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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니스 여신을 몸에 담으라니? 그건 성녀가 해야 할 일이다. 그보다 이론적으로 가능할 만한 일인가? 애초에 남자의 몸에 여신을 담으라는 그 자체부터, 이미 무리수란 무리수를 전부 두고 있다. 마치 바둑에서 인공지능이 무리수를 두는 듯이. 그보다 비니스 여신이 과연 그것에 대해 승낙을 할까에 대해서, 혹은 그것 이외에 정말 다른 수가 없는 가에 대해서 여러 가지 고민과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대략 10분 정도 지난 뒤에 나는 입을 열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비니스 여신이 제 몸에 담았다고 해도, 월식에 대한 방비가 된다는 뜻은 무슨 뜻인가요?”

 

그러자 레시아는 고양이 세수를 끝마친 뒤에 입을 열었다.

 

지금 주인의 몸에 공석이 나게 되면, 분명히 조만간 월식이 그 몸을 침식하려 들것이다. 물론 어째서 그 침식이 빠르게 일어나지 않았던 것에 대해선 비니스 여신이 봉인 되었던 목걸이의 영향이 컸지.”

 

그냥 마법피해를 줄여주는 레어 아이템인 줄 알았더니, 내 몸에 있는 월식의 침식까지 막아주는 유니크 아이템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런 사실을 알아도 여신에게 다시 봉인 당해주세요.”라고 말해봤자. 100%거절 당하고 덤으로 빛의 대성당에 있는 성기사단에게 정화작업=화형에 당한다.

 

그렇지만...

 

지금 그렇게 위험한 상황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지만, 제 안에 뭐가 있거나 그런 기분은 아예 없는데요? 애초에 제 몸에 월식이 잠들어있다고 해도, 그 월식은 실제로 일어나 있는 건가요?”

 

진행중이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나에게 무슨 특이한 증상이 자주 일어나지 않고, 지금 레시아가 이렇게 바쁘게 움직이는 이유는 분명히 선견지명이 있기에 하는 행동일지라도, 나에게는 지금 딱히 위기 의식이 없다. 그런 나를 보면서 레시아는 느닷없이 한 숨을 미네랄 50, 가스 50을 소비해서 만들어서 내쉰 후에, 가장 간단한 예를 들어줬다.

 

주인은 암에 걸리면 죽는 것은 알고 있지 않는가?”

 

그렇죠.”

 

그야 많은 애증극에서 암 말기 판정을 받고, 더 이상 치료할 수 없는 소식을 들은 주인공이, 자신의 남은 생을 최대한 힘차게 보내다가 죽어버리는 내용의 소설이 몇몇 있고, 반대로 그냥 인생 렛잇고! 이러면서 처참하게 살다가 쓸쓸히 죽어버리는 내용의 글도 몇몇 봤다.

 

그럼 그 암이 말기 될 때까지 대부분은 알아차리던가?”

 

“...그건 아니죠.”

 

암이란 것이 상당히 은밀하여, 작은 증상이 나타나면 그것을 가볍게 넘겼으나, 느닷없이 기절하거나 쓰러져서 병원에 확인해보니, “암 입니다.”라는 단답형의 짧은 사형선고를 받는 클리셰로 간다. 그나저나 내가 이걸 왜 설명하고 있지?

 

지금 주인의 몸 속에 월식이라는 암 덩어리가 지금도 자라나고 있다는 소리다. 이 암 덩어리야.”

 

오호...가 아니라! 제가 왜 암 덩어리에요! 자연스럽게 하는 폭언은 그만둬 주시죠!”

 

아무리 그래도 나를 너무 무시하는 것 아닌가? 물론 내가 좀 답답한 경향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암 덩어리라니...암이 암에 걸려 완쾌되겠다. 그리고 다른 이유가 있다는 듯이 레시아는 다시 입을 벌렸다.

 

지금은 협상을 할 수 있을 만한 여신은 비니스 여신 밖에 없는 것도 있다. 확실히 우리들이 전에 비니스의 꽃을 꺾으러 갔을 때, 그 목걸이를 발견하지 못하고 그냥 내려왔으면, 앞으로 비니스 여신은 그 목걸이 속에서 더 오래 봉인이 됐겠지. 그러나 우리가 발견해줬으니 그것에 대한 보답으로 월식의 침식을 주기적으로 정화하고, 덤으로 주인의 매력...아니. 신성력을 다룰 줄 알게 된다면, 그거야 말로 최강의 인기 상품...아니. 메리트가 된다는 의미다.”

 

방금 레시아의 사심을 본 것 같은 것은 내 착각인가? 하지만 지금 여신의 성역에서 돌아온 이상, 다시 사테라 씨에게 가는 것은 거북하고, 그러면 비니스 여신을 어떻게 부를 생각인지 레시아는 생각하고 있을까?

 

하지만 비니스 여신을 몸에 담는다는 소리를 하면 아우리스에게 잔소리를 듣겠지. 그럼 계획을 수정해서, 전에 2층에서 사역마 소환을 했을 때, 짐을 불렀지 않았는가? 이번엔 3층에서 사역마 소환을 하는 것이다.”

 

애초에 사역마 소환에는 제한이 없으니까.

 

하지만 레시아는 여신과 같이 생활하거나 그런 것은 거북하지 않아요? 애초에 3층에는 사키엘의 문을 사용할 때 빼면, 절대로 올라가지 않는 성격이잖아요? 게다가 사역마가 2명으로 늘면 무슨 일이 터질지도 모르고...”

 

오히려 평화가 박살 나지 않을까?

 

그렇다고 언제까지 손가락만 빨면서 기다릴 수는 없다. 실패를 하더라도 꼭 시도는 하고 실패를 하는 것이 더 좋은 방안이다. 애초에 3층에서 소환한다고 해도 그게 꼭 여신이라고 할 이유도 없고, 혹은 엘티노스가 강림할 수도 있지. 그때는 그에게 조언을 받아 보는 방법도 좋은 방법이다.”

 

간단하게 정리하면 본래 봉인에서 풀어준 보답을 빌미로 비니스 여신을 소환하려고 했으나, 레시아는 아우리스의 잔소리가 듣기 싫어서, 3층에서 비니스 여신과 비슷한 수준의 무언가를 소환하기로 했다.

 

이미 1층에 있는 마법석을 고르고 나서 3층으로 먼저 올라가는 레시아를 따라, 나도 천천히 올라갔다. 물론 지금에 와서 이게 도움이 될 수 있는지 잘 모르겠으나, 다시 시작해보기로 했다.

 

레시아는 3층의 바로 한 칸 계단 앞에서 기다리기로 하고, 나 혼자 사역마를 소환하기 위해 마법진을 그린 뒤에, 얌전히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물론 레시아를 소환할 때는 처음이기도 하고, 주문을 보고 따라 읽었지만, 지금은 술술 다 나오는 정도. 5분만에 마법진에서 빛이 나오기 시작했다.

 

마법진 안에서는 빛이 뿜어져 나오면서, 허공에는 푸른 색의 크리스탈 하나가 떠오르고 있었다.

 

/다른 세계의 존재여. 그대의 몸 안에는 깊은 어둠이 자리잡고 있구나./

 

레시아를 소환했을 때와는 다르게 텔레파시를 통해 들려오고 있었다. 들려오는 목소리는 약간 어린 목소리가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게다가 내 안에 뭔가 있다는 것까지 한눈에 보고 알아차렸지만, 나는 당황하지 않고, 엘티노스의 책에 있는 내용처럼 그냥 입으로 말했다.

 

맞아. 내 안에는 월식이라는 녀석이 자리잡고 있다고 해. 따라서 지금은 그 월식의 침식을 막거나 제거해줄 녀석을 찾고 있어.”

 

/...숙지했다. 그렇다면 내가 불려온 것은 필연. 나는 어둠을 먹고 자라나는 태초의 빛. 그대 안에 있는 어둠을 먹고, 나는 자라나리라. 나는 자라나서 그대를 위해 살아가리라. 나는 살아가서 그대의 안식일까지 함께 하리라. 그러니 수정을 그대 몸에 가까이 가져가다오./

 

뭔가에 이끌리는 손은 어느새 수정을 잡고, 그 손 안에서 빛이 강하게 발하는 순간...

 

주인. 일어나거라!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

 

눈을 뜨고 주변을 둘러보니, 마나가 바닥난 듯 빛을 잃은 마법석이 굴러다녔다. 한 동안 멍하니 있다가, 내 주변에는 빈손인 것을 깨닫고 레시아에게 입을 열었다.

 

레시아. 푸른색의 수정 못 보셨어요?”

 

수정? 주인은 대체 무엇을 소환한 것인가?”

 

뭐였지? 어둠을 먹고 자라나는 태초의 빛이라고 하던데...애초에 그런 건 처음 들어보죠?”

 

레시아는 한 동안 말이 없었다. 눈빛에서는 대체 이 녀석은 뭐 하는 녀석이지?”라는 이상한 사람 보는 눈빛이기에, 그것을 또 따지고자 나는 말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아니. 아무리 제가 터무니 없는 것을 소환했다고 하지만, 지금은 대체 이게 어디로 갔는지 잘 모르겠다니까요?”

 

그에 대해 레시아는 입을 열었다.

 

지금 주인이 소환한 존재는 내가 모르는 이상. 전혀 다른 차원에서 온 존재나 다름없다. 애초에 각 차원에는 태초의 빛이 자리를 잡아서, 모든 것들을 밝혀야 맞는 것이지만, 지금 그런 거대한 존재조차 소환을 했다면, 그 차원은 이미 멸망한 차원이란 소리가 된다.”

 

그러니까 함축적으로 말하자면, 대체 뭘 터무니 없는 걸 소환했느냐? 이 소리지?

 

보통 그 마법진에는 비니스 여신이 소환 됐어도 상당히 크나큰 사건이다. 게다가 짐이 잡은 최대는 비니스 여신과 어느 정도 비슷한 수준을 가진 자를 원했던 것. 하지만 지금 주인이 소환한 것을 보면, 아우리스 여신 조차 혀를 내두를 정도의 존재를...”

 

레시아는 날 보자마자 입을 다물었다. 물론 그것은 누군가 있어서도 아니고, 정확히 나를 보고 있었다. 하지만 레시아는 담담하게 입을 연다.

 

주인의 몸 속에서 이미 자리잡고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벌써부터 월식의 침식을 빨아들여서, 어둠을 신성력이 아닌 다른 형태의 에너지로 바꾸고 있다.”

 

무슨 에너지로 바꾸고 있길래 레시아의 말이 한번 막힐 정도로 긴장을 한 것일까? 일단은 월식의 침식이 사라져 간다는 말에(나는 잘 모르겠지만...), 내 몸 상태도 어느 정도 해결이 됐다. 사역마가 2명으로 늘어버린 내 인생이지만, 그래도 다른 사역마는 내 몸 속에서 열심히 정화작업을 하고 있는 듯.

 

혹은 자신이 깨어나기 위해 어둠을 다른 에너지로 바꾸고, 그 에너지를 흡수하면서 성장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나저나 아까부터 다른 사람들이 안 보이는데? 어디 갔나요?”

 

나머지는 각자 외출한다고 들었다. 물론 짐도 이제 외출을 해야 할 시간이지만, 주인은 어떻게 하겠나?”

 

뭐 저야. 잡화점에서 조용히 기다리고 있도록 하죠. 어차피 물건 정리할 것이 있으면, 물건 정리하고...사역마 소환 때문에 피곤하기도 하고.”

 

레시아는 곧 바로 사키엘의 문을 통해 마계로 진입했다. 급한 일이 있는지 없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홀로 남겨진 이 잡화점 안에서 겨우겨우 느긋하게 휴식을 취할 수 있겠지. 천천히 1층으로 내려가서 느긋하게 오후를 만끽하며 허브티를 타고 있었다.

 

그나저나 뭔가 자꾸 까먹은 기분이 나는데 기분 탓일까?

 

-끼이익.

 

아우우...머리야...”

 

지하 1층에서 루니아 씨가 두통을 호소하며 기어 나왔다. 기어오는 모습은 마치 우물에서 기어 나오는 귀신의 움직임이었다. 그보다 나는 저주받는 영상을 본적이 없는데?

 

카일~? 머리가 아파요오.”

 

이번엔 분홍색의 하얀 토끼 모양이 있는 파자마로 걸어나오면서,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따라서 나는 두통약과 물을 루니아 씨에게 건네줬는데, 루니아 씨는 그것을 무시하고 나를 껴안았다.

 

하아...상쾌해진다아.”

 

그러니까 제가 무슨 걸어 다니는 숙취 해소제냐고요? 아까 아침에 마리아나 루나가 했던 행동과 비슷했다. 본래 마나가 많은 타입들은 이런가? 조만간 주변에 마나가 많은 사람이 나타나면, 시험이라도 해볼까?

 

그나저나 다들 어디갔나요오?”

 

상당히 빨리 눈을 뜬 루니아 씨는 주변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고, 나는 거기에 대해 짧막하게 다들 외출 나갔어요.”라고 말했다. 그러자...

 

와아! 누나가 독점!”

 

이라면서 나를 꼬옥 끌어안았다. 그보다 대부분 사람들이 저에 대한 독점 욕구가 높아 보입니다만? 전 시체협회에 어딘가에 저에 대한 증오를 내뿜은 협회장님에게 죽고 싶지 않아요.

 

그나저나 루니아...누나?”

 

귀 청소를 받고 싶다고요오? 알았어요오.”

 

아니 아직 아무 말 도 안 했어!

 

그 전에 왠 귀 청소?”

 

그야 제가 오래 전부터 해보고 싶어서요. 남동생이 생겼을 때 해야 할 리스트목록에 있으니까요.”

 

루니아 씨는 포옹을 풀고 나서, 뭔가 준비하러 간다고 지하 1층에 다시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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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야기 13은 아직 안 끝났네요.

[근데 저는 스토리나 그런거 생각 안하고 막 지르는 성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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