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 573
573
2마리 토끼를 다 잡는 방법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사자도 사냥을 할 때는 전력을 다하는데, 그것은 토끼건 사슴이건 다르지 않게 모든 전력을 다한다. 그런데 각기 다른 방향으로 뛰쳐나가는 토끼를 잡으려면? 아무 생각 없이 돌격하는 것만큼 바보 같은 일은 없지.
지금 잡화점이 2개로 되는 것은 중추인격을 담당하는 세린이 같은 시간선상 2명이 되어있기 때문에, 그 둘이 융합한다는 그 자체밖에 되지 않았다. 잡화점 멤버들이라고 하기엔, 이곳에 카일이라는 존재도 없고, 잡화점 멤버가 300년 뒤에 어떻게 살고 있는지 확인할 수도 없을뿐더러, 루나의 경우에는 과거 시간대에 놓고 왔으니, 300년 후의 루나만 존재한다.
그럼 이 시간상에 절대로 2명이 존재할 수 없어야 하는데, 예외적인 그리티스 씨 빼고 또 다른 존재라면, ‘세린’의 존재가 명확하게 부각이 된다. 나는 이 말에 좀 더 중점을 뒀어야 했었는데. 바로 잡화점이 2개가 되었다는 말이다.
“이건 기회에요. 모든 차원이 융합되고 지정된 시간에 모든 차원에서 벌어지는 사건이 한꺼번에 이곳에서 투영되는 그 아슬아슬한 시간대에 해치우고 떠나면 그만이지만, 안전장치를 위해 시간이 만료되기 전 본래 시간으로 이동할 수 있는 경우도 찾아야겠네요.”
“수많은 삼천세계의 붕괴라도 일삼는 것인가? 본인은 허락하지 않는다! 그건 확실하게 파괴자의 소행이 아닌가!”
당돌하게 말하는 염라대왕. 지금 중간계와 천계, 마계가 난장판이 되었어도 명계만큼은 안전했었다. 하긴, 내가 중간계에서 고생을 한다고 한들, 명계에서 똑같이 겪어야 한다는 그런 말은 아니지만, 어떻게든 끌어올려서 내 말을 듣게 한다면 지금 상황도 나쁘진 않았다. 그런데, 왜 상황이 점점 반대로 되어가는 걸까?
나는 분명 이 세상을 지우려는 유랑극단을 처리하기 위해 온 거지만, 사실상 이곳을 파괴하려는 사람은 내가 되어버렸다. 언제나 사람의 행동에는 의미와 뜻을 찾으려고 노력한다면, 그건 인생에 살아감에 있어서 후회하지 않겠다는 최면에 불과하다. 나도 결국 레이베리아와 별 다를 게 없는 파괴자일 뿐.
깨끗하게 인정할 건 인정하자.
본래 나는 이곳에 있어야 할 사람이 아니니까.
“당연히 파괴자의 소행이죠. 하지만 제가 파괴자가 되어 모든 것을 무로 만든다고 한들, 레이베리아의 입장에서는 별로 달갑지 않는 상황이라 봅니다. 그것에 대한 확실한 증거는 그렇게 많지 않지만, 아직까지 레이베리아의 힘은 모든 평행차원을 품을 정도로 강대하지 않다는 거죠.”
레이베리아의 목적은 규모가 작으면 작을수록 좋은 계획이다. 만일 우주자체를 뜯어고치겠다면, 티르가 호문쿨루스를 만들 필요도 없이, 모든 생명이 전부 사라지고 또 다른 생명이 그 자리에서 태어날 뿐이나, 지금은 어떻게든 조용히 제거하고 다시 만들기 위해, 보이드로 시공간을 지우고 나처럼 시공간의 개념자체를 다시 새겨 넣어, 직접 조종할 수 있도록 잡혀있다는 것이 내 추측.
그 외에도 여럿이 있지만, 전부 다 풀기에는 너무 쓸 때 없는 말뿐이다. 그래도 이 행동들의 궁극적인 목적은 단 한가지. 통제에 관련된 문제들이다.
“레이베리아는 지금 천계와 마계, 인간계마저 통제하기 위해 세상을 들쑤시고 다니죠. 유랑극단이라는 말도 안 되는 단체를 만들어서, 제가 손을 쓰기 힘들 정도까지 왔어요. 염라대왕님이 저를 지금 당장 명계로 보내서 셀 수 없는 영겁의 시간 동안 형벌을 내리기 전에, 잡화점에 있는 중추인격들이 서로 융합해서 모든 평행차원을 한 점으로 밀집 시킬 겁니다. 그 말이 뭔 줄 아시겠죠?”
염라대왕의 눈이 차갑게 식어있었다. 내 업보가 그만큼 증가한다는 소리인가? 사실상 여장을 한 상태로 이런 무거운 말을 한다는 자체가 웃긴 상황이지만, 그래도 나는 내 소신껏 이야기 했다. 양보를 할 수 없으니 어디 마음대로 해봐라.
“소피아.”
“네! 염라대왕님!”
어디서든 밝게 웃으며 대답한 소피아는 섬뜩한 대낫을 양손으로 잡고 언제든지 뛰쳐나갈 준비를 했다. 그러나 다음에 나올 말은 살상명령이 아닌...
“명계로 돌아가 있거라. 나는 친히 잡화점의 주인과 할 이야기가 있으니.”
“어라? 아버지를 명계로 보내서 같이 뱃사공해도 된다면서요!”
어째서인지 소피아가 너무 힘차게 공격한다 했더니, 그런 모종의 거래를 하고 있었다는 거냐? 자신의 아버지를 때리는 것도 아니고, 무기로 휘두르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자신만만하게 “괜찮아. 아빠가 죽으면 명계에서 같이 지내지 뭐.”라는 생각으로 싸웠으리라 본다.
“계획을 바꾼다. 본인도 실로 오랜만에 생각을 바꿀 줄은 몰랐지만, 명계의 위대한 존재가 자신의 세계 하나를 지키지 못하면, 나 또한 별반 다를 것이 없는 여자애일 뿐. 지금은 잡화점 주인의 고양이 혀라도 넘어갈 수 없는 중대한 사항임을 인식했다.”
세치 혀겠지.
내 주변사람들은 일부러 잘못 말하는 게 취미인가?
“300년 전의 존재가 이곳에서 정 나갈 수 없고, 꼭 사건 하나를 해결해야 한다면...좋다! 이 염라대왕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한가지만이라도 알려다오.”
계약은 성립인가.
살짝 눈감고 고개를 끄덕이던 염라대왕의 분위기는 차근차근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염라대왕님께서 하실 일이라면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엘티노스를 좀 찾아주세요. 이 양반이 어디서 뭘 하는지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해결방안을 제시해주거든요. 애초에 제가 있는 그 자체만으로 보이드는 사라진다고 하지만, 잡화점에 대해서는 엘티노스가 저보다 더 잘 알 테니, 나중에 그 사람에게 잡화점이 2개 이상 같은 시간대에 있을 시, 어떤 난장판이 벌어지는 가에 대해 잘 설명해줄 겁니다. 또 다른 하나는 소피아에게 거짓이 가득한 명령은 내리지 말아주세요.”
“그것뿐인가?”
상대는 파격적인 제안에 다시 의문을 품었다. 아무래도 소피아에 대한 부탁은 그렇다고 쳐도, 엘티노스는 찾는 건 쉽지 않는 일인데? 어쨌든 나는 고개를 끄덕여 신호를 보냈고 뭔가 불만이 서려있는 염라대왕의 눈빛의 뜻을 내가 알아차리기엔 무리였다.
“그것뿐이에요.”
“다시 확인시키지 않아도 알고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되는군.”
이해가 안 되다니? 그건 또 무슨 말인지?
“네가 제안한 일은 실질적으로 해결이 되지 않는 것들뿐이군. 본인은 이 상황을 당장 해결할 수 있는 역할을 말하는 것일 터.”
“우리가 모든 평행차원에 대해 권한이 있는 것도 아니고, 멈추고 싶어도 멈추지도 못하잖아요? 아마 각기 다른 창조신들이 이 상황이 뭔지 모르고, 많이 당황하리라 생각하지만 그래도 상관 없어요. 그전에 상황을 끝낼 수 있으니까.”
“일을 해결하는 것이 엉망진창이로군.”
“벌어지는 일이 엉망진창이라서요.”
정상적으로 벌어지는 사건이 통 없었다.
당연히 지금도 그렇다.
예를 들어 살인사건이 일어난다고 했을 때. 정상적인 구도라면 범인이 피해자를 살해하여 시신이 발견되고 수사가 이루어지는 방식이겠지. 하지만 나의 경우에는 일단 시신이 발견 되었는데, 조사를 하던 도중 범인이 나타나 그 시신을 한 번 더 살해하고, 내 눈앞에서 태연하게 가버리는 그런 경우다.
이미 내가 해결해야 할 일이 엉망진창인데.
해결하는 방법도 엉망진창이 되는 게 맞다.
태연하게 말대꾸를 하는 내가 탐탁지 않은지, 불만이 염라대왕의 얼굴에 계속해서 나타나고 있을 때였다.
“본인은 지금 당장이라도 해결할 수 있는 수단을 알고 싶다!”
지금 당장이라도 해결할 수 있었으면 내가 이러고 있지 않았지. 시간은 없고 해결방법이 보이지 않을 때는 누군가에게 자문을 구하는 편이 더 좋다. 그러니 무리하게 월식을 뱀 조종자 안에 넣어 히드라를 만든 이유도 그것.
“그건 염라대왕님께서 하실 수 없는 일이니까요. 오히려 지금은 제가 가장 적합한 사람이에요. 제 왼팔에 감겨있는 월식을 통해, 유랑극단에 있는 어릿광대의 위치를 알아내고 도박을 좀 할 겁니다. 당연히 제가 있는 위치도 어릿광대가 잘 알고 있겠죠. 혹시 월식에 대한 존재는 아시나요?”
월식에 대한 존재는 대부분 거의 모른다. 그만큼이나 그들은 다른 세계가 대비하기도 전에 모든 우주를 먹어 치우는 존재. 훗날 그리티스 씨와 월식을 둘이 앉혀놓고 먹기 대회라도 펼친다면, 그거야 말로 대 재앙 중 하나겠지만...이런 생각은 잠깐이나마 접어두자.
[염라대왕같이 어린아이가 우리의 존재를 알 리는 없지. 허나 잡화점의 주인. 네가 우리의 존재를 발설해버렸으니 이제서야 위기의식을 느끼긴 했을 것이다.]
으르렁거리는 짐승의 머릿속에 울렸다. 그러나, 이제 와서 숨길 것도 없으니 히드라는 더 이상 추궁을 하지 않고 잠잠해졌다. 염라대왕의 외견상 어린아이와 비슷하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히드라는 아마 외견을 보고 말하지 않았으리라 본다.
간단한 설명 중에서 중요한 사실은 빼고, 아직까지 아무것도 모르는 염라대왕에게 알려줬는데. 무서운 이야기를 들었을 때 모두가 무서워하면, 별것도 아닌 일이라면서 무표정하게 있는 사람이 있지 않는가?
그게 염라대왕이라고 보면 된다.
“그렇군. 아직까지 본인이 모르는 미지의 존재가 있다니. 흥미로운 사실이긴 하나 묻겠노라. 그 월식이란 존재는 너의 명령에 완전복종하고 있는가?”
“아뇨. 협력자의 관계니까 완전복종은 아니에요. 이 녀석이 지금 당장 폭주를 해서 저를 먹어 치울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시시한 걸 당할 제가 아니긴 하죠.”
잔뜩 경계하는 얼굴이 내 시야에 비춰졌다.
“너는 실로 무서운 사람이군. 아니, 사람도 아니지 언제부터 사람이 아니게 된 것이냐?”
“사람이 맞는 것과 아닌 것의 차이는 또 뭐에요? 사람은 지금까지도 사람이잖아요?”
무턱대고 사람이 아닌 취급을 하지 말아줬으면 좋겠다. 저기 있는 루니아 누나도 사람인데 검술로만 따지면 이미 신을 뛰어넘었는데? 잡화점에서 그나마 정상인 포지션을 맡고 있는 사람이 바로 나다.
그러니 나는 정상적인 사람이 맞다.
“본인은 그런 의미로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 안에 내재되어 있는 힘도 그렇고, 오히려 지금 당장 죽지 않는 것이 신기하군. 무엇이 지금까지 잡화점의 주인을 살게 만드는 건가? 무엇이 지금까지 죽지도 못하고 계속 살아남게 만들어주었느냔 말이다.”
지금까지 날 죽지 않게 한 것이 뭐냐고 물어본들 그걸 대답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이미 수많은 이상현상을 많이 겪어봤으니, 지금 당장 죽어도 이상하단 소리를 들어도 별로 감흥이 없고, 왜 죽어야 할 사람이 죽지 않느냐고 물어본들 별로 신기하다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글쎄요. 아직까지 제가 해야 할 일이 남았으니까?”
그 바보 같은 백장미 모델만 빼면, 내가 해야 할 과제가 산더미처럼 쌓여있다는 것쯤은 알겠지만...확실히 따지고 보면 시공의 눈을 개안한지 약 40분이 넘어가도 내 몸에 과부화는 찾아오지 않았다는 점은 이상하다고 봐야겠다.
“원래는 몸이 무너져내려야 할 시간대인데 그건 좀 신기하네요. 루니아 누나는 뭐 아는 거라도 없어요?”
“글쎄요오? 확실한 것은 카일도 이제 인간을 벗어나려고 한다는 점일까요오?”
여전히 느긋하게 말하는 루니아 누나의 말을 듣자 하니 심각한 상황은 아니지만, 우연히 흘기며 스쳐 지나간 염라대왕의 표정은 서서히 어두워져만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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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집에 다녀오느라 좀 쉬고 글을 썼습니다.
물론 드래곤볼 파이터즈 z가 너무 재밌어서 이 시간에 올리는 건 아니에요.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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