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 404
404
가출한 사람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이곳에 둔다는 것은 터무니 없는 범죄라고 할 수 있는데, 법적인 규정으로는 먼저 수사관이나 경비대에게 먼저 보고해야, 나중에 날아오는 어마어마한 벌금이라던가 상상을 초월할 만한 바보 같은 일을 피할 수 있다. 그 외에도 가출한 사람을 집안에 들여서 보호한다면 골치 아픈 일이라면, 그 사람이 만약에 입이 너무 까다로워서 밥을 먹일 수 없는 지경까지 된다면 이런 일이 일어난다.
“어떻게 이런 음식을 먹어!”
“괜찮아. 넌 먹을 수 있다니까? 그저 고기에 양념을 바르고 구웠...”
“나는 채식주의자란 말이야!”
사람은 일단 잡식이라서 채식과 육식을 둘 다 할 수 있지만, 아니나 다를까 우리는 육식에 입이 맞는 멤버들이 가득한 이 장소에서, 나 홀로 채식주의자인 르테(가명) 씨는 채식주의자답게 점심 먹는 것을 거부하고 있었다. 옆에서 루시피나가 애처로운 눈으로 응원을 해도, 고집이 너무 강하다 보니 ‘질긴 고무를 먹이는 것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채식주의자라면 결국 샐러드인가...르테는 뭘 먹고 자라온 거에요?”
“나처럼 고귀한 사람은 이슬만 먹고도 살 수 있어!”
웃기고 있네.
신선이냐?
“집안에서 대체 무슨 요리를 먹었는지 몰라도, 우리에게 알려줘야 르테 씨의 생명연장에 가장 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하는데 말이죠.”
“흥! 안 돼. 내가 먹는 것은 가문의 비밀이야.”
대체 먹는 것마저 비밀로 붙이면 우리더러 어쩌란 건지.
“애초에 혼약자가 마음에 안 든다고 집에서 가출할 때부터 생각하는 거지만, 르테 씨는 정말 막 나가는 성격이라고 생각하는데, 지금 르테 씨의 부모님께서 너무 걱정하고 계시는 거 아닐지 모르겠네요.”
지금쯤이면 그 집안은 난리나 나서 자신의 귀한 자손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을 텐데, 정작 그 자손은 지금 여기서 음식 하나 가지고 투정을 부리다니. 게다가 베니는 계속 르테 씨에게 관심이 있어서 다가가고 있지만, 하루 만에 생겨난 슬라임 전용 레이더 망을 설치했는지 아닌지는 몰라도, 베니가 4M이내로 접근하려고 하면 귀신같이 알아차려서 내쫓았다.
“그보다 혼약자는 대체 누구길래.”
“그것도 비밀이야. 그 사람을 알아낸다고 해서 딱히 카일이 나를 위해 암살을 해줄 것도 아니잖아.”
“여긴 잡화점이니까요.”
암살을 청부하는 곳이 아니라고.
아무튼 르테 씨의 심기를 거스를 정도로 안 좋은 면이 있다는 걸까? 분명 르테 씨라면 외면적인 면이 30%, 내면적인 면이 70%정도 평가를 하겠지. 아무리 그래도 상상이 되지는 않는데.
“루시피나. 두부샐러드 하나 만들어주세요. 절대적으로 안 먹는다면 우리가 맞춰줄 수 밖에 없겠네요.”
“알았어.”
그래도 싫은 기색을 하지 않고 나의 부탁에 웃는 얼굴로 자리를 일어났다. 하멀 씨를 불러서 지금 이 사람의 신변을 알아내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만, 그렇게 된다면 르테 씨 삶에서는 앞으로 믿을 만한 녀석은 하나도 없다고 마음을 닫거나 트라우마가 될지도 모르니까.
어째서 트라우마가 되냐고 물어본들, 하멀 씨의 황금빛의 마탄이 르테 씨의 머리나 내 머리를 맞추려고 노력하기 위해 공간을 가르며 지나갈 것이 뻔하다. 그리고 가장 어처구니 없는 일이라고 한다면 한 가지 더 있었는데.
“그런데 카일. 저기 있는 사람들은 누구야?”
르테 씨가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는 방향으로 보면, 레시아와 시나가 옆에 나란히 붙어서 사이 좋게 밥을 먹고 있었다. 레시아와 시나는 동물의 모습이 아닌 자신의 본 모습으로 돌아가서 식사를 하고 있다는 점.
“제 사역...”
“남편이다.”
레시아의 말을 듣고 기가 막히다 못해 입이 막혀서 나의 말이 끝까지 나오지 않았다. 레시아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남편이라고 말한 것은 어떤 경우인지 잘 모르겠는데, 마왕이라는 입장으로는 시집을 갈 수 없는 것인지 그것부터 나중에 물어보자.
“남편? 여자는 시집을 가야 하는 거잖아?”
어이없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르테 씨에게 아직 결혼도 하지 않았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레시아에게 나타나는 검은 기류를 보아, 내가 쓸 때 없는 소리를 하다간 갈려나갈 분위기였다.
“그럼 저기 하얀 머리를 한 여자는?”
“그 사람도 제 사역...”
“반려자입니다.”
레시아와 시나가 뭘 그리 짜고 맞췄는지 모르겠으나, 서로 크로스하면서 당당하게 입을 열고 있는 모습에 눈물이 났다. 앞으로 미래에 내가 어떻게 굴려지는지 모르는 불안감을 가진 눈물 말이지.
“대단하네. 평민이면서 일부 다처제를 할 정도라니. 밤마다 행복하겠어?”
왜 그렇게 공격적인 어조로 나의 속을 긁는 거냐? 안 좋아. 새벽마다 가위바위보를 하면서 벌칙으로 잔혹한 공격을 맞는 것이 뭐가 좋은 건데? 저번에는 칼라의 곁으로 갈 뻔했다.
“나도 신랑의 아내인걸?”
푸른 잎과 고운 색상이 물든 다양한 야채와 더불어, 하얗고 작게 썰어 넣은 두부에 드레싱까지 넣어서 버무린 듯한 음식이 르테 씨의 앞으로 등장했다. 루시피나는 화사하게 웃으면서 입을 열었으나, 여전히 시큰둥한 표정으로 경계를 하는 소녀는 나를 쏘아보면서 말했다.
“흐응~ 이런 남자가 대체 뭐가 좋은지 모르겠네.”
뭐.
불만이면 싸우던가?
“그래서 나의 의뢰는 받아주는 거야?”
“아뇨.”
나는 즉답했다.
“어째서! 일만 잘 해결되면 분명히 어마어마한 사례금을 준다고 했잖아! 우리 가문은 네가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대단해서 우주가 감동할 정도라니까!”
“얼마나 대단할 지라도 우주가 감동해서 다시 빅뱅을 일으키는 일은 없을 것 같은데요?”
솔직히 이번 의뢰는 좀 말이 안 되는 의뢰인데, 확실하게 말하자면 사기결혼이라고 말하는 것이 더 적절한 선택이었다. 집안에서 붙여주는 남자가 싫어서 적당한 남자 하나 데려온 뒤에, 약혼이든 혼인이든 한다고 선언을 한다면, 정작 혼약하려던 가문의 그 남자는 떨어질 것이라 생각하는데, 나의 입장으로 접어들어서 가장 큰 문제라고 한다면, 잡화점 멤버가 과연 이걸 허락해 줄까?
아무리 사기결혼이라고 할지라도 레시아와 시나라면, 그 일대를 싹 쓸어버릴 듯한 기분인데. 지도에서 사라지고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비극을 맞이하겠지.
“벌써 3번이나 결혼해봤으면서! 어째서 사기결혼을 못한다는 거야?”
그보다 르테 씨는 머리에 개념이라는 부착물이 전혀 없는 걸까? 3번을 결혼 한 것은 아니지만, 루시피나는 자비롭게 넘어가고 있어도 사기결혼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당연히 결혼을 해봐서 그런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도 않고 있었다. 나는 천천히 고민하기 시작하면서 이 의뢰의 종결을 꼭 찍어야만 했는데, 내 주변에 있는 친구들은 대부분 애인이 있거나, 베가프의 경우에는 신을 모시는 몸으로 사람과의 연애는 불가능하다. 대신 아랑이나 여신의 초청으로 어디를 간다고 하던데?
“주변에 친하게 지낸 친구도 없어요?”
“그야. 갇혀서 살아왔으니까.”
집안에서도 완전히 물건취급을 당하면서 살고 있는데?
“차라리 사기결혼을 할거라면 그 호위기사에게 해달라고 하면 되잖아요. 진짜 사랑은 신분을 무시하고 성별까지 넘어버리던데. 어째서 그런 기적의 전개를 사용하지 않...”
말을 하다가 내가 멈춘 이유는 묘하게 경직되어 고개를 숙인 르테 씨의 행동이었다. 설마 결혼을 하기 싫다는 이유가...
“르테 씨. 그 호위기사가 데리러 오길 기다리고 있죠?”
“뭐, 뭐? 아냐! 애초에 그 싸가지는 나 같은 거 신경 쓰지 않는다고! 그저 “제 일은 아가씨를 안전하게 모시는 것뿐입니다.”라고만 말할 줄 아는 과묵한 성격이지만, 자신의 일에 대해서는 적어도 자긍심을 가지고 절대로 나에 대해선 소홀히 하지 않으니까! 데리러 오는 것은 확실해도 그걸 기대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많이도 좋아하는 군.
나의 질문의 요점을 벗어나서 곧 은하수처럼 넓게 퍼질듯한 말 소리를 일부러 말리지 않았다. 그러면 지금은 르테 씨가 결혼하기 싫은 이유는, 이미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으로 생각하고, 기사인 신분과 자신의 신분에는 격차가 있기 때문에 집안에서 거절하는 거라고 단정짓고 이곳으로 가출한 것이라면, 의외로 왕족이나 황족이 아니라 귀족일 가능성이 높았다. 공작가문이나 그런 높은 위치가 아니라, 오히려 남작 정도로 예상을 하면 되겠지.
왕족과 황족은 자신의 권위가 너무 강력하여 “하면 된다.”라는 마음가짐으로, 불가능할 것 같은 결혼마저 가능하게 만드니까. 예를 들어 ‘바보온달과 평강공주’의 이야기가 대표적인 예다.
“의뢰를 착수하지는 않아도 해결법은 존재하기 마련이죠.”
“정말! 어떤 건데!”
기뻐하는 르테 씨의 얼굴에 금이 갈만한 말을 아낌없이 내뱉었다.
“가문에서 나오면 되요. 그리고 사랑의 도피로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살면 되는 거죠. 현실적인 방안은 아니지만, 그나마 현실에 조금이나마 가까운 말을 해준다면 이 정도네요.”
“뭐야! 그 바보 같은 방안은!”
의외로 충격을 먹지 않고 나에게 소리치는 것으로 본다면, 이미 이 생각까지 해봤다고 나는 추측했다. 하긴 그 호위기사가 너무 둔감한 나머지 여성의 마음을 읽지 못하고, 가문에 충성을 다하는 우직한 성격이라서 그런 걸까?
왠지 한번쯤은 만나봐야 할 것 같은데?
-똑똑!
누군가가 매너가 넘치는 노크를 한 덕에 자리에서 빠르게 일어나 잡화점의 문을 열었다. 문을 열을 때도 조심스럽게 열어야 했는데, 대부분 아이니스가 커다란 바윗덩어리를 던지거나, 시퍼런 검이 내 머리를 향해 날아오는 그런 이상한 일을 겪고 조심성이 많아진 까닭.
“이곳이 엘티노스 잡화점입니까?”
거대한 은빛의 기사가 나를 내려다보며 정중하게 입을 열었다. 키는 대략 190정도로 보이는데, 그것도 아마 높은 굽으로 되어있는 갑옷이...아니네. 그냥 키가 매우 많이 큰 것뿐이었다.
키에 대한 콤플렉스는 없지만 그래도 키 큰 사람이 내 앞에 있으면 부럽다고는 생각한다.
“저는 지금 사람 하나를 찾고 있습니다만, 이곳에 의뢰를 하면 들어주는 것은 사실이겠죠?”
“사람을 찾고 있다고요?”
나는 문을 활짝 열고 “우선 들어오세요.”라고 입을 열었다. 잡화점의 검은 나무바닥과 거칠게 철들이 마찰하는 소리가 내 뒤에서 따라 오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며, 나는 창가에 있는 책상으로 안내하는 동안, 르테 씨는 루시피나가 준 샐러드를 다 비워버리고 만족한 얼굴로 정면을 바라보다 화들짝 놀랬다.
“애들러!”
“아가씨?”
나는 애들러라고 불린 기사에게 천천히 입을 열었다.
“주역들이 모였으니까. 이제 슬슬 정식적인 의뢰를 받아볼까요?”
멍하게 서있는 애들러와 고개를 살짝 돌린 르테 씨를 보며, 나는 크게 한숨을 내쉬기 시작했다. 정상적인 의뢰를 받아들이기 전에 저들은 먼저 말싸움을 할 것 같으니, 저 둘이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진정을 할 시간이 필요하단 소리다.
그래야 내 말에 경청을 하던 제대로 된 의뢰가 들어오던 하지...
“잡화점의 주인...”
“카일이라고 불러도 됩니다. 애들러 경.”
투구로 얼굴이 감춰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표정을 확실히 알 정도로, 많이 당황하여 목소리가 떨리는 기사는 자신이 들었던 것 중에서, 단 한번도 듣지 못한 말에 질문을 했다.
“정식적인 의뢰는 대체 무슨 의미입니까? 아가씨가 무슨 의뢰를 했나요?”
“우선 두 분이 먼저 이야기를 하세요. 그 이후에는 제가 이야기를 해드릴 테니까.
내가 섣불리 이야기를 하기보단 르테 씨가 말해주는 것이 애들러 경에게 더욱 효과적이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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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오후 3시에 잠을 잤는데 아침 9시에 일어나는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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