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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트리옴의 말대로 카일 씨에 대해 조사를 하려고 하지만,

검은 높새바람과 관련이 있는 것을 먼저 알아봐야 하지 않을까?

아르트리옴은 항상 나에게 도움이 되어주는 척을 하고 있지만,

속을 알 수 없으니 언제나 경계를 해야 하는 남자라는 것은 확실하다.

-아무도 인지하지 못하는 아르트리옴을 본 아리엘의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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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6월의 입구를 넘어서 천천히 아침 해가 떠오르는 시간이 빨라짐과 동시에, 내가 눈을 뜨는 경우도 빨라지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켈모리아가 주기적으로 정기를 공급해주겠다며 나에게 성희롱을 하려고 하자마자, 각방을 쓰겠다는 나의 선언에 크나큰 충격을 받은 듯이 기운이 없어 보였지만, 그 덕에 나는 쇼파에서 개운하게 눈을 뜰 수 있었다. 잠을 자면서도 방해를 받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혼자서 자는 것이 편한 게 아니라, 켈모리아와 같이 잔다면 항상 불편해서 잘 수 없었으니까.


보통 씻고 아침을 준비하는 것을 누구보다 빠르게 해야, 이 집에 살고 있는 다른 사람들을 굶기지 않고 모두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오전 6시 20분 정도가 지났을 때는 세피르와 이비가 일어나서 모두 깨우기 위해 움직이고 있고, 밀리아 또한 일어나서 아침마다 우유를 꺼내 마시기 시작한다. 하루에 한번씩 우유를 주기적으로 먹고 있는 밀리아는 항상 나를 째려보며 마시고 있는데…….


“너는 대체 무슨 유전자를 가지고 있길래 나보다 스타일이 좋은 거야? 최근에는 몸이 더 좋아지지 않았어?”


“그거야 로버트 씨에게 트레이닝을 받으니까. 마법은 켈모리아에게 배우고 있고, 검술은 로버트 씨에게 배우고 있어.”


나도 밀리아에게 신기할 것이 있다면 언제 어디서든 드릴처럼 말려있는 기다란 금발이라고 해야 할까? 어떻게 해놓으면 저렇게 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늘 사람에게 부여되는 미지의 영역이라고 해야 할지. 밀리아의 손이 느닷없이 내 허리에 가기 시작하면서 입을 열었다.


“한 번에 2가지를 전부 습득하는 네가 더 신기해. 그건 그렇다고 해도 피부가 예전보다 더 탄력이 생긴 것 같아서 부러워.”


“내 허리를 만지작거리면서 평가하는 건 그만둬줄래?”


최근 밀리아도 내 옆에만 오기 시작하면 자신과 비교를 하겠다며, 이리저리 만지고 있는 추세라 요즘은 밀리아도 경계대상에 속해있는 추세다.


“그래서 오늘도 이브센티아에 있는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러?”


“아니. 오늘은 잡화점에 볼일이 있어서 그쪽에 먼저 들릴 거야. 켈모리아도 마침 잡화점으로 찾아가서 물건 좀 구입해달라고 했거든, 애석하게도 밤에만 여는 잡화점인데 어떻게 물건을 구매하라는 건지 잘 모르겠지만, 지금은 입욕제가 떨어졌다고 반드시 입수하라고 했어. 오늘 그거 입수하지 못하면 집에 들어와서 편하게 쉴 생각을 하지 말라고 하더라고.”


최근 켈모리아가 입욕제에 대한 집착이 늘어나기 시작하면서, 입욕제가 없는 날에는 무조건 나와 같이 목욕탕에 들어간다고 난동을 부린 적이 있는데, 그게 오늘 밤이 되지 않으려면 카일 씨에게 사정을 설명하면서 분주하게 움직여야 했다. 분명 카일 씨라면 나의 마음을 알아주고 특별히 싼 가격에 팔아줄지도 모른다.


잠깐만?


“킁킁….”


밀리아의 하얀 피부로부터 희미하게 느껴지는 라벤더 향을 맡았다. 어디서 익숙하게 날아오는 향이라고 생각했는데.


“어째서 입욕제가 예정보다 빨리 사라지나 했더니! 밀리아!”


“칫! 들켰다!”


밀리아가 순식간에 단거리로 순간이동하면서 사라졌고, 밀리아가 사라짐과 동시에 냉장고 안에 있던 과일과 채소들이 사라졌다. 벌써부터 요망하게 사라진 밀리아는 전에 입욕제를 넣어서 목욕을 해보라고 권유를 했지만, “그런 걸 내가 왜 사용해야 하는데?”라고 거절한 적이 있었다. 결국 입욕제가 담긴 목욕탕에서 켈모리아가 억지로 밀리아를 끌고 간 사건이 있었는데, 그 이후로 우리들 몰래 입욕제를 가져가서 쓰는 걸지도.


“하긴. 이 세상은 보드게임으로 일이 변하는데 말이지.”


다양한 목적이 존재하는 이 세계에서는 원래 무궁무진한 이야기가 들어가 있어야 했다. 마왕을 제거하기 위해서 분주하게 움직이는 용사들의 이야기나, 세상이 멸망하기 직전의 다시 재구축하기 위해 세계석을 찾는 사람들의 이야기. 그런데 내가 있는 이곳에서는 보드게임하나 때문에 일이 난장판이 되어버린 경우가 있다.


당연히 검은 높새바람의 다른 세계를 불러오는 것만큼은 막아야 하는, 그나마 정상적인 이야기가 존재하지만, 지금은 켈모리아가 위기의식이 없는 건지. 아니면 잡화점이 알아서 해주길 바라는 것인지. 아무런 일도 없다는 듯 입욕제 하나에 목숨을 걸어야 할 정도.


“뭔가 이 세계는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어.”


“그래도 지금은 평화로워서 좋잖아? 켈모리아 학원장님이 섣불리 움직이지 않는 이유는 전부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검은 높새바람은 우리에 대한 정보가 한 가득하지만, 우리는 아직 검은 높새바람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어. 저번에 잡화점으로부터 파견 나온 루시피나 씨에게 들은 바로는, 공중요새처럼 하늘에 떠다니면서 돌아다니고 있다 하니까. 그것 때문에 우리가 좌표를 알아도 수시로 변해서 찾아갈 수 없다는 거지.”


“나에게 쌓여진 지식으로는 이곳에는 이미 수백, 수천 대를 가진 비공정이 있다고 들었어. 그 비공정으로 수색할 수 있으면 손쉽게 찾을 수 있잖아?”


검은 뱀의 모습을 한 세피르는 베이컨을 입에 물면서 이야기 했다.


“그래도 대부분 권력자들은 검은 높새바람의 지원을 받아서, 비공정으로 설령 발견했다고 한들 보고를 할 리가 없어. 여태까지 공중요새처럼 떠돌아다니는 검은 높새바람의 본거지에 대한 보고를 받지 못한 이유라면, 대부분 사람들의 재력은 검은 높새바람에 의한 것이니까. 그건 그렇고 어디서 그렇게 많은 돈을 가져왔는지도 의문이네.”


“알았으니까 다 삼키고 말해줘.”


이비는 접시 위에 있는 음식을 순식간에 해치우고 나서 더 달라고 “삑삑!”하며 울었다. 작은 뱁새의 몸통에서는 거대한 근육질을 가진 팔이 튀어나와 접시를 들고 있었고, 이제 익숙해져야 하지만 언제나 봐도 괴기한 장면에, 베이컨과 계란프라이를 떨어뜨릴 뻔했다.


“하아~”


네글리제를 입고 잠에 들었는지 그 옷차림으로 밖으로 나와, 한숨을 내쉬고 있는 켈모리아에게 아침인사를 건넸다. 아침인사라고 한다면 아마 “안녕히 주무셨어요?” 라던가 “좋은 아침이에요.”라고 먼저 말했지만. 의욕이 다 사라진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전혀 잠을 못 잤어. 아리엘이 곁에 없으니까. 아리엘도 내가 곁에 없어서…….”


“푹 자고 일어나서 상쾌하네요.”


일부러 켈모리아 앞에서 웃어 보이면서까지 행복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그런 나의 모습을 보고는 켈모리아가 순식간에 내 다리를 잡고 울기 시작했다.


“으아앙! 나에게 돌아와! 요즘 널 안질 못하면 잘 수가 없단 말이야아아아!”


“자, 잠깐만요! 아침부터 뭐 하는 거에요! 어른이 대체 왜 우는 거냐고요!”


날 당황스럽게 하는 재주가 요즘 많이 늘고 있는 켈모리아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오늘 하루 따로따로 잤다고 이렇게 사람이 변해버린 켈모리아에게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누가 밤에 계속 장난치래요?”


“그래도 요즘 아리엘을 껴안고 자는 것이 더 좋아져서. 로버트 씨에게 훈련을 받으니까 요즘 피부도 더 탱탱하고 몸매도 더 좋아졌잖아.”


“로버트 씨에게 훈련을 받으라는 목적이 그거였어요?”


켈모리아는 언제 울었냐는 듯이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나서 입을 열었다.


“소녀는 아름다워지기 위해서는 노력을 하는 법이지. 그 중에서도 운동이 빠지면 안 돼. 아리엘에게도 붙어있는 불필요한 군살이 빠지기 시작하면, 더욱 더 완벽한 몸매로 되는 거지. 따라서 지금 나는 아리엘을 제대로 육성하고 있다는 거야.”


“육성이 아니잖아요.”


여전히 내 입에서 한숨을 내뱉게 만드는 켈모리아는, 자신의 식기 위에 있는 스프를 입에 넣기 시작하면서 뭔가 떠올랐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아리엘. 이번 입욕제를 사는 건 내가 할 테니. 너는 지금 당장 루니아에게 가서 도와주도록 해.”


“루니아 씨에게? 무슨 일이 있데요? 릴리 기사단의 일이라면 분명 기사단원이 더 많을 텐데?”


릴리 기사단장. 루니아 레이비스.

켈모리아에게 들은 정보로는 유일하게 자신이 껄끄러워 하는 상대 중에 하나라고 한다. 프리트론에 있는 릴리 기사단은 여성으로 이루어져있지만, 전문적으로 적대적인 몬스터와 마수들을 격퇴하는 것에 있어선 전문가.


가입절차는 쉬운데 들어가기 시작하면 어마어마한 지옥이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훈련이 실전지향의 훈련이라서 그런지 평상시에 조용하게 있다가도, 느닷없이 경보가 울려서 출동하게 만드는 루니아 씨의 훈련방식.


설마 정말 릴리 기사단의 일을 도와주라는 것은 아니겠지?


“아니. 릴리 기사단쪽의 일은 아냐. 오히려 좀 더 평범한 수준의 일이니까.”


“아. 그러면 다행이네요. 그래서 무슨 일이래요?”


나는 켈모리아가 어디서 꺼냈는지 모르는 포스터를 받고 읽기 시작했다.


“마스터 셰프 프리트론? 이게 대체 뭐에요?”


“말 그대로. 요리 대회야. 루니아가 그곳에 나간다고 하길래 너에게 시식을 요청했거든.”


뭔가 수상적인 표정을 짓고 있는 켈모리아에게 다시 물어봤다.


“그건 켈모리아가 도와주시죠?”


“그, 뭐냐. 나는 그래! 입욕제를 대신 사느라 바쁘거든! 그리고 나는 학원장이야? 너는 비서라고? 비서는 내가 시킨 일이나 하란 말이야!”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하고 진땀이 이리저리 흐르며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는 거라면, 이건 반드시 살기 위해서 거절 하는 것이 맞다.


“전 거절…….”


“거절은 거절한다!”


하아, 때리고 싶다.

지금 당장.


“언제쯤 가면 되는데요?”


“오후 1시쯤에 잡화점으로 가겠다니까. 그때 가보는 것이 어때?”


“그럼 그렇게 하죠.”


간단한 대답을 하고 난 뒤에 나도 아침을 먹기 시작했다.


***


오후 1시에 엘티노스 잡화점의 문을 찾아서 노크를 했다. 보통은 카일 씨가 문에 노크한 것만으로도 기뻐하며 달려올 텐데. 지금은 집에 아무도 없는 듯이 매우 조용했다. 잡화점의 문고리를 잡으려고 했지만, 천천히 문이 열리면서 잠겨있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아 낸 뒤에, 숨을 죽이며 아주 천천히 검은 나무 바닥을 밟으며 걸어 나아갔다.


“저기? 아무도 없어요?”


잡화점은 안에 사람이 없는 경우에는 절대로 열리지 않는다고 하니까. 분명 안에는 사람이 있을 것이리라.


-끼이잉! 끼익! 끼이이잉! 끼익!


지하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와서 문을 살짝 열었을 때는, 이상한 괴인이 바닥에서 허우적거리면서 뭐라고 중얼거리고 있었다.


“시스템 이상. 시스템 이상. 본체에 치명적인 오류. 본체에 치명적인 오류.”


형용할 수 없는 분위기에 나는 반사적으로 문을 닫아버렸다.


“카, 카일 씨? 고양이 마왕님? 올빼미 여신님? 모두 다 어디 있어요?”


어두운 공간 속에서 길게 내려오는 붉은 빛의 머리를 발견하고, 한쪽으로 서 있는 루시피나 씨에게 말을 걸며 천천히 다가갔다.


“루, 루시피나 씨! 대체 이게 무슨 일이에요!”


천천히 다가가서 루시피나 씨의 어깨를 건드려봤을 때, 나무가 넘어지듯 천천히 뒤로 넘어가기 시작하더니, 입가에는 기묘한 무지개 색의 액체가 묻어있는 체, 눈은 흰자만 뒤집어진 상태로 기절해 있었다.


“마, 말도 안 돼! 누구에게 당한 거에요! 루시피나 씨!”


“어라아? 야호! 아리엘!”


뒤에서 느긋하게 울려 퍼지는 루니아 씨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접시를 들고 왔는데 기묘한 무지개 빛을 띠고 있는 액체가 흐르고 있었고, 내가 뒷걸음질을 치기 전에 한 손으로 내 발목을 잡아 도망가지 못하게 했다.


“무, 무슨 짓이에요! 놔요! 놔달란 말이에요!”


“켈모리아 학원장님께 들었죠오? 아리엘도 언니의 요리를 시식해야 한다는 거어?”


“그게 무슨 요리에요! 치명적인 유해물질이지!”


“줄여서 치유물?”


“말장난 하지 말고 놔요! 안 돼! 그만둬어어!!!”


루니아 씨는 잔혹하게 내 입을 강제로 벌려서 접시 안에 있는 내용물을 모조리 삼키게 했고, 그 이후로는 영혼과 신체가 끊어질 것만 같은 맛으로 인해 기절해버린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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