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2층집이라고는 하지만 밀리아의 가문이 어째서 2층을 통째로 대여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불편하고 복잡한 이유에서는 분명 단순한 목적이 들어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학원장인 켈모리아 씨는 돈만 받으면 땡.’이라는 조건에 허락한 상태라고 했으니, 이 집에서 반 강제로 끌려와 붙잡혀 살아야 하는 인생이라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가만히 침대에 누워있었다.

 

그렇다고 이 침대가 내가 잘 수 있는 편안한 것이 아니라, 옆에서 알코올 향이 한 가득 뿜어져 나오고 있는 켈모리아 씨의 안고 자는 인형 대신이라고 해야 할까. 네글리제를 입고 자는 나와는 달리 속옷만 입고 무방비하게 자고 있는 모습은, 누가 본다면 놀라거나 한숨을 내쉬는 상황이 오리라. 당연히 나는 한숨을 내쉬는 쪽이었다.

 

천천히 침대에서 나오기 위해 몸을 움직

 

-꽈아악!

 

의도적으로 내가 나가려고 하니까 온 힘을 다해 붙잡은 켈모리아를 쳐다보며 말했다.

 

일어났죠?”

 

으음~ 배불러.”

 

잠꼬대 하는 척 하지 말라고요.”

 

분명 이 사람은 일어나 있다.

나는 이제 눈을 떠서 슬슬 아침이라 씻고 싶은데, 굳어버린 동상의 팔처럼 굳세게 붙잡고 안 놔줬다.

 

빨리 놓으시라고요!”

 

뽀뽀를 해주면.”

 

입술을 내밀고 있는 켈모리아를 보며, 뽀뽀 대신 주먹 한번 휘두르고 싶다는 충동이 한 가득 쌓였다.

지금껏 살아오면서……물론, 여기에 도착한지는 얼마 안 됐지만, 그래도 이렇게까지 여성을 때리고 싶다는 기분은 처음 느껴보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인내심을 가지고 당장 일어나라고요!”라며 항의를 했다.

 

-!

 

좋은 아침이에요! 학원장?”

 

발버둥치고 있는 나와 눈이 마주친 밀리아는 아침 일찍 학원복장으로 갈아 입고, 침실 문을 거칠게 열었다가 얼음이 되어 굳어있었다. 굳어버린 밀리아의 정신을 깨우기 위해서 나는 다급하게 구조요청을 했다.

 

밀리아! 나 좀 꺼내줘!”

 

? ? ! 알았어. 지금 꺼내줄게.”

 

어제의 적은 오늘의 친구라는 말이 있다. 어제 그렇게 싸웠지만 그래도 서로 통하는 구석이

 

비서의 자리를 내놓는다면.”

 

있을 리가….

 

그냥 어제의 적은 오늘도 적이라는 말로 수정해야 할 것 같다.

 

앞으로 대대손손 너희 가문에 의지하지 말라고 알려주도록 해야겠네. 켈모리아 씨. 지각한다니까요.”

 

그러면 빨리 뽀뽀.”

 

노처녀가 어린애처럼 고집이 많으면…. 으웁!”

 

무의식적으로 독설을 퍼붓고 있는 와중에 내 머리를 느닷없이 끌어 당기더니, 이윽고 내 입안에 뭔가가 채워져 나아갔다. 부드러우면서도 끈적한 뭔가가 내 입안을 난장판으로 만들고 있었을 때, 시야에 확인한 것은 켈모리아의 얼굴이 매우 근접했다는 것. 숨이 쉬어지지 않고 뜨거운 숨결이 내 머리를 익히는 동안, 도망가고 싶어도 도망칠 수 없는 나의 현재 상태를 한탄해 했다.

 

후아. 잘 먹었습니다. 그건 그렇고 아리엘. 나에 대해서 다시 한 번만 더 그런 식으로 부른다면, 이번에는 프렌치 키스만으로는 끝나지 않을 거란 것을 명심하라고?”

 

의기 양양하게 에너지 100%충전!’인 것처럼, 눈이 반짝이는 켈모리아와는 달리 나는 이제 이 세상에서 살아갈 희망을 잃었다.

 

소녀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첫 키스의 상대가 학원장이라니. 여자끼리니까 카운트가 없다고 해도 나의 삶에 두고두고 생각날 치욕의 날이라는 점은 변하지 않았다. 그보다 뭘 잘못 먹었으면 아침마다 이 난리가 나는 걸까. 눈물이 앞을 가리다 못해 강을 만들고 호수를 창조해낼 것이다.

 

아무래도 나는 전생에 뭔가 제대로 큰 잘못을 한 죄인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 켈모리아는 씻으러 욕실로 먼저 가버렸고, 나는 내 차례가 오기까지 시간이 넉넉하게 남아있기에 식사라도 간단하게 만들자는 계획을 세웠다. 지금 당장 빵을 만들면 눈물 젖은 빵을 만들 것 같으니, 빵 종류를 만드는 것은 하지 말고 스튜나 만들자는 생각으로 음식 저장고를 찾아 다녔다.

 

뭐 하는 거야?”

 

굶주린 자에게는 음식을 찾아야 할 의무가 있어. 방금 전까지 충격적인 일을 당했으니 먹을 것으로 스트레스를 풀 거야.”

 

그러다 살 많이 찔 텐데?”

 

시끄러워.”

 

은근히 날카로운 견제에 당해버린 나의 마음에, 또 한번 상처가 피어 오르기 시작했다. 애초에 성별을 잘못 선택한 것이 아닐까?’하는 나의 의심은 한도 끝도 없었고, 차라리 남자로 환생이든 뭐든 했으면, 비만이 아닌 이상 먹을 것으로도 스트레스를 받을 이유가 전혀 없었을 것이다.

 

지금 나에게 있어서 아무리 화가 난다고 너무 많이 먹으면, 그것도 스트레스로 작용되는 무한의 연쇄작용을 감상하게 된다. 내 스스로가 파멸의 길에 들어서는 것을 막기 위해선, 어느 정도 조절할 필요가 있다는 소리가 되며, 그 뜻은 마음껏 폭식을 할 수 없다는 소리가 되겠지.

 

내가 만일 죽는다면, 그것은 화병일 가능성이 80%정도.

 

지식의 범위는 그렇게 제한되어있지 않게 계속 쌓이고 있는 속도를 가늠했을 때. 혼자서 가사일을 도맡을 수 있을 정도로 지식이 쌓여있었다. 크림스튜는 둘째치고 다른 요리까지 만드는 방법을 책으로 안보고도 할 줄 아는 것이 나의 축복. 왠지 모르게 켈모리아가 음식을 보며 달라고 할 것 같아서 넉넉한 양을 잡고 끓이기 시작했다.

 

밀리아는 필요 없던가?”

 

나는 이미 2층에서 호화로운 식사를 끝마쳤지.”

 

자랑을 하듯 고개를 들며 웃음을 띈 밀리아에게 국자를 휘둘러, 저 멀리 비추고 있는 태양을 향해 날려버리고 싶었지만, 나는 애써 태연하게 . 그래?”라는 말과 함께, 하얀 스튜 안에 있는 국자를 저었다. 후추와 소금으로 간을 하는 것은 기본 상식이고, 당근, 감자를 조금 크게 썰었다. 김이 피어 오르는 냄비에서 좋은 향이 나왔으니. 이곳에서 내가 처음으로 아침식사를 만들었다는 결과물.

 

적어도 만화나 소설 어디선가 나오는 암흑물질보단 훨씬 더 좋은 상태였다.

 

이 정도라면 사람이 먹고도 안 죽는다고 믿을 수 있겠어.”

 

아리엘. 뭘 기대하고 크림스튜를 만드는 거야.”

 

나는 그릇을 들고 혼자서 먹기 위해

 

-빤히

 

시선을 의식하는 그 순간 초 근접거리에서, 침을 흘리며 크림스튜를 보고 있는 밀리아의 모습이 너무 안쓰러웠다.

 

먹을래?”

 

. 어쩔 수 없네. 나는 지금 엄청 배가 부르지만! 라이벌이 음식을 대접하겠다는데 사양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 잘 먹도록 하지!”

 

밀리아는 기다렸다는 듯이 감자와 같이 떠진 스튜를 스푼 한 가득 담아 입에 넣었다. 한동안 그릇과 스푼을 굳게 잡고 있었던 밀리아는, 천천히 책상에 내려놓고는 어디서 꺼냈는지 모르는 손수건으로 입을 닦아냈다.

 

. 나쁘지 않네. 그럭저럭 먹을 만한 맛이야. ‘맛이나 볼까?’하고 먹은 것이지, 그리 많이 따라주지 않아도 괜찮았지만 말이야.”

 

그건 그렇고 밀리아가 들었던 그릇이 깨끗해진 이유는 대체 뭘까?

분명 한 가득 채워놨을 텐데.

 

원한다면 우리 가문의 주방장으로 쓸 수 있겠어. 어때?”

 

거절할게.”

 

의기양양하게 나를 주방장으로 끌어드리기 위한 대화는 나의 거부로 무산이 되었다. 다른 방향에서 발소리가 점점 가깝게 단계별로 들리기 시작했다. “. 좋은 냄세. 오늘 아침은 크림스튜구나.”라는 거대한 혼잣말을 흘리며 걸어왔을 때. 나는 말했다.

 

빨리 앉으흐익!”

 

아니. 말을 하려고 했는데 켈모리아의 모습을 보며 숨을 자동으로 집어삼켜야만 했다. 그것은 옆에 있는 밀리아도 마찬가지. 충격을 끌어안고 천천히 줄여나가면서 인내와 끈기를 사방팔방에서 긁어 모으며 말했다.

 

옷은 제대로 입고 드시죠. 적어도 속옷이라도 입고 오세요!”

 

? 귀찮아. 입혀줘.”

 

저게 정말 어른이라고 구별해야 맞는 것일까?

창조주가 보면 좌절이라도 해서 내가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지?”라고 중얼거릴 만큼 회의감이 느껴질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 같은 공간에서 바라보고 있는 나와 밀리아가 충격으로 쓰러지기 직전이니까. 나는 설거지를 하면서 스푼을 뜨고 있는 켈모리아에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여성이라면 좀 더 마음 가짐을 조신하게 하세요. 그러니까 주변에 남자가 없는 거라고!”

 

나도 모르게 숨을 2번째로 집어삼켜버렸다.

 

어느 사이에 크림스튜를 다 비운 켈모리아 씨가, 관절을 풀면서 두 눈에서는 불빛이 번뜩이고 있었다. 나도 알게 모르게 정곡을 찔러버린 듯한 이유이기도 하고, 등 뒤에서는 소름 끼치는 숨소리가 천천히 들려오며, 마치 사신이라도 서 있는 듯한 분위기를 내뿜고 있었다.

 

아침은 거뜬하게 먹었으니. 우선 운동부터 해볼까나~? 5초 줄 테니까 빨리 도망가는 게 좋아. 내가 분명 프렌치 키스보다 더 한 걸 하겠다고 했었을 텐데?”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을 가장 후회하게 만드는 순간이 지금이다. 잡히면 죽음보다 더한 치욕과 고통을 맛보게 되는 벌칙이 있기에, 내가 아는 모든 것을 이용해서 필사적으로 도망치기 시작했고, 5분 정도 지났을 무렵 학원에 가야 할 시간이기에, 아슬아슬하게 붙잡히지 않고 끝날 수 있었다. 덤으로 씻고 싶은데 씻지도 못해서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따로 샤워장이 있다는 말을 듣고 거기서 씻는 것으로 노선을 변경했다.

 

학원장실은 여전히 어제 만났던 도서관이었다.

도서관에 샤워장이 있는 기묘한 공간에서 몸을 청결하게 한 뒤에, 드디어 일에 대해 배우는 것에 잘 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보다는 제발 이상한 것만 시키지 않았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더 앞으로 튀어나왔다.

 

수업 들어가.”

 

오늘은 할 것이 없으니 수업에 들어가란 소리입니까?”

 

수업을 듣던 말던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소리인가? 학원생의 신분치고는 매우 자유로운

 

네가 수업을 하라는 거야. 마법기초 - A. 내 앞에 공간이동 마법진을 밟고 가면 될 거야.”

 

. ?”

 

어처구니 없는 소리를 너무 자연스럽게 해서 상황파악까지 2초의 시간이 걸린 끝에, 다시 질문으로 받아 쳐야만 했다.

 

잠깐만요. 제 귀가 제대로 작동을 한 것이라면, 분명 저에게 수업을 하라고 하셨나요?”

 

맞아. 너는 나의 비서잖아? 내 잡일을 수행하고, 외로움을 달래주는 존재라고?”

 

비서는 외로움을 달래는 존재가 아니에요!”

 

은근히 자기 멋대로 해석을 해서 막 가져다 붙여놓는 켈모리아에게 조용히 따졌다. 게다가 같은 학생신분을 가진 아이들을 내가 가르치라니? 지식이 어느 정도 쌓여서 마법기초에 대해 알려줄 수는 있지만, 이건 마치 자신은 가르치는 것을 매우 싫어하니까. 네가 대신 가르쳐라.’라는 소리였다.

 

괜찮아. 전부 마법에 대한 기초지식을 쌓기 위해 온 생도들이니까. 조금이라도 마법에 대해 더 잘 안다는 사람 밑에서는 무조건 배우고 싶어할 거야. 그리고 이 마법진을 밟고 이동을 하면 나이나 신분에는 상관 없다고 생각을 하게 될 걸?”

 

턱을 손등에 받치며 한 쪽 눈을 윙크한 상태로 말을 했다. 의심이 가긴 해도 학원장의 말은 나의 등을 직접 떠밀어서 마법진에 한발씩 옮기게 했다. 교제도 없고 학생들에 대해 알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잘 가르칠 수 있을 지가 문제이지만.

 

수업은 2시간 정도하면 되니까. 느긋하게 즐기고 와~”

 

도서관의 책상에 앉은 켈모리아는 나를 향해 손을 흔들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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