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 394
394
비록 싸움은 상대가 걸어온 것은 맞지만, 몰락귀족을 없애버렸다는 사실은 맞다. 아무리 몰락을 했어도 귀족은 귀족이기에, 어떠한 문제가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게다가 이프리트는 잔혹한 나의 모습에 나를 꺼리는 듯이, 잡화점에서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고 나에게 거리를 멀리 하려고 했다. 잠을 잔다고 해도 내 근처에서 자려고 하지 않으려는 것이 가장 큰 변화. 어차피 멋대로 계약을 했던 이프리트였으니, 멋대로 내가 해지하면 그만이니까. 이프리트가 부탁하면 그저 보내주기로 하자.
“어라아? 카일 씨? 왜 그렇게 음침하게 있어요? 혹시 제가 보고 싶어졌다거나?”
윈디는 분위기가 좋지 않는 것은 알아차렸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난기 머금은 표정을 나에게 보였다. 그러기에 나는 아이언 클로를 사용하려다가, 손은 멈추고 다시 일어서서 잡화점의 물품을 정리하기로 했다.
“어라? 카일 씨?”
“조금 트러블이 있었어. 곧 있으면 이프리트가 계약을 해지한다고 말을 하겠지. 너도 떠날 거라면 이프리트와 함께 떠나도 되고, 정령의 계약은 해지가 가능하다고 들었으니까.”
“그럼 여태까지 잡화점에 있는 책을 수십 권이나 보면서 도달한 결론이 계약해지에 관련된 거였나요? 정말이지 카일 씨는 마음이 너무 여리네요? 늙었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인간 나이의 21세는 여전히 어린 아이로군요?”
“시끄러워! 21세는 어린 나이가 아냐!”
“저보단 어린 나이인데요 뭐. 지금 당장이라도 카일 씨에게 필살기를 사용한다면, 제가 체포 당해서 끌려갈 정도로?”
아무리 어두운 분위기라도 맑게 환기시켜주는 윈디의 특유 분위기를 따라가지 못하고, 2%정도 부족한 한숨을 내쉬기 시작했다. 윈디에게 천천히 입을 열면서 내 고민을 풀기로 했으니...
“오늘 드라고니스에서 뻔뻔하게 루시피나를 자신의 것이라고 주장하던 소년을 죽였어. 아니 소년이라기보단 20세라고 하니까, 벤자민 병에 걸렸는지 벤자민 씨였는지 모르겠네. 아무튼 이프리트는 죽이지 말라고 부탁을 했지만, 결국 루시피나가 그 사람을 죽인 것으로 이프리트는 나에 대해 경멸하고 있겠지. 사람이 살아가는 데에 있어서 소중한 것을 지키려고 하는 것도, 너무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을 해. 그래서 나는 사실상 다른 사람들의 얼굴만 아는 것으로도 겁나.”
“카일 씨...”
“사실 잡화점은 혼자서 하려고 마음을 먹었어. 그래도 규칙 때문에, 그리고 잡화점의 일 때문에, 부족한 자금 때문에 이리저리 이동한 결과. 나는 너무 시끄럽게 하고 다닌 거라 생각을 해.”
조용히 지켜보든 윈디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잡화점 멤버들은 내가 뭘 짊어지고 사는 것인지 알고 있다고 할지라도, 윈디와 이프리트는 그런 사람들을 이해할 리가 없으리라. 왜냐하면 그들은 불멸의 존재이고, 우리들보다 더 오랜 세월을 살아왔고, 인간의 어리석은 선택으로 인해, 사람을 불신하는 존재가 맞기 때문이다.
“나는 말이지. 과거에 내 실수로 마을 하나를 모두 날려버린 적이 있어. 그것도 모자라서 사건이 종결될 때까지 집안에서 숨어 지냈지. 나는 네가...아니, 너희들이 생각하는 만큼 그리 밝고 좋은 사람이 아냐. 오히려 나의 이익만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 만약 루시피나가 죽이지 않았더라도, 그 녀석은 나의 이익에 걸림돌이 되니까, 죽였을 거라고 생각을 해. 나는 이미 수 천명의 사람을 죽여왔어, 고작 몰락한 귀족 하나 죽이는 것쯤은 일도 아냐.”
내 과거에 대해 윈디는 듣지 못했으리라 생각하고 입을 열었다. 사람이 남에게 과거를 고백하는 것이야 말로 인간관계에서는 경고의 신호다. 나는 이런 사람이니 네가 나를 감당할 수 있겠느냐? 라는 메시지가 담겨있다. 게다가 정령들은 자신의 눈 앞에서 살생을 하는 것을 극도로 꺼려하니까. 이번 일을 계기로 이프리트, 그리고 윈디는 잡화점 멤버에서 나갈 이유가 생긴 것이다.
“인간은 역시 제멋대로네요? 멋대로 저에게 들어오라면서, 이번에는 나가라고 하다니?”
“멋대로 들어온 것은 너희들이거든?”
내가 아무리 우울하고 음침하게 있어도 이것만큼은 제대로 생각한다. 그렇다고 해서 나에 대해 콩깍지가 씌워진 눈으로 보게 하지 않도록, 언제 어디서든지 객관적인 눈으로 나를 판단해서, 떠나기 쉽도록 계속해서 나는 노력해왔다.
“그런데 그거 알아요? 인간의 관계는 마약과 같은 거란 말?”
“그거 후박사의 모험에서도 나오잖아? 분명 닥터가 그렇게 말했지. 그게 뭐라도 관련이 있어?”
“지금 카일 씨가 닥터처럼 행동하고 있잖아요?”
정말 이세계의 문물을 누가 받아들였는지 몰라도, 나를 그 재능 있는 의사양반과 비교분석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윈디는 내 손을 부드럽게 감싸고 자신에게 돌려서 환한 미소를 보였다.
“카일 씨와 닥터라는 사람의 가장 큰 공통점은, 속죄를 하기 위해 노력을 하고, 남을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를 한다는 점이에요. 애초에 이프리트는 카일 씨를 이제서야 알아가는 시점에서, 그렇게 좋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고 해서, 당장 계약해지를 하고 떠나가라는 분위기를 보이면 안 되죠.”
“지금 잡화점의 상황이 난리 난 것도 몰라? 하멀 씨가 무서운 얼굴로 찾아와서 “몰락한 귀족이라도 죽이면 안 돼.”라는 말을 평상시와 다르게 차분하게 말했다고? 그 정도로 극도의 냉정함을 하고 있었던 하멀 씨는 처음 봤어. 어떻게든 덮어준 모양이긴 하지만, 다음부터는 행동을 조심하라고 했다고? 내가 닥터를 닮든 말든, 지금은 내 옆에 있으면 이미지만 안 좋아지니까, 시간을 들여서 좀 멀리하는 것이 이로울 거야.”
나는 윈디로부터 손을 슬며시 빼고, 다시 뒤를 돌아서 이미 진열 되어있는 물품만 만지작거렸다.
“음. 어떻게 하면 카일 씨의 기분을 풀어줄 수 있을까요?”
“내가 분명 가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럼 카일 씨 앞에서 전라가 된다면?”
“그런 좋지 않는 농담은 삼가 하라고!”
“꺄하하! 카일 씨가 화를 낸다!”라며 윈디는 고의적인 비명을 지르고, 나에게서 도망치는 시늉을 하기 시작했다. 윈디의 장난은 사람의 기분에는 상관없이 가능하다는 새로운 사실이 밝혀지면서, 조만간 한숨을 쉬어야 하는 타이밍이 늘어났음을 기억했다.
이미 다 정리를 했을 터인 물품이나 만지작거리는 내 어설픈 웃음은, 우연히 걸어 다니고 있는 거울을 통해 바라보고 있었다.
걸어 다니는 거울? 파르시아가 마법부여로 만들어낸 거울이 아니잖아? 그런데 어떻게 거울이 이곳을 걸어 다닐 수 있는 거지?
“짠!”
“윈디. 너 대체 무슨 속셈이야.”
도망가서 다시는 오지 않을 줄 알았던 윈디가 거울 뒤에서 나타났다.
“그야 당연히 카일 씨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한 저의 다이렉트 서비스!”
“다이렉트 어택을 잘못 말한 거겠지. 그 이상으로 나에게 장난치려고 하면 갓 핸드 크레셔를 먹일 거야. 오벨리스크의 거신병 효과는 알고 있겠지?”
“하하하. 그거야 당연히 알고는 있지만, 제가 이 거울을 왜 가져왔는지 아시나요?”
나는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윈디의 행동에는 가끔 내가 계산하지 못하는 범위가 존재하니까.
“헤헤. 바보 같은 얼굴.”
“너 일로와! 지금 당장!”
화를 내며 다가가는 사이에 거울 속에 있는 내 자신이 더욱 밝게 비추어졌다. 내가 내 얼굴을 보고 순식간에 분노를 집어삼켜야만 했고, 어느 사이에 차갑게 식어버린 머리는 윈디에게 질문을 던지자고 부추겼다.
“그래서. 이 거울의 의미는 뭔데? 풀 죽어있는 모습을 보면서 자책감을 느끼란 거냐?”
“그 반대에요.”
반대라니?
“저는 태초의 카일 씨의 정신상태를 보며 많은 생각을 했답니다? 그 중에서도 카일 씨는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다는 결론이 나왔어요!”
“정신과의사 노릇을 할 거면, 다른 곳에서나 해.”
“그러면 어째서 카일 씨는 자신을 비춘 거울에 떳떳하지 못하는 걸까요?”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눈을 돌려버렸다.
“카일 씨? 선언 하나 할까요?”
“뭔데?”
“지금 거울 앞에서 자신의 모습에 눈을 돌리면, 제가 밤 중에 필살기를 사용한다는 걸로?”
터무니 없는 제안에 나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애초에, 그게 필살기와 무슨 상관이 있는데? 그리고 그런 거 사용하지 말라고, 애초에 여기는 전연령이잖아?”
“위험하다 싶으면 킹 크림존으로 날리면 되죠?”
“그런 개그소재는 몇 번이면 충분하다고, 질리도록 나오면 오히려 좋아하지 않아. 그리고 애초에 그 게임은...내가 너무 불리해.”
내 손에 집었던 물품을 천천히 내려놓고 윈디에게 말을 했지만, 윈디는 전혀 봐줄 생각이 없었는지 히죽히죽 웃으면서 나에게 2가지 물품을 꺼내기 시작했다. 하나는 눈가리개였고, 다른 하나는 데모르테에게 빌려왔는지 개 목거리와 줄이 존재했다. 어째서인지 모르는 위화감이 기어오르기 시작하면서, 지금 내 몸은 “전선을 이탈해라!”라는 명령이 박히고 있었다.
“저기? 윈디? 그거 뭐야?”
“음. 지금 당장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못할 것 같아서. 제가 카일 씨에게 사랑을 듬뿍 주려고 하는데요?”
호박색의 눈이 형형할 수 없을 정도로 꺼림칙하게 요염한 빛으로 변하고 있었다. 이제 슬슬 머릿속의 반응은 “이건 미친 짓이야. 난 여기서 나가겠어.”를 반복하고 있었고, 몸에 긴장이 순식간에 들어가 내 발은 자동으로 출구든 창문이든, 빠져나가기 쉬운 곳으로 향해 서서히 비틀어지기 시작했다.
“웃기지마. 무슨 사랑을 듬뿍 주는 거야? 네가 무슨 영양사냐? 아니잖아.”
“그래도 지금은 모두 다 바빠서 외출중인 상태고, 베니와 팔랑크스는 연습을 하고 있고, 이프리트도 어디에 틀어박혀서 자고 있다고요? 그러니 저라도 이렇게 카일 씨의 옆에서 이~런 거나 저~런 거나 하는 것이 어떨까 하는...꺄아아아아악!”
윈디가 비명을 지른 이유는 아이언 클로를 집행했기 때문이다. 윈디의 머리를 붙잡고 조여오는 나의 오른손을 붙잡고 발버둥을 치면서...
“하하하! 아파! 그런데 어째서 인지 날아갈 것 같은 이 기분! 아아, 카일 씨 조금만 더 강하게! 제가 어디론가 날아가버릴 정도로!”
“지옥으로 날아가버려!”
왠지 기뻐하고 있는 윈디의 모습에 나는 질색하며 반대편으로 던져버리기 시작했다. 애초에 저런 거울이 뭐라고 내가 계속 바라봐야 하는가? 나는 거울에 눈을 때고 다시 의미 없는 물품정리를 위해 고개를 돌리는 순간, 내 시야에는 순간 암흑기가 찾아왔다.
“어라? 어두워. 오늘은 계기일식의 날이었던가?”
하지만 의문도 잠시, 나는 내 귓가에서 들려오는 뜨겁고도 매서운 숨소리에 경직을 당했다.
“하아...저지르셨군요? 제가 거울에서 눈을 때면 안 된다고 했을 텐데요?”
“윈디! 눈가리개나 풀고...큭!”
목 언저리에서 거대한 통증과 함께 다른 방향으로 끌려가기 시작했다. 어째서 내 주변에 있는 사람은 이리도 난폭한 것일까?
“장난하지 말라고 내가 몇 번을!”
“어머나? 저는 장난이 아니랍니다? 벌칙은 예정된 거니까 각오해주는 것이 좋지 않나요? 카일 씨의 아이언 클로로 인해 달아오른 몸은 책임져주셔야죠?”
“뭘 책임을 져! 아이언 클로가 기폭제라도 되는 거냐! 지금 당장이라도 그만두면 아무일 없이 넘어갈 수 있으니까, 그 바보 같은 범죄를 저지르기 전에 제발 한번이라도 생각해보란 말이다!”
나의 피눈물이 솟아오르다 못해 강을 만들고 호수를 만들어 바다까지 흘러갈 법한, 설득에도 불구하고 윈디의 몸이 겹쳐진다는 것은 천천히 알아차리기 시작할 쯤. 어마어마한 소리를 내 귓가에 터트리기 시작했다.
“이 상태로 야외에서 행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네요. 물론 저는 바람의 정령왕이니, 저희들의 모습이나 목소리는 감출 수 있지요. 저들은 안보이지만, 우리들은 저들을 볼 수 있으니, 그건 나름대로 굉장한 흥분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귀청소를 받고 싶다면 차라리 말을 하라고!”
“아뇨. 귀청소가 아니라 필살기랍니다. 커맨드는 대충 426강손정도? 아무튼 카일 씨? 외출시간이에요?”
“그만 둬!”
그 이후에는 나에게 끔찍한 경험이었으니 말을 하지 않도록 하겠다.
=============================================================================================
사실상 윈디에게 끌려나간 이후에는 별 다른 일이 없었습니다.
아마도요...
'취미로 글쓰는 중? > 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 396 (0) | 2017.04.05 |
---|---|
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 395 (0) | 2017.04.04 |
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 393 (0) | 2017.04.02 |
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 392 (0) | 2017.04.01 |
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 391 (0) | 2017.03.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