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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공간술사의 길 중급에 올라선 이후로 잡화점 안에서는 수많은 물건이 느릿느릿하게 떠다니거나, 상당히 빠르게 이동하는 경우가 많아졌는데 화물 정리도 빨리 끝나고 유용하게 쓰고 있는 중이었다. 좌표마법이 있는데 어째서 화물을 정리할 때 유용하냐고 물어볼 수 있다면, 지금도 내 앞에서 바위덩어리를 들고 위협하고 있는 야생의 아이니스가 잡화점으로 찾아왔기 때문이리라. 아이니스가 바위를 내던질 때 감속을 시켜서 그나마 피해를 최소화 하고 있고, 떨어지는 물건도 감속을 걸어서 2차적인 손실을 방지하고 있으니까.

 

어째서 아저씨는 지금까지 육포를 안 먹냐고요!”

 

먹을 타이밍이 없어서 그랬다! ! 그리고 아저씨 아니라고 몇 번을 말해!”

 

아이니스가 준 육포는 전부 레시아가 뺏어갔는데 어떻게 먹으라는 소리일까? 그리고 정작 화를 내는 것은 육포뿐만이 아니었다.

 

결혼식에도 부르지도 않고!”

 

나도 몰랐지! 그게 결혼식으로 바로 이어질 줄을 누가 알았겠어!”

 

이 세상에서 본인도 모르는 결혼식을 끝내고 온 것도 억울해 죽겠는데, 어느 사이에 아이니스 귀에 걸렸는지 귀신같이 잡화점에 찾아와서 농성을 하고 있다고 보면 편하다. 작은 몸으로 염력을 이용해 자신보다 수십 배의 무게를 이리저리 휘두르는 아이니스는, 곧 이어 모든 바위를 내려놓고 잡화점으로 걸어오기 시작했다. 태양에 반사되는 은발을 휘날리며 잡화점 안에 들어온 아이니스가 입을 열었다.

 

그래서 아저씨의 아이들은 어디 있죠?”

 

결혼을 한다고 해서 애가 바로 나오는 건 아니거든! 그리고 아저씨도 아니거든!”

 

그보다 내 주변에서 애를 가졌다는 소리는 단 한번도 없었다. 레시아는 카운터 위에서 고양이마냥 올라가 붉은 눈으로 아이니스를 포착하고 입을 열었다.

 

제자여. 이 곳에는 무슨 일인가?”

 

어라? 스승님. 왜 고양이 모습이 아니라 사람으로 돌아갔어요? 드디어 저주가 풀린 건가요?”

 

저주? 그건 또 무슨 소리야?

 

크크큭! 짐은 주인의 키스를 받아 저주가 풀리고 아름다운 마왕이 되었노라. 덤으로 결혼까지 했으니까 지금은 완전히 주인의 것이지.”

 

그런 주제에 가위바위보 벌칙의 강도는 약해지기는커녕 더 강해져서 돌아왔다고 하더라. 레시아는 아이니스 상대로 고양이 모습으로 있을 때만 만난 걸까? 그 전에 어느 이야기에서 고양이에게 키스를 했더니 마왕이 풀려나서 세상에 재앙이 내리는 꿈과 희망이 없는 이야기가 존재하던가? 두 사람의 기묘한 헛소리에 내 머릿속이 혼란으로 빚어지는 동안, 아이니스는 어느 사이에 레시아를 껴안고 눈을 감고 있었다.

 

하긴 염력으로 나에게 난리를 친 것만 20분 가까이 했는데 지치는 건 당연하지.”

 

주인은 어린 아이를 상대 할 때도 정도를 모르는 것 같노라.”

 

저 녀석이 정도 것 해야죠.”

 

둥둥 떠있는 물건들은 다시 좌표마법으로 정리를 하는 동안, 레시아는 슬그머니 내 뒤로 다가오는 것처럼 보였다.

 

뭐라도 할말 있던가요?”

 

아니다. 계속 작업하거라. 그 동안 짐은 주인이 어떻게 일하는지 보고만 있을 것이다.”

 

그거 의외로 사람을 불안하게 만든다는 거 알고 있죠?”

 

실례이지 않는가? 누가 보면 짐이 언제나 주인을 노리는 줄 알겠노라.”

 

그렇게 말하며 억울함을 해명하려고 해도, 뒤에 느껴지는 위화감이 나를 한층 더 긴장하게 만들었다. 아이니스는 어디에 잘 놔뒀는지 모르겠지만 카운터 뒤쪽에서 가는 숨소리가 들리는 걸로 보아, 최근에 내가 이불을 펴고 자는 곳에 재운 상태로, 내 바로 뒤에서 도약하는 소리가 났다.

 

그러나.

 

어딜.”

 

공중에서 떨어져 내려온 시나가 레시아를 붙잡고 저지하면서 한 차례 소동은 끝이 나는 듯 했다.

 

! 놔라! 비둘기! 지금부터 주인과 짐은 사랑에 대한 해부학을 시작하려고 하는데, 어째서 방해를 하는 것이더냐!”

 

사랑에 대해 무슨 해부학을 한다는 겁니까? 냥캣. 그리고 저는 비둘기가 아니라 올빼미로 변신하는 겁니다.”

 

뒤에서는 바닥에서 서로 엉켜있는 레시아와 시나를 보며 한숨을 내쉬고 있는 나의 모습은, 우연히 왼쪽으로 돌아봤을 때 존재한 거울을 통해서 볼 수 있었다. 사실상 레시아가 틈만 나면 나를 습격하려는 일이 많아졌다고 생각은 했는데, 어떻게 보면 이건 이거 나름대로 중증이라고 볼 수 있다.

 

레시아. 요즘 따라 체통을 좀 지키지 못하는 거 아닌가요? 마왕이라면서 결혼식이 끝난 후에도 20분 간격으로 똑같은 행동을 반복하고 있잖아요?”

 

요즘 봄이라서 그런걸 지도 모른다. 주인이 만약 카린으로 변해서 고양이 귀를 쓴다면, 어째서 20분 간격으로 폭주를 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니라. 그건 그렇고 정말 무심하지 않는가! 짐과 주인은 부부니까 밤이고 낮이고 같이 있어도 되고, 같이 자도 되고, 가위바위보도 이제 마음껏 할 수 있노라.”

 

가위바위보는 부부가 아니라도 마음껏 했잖아.

물론 승률은 내가 0%였지만.

 

그렇게 따지면 저와 마스터도 언약을 맺었습니다.”

 

시끄럽다! 짐이 주인을 맨 처음 만났으니까 짐이 본처이니라!”

 

내가 결혼을 계속 미루고, 미루고, 미루고, 미루었던 이유 중 하나가, 이렇게 복잡하게 될 것을 예상하고 계속해서 말을 꺼내지 않았던 것인데. 아무튼 봄이라고 해서 다른 동물들 마냥 마왕이 발정기에 들어서는 그런 경우는 전혀 없다. 나는 레시아에게 다가가서 조심이 물어봤다.

 

어떻게 하면 조용히 있을 거에요?”

 

짐을 안아줘라.”

 

허그의 의미겠죠? 그건?”

 

그럴 리가 있겠느냐! 당연히...냐아아아앗!!!”

 

쓸 때 없는 소리를 더 말하기 전에, 그 상태로 아이언 클로를 집행하고 나서야 겨우겨우 조용해진 레시아를 풀어준 시나는 무표정한 얼굴로 바라보면서 사무적인 어조로 입을 열었다.

 

마스터. 아무래도 아침에 촬영장에 있었던 키스 때문에 그러는 것 같습니다. 분명 색욕의 공작이 반지에 어떤 사술을 걸었다고 했었죠?”

 

그저 여성과 스킨쉽을 할 때. 좀 더 원활하게 만들어주는 그런 거라고 설명했다고? 그렇게 위험한 것도 아니었어. 그보다 키스 하나로 20분 간격마다 습격하는 사역마가 세상에 어디있겠어?”

 

지금 관계로는 건전하게 교제하자는 자체가 오히려 더 이상하게 보인다고 생각하지만, 적어도 일상생활은 가능해야 하다는 전제조건이 붙는다.

 

대체 아저씨는 얼마나 가드가 튼튼한 거에요?”

 

마나를 다 쓰고 혼절한 주제에 빨리도 일어나는구나. 그리고 아저씨 아니라고.”

 

결혼하면 다 아저씨죠. 그리고 스승님과 결혼을 했으면서 첫날밤이 없다는 게 말이 되요? 대부분은 모두 결혼을 하고 나면 신혼여행도 가고, 낭만적인 첫날밤으로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는 그런 뜻 깊은 시간에, 이런 잡화점에서 시간이나 썩혀야 하다니.”

 

오늘 아침에 영문도 모르고 결혼을 했거든.”

 

그리고 결혼을 하기도 전에 각자 한번 이상 습격을 해왔다고. 당한 내 입장에서는 얼마나 당황스러웠는지 말해줘도 모를 녀석이...

 

크크큭! 주인. 오늘 오후에 짐에게 아이언 클로를 했던 몫까지 준비하고 있거라. 철저하게 복수를 해서 울면서 빌어도 용서하지 않을 테니 말이다. 크흐흐!”

 

체통을 좀 지키시죠. 레시아.”

 

기분 나쁜 웃음과 함께 천천히 몸을 일으킨 레시아에게 한 소리를 하고, 어지럽혀진 물품은 모두 정리가 되었으니 낮잠이라도 잘까 생각은 해봤지만, 여전히 그 봉인되어있던 정체불명의 조각상이 눈에 밟혔다. 마리아에게 맡긴 영겁의 노래에 대한 이야기도 듣고 싶었지만, 창가에 있는 테이블 앞에 앉아 허브티를 마시면서 느긋하게 기다리기로 했다.

 

신랑은 여전히 일이 먼저겠지?”

 

일이 먼저이기도 하지만 우선시 되어야 하는 것은 수위가 너무 높으면 안 되거든요. 그걸 지키지 않으면 다양한 곳에서 잘려나가는 기묘한 경험을 할 수 있으니...아니, 이건 그냥 넘어가고...”

 

마침 백은의 소녀인 시나도 내 옆에 다가와서 의자에 앉았으니, 다른 이야기를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애석하게도 지금 상황으로는 검은 높새바람이 뭘 노리고 있는 건지, 대략적으로는 짐작이 가기는 해요. 분명 영겁의 노래를 노린다는 소리는 지금 봉인해둔 조각상을 노린다는 거니까요. 하지만, 무슨 목적으로 조각상을 가져가려고 하는 걸까요? 봉인을 풀어서 어디에 써먹으려고? 옛날에는 세상을 멸망시킨다는 목적을 가진 악들이 많이 존재했지만, 그 세상을 멸망시켜서 무슨 메리트가 있었을지 생각은 해본 적이 있나요?”

 

나의 질문에 저 멀리에 있던 레시아가 입을 열었다.

 

그야 자신의 힘을 시험하는 것 아닌가? 멸망을 시킴으로써 갈 곳을 잃은 생명들을 모조리 흡수하고, 더욱 더 강해져서 다른 세계에 있는 인간들을 멸망시키러 가는 것이 마왕의 삶이자, 지루함에 죽고 싶지 않은 자의 저항일 뿐이다. 요즘은 용사가 너무 강한 차원이 많다 보니까. 자신이 죽기 싫어서 세상을 멸망시킨다는 마왕도 늘어나고 있노라.”

 

마왕끼리 모여서 술이라도 먹나요?”

 

어라? 어떻게 주인이 그걸 알고 있는 것인가?”

 

진짜냐.

그 소리는 마치...

 

하아. 요즘 내 차원에 있는 용사가 전설의 검을 주웠다고 하더군, 난 이제 머지 않아 죽을 것 같아. 김마왕.”

 

아니. 박마왕. 그럴 때야 말로 사람 하나 납치를 하거나, 함정을 파서 기다리라는 거야. 유능한 부하도 같이 있을 거 아냐? 사천왕이라던가 그런 거.”

 

오늘 아침에 마왕군에서 점호를 하는데 이미 다 죽었더라고. 이제 난 글렀어. 내 인생도 여기서 끝이야. 크흡! 어제까지만 해도 옆에서 같이 술을 마시던 이마왕은 빌어먹을 여신이 용사에게 반한 뒤로, 여신이 직접 나서서 이마왕을 간단히 소멸시켜버렸다고! 제길! 마왕으로 살기 왜 이렇게 힘든 거야!”

 

괜찮아. 언젠가 마왕도 살기 좋은 날이 있을 테니까.”

 

이런 식의 이야기가 오고 가는...

 

주인? 그런 바보 같은 상상을 하는 것은 수준급이로구나.”

 

누가 남의 기억을 엿보래요!”

 

기억을 엿본 적도 없다만 페어링으로 이어진 짐과 주인은 공유가 쉽게 이루어진다는 것만 알아두거라.”

 

제길! 이래서 내가 요즘 이런 바보 같은 상상을 안 하는 건데!

 

그런데. 레시아.”

 

? 무엇인가?”

 

언제 제 무릎 위에 앉은 거에요?”

 

. 이마왕이 어쩌고 저쩌고 할 때부터 앉았노라. 아무리 마왕들이 서로 모여서 술자리를 한다고 해도, 이마왕이라던가 박마왕은 없으니 주의하도록 하거라.”

 

김마왕은 실존하는 거냐!

 

그건 그렇고 주인. 세상을 멸망시키는 것은 딱히 마왕이 하는 일이 아니니라.”

 

나의 목을 감싼 레시아는 옆으로 나를 바라보면서 달콤한 향과 함께 이야기를 늘어뜨렸다.

 

성서에서도 자주 신들이 자신의 창조물을 멸망 끝까지 괴롭히는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가? 그러니 딱히 악마나 마왕이 나서지 않아도 자신들의 손으로 무참히 부셔버리는 것 또한 신들이 하는 일이다. 저기 있는 비둘기는 다른 차원에서 빛만 밝히고 잠이 들은 터라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는 눈이라고 하지만, 세상을 멸망을 시키는 것은 신이 존재하는 이상 신이 되는 것이고, 신이 없는 세상에서 태어난 인간은 인간 스스로가 자멸을 하는 것뿐이다.”

 

어디서든지 일어나는 잔혹한 결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웃으며 낭랑하게 입을 열은 레시아.

애초에 그녀 또한 마왕이지만, 세상을 멸망시키지 않고 공존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자신마저 타락한 마왕이다.

 

그보다 주인! 그거 하자! 그거!”

 

무슨 헛소리에요. 남이 진지하게 독백을 하는데 방해하지 말라니까요!”

 

낑낑!”

 

하지 말라고!!!”

 

지금은 욕구가 너무 넘쳐서 아이언 클로를 집행해야 통제가 가능한 마왕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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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을 열면 엔딩이 보인다고 하는데...

왜 나는 안 보이죠? 완결 언제나는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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