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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니아 누나의 말을 뒤로 나는 서둘러 남자 옷으로 갈아입었다. 최근에 남자 옷도 여자 옷도 익숙하다는 생각이 지나가자, 암울한 생각부터 먼저 들었으나, 지금은 그것 이외에도 설화라고 불리는 마력을 올려주는 마약에 대한 정보를 알아내야 하니까.

 

3황자에게 비공식 비밀임무를 받은 나에게는, 뭔가 엄청난 사명감이라던가, 자긍심이라던가 그런 것은 개나 줘버리고, 상당히 귀찮은 일을 떠맡았다는 기분만 들었다. 호카 마을에 루나와 같이 걸어서 가고 있었다. 루니아 누나 같은 경우는 먼저 기사단의 잡무를 처리하러 가겠다며 돌아갔고(정말 점프 한번으로 사라질 줄은 몰랐다.), 루나 같은 경우에는 다른 지역을 구경하고 싶다고 하길래, 나를 따라서 걸어간 것.

 

물론 호카 마을에 가는 이유는 사키엘의 문을 쉽게 이용하게 위해, 터벅터벅 걸어가고 있는 중이다. 최근에는 레시아에게 귀환마법을 배웠는데, 그 이유는 알다시피 레시아가 잡화점으로 귀환할 때마다 나를 공중 좌표로 소환하기 때문에, 결국에는 귀환마법에 대해서 배웠고, 아무리 글씨를 잘 못쓰더라도 종언의 시작이 발동되는 것이 아니라, 귀환마법이 정상적으로 작동했다. 따라서 이번에는 레시아가 없어도 손쉽게 시간에 맞춰서 귀환을 할 수 있다는 것.

 

그게 가장 큰 이득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더 큰 이득은 앞으로 귀환마법을 사용했을 때, 땅으로 떨어지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더 크지만...

 

주인님은 아까 엘프 두 분과 잠깐 인사했었죠? 그 분들도 주인님을 보는 눈이 꽤나 기묘하다고 할까?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루나는 주변에 시원하게 불어오는 소나무 숲에서, 걸어 갈 때마다 움직이는 크나 큰...연분홍 빛의 토끼 귀를 뽐내면서 입을 열었다. 루나의 귀를 볼 때마다 뭔가 잡아 당겨보고 싶다는 충동이 일어나는 것은 기분 탓? 아무튼 지금은 루나에게 대답을 해줄 차례다.

 

별 이야기는 아니었어. 그냥 만나면 형식적으로 하는 것들 있잖아? “잘 지냈냐?”, “뭐하고 사냐?”, “너 왜 이렇게 살고 있냐?”라는 듯한 지인을 만나면 인사하는 것이지.”

 

저기 마지막에는 지인이 아니라, 오랜만에 만난 부모님이 아직도 철이 안 들은 아들에게 하는 말 같은데요? 혹은 레시아 아가씨가 주인님이 실수할 때 마다 한 번씩 하는 말이기도 하고...”

 

그런 쓸 때 없는 일을 하나씩 말할 때 마다, 내 가슴에 비수가 하나씩 꽂는 듯 아프다만?

 

귀환마법이 가장 간단하고 간편하다고 하지만, 사실상 그건 레시아가 마왕이라서 그걸 쉽게 하는 거지. 애초에 귀환마법 자체가 마법사의 길 상급자가 맨 처음 배우는 마법 중 하나야. 그 때부터는 귀한 장소를 지정하고 이동하기 때문에, 마법사들은 그때부터 편해진다고 하지.”

 

마치 세이브 포인트 같네요? 저도 그런 능력이 있으면 정말 좋겠어요.”

 

너는 달에 있는 병기들을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잖아. 뭣하면 그 애들 불러서 교통수단으로 이용하던가?”

 

루나는 여기에서 밤마다 아이돌로 활동하지만, 달에 있는 모든 달 토끼들과 미지의 병기들은 모두 루나 플로니아 라는 이름 아래에 종속되었기에, 어떻게 보면 지금 이곳에 있는 대부분의 왕국을 지도 밖으로 내쫓을 수 있는 군사력 보유하고 있다. 그런 무서운 토끼가 나에게 주인님.”이라고 부르는 것도 아이러니하지만, 그래도 다행히 이런 잡담을 통해 호카 마을에 찾아올 수 있었다.

 

물론...

 

이 여자가 다치는 꼴을 보고 싶지 않으면, 모든 물건을 다 내려놔!”

 

이런 어설픈 해프닝만 빼면 자연스럽게 왔다고 생각했다. 내 여행길은 뭐 이런 고난과 역경이 꼭 하나씩 튀어나오는 건지 모르겠다만, 지금 루나의 목에 단검을 가져가서 위협하고 있는 사람은, 주변에 산이 없으니 산적은 아니고, 바다도 안보이니 해적조차 아니고, 바지는 닳아있고, 회색으로 이루어진 상의가 해져있는 모습으로 봐선, 도적도 아니다.

 

애초에 도적은 뺏은 물품으로 옷을 입고 다니니까, 주기적으로 수입이 안 오더라도 가죽이나 경갑은 필수로 입고 있으니까.

 

그렇다면 지금 인질극을 벌이는 사람은 누구인가? 그건 아마 가난에 굶주린 마을 사람 중 하나겠지. 애초에 혼자서 저러면 위협이 아니라 처량이라는 단어가 먼저 떠오르니까.

 

저기. 어르신? 그런 짓을 하면 안 되요.”

 

그냥 돈하고 물건이나 내려놔!”

 

얼마나 굶었는지 얼굴에는 훌쭉한 몰골이 말도 아니었다. 그보다 루나는...

 

오오! 이게 말로만 듣던 바로 그 전개인가요! 저는 이대로 납치당해서 엉망진창으로...!”

 

지금 널 잡은 사람의 상태를 보고 그런 말 좀 해라! 너 그리고 오늘 밤에 공연하기 전에 나 몰래 구입한 그 책들 다 가져와!”

 

우으...또 태워지겠다.”

 

너희들 날 무시하는 거냐!”

 

물론 인질범을 무시하고 싶지는 않았으나, 위협이라고는 느껴지지 않기에 나도 모르게 무시 해버렸다. 물론 단검은 진짜고 루나가 위험에 빠진 것은 확실하지만, 대략 1분정도 지났을 무렵.

 

-끼이이잉!

 

루나를 단검으로 위협하는 인질범 뒤에 6개의 바늘을 겨누고 있는 기계식 골렘이, 자신의 주인을 해치려는 존재를 처단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물론 인질범은 뒤에 불길한 낌새를 눈치채고 돌아보는 순간 패닉에 빠졌다. 도망가느라 바쁜 인질범을 잡은 것은 여전히 은빛의 촉수 하나가 발목을 잡았고, 발목을 부러뜨리려는 듯 기괴한 형태로 조여오자, 루나는 명령을 내렸다.

 

멈춰! 멈춰! 발목 부러지겠어!”

 

오히려 자신을 위협했던 인질범을 더 걱정하는 루나의 명령을 듣자, 촉수는 힘 없이 풀어졌고, 결과적으로 그 아저씨는 우리들에게 절을 하면서 용서를 빌어야만 했다.

 

잘못했어요! 하지만 처자식이 굶고 있는 터라 어쩔 수 없이...!”

 

나는 원래 성분 분석하려고 아이니스를 속여서 받은 육포를 아저씨에게 주고, 5골드 정도를 쥐어준 뒤에 입을 열었다.

 

저희는 호카 마을에서 무슨 이상한 약 같은 것이 돌아다닌다고 해서, 그것에 대해 비밀리에 조사를 하려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물론 이것은 루노아 칸포리우스 황자님께 직접 받은 비밀임무고요.”

 

오히려 이런 사람에게는 우리는 이런 멋진 사람들이다.”라고 비밀을 밝혀야, 수사가 협조적으로 바뀌기 시작한다. 게다가 수사장이나 증거물품이 없어도, 내 아까운 5골드와 육포를 제물로 받치는 것으로, 나의 신분이 좀 위에 있을법한 이미지를 만들었다.

 

황자님께서 보내신 사자로군요! 정말 감사합니다...정말로...”

 

호카 마을에 설마 이런 사람만 있겠나? 아무튼 나는 본론으로 이야기를 했다.

 

저희는 지금 비밀리에 떠돌고 있는 설화라는 약의 근원지를 찾고 있는데, 혹시 어떤 정보를 알고 있는지요?”

 

설화...혹시 그 마약을 말하는 겁니까?”

 

아무래도 이 아저씨는 뭔가 알듯했다.

 

아쉽게도...근원지는 잘 모릅니다.”

 

기대한 내가 잘못이지.

 

그래도...”

 

덥수룩한 수염을 매만지면서 입을 여는 아저씨에게는 다른 단서가 있는 듯 했다.

 

매번 오후에 약을 판매하는 상인들이 나타나긴 합니다. 물론 그 약은 일반인도 마법사가 될 수 있다는 그런 매력적인 말로 현혹하지만, 사실상 그 약은 가격이 상당히 비싸고, 그 약에 중독되어 죽는 경우에는 시체에 하얀 꽃과 같은 것이 피어난다고 합니다. 제 친구가 그 약에 미쳐 살다가 그렇게 죽었지요...”

 

꽤나 괴로운 기억을 떠올리게 해서 죄송하네요.”

 

그 아저씨를 다독이고 나서야 겨우겨우 일어섰다.

 

그럼 일단 이 일에 대해서는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마세요. 만약 발설할 기미가 보이게 된다면, 저 뒤에 있는 기괴한 것이...”

 

구속플레이를 할지도 모른다고요? 주인님은 어쩜 그렇게 귀축 같은 말을! 아얏! 아파요!”

 

쓸 때 없는 말을 한 루나의 머리에 한대 쥐어박고 제차 입을 열었다.

 

아무튼 5골드 정도면 당분간 버티실 수 있을 겁니다. 그러니 당분간 숨어 지내세요.”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리고 아까는 정말로 죄송했습니다!”

 

대략 7번 정도 우리들에게 인사를 한 뒤에 어디론가 막 뛰어갔다. 마을에서 사는 사람이라고는 하나, 마을로 가지 않는 것으로는 지금 호카 안에 개판이 되었다거나, 아니면 마을 안에 들어가기 싫을 정도로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이 틀림없겠지. 하나의 해프닝이 끝난 후에 다시 걸어가고 있는데...

 

이 아가씨를 구하고 싶으면 돈과 먹을 것을 내놔!”

 

이번엔 다른 아저씨가 인질극을 벌이고 있었다.

무슨 다섯 발자국도 안 갔는데 벌써 인질극이 되는 건지 모르겠지만, 아까 사라진 것으로 확인했던 기계식 골렘이 또 다시 다른 인질범을 잡으면서, 위와 같은 상황이 반복되었다고 한다.

 

이러다가 호카 마을에 언제쯤 도착하게 될까?

 

***

 

대략 23차례의 인질극으로 인해 1시간 20분 정도 잡아먹었을 무렵. 늦은 오후로 해가 점점 기울기 시작하여, 하늘을 황금색으로 물들일 시간대로 변하면서, 호카 마을의 첫 인상은 상상 이상으로 암울한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었다. 마을을 관리하는 영주도 이 곳이 이런 상황인지 모르는 건지. 아니면 혹시 흑막이 아닐지 계속해서 추측을 하고 있는 찰나...

 

주인님? 이 마을 분위기는 왜이리 활기차요?”

 

전혀 다른 모습을 보고 있는 루나의 눈으로 보아, 아직 마법으로 인한 환각에 내성이 없는 것으로 판단했다.

 

지금 어떤 모습이 보이는데?”

 

우선 루나에게 물어보면서 하나하나 틀린 부분을 찾기로 해보자.

 

저기 마을 건너편에 아이들이 뛰어 놀고 있어요.”

 

몇몇 아이들이 굶주려서 걸어 다니고 있었다.

 

아주머니가 창문에서 이불을 털고 있고요.”

 

저건 아주머니가 뭔가 흡입하는 장면인데?

 

꽃에는 물을 주는 아저씨가 보여요.”

 

하얀 꽃이 덮여있는 시체를 묻고 있는 아저씨가 보였다.

뭐 여기까지 알아본 결과, 이 마을 안에 환각을 일으키는 마법이 존재했다. 몇몇 마법저항력이 뛰어난 사람들은 여기 안의 살풍경을 보고 도망쳐 나왔고, 아직까지 있는 사람들은 면역조차 되지 않아서, 자신이 지금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최면에 걸린 상태라는 뜻이 된다. 루나도 마법에 대한 것은 아직 알지 못하기 때문에, 아무런 저항도 없이 최면상태에 빠졌던 것.

 

루나 일단 내 손을 잡아.”

 

목줄 안 차나요?”

 

진짜 이 녀석 무슨 책을 본 거냐고!

 

한대 더 맞기 전에 잔말 말고 손부터 잡아.”

 

!”

 

-따악!

 

손을 잡으라고 줬더니 살짝 주먹을 쥔 루나의 오른손이 내 손바닥 위에 올라가면서, “!”하고 외치자마자 반사적으로 머리를 때렸다.

 

우으! 야외플레이는 아픈 것만 있는 건가요?”

 

너 진짜 그 귀 뽑아버린다!”

 

히익! 하고 양팔로 귀를 가리면서 루나는 외쳤다.

 

안 돼요! 귀만큼은! 이런 멋진 토끼 귀를 잔혹하게 뽑을 생각을 하다니! 전생에 농부인가요!”

 

토끼 귀는 분명 농작물이 아닐 텐데?

결과적으로 루나의 손을 잡고 나서, 내 마나를 흘려 보냈다. 루나의 몸 속에 억지로 마나를 주입시켜서, 자연스레 마법에 대한 내성을 일시적으로 올리는 작업. 그러자 루나의 눈은 다시 정상으로 돌아온 듯, 처참한 광경을 보고 이내 겁을 먹었다.

 

이게 어떻게 된...”

 

물론 나를 바라보는 녹안이 떨리는 것은, 자신이 지금까지 헛것을 본 두려움이라고 생각했다. 여태 경험도 없었던 환각마법에 속아넘어갔으니 꽤 무섭겠지.

 

누군가가 호카 마을을 거의 망하기 직전까지 만들어놨어. 물론 이게 첫 번째인지 아니면, 여러 차례 마을을 부수고 이곳이 다음 목적지인지 알 수 없지만, 루노아 씨의 정보라면 호카 마을에서 약을 팔고 있는 그 인간들을 잡아야 알 수 있겠지.”

 

그리고 더 진행하려고 했지만, 루나의 발이 움직이지 않고 고정되어버렸다. 이건 마법에 의한 것도 물리적인 것도 아니고, 심신적인 부담이 너무 강해 생긴 일이라, 어쩔 수 없이 루나도 안정을 취해야 하니까, 귀환마법을 이용해서 잡화점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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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생각하지 않고 막 지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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