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파티장에 가기 전부터 뭐에 들떠있는지 알 수 없었지만, 켈모리아는 힘껏 미소를 지으며 자신을 꾸미고 있었다. 한쪽 다리를 노골적으로 노출하게 만드는 드레스의 밑부분과, 가슴과 등이 적나라하게 파여있었고, 왼쪽 위에는 붉은 장미처럼 놓여져 있는 아름다운 드레스는, 성숙하고 에로틱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입지도 않았는데 드레스 만으로 저 지경이라면, 켈모리아가 입었을 때는 남자가 뒤를 돌아볼 정도가 아닐까?

 

아리엘도 다 입었네. 역시 백색의 드레스가 잘 어울려. 프릴도 많이 달려서 어디 공주님처럼 보이고. 머리카락은 너무 길어서 묶고 다시 내렸지만, 겨우 허리에 닿을까 말까인가?”

 

켈모리아. 대체 뭐에 들떠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이러다가는 시간이 늦을 것 같은데?”

 

원래 파티의 진정한 주인공은 늦게 오기로 되어있거든.”

 

아니. 주인공이기 전에 민폐가 아닐까? 시간 약속에 늦는다는 그 자체는 아무리 생각해도 제대로 된 사람이 할 짓은 못 된다.

 

아리엘. 옷 입는 것 좀 도와줄래?”

 

천천히 옷을 풀어 검은 속옷이 나올 때까지 벗어 던져서 윗옷 하나가 창문 밖으로 나가 떨어지고, 날아오는 치마는 고개를 숙였더니 뒤에 물품이 맞고 깨져버렸다. 치마를 아무리 강하게 던져도 깨지거나 그러지는 않는데. 아니면, 치마의 재료가 어디 나메크 성인처럼 단련을 위한 물품이었나?

 

그건 그렇고 켈모리아도 스타일이 좋네요.”

 

그렇지? 많이 야하지?”

 

자기 자신에 대해 그렇게 평가하는 것은 그만둬주세요.”

 

아무리 칭찬을 해도 말을 가려서 해야 하는 것이 숙녀의 기본이지만, 애석하게도 켈모리아는 나이에 맞지 않게 어른스러운 말을 하지 못했다. 그래도 깨끗한 살구색 피부와 부드러운 감촉은 남들처럼 관리에 신경을 쓴 것이라고 생각하고는, 진홍빛의 드레스를 켈모리아에게 건네주었다.

 

도와달라고 해도 등 뒤에 지퍼만 올려주면 상관은 없다고 하지만, 역시나 예상대로 노출이 너무 심했다.

 

오늘은 카린을 만나는 날이거든. 더욱 정확하게는 엘티노스 잡화점의 주인을 만나는 날인만큼, 친하게 지내기 위해서 이렇게 꾸미고 있는 거야.”

 

엘티노스 잡화점의 주인? 대단한 사람이야?”

 

. 그러네. 아리엘의 환각이 잘 안 먹히는 사람이야. 그만큼 정신방어능력이 상당하지. 거기에다 마법사들에게 있어서는 최악의 상대라고 볼 수도 있고. 하지만 원래는 남자였는데 무슨 연유로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여체화를 하고 온 사람이기도 해.”

 

본래 성별은 남자라는 소리?”

 

믿겨지지 않는다.

이 곳은 TS빔이 난무하는 세계인가?

 

정확히 어떤 연유로 되어먹은 것인지 잘 알 수 없지만, 몽마족 이외에는 자유자재로 여성과 남성을 넘나드는 최초의 인간이기도 해. 참고로 맨 처음에는 엘티노스만이 여체화 마법을 성공한 사례가 있을 정도로, 굉장히 복잡하고 어려운 마법 중에 하나야. 물론 나도 시도는 해보았는데, 한번 제대로 실패해서 큰일날 뻔 했었으니까.”

 

그런 위험한 일은 애초에 하지마.”

 

그래도 어여쁜 아이와 같이 자는 게 얼마나 힘든데?”

 

생각을 아무리 해봐도 켈모리아는 위험한 말만 골라서 쓰는 것 같았다. 밀리아까지 내려와서 켈모리아의 모습을 보고는 와아! 학원장님! 아름다워요!”라고 말하면서도, 어느 사이에 들고 온 메이크업 도구를 가지고, 켈모리아가 화장한 곳을 보수하고 있었다.

 

고혹적인 붉은 빛의 아이섀도우가 학원장님께 가장 잘 어울릴 것 같네요. 드레스도 마침 붉은 색이고.”

 

고마워. 밀리아.”

 

모두가 파티장에 갈 준비를 마치고 나서, 마차를 타고 가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운송수단이 있는지 물어 보았을 때는 우리는 마법사답게 텔레포트를 해야지?”라는 답변을 듣고, 나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텔레포트 한번이면 멀리 떨어진 곳이라도 단숨에 도착할 수 있는 편리함을 추구한 켈모리아는, 바닥에 마법진을 그리고 나서 기동하자, 어느 순간 빛이 튀어나오면서 켈모리아와 나, 밀리아를 감싸고 다시 한번 눈을 뜨니, 거대한 홀과 함께 수백 명의 메이드와 집사가 한 가득 모여있는 곳에서는, 어디가 끝인지 보이지도 않는 수천 가지의 진수성찬이 놓여져 있었다. 사람들의 수는 눈으로는 담을 수 없을 정도로 가득했다. 1층부터 3층까지 파티장인 것을 보았을 때, 최소 4자리 숫자 정도는 거뜬하게 채울 수 있을 정도.

 

곳곳에 값비싸 보이는 조각상들과 미술품들은 말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역시 돈이 많으면 이렇게까지 가능한 건가?”

 

검은 뱀의 모습을 하고 있는 세피르가 혀를 내두르며 입을 열다가, 한 방향으로 고개를 돌려서 먹이를 노리는 듯이 지켜보고만 있었다.

 

왜 그래? 먹고 싶은 거라도 있어?”

 

아니. 그게 아니라. 이곳에 마왕님께서 계시는 것 같은데? 기분 탓 이려나?”

 

마왕? 애초에 마왕은 마왕성에 있어야 하는 존재 아냐?”

 

우리 마왕님께선 유별나시거든, 엘티노스 잡화점의 주인의 사역마가 되었다는 소리가 거짓말은 아니었구나. 나는 잠깐 마왕님께 인사를 드리고 올 테니까. 너는 너대로 파티를 즐기고 있으라고.”

 

스르륵하며 내 목에서 다리로 천천히 이동하더니, 순식간에 어디론가 기어가버렸다. 나대로 파티를 즐기라는 것에 대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밀리아를 보며 물어보려고 했다.

 

물어보려고 했다는 의미는, 물어보지 못했다는 소리가 되는 것이며, 그 이유는…….

 

베이스로프 가문의 따님과 같이 춤을 출 수 있는 영광을 주십시오!”

태어나기 전부터 사모했습니다. 부디 저와 춤을!”

모두 비켜! 이 분과 춤추는 사람은 바로 나야!”

 

진정들 하세요. 호호호!”

 

무서우리만큼 인기가 높은 밀리아의 모습에 할 말을 잃어버렸기 때문. 켈모리아는 멍한 나의 표정을 인식했는지 부연설명을 하듯 나에게 말해줬다.

 

베이스로프 가문은 카멜롯에 존재한 마법사의 탑 주인이 바로 밀리아의 아버지이셔. 그 마탑이 대략 15년 정도 된 걸로 기억하고 있지만, 마법의 재능을 물려받은 밀리아에게 잘 보이고 싶은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

 

그래도 밀리아는 싫어하거나 귀찮은 기색이 없네요?”

 

밀리아가 왜 학생회장이 되었겠어?”

 

밀리아의 무기는 누구와도 친하게 말을 건넬 수 있는 사교적인 면모인가? 그건 그렇고 켈모리아 또한 상당히 아름다운데도 불구하고, 주변에 남성은 지켜보기만 할 뿐. 춤을 춰달라고 하거나 관심 있어서 다가오는 경우는 없었다.

 

. 항상 내가 가면 이렇더라고. 모든 마법분야에 있어서 모든 것을 습득한 나에게, 왜 다가오지 않는 이유는 과연 무엇인가? 그것은 내 기분이 상하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야. 아리엘 근처에도 다가가고 싶지만 내가 옆에 있으니 힘들겠지. 너무 강하면 고독하게 되는 이유가, 사소한 일에 너무 신경을 쓰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해.”

 

쓰디 쓴 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던 켈모리아가 갑자기 반짝이는 눈으로, 한 방향을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확실히 얼굴은 사진으로 몇 번 봐왔지만, 존재감이 상당하게 빨리 들어나네.”

 

홀 중앙에서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을 바라봤을 때는, 깔끔한 턱시도를 입고 있는 레이몬드의 품 안에는, 인상이 강렬하게 남는 코발트 블루 색상의 머리카락이 궤적을 따라 흩날리고 있었다. 애수가 가득 담긴 흑색의 눈동자가 주변을 휘저을 동안, 사람들은 형용할 수 없는 신비로운 분위기에 감화라도 되는 듯이 입을 열지 못했고, 다른 사람들은 춤추는 것도 잊어버린 체, 아름다운 광경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마치 여신이 강림한 듯한 신비로움이 가시화라도 되는 것 같네요.”

 

그렇지? 저 사람이 바로 잡화점의 주인. 지금은 카린이라고 불러야겠지.”

 

카린…….”

 

뭐라고 해야 할까? 잘 알 수는 없지만 뭔가 고달픈 사람이라고 맨 처음에 생각했다. 물처럼 고운 사파이어 색상의 드레스에 상의 중앙에는 거대한 보석이 박혀있는 것처럼 보였고, 새의 깃털처럼 제작 되어있는 치마 부분에는, 한 마리의 고고한 매를 연상하게 만들었다.

 

아리엘. 카린과 외모 대결에서 이길 수 있을 것 같아?”

 

어렵겠네요. 설마 제가 넋을 잃게 될 줄은 몰랐어요.”

 

나는 순순히 첫 패배를 인정했다.

이길 수 있을 리가 없다.

 

처음 볼 듯한 수많은 사람들의 갈채를 받고 유유히 걸어나가는 모습조차, 너무 당당한 나머지 혀를 내두르게 될 정도. 마치, 이런 일이 늘 있었던 것처럼 행동하고 있었다.

 

우리도 슬슬 이동하자. 카린은 나에게 볼일이 있을 테니까.”

 

격렬하게 마무리 되었던 음악은 다시 잔잔하게 퍼지기 시작하면서, 모든 이들은 다시 본래의 목적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고, 나 또한 켈모리아의 옆에서 걸어가 호위하는 듯이 움직였다.

 

켈모리아는 테이블에 놓여져 있는 와인을 하나 집어 들고는, 앞에 은발의 소녀와 이야기하는 것을 계속 지켜보다가 대략 2분정도 지나자, 검은 고양이에게 육포를 주러 관심을 돌렸고, 켈모리아는 그 틈을 보며 움직였다.

 

거기 이쁜 언니? 나랑 술 한잔 안 할래?”

 

켈모리아가 말을 걸은 방법은 어디 건달이나 할 법한 멘트임에도 불구하고, 뒤를 돌아보지 않고 정중하게 이야기를 했다.

 

죄송하지만 전 술은….”

 

그러지 말고 카린. 취해서 흐트러진 모습이 보고 싶어서 그래.”

 

앞에 있는 여성은 술을 못 마시는 것이 아니라, 억지로 피해가려는 것이 뻔히 보였다. 그러면서도 켈모리아는 계속해서 몰아 붙이기 시작했다.

 

이렇게 실물로 보는 것은 처음 보는 것이던가? 고양이 귀는 빼서 좀 섭섭하지만, 그래도 지금의 모습만으로 만족할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야. 나에 대해서는 언니에게 가장 잘 들었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려워하거나, 무서워하는 것도 아니고, 정정당당하게 마주하는 모습은 악마를 맞이하는 성녀의 고결함과 닮아있었다.

 

켈모리아 마그누스.”

 

켈모리아는 만족하다는 듯이 고운 목소리를 듣고 웃음을 지으며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그 다음으로 나를 바라보는 눈은 나의 모습을 보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또 다른 잠재능력을 보는 듯이 꿰뚫어보는 기분. 조금이라도 시선을 마주하면 나도 모르게 제압이 되어가는 기분이었다.

 

아리엘. 인사하렴. 이 사람이 바로 엘티노스 잡화점의 주인. 본명은 여기서 말을 하지 않는 것이 더 좋을 듯하니, 지금 그 모습을 명명하는 단어로 카린이라고 소개를 해야겠지?”

 

아까 전에 들었던 것을 맨 처음 말하는 듯이 입을 여는 켈모리아의 연기력은 놀라웠다. 나는 묵묵히 양손에 치마를 살짝 집어서 들어올려 예의를 표했고, 카린이라고 불린 여성 또한 나와 같이 행동했다.

 

같이 있기만 해도 기분이 상쾌해지는 알 수 없는 마나의 소용돌이를 만끽하고 있을 때, 하늘에 있는 여신이 입을 열기라도 하듯, 절대로 잊혀지지 않을 듯한 아름다운 목소리로 켈모리아에게 입을 열었다.

 

현재 엘티노스 잡화점의 주인이라고 불려지고 있는 카린이라고 합니다만, 이곳에서 보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네요.”

 

어른스럽고 격식 있는 모습을 보며 켈모리아도 저거의 반 정도를 따라 했으면 얼마나 좋…….

 

자자! 카린 우선 마시고 난 다음에 비즈니스를 시작하자고! 어차피 밤은 길고 우리 집에서 노닥거리면서 세월아 네월아 술이나 마셔보자고!”

 

느닷없이 엄청 친하게 스킨쉽을 한 켈모리아의 모습에, 카린이란 여성은 매우 당황한 것처럼 보였다.

 

어째서 제가 집에서 자고 간다는 것이 전제인데요! 그보다 켈모리아 씨! 저는 잡화점에 할 일이 있기 때문에, 조금 있다가 급하게 돌아가봐야 한다고요!”

 

아잉~ 그러지 말고 자기야!”

 

왜 호칭이 바뀐 거에요! 안 돌아와요? 안드로메다에 보내버린 정신 빨리 다시 회수하란 말이야!”

 

막무가내로 끌려가고 있는 카린의 모습을 보며, 나와 어딘가 많이 닮아 보여서 안쓰러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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