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 323
323
느긋하게 온천을 즐기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얼얼한 턱을 어루만지며 한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습기가 검은색 수사관 제복에 달라붙었다. 거기에는 레시아가 내 몸 속에서 대기하고 있었고, 루시피나는 내 옆에서 아무 말 없이 서 있었으며, 내 시야 앞에서는 하멀 씨가 어떻게 알아차렸는지 몰라도 초량과 함께, 비릿하고 묵직한 혈향이 스며있는 장신구를 빼고 난 뒤에, 자백을 받아냈는지 종이에 글을 기록하고 있을 때였다.
“온천에서 즐기고 있으라니까. 왜 이곳에 찾아온 거냐. 지금 이 포로의 모습은 임산부 및 노약자가 보기에는 꺼림칙한 모습인데.”
“어린이가 빠졌잖아요. 그리고 제가 제대로 묘사만 하지 않으면 볼 수 있으니까요. 그냥 대충 다음 줄에다가 “몰골은 처참했다.”라고 독백을 해놓을 건데요?”
몰골은 처참했다.
“봐요. 간단하잖아요.”
“이러면 분량이나 분위기가 살아나지 않잖아. 그래도 세부적으로 서술하는 것이 더 좋지 않아? 지금 여기에 흩뿌려진 내장만해도...”
“조용히 해요! 그리고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이 사람들의 손가락과 발가락이 성한 곳이 없는 거에요!”
“이건 우리가 한 것이 아냐. 우리가 도착하기도 전에 이 사람들은 이미 죽어있었던 거지. 정말 무시무시한 녀석들이었어. 증거 인멸을 위해서 고문관을 일부러 도발을 하고 자신을 죽음까지 몰아갈 줄은 꿈에도 몰랐지. 이 녀석들을 조사해야 칸포리우스 제국에 직접적으로 수색을 할 수 있는 빌미를 얻는데, 아쉽게도 우리가 너무 늦게 도착을 한 것 같아. 그건 그렇고 왓슨.”
“왓슨?”
“아. 미안. 어제 봤던 게 감명이 깊어서. 그 누가 썻지? 모팻이었던가?”
“감명 깊게 읽었다고 해서 상황극으로 들어가려 하지마!”
하멀 씨는 다시 나를 불렀다. 이번에는 제대로 부르겠지...
“어쨌든 지금 이 안에서 벌어진 일에 대해 시간역행을 다시 해줄 수 있어?”
“그거 뭐. 시도해 봐야.”
“안 돼.”
루시피나는 나의 말을 잘라버렸다. 뭔가 무서운 얼굴로 되었는데, 마치 어린 아이가 “엄마! 이거 해도 돼!”라고 물어보면, 꼭 아이들이 위험한 일에 노출이 될 것 같으면 “안 돼.”라고 딱 잘라 말하는 그런 기분이었다. 아무래도 내가 과열이 되고 쓰러진 모습 때문인지 몰라도, 루시피나는 내 손목을 단순히 굳게 잡은 것이 아니라, 마나의 흐름을 방해하면서 내가 마법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고 있었다.
“약혼녀가 안 된다고 한다면 그건 정말 하면 안 되는 일이겠지.”
“그렇다고 시나가 없어서 저 대신에 과거에 있던 상황을 녹화하지 못하는데요?”
“저는 여기에 있습니다. 마스터.”
내 오른쪽 어깨에 사무적이고 담담한 어조의 하얀 올빼미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이 깜짝이야!”
대체 언제 온 거야?
“저도 냥캣을 따라 온천 여관에 있었습니다. 마스터가 하란국 여제의 장난으로 곤란한 입장에 처했을 때도 저는 거기에 있었으며, 냥캣이 진 승룡권의 모습을 따라 했을 때도 하나하나 지켜보면서, 끝내 마스터가 천장에 머리가 박혀있을 때는 제가 빼내었습니다.”
“바늘 가는 데 실 따라 간다고 너는 레시아가 있는 곳에 항상 따라다니는 군.”
“냥캣을 따라온 것이 아닙니다. 마스터를 따라온 것입니다. 잡화점의 수복이 완료되었고 청소는 다 끝냈기 때문이지요.”
팔랑크스에게 제대로 검사를 하라고 했었는데, 보내준 것으로 보면 정말 먼지 하나 남기지 않고 청소를 했을 것이라 생각했다.
“마스터가 나와서 일을 하고 있다면, 저 역시 밖으로 나와서 마스터를 도와주는 것이 올바르다고 생각합니다.”
왠지 모르게 어딘가 위화감이 서려있는 시나의 말을 최대한 분석을 하고, 나는 거대한 올빼미의 눈과 계속 마주치면서 딱 한마디를 했다.
“본심은?”
“루니아가 요리해서 탈출했습니다.”
조만간 잡화점에 돌아가기 싫어지는 군. 그보다 루니아 누나는 언제 또 이곳으로 온 걸까? 분명 휴가는 끝나서 릴리 기사단의 일을 하고 있어야 할 텐데.
“저는 이 공간의 과거를 기록하겠습니다.”
시나가 대신 이곳에 과거를 보여준다고 했으니 나는 흔쾌히 응했다.
“알았어. 나는 다른 흔적이나 있는지 확인해볼게.”
시나의 주변에 빛이 나타나면서 영역을 표시하듯이 일정 주기로 원을 그리며 날았다. 루시피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정말 다행이다.”라는 말로 중얼거렸고, 굳게 잡고 있었던 내 손목을 풀어줬다. 솔직히 말해서 2초만 더 잡고 있어도 손목이 날아가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지만, 아슬아슬한 타이밍에 놔줘서 정말 다행이라 생각한다.
“신랑은 어째서 무리를 잔뜩 하는 거야? 안 되겠어! 지금 당장 온천여관으로 돌아가자!”
“그보다는 여기서 수색 좀 하고 다 같이 돌아가는 게 좋잖아요. 그리고 이제 1시간 뒤에 잡화점을 운영해야 하니까. 저는 실질적으로 온천에 갈 수 없는 몸이고요.”
“음. 그럼 류하에게 말해서 내일도 온다고 해야지.”
내일도?
오늘 특집은 온천특집이 아니잖아? 애초에 이 소재는 좀 더 뒤에 나오는 것이 정공법 아니던가?
“내일 말고 나중에 이 난잡한 사건이 끝나면 그때는 가도록 할 게요.”
“정말?”
루시피나의 기대심에 따라 눈의 반짝이는 속도가 증가했다. 나는 루시피나의 부드러운 적색 머리카락을 천천히 쓰다듬으면서 입을 열었다.
“네. 1박 2일이든 뭐든. 일단 다 같이 여행이라도 한 번은 가야죠.”
“다 같이인가. 시간을 나눠야겠는걸...”
“시간을 나눠요?”
“아무것도 아냐! 지금 당장이라도 티르를 찾아서 폭파시킨다면 끝나려나~”
루시피나도 수색을 하기 위해 내 앞으로 먼저 나아가면서 저런 무시무시한 말을 내뱉었다. 그래도 확실히 지금 이 사건은 길게 끌면 끌수록 불리하기는 마찬가지, 단숨에 거리를 좁히는 방법에 대해 생각을 계속 해보도록 하자.
“그런데 하멀 씨. 그 고문관에 대해 조사도 해봤어요?”
“아니? 내가 있을 때는 이미 고문관이 없는 상태였...”
하멀 씨는 잠깐 입을 열다가 입에 문 사탕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제길! 한 발 늦었다니!”
아무래도 증거인멸을 제대로 당했나 보다. 죽인 후에 사체에 고문을 한 흔적을 남긴 것이 분명했으니까.
타이밍 좋게 시나가 과거를 새긴 수정구를 하멀 씨에게 떨어뜨렸다.
“그거 보면 될 거에요. 저는 슬슬 잡화점으로 돌아가야 하거든요.”
“평생의 실수가 될 뻔했군. 고마워 평민. 선물로 그 수사관 제복을 줄게. 여성용도 필요하던가?”
“그게 왜 필요해요!”
“그야. 여장하는 게 좋아서 찍는 것이 아니었어?”
“아냐!”
마지막 돌아가기 전까지도 내 속을 긁는 사람이라니...아무튼 하멀 씨의 입에서 고맙다는 말은 처음 들어봤다. 원래는 시나가 들어야 하는 소리이지만, 사역마의 주인인 내가 들어도 괜찮은 거겠...
-탕!
“......”
“...잘 가라는 인사야.”
“그러니까! 그거 상남자가 하는 일이 아니라고!”
마지막까지 하멀 씨에게 소리치고 잡화점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루시피나가 잡화점의 귀환마법을 사용하고 돌아왔을 때, 내 시야에 비춰진 것은 루니아 누나가 요리를 하고 난 뒤에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잡화점의 모습이었다.
“팔...팔랑크스!”
나는 저번에 만난 거대한 자동인형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 어디선가 거대한 걸음걸이가 2층부터 울려 퍼지기 시작하면서, 머리 위에 베니가 있는 모습으로 나타났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카일을 확인. 카일에게 전달. 비상사태임. 숨기를 바람.”
거대한 동굴과 같은 저음이 나에게 위험을 알렸다. 시나와 레시아는 내 몸 속에서 동화했으니까, 나만 숨으면 된다는 소리인가? 근데 대체 뭐에 숨으라고 물어보는 것인지 알 수가 없
“카일? 카일인가요오? 누나가 요리를 했답니다아?”
기는 개뿔!
하지 말라는 음식을 하는 이유가 대체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팔랑크스에게 추가적으로 정보가 들어왔을 때는 정말 믿지 않았는데.
“혈중 알코올 농도 0.22%”
“취한 거냐!”
붉에 물든 얼굴로 자신이 해온 요리인지 궁극의 비밀병기인지 모를 정체 불명의 ‘무언가’를 들고 흐느적 흐느적하게 다가오면서, 루니아 누나가 제발 취기에 잠들기를 기원하거나, 그냥 바닥에 쏟아내기를 기원했지만 그 기대를 전부 배신하며 내 앞까지 다가왔다.
“젤나가 맙소사...”
“자. 아...”
-털썩.
도중에 쓰러진 루니아 누나를 내가 받아내고, 요리인지 아닌지 정체불명의 무언가는 루시피나가 받아내서 창 밖으로 던져버렸다. 술은 얼마나 마셨는지 잘 모르겠지만 가장 확실한 것은, 이 안에서 난동을 부리고 요리까지 하고 알 수 없는 것을 만들기 전까지는, 그 만취상태로 활발하게 움직였다는 것을 뜻한다.
-똑똑똑!
잡화점 입구에서 문이 열리고 하얀 제복의 기사단 복장을 한 녹발의 소녀가 들어왔으니...
“오랜만입니다. 카일 씨. 지금 단장님을 찾고 있는데. 아. 역시나 여기에 계셨군요.”
안심을 한 듯이 한숨을 내쉬고는 은은한 갈색의 눈동자가 나를 향했다. 나는 눈을 마주하면서 천천히 입을 열었으니...
“어째서 루니아 누나가 술이 떡이 되도록 마신 건지 물어보려고 했던 찰나에 잘 왔네. 아무래도 여기서 프리트론까지 끌고 가기에는 무리라고 생각하지만 말이야.”
메르티아는 나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루시피나. 루니아 누나 좀 옮겨주세요.”
“알았어. 신랑.”
원래는 내가 옮겨도 상관은 없지만, 뭔가 나에게 이야기 할 것이 있어 보이는 메르티아의 얼굴을 읽고, 아직까지 45분정도 남은 시간에 손으로 가리키면서 창문과 가까이에 있는 책상에 앉으라고 했다.
“나에게 무슨 할 말이 있는 것 같은데, 라인하르트가 무슨 일이라도 했어?”
“아뇨. 물론 저희 오라버니는 카일 씨를 만나고 싶어하지만, 아직까지 진정한 사나이를 탐구하겠다고 멋대로 드라고니스에 찾아가서 도전했거든요.”
“하피의 언덕에서 그 고생길을 하고, 이번엔 드라고니스에서 난동을 부리는 거냐.”
“그런데 거기서 결혼해버리는 바람에 돌아올 수 없다고...”
대체 이 녀석은 전생에 무슨 잘못을 했길래 그 모양이 된 거냐.
“나중에 내가 따로 드라고니스에 찾아갈게. 그건 걱정하지마.”
“그리고...”
나를 놀라게 하려는 이야기를 많이 준비했나? 좋아. 얼마나 더 놀랄게 있다고? 난 여기 느긋하게 앉아서 이야기나 들어봐야지.
“솔직히 말씀하세요. 카린은 아직 살아있죠?”
...놀랍군.
“어째서 그런 생각을 한 거지?”
“저는 한 때 카린의 파트너였다고요. 절친이라고도 할 수 있고. 주, 주지육림관계라고도 할 수 있죠!”
“죽마고우야!”
제길. 최근에 거의 밥 먹듯이 여체화를 하고 다니니까. 메르티아가 눈치를 챌 정도였잖아? 하지만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라, 칸포리우스 제국에서 카린...정확히는 류연의 모습을 한 여성의 사진이 찍혀있었다.
“봐요. 카린이 살아있다는 증거. 아무리 마법으로 검은 머리카락으로 숨겨도, 얼굴에서 나타나는 신비로운 분위기는 사라지지 않아요.”
어디서 찍어온 사진인지 몰라도 지금은 메르티아가 나를 바라보는 눈빛은 “이래도 발뺌할 꺼야? 그런 거야?”라는 암묵적인 협박이었다. 나는 천천히 눈을 감고 생각을 하는 척하면서 무겁게 말했다.
“맞아. 카린은 살아있어.”
“역시...그럼 카린은 어디에 있죠?”
“지금 카린은 세상을 구하기 위해 바쁘게 움직이고 있단다. 나중에 평화가 찾아오면, 언젠가 한번은 이곳으로 오겠지.”
나중에 카렌에게 설명을 해두자. 대신 메르티아의 친구 좀 해달라고. 이름이 다른 것은 뭐 실제 본명이었다고 말하고, 성격의 변화는 당연히 사람이 살다 보면 성격에 변화가 있을 거라 생각하니까. 메르티아와 같이 했던 사건 중에 아지 다하카와 꿈의 미로에 갇혀버린 이야기를 대략적으로 하면 알아서 잘 하겠지.
“그렇군요. 세상을 구하고 있다니. 저와 같은 나이에 정말 대단해요. 저도 나중에 카린과 만났을 때 당당하게 서 있을 정도로 열심히 해야겠어요.”
“너는 카린을 좋아하는 군. 게다가 성실하고 말이야.”
“아니. 저는 그저 파트너였을 뿐이에요. 카린은 항상 주변 사람을 생각하지 않고 목표를 향해 보는 아이였어요. 항상 문제가 터지면 그것부터 해결하려는 올곧은 성격이니까요. 다음에 카린을 보았을 때는...”
자신의 창을 꺼내고는 입을 열었다.
“전력을 다해 저를 속이고 벗어난 것에 대해 복수를 다짐했어요!”
“...정말 이상한 곳에서 성실하네.”
조만간 카린으로 변하기 전에...
레시아와 시나에게 메르티아가 근처에 있는지부터 확인을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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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필 1에서 의무병만 하고 있습니다.
주사기로 예토전생을 시전하고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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