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 565
565
인간은 죽을 만큼의 고통을 느끼기 전에, 안정장치로 고통을 못 느끼도록 한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상황이 종료가 되고 서서히 안정이 된다면, 그 고통을 점점 느끼게 되기 시작하는데, 지금 명계에서 무지개 음식에 대한 고통으로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칠면조 요리를 한 입 베어먹었을 때 바로 기절할 줄 알았건만, 나도 어느 정도 내성이 되었는지 20초정도는 꾸역꾸역 입에 넣을 수 있었다.
입에 넣을 때마다 작렬하는 고통으로는 기절할 수 없었던 걸까? 결국 한계 수용치를 받아들일 수 없는 내 몸은 “너 미쳤어! 야! 당장 전원 꺼버려!”라고 말하자, 자욱하게 안개가 낀 강 앞에 누워있었다.
어두운 빛이 감도는 로브가 유령처럼 다가오고 있었는데, 사신이라면 낫을 꺼내 들었겠지만 나무배가 나아가는 노를 들고 있었다.
“흐응? 이곳에는 어떻게 오는지 잘 모르겠지만, 자주 볼 수 있어서 정말 좋은 거 같아. 그렇지 않아?”
“잠깐만 말하지 말아줘. 지금은 아무리 생각해도 벌어나지 말아야 할 일이 벌어지고 있으니까...”
분명 의식만 날아가서 명계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온 몸이 아파왔다. 이게 무슨 바보 같은 일인가? 루니아 누나의 요리는 영혼마저 상처를 낼 수 있는 음식이 되었나? 매번 독은 사람의 내부를 망치는 원인이 되지만, 그래도 영혼까지 망가뜨리는 경우가 없었는데.
-스윽. 스윽.
하얀 손이 소매에 뻗어서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마부터 앞머리를 넘겨주기 시작하는데, 너무 상냥한 나머지 고통을 잠깐 잊어버렸다.
“매번 이렇게 오다가 정드는 거 아닐까?”
“내 딸 아이가 무슨 일을 하는지 확인하는 것은 당연한 거라고 생각하는데?”
“나를 부르고 싶을 때는 딸 아이라는 명칭이 아니거든요~ 아주 명확하게 딸이니까. 애석하게도 아빠와 13대 마왕인 레프리시아에서 나온 명작이라고?”
그런가? 잘못 알고 있나? 그 전에 명작이라는 말은 둘째치고, 나는 아빠라고 부르면서 정작 엄마라고 불러야 하는 자에겐 레프리시아라고 본명을 말했다. 이건 잠깐이나마 걸고 넘어져야 할지도 모르지만 예민하게 굴지 않기로 하자.
“명작이라. 말은 그렇게 하는 걸 보니 영락없이 레시아를 닮았나 보네.”
자신을 치켜세우는 말은 많이 닮았다. 레시아도 틈만 나면 자신이 마왕임을 강조했으니까. 그러니 위화감이 들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다.
“너는 뭐라고 불러야 하지? 아직 이름을 알려주지 않았는데?”
“글쎄. 아빠가 지어준 이름이니까 알 수 있지 않을까? 항상 시간대가 달라도 아빠는 아빠니까.”
아직까지 후드를 벗지 않은 체 명랑하게 어려운 요구를 하고 있으니, 난감함이 머릿속에서 폭발하고야 말았다. 갈팡질팡한 내 마음을 바로 세워놓고 천천히 심호흡을 했다. 애초에 바보처럼 카일과 레프리시아의 이름을 섞어버리는 건 너무 구식이니 안 되고, 이름을 새로 지어줄 때만큼은 최선을 다하는 게 좋지.
“소피아.”
“응. 아빠. 시간대가 달라도 역시 내 이름은 알아주는구나?”
“알아주는 게 아니라 나는 이번이 너의 이름을 거의 지어주다시피 말한 거야. 그리고 내가 말한 것이 너의 진짜 이름인지 아닌지도 잘 몰라.”
죽은 자를 인도하는 뱃사공의 숙연한 이미지와는 다르게, 밝은 분위기로 한 바퀴 빙글 돌았다. 차분하게 펄럭이는 로브 사이로 천천히 대답하기를...
“예전에 내 이름을 왜 이렇게 지었냐고 물어보았을 때는 아빠가 이런 이름으로 지었다고 했어. 그러니까 지금 말한 이름 절대로 까먹지 말고 나중에 내가 태어났을 때 잘 지어주길 바래. 미리 이름을 지어줬다고 레프리시아에게 말하지는 말고!”
밝게 외치는 말과는 다르게 마지막에는 가시가 돋쳐 듣고 넘기기엔 너무 거슬렸다. 그러니 지금은 시간적 여유가 잠깐 있으니 물어보도록 하자.
“그런데 레시아에겐 왜 레프리시아라고 구분을 짓는 거야?”
“그야 당연히 아빠에게 너무 자주 달라붙잖아? 예전에도 레프리시아와 아빠에 대한 소유권을 걸고 결투를 피 터지는 결투를 펼쳤다고? 51전 0승 1패 50무였다고. 박빙이었는데 레프리시아가 비겁하게 내 정신을 흩트리는 바람에!”
짜증이 섞인 분노는 행동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오른쪽 발이 계속 땅바닥에 쿵쿵 찍어대고 있었지만, 모녀 사이에 피 터지는 결투를 하는 게 말이 되는 건가? 그것도 나에 대한 소유권을 걸었다니? 아무래도 미래의 내가 자리를 살짝 비운 사이에도, 암묵적으로 내기의 대상이 되어버린 듯 했다.
어떻게 미래에 가서도 좀 더 나아지지 않는 내 인생을 이렇게 쉽게 스포일러 당해야 하는 걸까? 그 이전에 피 터지는 결투에 대해 잠깐 생각을 해보았는데, 제발 내 생각이 틀리길 빌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 피 터지는 결투라는 거 설마 가위바위보냐?”
“아빠는 역시 모든 걸 다 알고 있다니까!”
그 놈의 가위바위보가 잊을 만하면 여기서 뜬금없이 튀어나오는구나. 레시아도 너무하지...어째서 내 소유권을 걸고 딸과 가위바위보를 하는 경우는 뭐냐고...하긴, 가위바위보로 인간의 땅을 흡수하는 것도 모자라서, 애초에 그것만으로 마계를 제패한 비정상적인 마왕이다.
지금에 와서 놀랄 것도 없어야 하는데 내 신변에 대한 것은 너무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일까? 아니, 이건 예민하게 반응해야 할 문제다. 잠깐 지끈거리는 머리를 해소하기 위해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옆에서 나를 올려다보고 있는 소피아의 붉은 눈과 마주쳤다.
“그런데 아빠는 이곳에 온 이유가 뭐야? 명계를 살아서 가는 방법을 찾고 있는 거지? 그것도 나를 통해서 말이야. 맞지?”
“맞아.”
“헤헷! 아빠는 매우 단순하구나! 방법이 없는 걸 있다고 생각하고 이곳에 오다니 말이야!”
“아니. 없지는 않아.”
없지는 않다. 엘티노스가 가봤으니까. 하지만 지금 엘티노스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기도 하고, 연락도 없기 때문에 자력으로 찾는 중이었다. 그런데 소피아는 미소를 지으면서 방법이 없는데 왜 이런 곳에 왔냐고 물어보는 듯했다.
“뭐 2%의 본심을 말하자면 너를 만나기 위해서야.”
“정말! 너무 기뻐!”
2%임에도 불구하고 폴짝 뛰어서 나를 껴안았다. 10%의 본심을 말한다면 너무 좋아서 까무러칠지도 몰라.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한가지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다. 이건 좀 넘어가고 싶었으나 확실하게 집고 넘어가는 내 성격을 이해해주길 바란다.
“그런데 내가 너를 소피아라고 부른들, 소피아가 진짜 이름인지 아닌지 알 방법이 없잖아? 틀렸다고 해도 맞았다고 거짓말할 수 있기도 하고.”
“그런걸 거짓말 해도 나에게 오는 이득은 없거든. 게다가 틀리면 틀렸다고 했겠지? 꼭 확실하게 물증이 있어야만 아빠가 편할 거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잡담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자는 분위기가 가시화되는 듯했다. 시간이 그리 많지 않긴 해도 잠깐의 시간이라면 허락하도록 하자.
“확실하게 가야 모든 것이 순조롭게 이루어지니까.”
“그건 맞는 말이긴 해도, 모든 것이 확실하게 지정하고 갈 수는 없으니까.”
모든 인생...그 중에서 내 인생은 기괴하게 꼬여있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다. 그러기에 조심스럽게 나아가면서 하나씩 확실하게 변수가 작은 편린보다 작다 하더라도, 그 변수를 제외하기 위해 최대한 신경을 써왔다. 하지만 소피아의 말대로 그 작은 변수라도 신경을 쓰며 제외를 해도, 다른 변수가 튀어나오기 때문에 끝을 보기 전까지는 확실하지가 않는 건 당연하다.
“그러면 소피아. 너의 말대로 이곳에 올 수 있는 또 다른 변수가 존재한다는 거겠지? 죽거나 아니면 죽음을 맞이 할뻔한 음식을 먹는 방법 말고.”
변수를 지우면 또 다른 변수가 나온다는 말.
명계에 올 수 없다는 확신을 변수로 뒤틀어버리는 말이다.
“당연히 있지. 그건 바로...”
뜸을 드리면서 내 긴장을 태웠다. 무엇이든 곧바로 말을 하면 재미가 없기 때문에, 약간의 시간을 지연시키는 것만으로도 극적인 효과를 창출해낼 수 있다는 그 자체는 꼼수에 불과하지만, 지금 나는 그 꼼수에 걸려버린 관객에 불과했다.
“내 후배가 되는 거야! 뱃사공으로!”
절차가 너무 오래 걸린다. 그 이전에 뱃사공으로 취직한다는 그 자체가 죽는 거 아닌가?
“소피아. 너는 뱃사공으로 일하는 그 자체가 죽어서 하는 거 아냐?”
“뱃사공으로 일한다는 그 자체가 죽는다니. 아빠는 딸 아이가 어떤 일을 하는지 관심을 기울여서 볼 필요가 있어. 애초에 뱃사공을 한다는 것은 죽은 자를 명계로 안내하는 역할일 뿐. 뱃사공 그 자체가 죽어있던 살아있던 아무런 관계가 없지.”
“아니, 명계에 있는 그 자체가 본래 죽어있는 자들의 세계잖아.”
“음. 그러네. 사실상 뱃사공도 죽은 자가 직접 이끌지만, 규정에서는 꼭 죽은 자가 뱃사공을 해야 한다는 말은 없거든. 이것도 또 다른 하나의 변수라면 변수가 되겠지.”
그런 가. 전에는 내 영향으로 인해 일을 했다고 하지만, 사실상 죽지 않아도 일을 할 수 있는 듯했다.
“하지만 뱃사공을 하기엔 절차가 너무 까다로워. 차라리 내가 반정도 죽어서 너의 도움으로 강을 건넌다면 모르겠지만, 되돌아갈 수 있는 확률이 없는 건 애초에 수단으로 생각하지 않아. 그러니 좀 더 다른 방법이 필요해. 다른 관점에서 보았을 때 좀 더 참신한 거 말이야.”
“음. 그럼 간단하게.”
간단하게?
“명계를 침공하는 거야!”
침공당하는 사람 다 갈려나가는 소리를 해맑게 웃으며 말하는 딸에게, 어떤 말을 해줘야 할지 고민의 늪에 빠질뻔했다. 왜 허무맹랑한 소리가 가능성이 있다고 믿으려 했을까? 다시 생각을 정리하고 입을 열었다.
“명계에서 일하는 녀석이 침공이란 단어를 쉽게 뱉지마. 백수 될 거야?”
“그래도 이곳은 아빠가 없으니 매우 따분한 걸!”
후드 속에서도 소피아가 볼을 부풀리며 투정을 부리는 모습을 생각하니 웃음이 나올 뻔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근엄해야 하니 표정관리를 하자. 표정관리!
“아빠? 세기말에 북두신권 전승자로 변하지 말아줘.”
“북두신권은 무적...아니, 네가 이상한 말을 하니까 다음에 나올 말이 자동으로 나올 뻔했잖아.”
글로만 이루어져서 실제 내 외형이 엄격하고 근엄하며 진지하게 바뀌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소피아가 그리 말할 정도라면 분위기적인 면에서만 바뀌었으리라. 지금은 그게 아니지...
“내가 너에게 물어볼 것은 하나 더 있어.”
“염라대왕은 삼천세계든 어디든 무슨 일이 터져도 안 나갈 거라 생각해.”
“그러니까 너에게 고민을 털어놓는 거야. 염라대왕이 움직일만한 것을 같이 생각하자는 거지. 비록 나에게 시간이 많이 남아있지는 않지만, 아빠가 선물 하나가 줘야겠구나.”
“선물!”
“양손을 내밀어봐. 그리 기대하지는 말고...”
후드 안에 자리잡은 어둠에서 붉은 안광이 빛났는데, 안리아스의 수정구를 품속에서 꺼낸 뒤에 소피아의 양손에 살포시 올려놨다. 많이 기대한 거 같은데 실망한 기색이 역력할 거 같았지만, 소중히 받아 미소를 짓는 얼굴에 마음을 놓았다.
“그러면 매번 보고 싶을 때 이걸로 연락해도 괜찮아?”
“매번 받을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자주 연락은 해둬.”
“응!”
내 후손들은 어째서 하나같이 애정결핍증상을 보이는가에 대해서는 나중에 생각을 해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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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아침 일찍 일어나서 새벽까지 일해요.
틈나서 쓸 수 있는 시간이 돌아와서 샤워기다리는 시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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