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 496
496
내 묘비명 앞에 백장미의 전설이라는 수식어가 붙어서, 이것보다 더 충격적인 글귀는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세상은 살아가면서 놀라움의 연속이라고 했던가? 너무 놀라워서 쇼크사할 정도로 치사량을 지닌 충격적인 말이 떠올랐으니. 지금 내 앞에서 요요를 휘두르며 촐싹거리는 녀석이 내 다음 세대...에서 좀 멀리 떨어졌지만, 엘티노스 잡화점의 주인이라고 지칭하고 있었다.
요란하게 돌아가고 있는 소리와 그에 맞춰서 자신의 주인에게 돌아가는 장난감. 그 장난감이 무슨 위력을 지니고 있겠냐고 생각하겠지만, 어처구니 없게도 내 주변에 있는 커다란 구덩이와, 벽에 금이 가고 건물이 무너지기 일보직전까지 오게 된 원인을 찾으라면, 요요를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겠지.
레시아와 시나, 그리고 루니아 누나는 무슨 생각으로 싸우지 않는 건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내 앞에 있는 녀석부터 어떻게든 해야겠다. 마젤란이라는 거구는 이미 아군의 요요덕에 정신을 잃었고, 이렇게까지 정신이 산만한 녀석을 어떻게 주인으로 선택한 건지 모르겠으나.
요요가 특수한 경우가 아니라면 레인이라는 남자가 특수한 경우겠지.
“벌써부터 마젤란을 쓰러뜨리고 내 공격을 이렇게 버티다니, 역시 평범한 미이라가 아니로군.”
“아니. 저 덩치는 네가 휘두르는 걸 잘못 맞고 기절한 거야. 애초에 내 탓으로 떠넘기지 말아줄래?”
그렇다면 아직까지 요요를 휘두르고 있는 저 남자는 어떤 비밀을 감추고 있는 걸까? 아까 나무 삼각자도 그렇고, 1M정도 길이의 철자도 그렇고, 하나같이 전부 막강한 내구도와 파괴력을 보여준 것도 모자라, 내가 들고 있었던 빛들이 죄다 막혀버렸다. 지금은 내 몸을 보호하기 위해 안에서 회전만 시키고 따로 방출은 하지 않았지만...
레인에게는 마나는 오직 무의식적인 신체강화를 위해 회전할 뿐. 무기로 마나가 이동한 흔적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어디서 솟아오르는 자신감으로 자신을 포장했는지 몰라도, 이런 상황에서 웃을 수 있다는 게 더 신기했고, 번뜩이는 살기에 내 몸은 너무 빠를 정도로 반응했다.
“전투 중에 무슨 생각을 오래 하는 거지!”
요요가 땅에 부딪칠 때 나오는 소리가 ‘콰지직!’하고 소리가 난다면, 요요가 부셔졌거나, 땅이 부셔진 거라 보면 되는데. 내 경우에는 요요의 내구도를 이기지 못하고 땅이 무너져버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음. 역시 요요는 전투와는 안 맞는 건가?”
버린다는 것에 아무런 마음도 쓰지 않고 뒤로 시원하게 던지면서 벽에 맞았을 때, 요요는 산산조각이 난 상태로 자신의 흔적을 남기겠다는 굳건한 의지의 파편만이, 기절해있던 거구의 배로 떨어지고 있었다.
검은 코트 안에서 본래 길이를 측정해야 하는 도구가, 1M정도 되는 흉악한 무기로 바뀌어버리는 상황을 눈으로 확인하면서, 말도 안 된다는 생각이 내 머리와 마음을 복잡하게 해서, 한 가득 답답해진 입으로 토해내듯 소리치게 만들었다.
“마법사도 아니고 수식도 그려 넣지 않고 마법진도 없는데, 자신이 잡고 있는 도구를 강화할 수 있다는 게 말이 되냐?”
도구를 봐도 마법적으로 처리된 것이 하나도 없다.
그럼에도 저 녀석이 집는 물건이 죄다 무기화되어 공격하는 이 기분.
레인이 진짜 무기를 잡는다면 어떻게 될까?
상상만으로도 그 파괴력은 실로 가늠이 잡히지 않았다.
“이런...비밀을 파악하다니. 그 짧은 시간 안에? 매우 뛰어난 통찰력이라고 말해야 하나? 우선 단어 선택은 제대로 한 거 맞지?”
“맞아.”
아무래도 레인의 성격이 본인의 강점을 다 강물에 내던지는 것처럼 보였다.
허탈한 감정이 내 다리를 붙잡기 전에 빠르게 움직이면서 수직으로 내려치는 레인의 공격을 피하고, 여전히 즐겁게 웃고 있는 레인을 향해 공중에 떠있는 동안 억지로 몸을 틀어서 왼발로 돌려 찼다. 저 웃는 얼굴을 때릴 수 있다면 오늘 받았던 스트레스를 다 날릴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디선가 나타난 기묘한 물건으로 겨누기 시작하면서, 발로 차기 전에 방어하기로 다시 마음을 먹었다.
-타타타탕!
어마어마한 충격이 나를 공중에서 날려보내고 가까스로 균형을 잡아 지상에 착지했을 무렵. 내 앞에 굳건히 버티고 있는 빛의 방패가 서서히 사라지더니, 얇고 검은 색의 심지 같은 것이 땅으로 떨어졌다.
“저건 또 뭐야?”
공격을 당한 내 입장에서는 기가 막힐 정도였는데, 분명 만년필 비슷한 무언가가 레인의 왼손에서 빠르게 튀어나오더니, 뒤에 있는 버튼 같은 걸 누르자마자 음속처럼 빠른 무언가가 튀어나갔다.
“샤프심마저 뚫지 못하는 건가? 역시 마법이란 건 굉장하네?”
“샤프심?”
“어라? 댁은 지금 시대에 부활했으니 잘 모르겠구나. 최근에 필기도구의 발달로 흑연을 가공한 연필이 으뜸인데, 최근에는 하나로 오래 쓸 수 있는 샤프라는 물건은 샤프심을 넣으면서 사용할 수 있거든.”
“그 필기도구가 총탄보다 빠른 것이 말이 되냐!”
그나마 살고 싶다는 방어본능이 제대로 발휘되어서 다행이었지만, 아까 날 노리는 부위는 전부 치명상에서 아슬아슬하게 비껴나갈 정도. 나를 죽일 생각이 없어서 노렸다면 무시무시한 명중률이었다.
상대하면 상대할수록 답이 없는 상대의 능력과 답이 없는 상대의 성격을 마주하고 싶지 않았기에, 지금은 레시아나 다른 사람들이 내 무덤을 파서 물품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해줬으면 좋겠는데.
게다가 먼 곳으로부터 생명체들이 감지되기 시작하면서, 이곳으로 빠르게 오고 있는 것으로 보아. 아까 레인이 요요로 난동을 부린 끝에 근처에 있던 주민들까지 신고가 들어온 모양이다.
“대단하군.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주변에 사람까지 불러오다니. 다만...”
몸 안에 있던 에너지가 평소보다 더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하면서, 손에는 작은 구체가 생성되기 시작했다. 한 때 창조주가 어둠을 거둬내기 위해 사용했던 빛의 양과는 터무니 없을 정도로 적지만, 지금 이 안에 있는 사람들의 시력을 일시적으로 앗아가기엔 충분하지.
“잠깐! 도망칠 생각을!”
-파아앙!
건물 안쪽에서 어마어마한 빛이 터져나가는 것을 틈타, 유리가 없기 때문에 대신 벽을 때려부수면서 밖으로 탈출하기 시작했다. 내 앞에 마법공학으로 이루어진 총이나 대포로 무장한 경비원들이, 나를 향해 발포하기 시작하면서 이곳에서 잡화점으로 돌아오기 전까지, 무수히 많은 섬광과 체력을 소비하면서 리베리티아 고원으로 몸을 숨겼다.
“하아! 하아...제길! 이 시대는 뭔가 잘못 되었어!”
“아서라 주인. 그래도 또 다른 잡화점이 무사히 있는 것에 감사해야 하지 않는가? 그래도 예전에 잡화점 안에서 짐과 주인의 추억이 고스란히 담긴 장소이기에, 사실 잡화점이 아예 사라질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것이 아니라서 정말 다행...냐아아아아앗!”
안 그래도 지금 화가 머리 끝까지 솟아올랐는데, 이 고양이는 대체 무슨 헛소리를 밥 먹듯이 하는 걸까나!
“지금 그 추억이 담긴 장소에서 새로운 주인이 나타나, 저를 찢어 죽일 뻔했는데 그런 말이 나와요!”
“마스터. 그런데 레인이라는 그 남자의 전투방법은 뭔가 기묘하지 않습니까?”
“확실히.”
“냐앗!”
시나의 말을 듣고 머리에 생각이 회전함에 따라, 레시아에게 걸었던 아이언 클로를 풀어줬다. 루니아 누나는 귀여운 아이를 발견했다는 듯이 머리를 포니테일로 묶고 아까 레인이 있던 장소만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는데, 지금 말을 걸었다간 무슨 일을 당할지 몰라서 시나에게 시선을 집중하기로 했다.
“전투방식이 그냥 잡고 있는 것들이 전부 무기처럼 되어버린 것 같아. 사실 할버드 안에 마법처리가 상당했고, 얼마나 좋은 광물을 사용했는지 간단하게 잘리지도 않았어. 그나마 공격적인 의지가 강해서 빛으로 검을 만들고 잘라버렸지만, 애석하게도 나무로 된 삼각자와 철자는 베어내지 못했거든. 단순한 무기화라면 마나로 감싸서 내구도를 일시적으로 끌어올리는 것이 있지만, 레인의 경우에는 오직 마나는 신체능력 강화뿐. 무기로 가는 흐름은 전혀 없었어.”
“저기? 카일! 저 레인이라는 애하고 같이 백장미를 찍으면 어때요오? 마침 저런 밝은 캐릭터가 카일을 리드한다면 어마어마한 작품이...”
“시나는 어떻게 생각해?”
“마스터의 말대로 무기화로 만드는 것 같지만, 만약 마나를 사용하지 않는다면 그의 의지나 무언가가 만드는 것일 겁니다. 아니면 선천적인 능력으로 이른바 초능력자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군요.”
“그런 초능력자와 같이 여장을 시켜서, 계속 찍는다면 백장미가 부활할 거에요오! 카일! 그러니 섭외하러 가죠오? 빨리이! 저 애라면 제가 시키는 모든 것을 다 해줄 거라고 생각합니다아!”
“시끄러워요! 여기까지 와서 백장미를 찍을 생각이야! 이번엔 백장미 무슨 편인데요! 300년 이후 미래의 모습을 위해서 여장을 시킬 거라면 당장 그만둬요! 입에 흐르고 있는 침은 언제 닦을 거야!”
“하아! 아아아!”
“내 앞에서 거친 숨 내뿜지마!”
단단히 망가져있는 루니아 누나를 진정시키는 동안, 검은 고양이는 비틀거리면서 일어나 입을 열었다.
“지금은 잡화점이 2개인 거라고 생각하면 문제가 되는 것이 뭐가 있는가?”
“잡화점에 인격이 붙어있다는 전제하에 세린이 두 명이 되는 거겠네요.”
“세린? 누구인가?”
아. 지금 잡화점에 있는 인격체가 세린이라는 사실은 나만 알고 있었지?
“잡화점도 살아있잖아요. 눈 떠보니 재료가 들어와있고, 손상을 해도 복구시켜주는 것이야 말로 세린이 했던 일이니까.”
“이제 숨겨놓은 여자가 탄로날 것 같아서 잡화점에게 이름을 지어주려고 하다니?”
“아니에요! 진짜라고요! 세린이 레시아처럼 힘을 자유자재로 이동할 수 있게 도와줬다고요!”
“마스터. 그래서 어떤 여자입니까? 빛으로 태우면 되는 겁니까?”
“태우지마!”
이번엔 레시아와 시나를 진정시키느라 시간을 좀 소비하고, 그나마 이해하기 쉽게 정리하여 내가 말한 이야기를 끝까지 들은 결과.
“당연히 잡화점은 살아있다고 생각은 했지만, 그 정도일 줄은 몰랐노라. 게다가 카린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면 언젠가 그 모습으로 뛰쳐나오는 거 아닌가?”
“그건 아닐 거에요. 그냥 모습을 복사한 것뿐이지 자신의 실체는 원래 다른 형태로 존재한다고 하더라고요. 레시아가 말한 3차원을 넘어 4차원의 모습일지 5차원의 모습일지는 모르겠지만...”
그나저나...
“레시아. 제 무덤에서 뭘 발견했어요?”
이제 본론으로 좀 돌아와서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자. 내가 레인과 난리치고 있는 동안 나보다 더 강한 3명이 아무런 일도 안 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기에, 기대를 담아서 입을 열었더니 하얀 올빼미가 허공에서 물건을 꺼내기 시작했다.
“이런 게 있었습니다.”
백장미 1호집부터 17호까지...잠깐? 17호까지 찍은 적은 없는 걸로 알고 있는데?
“루니아 누나. 17호는 또 뭐에요?”
“그러게요오? 분명 특집을 찍고 월간은 안 찍었던 걸로 기억하는데에?”
17호를 들었을 때. 투명한 필름 같은 것이 빠져 나왔다.
마나로 감지하면서 사물을 둘러보기 때문에, 지금은 투명하든 반투명하든 실루엣이 그려져서 쉽게 찾을 수 있지만, 이 자리에서 해독하기에는 크나큰 어려움이 따르기에 잡화점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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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도 자도 피곤한 이 기분...
역시 가을은 자기 좋은 날인듯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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