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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외로 평화는 2일이 더 지났다.

아무런 사고 없이 지나간 것에 대해 경배를 드릴 정도로, 들뜬 마음에...

 

주인. 아무리 힘들다고는 하지만, 도피하려고 하지는 말거라. 지금 잡화점을 오픈 한지 2분밖에 지나지 않았다.”

 

사실 2분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1분이 하루 같이 느껴지는 하루가 될 것이란 생각에 내 의지가 가득 내려갔다. 물론 지금도 초침이 움직이고 있는 시계를 보며, 제발 초침아 1분이라도 빨리 가라! 라는 생각으로...

생각해보니 분은 분침이 알려주잖아? 그 전에 다른 시계보다 1 1초 더 일찍이라도 가는 날에는, 그건 시계로써 아웃 아닌가?

 

이런...벌써부터 주인이 다른 곳으로 도피하기 시작하였군. 주인이 그럴 때마다 짐은 마음이 아프다는 사실을 슬슬 깨달아줬으면 한다.”

 

레시아도 제가 힘들어 보이면 마음이 아파요?”

 

그야 당연히 주인을 위로하려는 차원으로 그런 거짓말이라도 뱉어야 힘이 나지 않는가?”

 

거짓말이라도 뱉는다는 말만 없었으면 정말로 힘을 내요 슈퍼파월이 되었을 텐데 말이죠! 어떻게 보면 레시아는 마왕이란 신분에 비해 너무 정직해서 탈이다. 처음에 소환을 할 때도, 너무 정직하게 오지 않았던가? 물론 지금은 레시아가 있었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지만, 따지고 보면 레시아에게는 야망이나 그런 것은 없는 걸까?

 

가끔 보면 레시아가 대체 무엇을 위해 여기에 있는지 모르겠다.

 

저기 주인님! 주인님! 이 아이는 인큐버스라고 했죠?”

 

루나는 자신의 귀가 움직일 정도로 깡총깡총 뛰고 있었다. 이럴 때는 토끼라는 이미지가 심어지긴 하지만, 일반인이 볼 때는 바니 걸 코스프레를 하는 그런 이미지로 보이겠지. 오늘도 공연준비를 하기 위해, 그 뒤에 오는 마리아와 루시피나 씨도 똑같은 의상으로 맞췄고, 마리아는 자신의 외모에 취한 듯(......) 전신 거울에서 포즈를 잡고 있었다.

 

카일이여. 첩이 포즈를 잡고 있는데 저 괄호 안에서 정말 어처구니 없게 짝이 없군.’이란 감정이 느껴지는 내용은 또 무엇인가?”

 

그건 제가 독백을 한 것이 아니에요. 그냥 어쩌다 보니 끼어들어온 거지.”

 

그보다 마리아는 방금 전에 내 독백을 읽은 것도 모자라서, 저 끼어든 정체불명의 것까지 봤단 말인가? 마리아는 정신 쪽에 특화되어있기도 하고, 애초에 검은 달의 여왕이라는 그 자체는 정신기생체이기에, 이런 쪽에서는 일가견이 있을 수도 있지만...

 

부탁인데 내 독백은 그만 읽었으면 좋겠다.

 

! 매니저! 어서 나가자!”

 

매니저?

 

...! ...금방 가겠습니다!”

 

프로듀서인가?

이렇게 되면 러브 아이돌 라이브 마스터가 탄생하는 순간이려나?

 

...미지의 세계에서 두 세력이 알 수 없는 살기를 뿜어내고 있다. 일단 이 농담에 대해서는 자중을 하기로 하자. 아무튼 인큐버스가 어느 사이에 프로듀서인지 매니저인지로 전직을 한 뒤에, 잡화점 아이돌 3명과 함께 밖으로 나갔다.

오늘도 잡화점 밖은 시끄러울 것이라 예상을 했다. 남자들에게도 인기가 많은데, 매니저로 인큐버스까지 추가되면, 여자들에게도 인기가 더 많아져서 혼돈의 카오스가 나타나리라는 최악의 상황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차라리 인큐버스를 잡화점 안에서 일 시키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했으나, 아침에 있었던 루시피나 씨와의 대결에서 패배한 나는, 어쩔 수 없이 인큐버스가 잡화점 문을 공손히 닫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지켜주지 못해...미안하다!!!

 

주인? 그 포즈는 뭔가? 한쪽 팔을 쭉 뻗으면서 울부짖는듯한 것은?”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나저나 우리도 일 해야죠.”

 

손님은 다양하게 오니까 형광봉이나, 캐릭터 상품을 사러 오는 사람들도 있고, 이쯤 되면 이제 잡화점이 아니라 콘서트 장 옆에 있는 상품가게라고 해도 될 정도. 역시나 잡화점은 계속해서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

 

진짜 정체성 한 순간에 잃어버리기 쉬운 장소가, 이 곳 말고 또 어디 있는가? 레시아는 다시 카운터 위에서 엎드린 체 눈을 감았고, 나도 몰려오는 손님을 대비해서 바쁘게 진열준비를 다 끝내놨다.

 

그런데...

 

레시아?”

 

뭐냐? 주인?”

 

저희 밖은 엄청나게 시끄러운데, 우리만 조용하니까 심심하지 않아요?”

 

좋다. 가위바위보를 하도록 하자.”

 

어라? 난 분명 심심하다고만 이야기 했는데, 어째서 그게 가위바위보를 하자! 라고 해석할 수 있는 겁니까? 레시아의 머릿속은 대체 어떻게 된 거에요?

 

최근에 주인이 아프고 구른다는 이유로 가위바위보를 못하지 않았는가?”

 

글쎄요? 그래도 최소 하루에 한 번씩 최대는 10번도 넘게 한 걸로 기억하는데요?”

 

참고로 전적은 214 0 162 52무를 달리고 있다. 그러니까 1개월 3주동안 214번의 혈투 중에서, 52번의 생명의 위기를 겨우겨우 넘겼고, 162번 결국에는 얻어맞았다는 소리. 하지만 오늘만큼은 정말 가위바위보 말고 다른 걸 하고 싶었다.

 

그렇다고 주인은 그 세상에서 가장 쓸모 없는 상자.’를 꺼내주지 않으니까, 짐이 이렇게 심심한 것이다.”

 

그것 때문에 잡화점의 반쪽이 한번 날아갔잖아요. 그 위험천만한 물건은 절대로 안 돼요.”

 

밖은 여전히 노랫소리와 불빛에 의해, 광란 상태로 접어드는 오크 무리들의 괴성을 들을 수 있었다. 표현하자면 ‘Waaaaaaaaagh!’라고 지르고 있었다.

 

-손님왔쇼! 손님왔쇼!

 

......손님을 알리는 작은 종의 상태가 오늘은 좀 이상한지, 기묘한 환청이 들리면서 오크 무리를 반겼다. 여기에 있는 오크는 색상이 녹색에 코는 납작한 것과 이빨이 멧돼지처럼 엄니가 뾰족한 거 이외에는, 그래도 지성이 있고 부족사회가 대부분이다.

 

린간! 우리! 뻔쩍이가 모자라다! 뻔쩍이! 40개만 줘라!”

 

물론 억양이 좀 드세고 문법 자체를 파괴하는 경향이 좀 많지만, 그래도 의사소통은 되기에 형광봉 40개를 줬다. 오크들은 자신의 이빨을 화폐로 사용하는 데, 그것을 내가 알고 있는 이유는...

 

요기! 이뽤! 100깨다!”

 

지금 거래를 하고 나서 알게 된 사실이기 때문이다. 형광봉 하나의 5실버인데 200실버짜리를 사고, 오크 이빨 100개를 얻었다. 오크의 이빨 최근에 화살촉으로 사용되면서 재평가 되고 있을 정도로, 강도가 높고 날카롭기 때문에, 물물교환 입장에서는 내 쪽이 더 이득으로 작용된다.

 

오크 이빨 하나가 4실버니까...

 

린간! 그런데! 그 껌은 꼬양이는 뭔까!”

 

제 사역마에요. 이름은 레시아이고...”

 

하지만 저 오크도 지금 묻는 그 고양이가, 사실은 마왕이라고 생각은 하지 못하겠지. 아무튼 그 오크는 뻔쩍이도 사쓰니! 이만 가뽄다!”라고 말하며, 잡화점의 문을 거칠게 나갔다.

 

오크 사회에서는 고양이를 좋아하지 않는다.”

 

레시아는 눈을 감은 체 입을 열었다. 오크 사회에는 고양이를 싫어한다니?

 

예전에 이런 모습으로 몬스터의 숲을 지나가는 도중에, 오크들이 짐을 위협한 이후로 오크들의 마을 15개를 파괴했고, 아직도 머리가 썩 좋지 못한 오크에 의해, 추가로 8개가 더 파괴한 적이 있기 때문에, 이들의 사회에서 검은 고양이는 멸망의 징조라고 생각한다.”

 

그거 결국 레시아가 예전에 산책을 하다가, 오크들이 덤벼서 23개의 마을을 때려부순 사건이잖아요!”

 

오크들의 지성으로 짐을 알아보는 일은 없다고는 생각하지만, 막상 그렇게 무시당하고 위협을 받으니, 어리석은 녀석들을 혼내는 것은 짐의 할 일이다.”

 

혼낸다는 스케일이 너무 크지 않아요?”

 

제대로 화나면 오크들이 멸종하지 않을까?

 

루나링의 노랫소리는 언제 들어도 좋군, 주인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가?”

 

갑자기 화제를 바꾼 레시아의 말에, 우선 나도 답을 해야만 했다.

 

뭐랄까...좀 더 활기찬 목소리라고 생각해요.”

 

주인은 얼마나 많은 자들을 잡화점에서 살게 할 예정인가?”

 

그건 왜...?”

 

도무지 레시아가 절대로 말하지 않을 법한 이야기가, 레시아의 입에서 튀어나왔으니 그것이 의아하여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붉은 눈을 뜬 레시아는 나와 눈이 마주치며 입을 열었다.

 

단순히 궁금해서 물어보는 거다. 주인의 성격이라면 살 곳이 없는 거지마저, 잡화점에서 숙식하게 하려는 경향이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에 주인은 최소한의 인간성만 남아있다고 말을 했는데, 그것은 대체 무슨 의미인가?”

 

나에게 남아있는 최소한의 인간성...

절대로 꺼내지 말아야 할 과거의 일을 개봉한 듯한, 착잡한 기분이 내 머리를 장악할 때쯤. 고양이의 앞발이 내 턱을 후려쳤다...

 

? 뭐라고?

 

고양이 어퍼컷!”

 

이번엔 가위바위보도 하지 않았는데 왜 벌칙을 맞고 있는 걸까? 일단 레시아에게 따지는 것은 천장에서 떨어진 이후에 시작하도록 하자.

 

-!

 

지금 누구 죽이려고 해요! 오늘 따라 마기의 양이 장난 아니잖아요!”

 

순식간에 일어서면서 따지려고 들자, 앙증맞은 앞발을 핥고 있는 레시아가 입을 열었다.

 

그냥 주인 답지 않게 너무 어두워져서, 기분전환을 하라고 때렸다.”

 

어떤 사람이 우울한 사람에게 기분전환을 폭력을 가해요!”

 

짐은 사람이 아니라 마왕이다.”

 

그걸 따지라고 위와 같이 말한 게 아니에요!”

 

잠깐 생각만 한 것인데 표정이 많이 어두웠나? 아니면 특수효과 담당이 내 얼굴을 어둡게 만든 것인가? 어쨌든 레시아가 뭔가 불안한 건지, 아니면 미안함인지 몰라도 일단 내 턱을 힘차게 때렸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다.

 

주인에게 그 과거는 확실히 짐 덩이가 되는 것인가?”

 

나는 씁쓸하게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어차피 다 지나간 과거라서 그렇게 오래 생각해봤자, 머리만 아픈 것이니 거기에 대해선 생각하지 말죠.”

 

다시 과거에 있던 안 좋은 기억이 안개처럼 흐려지면서 사라지고 있을 때. 밖에서는 더 많은 사람들과 몬스터로 인해, 잡화점 안에서도 떠들썩한 진동이 퍼지고 있었다.

 

-딸랑!딸랑!

 

손님을 알리는 종이 이번엔 정상적으로...뭐야? 아무도 없잖아?

 

잔재주를 부리지 말거라 베르티아. 하피들의 여왕이라는 자가 그렇게 장난을 좋아해서야...”

 

레시아가 그렇게 입을 열자, 푸른 빛의 깃털이 돋보이는 하피들의 여왕. 베르티아가 카운터 바로 앞에서 마치 물건을 훔쳐가려는 듯한 포즈를 취했다.

 

베르티아? 뭘 하려고 한 거에요?”

 

그야 뺏으려고 왔지.”

 

누구를?”

 

카일. 당신을...”

 

여전히 온화하게 웃으면서 대답을 했...

 

그거 농담으로 안 들리거든요! 레시아가 없었으면 저는 또 하피의 언덕으로 끌려갈 뻔한 운명이 되었던 겁니까!”

 

잡화점 안에 있다고 해도, 잡화점 주인을 파는 것은 아니다.

 

그나저나 본 목적을 말해라. 주인은 그대의 시시한 장난에 하나하나 맞춰주느라 정신적인 피로가 쌓일 테니까.”

 

따지고 보면 정신과 육체의 피로는 레시아로 인해 생겼는데요?

 

잠깐 지나가던 길에 들린 것뿐입니다. 마왕님. 설마 마왕님의 신랑을 뺏어갈 생각을 감히 하겠나요? 후훗.”

 

하지만 기회가 된다면 뺏어버리겠다라는 눈빛을 본 순간, 내 등에 소름이 빠르게 지나갔다.

 

신랑이 아니다. 마나 창고다.”

 

레시아는 그렇게 말했다.

진짜 잊을 만 하면 마나 창고라는 말이 들리다니...

 

아빠 직업 뭐야?”

 

마왕님의 마나 창고.”

 

...머릿속에 회상이 지 멋대로 떠올라서 지켜봤지만, 아이에게 차마 들려주지 못할 만큼 비참하고 말이다.

 

그러면 둘이 오붓한 시간 보내세요.”

 

베르티아는 우아하게 예를 갖추고 나갔으나, 오붓한 시간을 보내라는 쓸 때 없는 사족이 붙어버렸다. 오붓한 시간이 고양이에게 어퍼를 맞아서 공중에 1초간 체공을 한 뒤에 떨어진 것이라면, 오붓한 시간이라는 말은 상당히 잔인한 말이 될지도 모른다.

 

뭐 그래도. 오늘 하루는 평화롭게 갈 것 같네요.”

 

그래도 이렇게 무난하게 흘러간다면, 얼마나 편하고 좋을...

 

-딸랑딸랑!

 

야호! 카일!”

 

...평화 파괴자 루니아 씨가 내 앞에서 귀엽게 손을 흔들며 인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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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평화로운 나날은 물건너 갔...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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