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 564
564
천계와 마계와 명계는 본래 하나였다.
그러나 어떠한 계기로 나뉘어졌다고 하는데.
그런 옛날 이야기는 관심이 없고 좀 더 실질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이 세상에는 신성력과 마기, 마나만 있을 줄 알았던 에너지가 하나가 더 있다는 것이다.
-윈디의 볼을 잡아 늘리며 징벌을 하는 중 카일의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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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감고 가만히 있어보도록 하자. 우리가 눈을 감는 이 순간에도 세상은 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다른 관점으로 생각했을 때 눈을 감으면 세상이 없어진 기분이 들지 않는가? 가끔가다 내가 살아가는 이 세상을 의심할 때가 있다. 창조신이 세상을 만들고 모든 것을 탄생시켰다고는 하지만, 지금 그 창조신이 너무 바보같이 행방불명이 되어버렸다. 천계에 공석이 생기게 되고 누군가가 움직였는지 중요하지는 않으며, 3개의 밸런스가 무너지는 것이 아닐까?
반은 맞고 반은 틀리는데, 이 세상을 지탱하는 근본적인 에너지는 3갈래가 아닌 4갈래로 나뉘어진 상태였다. 정령계는 마나의 농도가 매우 높은 세상이니까, 실질적으로 마나를 관리하는 장소는 정령계고, 인간계와 가깝게 연결되어있으니 자연스레 농도가 낮은 곳으로 흐르게 되는 경우다.
그럼 마지막 1개의 에너지는 무엇일까?
그건 명계에 있는 힘이다.
이게 어째서 독자적인 에너지로 분류되는가 하면, 첫 번째로 3가지 에너지원을 사용해도 저승을 건너는 뱃사공의 배는 움직이지 못한다. 특수한 동력이 필요하다는 전제하에 배를 움직이는 거라면, 카론이라는 뱃사공도 그렇고 레시아와 나 사이에서 탄생한 딸 아이도 뱃사공이지만, 그때 당시에 3가지 기운을 감지하지 못했다.
두 번째로 명계는 어떠한 존재도 살아서 들어가는 경우가 거의 없다. 예외적인 이유라면 엘티노스의 모험대가 명계에 발을 디뎠을 때인데, 그 경우에는 전에 이야기를 한 기억이 있으니 넘어가도록 하자.
“크에엑...카, 카일 씨...의 데, 데스홀드...라니이이! 항...복...!”
아까 전까지만 해도 무사태평하게 잠을 자고 있는 나에게, 탭 댄스를 추고 있었던 버르장머리 없는 바람의 정령왕을 따듯하게 포옹하고 있는 중이다. 물론 힘이 너무 강하게 들어가는 바람에, 숨을 제대로 못 쉬면서 내 팔뚝에 항복을 알리는 탭을 다급하게 두드리고 있었으나, 애석하게도 앞으로 2분있다가 풀어줄 예정이었다.
몸을 이리저리 비틀며 찰랑거리는 회백색의 긴 머리카락이 넘실거리고, 고통을 호소하고 있는 여성은 괴로워하는 얼굴과는 달리 다른 이면에서는 환희에 가득 찬 모습이었다. 이대로 질식사를 할 수 있을 것 같은 아슬아슬한 순간에서도, 눈물로 촉촉하게 젖은 호박 빛의 눈동자가 서서히 위로 올라가려고 했을 무렵. 그 상황을 눈치챈 나는 팔을 풀어주는 것과 동시에 이불위로 패대기를 쳤다.
“도대체 사람의 머리를 뛰어넘는 스탭을 왜 하는 거야! 목 위에 있는 건 단순한 모자 걸이냐!”
나는 사람이 온화하고 인자하기 때문에, 자고 있는 와중에 주변에서 춤을 추던 노래를 부르던 신경 쓰지 않고 잘 수 있지만, 그림자가 이리저리 휙휙 넘어가는 위화감에 눈을 떠보니, 아니나다를까 조금만 더 늦게 피했다면 윈디 발에 그대로 밟힐뻔한 각도가 나왔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라? 피하셨네요?”라는 말을 듣자마자 분노가 내 몸을 장악하기 시작하더니, 이런 상황까지 오게 되었는데...아무래도 벌을 주려고 했던 나의 의도와 달리 윈디에게 있어선...
“아아...정말 화끈한 포옹이었네요...뒤에서 안기는 경험도 처음이었는데...헷!”
벌이 아니라 상을 준 기분이라 마음이 좋지 못했다. 아직까지 시간은 남아있고 잠을 더 잘 수 있지만, 한바탕 난리를 치느라 잠 기운이 모두 도망치듯 사라져버렸다. 공허한 마음을 부여잡고 자리에 옮겨서 흔들의자에 앉아, 커피포트의 전원을 켜서 마나를 공급하기 시작했는데, 윈디는 내 자리에 앉아서 히죽히죽 웃으며 바라보기만 했다.
“왜?”
“아뇨. 그냥 좋아서요. 그나저나 저도 과거로 다시 되돌아가도 되나요? 지금 카일 씨는 과거로 되돌아갈 방법을 찾고 있는 거죠?”
“그거야 당연하지만...”
과거로 돌아가기 전에 휘말린 일을 처리하기 위해 삽질을 바보같이 하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레인의 잡화점 안에 있는 내 자서전의 기록대로 이곳에 남아있어야 하는데, 시공간의 인과율을 책임지는 시간의 파수꾼들이 지금까지 나타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제대로 일을 진행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지금의 네가 되돌아가면 시간의 파수꾼이 난장판을 일으킬걸? 그리고 차기 잡화점의 주인인 레인에게 가면 되지 않을까?”
“그 남자는 정신상태가 이미 미쳐있다고요.”
순간 윈디의 표정이 급격하게 좋지 않았다. 하지만 0.3초후에 다시 싱글벙글 웃으며 나를 마주했고, 레인의 정신상태를 물어보려는 나의 의도를 알아차렸는지, 대화의 주제를 윈디쪽에서 비틀어버렸다.
“그나저나 이프리트도 보고 싶지 않으세요? 이프리트는 매번 카일 씨를 보기 위해 잠도 안자고 기다렸는데요?”
“이프리트도 날 기다렸구나...너무 미안한 일을 해버렸네. 사죄를 해야 하니 이프리트도 불러줄 수 있지?”
“그럼요! 이프리트! 이제 이불 밖에서 나오세요!”
-부시럭 부시럭
잠깐? 어디서 나온다고?
“우응...졸려...”
부드러워 보이는 분홍색 수면용 옷차림을 한 여성. 아니 보았을 때는 약간 더 작고 아담하게 된 모습이었다. 깨끗한 피부를 띄고 있는 손등이, 눈가를 비비며 조심스레 앉기 시작했는데, 오렌지 빛의 머리카락은 이리저리 삐죽삐죽 튀어나와 빗질을 하고 싶은 욕구가 무럭무럭 자라났다.
모든 일은 결국 잠으로 이루어진다고 생각하는지, 나태함에 얼굴이 오염되었는지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는 모습. 무표정하게 나를 올려다본 오렌지색의 눈이 서서히 확대되기 시작했다.
“이프리트. 오랜만이에요.”
“응. 오랜만이야. 카일.”
서로에 대한 그리움 때문일까? 나는 힘없이 미소를 띄웠다.
“그 동안 무릎베개가 없어서 힘들었어.”
“이프리트가 절 어떤 취급하는지 이제서야 제대로 알겠군요.”
마왕의 마나 창고라던지, 드래곤의 혼약자라던지, 빛의 추종자라던가, 백장미 모델 등. 여러 가지 취급을 받아오면서 이제 무릎베개가 되는 실태인가? 제대로 된 역할은 그렇게 많지가 않는 듯했다.
“그래도 보고 싶었어.”
그리움이 가득한 이프리트의 말이 내 마음에 와 닿았다. 봉인 된 이후로 이프리트와 실피드의 계약이 깨졌으니 내가 찾지 않는 이상 올 수 있는 방법도 없었고, 내가 소환하기엔 3개가 합쳐진 거대한 힘을 사용하기엔 큰 무리가 있었으니까.
“안겨도 괜찮아요?”
나는 자비롭게 두 팔을 활짝 열어 포옹을 시도하려고 했다.
“그럼 나도 카일의 아내가 되는 거야?”
“제발 순수한 의도로 행하는 행동에 복잡미묘한 불순물은 붙이지 말아주세요.”
그래도 오랜만에 봤으니 서로 확인하기 위해 포옹을 한다고 했는데, 언제나 내 의도는 왜곡된 상태로 전해지는 모양이다. 그래도 이프리트는 흔들의자 근처까지 다가가서 내 품에 안겼는데, 약간 작은 사이즈로 안겨오니 흔들의자가 뒤로 크게 움직이진 않았다.
“정말 보고 싶었어...”
“저도요.”
저들에겐 얼마 만에 나를 만나는 걸까? 윈디는 고개를 끄덕이며 따스한 눈으로 보고 있었는데, 이프리트를 그간 많이 챙겨준 것처럼 보였다.
“이제 이프리트를 시집 보낼 생각하니 눈물이 나네요.”
“정령왕의 유희가 이제 시집까지 가는 거야?”
“그래도 선남선녀니까 가야 하지 않을까요?”
레시아가 알면 날 죽일 거야...
그래도 이프리트는 뭐든 상관 없다는 듯이 벌써부터 졸기 시작했다. 편안한 얼굴로 나에게 기대는 모습이 사랑스럽게 느껴질 찰나에, 근처에서 거대한 질투의 바람이 불어 닥치기 시작했다.
“주인은 언제나 짐이 안보는 곳에서 다른 여자와 꽁냥거리고 있는가!”
검은 고양이의 울분이 이곳까지 터져 나왔다. 절대적인 질투로 인해 검은 마기가 힘껏 감싸더니 곧바로 사람의 형체가 되어 내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왔을 무렵. 연보라 빛의 머리카락이 나에게 쏠려있는 상태로, 분노로 일그러진 붉은 눈이 내 피부를 찔렀다.
“저, 저기. 레시아...”
“시끄럽다!”
위압적인 외침이 내 입을 틀어막고 곧이어 큰 소리에 잠에서 깬 이프리트가 레시아를 쳐다봤다.
“안녕. 마왕.”
“불의 정령왕이 지금까지 있으리라고 생각은 했지만, 다짜고짜 주인에게 붙어서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만들 것이라곤 생각하지도 못했노라. 그러니 당장 비켜라! 그 자리는 짐의 자리니라!”
“그렇구나. 비켜줄게.”
순순히 내 무릎 위에서 일어나더니 자연스럽게 레시아를 껴안고 붙어버렸다.
“자, 잠깐만!”
이프리트의 의도는 단순히 자신이 기대서 잘 수 있는 장소를 찾는 것뿐이지, 나와 꽁냥거리기 위함이 아니었다. 품속에서 고요하게 잠들고 있는 이프리트의 얼굴을 보며 갈팡질팡하는 레시아는 내 눈을 보며 신호를 보냈다.
[주인! 도움! 도움!]
[알아서 처리하세요.]
[이 배신자! 이 일은 두고두고 후회하게 될 것이니라!]
고개를 돌리며 레시아의 시선을 차단했는데 하얀 올빼미는 책상위로 올라와 나를 올려다 보았다. ‘드디어 나를 봤구나!’라는 듯이 질문이 순식간에 튀어나왔다.
“마스터. 오늘도 명계에 갈 방법을 확인하고 있습니까?”
“아니. 따로 갈 방법은 확인하지 않아도 괜찮아. 이미 루니아 누나에게 음식을 주문했거든...”
고통스럽지만 명계로 갈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물어보기 위함이다. 아직까지 이름을 알려주지 않는 딸 아이가 있으니, 사전 조사를 위해 이런 일을 준비하고 있었다.
“마스터! 아무리 일이 절망적이라고 해도 목숨까지 위태로운 일을 하면 안 됩니다!”
시나는 그렇게 말했다.
루니아의 음식만으로 내 목숨은 위태로워질 것이라는 말. 솔직히 루니아 누나의 음식이라기보단 연금술에 가까운 물질은 타이틀만 바꾸면 많이 팔릴 것 같지 않은가? 명계에 잠깐 다녀올 수 있는 약품이라고 지정하고, 그걸 비싸게 팔기만 한다면 명계에 관련된 조사가 순조롭게 이루어질 수 있는 발전의 초석이 될 것이다.
다만. 부작용이 있다면 왕복이 아니라 편도로 가게 된다면 돌아올 방법이 없기 때문에, 그게 운명이라고 생각해야겠지.
“그래...내 운명은 아마 여기까지 일지도 몰라. 그래도 시나. 항상 밝고 건강하게 있어야 해. 알았지?”
“마, 마스터! 안 됩니다! 저는 허락할 수 없습니다!”
식당에서 흥얼거리는 부드러운 음색이 흘러나왔다. 금발의 롱 웨이브가 언제나 파도처럼 넘실거리고, 얼굴만 봐도 자신도 모르게 화사하게 웃는 미소천사. 거기에 자애로운 붉은 눈이 나를 바라보며 분홍색 고양이 앞치마를 두른 체 입을 열었다.
“오늘 카일이 누나의 음식을 먹고 싶다고 해서 힘 좀 썻답니다아! 카일도 결국 누나의 음식에 길들여지는 거에요오!”
솔직히 “루니아 누나. 명계로 가야 하니까 음식 좀 만들어주세요.”라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상처받아서, 오랜만에 한번쯤은 입에 대고 싶다고 말을 했더니, 칠면조 구이 하나가 무지개 칠면조 구이로 각성해버렸다.
정말 재료에 뭘 넣었길래 무지개가 되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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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도 열심히 일하는 저에게 애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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