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멜롯 마법학원의 비서 - 26
26
나는 켈모리아 대신해서 부활동을 시찰하는 명을 받고 돌아다니는 도중, 세피르는 잠깐 릴리스라는 몽마들의 여왕에게 불려서 부재중이던 사이에, 자세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어느 사이에 내 뒤에서 덮쳐오는 손수건과 더불어, 강렬한 냄세 때문에 서서히 의식을 잃었던 것으로 추정했다. 그것도 너무 어처구니 없게 당한 나머지, 누가 보면 몇 장면을 건너뛰어버린 것처럼 보여서 미안할 따름이지만, 마법학원 안에서 납치당한 사례는 나 밖에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처구니 없게도 내 시야에 비추어진 사람 또한 나와 같은 마법학원의 교복. 솔직히 짧은 스커트만 봐도 알 정도였다.
“대단한 동화마법이네요. 설마 이렇게 잡히게 될 줄은.”
붉은 머리카락에 크로와상처럼 양갈래로 머리가 꼬아진 여학생은, 아주 만족스럽다는 눈빛으로 “크크큭!”하며 소리를 흘리고 있었다. 그리고 입을 열었는데 마치 연극을 하는 듯이 격양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아아! 드디어! 이 숭고한 날이 도래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드디어 저의 포켓볼로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르는 신비의 여인, 단숨에 학원의 인기투표에서 당당히 1위를 자리잡은 켈모리아 학원장님의 비서. 아리엘을 단독으로 취재하게 될 줄은!”
“취재치고는 상당히 난폭한 수단을 쓰시는 군요. 손과 발을 묶는 것은 엄연히 범죄에요.”
내 말에 잠깐 움찔거리더니 얼굴을 가까이 가져간 청색의 눈동자가, 나의 얼굴을 샅샅이 핥으려는 듯한 움직임으로 이리저리 굴러갔고, 뭔가 이상할 정도로 불안정하게 보이는 모습을 한 여학생은 입을 열기를….
“그래도 취재에 협조해달라고 하면 도망갈 거잖아요?”
“뭐. 그렇긴 하죠.”
이건 시원하게 인정할 수 밖에 없던가? 아무튼 룬보다 더 심할 정도로 앞뒤 생각하지 않고, 학생을 납치하는 사람이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보다 나의 손과 발을 묶은 가죽끈은 어디서 많이 봤는데.
“설마. 이 가죽끈은?”
“맞아요. 전부 마법부여가 되어있는 가죽끈이에요. 저는 레이나 씨의 비밀친구라서 자주 빌려주기도 하지요.”
뭔가 비밀친구라는 단어부터 불길함에 극치를 달리고 있었지만, 지금은 그것에 대해 묻지 않고 다른 말을 하기로 하자.
“불편하니까 가죽끈은 풀어주지 않겠어?”
“그러면 취재에 승낙해주시는 건가요? 그런 건가요? 정말인가요?”
나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괜히 이런 일에 거절을 해서 더 심한 꼴을 당하기 전에, 절대적인 우선권을 저 여학생으로부터 어느 정도 완화를 시키는 방법으로 가는 것이, 최소한의 피해로 끝날 수 있는 사례가 된다.
“하지만, 그 가죽끈에는 거짓말을 못하게 하는 마법까지 되어있어서, 풀어주기는 싫다고 생각하는데 말이죠?”
“뭐라고!”
“간단한 질문부터 할까요? 아리엘 씨는 씻을 때 어디부터 씻나요?”
“그야 오른쪽 어깨부터…읍!”
설마 정말로 자백하는 마법까지 되어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뭔가 귀중한 정보를 얻었다는 듯이 만족하며 웃고 있는 저 요망한 미소를 밟아주고는 싶었지만, 마나를 생성하고 싶어도 어디선가 잘못 되었는지 차단당했다. 요즘 내 인생 역사상 가장 무서운 것이 마법부여가 된 가죽끈으로 자리 잡기 전에, 빨리 이곳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더 치욕적인 질문이 나에게 들어오기 직전에.
“그런데 정신방어가 어느 정도 있나 보네요? 도중에 자신의 말을 막을 정도면, 그래도 중요한 것은 대부분 다 알아낼 수 있으니, 다음 질문으로는 처녀인가? 비처녀인가? 대답은요?”
“아직까진 처…읍!”
“네. 그럼 아직까지는 순결을 지키고 있는 몸으로. 혹시 짝사랑하는 상대는 있나요?”
“있…읍!”
확실히 말해 너무 굴욕적이라 눈물이 나오려고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무의식적인 나의 행동을 막을 수 없는 것이 너무 큰 죄악이라고 할까.
“이거 풀어! 어째서 안 풀리는 거야!”
“정보는 계속해서 모으고 있네요. 아아, 아리엘의 프로필이 저의 신문 1면에 장식이 되어, 모든 이들에게 흥미를 끌게 된다면, 저는 지금의 위치보다 더 높은 자리 위로 올라갈 수 있겠지요? 그러면 다른 질문을 해볼까요?”
“하지마. 하지 말라고! 차라리 날 죽여!”
이게 신문부의 취재인지 아니면 날 정신적으로 확실하게 죽이기 위한 고문인지 알 수 없지만, 더 이상의 내 개인적인 정보를 캐려는 행위는 용납 못했다. 차라리 더 이상의 수치를 느끼기 전에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이 더 좋을지도.
“어머나? 아리엘 씨는 항상 냉철하면서도 순진한 얼굴을 하면서도, 의외로 확고하면서도 결단력이 있는 여성이로군요? 정말이지 이런 모습을 혼자 보기에는 너무 아까운데 말이에요.”
완전히 날 가지고 놀고 있다니, 건방져도 정도 것 건방져야 개성이지! 지금 당장이라도 이걸 끊고 이 녀석을 혼내줄 수 있다면 뭐든 다 좋을 텐데!
“아리엘 씨의 과거는 어떤지 묻고 싶군요?”
“과거?”
과거? 무의식적으로 나에 대한 과거에 대해 입을 열어야 하는데, 그건 나도 궁금해왔던 거잖아? 오히려 이게 기회가 되어 나에 대한 것을 알 수 있을 거야. 하지만, 말해야 하는데? 왜 말이 나오지 않는 거지?
“어라? 아리엘 씨? 과거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시죠? 어느 집에 태어났고, 어디서 살아왔는지는 알아야 하잖아요?”
그야 나도 이야기 하고는 싶지만, 중요한 과거가 없는 나에게 대체 어떤 걸 말하라는 거지? 거짓을 꾸미지 못하고 진실만을 말해야 하는 이곳에서, 나는 대체 무엇을 말해야 하는 걸까? 나의 과거에 대한 것은 이미….
모조리 지워졌는데.
“아. 아아! 아아아아아아아아!!!”
가슴속이 너무 답답해.
머리가 너무 뒤죽박죽이다.
무의식적으로 나에 대한 과거를 꺼내기 위해, 너무 무리하게 뇌를 가동하고 있는 것일까? 하지만 견고하게 묶여있는 나의 기억봉인은 그것만으로도 부족하다. 나조차 허락하지 않는 나의 과거에 대해서, 그리고 진정한 나에 대해서 알고 싶어도, 생각하는 것조차 온 몸에 격통이 달리게 되었다.
“아으으윽! 크아아아앗!”
“아, 아리엘 씨! 정신차려요! 지금 여기서 끈을 풀어줄 테니! 폭주는 그만…!”
마지막에 당황한 표정으로 내 모습을 보고 있던 여학생의 말을 끝으로, 내가 다시 일어났을 무렵에는 반정도 날아가버린 건물 속에서, 가죽끈을 모조리 태워버린 체 의자에서 이미 일어난 나의 모습이었다.
“아리엘. 다행이네. 적절한 타이밍에 돌아와서. 정말이지 걱정이나 끼치고는.”
“켈모리아? 어라. 난 대체….”
저 멀리 쓰러져있는 여학생을 구하기 위해서 방어마법이 그대로 남아있었고, 켈모리아는 등이 살짝 파인 와인 빛의 드레스가 엉망진창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활짝 웃는 얼굴로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너의 과거를 캐려고 하는 벌은 그 대가가 죽음이라는 것을 모르는, 천진난만하며 겁이 없는 학생의 최후라고 할 수 있지. 죽지는 않았지만……. 그건 그렇고 불안전하게 각성할 뻔했어. 그건 그렇고 이건 좀 심하네. 현실과 허상을 구분할 수 없게 되는 세계라니. 하마터면 2등급 경계까지 들어갈 뻔했다니까?”
오른쪽에서 들려온 남성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세피르의 검은 반바지와 상의에는 눈에 띌 정도로 잦은 상처들이 나오고 있었다. 아니, 그 전에 이 남자는 세피르가 맞는 것일까? 고지식해 보이는 외모와 날카로운 눈매, 거기에다가 소년의 모습이 아닌 청년의 모습을 가진 이 남자는? 누구?
“아. 내 본래의 모습은 처음이었던가? 무리도 아니지. 나는 성격 때문에 꼬마의 모습이 더 잘 어울린다는 소리를 들어서, 항상 소년의 모습으로 하고 있었지만, 200년 이상을 살아온 내가 설마 소년의 모습 그대로라고 생각해?”
“정말 세피르야?”
나보다 키가 클 줄은 상상도 못했는데.
“음. 역시 이 모습으로는 여성의 심장에 무리가 가긴 하겠지?”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을 때, 사건이 일어난 구역에 몰려온 구경하는 사람 대부분이 여학생인 것을 확인하고, 세피르에게 당장 명령을 내렸다.
“지금 당장 뱀의 모습으로 돌아가! 지금 여학생들을 전부 현혹시킬 셈이야!”
“그래도. 이런 모습이 되면서까지 막은 것은 나라고? 상을 주지 않는다면 돌아가지 않고 주변에 적당한 아이 하나와 같이 노닥거리러 갈까나?”
세피르가 맞네.
협박을 하는 것으로 사역마를 알아보는 내가 슬프긴 하지만, 그래도 지금 당장 세피르가 수상한 짓을 하기 전에, 아니. 경비대에 끌려가서 새로운 팔찌를 채우기 전에, 나는 세피르를 보며 입을 열었다.
“알았어! 상이라면 줄게! 그러니까 돌아…!”
-쪽!
“읍! 으우웁!?”
뭘 당했는지 모르겠지만 순식간에 온 몸이 과열되기 시작했다. 천천히 정신을 수습해서 어떤 상황인지 알아본 순간, 입과 입을 맞대고 있는 세피르의 얼굴이, 지근거리까지 다가왔음을 알 수 있었다. 특유의 강하고 좋은 남성의 페로몬과 더불어, 세피르 때문에 침입 당한 나의 입 안을 엉망진창으로 만들기 시작하면서, 이윽고 내 정기까지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너의 폭주는 아직까지 마무리 된 것이 아니거든. 일단 한숨 자고 나서 천천히 이야기 해줄 테니, 기분 좋은 감각만을 만끽하면서 자고 있으라고?”
마지막 켈모리아의 말에 뭐라 하고 싶었지만, 몸은 나른해지고 서서히 눈꺼풀이 무거워졌다.
***
아리엘이 가지고 있는 불안정한 힘을 관측한 켈모리아는, 서서히 눈을 감아서 잠에 빠져들고 있는 모습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인큐버스를 사역마로 만들게 한 것도 분명, 언젠가는 아리엘이 폭주하는 것을 막기 위한 임시방편. 지금은 자신의 생각대로 움직여주고 있는 모든 상황에 대해 감사할 따름이었다.
“그건 그렇고.”
기절하고 있던 여학생을 보며 천천히 다가가 상태를 살폈을 때는, 켈모리아의 예리한 눈빛이 모든 것을 놓치지 않고 확인을 한 결론으론 다음과 같았다.
“레이나. 대체 아무런 관계도 없는 민간인을 이끌고 무슨 짓을 벌일 셈이야.”
혼잣말로 중얼거림과 동시에 검은 연미복의 깨끗한 옷차림을 하고 있던 세피르는, 아리엘을 안아 올린 뒤에 조용히 뒤에서 결과보고를 했다.
“학원장님. 아리엘을 진정시켰습니다. 그나저나 방금 전에 상당히 위험했네요? 제가 신변의 변화를 알아차리고 빨리 왔음에도 불구하고, 학원장님께서 이미 아리엘을 전력으로 막아내고 있지 않으셨나요?”
듣기 좋고 부드러워 모든 여심을 녹일 것만 같은 남성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을 때, 켈모리아는 거의 다 타버린 오른손을 보며 입을 열었다.
“아리엘의 힘이 뭔지 알 수 없으니까. 그래도 오른손을 희생해서 이 정도로 끝난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해. 아리엘이 숨기고 있는 진정한 힘은, 현실과 허상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무시무시한 마법. 아니 마법이 아니라 실제로 아리엘의 몽마의 피는, 어떻게 보면 지금의 색욕의 공작인 릴리스보다, 더 강인한 마족의 피를 이어받았을 지도 몰라. 어쩌면 마족이 아니라 마신일지도 모르겠네.”
“이야. 벌써 제 여왕님을 갈아치울 때가 온 건가요? 아리엘이 여왕님이 된다면 저야 행복하겠지만요.”
켈모리아는 천천히 그나마 멀쩡한 왼손으로 마법진을 그려나가며 세피르가 한 말에 답을 했다.
“그렇다고 미리 하극상을 벌이면 안 돼. 꿈의 미로만큼이나 무서운 세계도 없다고. 나는 베가프 추기경을 만나고 올 테니까. 아리엘이 깨어나면 잘 보살펴줘?”
“맡겨주세요. 학원장님.”
세피르의 즉답을 듣고 난 뒤에, 붉은 파도처럼 휘날리는 켈모리아의 머리카락이 나부끼면서 마법진에 빛이 발산하기 시작했고, 빛은 점점 퍼져나가기 시작하며 켈모리아의 모습을 삼켜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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