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 408
408
여성의 행복은 웨딩드레스를 입는 것이라고 한다.
평민인 삶에서는 웨딩드레스는 입기 힘든 것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이 입는 웨딩드레스는
아름답다고 생각했었다.
-루니아가 잡화점에서 웨딩드레스를 권유하고 있는 모습을 본 카일의 생각.
----------------------------------------------------------------------------------
삽시간에 벌어진 일이라 손을 쓸 틈도 없이 강제로 붙잡혀서 끌려갔다. 내가 큰 죄를 지은 것이 있다고 한다면 다른 이들에게 반지를 주기 위해 하루를 꼬박 소비한 것뿐.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우정반지 비슷한 개념의 결속력을 높여주는 역할을 해야 하는 물건이, 어느 사이에 결혼반지로 왜곡되어버린 현상이 나타나면서 지금 이 물품은 2층에 봉인해야 할지. 3층에 봉인해야 할지 정확히 알지도 못한 체, 괴한들에게 납치를 당한 상태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말 그대로 정말 순식간에 일어나서 어디로 끌려가는지 알 수 없지만, 직감은 다양한 곳에서 짚어지기 마련이거니와, 애초에 기사단의 일은 내다 버리고 온 루니아 누나의 얼굴을 봤을 때부터 이미 종착지는 하나였다.
“오늘의 백장미 촬영장소는 결혼식장이에요오.”
“““오!”””
“‘오!’가 아니잖아! 항상 생각해온 거지만, 이 세트장은 누가 이렇게 호화롭게 꾸며놓은 거야!”
누군지 몰라도 매번 고생하는 것 같아서 마음이 좋지 않으나, 아무튼 백장미의 촬영장이 결혼식장이라는 소리라면, 나더러 저렇게 커다란 웨딩드레스를 입으라는 소리인가? 머리 위에 하얀 꽃도 달고, 우아한 패턴과 넓은 치마폭을 지니고 있었으며, 솔직히 이게 왜 지금 이 시대에 존재하는지 아직까지 알 수 없었다. 미스터리이기도 하고 외계인이 이걸 건네주고 갔다는 전설도 있지만, 웨딩드레스가 지금 시대에 실존할 수 있게 만들어 준 것은 다른 차원을 마음껏 떠돌아다닐 수 있는 검은 달의 여왕. 마리아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매번 백장미를 응원해주는 귀부인들께서 아낌없이 자금과 인력을 보내서 설치하고, 공사를 한다고 합니다아. 아무튼 카일? 봄의 신부가 되어 마음껏 날 뛸 준비가 되었나요오?”
“어째서 제가 신부 역할인데요? 네? 적어도 결혼식장이라던가 그런 엄중한 분위기에서는 장난도 못 치겠네요. 그리...”
-콰앙!
“짐은 이 결혼 반대다!”
느닷없이 나타난 연보라 빛의 긴 머리카락을 지닌 소녀는 성난 붉은 눈을 하며 소리치기 시작했다. 한 눈에 띄는 카리스마를 몸에 두른 듯하지만, 얼굴을 자세히 보면 요염하고도 귀여운 외모로 언제나 당당하게 걸어 다니며, 나의 앞까지 도달하는 것은 수초도 걸리지 않는 무시무시한 마왕.
“주인은 짐이 가져가도록 하겠노라!”
“뭘 가져가요! 누가 날 픽업하라고 했어요!”
“그야. 결혼식장의 해프닝은 신부를 가로채는 그런 것이 아니더냐?”
“남자가 웨딩드레스 입고 여자에게 가로채인다는 상황은 터무니 없이 잘못 되었거든요!”
“정조가 역전되면 가능하다.”
“여긴 역전이 안 되었으니까요!”
혹시나 정조가 역전된 세상에서 날아가게 된다면 거기선 내가 비정상인이겠지? 뭐 다른 의미로는 보이 크러쉬라고 할 건가?
“그 더러운 손 놓으세요. 마스터는 제가 데려가겠습니다.”
조용하면서도 불길이 치솟는 듯 살벌한 여성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빛을 내뿜으며 눈보다 더 깨끗한 소녀가 강림을 하고 있었다. 이목구비가 뚜렷한 건 둘째치고 무표정한 시선은 신비롭기까지 하며, 권능을 사용하지 않아도 성스러운 모습이었으니, 손을 뻗는 것만으로도 모든 이의 시선을 빼앗을 정도.
물론 다음의 말을 듣는다면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마스터는 제 신부이니 가로채지 마시죠. 냥캣.”
“흥! 거절한다!”
아직 웨딩드레스도 입지 않은 사람에게 정말 다양한 일을 벌이는구나. 게다가 이 모습으로는 웨딩드레스는 좀 무리라고 생각하는데 말이지.
“그보다 이거 대체 뭔가요? 시스루 레이스라고 불리던 그건가요?”
아직까지 입지 않았으니 나는 탈출할 타이밍을 잡고, 최대한 시간을 끌기 위해 발버둥울 쳤다. 레시아와 시나가 서로 싸우던 말던 무시하고 웨딩드레스의 구조를 보면서 순수하게 감탄을 했는데. 이걸 입은 잡화점의 멤버들은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지에 대해서다.
물론 베니와 팔랑크스는 빼고.
특히 팔랑크스는 빼고.
다행이 글뿐이라서 시각적인 테러는 이루어지지 않으니 안심해도 된다.
“정말 아름답죠오? 이걸 입은 카일의 모습도 확실히 인기가 높을 거라고 생각해요오.”
“왜 이걸 제가 입는 거에요? 5월에 결혼한다고 청첩장을 보낸 루테시아 씨에게나 보내세요.”
그러고 보니, 저번에 사기결혼을 한다는 의뢰인에게 사기를 쳐서 애들러 경과 결혼에 성공을 한 루테시아 씨는, 나에게 이번 년도 5월초에 결혼을 한다는 청첩장을 보냈다. 어차피 사고는 한번에 그것도 엄청 크게 일으키라는 마음가짐으로 일을 저질렀더니, 그나마 제대로 된 결과물이 나온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아무튼 다시 이야기로 돌아가서, 지금은 남의 사랑을 응원하고 축복해줄 때가 아니라, 지금 당장은 내가 살아야 하는 거니까 우선 저 멀리 붉은 머리를 한 여성과 눈이 마주쳤을 때. 나는 잠깐 오라고 손짓을 하기 시작했다.
“루시피나. 잠깐 오세요.”
“응? 나? 왜 그래? 신랑? 허리 부분이 안 맞아?”
“무슨 소리를 하는 거에요. 우선 루시피나가 실험 삼아 입어보라는 거죠.”
“내가?”
멀뚱멀뚱하게 나를 바라보는 붉은 빛의 눈은 웨딩드레스를 가까이에서 보며, 그 이상으로 눈이 더 커지는 것은 아닐지 괜히 걱정할 정도로 반짝이고 있었다.
“우선 공식적인 사이로는 루시피나와 저는 부부라면서요. 그럼 루시피나가 먼저 웨딩드레스를 입어야 하지 않을까요?”
나의 눈을 바라본 루니아 누나는 황금빛의 머리를 검지손가락으로 돌돌 말면서, 잠깐 뜸을 들이는 표정으로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게 사실은...”
무엇 때문에 뜸을 들이는 것인지 잘 몰라도, 역시 웨딩드레스를 준비하는데 좀 오래 걸렸겠...
“웨딩드레스는 모두 각자의 개성이 넘치도록 준비해왔거든요오.”
네?
“파워 온! 백터맨 레시아!”
“아니. 레시아. 그 구호는 이상하잖아요? 마왕이 평화를 수호하는 전대물로 가면 어떻게 해요!”
“마스터. 저는 테일 온을 외치겠습니다.”
“시나? 너의 머리상태는 트윈테일이 아니거든?”
“문 크리스탈 파워!”
“루시피나! 그건 세일러 복을 입을 때 외치는 주문이거든요!”
각자 각기 다르게 개성 넘치는 주문을 입에 올리고 나서 각자 웨딩드레스라고 불릴만한 복장으로 입고 나왔다. 아니, 레시아만큼은 턱시도를 입고 나와서 더 놀랬지만...
“레시아? 신부가 웨딩드레스를 입는 거라고요?”
“주인이 신부이지 않는가?”
저 미칠듯한 고정관념은 절대로 변한 적이 없구나.
“나는 남자라서 신랑이죠! 레시아가 신부고!”
“짐은 마왕이니라. 마왕의 반려는 웨딩드레스를 입어야 한다는 마계규칙이 존재한다.”
“그거 또 지어낸 거죠!”
“칫. 다시 입으면 되지 않는가? 주인도 정말 까다롭게 하는 재주가 있노라.”
그리고 레시아마저 순백의 드레스로 자신의 몸을 감싸며, 자신만만한 웃음으로 입을 열기 시작했다.
“어떤가! 주인! 이런 모습을 하면 단번에 짐에게 시집을 오고 싶지 않는가?”
최근 나는 레시아에게 저런 말을 들으면서, 저 이상한 사고 방식을 때려부수고 싶다는 충동이 들기 시작했다. 아이언 클로를 하루에 2분간 사용하면 바뀔지도 모르겠지.
“매번 말하는 거지만 저는 남자라니까요. 도대체 시집이란 단어를 왜 저에게 사용하는 거에요. 그리고 레시아에게 있어서 웨딩드레스는 다리가 훤히 보일 정도의 미니스커트인가요?”
“짐의 웨딩드레스는 언제나 기동성과 방어력을 우선시하고 있다.”
“노출도에 비례해서 방어력은 올라가지 않아요.”
그리고는 레시아에게 가까이 가서 머리 장식의 모양을 고쳐주었다. 서로 가까이 얼굴을 맞대고 있다는 걸 레시아가 의식하고 있는지, 얼굴에는 살며시 홍조를 띄며 “저기. 주인. 이제 괜찮다만?”이라고 중얼거렸다.
“예쁘네요.”
“뭣이?”
나의 한 마디에 레시아는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경악했다. ‘내가 잘못된 소리를 내뱉었나?’라고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지금 주인은 짐이 예쁘다고 하였는가! 젤나가 맙소사!”
“마왕이 그렇게 놀라면 안 되죠.”
어디선가 첫 번째 자손을 실험중인 듯한 다른 생명체들을 외치는 레시아였다.
“드디어 주인이 짐에게 함락되는 순간이!”
“그냥 평범한 감상을 말했을 뿐인데 억지로 확대 해석하지 마요!”
레시아가 자기 혼자서 폭주를 하고 있는 사이에 시나는 내 허리부분을 살짝 잡아당겨서 뒤를 돌아보게 했다. 이건 웨딩드레스가 아니라 그저 하얀 색상의 고스로리복장일 뿐이잖아?
“마스터의 취향을 참고 삼아 생성했습니다.”
“내 취향이 고스로리라는 걸로 귀결하지 말아줄래?”
그래도 시나는 체형이 상대적으로 작으니까 오히려 이게 더 잘 어울린다고 생각은 했으나, 애석하게도 그건 웨딩드레스가 아니라는 점은 변함이 없다.
“시나의 경우에는 그냥 무난하게 A라인으로 입는 것이 좋겠어. 마리아와 같이 말이지.”
“저도 성장하면 머메이드 라인을 입을 수 있을 정도로 성숙합니다. 하지만, 마스터는 작은 체형이 더욱 더 흥미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판단해서, 일부러 이런 모습으로 있는 겁니다.”
“저기? 사역마가 주인을 범죄자로 만들면 안 되잖아?”
루시피나의 경우에는...
“세일러 복은 웨딩드레스가 아니라고요!”
정말 세일러복장에 티아라를 끼고 있었다.
“사랑과 정의의 이름으로...”
“명대사 말하지 마!”
결국 억지로라도 지금 내 눈 앞에 보이는 엠파이어 라인을 기초로 한 웨딩드레스를 입히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그야 당연히 내가 입을 웨딩드레스는 없을 테니까. 나는 자연스럽게 이 백장미를 찍는 지옥의 공간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계기까지 만들었지만, 의외로 이렇게 입혀놓고 보면 남들이 봐도 예뻐 보이기는 마찬가지. 사실상 나라도 “지금 당장 결혼하러 가자!”라고 이야기는 꺼내고 싶으나, 뒤에 있을 후폭풍이라던지 수라장을 생각해서라도 꺼내면 절대로 안 되는 단어였다.
“아아, 마왕님도 여신님도 루시피나도 정말 아름다워요오.”
“그렇네요. 그럼 전 이만...”
아무튼 이렇게 촬영을 하라고 놔두고 하멀 씨에게 찾아가서, 어제 아리엘을 데려가서 수사를 한 결과를 알려달라고 한 뒤에, 베니와 놀면서 낮잠이라도...
-덥썩.
“어딜 그리 급하게 가는가? 주인?”
“마스터도 입으셔야 합니다. 웨딩드레스.”
“신랑도 어서 입어보자? 응?”
“카일의 모습을 되살려서 개조를 해보았답니다아!”
“그만둬어어어어어!”
***
결국 반 강제로 입혀지고 말았다. 오랜만에 독백을 하면서 미래의 계획까지 세우고 자연스럽게 빠져나갔다고 생각을 했는데, 역시나 이 사람들은 날 놔주지 않고 머메이드 라인으로 날 입혀놓았다.
“몸매가 잘 들어나는 라인은 역시 머메이드죠오?”
루니아 누나는 반사판을 들고 있는 루시피나에게 싸인을 보내가면서 이리저리 찍고 있었다. 애초에 짧은 시간 안에 모두 웨딩드레스에서 턱시도로 언제 갈아입었는지 모르겠지만, 마법이라는 것이 이 세상에 존재하고 나서 정말 편리해졌다고 생각한다.
“그보다 왜 하나 같이 턱시도를 입고 온 거에요.”
“그야. 주인이 신부이지 않는가? 게다가 정조가 역전되면...”
“역전 된 적이 없다니까! 이 세상은!”
억지로 화장까지 당하고 검고 긴 생머리 가발을 쓴 나의 모습은, 우연히 루니아 누나가 평소에 자랑하고 다니는 카메라 렌즈로부터 그 처량한 몰골을 발견할 수 있었다.
“와! 주인님! 예뻐요!”
“아버지의 새로운 모습은 언제쯤 나오나요?”
“16호는 나왔으니까. 17호에서 볼 수 있어요오.”
“역시 카일은 그 모습이 진짜라고 첩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노라.”
달에서 언제 도착했는지 루나와 카렌, 마리아까지 대거 등장해서 나의 속을 긁어 다니고 있을 무렵. 다른 한쪽으로 고개를 돌렸을 때는 하멀 씨가 마치, 죽어가는 개를 바라보는 듯한 불쌍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나도 이러고 싶어서 입은 것이 아니라니까요? 아무튼 루니아 누나는 이제 곧 촬영이 다 끝난 시간이라고 판단하고 촬영 종료를 알리는 말을
“이제 결혼식 시작하죠오!”
하는 줄 알았는데 뭐라고요????????????
“녜?”
당황한 나의 물음은 허공 저편으로 사라지기 시작했고, 순식간에 잡화점 멤버의 눈빛에서 알 수 없는 기운이 가시화가 되어 맴도는 것을 직면한 그 순간, 지금 당장이라도 이곳을 탈출하기 위해 계획을 미리 짜둬야만 했다.
=============================================================================================
그렇게 늘 개판이 되어가고...
'취미로 글쓰는 중? > 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 410 (0) | 2017.04.21 |
---|---|
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 409 (0) | 2017.04.20 |
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 407 (0) | 2017.04.18 |
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 406 (0) | 2017.04.17 |
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 405 (0) | 2017.04.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