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멜롯 마법학원의 비서 - 99
99
다른 곳에서는 여름날씨가 다 되었다면서 더워죽겠다고 하는데, 나만 만년설 제국인 리벌트에 덩그러니 남겨진 듯한 감각을 받으며 덜덜 떨고 있었다. 지금은 세피르가 없으니 빅터의 무릎 위에 앉아서 나를 안아주고 있는 동안, 베가프 씨는 아직까지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었다. 여우 소녀인 아랑은 베가프 씨 옆에서 자고 있었고, 빅터는 조용하게 입을 열기 시작했다.
“순간적으로 베가프 추기경님의 정신 속으로 들어가서 놀랬어. 분명 몽마가 상대의 꿈을 침투하는 방법은 2가지가 있다고 했었지?”
“응. 맞아. 그래서 지금 얼어 죽을 것 같아.”
접촉만 해도 조금씩 정기를 흡수하는 체질인 나는, 차츰차츰 온 몸이 겨울이었다가 봄을 맞이하는 듯이 온도가 천천히 상승하기 시작했다. 빅터의 턱이 내 오른쪽 어깨를 기대고 있을 무렵. 따듯한 온기가 내 오른쪽 볼에서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렇게 붙어있으면 따듯해져?”
“어? 응…. 그러면 너무 따듯해서 문제인데….”
빅터가 꼭 끌어 안아서 몸이 기능을 하기 시작하는 건 좋지만, 머리를 익어버리게 만들면 그거 나름대로 부작용이 심하다고 생각했다. 우선 평정심을 유지하면서 아직까지 끝나지 않은 이 일에 대해 집중을 하면……
“후우~”
“꺄앗! 지금 뭐 하는 거야!”
“그야. 귀에 바람 넣고 있었지.”
“당당히 말하지 마! 나도 모르게 소리질러버렸잖아!”
“그래도 꿈속에서 아리엘은 귀보다는 배가 약점이었던가?”
“시끄러워!”
나와 빅터가 옥신각신 말을 주고 받고 있을 무렵. 어느 사이에 아랑이 눈을 뜨면서 목을 풀고 있었다. 그건 아마 말을 하기 전에 잠겨있던 목을 푸는 것이 아니라, 주변 눈치 좀 보면서 연애를 하라는 주의에 가까웠으니까.
“그보다 자네는 그 어린 소녀에게 손을 댄 것인가? 보기보단 최악이로군.”
경멸의 눈초리로 빅터를 바라보는 아랑을 내가 마주하며 입을 열었다.
“꿈속에서 나는 언제든지 어른으로 될 수 있으니까 상관 없어. 그리고 빅터에게 괜히 시비 걸지마. 그나마 베가프 씨를 납치한 여성을 쫓았던 것도 빅터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애초에 자신의 소중한 사람을 미끼로 던져버리는 바보 같은 신령 같으니라고!”
“뭐라고! 이 쬐끄만 녀석이!”
“쬐끄만 건 너잖아!”
“아리엘. 이제 그만하면 됐어. 베가프 추기경님께서 깨어나신다.”
서서히 의식을 되찾는 소리가 들려서 모두가 베가프 씨에게 시선을 돌리고 있었다. 아직까지는 검증할 것이 많은 상황에서, 별 무리 없이 베가프 씨는 “잘 되어서 다행이다.” 라는 말을 늘어뜨렸다.
“베가프 씨는 스스로 자신을 내던져서까지 이렇게 할 이유라도 있던가요? 아랑도 그렇고 우리가 얼마나 걱정한 줄 알아요?”
“그거에 대해선 두 사람에게는 면목이 없지만, 사실을 검증하기 위해서라도 내가 직접 당해봐야 했었어. 누군가의 머릿속에서 정신을 뒤바꾸고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가 더 많아졌거든. 육체이탈을 어떻게 하는지 몰라도 꽤나 골치가 아파.”
세피르가 있었다면 명확하게 규명을 했겠지만, 지금 나에게 쌓여있는 지식을 뒤적거리며 찾아본 결과로는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검은 달의 여왕’이 존재했다. 하지만 검은 달의 여왕은 여성을 한정으로 정신기생을 해서 강림을 한다는 내용으로 보아. 정신기생체중에서 변종이 따로 존재한 것처럼 보였다.
아니면 인위적으로 만든 정신기생체라던가.
“대체 정신기생체는 어떻게 만들어지는 걸까요?”
나는 분명 베가프 씨를 향해 물었지만 대답하는 것은 아랑이었다.
“그거야 사념이지 않는가? 부정적인 사념이 쌓이면 나타나는 것이 바로 사념체다. 애석하게도 이번 정신기생체는 사념으로 태어난 사념체의 일종. 하지만 사념체로 정신을 기생해서 사람을 조종한다는 사례는 들어본 적이 없다. 원한을 가진 귀신이 사람의 몸에 빙의를 한다는 소리는 많이 들었지만. 사념체를 조종해서 이루려고 하는 목적이 무엇일까?”
거기에 나는 잠깐 스쳐 지나가는 생각이었지만, 혹시 생명을 창조하는 비니스 여신이 일부러 자신의 추종자를 모으기 위해 퍼트리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 이상한 토끼들이 사람의 의식과 무의식을 통제하는 곳에서 당근을 심어 조종하는 거야말로, 비니스 여신의 추종자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을 했지만.
애석하게도 가설은 가설일 뿐이지 증거가 없으니 진짜일 리가 없다.
게다가 그 토끼들의 전투력도 우수한 나머지, 나도 아랑이 없었으면 정신세계에서 퇴출당해 두 번 다시 베가프 씨의 정신으로 침투를 못하는 상황까지 나왔을 터. 빠른 시간 안으로 정체를 밝혀야만 했다.
“빅터. 잡아온 그 여자는 어떻게 했어?”
“의식을 차렸을 때는 자신이 왜 묶여있는지도 모르고, 20일동안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하더라고.”
20일동안 기억이 나지 않았다면 분명 20일 전에 무슨 일을 하다가 감염이 된 거겠지. 20일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 여자의 과거를 들춰보면 될 것 같은데, 마음씨 착한 빅터가 풀어주는 바람에 결정적인 단서를 놓쳐버렸다.
“베가프 씨는 의식을 잃기 전에 뭐라고 느낀 게 없나요?”
“도와달라는 소리를 계속 들었어. 누군가가 계속 도와달라는 소리만….”
도와달라는 말에 의미를 둬야 할까? 의미가 별로 없어 보였기에 넘어가기로 했다. 이럴 때 일수록 엘티노스 잡화점에 찾아가서 도움을 요청하고 싶지만, 지금 카일 씨도 바쁜 일을 하고 있을 것 같아서 다른 곳에 다녀오기로 했다.
“다녀올 곳이 있으니까. 켈모리아에게 외출을 좀 한다고 전해줘.”
“어디에 갈 건데?”
“릴리스의 성으로….”
정신세계를 탐구하는 마계공작 중에 릴리스도 왠지 끼어있을 것 같아서, 릴리스의 성을 향해 공간이동 마법진을 그리기 시작했다.
***
“저기. 릴리스. 손님이 올 때는 뭐라도 걸치고 있으라고 말한 기억이 있지만, 아무리 여자끼리라고 해서 수건을 두르고 있는 건 너무하지 않아요?”
“괜찮아. 여기는 어차피 보는 사람도 없는 걸? 그보다 아리엘이야 말로 목욕을 할 시간은 주고 찾아와주겠어?”
저번에 봤을 때는 힘을 너무 사용해서 어린 아이로 되돌아갔었으나, 지금은 다시 원상복구를 한 릴리스의 파괴력이 넘치는 몸매를 보고, 내 스스로 패배했다는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울려 퍼졌다. 요염하면서도 느긋한 표정으로 옷을 이리저리 꺼내고 있는 릴리스의 행동을 보면서…….
“저기 릴리스. 정신기생체는 어떻게 만들어지는 거에요?”
“오늘 날씨가 너무 좋은 것 같아. 낮잠이라도 자면서 꿈의 미로에 어떤 먹이가 걸렸는지 보도록 할까? 아리엘도 같이 갈래?”
“제 질문에 대답이나 하시죠!”
“요즘에는 사람들이 잔뜩 꿈의 미로에 걸려들어서 정말 행복한 거 있지! 역시 그 토끼가 다른 몽마보다 일을 더 잘한다니까?”
“당신이 범인이었냐!”
릴리스는 잠깐 멍하니 나를 바라보더니.
“어라? 뭐가 범인인데? 그 애는 단순히 내 사역마일 뿐이란다. 정신을 기생하면서 다른 사람들의 행복을 양식으로 삼는 아이지. 그래도 너무 과격한 성격이 있어서 가끔 이상한 소녀를 이상한 나라로 끌어들이는 바보 같은 일을 자주하지만 그래도 위험한 애는 아니라고?”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나오는 토끼가 아니거든요!
“릴리스 님의 말 대로 나는 충실한 토끼라네. 그보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구미호에게 물려 죽는 기분은 끔찍하군. 그보다 아까는 너무 세차게 밟아서 미안하게 됐어. 친구.”
시원시원하게 사과까지 하는 토끼의 말을 듣고 기가 막혀서 다시 릴리스를 향해 소리쳤다.
“정신기생체부터 사념체의 변종 되었다는 가설이 전부 틀리고 실체화를 할 줄 아는 사역마였을 줄이야. 게다가 정신이 죽으면 육체도 죽는다고 분명 들은 기억이 있는데?”
“말 그대로 내 사역마는 불사신이야. 절대로 죽지 않지만 주인이 없으면 다시 정신세계를 의식을 잃고 헤매야 하지. 뭐 그건 상관없는 이야기이고 지금은 내 나름대로 인류의 웹웨이 같은 거대한 일을 진행 중이야.”
“그렇다고 멀쩡한 사람 의식에 당근을 꽂아 넣는 건 아니잖아요!”
그 엽기적인 당근이 창이 되는 것도 신기해 죽겠는데 말이지.
“애초에 그건 보안프로그램 같은 거라고? 정신오염에 어느 정도는 견딜 수 있게 해주는 장치라고 해야 할까? 그러기에 카일과 가까운 사람들 중에서 정신방어가 약한 사람 위주로 설치하고 있었는데 말이야.”
“말도 안 돼. 그럼 제가 방해만 한 거잖아요!”
“아니. 솔직히 네가 방해를 하지 않았더라도, 여우신령이 방해하려고 했을 거야. 게다가 아리엘이 얼마나 성장했는지 볼 수 있어서 다행이었고. 아직은 정기의 양이나 마기로 보면 하급 몽마에 불과하지만, 내 사역마를 상대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많이 성장했다는 거지.”
머릿속에 혼란이 가득할 정도로 이해가 되지 않은 적은 처음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의 개인적인 욕구에 따라서 이상한 당근이나 정신에 집어넣는 것처럼 보였는데, 뭔가 들킬 것 같아서 나에게 억지로 숨기거나, 말을 돌리는 듯한 위화감이 계속 내 몸 언저리에서 맴돌았다.
“카일 씨에게 다 일러바칠 거에요.”
“꺄아악! 잠깐만! 한번만 봐줘! 제발!”
“그럼 거짓말이나 그런 거 말고 제대로 된 진실을 말하라고요!”
어느 사이에 릴리스와 그녀의 사역마인 토끼는 무릎을 꿇은 채로 내 앞에 정숙하게 있었다. 그러고는 릴리스는 나의 시선을 피하면서 식은 땀을 흘리더니.
“그 뭐냐. 그 당근은 내 성으로 자신도 모르게 찾아오게 만드는 명령이 담겨있거든.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게 심어놓으면 어마어마한 이익이 있어서.”
“어마어마한 이익이라뇨?”
“Yee.T 보드게임을 같이할 사람이 없어서 외로운데…. 설마 내 사역마가 카일의 친구까지 손을 뻗칠 줄은 몰랐거든.”
진심으로 고민할 거리가 생겼다.
‘지금 당장 릴리스를 때려도 될까?’라는 고민.
-똑똑똑
“릴리스님! 보드게임하러 왔어요!”
“와아~! 잠깐만 기다려!”
정숙한 표정에서 느닷없이 밝은 표정으로 옷을 겉옷까지 입으면서 밖으로 뛰어나갔을 때. 아까 아침에 베가프씨를 납치했던 여성외에도 5명이 몰려왔다.
“저기. 토끼 씨.”
“멋지게 ‘레빗’이라고 불러줄래? 소녀여?”
아니. 그게 그거잖아?
“아 그래요. 레빗. 저 여자의 기억상 20일동안 단절되었다고 하던데, 그건 대체 무슨 부작용인 거에요?”
“그거야 당연히 20일 동안 릴리스 님의 성에서 Yee.T 보드게임을 했거든. 그래서 나갈 때는 자동으로 기억이 소거되기 때문에, 정작 20일동안 무슨 있는지 모르는 거야. 그건 그렇고 소녀도 Yee.T 보드게임을 같이 할 건가?”
“안 해요!!!”
결국 이 바보 같은 사건의 원인은 릴리스 씨의 보드게임 사랑이 이런 난리를 일으키게 된 것. 그래서 베가프 씨는 도와달라는 말을 반복해서 들었다는 건가? 그 바보 같은 보드게임을 같이 해달라는 신호로?
보통 이런 일에는 어마어마한 야망이 담긴 계획이라던가, 또 다른 사건을 그리기 위해 사전준비를 하는 그런 사건일 줄 알았는데, 어처구니 없는 진실과 마주한 나는 허탈감에 다리가 저절로 풀려서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커스타드 소스 같은 생각으로 어떻게 마계공작을 하고 있는 거지?
'취미로 글쓰는 중? > 카멜롯 마법학원의 비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카멜롯 마법학원의 비서 - 101 (0) | 2017.05.27 |
---|---|
카멜롯 마법학원의 비서 - 100 (0) | 2017.05.25 |
카멜롯 마법학원의 비서 - 98 (0) | 2017.05.23 |
카멜롯 마법학원의 비서 - 97 (0) | 2017.05.22 |
카멜롯 마법학원의 비서 - 96 (0) | 2017.05.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