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 497
497
우선...
기묘한 17호 백장미를 가져오고 필름도 가져왔지만, 백장미 내용은 나를 보여주지 않고 5명이 감싸면서 보고 있는 터라, 필름 하나만 오른손에 이리저리 돌리면서, 안에 내용물을 볼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생각을 하는 도중, 내 주변에서 고주파가 터지기 시작했다.
“““꺄아아!”””
아니. 환호성이라고 해야 알맞은 단어겠지?
“대체 뭐가 나왔길래 그리 비명을 지르는 거에요.”
“아니! 주인은 보면 안 된다!”
“이건 우리들만 알아야 하는 비밀입니다. 마스터.”
대체 뭐가 실려있길래 느닷없이 루니아 누나부터 난리치고, 도미노처럼 레시아, 시나. 그리고 잡화점에 있었던 아리엘과 루시피나까지 전부 혼돈의 도가니였다. 잡지를 보는 와중에도 은근슬쩍 나의 눈치를 살피는 모습을 보면, 그 안에 17호다운 파격적인 모습이 실려있다는 건지 복장은 또 뭐였는지. 잔뜩 신경 쓰이게 만들고 내가 물어보면 아니라고 하니...
“자기도 꽤 고생이네? 그렇지 않아?”
은은한 보라 빛의 눈이 나를 감싸듯 따듯하게 맞이해주려고 했으나, 지금은 필름에 있는 비밀과 앞으로 해야 할 일에 대한 걱정도 태산이기에, 퉁명스러운 단어가 내 입에서 터졌다.
“릴리스. 옷은 제대로 입고 나와. 옷에 있는 단추는 다 잠그기 위해 태어난 거야.”
“내가 다 잠그면 자기가 하나하나 풀어줄 거야?”
“머리에 있는 나사마저 풀린 건 아니겠지?”
흔들의자에 앉아 생각하고 있는 사이에, 내 옆을 독차지한 릴리스의 요염한 분위기를 회화로 계속해서 부셔나가면서, 신경 쓰이게 만드는 미소 때문에 눈을 마주해야만 했다.
“대체 이번엔 뭐야?”
“아니. 그냥. 요즘에는 나를 상대해주지 않은 것 같아서?”
“평상시에도 상대해주지 않았다만?”
“흐응? 그래? 그러면 지금은 상대해줄 거야?”
무섭게 왜 이러는 걸까? 그렇다고 방해되니까 저리 가라고 말해봤자, 오히려 더 무시무시하게 달라붙을 것 같으니 필름을 다시 바라보며, 이쪽에 신경을 더 쓰기로 해보자.
“그런데 이 필름에 대해 알고 있어?”
아무리 생각해도 이미 머리는 돌아가지 않기에, 별 기대하지 않고 릴리스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아니. 이런 투명한 필름은 어디서 얻은 건데?”
“그야 저 백장미 17호인지 18호인지로부터 떨어졌는데, 나중에 셀이 찾아와서 잡지 2개를 습득을 한다면, 완전체 셀로 진화할 것 같아서 미리 회수한 거야.”
릴리스의 부드러운 손이 어느새 내 팔을 타고 손목으로 따라 올라가, 같이 필름을 부여잡고 노려보면서 입을 열기를...
“그러면 그 필름을 이용해서 17호 잡지를 보면 되지 않을까? 나라면 그렇게 중요한 메시지를 숨겨놓을 것 같은데?”
“그 증거는?”
“여자의 감이라고나 할까? 내기 해볼래? 내 말이 맞으면 오늘 밤 나와 같이 자는 걸로?”
“내가 얻는 게 없잖아!”
얻는 게 없으면 하지 않는 게 좋다. 가끔가다 고생을 사서하는 것도 청춘이라고 하는데, 그러다 모든 걸 잃고 길바닥에 쓰러지기 마련. 항상 자신이 도망칠 구멍은 파고 있는 게 좋다.
“아니지. 얻는 건 있지. 자기가 뭘 원하는지 나에게 말을 해주고, 내기에서 이길 경우 그 내용에 따라서 무엇이든 한가지 들어줄게?”
무엇이든 하나라.
그 하나를 얻기 위해 내가 이 위험을 감수할 만한 이유라도 있을까?
아니, 전혀 없다. 없긴 한데...
“좋아. 넘어가주지. 내가 이기면 레시아와 어쩌다가 사이가 나빠졌는지 들어야겠어.”
“뭐?”
듣고 싶은 것은 있기에 이렇게 제안했지만, 릴리스의 표정이 한 순간에 일그러지다가 “그래. 좋아.”라는 말과 함께 다시 요염한 표정으로 복구시켰다. 복구시키는 속도가 너무 빨라서 잡화점이 부셔졌을 때. 원래 모습으로 수복한 기분이었지만 어쨌든 지금은 17호를 가져가기 위해, 릴리스와 나란히 걸어서 회수하려고 했던 찰나였다.
“안 돼요! 지금은 가져가면 큰일나요!”
아리엘이 다급하게 팔을 벌리며 길을 봉쇄하기 시작했을 무렵. 그 틈을 타서 레시아와 시나가 마법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잠깐! 뭐 하는 짓이야!”
-파앙!
충동적인 방어본능으로 나와 릴리스를 감싼 빛의 장벽이 사라지고 있을 때, 루니아 누나를 필두로 잡화점에서 탈출하기 시작했다. 무슨 영문인지 몰라도 17호에 뭐가 담겨 있는지 잘 모르겠으나, 지금은 저들을 잡아야 하기에 릴리스에게 레시아를 맡기고, 나는 루니아 누나를 쫓기 위해 발을...
“저기? 자기야? 어째서 루시피나와 시나는 쫓지 말라는 거야?”
“그 둘은 부르면 오니까. 이제 질문은 끝났지? 일단 찾고 내기를 진행하자고.”
“그래야지.”
나는 쫓아가기 위해 방향을 찾고 있는데, 릴리스는 가만히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하는 듯 보였다. 그렇다고 “어이! 릴리스! 빨리 찾자니까!”라고 재촉할 수 있었으나, 지금은 보기 힘든 장면이 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었으니.
“어라? 짐이 왜 이곳으로?”
“어라라? 이곳에 왜 있는 건가요오?”
분명 밖으로 출타했던 4명이 전부 집안으로 돌아왔다. 릴리스가 상대의 무의식을 건드리는 마법을 사용한 걸까? 영문은 모르겠지만 약속이라도 한 듯이 동시에 돌아온 4명은 다시 탈출하려고 했으나, 내 손이 빛보다 빠르게 백장미 17호를 낚아채면서 상황은 종료했다.
“주인! 뭐 하는 짓인가! 돌려주거라! 냐아아아아앗! 아파! 아프다! 놔라!”
레시아가 사람으로 변했기에 이번엔 인간의 귀보다는 살짝 뾰족한 끝부분을 잡아당기면서 위로 들어올리기 시작했다.
“고양이 모습이 아니니까 비명소리는 ‘꺄’로 시작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냐’로 시작하는 게 아니라?”
“그래도 ‘냐’로 시작하는 비명이 짐의 귀여움을 한 단계 높여주기 때문...냐아아앗! 그만하거라!”
이 마왕은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어쨌든 17호를 펼치고 살펴보는 도중 몽마로 변장한 내가 슬픈 표정을 하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었으니, 다음 미래가 너무 참담하여 앞으로 살기가 싫었다고 한다. 다만, 릴리스와 같이 찍은 사진이 있는 것으로 볼 때.
“저기 릴리스? 이번 내기는 취소해도 될까?”
“아니.”
방긋 웃으며 내 제안에 거절한 릴리스는 협박이라도 하는 듯, 내 품에 있던 필름을 살며시 뺏어갔는지 자신의 눈과 잡지 사이에 필름을 두고 확인하기 시작했다.
“흐응? 정교하게 숨어있긴 하네. 그래도 내 말이 맞는 거 같은데?”
“응? 뭐가? 난 기억이 안 나는데?”
나는 오리발을 내밀기로 했다.
몰라. 내기를 했던가? 잘 모르겠는데?
“방금 전에 내기를 철회한다고 해놓고 남자답지 않게 발을 빼는 거야?”
“내기? 내가 뭔가 했던가? 미안하게도 나는 어릴 때 불행한 사고를 당해서, 단기기억상실증이 수도 없이 일어나거든.”
“그래? 그러면 저번에 같이 뜨거운 밤을 보낸 것도 기억이 없겠네?”
“내가 아무리 단기기억상실증이라고 해도 그런 일은 단 1%도 없었어!”
사실 머나먼 과거에 한번쯤은 있었지만.
어쨌든 릴리스가 생각하고 있는 범위 내에서 없는 말이었다.
“단기기억상실이라면서 그런 건 잘 기억해내잖아?”
“아...”
유도심문이었냐!
나를 어떻게 처형할지 에너지 한 가득한 표정으로 달라붙은 릴리스는, 이번엔 나에게 필름으로 투과된 잡지를 보여줬지만, 애석하게도 붕대가 내 눈을 가려버리는 바람에 보이지 않아서 대신 읽어달라고 했다. 듣기만해도 이상한 기분이 이리저리 끈적하게 달라붙는듯한 야릇한 목소리로 다음과 같이 말하길.
“황무지에 빨간 크리스탈을 들고 무릎을 꿇어라.”
“그건 무슨 암호에요? 그게 통하는 건 사이먼 퀘스트밖에 없는데. 잡화점을 감싸는 소용돌이가 와서 우리를 과거로 보내준다고 하는 건가? 차라리 시간의 오카리나를 들고 캐논변주곡을 연주하라고 하지.”
암호에서 정성은 1도 들어가지 않았지만 시도는 해봐야 알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빨간 크리스탈은 이곳에 존재하지 않았고, 어디서 구해야 하는지 알 수 없을 무렵. 내 팔에 있던 붕대가 스르륵하고 풀리기 시작했다. 헐거워진 붕대를 벗어 던지고 싶어도, 지금은 옷을 입은 상태이니 나중에 몸을 씻으러 들어갈 때 풀면 되겠지.
지금 당장 빨간 크리스탈인지 뭔지 구할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일까?
“매우 놀라운 사실이긴 하지만, 이곳에서 또 다른 엘티노스의 잡화점을 찾아야 할 거 같아.”
“어라? 잡화점이 또 있어?”
말과는 다르게 릴리스는 별로 놀라지 않다는 듯이 시큰둥한 표정으로 반응했다. 기다란 은발이 내 어깨를 감싸고 있을 때 레시아는 일어서서 소리치기 시작했으니.
“릴리스! 옷이나 제대로 입고 말하거라! 와이셔츠만 입고 있으면 돌아다니면서 주인을 유혹하지 말지어다!”
어라? 와이셔츠만 입고 있었던 건가? 하긴 실루엣의 형태로 있기에 뭘 입었는지도 내가 볼 수 없는 건 당연하구나. 얼굴이야 평상시에 봐왔던 모습으로 상상하면 되겠지만, 설마 옷을 대충 입고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그래도 얼굴의 표정은 확인하잖아?”
“당연히 얼굴의 미세한 표정은 마나가 감지하도록 해놨으니까. 눈이 잘 보이지 않는다고 해도, 어떤 얼굴 표정을 하는지 알 수 있게 말이야. 그리고 이제 가을이라 낮에는 더워도 밤에는 쌀쌀하니까 제대로 좀 입으라고.”
“날 걱정해주는 거야? 기뻐라~”
“기뻐하지 말고 옷부터 제대로 입어!”
어쩐지 릴리스가 달라붙을 때 위화감이 든다고 했더니, 그 전에 여태껏 릴리스의 복장에 대해 아무런 태클도 걸지 않았다는 잡화점 멤버들이야 말로...아니, 백장미 17호에 정신이 팔려서 신경 쓸 틈이 없었다는 게 맞겠지.
어쨌든 주변 마나를 재배열하면서 나머지 다른 장에 있는 모습을 보도록 했다. 상상이상으로 나에게 심한 짓을 한 사람은 누구인지 모르겠으나, 아이스크림을 내 입에 쑤셔 넣는 행위까지 일삼는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
앞으로의 미래가 너무 걱정되어 한숨밖에 쉬지 못하는 나에게 다시 말을 걸어온 릴리스.
“이곳에서는 이런 옷이 유행인가?”
“어디 사무직에서 일하게 생겼네. 정장 스커트가 비정상적으로 짧은 거에 비해, 릴리스도 여성용 정장은 잘 어울린다고 봐.”
“그래? 고마워. 그나저나 옷을 어떻게 볼 수 있는 거야?”
“아까 레시아에게 들은 충격과 공포의 말을 듣고 마나를 재배열해서 세심한 것까지 감지하도록 설정했어. 옷의 색상은 볼 수 없어도, 옷을 입고 있는지 없는지는 확인이 가능하지. 지금이라면 눈을 감고 날아오는 돌을 피할 수 있을 정도야.”
날아오는 돌이라.
아이니스가 느닷없이 보고 싶긴 하네.
아이니스와 하는 만담이 그립긴 했다.
하지만 지금은 300년이 지난 시점으로 아이니스는 늙어서 죽고 3번째 혹은 4번째 아이니스의 후손이 태어날 때니까. 지금이라도 육포가 사라지지 않는다면...
-똑똑똑
잡화점에 노크를 했으니 분명 매너가 한 가득 넘치는 사람이라 생각하고 발 걸음을 옮겼다.
“누구세요?”
“꺄아아아아아악!”
하긴...지금 내 외형은 미이라와 다를 바가 없어서, 박물관에 전시하려고 많은 사람들이 노려도 이상할 것이 없겠지. 그래도 귀와 창문을 찢어놓을 듯한 비명이 한차례 울려 퍼지고 나서 한 소녀는 입을 열었다.
“괴! 괴물! 지금은 할로윈이 아니라고요! 사탕도 없는데!”
“진정해라 꼬마야. 나는 괴물이 아냐.”
“꼬마라뇨! 저는 어엿한 숙녀 아이리스라고요!”
꽤나 오래 전에 있을 법한 패턴인데?
“숙녀를 놀라게 한 책임으로 육포나 사세요.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비법으로 만들어졌으니, 맛 하나는 저의 조상님 이름을 걸고 약속하죠.”
하늘에서 아이니스가 호통칠듯한 하늘을 찌르는 건방짐을 보아하니...아니, 어쩌면 아이니스가 300년을 지나 환생한 것처럼 보였다. 당찬 성격과 아무리 놀라도 공황 상태에 빠지지 않는 침착함이야 말로 300년이 지나서 못 알아 볼 것 같았던 아이니스의 후손이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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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니스의 자손들만큼은 인성이 유전자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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