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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듯한 오후에 잡화점 문을 열고 들어온 소녀는 피부를 핥으면 달달한 초콜릿 맛이 날 정도로 부드러운 연갈색의 외형을 지니고 있었다. 검은 머리카락을 양쪽으로 풍성하게 묶은 상태로, 어처구니 없는 표정으로 바라보는 검은 눈동자를 가진 검은 달의 여왕. 마리아가 입을 열기 시작했다.

 

지금 뭐하고 있는 건지 잘 모르겠지만 카일이여? 고양이 서기를 하고 있는 듯한 포즈인데 왜 그런지 알 수 있을까?”

 

지금 레시아가 은폐마법으로 숨었기 때문이죠. 그 덕에 저는 지금 긴장을 풀 수도 없고, 섣부르게 움직일 수도 없는 노릇이라고요.”

 

마치 비누방울을 사용하는 파문술사가 생각나는 장면이긴 하지만, 첩이 사념으로 보거니와 마왕님께서 카일을 욕망대로 헤집어버리고 싶다고 느껴지는 구나.”

 

그러면 죽는 거 아냐?

 

각오해라 주인...냐아아아아앗!”

 

내 위에서 급습을 해오는 레시아는 얼마 못 가서 비명을 지르게 되고, 그렇게 다시 아이언 클로를 집행하는 동안, 나는 마리아가 이곳에 온 이유를 어느 정도 추측해서 물어봤다.

 

영겁의 노래에 대해 뭔가 더 알아낸 거라도 있어요?”

 

그러자 마리아는 고개를 좌우로 저으면서 대답했다.

 

아니, 아무래도 본인을 찾아서 직접이야기를 들어야지만 가능하다고 생각할 정도로, 강력한 기억보안이 걸려있는 상태였노라. 역사학원장이 알아낸 것이 용하다고 보면 되겠지. 그래도 새로운 사실이라면 이 보석은 딱히 마신에게만 영향을 주던 보석이 아니라, 모든 신들에게 귀중한 가치가 있던 장신구 중에 하나라는 소리다.”

 

모든 신들에게 영향을 주는 보석이란 소리죠?”

 

마리아의 말을 듣고 영겁의 노래의 가치가 폭등하는 내용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보석 하나로 산 제물의 의식을 사용하기보단, 신을 일시적으로 끌어들이는 미끼 역할을 제대로 해낸 거겠지.

 

오직 신들에게만 영향이 있는 것인가?”

 

애석하게도 이걸 만든 자는 천계에 있는 대장장이입니다. 마왕님. 한 때 아우리스가 천계를 평정했던 시절에 아우리스에게 선물로 주려고 했던 보석이었는데, 너무 아름다워서 자신이 몰래 가지고 있다가 악신에게 빼앗기고, 이 차원이 붕괴할 뻔한 사건이 있었지요.”

 

천계에 있는 대장장이가 만든 보석이라.

보석을 대장장이가 만들 일은 없잖아?

 

마리아. 대장장이가 보석을 만들다니? 무슨 소리에요?”

 

천계에는 세공사가 없다. 그리고 물품을 만드는 것도 모두 천계의 대장장이가 도맡아서 하고 있는데, 천계의 유명한 대장장이는 그렇게 이름이 퍼지지는 않았지만, 카일만큼은 알 거라고 생각한다.”

 

아니, 제가 그걸 어떻게 알...”

 

그걸 어떻게 아냐고 물어보려고 했을 때. 3층에 있는 문짝 하나를 생각하고 나서 다시 입을 열었다.

 

이 보석은 사키엘이 만든 보석이에요?”

 

그러자 마리아는 고개를 조용히 끄덕였다. 설마 이 보석의 실체를 듣기 위해 천계로 찾아가야 할 줄 알았는데, 문제는 그 천계에서 보석에 대한 정체를 알고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는지도 잘 모르겠고, 사키엘만 따로 만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애석하게도 보석 하나 때문에 지상에 있는 고대 생명체들이 모두 전멸하고 나서, 악신은 봉인이 되어버리고 사키엘은 위험한 물품을 만들었다며 천상의 탑에 갇혀있는 상태이니라. 그것도 아주 오래 전부터 지금까지 말이지. 천계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오래 전도 아니니라. 아무튼 생명의 여신 비니스가 거대하고 힘만 추구했던 고대 생명체들이 아닌, 힘이 부족할지라도 생각하고 배울 수 있는 인간을 만들게 된 계기도 이러한 경우지.”

 

그러고 보면 데모르테에게 들은 기억이 있다. 마족은 그때 당시 마계를 담당했던 마신이 막아줘서 전멸하지 않고 살아남았다고 하더군. 그 후. 마신의 행방이 묘연해서 천계에는 사라졌는지 꽤 오래된 것으로 알고 있다.”

 

시나는 천장에서 내려와 입을 열었다.

 

그러면 지금 여신들이 그 보석에 대해서는 세상의 멸망을 불러 일으키는 보석이라고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이군요?”

 

강력한 힘으로 고대 생명체가 싹 다 날아갔다고 하니까. 그런데 악신은 대체 뭐 하는 신이길래 모조리 다 없애고 싶어서 안달이 난 거지? 지우개인가?”

 

첩도 정확한 악신의 정보는 찾고 있는 중이다.”

 

내 머릿속은 얼마 가지 않아 과부화가 되기 시작하면서 생각하는 것마저 귀찮아하고 있을 무렵. 몸을 꿰뚫는 상쾌한 허브향으로 어떻게든 진정시키기 위해 차를 마셨다. 조용히 찻잔을 내려놓고 있는 동안 베가프의 얼굴을 한 번 봐야 하는 것이 떠올랐고, 신성 아우리온으로 향할 계획으로 내 생각을 바꿨다.

 

우선 베가프에게 가봐야겠어요.”

 

주인의 친구에게 말인가?”

 

그냥 기분 전환을 할 겸 말이죠. 얼마나 잘 살고 있나 보기 위해서도 있고, 여기서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지금 마리아가 알아낸 정보를 토대로 추측할 수가 없거든요. 외출준비 할 테니 레시아와 시나는 동화하세요.”

 

동물형태가 아니라 동화를 하란 말인가?”

 

거긴 아우리스 교인들의 제국이에요. 거기서 마왕과 다른 여신이 멋대로 걸어 다니면 그거 나름대로 신선한 충격을 먹기 때문에, 지금은 동화하는 것이 더 편하죠.”

 

레시아는 그렇군. 이해했다.”라고 말하며 내 그림자로 스며들었고, 시나는 작은 고개를 끄덕이며 내 몸 속으로 흡수되는 것처럼 사라졌다.

 

마리아는 곧 돌아가봐야 하나요?”

 

아니. 첩은 여기서 쉬려고 온 것이니라. 그리고 루시피나를 데리고 어디 가야 할 곳이 있기에, 카일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에 대해 미안하다고 생각하지만, 첩의 입장은 한 단체의 수장이기에 시간을 비울 수 없노라.”

 

마리아도 다른 곳에서는 열심히 일하고 있잖아요? 그것에 대해 마음을 쓰지는 말아주세요.”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하는 마리아에게 신경 쓸 필요 없다며 나는 대답했다.

 

본래는 카일과 둘만의 오붓한 시간을 보내는 것을 목표로 왔지만, 여전히 마왕님을 상대할 때의 높은 철벽을 뚫어낼 자신은 첩에게 아직 없노라.”

 

대체 그 이상한 목표는 뭐에요.”

 

마리아가 쓸 때 없는 소리를 추가로 더 하고 있는 동안, 안쪽에서는 레시아가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그런데 주인. 신성제국인 아우리온에 간다고 해도, 주인의 친구를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오늘이 아니라면 내일이라도 상관 없어요. 그냥 얼굴 한번 보고 도와줄 일이 있으면 도와주고, 지금은 바빠서 나중에 만나자고 하면 베가프 쪽에서 연락을 하겠죠.]

 

[그게 아닙니다. 마스터.]

 

질문의 요지를 내가 잘못 이해하고 있었던가? 시나는 나의 대답을 부정하고 다른 내용으로 나에게 질문을 했으니...

 

[그 신성 아우리온에는 마스터의 얼굴이 많이 퍼져있습니다. 아우리스 여신이 백장미를 좋아한다는 소식을 교단원들이 듣고 난 이후로, 요즘 아우리스 여신에 대한 공양을 백장미 신간호로 하고 있다는 소리와 더불어, 어쩌다 보니 그 제국에 있는 90%넘는 사람들이 전부 백장미를 보게 되었으며, 아우리스 교인들은 성서와 더불어 백장미를 구입해야 아우리스에게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잠깐만 그 미쳐버린 신성제국은 어떻게 돌아가고 있길래, 아직도 멸망을 하지 않고 살아있는 거야?]

 

한 마디로 그 안은 간접적이나마 나 때문에 엉망으로 되어버렸다는 소리니까. 내가 거기에 뛰어들어가는 것은 신성 아우리온 입장에선, 여신이 강림한다는 것과 거의 비슷한 혼돈을 볼 수 있다는 소리였다. 시끄러운 것은 피해가야 고요와 평화만이 기다린다는 인생의 진리를 알고 있던 나는 단지, 베가프를 만나는 것뿐인데 어쩌다가 스파이들처럼 몰래 숨어들어가야 하는 상황이다.

 

하아~”

 

오늘의 나는 세상에 살아가는 생명체 중에서 정말 별것도 아닌데도 불구하고, 무시무시하게 커져버린 이 바보 같은 상황을 위해 한숨을 내쉬었다.

 

아저씨? 왜 그렇게 한숨을 내쉬어요? 한숨을 쉬면 복이 달아난다는 것도 몰라요? 어떻게 어린애보다 지식이 이렇게 안 좋을 수 있죠?”

 

내가 한숨 쉬는 것에 대해 네가 뭐라고 하지마. 그리고 한숨을 쉬면 복이 나간다는 건 그냥 보기 안 좋아서 하는 소리지 실제로 행운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어. 그거 하나로 지식에 운운하기에는 교과서에서도 나오지 않는 내용이니까 참조하고. 그리고, 아저씨라고 부르지 말라고 대체 몇 번이나 말해!”

 

아직까지 집에 안 갔는지 아이니스는 내 뒤에서 말을 거는 건지, 싸움을 거는 건지 알 수 없는 내용으로 다가왔고, 나의 대답이 다 끝나자 또 다른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보다 베가프 오빠라면 요즘 잘나가고 있는 추기경 말하는 거죠?”

 

나는 베가프와 동갑인데 왜 나는 아저씨고, 베가프는 오빠야? 그것부터 말해.”

 

어쨌든 그 안에 들어가기에는 아저씨의 얼굴이 너무 잘 알려져서 발에 내딛기도 전에 광신에 휩싸인 무리가 열렬하게 환영해줄 것 같아서 고민하는 거잖아요?”

 

어린애 주제에 나를 너무 잘 알고 있었다. 많이 만나봐서 그런 건지 몰라도 아이니스의 두 눈에는 확신이 담겨있는 푸른 눈동자를 보며, 나는 그래도 아저씨는 아냐.”라는 말만 대답했다.

 

그러면 카린의 모습으로...”

 

기각! 그건 아냐. 그 모습으로 변하는 순간 혼돈뿐인 그 곳에 정말로 광기를 내리게 될 거라고!”

 

사실상 성별이 이리저리 바뀌는 것은 내가 원하지 않았다. 카린이 대체 뭐라고 내가 고생을 하면서 성별이 바뀌어야 하나? 차라리 달에 있던 카렌을 불러서 다녀오라고 시키고 말지.

 

[! 그렇군! 고양이 귀를 씌우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못 알아볼 것이다. 주인.]

 

[고양이 귀가 무슨 위장도구라도 되요? 고양이 귀를 씌웠는데 사람이 못 알아본다면 그건 투명인간이지!]

 

나는 옷장에서 내 몸을 둘러쓸 수 있는 하얀 로브를 미라처럼 봉인하듯이 뒤집어 써야 했다. 어떤 사람이라도 자신의 진가를 알아보고 다가온다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하지만, 그 바보 같은 잡지 때문에 내 진가가 왜곡되어 다가오는 건 원하지 않으니까.

 

이 정도의 위장이면 될까?”

 

아이니스에게 물어봤는데 돌아오는 것은...

 

그렇게 입으면 어디 바바리 맨이 생각나잖아요! 아저씨도 요즘 시대에 뒤떨어진 거 아니에요?”

 

요즘 시대가 어떤 시대인데? 그리고 바바리 맨은 또 뭐야.

 

아저씨라고 부르지 말라는 말을 몇 번을 반복해야, 네 입에서 아저씨라는 말이 안 나올까? 아니면 너도 결국 아이언 클로가 나와야지만 그 입을 다물래?”

 

아이니스가 조용해진 틈을 타서 나의 위장 능력이 형편없다는 것을 이제서야 알게 된 내가, 좀 더 철저하기 위장을 하는 것이 아니라, 윈디를 불러서 공기를 이용해 빛을 굴절시킨다면, 나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을 떠올리고는 급하게 윈디를 찾기 시작했다.

 

도와줘! 윈디에몽!”

 

어디로 사라졌는지 잡화점 내부에서는 윈디를 찾아볼 수 없었지만, 2분 후에 어느 미래 고양이가 생각날만한 인형을 뒤집어 쓰고 온 체로 윈디가 나타났다.

 

그보다 윈디가 맞나?

 

그 이상한 인형은 그만 뒤집어쓰고 나 좀 도와줘.”

 

카일 씨가 저를 부를 줄은 몰랐네요. 이제 저에게 관심이 있는 차례인가요?”

 

인형탈이 두꺼워서 아이언 클로가 안 들어갈 것 같다고 생각하고 날 도발한다면, 너 정말 큰 실수를 하는 거다?”

 

하지만 거대한 인형 손으로는 지퍼가 내려가지 않는지 바둥거리고 있는 윈디의 모습에, 오늘도 어처구니 없는 상황에 사용할 수 있는 한숨 정발판을 사용하면서 윈디에게 걸어가 인형 옷의 지퍼를 내리자, 백옥 같은 등이...

 

-찌이이익!

 

지퍼를 다시 올리도록 하자.

그냥 평생 거기서 살라고 해.

 

잠깐! 카일 씨! 방금 소녀의 백옥 같은 피부를 멋대로 봤죠!”

 

아니. 안 봤어. 봤다고 해도 그건 이미 기억에서 지워질 거야. 그보다 너는 왜 인형옷으로 무장했으면서 정작 아무것도 안 입고 있는 거야?”

 

역시 봤잖아요! 이 변태! 좀 더 보란 말이에요!”

 

가끔 너를 상대하면서 생각하는 거지만, 그거 기뻐하는 건지 화를 내는 건지 알 수가 없거든!”

 

옆에서 보고 있던 아이니스와 마리아가 보다 못해 윈디의 옆에 붙어서 봐주기로 하고, 윈디가 정상적인 옷을 차려 입는 동안 기다리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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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마시고 썻습니다.

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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