허상처럼 지나가기도 했고, 백일몽처럼 빠르게 사라지는 환상에 불과했지만, 저 궁수는 현실을 직시하고 나를 먼저 의심하기 시작했다.

 

현령! 너 적당히 하지 않으면...!”

 

아니. 키르갤. 그 자의 말이 맞아요. 확실하게 말하자면 이건 본래 제 모습이 아니니까요. 게다가 다 같이 봤잖아요? 알 수 없는 흑발의 남자. 애석하게도 그 모습은 이 세상을 날려버릴지도 모르기 때문에, 이런 익숙하지도 않은 여성의 모습으로 있는 겁니다.”

 

체념을 하듯 모든 걸 다 털어놔보자. 그래도 일단 말을 꺼내선 안 될 것이, 이 상황이 어쩌다가 세계가 2번씩이나 뒤집어졌는지에 대해, 그리고 잡화점이 어떤 존재인가에 대해서. 그거 말고는 현령이라는 궁수가 알고 싶어하는 것도 이야기를 해줘야겠지.

 

그러면...그 여장이 잘 어울릴 거 같은 중성적인 외모의 남성이 너란 말이야?!”

 

어째서 여장이 잘 어울릴 것 같은이란 바보 같은 수식어까지 붙여가면서 강조를 하는 겁니까아!”

 

태클을 안 걸려고 해도 결국 원인제공은 다 저쪽에서 해주잖아! 이러니까 내가 빠르게 지치고 스트레스를 받는 거지!

 

그건 그렇다고 해도, 여자로 된지 얼마나 시간이 지난 거야? 위화감이 전혀 없다고 생각하는데?”

 

그건, 이전에도 사고 때문에 된 적도 있고, 그렇다고 해서 이런 몸이 가장 편하다거나 그런 건 아니니...그나저나...”

 

그보다 이 용사는 주위에서 그렇게 소란을 피우고 소리치는데도 불구하고, 편안하게 잘 자고 있는 건가? 어지간히 무릎배게가 좋은 모양이다.

 

키르갤에게 용사를 맡기고 나서 잡화점으로 다시 되돌아갔다. 사키엘의 문을 통해 다시 귀환한 나는 3층에서 2, 2층에서 다시 1층으로 내려오고 있을 무렵. 연회는 대략적으로 용사그룹에게 맡기고 이곳에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거기까지가 나의 예정.

그러나...

 

. 잡화점의 주인인가. 어서 오거라. 이 집안에 있는 계집에게 물어보니 딱 이정도 시간에 온다고 하여 맞춰놨노라.”

 

연보라색 머리카락 위에는 고양이귀가 솟아올라있고, 검은색 정장을 입은 남자가 분홍색 앞치마를 두르고, 한 손에는 국자를 들며 나를 반기는 것이었다. 지금 상황도 심란해 죽겠는데, 마왕이 남성체로 변한 탓이라 끝나지 않는 괴리감으로 인해, 내 정신은 현실의 벽을 뛰어넘어 저 우주 어딘가로 박혀버렸다.

 

, 잠깐만? 지금 뭐하고 있는 거야?”

 

머지않아 박혀있던 정신이 광속을 뛰어넘어 이곳에 도달했으니, 내가 가진 의문에 대해 말하는 것이었고, 내 앞에 있는 마왕은 당연하다는 듯이 이렇게 말했다.

 

그야 당연히 짐이 그대를 위한 요리를 했으니 말이다. 애석하게도 짐은 맛을 잘 모르기 때문에 저기 테이블에 앉아있는 계집에게 맛을 좀 봐달라고 했다.”

 

테이블에 시선이 찾아가보니 입에 보라색거품을 물고 의식이 없는 흰자만 드러낸 체, 다잉메시지로 추정되는 글귀. 아무래도 내가 지금 살해현장을 직접 목격한 거 같은데.

 

뭔지 예상은 가지만 뭘 요리했는지 일단 알려줄 수 있어?”

 

그야 당연히 암흑물질이다.”

 

이 빌어먹을 암흑물질은 세계가 갈아 엎어져도 꼭 있는 거냐!”

 

그보다 리제로트.

용케 죽지 않았구나.

 

. 역시 마계식단은 인간에게는 좀 무리인가?”

 

그거 마계에서도 무리거든!”

 

폭식의 공작은 잘 먹었노라.”

 

폭식의 공작잘 먹었겠지!”

 

들이댈 것을 들이대야지. 지금 이게 무슨 날벼락이야? 잡화점에 돌아가니까 왠 마왕이 요리를 하고 있다고? 날카로운 눈매와 누군가를 굴복시키는 카리스마를 내뿜으며, 분홍색 앞치마를 두르고 요리하고 있다고 생각해봐라. 그건 요리가 아니라 그냥 고문을 준비하는 무언가가 되겠지.

 

아니면, 목욕이라도 할 것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나..?”

 

-파아아아앙! 파바방!

 

마왕의 자가 사라질 때까지 마나를 폭파시켰다.

이성의 끈이 어느 정도 매듭을 지으며 다시 이어졌을 땐, 다행히 무효화의 반지로 인해 아무런 영향도 없는 리제로트는 그 자리에 기절해있었고, 주방이 전쟁터의 폐허로 돌변해있을 무렵.

 

. 아무래도 너무 과한 것이 아닌가? 분명 신부가 집에 들어오면 이렇게 하라고 색욕의 공작이 말했노라. 짐이야 많이 연습하고 보여준 것이라 자신이 있었으나...”

 

대체 왜 그런 녀석에게 그런 쓸 때 없는 기교를 배워오냐고오!”

 

상처는커녕 옷에 흠집조차 나지 않은 마왕이 내 뒤에서 살며시 끌어당겼다.

 

그건 그렇고 탐욕의 공작을 날려버린 건 보고는 잘 들었노라. 역시 짐의 신부이지 않는가? 그 정도의 힘을 숨겨놓고 아무런 편에 들지 않는다라...확실히, 그 힘은 이곳 세계와는 이질적인 것이로다.”

 

마왕이 내 머리를 쓰다듬기 시작했다.

귓가에 간질이는 목소리가 애원하듯 머리 속을 파고들었다.

 

잡화점의 주인. 부탁이 있노라.”

 

또 쓸 때 없이 신부네 뭐네 하면 마왕성을 갈아 엎을 거야?”

 

그건 아니고, 잡화점에 있는 물건을 멋대로 봐서 미안하다만, 이런 사진을 보고야 말았노라.”

 

사진이라면 다 사라진 게 아닌가? 아니면 세린이 멋대로 백업한 사진이 있나?

 

이전의 차원은 아무래도 짐이 제대로 된 구원을 받았겠지. 그렇기에 이런 많은 자들과 같이 서 있는 게 아닌가?”

 

이전에 잡화점 멤버가 한 가득 있을 무렵. 대체 언제 찍어놓은 지 모르겠지만 모두가 찍혀있는 가족사진과 같은 것이었다. 가운데는 나를 시작으로, 왼편에는 레시아, 마리아, 루시피나가 서 있었고, 오른쪽에는 람파시나, 루나, 루니아 누나가 서있었다.

 

물론 나중에 루비아나 아이니스 등. 다른 사람도 달려와서 사진을 찍었다만 그 와중에 사진기가 고장이 나버리는 바람에 추억으로만 간직한 사진은 저것뿐이었다.

 

저기 귀여운 남자가 그대겠지? 여장이 참으로 잘 어울릴 것 같은 모습이구나.”

 

그 빌어먹을 여장이 참으로 잘 어울릴 것이라는 수식어까지 붙여놓는다고 해서 칭찬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거든!”

 

다른 방향으로 주제가 엇나가기 전에 마왕은 다시 본래 목적을 말했다.

 

아무튼 짐의 부탁은 이전에 짐을 어찌 불렀는지 잘 모르겠지만, 그렇게 불러줄 수 없겠는가? 다르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짐은 마왕이니라. 그대를 만나든 만나지 않았든, 짐이 마왕이라는 것은 다르지 않으며, 이미 저질러놓은 일은 마무리하고 평화를 만끽할지. 세상을 지배할지 고민하기 전에, 그대가 짐을 어떻게 불렀는지 알고 싶노라.”

 

한동안 떨어지지 않은 말과 이걸 꼭 말해야만 하는 가에 대해 갈등하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

 

으갹! 뭐 하는 거야!”

 

귀에 느껴지는 위화감이 내 온몸에 내달렸다. 이놈의 마왕은 대체 뭐하고 있는 가에 대한 의문이 먼저 더 앞서고 있을 무렵. 힘껏 혼까지 빨아드릴 듯한 소리가 나더니, 끈적거리는 무언가가 내 귀에서 늘어졌다.

 

그야 귀를 핥고 있노라.”

 

내가 묻는 건 대체 그 행위를 왜 하느냐에 대해 묻고 있는 거야!”

 

그야. 그대가 짐을 뭐라고 부르는지에 대해 알기 전까지 계속 집행할 예정이니라.”

 

이게 무슨 고문도 아니고...우아앗! 그만! 그만! 레시아! 그만! 그만하라고!”

 

이번엔 다른 귀에 경보음이 들림과 동시에 머리가 초토화되기 시작했다. 맛있는 아이스크림을 핥는 듯한 혀 끝으로부터, 내 다른 쪽 귀가 뇌로부터 버틸 수가 없다는 경고를 계속해서 보내왔고, 그에 따라 다급하게 외쳐본 이름은 평상시와 다를 바가 없는 외침이었다.

 

흐음? 레시아라. 그렇군. 듣기 좋은 이름이노라. 그런데 우선 잡화점의 주인의 반응이 재미있으니 더 해보도록 하겠다.”

 

잠깐! 그만하겠다는 약속은 어디에...!”

 

맞다.

이 마왕은 이름을 부르기 전까지 집행을 하겠다고 했지, 부른 후에 이걸 멈추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교활한 악마녀석!”

 

크큭. , 어찌 불러도 좋다. 그나저나 이번엔 혀를 넣어도 되겠나? , 물론 귓속에 말이다.”

 

될 리가 있겠냐아아아!!!”

 

저녁 먹으러 갔다가 커다란 봉변을 당하기 전에, 마왕의 발등을 밟고 잡고 있는걸 풀면서, 지근거리 마나 캐논<Close Range Mana Cannon>으로 마왕을 날린 시간은 내가 소리를 지른 이후부터 약 2초도 되지 않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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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로레로레로레로레로레로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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뚱뚱하다고는 하나 민첩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어처구니 없게도 나의 속도를 상회하는 몸놀림이 여러모로 나를 놀라게 했다. 매번 오호! 오호!”하며 쫓아오긴 하지만, 마계 12공작에 버금가는 위력을 선사했다. 검붉은 할버드가 눈을 어지럽히며 나에게 날아올 때마다, 정면으로 막아내는 건 어리석은 짓이니 피하기 급급했다.

 

오호호! 그러고 보니! 저의 이름을 알려주지 않았군요. 저는 탐욕의 공작 그리모스라고 합니다! 오호호! 이제 저의 이름을 알았으니 투항하거나, 같이 밥을 먹으러 가시죠?”

 

잠깐만. 왜 뒤에 같이 밥 먹자고 꼬드기는 거냐? 너는 적과 아군에 구분할 것 없이 밥을 먹는 거냐? 탐욕보다는 폭식이 가장 어울릴 법한 대사잖아?”

 

시도 때도 없이 공방을 벌여가면서 이야기 하는 바보 같은 일을 여기서 하고 있지만, 적에게도 대뜸 싸우다 말고 오호호! 배가 고프니 잠깐 음식점에 들려서 뭐라도 먹고 싸우시죠!”라고 권유할 것만 같았다.

 

왜 싸우다 말고 밥 먹으러 가는지 모르겠지만...

 

오호호! 저는 탐욕의 낙인을 받은 자로서, 모든 욕망은 우선 선행하고 본다는 원칙에 따라 행동하고 있습니다.”

 

멋쩍게 자신의 투구를 긁고는 다시 할버드로 나를 내리찍었다. 당연히 그 순간에 긴장을 늦추지 않고 오히려 히드라를 이용해 반격을 했지만, 공으로 착각할 정도로 빨리 바닥을 굴러 회피했다. 저런 중장비로도 움직일 수 있는 것이 더 신기하지만...

 

[마계공작의 이름은 하는 모양이군.]

 

[그러게. 확실히 말하자면 좀 귀찮은 상대이긴 해.]

 

아군일 때 같이 친구하면 맛집 탐험도 하고 좋을 텐데, 적으로 만나니 변칙적인 요소가 많아 까다로울 뿐이다.

 

오호호! 그대의 실력은 이게 다가 아니란 건 태초부터 알고 있습니다. 슬슬 본 실력을 낼 때 아닙니까?”

 

내가 본 실력을 내면 너는 필히 죽거든?”

 

양손에 쥔 단검을 그대로 없앴다. 그 후 천천히 주먹을 풀며 나아갔고 빈틈인 줄 알았는지, 공기를 찢으며 날아드는 할버드의 날을 왼손으로 잡아챘다. 얼마나 강하게 휘둘렀는지 손으로 잡아도 미세하게 떨려오는 힘. 그러나, 나의 행동으로 인해 탐욕의 공작은 크게 당황했다.

 

오호호..., 이런 일이? , 어떻게 일어나는...푸학!”

 

마나가 한 가득 담은 주먹으로 통통한 배에 그대로 주먹을 휘둘렀다. 이전 기괴한 메이드 장이었던 쇼콜라에게 많이 맞았다고는 하나, 그녀의 행동 하나하나 면밀이 관찰한 건 사실이니. 3M나 되는 덩치가 순식간에 50M정도 멀어진 곳에서 흙먼지를 날린 체 사라졌다.

 

할버드만 덩그러니 남아있는 나. 마왕군의 척후병들은 사기가 완전히 꺾여버렸다.

 

, 성녀님...”

 

뭔가 기사가 괴물을 보는 마냥 나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미안해.

성녀의 이미지를 박살내서 미안해...

그러니까 잡화점의 주인이라고 말할 때 좀 들었어야지!!!

 

하긴, 바퀴벌레를 무서워하고 가녀린...건 아니었지만, 실질적으로 마왕군의 간부를 주먹으로 후려쳐서 사기를 깎아버리는 성녀는 존재하지 않으리라...

 

얼추 정리된 거 같네에?”

 

키르갤이 천천히 걸어 나와 내 옆에 섰다. 로브로 바람이 펄럭이지만 그 바람은 인위적으로 마나를 끌어 모아 생성한 모양이다.

 

성녀님! 괜찮으세요!”

 

내가 어떤 상황이었는지 잘 모르는 용사는 마족의 피로 목욕을 한듯한 모습으로 해맑게 웃으며...아니! 잠깐만! 그렇게 웃지마! 스릴러의 한편을 보는 줄 알았잖아! 누가 보면 死번째는 너랑께?”하고 오는 거 같잖아!

 

그리고 나를 걱정했다면 웃으면서 달려오지 말라고!

 

오호호...! 아무래도 제가 방심한 듯하군요.”

 

저 멀리서 울려 퍼지는 탐욕의 공작의 목소리, 아무래도 형편없이 도망을 간 건 아닌 모양이다. 흙먼지가 인위적으로 거세게 걷히고 나서 보이는 건, 검붉은 색의 갑옷이 아닌, 황금색의 갑옷이 번뜩였다. 그 뒤로 이리저리 멋지게 휘두르는 황금색의 할버드. 그 모습을 보고 나는 다음과 같이 생각했다.

 

“2페이즈인가...”

 

항상 밀리기 시작하면 자신의 실력을 발휘하기 위한 형태로 다듬기 마련. 나 또한 한번 쓰러지고 나서부터 본 실력을 내기 위해 다양한 전략을 생각해냈다. 아무래도 내 앞에 있는 상대 또한 비장의 수를 숨겨왔던 모양. 황금색이야 말로 탐욕의 공작이란 말이 잘 어울릴 정도였다. 당연히 탐욕이라는 것은 재산에 대한 욕망도 가지고 있으니까.

 

오호호! 지금의 저는 조금 더 강하답니다.”

 

자신만만하게 다가오는 탐욕의 군주. 아무래도 저 말은 허세가 아닌 모양이다.

 

-쉬이익! !

 

어느 순간 할버드를 휘둘렀다고 인지했는데, 정작 본능적으로 막은 내 팔에 직격하고 말았다. 이상한 방향으로 꺾여버린 팔이 거대한 통증을 낳고 있는 동안,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다시 한번 할버드의 날이 깔끔한 소리와 함께 내 왼쪽 팔을 날려버렸다. 고통은 아무래도 익숙해지지 않았지만, 인간의 방어기제가 나를 경직에서 구해준 모양. 다시 저 멀리 떨어지고 나서 상황을 지켜보았을 때. 모두가 나를 향해 걱정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소리쳤다.

 

물론 그 놈의 성녀 소리는 듣기 싫었지만, 어처구니 없게도 3명이 전부 성녀에 관한 소리를 했으니 말이다.

 

대단하네. 강해.”

 

오호호! 항복하려면 지금입니다. 아무래도 마왕님은 팔다리를 자르는 걸 허락하신 모양이라서 말이죠.”

 

, 목숨만 붙어있으면 팔다리는 잘라도 상관 없겠지. 왜냐하면...”

 

여유를 부릴 수 있는 이유라면, 애초에 내가 걸었던 마법사의 길이 시공간 술사의 길이었기 때문. 지금에서 시간역행을 사용할 수 없다는 건 말이 안 된다. 1시간 전의 신체로 다시 역행하기 시작하면서, 쏟아져 나갔던 피는 거꾸로 내 몸으로 들어가고, 잘려나갔던 왼팔이 순식간에 붙고 상처는 어느 사이에 사라지기 시작했다.

 

팔다리를 잘라도 이유가 없거든.”

 

탐욕의 공작은 겨우 기세를 잡았다 했더니 실망한 분위기가 무럭무럭 커지고 있었다. 지금의 나는 팔다리를 자르던 말던 시간을 역행하면 결국 제자리. 아무리 자신의 재산이 많다고 한들, 그건 전부 무용지물이 되어버렸다.

 

자신의 재산만큼 더욱 더 강해지는 탐욕의 공작이라...사실상 내가 없는 용사 그룹이라면 고전했을지도 몰랐겠지만, 지금은 운이 그리 좋지 않네. 나를 상대하고 있으니 말이야. 그저 재산에 비례해 강화를 한다고 해도, 정작 상대를 죽이지 못하면 결국 쓸모 없는 거 아냐?”

 

도발을 하는 내 어조에도 크게 화를 내지 않고, 어느 정도 냉정한 목소리로 오호호.”라는 감탄사만 내뱉었다. 확실히 지금 탐욕의 공작으로선 날 이길 방도가 없진 하겠지. 정작 자신의 본 실력을 내겠다고 한들, 어처구니 없게도 비장의 카드가 막혀버린 거니까.

 

팔 하나 잘라간 건 어느 정도 강하다고 인정해줄게. 다만, 강하다는 편이지 날 위협하지 못한다는 뜻이니까. , 착각하지 말라고?”

 

뭡니까? 그 마지막에 애매모호한 츤데레 연기는?”

 

키르갤이 태클 걸어왔지만 애써 무시하기로 했다.

 

오호호. 아무래도 마왕님께서 자신의 신부로 삼으면서까지 성녀를 데리고 가려는 이유가 있나 보군요.”

 

아니, 성녀가 아니라 잡화점의 주인이라니까? 나는 그런 거창한 사람이 아니야.”

 

어쩌면 마왕군으로부터 나를 성녀로 인식하는 게 아니라 잡화점 주인으로 인식시켜야 하는 세뇌작업이 필요한 모양이다. 어처구니 없게도 저게 나아질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거짓말은 아니니 계속 밀어붙여보자.

 

본인의 비장의 카드인 막시멜로스의 재고가 먹히지 않은 이상, 이후 다른 마계공작에게 싸움을 양도해야겠군요. 오호호!”

 

도망할 셈인가? 근데 내가 안 놔둔다면?”

 

오호...크하악!”

 

우선 최대한 힘을 억누른다는 의미로 세린 몰래 본 모습으로 되돌아갔다. 머리가 짧아지고 짙은 청색의 머리카락이 아닌, 밤에 물든 짧은 흑발로 돌아와 있겠지. 오랜만에 넓은 시야와 순식간에 마나가 몸 안쪽으로 몰아붙이는 듯한 이 감각. 남자로 되돌아가면서 감회가 새롭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다만, 개방을 하고 나서 빠르게 처리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찾아왔다만, 최대 4초도 되지 않겠지.

 

시공의 눈은 이미 개안 되어있다. 알았나? 그리모스. 그래도 너의 희망사항대로 일단 놔주기는 하지. 그렇지만...”

 

시간이 늘어지면서 프레임 단위로 쏟아져 내려오는 형상들. 그 중 그리모어의 3초 전으로 추정되는 형태에 주먹을 박아 넣었다. 상상을 초월하는 현상. 3초 이전에는 절대로 데미지를 받지 않은 자신이, 3초 전의 데미지를 받은 에너지가 이제서야 도달 되는 기괴한 형태. 맞았을 때 뼈가 부셔지는 과정이 있어야 하지만, 이미 3초 전에 끝나있었다는 말도 안 되는 형태였다.

 

그것도 알게 모르게...

 

팔 하나 잘라간 값은 해야 되지 않겠나? 이제서야 고통이 찾아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지, 설마 멀쩡했던 뼈가 3초 전에 부러졌을 줄은...”

 

-파악! 파각!

 

쿠헉! 쿠악! 그만! 그마아안!”

 

또 어디 잘났다 듯이 오호호라고 외쳐보던가. ‘막시멜로스의 재고로 강화한 몸이 그렇기 유리조각 마냥 부러지고 있는 걸 보아하니, 우선 너와 나의 상성이 가장 나쁘다는 건 확실하게 알았겠지?”

 

3초 전의 형상이 그대로 본체에 대미지로 작용했지만, 아직까지 대미지는 대미지일 뿐 실제 형상으로 보면 멀쩡한 상태다. 그런고로 내 앞에 있는 적에게 최악의 선물을 주기로 했다.

 

갱신<Update>”

 

-파뜨득! 파지직! 푸드득! 푸득!

 

거구의 내부에는 뼈는 물론이고 내장까지 손상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온 몸에서 터져나오는 고통의 오케스트라는 그리모스의 반주에 맞춰 천천히 붕괴하고 있었고, 그 과정은 실제시간으로 2초에 걸쳐서 일어난 일밖에 되지 않았다.

 

어처구니 없게도 2초만에 다시 여성의 모습을 돌아와 날뛰는 힘을 억누르고 있었다. 히드라가 자신이 직접 먹이를 집어 삼켜도 되냐는 물음에 나는 하지 말라고 답했다.

 

저들에게 있어 공포와 경고가 필요하다.

마계 12공작 중에 최약체인지 뭔지 하는 이야기를 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나마 살아있던 척후병들이 그리모스의 거대한 신체를 질질 끌고 바쁘게 도망갔다. 아프다는 말도 하지 못하는 걸로 봐선 이미 기절한 상태임을 알 수 있었다.

 

우두머리를 공략했다면 저들은 우리가 4명이든 2명이든 더 이상 공격하지 않겠지.”

 

다시 짙은 청색의 긴 머리카락과 낮아진 시야를 확인하니, 한숨을 곱게 포장해서 택배로 붙이기 위해 우표를 찾아야 하는 가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내가 보였다.

 

, 방금 전에 무슨 일이...”

 

내 눈앞에 있는 키르갤의 목소리를 보아, 자신과의 레벨이 다르다는 것을 실감했나 보다.

 

내 본래의 모습와 더불어 실질적으로 힘을 개방하지 않은 이유. 그리고, 지금의 내가 잡화점에 틀어박혀서 그 어떤 일에도 간섭하고 싶지 행동을 선택한 것. 너희들이 보았을 때는 단 2초만에 일어난 일이겠지만, 시공간술사의 길을 걷는 자라면 2초 같은 시간은 너무 느려도 한참 느린 시간이란 것도 알거든.”

 

인과율로 인해 시공간마법은 상당히 위험한 마법이지만, 마왕군의 간부를 쓰러뜨리려고 사용했다고 하면, 천계에서도 어느 정도 눈을 감아줄 것이다.

 

싫으면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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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남자로 되돌아가면 그 누구도 건드리지 못할 최강의 먼치킨이...지만 결국 태클 거는 건 똑같을 듯한...

 

609

 

 

 

하란국의 상황은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다. 말 그대로 수도 외에 전역이 마왕군의 깃발로 가득 매워져 있고, 곳곳에서 비명소리가 나는 것으로 보면, 아직까지 저항하고 있는 세력이 존재하고 있으나, 그 힘이 미약하여 타파할 수 있는 처지도 안 된다. 급기야 마왕이 직접 나서서 제국을 점령한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애석하게도 마계 12공작의 힘을 내가 너무 물로 본 탓도 있다.

 

12공작 중 1명의 공작이 자신만의 군단을 이끌고 하란국의 대부분을 삼켜버린 것. 아무래도 내가 단독으로 마계에 찾아갔을 무렵 나를 내려다 봤던 12명의 공작 중 하나라고 하지만, 그 공작의 힘도 잘 모르겠거니와 내가 알던 마계공작들과는 차원이 다른 모습이었다. 이웃집 아저씨 목소리가 나던 보라색 슬라임 또한 보이지 않고, 하나를 행동하는 데 수십 초가 걸리는 나무늘보 또한 보이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기괴한 모습을 하고 있으나, 상세하게 알아본 것은 나를 장난감마냥 취급하겠다고 자신에게 달라던 그 빌어먹을 작자뿐. 상상이상의 취향인지 유희인지 모르겠지만 그런 쓰레기 같은 녀석은 반드시 죽여야 앞으로의 평화가 찾아오겠지만, 애석하게도 지금 이 상황에서 게릴라 부대가 할 수 있는 건 없다.

 

게다가...

 

[마왕과 이곳을 점령하겠다고 약속한 것 어찌할 건가? 잡화점의 주인.]

 

히드라는 남자목소리와 여자목소리를 죄다 믹서기마냥 갈아 넣은 듯한 음성으로, 내 머리에 직접 퍼트렸다. 꽤 골치 아픈 상황이라면 마왕과의 약속도 어느 정도 완수해야, 나의 위치가 용사편도 아니고 마왕편도 아닌 중립에 가까운 위치로 옮겨지니까. 고작 바퀴벌레 하나 무섭다는 성녀에게 기대고 있는 용사 그룹도 신기하지만...

 

[그건 시나가 잘 해줄 거야. 그러니 내가 언급한 시나리오에 맞춰서 행동하면 결과는 괜찮아.]

 

괜찮기 하지만...

들켰을 때의 뒷감당을 어찌 짊어질 수 있을지...

 

그냥 마계고 인간계고 싹 다 갈아 엎어버릴까?

 

성녀님. 안 추우신가요?”

 

성녀가 아니라 잡화점 주인이라고 몇 번을 말합니까...”

 

매번 성녀가 아니라고 말하지만, 애석하게도 내 포지션은 성녀인 모양이다. 이럴 때마다 빨리 남자로 되돌아가서 나는 사실 신입니다. 우헤헤헤!”라는 전개를 하고 싶지만, 저런 건 맨정신으로 할 수 없는 노릇이고, 설령 모든 능력을 개방한다고 해도 적과 아군 구별할 것 없이 죄다 날아가는 일 밖에 없다.

 

?

일시적인 한계 개방이라.

좋아. 그런 설정으로 나아가서 세린 몰래 남자로 변신하자.

내가 내 능력의 한계를 조정할 수 있는 물품은 잡화점에 존재할 거 같으니, 그걸로 고정을 시킨다면 어느 정도는 괜찮으리라 본다. 일부 힘을 봉인하는 아이템은 내 힘을 감당하지 못하고 다 깨져나갔지만, 잡화점의 물품이라면 마법을 완전하게 막아주는 반지도 있었으니 찾다 보면 나오겠지.

 

하지만 성녀님을 성녀님이라고 부르지 못하면 무엇으로 불러야.”

 

잡화점의 주인이라고 부르기엔 전투에서 좀 긴가? 하긴 급박한 상황에서 커다란 목소리로 잡화점의 주인! 괜찮습니까!” “잡화점의 주인! 어디 안 다치셨습니까!”이런 식으로 말하면 부르는 입장에서 짜증날 수 밖에 없다.

 

카린이라고 부르세요.”

 

이름입니까? 성은 어떻게 되시는지?”

 

성은 없어요.”

 

...”

 

투구를 눌러쓴 기사는 잠깐이나마 어째서 성이 없지?”라고 중얼거렸지만, 이내 결심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카린님. 모포라도 드릴까요? 그 모습으로 있으면 감기에...”

 

감기에 걸릴 일은 없으니 괜찮습니다. 그런데 이곳에서 얼마나 있어야 하는 거죠?”

 

수도 안에 펼쳐진 것은 금빛의 결계와 더불어 절대적인 불가침의 영역이라고 불린다. 하란국의 여제가 발동할 수 있다고 하는데, 이 결계를 거론한 적도 없고 들어본 적도 없다. 류하 씨만이 알 거 같지만, 지금 하란국의 여제가 류하 씨인지 다른 사람인지는 불명. 어쨌든 지금은 수도 근처에 있는 언덕에서 대기하고 있는 용사 그룹만이, 그 결계에 안으로 들어가기 위한 작업을 하고 있는 모양이다.

 

놀랍게도 그 결계 안에 먼저 들어가서 협상을 보고 있는 건, 침묵의 궁수...라고 내가 멋대로 이명을 붙였지만, 아무튼 그 남자가 하란국 출신이기 때문에 아무런 탈 없이 결계에 들어가고 20분이 흘렀다.

 

용사님. 오늘은 추우니까. 이렇게 꼭 붙어있어야 한답니다~”

 

키르갤...숨막히는데...”

 

저 옆에는 따듯해야 한다는 핑계로 용사를 멋대로 안고 풀어주지 않았지만, 용사의 경우엔 마왕군을 토벌하기 전에 키르갤의 가슴에 질식사를 하지 않을지 더 걱정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저런 커플이 꽁냥거리고 있는 동안, 기사는 용사의 상태를 보고 달려가 키르갤님! 용사님의 얼굴이 몹시 안 좋아 보입니다만!”이라며 태클을 걸었고, 키르갤은 용사님의 얼굴은 원래 보라색이야.”라는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늘어뜨렸다.

 

용사의 얼굴이 보라색이라니?

어디 호러 장르에나 나오는 청귀<> 라도 되는 거냐? 뭐 자일리톨 청귀라도 나오는 그런 거? 그 전에 진짜로 용사가 암살 당할 거 같으니 그만 좀 놔줬으면 좋겠는데? 용사가 아둥바둥 빠져 나오더니 나와 눈이 마주치자 마자, 곧바로 내 앞까지 달려와 내 등 뒤로 숨었다. 시나도 그렇고 너도 그렇고 왜 다 내 등 뒤에 숨는...어라? 잠깐만?

 

오호? 카리이이이인?!”

 

뭐냐 요즘 마법사는 광폭화<Berserker>도 사용하는 거냐? 눈에 금빛 안광이 날 산화시키는 듯 노려보고 있는 걸로 보아, 이 여마법사는 아무래도 마법사가 아니라 광전사로 전직해야 할 것만 같았다.

 

, 잠깐만? 아이어에 목숨이나 바치지 말고, 용사가 내 등 뒤에 숨은 것뿐이잖아. 난 손대지 않았어!”

 

“3일 전에 네가 용사의 머리를 쓰담쓰담 한 것까지 다 기억하고 있어어어어!”

 

, 잠깐만! 팀을 죽일 셈이야!? 그만둬! 마법은 사용하지마! 마왕군에게 들킨단 말이야!”

 

당장 용사님을 내놔!”

 

용사가 무슨 마약이냐!

금단 증세라도 보이는 거냐고!

 

키르갤을 진정시켜야 할지, 아니면 덩달아 나도 마법으로 대응해야 할지 고민에 빠진 찰나, 모두가 움직임을 멈추고 자연스럽게 각자의 무기를 뽑았다.

 

흐응~ 아무래도 이건 내가 소리쳐서 들켰다기 보단, 벌써 마왕군의 척후병이 이곳까지 찾아냈다는 건데?”

 

분명 침묵<Silence>마법을 광역으로 사용하고 있으니까, 이렇게 시끄럽게 떠들어도 상관이 없다고 하지만, 혹시 마나를 뒤늦게 추적해서 찾아온 것이 아닐까?”

 

마족은 지식의 종족.

매번 하루가 다르게 쌓여가는 방대한 지식의 양이기에, 이런 역추적은 손쉽게 할 수 있다. 설령 그게 검을 사용하는 마족이라도, 평생의 지식을 습득하는 양이 방대하기 때문에, 마족의 백인대장만 두고 보면 전문지식의 일부는 어느 정도 습득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오호라? 오랜만에 포식을 할 수 있겠군, 적어도 100여마리 정도 되는데?]

 

[그거 좋겠네. 다만 저 척후병을 다 전멸시켜야 100여마리로 끝나지, 또 놓쳐서 보고라도 들어가면 그거 나름대로 골치 아파. 그러니까 척후병을 포함한 전령까지 모조리 다 제거해야 해.]

 

[일단 노력은 해보도록 하지. 다만 전쟁이나 전투의 변수는 언제나 뜻대로 되지 않게 만드니, 잡화점 주인의 바램은 이루어질 확률이 극히 적어.]

 

아예 없다고 봐야 하나. 그러면 최대한 수를 줄일 수 밖에 없다.

 

포위당한 거 같습니다.”

 

당연히 100여명의 물량으로 4명을 포위하는 건 쉽지.

뭘 그리 긴장하며 말하는 걸까?

 

그 궁수가 돌아오기 전까지 몸이나 풀어두라고, 7 그룹의 용사 일행의 실력을 내가 봐야 신뢰하지 않겠어?”

 

나는 일부러 도발했다.

격려가 아니라 도발을 한 이유는 이 상황이 여유로운지에 대해 농담을 던져본 것이고, 애초에 골드 드래곤이 유희로 용사 일행을 돕고 있는데, 용사는 여신의 보호와 축복을 겸비했는데, 이런 수로 버겁다거나 힘들다거나 그런 맥없는 소리를 하면 내가 용서 못한다.

 

정말 많은 걸 바라네. 너야 말로 바퀴벌레가 무서워서 뒤쳐지지나 말라고?”

 

성녀님은 제가 지킬 테니 걱정 마세요!”

 

키르갤과 용사는 내 도발에 응수해왔다.

 

-쉬이이익! !

 

하아. 투창의 기본이 안 되어있는 녀석들이란 좀 더 섬세함이 부족해.”

 

기사는 날아오는 투창을 가볍게 붙잡고 한숨을 내쉬었다. 마왕군에게 처참히 깨져서 약하다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제 밥값은 하는 모양이다.

 

그러면 한 명도 죽지 말라고.”

 

각기 다른 방향으로 뛰쳐나감과 동시에 투창과 화살이 하늘에서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전면에 마법방패<Magic Shield>를 내세워 돌격하는 동안, 용사는 여신의 축복을 사용했는지 광채가 나기 시작하면서 투사체가 스스로 비켜주기 시작했다. 키르갤은 보호마법을 펼치면서 광역마법을 준비한 사이, 기사는...언제 저기까지 간지 모르겠지만 벌써부터 마왕군의 병사 하나를 처치했다.

 

[히드라. 엄호해줘.]

 

[알았다.]

 

왼쪽의 사슬이 풀려나기 시작하면서 9개의 이빨이 각자 적을 노리기 시작했다. 그 틈을 타 양손에 창조마법을 사용했다. 달 아래에 환히 빛나는 은빛 송곳니의 유산과 같은 단검을 꽉 쥐며 가속도의 탄력을 받아 그대로 회전하며 휘둘렀다.

 

-차자자자작!

 

갑옷이라고 말하기 어설플 정도로 종이처럼 잘려나가는 흑색의 방어구는, 이윽고 검은 피와 함께 분수처럼 쏟아져 내렸다.

 

반월!<Half Moon>”

 

전방의 원뿔 모양으로 지나가는 밝은 실선, 그 죽음의 실선에 걸려버린 마족병사들은 허무하게 양단이 나버리고,

 

만월!<Full Moon>”

 

이윽고 내 주변으로 만월이 나타나자 수도 없이 많은 비명과 피가 터지는 소리에, 적들의 사기를 푹푹 깎아 나아갔다.

 

, 성녀라고 생각했더니! 완전히 검사와 다를 바가 없잖아! 궁수! 이곳으로 지원...!”

 

신성마법을 사용하지 않고 왠 단검 두 자루와 이상한 사슬들이, 마족병사의 목을 꿰뚫자마자 온 몸으로 느껴지는 적들의 두려움을 만끽하고 있었던 찰나.

 

-쐐애애액! !

 

어둠을 틈타 날아드는 할버드를 쳐냈다고 생각했더니, 어느 틈에 내 뒤에서 강압적인 살기가 흐르고 있었다. 설마 내가 뒤를 잡혔다고 생각을 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건 마법을 통해 공간이동을 한 것으로 추측했다.

 

-샤아아악! !

 

내가 있었던 자리에 거대한 홈이 파졌을 무렵. 순식간에 내 뒤를 잡아 기습하려던 상대를 확인하기 위해 고개를 들었다.

 

오호호? 꽤나 날렵하시군요. 반반한 얼굴을 보아하니 마왕님께서 점을 찍으신 약혼녀 아닙니까? 중립이라고 하셨으면서 지금은 용사의 편에 붙어 있군요?”

 

익살스러운 남성의 목소리. 꽤 가벼워 보이지만 일격은 상당히 무거웠다. 막지도 않고 피했다는 판단이 오히려 옳았을 정도. 대략 3M가 넘어 보이는 거구의 사내에게 신세한탄을 좀 할 겸 입을 열었다.

 

. 그건 너희 마왕도 허락한 거라서. 이렇게 붙든 저렇게 붙은 내 맘대로잖아?”

 

오호호! 그렇군요! 그러면 제가 직접 포로로 잡아서 맘대로 부려도 상관 없으시겠죠?”

 

내 몸을 음침하게 훑고 지나갔다. 거대한 뿔이 솟아난 투구에 알 수 없는 투기까지 느껴졌고, 일단 알아두면 대책이라도 마련할 수 있을 거 같아서 물어보았다.

 

덤으로 뭘 할건데?”

 

오호호! 그러면 그대의 손발을 구속한 다음에...”

 

희망사항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지만 뜸을 들이며 군침이 도는 듯한 혀 놀림을 한 뒤.

 

마왕군이 인간계를 모두 점령하면 유명한 맛집 투어에 강제로 동참을 시킬 겁니다!”

 

, ! 잠깐만! 군침이 도는 듯한 혀 놀림이 맛집 탐방에 기대되는 그런 의미였냐! 그럴 거면 왜 손발을 묶어!”

 

그거야 줄 듯 안줄 듯 하면서 괴롭히기 위해서입니다.”

 

너는 진짜 여러 의미로 나쁜 녀석 맞다.”

 

세상에...손발을 다 묶어놓고 하는 짓이 음식으로 고문하는 거냐!

대체 이런 녀석은 뭐했길래 마계 12공작이 된 거야?

이것도 일단 생각난 김에 물어보도록 하자.

 

대체 너희 마계 12공작을 뽑는 기준이 뭐냐?”

 

오호호? 그거야 당연히 가위바위보이지 않습니까?”

 

그 빌어먹을 가위바위보가 왜 나오냐고!!!”

 

이 세상도 제대로 된 세상은 아닌 모양이다.

아니, 사실 제대로 된 세상이 아니란 건 알고 있었지만, 진지함이 떨어지는 그런 바보 같은 세계일 줄은 누가 알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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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호호! 한입 줄까? 말까? 안준다! 오호호호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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