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 395
395
대략 1주일 정도가 지나갔을 무렵. 몰락귀족을 살해했다는 수소문은 없어지기 시작했고, 누군가의 저주로 인해 죽었다는 신문이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이에, 나에게 신문을 준 아이니스는 자신의 은발을 강조하면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지만 여전히 내 시선은 신문의 1면기사만 보고 있었다.
“아저씨! 제 말 듣고 있는 거에요? 사람과 대화할 때는 그 사람을 쳐다보는 것이 예의잖아요!”
“너에게 예의에 관한 가르침을 받을 줄은 몰랐는데? 그리고 아저씨가 아니라고 했지? 그리고 이야기는 다 듣고 있었다고? 그런데 무슨 말 하고 있었더라?”
“역시 이야기 안 듣고 있었잖아요!”
1주일만 되도 어차피 다른 일이 터져서 바쁘게 살아가야 하는 목적이 있고, 하멀 씨가 암묵적으로 내린 근신 또한 슬슬 풀릴 때였다. 1주일간 밖으로 나가지 않고 뻐근했던 몸을 풀어야 할 때도 있었으나, 실전에 대한 감각은 딱히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2층 올라가는 계단의 붙어있는 모의전투방에서 할 수 있으니, 실력이나 감은 떨어지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아침운동을 다 끝내고 난 뒤에 레시아와 시나는 여전히 심연의 도서관에서 정보수집. 루시피나와 마리아는 각자 드라고니스와 비밀기지에서 활동 중. 윈디와 베니, 팔랑크스는 나 대신 밖으로 나가서 정보를 수집하며, 루나와 카렌은 달에서 근무 중이다. 데모르테는 천계에 볼일이 있다면서 사키엘의 문을 통해 이동했고, 잡화점에 남아있는 것은 나와 이프리트, 그리고 하루 아침에 잡화점을 반파시키고 놀러 온 아이니스였다.
“아이니스. 아침마다 바위를 어디서 구해오는지 모르겠지만, 던지는 건 이제 그만 좀 해라. 잡화점이 아파서 나에게 하소연을 하고 있잖아. 너만 보면 이제 대결계까지 발동할 거라고? 대결계가 발동되면 너는 이곳에 출입이 불가능하니까.”
“저는 아저씨를 노리기 위해 비밀기지에서 길러진 암살자!”
“라는 설정은 없으니까 이상한 말은 그만두고. 내가 아저씨 아니라고 500년가량 말하면 되겠냐?”
“치잇. 눈치는 빠르시네요.”
여전히 이불을 돌돌 말아서 자고 있는지 깨어 있는지 알 수 없는 이프리트를 보고는, 다시 아이니스의 푸른 눈동자와 마주쳤다.
“아스타로트는 어디 가고 너만 이렇게 찾아온 거야? 오랜만에 놀러 오라고 좀 해라. 너만 오니까 심심해서 죽을 것 같아.”
“아스타로트에게 할 이야기가 있는 거겠죠. 하지만 제 남자친구도 바쁘다고요?”
바쁘면 어쩔 수 없나. 다른 이에게 부탁을 할 수 밖에.
“그런데 아스타로트는 왜요? 혹시 아저씨도 맛있기만 하면 성별에 관여하지 않고 먹어 치우는 타입이에요?”
“이상한 소리는 내뱉지 마라. 나의 부탁은 항상 일에 관여된 것이지, 카멜롯에 있는 마법학원장이라던가, 레이비스 가문의 그 여성들의 가치관하고는 전혀 달라. 그리고 아저씨라 하지 말라고!”
아이니스는 양손으로 자신의 턱을 받치면서 나를 피곤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피곤하다기보단 어이없는 눈으로 보고 있는 게 맞겠군. 그 이유는 내가 계속 아저씨가 아니라는 어필을 했기 때문이 아닐까?
“그러고 보니, 마법 무투제에서 저에게 심한 짓을 했었죠?”
“그거야 평소에 당해왔던 것이 있으니, 그게 한 가득 쌓이면 어쩔 수 없긴 하더라고. 게다가, 카린의 몸으로는 가끔가다 억누르지 못하는 충동이 존재해. 나도 놀랬다니까? 정기 흡수만으로 네가 세상을 떠날 뻔한 일 때문에, 원래는 변하지 않아야 하지만, 되도록이면 카린의 모습은 변하지 않을 예정이야.”
애석하게도 카린은 엘티노스의 유전인자로 만들어지다 보니, 엘티노스 특유의 사디스트 성격이 이어져버렸나 보다.
“그래도 아저씨. 용케도 블랙홀에 대한 것을 잘 알고 계셨네요?”
“내가 이곳에서 책만 몇 권을 봤다고 생각해? 볼 책이 없어서 다시 재탕만 3번했다. 엘티노스가 적은 자서전이나, 여러 정보가 담긴 책들은 의외로 유용할 때가 많거든, 그리고 블랙홀에 대한 원리도 나와있으니까, 시공간술사의 길을 걸어가는 나에게 있어선, 응집되었던 공간을 강제로 되돌리는 순간, 급격한 공간팽창으로 인해 공간자체가 폭발할 거란 것도 알고 있었지. 보통 블랙홀 마법은 천천히 공간을 되돌리면서 닫으니까. 그리고 아저씨 아니라고 너희 후손에게도 말해주면 되냐?”
아이니스는 나를 보고 입을 열었다.
“의외로 머리가 좋으시네요. 그 상황에서 그런 판단을 하실 줄이야. 제가 칭찬했으니 육포나 사가시죠?”
“네가 칭찬을 했다고 어째서 내가 육포를 사야 한다는 결과가 붙는 거야? 뻔뻔한 것도 유분수지.”
그렇게 과거에 있었던 일을 말하는 동안, 아이니스는 나를 바라보면서도 저 이불에 말려져 있는 이프리트가 신경 쓰이는지, 계속해서 내 시선을 피해 그곳만 바라보고 있었다.
“네가 먼저 대화하고 있는 사람의 얼굴을 보라고 하지 않았던가?”
“아저씨. 저기 이불에 말려진 사람은 뭐에요? 우주인이에요?”
“우주인이라고 하지마. 불의 정령왕 이프리트야.”
“어떻게 꼬신 거죠?”
“꼬신 적 없어!”
그저 자기 멋대로 가계약을 맺더니 정식계약으로 되돌려버린 케이스라곤 하지만, 언제 떠나갈지 모르는 상태라고도 해야 맞았다. 내가 근신하는 동안 단 한마디도 걸어오지 않고, 단 한 순간도 눈을 마주치지도 않았으니 말이다.
“정령왕이라면 윈디 씨도 분명 바람의 정령왕이죠?”
“그거야 맞지.”
“바람과 불은 서로 상성이면서 시너지역할을 하니까 좋으시겠네요. 아아, 나도 정령과 계약 맺고 싶어라.”
내 찻잔을 뺏어 마시는 아이니스의 행동에 뭐라 하고 싶었지만, 그것마저 지적하면 되로 줄 것을 말로 받을 것 같아 입을 꾹 닫았다. 그리고 아이니스의 푸념을 제거하려는 의도로 문장과 단어를 수정을 해서 입을 열었다.
“너는 이사벨 씨의 말처럼 염동술사밖에 되지 못하잖아. 마법으로는 한가지에만 극한으로 재능을 보이고 있으니까. 염동술사의 길 최상급이면서, 뭘 그렇게 탐을 내는 거야? 너도 정령과 계약을 맺어서 수도 없이 빨려나가는 마나를 보고 기겁할 거 아니면, 괜한 생각은 하지 말고 한쪽의 길만 나아가라고.”
“그래도 여러 가지 알고 있는 것이 좋잖아요.”
아이니스의 말을 들으며 나 또한 이프리트를 바라보았다. 1주일동안의 시간이 흘렀으니 이제 슬슬 대답을 들을 차례인가? 아이니스는 천천히 자리를 떠나면서 “조만간 마법대련을 해주세요. 그럼 잡화점이 반파되는 일은 없을 거라고요?”라는 말을 남기고 사뿐하게 나갔다. 아이니스가 내 시야에서 사라진 것을 본 후에, 나는 찻주전자에 남아있던 허브티를 따르며 입을 열었다.
“이프리트. 깨어있죠.”
이프리트가 반응을 하던 말던 나는 입을 열었다.
“이제 슬슬 태초의 화로로 가시는 것이 어떠세요?”
“......”
나는 계속해서 입을 열었다.
“저번에 제가 윈디에게 끌려나가서 대참사를 겪기 전에도, 그 거울 뒤에 숨어서 저에 대한 이야기를 다 들었을 거라 생각해요. 아직까지는 계약으로 이어진 몸이라서, 이프리트가 몰래 저의 속을 들여다 보고 싶어하는 것도 알고 있었고요. 아직까지 페어링이 익숙하지 않아서, 계약자의 기억을 볼 수 없기에 제가 어째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이프리트는 이해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
과거에 대한 이야기를 할수록, 잊어버려야만 했던 죄가 계속 수면위로 떠올랐다. 죄는 곧이어 죄책감으로 변모하고 나를 괴롭히며, 수도 없는 사람을 죽인 것에 대한 것들만 생각하게 만든다. 그것이 계속해서 반복되고, 사람의 마음을 좀먹어 들어가니까.
“이프리트는 한 때, 자신의 계약자가 잘못된 길에 들어서는 것을 보았을 거라 생각해요. 그러니 제가 그 사람을 죽이려고 할 때, 적극적으로 막아선 것으로 보이고요. 그래도 이프리트. 저는 이미 잘못된 길에 들어간 적이 있어요. 이프리트는 그걸 몰랐으니까, 이제라도 제가 어떤 녀석인지 알았으면...”
“알았으면...?”
이프리트가 1주일의 침묵을 깨고 되묻기 시작했다. 너무 오랜만에 듣는 목소리이기에 한편으로는 경악을 했지만, 지금은 감정을 가라앉히고 천천히 통보를 하기로 정했다.
“계약을 해지해도 상관은...”
“카일은 그 남자와 같아.”
그 남자?
“그 남자라고 지정을 해도 누구인지 알 수 없는데 말이죠?”
“내가 최초로 계약했던 그 남자와 같은 말을 하고 있어. 자신은 나쁜 사람이니까 지금 떠나갈 거면 떠나가라고.”
“그러면...”
“하지만 나는 그걸 계속 후회하고 있어. 애초에 버림받는 것이 무섭다거나, 이별이 슬프다는 이유가 아니라, 그 남자도 그렇고 카일도 그렇고 너무 마음이 약하기 때문이다. 자신을 믿지 못하고 나아가지 못하는 그런 사람이 싫다.”
최초의 계약자가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나와 비슷하다는 소리인가?
“애초에 나는 사람이 죽어나가는 것에 대해 별 감흥이 없지만, 내 계약자가 나쁜 길에 빠지는 것은 막아야 하는 파트너라고 생각했어. 하지만 나 혼자서 파트너라고 생각을 했지, 알고 봤더니 결국 나를 남으로 생각한 거야. 언제나 자신의 일은 자신의 것인 마냥, 혼자서 앓고 살아온 거였어.”
화가 났다고는 하지만 이불에 가려진 소리 때문에, 어떤 억양으로 나에게 말을 하는지 제대로 알지 못했다. 나는 자리에 일어나서 이프리트에게 다가가, 이프리트와 대화를 하기 위해서니까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서, 얼굴을 확인하려고 해도 진공포장처럼 되어버린 이불이, 이프리트의 얼굴을 확인하기 힘들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 자기책임이니까 계약을 해지하라고 하다니. 카일은 너무 뻔뻔하고도 쉽게 포기해.”
“그야 이프리트가 화난 줄 알았죠.”
“화가 난 것은 확실해. 하지만 진정으로 화난 것은 나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던 거야. 나는 그 상황에서 도와줄 수 있어도 카일은 늘 자기가 해결하려고 달려들어. 나를 짐덩이라고 생각하고 있어.”
확실히 이프리트가 드래곤에게 불의 축복을 내려주고, 레드 드래곤을 만들어서 그 사람에게 주는 방법도 있긴 하지만, 루시피나라는 이름을 말했던 순간인지라, 대체할 수 있는 걸 만들어도, 만족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에반테인 가문이 몰락한 이유는 아마, 레드 드래곤이 자신들과의 언약을 미루고 지키지 않은 것이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루시피나가 말했던 그 말도 은근히 신경 쓰였다.
에반테인 가문과의 언약 때문에 희생당한 용들이 존재했다는 것.
그걸로 인해 그 사람은 루시피나에게 죽임을 당했다.
어쨌든 나는 생각을 고쳐서 입을 열었다.
“미안해요. 이프리트. 제가 실언했어요. 저는 여전히 부족한 몸이라, 이프리트가 필요해요. 이번에는 제대로 된 인생의 동반자로서, 혹은 저를 밝혀주는 횃불로써. 그리고, 가장 친하고 가까운 친구로서.”
그나마 내 시야에 보이는 오렌지 빛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자, 떨리고 있는 몸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아무리 오랜 세월을 살아온 불멸자라도,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하는 마음은 굴뚝 같을 것이다. 내가 아무리 잘못된 길을 걸어도. 혹은 잘못된 길을 걷기 전에, 내 옆에 있는 조력자에게 물어봤어야 했다. 옆에 있는 사람에게 먼저 신경을 써야만 했었다.
“의외로 눈치가 느려. 바보.”
“이프리트. 울고 있어요?”
“이럴 때만 눈치가 빠르지 말라고. 바보.”
자신의 최초의 계약자를 도와주지 못하고, 무능력하게 가만히 있어야 하는 자신이 괴로운 거겠지. 그러기에 나는 진실된 마음으로 용서를 구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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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44인가...
언제 완결나지 이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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