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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품을 구매하고 돌아와보니 뭔가 폭풍이 휩쓸고 지나간 위화감이 들기 시작했을 무렵. 레시아는 카운터 위에서 나를 반기기 시작했다. 다른 점이라고 한다면 평상시에 작은 고양이의 모습이 아니라, 10대 후반의 모습으로 요염하게 엎드려서 바라보는 모습을 마주했다는 것. 솔직히 지금 당장이라도 잡화점의 문을 닫고 밖에서 다시 시간을 보내고 싶었지만, 나는 잔혹한 현실을 마주하며 길게 한숨을 내쉬고 있을 뿐이었다.

 

레시아. 카운터 위에서 그런 모습을 하면 드레스가 망가지는데요?”

 

짐의 드레스는 튼튼하니 괜찮다. 그보다 들어와서 할 소리는 그것뿐인가?”

 

, 하나 더 있어요. 카운터 위에서 내려와요.”

 

레시아는 !”하며 나와 거리를 좁혔지만 그 의도를 읽고 거리를 유지하기 위해 말을 또 걸었다.

 

그런데 하멀 씨가 왔었나요?”

 

. 그 뺀질이도 왔었고, 아리엘이라는 소녀도 왔었노라.”

 

하멀 씨는 그렇다고 해도 아리엘이 오는 경우는 극히 드문데? 무슨 중요한 일이 아니라면 오질 않는 아이니까.

 

그래서 아리엘이 뭐라고 하던가요?”

 

, 그러고 보면 그걸 듣지 못하고 그 뺀질이가 멋대로 데리고 나갔다. 원래는 주인을 데리고 가려고 했던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꿩 대신 오리라는 말이 있지 않는가? 그런 이유로 데리고 나갔을 것이니라.”

 

오리가 아니라 닭이겠죠.”

 

꿩 대신 오리도 먹을 수 있지 않는가? 같은 새고기인데 그리 따지려 들지 말지어다. 그런데 양손에는 한 가득 물품이 들려있는데 그것들은 밤에 먹을 것들인가?”

 

뭐 그것도 있어요. 그런데 시나는 대체 어디 있죠?”

 

레시아의 하얀 손가락은 위를 가리키고 있었고, 나는 천천히 위를 올려다 보았을 때 천장 위에 박쥐처럼 매달려있는 시나를 봤다. 문제는 레시아처럼 10대 후반의 인간형이었다는 점이었고, 더욱 더 무서운 것은 중력의 법칙을 거스르고 옷이 밑으로 내려오지 않는 점이었다.

 

저는 이곳에 있습니다. 마스터.”

 

본 모습으로 돌아왔다면 제발 그러지 말고 땅에 내려와서 생활을 하라고. 누가 보면 너무 놀라서 거품물고 기절하게 생겼으니까.”

 

뒤따라 온 애들러 경도 루테시아 씨에게 가까이 가서 입을 열었다.

 

아가씨. 그렇게 턱을 괴고 있으면 턱이 네모가 됩니다.”

 

신경 꺼. 그리고 턱이 네모가 되는 경우는 거의 없어.”

 

애들러 경을 보자마자 화내지 않고 내쫓지 않는 것을 보면, 이제 슬슬 의뢰에 대해서 이야기할 준비가 되었다는 소리이니까. 나는 루테시아 씨를 보며 슬슬 시동을 걸기 시작했다.

 

루테시아 씨는 집안에서 결정한 결혼이 싫다고 생각을 했죠?”

 

루테시아 씨의 날카로운 눈이 나를 바라보기 위해 고개를 들었다.

 

. 맞아.”

 

그래서 사기결혼을 준비하려고 하는 거고요?”

 

자신의 의뢰 내용을 내가 읊기 시작하자 천천히 내 쪽으로 경청을 하기 시작하면서, 나는 그런 모습에 뱀 같은 혀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정말 좋지 않은 방법이라고 생각은 하지만, 이 상황에서도 2가지의 경우가 존재하기 마련이니까.

 

하나는 죽었다고 알리고 조용히 살아가는 방법도 있지만, 이건 솔직히 추천하고 싶지 않으니까 다른 방법을 알려드리자면, 애들러 경과 사기결혼을 하면 될 거라고 전 생각하는데요?”

 

그래? 애들러하고?”

 

그리고 잠깐의 정적이 스쳐 지나갔다.

 

잠깐! 애들러하고!”

 

얼굴이 익어버리는 것이 아닌지 모를 정도로 새빨개진 루테시아 씨의 표정을 읽고 생각하는 건데, 이 의뢰는 사기결혼식을 한다는 것을 미끼로, 애들러 경과 이어주려는 나의 계략까지 들어있었다. 다만, 가장 크나큰 변수는 애들러 경이었으니, 어쩔 수 없이 루니아 누나에게 20분간 철저히 교육을 받은 애들러 경은 루테시아 씨에게 다가가서 반지를 건넸다.

 

이 반지를 왼쪽 4번째 손가락에 껴두시길 바랍니다. 혹시라도 영주님께 들키기라도 한다면 그 남자를 확인하기 전까지는 혼약에 대한 이야기를 아가씨 앞에서 하지 않겠지요.”

 

애들러...너도 이 반지를 끼고 있는 거야?”

 

저는 아가씨를 지키기 위해서 있는 존재이니까요. 확실히 카일 씨와 스승님께 들었을 때. 아가씨가 싫어하는 결혼을 지키는 것도, 그 옆에서 호위하고 있는 저의 역할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설령 제가 영주님의 분노를 사서 죽는 한이 있더라도, 이렇게라도 도와드려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애들러...”

 

아직까지 여자가 자신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는지 아닌지는, 현재 애들러 경은 분별할 수 있는 그런 눈치가 없기 때문에, 자신을 지키려는 사람이 싫어하는 일이 있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지켜내는 것이라는 루니아 누나의 가르침을 받아. 애들러 경은 루테시아 씨의 사기결혼에 대한 것을 협조해주기로 했다.

 

루테시아 씨는 당연히 좋아하는 눈치였지만...

 

그러면 결혼을 했다는 가짜 서류를 만들어야죠. 아마 잡화점에서도 팔고 있으니까 각자 펜을 들고 대기하세요.”

 

나는 카운터에서 결혼서류 한 장을 꺼내오는 동안, 레시아는 내 옆에 붙어서 말을 걸기 시작했다.

 

어이. 주인. 설마 사기결혼이라고 해놓고 저 둘을 맺어줄 생각인가?”

 

사기결혼은 어디까지나 사기결혼이에요. 저 둘이 서로 좋다고 하면 자연스럽게 맺어지는 것뿐이고, 만약에 싫다고 하거나 사기결혼이 들통난다고 해도, 영주님이 자비로운 마음으로 용서해주길 빌어야겠죠.”

 

마스터는 어째서 이런 도박을 하는 겁니까?”

 

시나는 천장 위에서 말을 걸었다.

그러니까 제발 천장 위에서 말을 거는 건 그만했으면 좋겠는데...

 

내가 도박을 하라고 떠밀고 있는 거지. 실제로 도박을 하는 것은 루테시아 씨와 애들러 경이야. 의뢰를 받은 것은 나의 의지라고는 해도, 실제로 위험을 감수하는 것은 저 둘이란 거지. 나는 그 뒤에서 잘 되게 도와주기만 하면, 이득은 없을지언정 위험 또한 없을 거야.”

 

그래도 이 일을 계기로 잡화점이 아니라 사기중매업소로 소개되면 어떻게 해?”

 

루시피나가 카운터 건너편에서 걱정스레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나는 입을 열었다.

 

엘티노스 잡화점이 저 둘이 찾을 수 있게 개방해준 것을 보면, 이런 일을 하라고 재촉하는 것이니 그리 큰 걱정은 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그보다 정말 이곳이 잡화점인지 심부름센터인지 이제는 사기결혼까지 하라고 말하는 나 자신을 보며, 이곳의 정체성은 어디로 날아가 버렸는지 알 수 없을 무렵. 양피지로 이루어진 부부의 연을 맺는 서약서를 가지고 그 둘에게 나아갔다. 여전히 애들러 경은 이 안에서도 투구를 벗지 않고 완전 무장한 상태 그대로였지만, 펜을 잡은 손은 한 없이 비장하게 그지 없었다.

 

루테시아 씨가 잡은 펜은 수많은 감정으로 인해 덜덜 떠는 것에 비해 말이지.

 

서약서는 대략 이렇게 되어있으니 이곳에다가 이름을 쓰고 싸인을 해주시면 되요.”

 

하지만 이거 내용자체는 비어있잖아.”

 

공백이기 때문에 사기가 가능하단 소리다.

 

만약에 들켰을 경우에는 공백의 상태로 제출하고 장난이었다는 말과 함께 무릎 꿇고 빌면 됩니다. 하지만 영주님께서 애들러 경을 루테시아 씨의 남편으로 맞이할 생각이 있으시다면, 이 서약서의 내용은 부부의 연을 맺어주는 내용으로 가득 채워지게 되겠죠. 적어도 들켰을 경우에는 탈출할 구멍은 만들어놔야 하니까요.”

 

이 잡화점은 이상한 물품이 많네. 애들러? 빨리 작성해. 내 이름 옆에다가 너의 이름과 싸인을 하면 되니까.”

 

알겠습니다.”

 

애들러 경은 거침없이 루테시아 씨 이름 왼쪽에다가 자신의 이름과 싸인을 써 내렸다.

 

제대로 써 내렸는지 보여주세요.”

 

나는 애들러 경에게 서약서를 받고는 곧바로 그 자리에서 칼 같이 찢어버렸다.

 

잠깐! 무슨 짓이야!”

 

날카로운 목소리로 나의 행동에 반기를 드는 루테시아 씨를 바라보며 영업용 미소를 띈 체 나는 말했다.

 

루테시아 씨의 풀 네임이 적힌 이름과 싸인으로 분명 영주님께 잘 전달 되었을 거라고 봅니다. 아직까지 영주님께서 자리에 없길 꼭 빌어야겠군요. 지금 당장 집으로 돌아가서 서약서를 찾으시면 될 거에요. 시간종료까지는 앞으로 15분 정도인가?”

 

애들러! 지금 당장 집으로 가자! 뭐 이런 녀석이 다 있어!”

 

아가씨. 저에게 안기시길 바랍니다.”

 

그 이후로 애들러 경은 루테시아 씨를 안고 공중에 도약하면서 모습이 안 보이기까지 3분의 시간이 걸렸다. 서약서로 사용한 양피지는 하멀 씨가 범죄자를 잡을 때, 수사관의 이름을 쓰고 곧바로 찢어서 전송하는 보고서와 같은 것이었고. 본인이 자신의 이름을 써야지만 발동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이용한 것뿐이다.

 

나중에 의뢰가 성공했는지 실패했는지는 편지로 인해 밝혀지겠죠. 어쨌든 지금은 다급해서 결혼반지 뺄 틈도 없을 것이고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이제 쉬도록 하죠.”

 

레시아는 나의 일 처리에 어안이 벙벙한 상태로 묻기 시작했다.

 

주인? 결혼반지라니? 그럼 아까 그 기사가 여자에게 껴준 반지는?”

 

루니아 누나가 몰래 사 들고 온 결혼반지에요. 애들러 경은 그런 곳에 눈치가 없기 때문에 눈속임 반지인 줄 알고 껴준 거고, 사실상 아까 전에 애들러 경이 말한 것은 프로포즈가 된 셈이죠.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을 조종한 것 같아서 마음에 좀 걸리지만, 이용할 수 있다면 모든 것을 이용하는 것이 제 성격인 거 잘 아시잖아요?”

 

사람의 성격마저 이용하는 것도 나의 방식이니까.

 

마스터. 그래도 그 둘이 혹시나 잘못 되면 어떻게 합니까?”

 

내 직감으로는 잘못 될 것 같지는 않아. 게다가 의뢰했던 그 두 사람에게는 급박한 시련을 뛰어넘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어차피 내 일은 아니니 대충했다는 감도 없지 않아 있지만, 아기가 걷기 전에 뛰어다니듯이 그 두 사람에게는 일이 단숨에 해결될만한 계기가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 그렇지. 이건 우정반지 비슷한 거니까 껴두시면 되요.”

 

나 또한 루니아 누나에게 받은 반지를 레시아와 시나에게 주었다. 물론 애들러 경과 루테시아 씨에게 줬던 아주 간단한 은색의 고리로 이루어진 반지이지만, 다른 점이 있다면 결혼 반지의 경우 안개꽃처럼 작은 꽃들이 피어 오른듯한 장인정신이 돋보이는 세공품이었고, 나의 경우에는 정말 아무것도 없이 밋밋한 은반지일 뿐이었다.

 

잡화점 멤버에게 모두 줄 것인가?”

 

. 잃어버리지 말도록 귀환마법도 처리했고 이름도 각자 다 새겨놨어요. 이걸 또 다 주려면 이곳 저곳을 빠르게 이동해야겠네요.”

 

나의 말에 레시아와 시나는 아무 말 없이 왼손 약지에 끼고 관찰하듯이 이리저리 손을 돌렸다.

 

주인은 끼었는가?”

 

반지요? 저는 아직...”

 

그러자 당차게 레시아가 앞으로 나서며 자신감 있는 얼굴로 입을 열기 시작했다.

 

그러면 짐이 직접 주인의 손에 껴주도록 하겠다.”

안 됩니다. 마스터의 반지는 제가 직접 껴드릴 것입니다.”

저기. 공식적인 부부는 저인데 말이죠?”

 

루시피나가 레시아와 시나 사이에서 중얼거리며 이야기를 하는 동안, 내 이름이 적혀있는 은반지는 내가 끼도록 했...

 

안 된다! 주인이 직접 끼려고 하다니!”

 

레시아와 다른 사람도 자신이 직접 꼈잖아요?”

 

지금 짐도 반지를 뺄 터이니 주인이 직접 껴주도록 하거라, 되도록이면 무릎을 꿇고 진지한 눈빛으로 프로포즈 하듯이 말이다. 그리고 원한다면 그 상태로 결혼식까지 해도 상관은 없다고?”

 

주변을 둘러보니 시나와 루시피나도 반짝이는 눈으로 나를 계속 바라보고 있었고, 나는 한숨을 내쉬면서 입을 열었다.

 

각자 원하는 손가락에 껴드리는 것뿐이에요. 프로포즈나 결혼식은 이런 반지로는 무리가 있다고요.”

 

그나마 잡화점에서 고생했으니 선물을 한 것뿐이지만, 어쩌다 보니 모두에게 내가 직접 반지를 껴주는 모양으로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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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야기 45에서는 개판이 되겠지만...

이야기 45에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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