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학원장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켈모리아는 여전히 나를 놔주지 않고, 쇼파에 앉아있는 상태로 학원장의 비서에 관한 업무를 설명하고 있었다. 머릿속에 녹아있는 비서라는 이미지는 고위신분인 사람 옆에서 보좌하거나, 잡무를 대신하여 처리하는 그런 사람으로 인식이 되어 있었는데, 사실상 학생회장과는 별개로 학원을 위해 학원장에게 직접 명령을 받아 수행하는 학생이라는 것. 나는 아직까지 별 이야기도 나누지 못했는데, 벌써부터 이곳 학원의 학생이 되어야만 하는 운명을 걷고야 말았다.

 

사람의 일은 무언가가 빠르게 지나간다고 하면, 지금 이 상황은 빛보다 빨라서 시간이 역행할 징조까지 보이고 있었다. 솔직히 두통과 더불어 향수 때문에 후각이 마비가 될법한 고통을 겪고 있어도, 나를 인형마냥 사랑스럽게 뺨을 쓰다듬으면서 설명하고 있는 것을 듣자니, 지옥이란 것이 실존한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버렸다. 이 지옥이 끝나면 분명 나는 제대로 된 삶으로 환생을 하겠지?

 

아리엘. 환생이라니? 지금 살아있는데 멋대로 죽지마~”

 

다 큰 어른의 응석을 받아주는 것에 대해 구체적으로 확실히 말하자면.

 

짜증난다.

 

극한의 스트레스를 참아가며 곧 화병으로 진화하기 전에, 나는 가슴속으로부터 나오려고 하는 불길을 억눌러가며 입을 열었다.

 

그래도 저는 마법에 대한 재능이 있는지 없는지에 관해서는, 바닷물에 녹아있는 소금만큼이나 관심도 없지만, 저에게 마법학교의 비서를 시킨다는 이유는 그에 맞는 조건을 충족하고 있기 때문이겠죠?”

 

당연하지. 이렇게 귀여운 몽마를 또 어디서 얻을 수 있겠어? 그거 하나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잠깐. 이 사람이 지금 뭐라고 한 거지?

아주 태연하게 나를 방금 몽마라고 한 것 같은데?

 

몽마? 대체 누가 몽마죠?”

 

켈모리아는 나의 물음에 얼굴을 가까이 가져다 놓고, 비밀이야기를 하듯이 소근소근 내 귓가에 털어놓았다.

 

그야 당연히. 너야. 아리엘.”

 

진득한 향수와 화장품 냄새가 나의 코를 간질이는 것을 잊고, 내가 대체 무엇을 말해야 하는지도 까먹을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인간인 줄 알았는데 몽마라는 뜻이라면, 흔히 주워들은 꿈에서 나타나는 마물들이라 생각했으니까. 내 표정을 관찰한 켈모리아는 웃음기를 한 가득 머금고, 고개를 떨어뜨리며 태연하게 말하기를…….

 

. 그래도. 아리엘의 몸 속에는 몽마의 피가 흐른다고는 하지만, 확실히 말해서 아직 각성하지 않은 상태라고 보면 돼. 당연히 각성을 하면 그때는 평범한 인간이 아니라, 꿈과 환상을 쫓게 만드는 몽마가 되어, 여러 상황으로 유혹하고 파멸로 떨어뜨리는 나쁜 아이가 되겠지만. 오히려 나는 그런 걸 가지고 싶었다고나 할까?”

 

꿈과 환상을 쫓게 만들도록 유혹하고 끝에는 파멸로 이끄는 존재로 환생하고 싶은 마음은 죽어도 없었는데, 솔직하게 말하자면 지금 당장 환생을 하라고 하면, 주저 없이 단검을 목에 집어넣고 짐승이든 뭐든 다시 환생을 하고 싶었다.

 

마치. 내가 인간들을 매혹하는 것 같잖아요.”

 

같은 것이 아니라 하고 있는 것이 맞아. 아주 미약해서 주변에 시선을 살짝 뺏을 정도로. 각성이 진행하면 진행할수록 천천히 그 강도는 강해지려고 하겠지만, 너의 특유의 분위기라던가 성격 때문인지 몰라도, 그리 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거야. 언제 각성할지도 모르지만, 평생 각성을 안 할지도 모르니까.”

 

이 학원장은 매우 위험한 상황을 오히려 즐기는 표정을 지으며, 내가 어디서 각성을 한 뒤에 이리저리 난장판이 되어도, 웃으면서 그 광경을 지켜볼 사람인 것이 틀림없다. 이런 사람의 밑에서 일한다는 것은 꽤나 고된 역할이 될 것을 본능적으로 알아차렸고, 나는 비서가 되는 것을 거절하기 위해 서둘러 내 생각을 표현해야

 

안 돼.”

 

했는데 또 마음이 읽혀버렸다.

 

말하지도 않았는데 막아버리는 것은 그만둬주세요.”

 

그래도 귀여운 목욕시중이 필요했단 말이야.”

 

비서는 목욕시중을 들지 않아요!”

 

어디선가 그릇된 정보로 나를 편하게 부려먹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려는 것과, 왠지 모르게 흑심이 가득한 눈으로 보는 학원장에게, 원초적으로 알 수 없는 공포를 3단계에 걸쳐서 느끼고 있을 무렵이었다. 10분 전에 폭발했던 도서관은 어느새 원상복구가 되어, 깨끗하고 고결한 나무바닥과 웅장한 성벽처럼 빼곡하게 박혀있는 수많은 책들이 모든 공간을 한 가득하게 채워 넣었다.

 

이 도서관은….”

 

근사하지? 멋지지? 모든 마법사들의 정점을 선 나에게 있어선, 과거 영웅인 엘티노스가 했던 그대로를 따라서 하고, 더욱 더 진화와 개선을 할 줄 알아야 한다고? 나는 자칭 엘티노스의 후계자야.”

 

그걸 자칭으로 말하는 켈모리아의 상상력은 10세 아동의 상상력과 대결을 한다면, 막상막하로 처절한 싸움이 될 것만 같았다. 순수하다면 순수하고, 뻔뻔하다면 뻔뻔한 망상이지만, 이제서야 이 세계에 눈을 뜬지 하루 밖에 지나지 않은 나에겐, 엘티노스가 누군지도 모르는 것이 당연하며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존재하지 않았다.

 

. 마법에 관한 역사부터 지식을 집어넣어야 할까? 엘티노스라는 사람은 정말 대단한 사람이라고? 다양하고 복잡한 마법들을 단숨에 간단명료하게 정리하고, 그 외에도 사교에서 굉장한 모습을 보였다고 해.”

 

한마디로 복잡하고 골치 아픈 수학식을 간단한 수학공식으로 바꿔버렸다는 소리인가?

 

사교적인 모습이라면 어떤 모습이었길래?”

 

정력이 대단했다고 기록되어있거든!”

 

그런걸 자연스럽게 말하지 마.

 

정말 사교적이지 않니? 아리엘도 엘티노스 같은 남자가…….”

 

다른 이야기로 넘어가죠. 이 이상 말하면 다른 주제로 못 넘어갈지도 모르니까. 애초에 그 사람이 난봉꾼인지 카사노바인지는 관심의 1%도 없으니, 저는 학원생이란 신분으로 그런 이야기는 삼가 하겠습니다.”

 

나는 괜찮은데?”

 

내가 안 괜찮아요!”

 

목소리를 결국 높이고야 말았다. 30대 초반의 여성이 저렇게 어린아이처럼 나오는 것도 대단했지만, 저런 정신상태로 카멜롯의 마법학원장이 된 것은 더더욱 놀라운 일이지. 이곳은 5개의 학원이 있고, 그 중 하나의 학원을 가지고 있으니까. 생각을 해보면 5가지의 테마를 가진 권력자중에 한 명이란 소리다.

 

아직 미성년인 여학생 앞에서 누구의 정력인지 정기인지 뭔지 하는 소리를 하는 사람이 말이다. 사교성이 많다는 것은 개방적인 사람이라고 해석할 수 있지만, 절대적으로 학원장과 같이 제멋대로 이상한 생각으로 왜곡시키는 것은 절대적으로 아니다.

 

!”

 

잠깐! 목은 물지 마시죠!”

 

물었다고 해서 숨통을 끊기 위해 송곳니를 들이박는 것은 아니지만, 사람에게 있어서 목은 민감한 부위임이 확실하듯이, 오히려 부드러운 입술만으로 목을 간질거리는 것에 대해 묘한 기분이 들었다.

 

어차피 또 나에 대해 험담을 했을 거잖아?”

 

그야. 당신이 괴짜니까…….”

 

~”

 

그만! 간지러워요!”

 

빅터와 대화를 했을 때도 목소리를 크게 올린 적이 없었는데, 지금 신이 내려와서 나에게 소원이 있냐고 물어본다면, 지금 당장 이 공간에서 나가게 해달라는 부탁뿐이다. 아무리 같은 여자라도 스킨십이 너무 과하다고 판단해서, 켈모리아의 이마를 오른쪽 손목으로 밀어냈다.

 

흐음. 애교라고는 먼지에 붙어있는 원소만큼 찾아보기도 힘드네. 그 편이 더 재미있지만~”

 

순간 독사의 눈빛이 생각나게 만들 정도로 섬뜩한 미소를 마주하고, 나는 생각을 빨리 굴려서 입을 열었다.

 

애초에 비서가 학생들 사이에서 그리 높은 위치에 있었다면, 많은 지원자들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지금까지 안 뽑은 이유가 대체 뭐죠?”

 

나는 억지스럽게도 다른 주제를 향해 말을 던져야 했다. 마법학원에 얼마나 많은 학생들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그 학생들 중에서 상위 10%안에 있는 학생들은, 학생회장이라던가 학원에 대해 봉사를 하고 싶은 사람들이 넘쳐날 터. 그 중에서 최고 권위인 학생회장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학원장의 비서라는 말도 안 되는 직급은, 누구나 다 노리고 도전할 수 있는 가치가 돋보였다.

 

확실히 귀여운 아이가 첫 번째라고 할지라도, 가장 으뜸이어야 하는 부분은 센스가 좋고, 머리가 빨리빨리 돌아가야 한다는 점에서 뽑는 거야. 리더십이 강하고 학생들에게 모범이 된다면 학생회장과 부회장, 우수한 성적과 일 처리가 좋으면 회계나 다른 직급으로 임명하면 되고, 마나의 양이 많고 마력이 강하면 풍기위원으로 입명하면 돼. 하지만 학원장의 비서가 하는 일은 확실히 말해서 좀 고되거든, 학원에 매번 시험을 치면서도 따로 공부를 하지 않고, 방학에도 내가 시키는 일을 수행해야 하지. 문제는 그 수행하는 일의 범위는 학원이 아닐 수도 있다는 소리야.”

 

나는 집고 넘어가야 할 부분에 대해 말했다.

 

범위가 학원규모가 아니라면?”

 

학원 밖에 모든 것. 마을이 될 수도 있고, 도시가 될 수도 있고 혹은, 국가 간의 문제에서도 내 잡일을 맡아서 할 줄 알아야 한다는 거지. 그리고 특수사항이 발생했을 경우에는 비서가 책임을 지고 학원장의 역할을 임시적으로 할 수 있어. 어떻게 보면 학생회장은 개미처럼 보일 정도의 권력이지.”

 

하지만 단점은 내가 서술해야만 했다.

나는 절대로 장점만으로 만족하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신에 모든 수행평가나 시험은 따로 공부를 할 시간이 없다는 말은, 수업시간에 절대적으로 제가 참여할 수 없이 잡일을 도맡아서 해야 하며, 퇴근하실 때까지 열심히 일을 하고 시험기간에 시험을 봐야 하다니, 저에게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이런 바보 같은 시스템을 유지하는 겁니까?”

 

나의 폭언에도 불구하고 학원장은 요염하게 웃으면서 깔보는 눈동자를 나타내며, 나를 놀리는 어조로 짜증나게 입을 열었다.

 

그래도 너는 초창기에 지식의 괴물로 불려진 마족의 피가 흐르고 있어. 보통 일반인보다 신체능력도 뛰어나지만, 가장 발군인 것은 지능과 지식이지. 실험하나 해볼까? 엘티노스가 마법사들이 사용하기 어려운 마법들을 어떻게 간단하고 체계화를 시켰을까?”

 

그야 당연히 마법을 대표적인 3가지로 영창과 마법식, 마법진으로 구축해 나가서, 마법에 재능이 없는 사람들도 상황에 따라 손쉽게 사용할 수 있……!”

 

방금 내가 무엇을 술술 말하고 있었던 거야?

이건 분명 내 기억에 없던 것인데!

 

어때? 내 말이 맞지? 마족의 피를 이어받고 있다면 시간이 지날수록 이 세계에 대한 지식이 자동으로 들어올 거야. 방금 전에도 엘티노스에 대해 모르던 네가, 하루 지나고 나와 이야기를 하면서, 서서히 지식이 자동으로 쌓이고 있는 거지.”

 

혼란스러운 머리를 부여잡을 필요도 없이, 켈모리아는 자신의 이마와 내 이마를 서로 맞대며 눈을 마주하고 조용하게 말했다. 에메랄드를 녹여 만든 듯한 녹안이 내 눈동자 속에 들어갈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정도로 가까이 있었지만, 나는 차분하게 머리를 정리하고 식혀가면서 마음속으로는 소수를 세기 시작했다.

 

2, 3, 5, 7, 11, 13.

 

좋아. 진정이 되었어.

 

따라서 내 비서역할을 맡을 아이는 귀엽고 매력이 넘치지만, 그에 비례해서 특별한 아이가 필요한 거야.”

 

내가 억지로 노선을 꺾은 주제의 마지막을 장식은 켈모리아의 몫이었다.

어느 사이에 공간이동으로 맞은편에 있는 쇼파로 이동하고 난 뒤에, 늘씬한 다리를 꼬고 앉아서 커피를 들고 마시면서 ! 뜨거….”라고 중얼거렸고, 나는 이미 다 식어버린 커피를 들고 천천히 입가를 적시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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