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멜롯 마법학원의 비서 - 29
29
어느 사이에 카린이라는 여성의 손목을 붙잡고 사라진 켈모리아의 영향은, 결국 주변 남성으로부터 나를 관심을 가지게 만들었다. 이럴 때야 말로 보호자가 없는 어린 아이에 대한 연민을 느끼면서, 나는 그 많은 남자들과 춤을 춰줄 수 없는 몸이기에, 이리저리 거절을 하면서 결국 도달한 곳은, 밤의 풍경이 한 가득 담아내고 있는 창문 구석에서 혼자 쪼그려 앉고 있었다. 교양을 위해 춤을 배워왔지만 써먹을 때가 없는 것이 아니라, 되도록이면 빅터까지 같이 와서 춤을 추고 싶었으나, 애석하게도 오늘은 임무 때문에 빅터는 같이 오지 못한 사실을 계속 곱씹어보며, 우울한 마음이 한 가득 모이기 시작했다.
그래도 한가지 볼만한 것은 이곳의 밀리아는 마치 여왕이라도 되는 마냥, 모든 남성들이 꼬리를 물며 따라가도 당당하고 씩씩하게 대화를 할 수 있는 것. 나 같은 경우는 조금만 짜증나도 걸러지지 않는 폭언이 나오기에, 성격차이로 생겨난 문제점인지, 아니면 나의 문제점만 이런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어라? 혼자야?”
맑고 깨끗해 보이는 푸른 눈동자가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자세히 올려다 보니 나와 비슷한 은색의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는 어린 소녀. 이제 10대 중반의 외모를 가지려고 보이고 있었다. 아직까지 나보다 키가 작아 보이지만, 나는 천천히 일어서서 입을 열었다.
“일행들이 뿔뿔이 흩어져서 말이죠. 그나저나 당신은 왜 저에게 말을 거는 거죠?”
“그냥 비슷한 머리 색깔이라서 말을 걸어봤어.”
“쓸 때 없는 참견이네요. 머리 색 가지고…….”
사실 너무 고마웠다. 안 그래도 그냥 집으로 돌아갈까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나마 평범하게 말을 걸어온 사람이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대부분 남자들은 나를 유혹하려는 의도로 다가오지만, 저 앞에 있는 소녀는 단순히 나를 흥미로운 눈으로 보고 있었으니까. 순백의 드레스를 입은 소녀는 파티장과 어울리지 않게 수수하고 문양이나 장식도 없어서 밋밋해 보였지만, 오히려 그게 자연스러움이라는 존재를 부각시켰다.
“나는 아이니스라고 해. 너는?”
“전 아리엘이라고 해요. 그보다 제가 언니인 것 같은데요?”
“음. 그럼 아리엘 언니로 부르면 될까?”
나는 존댓말을 해주길 원했는데 호칭만 존중해주는 이상한 소녀였다. 하지만 그게 오히려 더 자연스러우니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리엘 언니! 꺄아!”
“자, 잠깐만요! 갑자기 끌어안지는 말아주세요. 파티장에 사람들도 있는데.”
소녀의 돌발행동은 나를 당황스럽게 만들기 충분할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그저 통성명만 교환하고 언니라고 불러도 된다는 허락을 했더니, 이젠 느닷없이 내 개인공간에 뛰어들어서 기쁜듯한 얼굴로 끌어 안고 있었다.
“그래도 아리엘 언니는 차분하고 여린 모습을 하고 있으니, 어른스러우면서도 지켜주고 싶다고 할까. 응석부리고 싶으면서도 반대로 응석을 받고 싶은 그런 분위기라고? 양 극단의 매력을 갖는 것도 힘든 일인데, 정말 절묘한 조화에다가 스타일도 좋으니까. 나중에 아저씨에게 소개시켜줘야지! 그나저나 어디서 살아?”
“저는 카멜롯에 있는 마법학원지부에서, 켈모리아 씨와 살고 있어요. 정확한 주소명은 잘 모르겠지만, 아이니스 씨는…….”
“아이니스라고 불러 언니.”
생동감이 있는 밝은 목소리가 그렇게 말하자, 내 안에서는 또 다른 경험으로 인해 기쁨이 차오르고 있었다. 이게 바로 친구를 사귄다는 행동이 이런 것일까? 친구가 되는 것에 대해 철저한 계산이나, 확고한 신념, 이상적인 목표가 있어야 한다고 철저하게 생각한 것에 비해, 아이니스는 단지 내가 혼자이고, 자신과 비슷한 머리색이라고 말을 걸어온 것뿐이었다.
“그래요. 아이니스. 아이니스는 어디서 살고 있죠?”
“나는 리벌트 마법학원 고등부 기숙사에서 살고 있어. 이번에 마법 무투제에도 참여할 수 있다고 해서, 나도 이곳에 초대받을 수 있게 된 거야.”
“그렇군요. 확실히 행정학원의 학생회장은 마법 무투제를 기념해서, 이틀 전에 파티를 열었다고 했는데, 그 대상은 전부 마법 무투제에 참여하는 학생들과 관련이 있는 것 같네요. 물론 저도 마법 무투제에 출전합니다. 한 팀의 리더로 말이죠.”
아이니스는 나의 말에 눈이 동그랗게 커지기 시작했다. 내가 리더로 나간다는 소리에 한 가득 놀란 것이겠지.
“정말 대단해! 어린 나이에 벌써 선생님급과 맞먹는 리더로 출전하다니.”
“그러면 아이니스는 아직도 어린 나이에 천부적인 재능으로, 고등부에 월반해버린 것 같은데요?”
서로 칭찬을 해주고 서로 웃기 시작했다. 그나마 이렇게 밝고 귀여운 아이와 친구가 된다 좋긴 하지만, 리벌트 마법학원이라면 이 대륙 북쪽의 설원으로 가득한 제국이 틀림 없었다. 한 마디로 너무 멀어서 자주 만날 기회가 되질 않는 것. 그래도 얼굴이라도 아는 것이 중요한 만큼, 이 아이와 친분은 돈독하게 나누기로 하자. 마법 무투제에서는 어떤 모습을 보여줄 지 알 수 없지만, 지금은 이 아이의 밝은 모습을 지켜보기로 하자.
“자 선물! 우리 집에서 만든 육포인데, 이건 친해졌다는 증거. 스승님도 이거 하나면 사족을 못쓰고 내 부탁을 자주 들어주거든.”
“아. 고마워요. 잘 먹을…….”
-슈악!
방금 엄청난 속도로 바람을 가로지르는 소리가 났는데, 하얀 올빼미가 순식간에 낚아채고 검은 고양이가 그 뒤를 빠르게 뒤쫓고 있었다. 멍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나와 아이니스는 서로 쳐다봐도 당황함을 감추지 못하고, 다시 저 멀리 날아가고 있는 하얀 올빼미를 바라보며 잠깐 침묵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 곳에서 할 것이 없으니 나 또한 돌아가려고 하는데, 회백색의 머리카락을 나부끼며, 무언가가 내 쪽으로 달려오기 시작했다. 드레스를 입었다고 하지 못할 정도로 경망스러운 달리기. 아니, 저건 드레스라고 보기에는 고스룩인데?
“처음 본 미소녀다! 특종! 특종! 특조오오옹!”
엄청난 소리를 지르며 달려오는 한 여성을 보며 도망가려고 했는데, 뒤를 돌아보며 뛰어내리려고 했지만, 이미 양팔을 벌리며 나의 길목을 차단한 여성이, 호박 빛의 은은한 눈동자를 번뜩이며 입을 열었다.
“오오! 위험해! 이것은 위험해!”
“위험한 건 당신이에요.”
아무리 생각해도 나보다는 나를 막아서는 저 사람이 위험하다고 본다. 제 3자가 한 눈에 봐도 바로 경비대를 불러서 저 여자를 끌고 갈 정도. 거친 숨을 몰아 내쉬는 것은 이곳까지 뛰어오는 이유가 아닌, 그저 나를 보고 광분한 상태까지 갔다고 본다.
“가만히 있어도 피어 오르는 청순함과 연약함과 에로틱함! 내가 정보 상인의 일을 하면서 이런 정신이 탈출할 것만 같은 사람은 처음 봐! 나랑 비밀친구 해줘! 나랑 계약 맺고 취재하게 해줘!”
“정신이 탈출할 것 같은 것이 아니라 이미 말머리 성운으로 탈출했군요. 시끄럽고 무릎이나 꿇으세요!”
“네!”
마치 강아지라도 되는 마냥 내 앞에서 무릎을 순식간에 꿇었다. 이 사람은 대체 누구인가? 정보 상인이라고 들었는데 유명한 사람인가?
“당신. 이름이 뭐죠?”
“아. 이거 초면에 실례가 많았네요. 저는 윈디 메르아라고 합니다.”
분명 내 쌓인 지식을 토대로 기억을 이리저리 들춰보면, 바람의 정령왕이라는 단어밖에 나타나지 않았다.
“잠깐! 당신은 바람의 정령왕이잖아요!”
“어라? 그건 잡화점 멤버 말고 대부분 모르는데? 오호라? 평범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역시나 당신은 뭔가 숨기고 있군요?”
“아. 그건….”
그렇다고 내가 마족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말을 꺼내는 순간, 그거마저 정보상인에게 먹이를 던져주는 꼴이 된다.
“혹시 저에 대해 비밀리에 사모했다던가?”
“당신은 대체 어떤 정신구조를 가지고 있길래, 그런 헛소리가 당차게 나오는 겁니까.”
상대하면 상대할수록 귀찮으면서도 힘이 빠지는 기분이었다. 정령왕이라는 존재는 본래 자연계를 지배하는 자인데. 나의 지식과는 너무나도 다른 모습에, 눈 앞이 깜깜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지금 사람으로 인식이 되었을 터인데, 누구에게나 말을 잘 듣는 길 강아지 같은 분위기라니.
“아무튼 저는 취재든 뭐든 하고 싶은 마음 없어요. 속히 돌아가주시죠.”
남들보다 차갑게 대했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나의 얼굴을 보며 “우와아~!”하고 좋아했다. 가장 골치 아픈 존재는 마조히스트가 아니라, 그냥 바람의 정령왕 그 자체라고 생각했다.
“뭐 본인이 싫어한다면 제가 직접 염탐해서라도 알아볼 수 밖에.”
“그거 범죄인 것은 알고 있죠…?”
배짱 두둑하게 다짜고짜 나를 스토킹한다는 선언까지 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야 농담으로 끝나는 일이라면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하지만, 지금 저 눈을 봤을 때는 언제 어디서든지 나를 지켜볼 수 있다는 듯이, 자신감이 한 가득 차서 눈을 타고 흘러내려 호수를 이르고 곧 이어 바다로 흘러내릴 것 같은 모습이었고, 잡화점 멤버라고 말을 한 것으로 보아 윈디라는 이 사람도, 카린……정확히는 카일이라는 남자와 같이 지내는 모양이다.
“그보다 잡화점이라면 엘티노스 잡화점이라는 소리겠죠?”
“어라? 뭐. 그렇지. 아리엘.”
어째서 내 이름을?
“당신 방금 전까지만 해도 처음 보는 미소녀라고 달려왔잖아요! 어떻게 제 이름을 말한 거에요?”
“바람이 속삭였어요. 저는 아까와도 말했듯이 바람의 정령왕. 모든 대기는 내가 관리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주겠나요? 아아. 프로필이 들어온다! 오오! 그렇군!”
신 내림이라도 받는 듯이 혹은 두 팔을 벌려서 모든 생명체에게 원기를 나눠 받는 듯이, 정체불명의 행동을 하고 난 뒤에 수첩에 느닷없이 적고 있었다.
“후후후! 바람의 정령왕 앞에서는 숨길 수가 없지요! 응? 뭐라고? 잠깐만.”
느닷없이 한쪽 구석에서 오른손으로 오른쪽 귀를 막더니, 가끔가다 고개를 끄덕이고는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꽤나 흥미롭네. 이건 비밀로 간직해야 할지도 모르겠어.”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몰라도, 나에 대해 무언가 더 알아낸 것일까? 이 사람을 통해 적어도 내가 어째서 이곳에 눈을 떴는지 알아내기라도 한다면, 내가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 단서라도 잡을 수 있을 텐데.
“설마. 제가 이곳에 왔을 때를 들은 건가요? 바람에게?”
무겁고 진지한 얼굴에서 나의 질문에는 다시 웃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응? 뭐가? 난 잘 모르겠는데?”
“제가 이곳에 맨 처음으로 몬스터가 배회하는 숲에서 눈을 뜰 때. 그 이전에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 알 수 있잖아요?”
그러자 윈디는 웃는 얼굴로 잔인한 말을 내 가슴속 깊이 심어줬다.
“누구에게 다 말할 수 있어도, 지금의 아리엘 씨가 알고 있으면 안 되는 이야기에요.”
“그런…가요….”
윈디 씨는 낙심하고 있는 나에게 병 주고 약을 주는 식으로 또 다른 말을 했다.
“그렇게 자신에 대해 알아가려고 한다면, 언젠가 자신의 힘으로 내가 누구인지. 또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자연스럽게 알게 될 거라고 생각해요. 지금은 이곳에서 혼란을 주지 않기 위해 기억이 잠겨있는 것 같지만, 언젠가는 모든 것을 받아들였을 때, 방해되지 않는 선에서 모든 것이 기억날 거라고 전 그렇게 믿고 있어요.”
윈디의 말이 위로가 되었냐고 물어본다면 그건 절대 아니지만…….
과거를 쉽게 버리지 못하는 이 미련한 성격 때문에, 내가 사서 고생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언제는 과거를 돌아보지 않고 현재와 미래에 집중하겠다는 나의 다짐은, 어디서부터 흔들리기 시작했을까?
확실히 빅터의 말 한마디로 인해, 나의 중심축과 같은 마음가짐이 무너진 것일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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