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 559
559
아직 10분도 되지 않았는데 세상의 종말이 가까워졌을까? 불안한 생각은 오히려 독이 되니까, 생각을 그만두고 가만히 있기만 한다면? 그건 저 앞에 있는 인형들과 뭐가 다를까? 자신의 목숨이나 처지가 상대방의 손에 좌우가 된다고 한들, 지루함은 언제나 중립을 지켜오며 여러 사람을 괴롭히는데 타고난 모양이다. 지루함이 머리를 4박자로 콕콕 찌르는데, 조만간 30분도 되지 않아 외계어로 적혀있다면, 그 날이 아마 내 생에 마지막으로 이성이 끊어져버린 기념일로 기록되겠지.
“숨만 쉴 줄 아는 건가?”
납치되었는지 좋아서 왔다가 감금당했는지 동기와 원인이 알 수 없는 소녀들. 그 이전에 귀여운 소년이 없는 걸로 보아, 리제로트가 살아 숨쉬는 귀여운 인형을 원하는 정도가 도를 넘어서서, 생각의 발상을 잘못된 방향으로 한 게 분명하다. 루니아 누나도 분명 귀여운 걸 너무 좋아한 나머지 남녀노소불문하고 폭주할 것이라 생각하지만, 리제로트가 저렇게 어린 여자애들을 인형으로 만드는 이유는 뭘까?
나중에 저걸로 침공을 하는 걸까? 아니면 저 중에 우주로 나가서 태양에 물을 부어버리는 실험을 해주는 걸까? 어쩌면 전 세계에 소녀들이 가득 차버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준비하는 중인 걸까?
아무리 내가 바보 같은 상상을 해서 역경과 고난의 발판이 되어버렸다고 하지만, 저 3개중에 1mg정도 가능성이 있는 건 첫 번째가 되겠지. 꽤 무시무시할 거 같은 타이틀을 가지고 올지도 모르겠군. ‘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 소녀들의 침공’과 같은 기괴한 제목으로 시작해서, 내가 과연 태클을 걸 타이밍이 얼마나 많은지 숫자로 세어봐도 괜찮을 것 같다.
이제 장난은 그만두고 반응실험을 좀 해보자. 어려지고 성별이 바뀌어버린 몸이라, 손가락마저 연하고 가느다란 것 같지만, 그건 내 손가락이니 탓하지 말고 다른 소녀의 볼을 살짝 찔러봤다.
어차피 족쇄의 범위는 방 전체로 잡혀있는지 좀 길었는데, 내가 아무리 이동을 해도 장난을 쳐도 미동도 하지 않았다. 적대심을 드러내고 싶긴 하지만, 등에 가벼운 액세서리마냥 걸려있는 대검에 상반신과 하반신이 분리되는 과정을 직접 당할 것 같으니, 이건 잠깐 패스를 하고...
밖에서 뛰어 놀고 있는 레시아를 위해 뭘 하느냐가 우선이다. 위치를 알려야 구조가 될 확률이 높아지니, 지금 희미하게 사라져가는 이 힘으로 뭘 하느냐? 요란하게 난리를 치려면 이곳에 불을 붙이는 게 가장 현명한데. 그 이유는 불이 나면 시선이 끌리니까. 그러니 조그마한 불을 붙...
-촤아아악!
어디서 양동이를 구했는지 몰라도 머리에 물을 뿌려줘서 정말 고맙군...덕분에 뭐라고 태클을 걸어야 하는데 그것마저 싹 씻겨나갔다. 아직 불도 나오지 않고 집중하려는 사이에 어떻게 알고 뿌렸을까?
개나 소나 길에 걸어 다니는 잡초까지 전부 내 독백을 읽더니, 감정과 자의식이 없는 소녀들마저 내 독백을 읽는 건가? 꽤 웃기네. 너무 재미있어서 지금 당장이라도 불을...
-촤아아악!
뭐...불이라는 단어만 써...
-촤아아악!
“그만 뿌려! 뭐가 그렇게 불만이...”
-촤아아악!
4콤보씩이나 맞고 정신을 차리는 건 힘든 일이니, 숨 좀 고르도록 하자. 어차피 불 이야기만 안 하면...
-촤아아악!
“아오 저것들을 다 불질러버릴 수도 없...”
-촤아아악!
“제발 좀 그만둬! 나에게 무슨 불만이 그렇게 많...”
-촤아아악!
“그래...내가 졌다...”
살아가면서 맞아야 할 물벼락은 이곳에서 다 맞았다고 생각하자. 어찌되었든 다른 기획으로 넘어가기 전에 수건을 줬으면 좋겠는데?
“물을 뿌렸어도 수건은 줘야 하는 거 아냐?”
역시 묵묵부답으로 아무런 말도 없이 눈을 깜빡거렸다. 뭐로 닦아내야 하는지도 모르겠으니 남아있는 힘으로 수건이나 만들어야 할까?
-할짝.
“뭐야? 누가 핥았어? 자, 잠깐만!?”
볼을 타고 흐르는 물방울이 다른 인형이 나에게 가까이 붙으면서 핥아내기 시작했다. 그건 둘째치고 5명이나 가까이 붙어서 핥는 건 무슨 상황일까? 너무 적극적인 태도로 달라붙어서 이쪽에서 당황했다.
“너희들이 무슨 강아지도 아니고! 아니, 잠깐만...힉! 핥지마! 그만둬! 그만둬 주세요! 제발! 그마아안!”
물만 보면 핥다니. 사막에서 조난당한 사람도 이런 일을 할 리가 없다. 그런데 생각을 해보니 리제로트가 자의식을 날리며 명령만 내리는 인형으로 만드는데, 생존의 욕구에 대해선 어떻게 처리를 하는 거지? 아직까지도 달라붙으며 물방울을 핥고 있는 소녀들을 가만히 관찰했다.
저 인형들에게 내려진 명령이 과연 무엇인가? 이 영역까지 생각을 하면서 추측을 시작하면 하루는커녕 1개월이 지나도 모자랄 판이다. 까면 깔수록 더 튀어나오는 양파마냥 생각을 하면 할수록 의문이 사방에서 생겨나는 기괴한 상황에서, 나에게 너무 붙어있는 사람을 떨쳐내고 거리를 벌렸다. 어차피 내가 도망갈 거리는 한계가 있긴 하지만, 망각의 샘물이 리제로트에게 받은 명령을 지울 수 있다면?
“이것도 꽤 자극적인 실험이 되겠네.”
생각의 불빛이 번뜩이자마자 행동으로 바로 옮겼다. 수분이 원하면 주는 게 답이지만 설마 내 몸까지 제공할 줄은 몰랐는데. 그냥 약간 과도할 정도의 스킨십이라 생각하고 망각의 샘물을 내 머리 위에 뿌렸다. 병은 땅바닥에 힘없이 떨어지며 구르고, 주변에 있던 소녀들은 다시 다가와 이번엔 떨어지지 않도록 나를 꽉 붙잡기까지 했다.
내가 탈출하려고 별 짓을 다하고 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내 생에 가장 빌어먹을 방법이 분명했으니까. 5분정도. 단 5분이 50분이 되는 지옥 같은 경험이었다. 다행이라면 5분동안 핥고 있는 와중에 모두가 실이 끊어진 것처럼 쓰러져서, 팔과 얼굴만 피해를 입었고 나머지는 멀쩡했는데, 다음부터 ‘핥는다.’라는 단어를 가벼이 여기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다행하게도 살아있긴 하네...”
어마어마한 물기 때문에 늘어진 옷을 다시 원래대로 고쳐 입고, 이들이 깨어나기 전에 일을 진행하기로 하자. 족쇄를 푸는 것은 간단하지 않지만 푸는 도구를 만드는 것은 매우 간단했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했을까? 나의 오랜 친구 기프트피어스를 창조하면 되는 일이다.
창조까진 아니고 복제품을 만드는 일에 해당하지만, 그래도 초기에 많이 사용한만큼, 도구에 대한 이해는 충분히 높으니까. 내 몸 안에서 창조주와 동등한 에너지가 완전히 방전되기 전에, 서둘러서 형태와 틀을 잡고 기능을 부여하는 마법진과 수식을 새기기 시작했다.
머릿속에서는 이미 도면처럼 나와있는 기프트피어스의 모습. 서서히 갖춰지고 있는 외형을 보며 쾌재를 부르는 미소가 자연스레 걸렸다. 아마 기프트피어스를 다 만들면 1/10도 남지 않은 용량이지만, 족쇄에 걸려있는 마법을 풀어내기에는 충분한 양이다. 그 이후로 마법처리가 되지 않은 그냥 족쇄로, 주변에 퍼져있는 마나가 자연스럽게 자리를 메우게 되고, 마나를 이용한 마법이라 화력은 이전보다 떨어지겠지만, 따로 신성력이나 마기를 구할 방법이 없다.
“그래도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면 다행이지만...”
창조마법은 사용하지 못하고, 그나마 남아있는 것이 뭐가 있을까? 과거에 봉인을 한번 당하고 모든 마법이 다 사라졌을 텐데...내 생각으로 가능하다고 생각되는 건, 그나마 친화력이 높으니까, 마나 자체를 움직여서 고정을 하거나 움직임을 방해할 수 있다고 본다. 그게 염력이고 염동력이지 뭘...
“이미지로 기적을 일으키는 마법사는 이래서 좋다니까?”
마나의 효율과 힘의 출력이 극악이더라도, 어차피 나는 마나와 매우 친하니까!
이른바 베스트 프랜드다. 저번에 어디선가 나에게 “너는 마나와 가장 친한 프랜즈로구나!”라고 들은 적은...없긴 하지만, 마나를 조종한 트릭 몇 가지는 가능하니까. 내가 배운 마법이 리셋이 되어버리고 마나의 활로를 뚫지 못했지만, 의지만으로 주변의 마나를 움직이게 만드는 것쯤은 가능하다.
그럼 모든 게 전부 해결...
“어라? 여긴 어디에요?”
“눈을 떠보니 이상한 곳에...”
“엄마? 엄마는 어디 있어?”
되지 않았다.
우선, 좋은 소식이라면 리제로트의 능력은 상대의 기억을 덮어 씌우는 것과 비슷한 효과를 지닌 초능력이고, 나쁜 소식이라면 망각의 샘물이 희석이 되는 바람에, 아주 적절하게 리제로트가 덮어 씌운 기억‘만’지워버렸다는 소식이다. 너무 절묘한 나머지 더 이상 치료를 하지 않아도 될 정도였다. 후유증도 따로 보이지 않았고 이제 5명중에 한 명이 울고불고 난리를 친다면, 리제로트의 관심을 한 가득 받을 일만 남은 건가?
제길.
극단적으로 저 애들을 모두 죽일 수 없는 일이니, 고민을 하기 전에 “크흠!”하고 헛기침을 하며 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당연히 소리를 냈으니 생소한 환경에 예민해진 사람들은 나를 보았고, 그 중에 나보다 작은 어린아이가 입을 열었다.
“언니는 누구야?”
순간 ‘오빠라고 부르라고!’라며 소리칠뻔했으나, 빠른 상황판단이 내 입을 틀어막았다. 지금은 마리아에 의해 바뀌어진 모습이었지...
“나는...”
아오 제길...
“카린이야...”
인생은 썩었어...
“우아! 인형 같아!”
“살도 부드럽고~”
아니, 상황파악이 되지 않는 건가? 아까 전만해도 낯선 환경에서 두려워하고 있는 모습과는 달리, 내가 먼저 이름을 말하자 화목한 분위기로 변했다. 변화의 속도가 너무 빠른 나머지 제 3의 물결이 20초 안으로 당돌한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 서서히 누그러져가는 분위기를 다시 긴장이라는 이름으로 탄탄하게 조일 때다.
“지금 우리는 잡혀있는 거야. 너희들은 바로 도망가도 다시 붙잡을 거라서 방치해놓는 거고, 내 경우에는 최악의 위험분자라고 지칭하고 이런 족쇄를 만들어 놓은 거지.”
“그래? 언니는 이 족쇄에서 벗어나고 싶은 거네?”
“어? 어. 당연하지. 하지만 우리들의 힘만으로는 이 족쇄를...”
-뚜드득! 탱강!
......?
“자, 잠깐만? 지금 뭘 한 거야?”
“응? 잡아서 뜯었는데?”
지금 일어난 일을 내가 설명을 하자면, 나보다 작은 체구를 지닌 소녀가 족쇄를 바라보더니, 벗어나고 싶다고 말하길래 동의를 했지만, 안 될 거라고 말하려던 찰나에 작은 두 손으로 그 단단한 족쇄를 종이를 찢듯 시원하게 부셔버렸다. 저런 질문을 하지 않아도 되었으나,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서 자동으로 나와버린 멘트였다.
“잠깐만? 그럼 너는 초능력자야?”
“응! 나는 자동차도 들 수 있어!”
“저도...초능력자 인데요...”
그 외에 남은 3명도 고개를 끄덕이며 초능력자라고 간접적으로 밝혔다. 리제로트가 말한 인형이 설마 전부 초능력자라는 소리가 되는 건가? 계속해서 돌아가는 머릿속의 수레바퀴가 멈췄다.
“그러면 너희들은 어떻게 이곳에 온 거야?”
“기억이 안나.”
내 예상보다 좀 강하게 효과가 나타났나? 어찌되었든 이 5명과 함께 이곳에서 탈출하려면, 어떤 계획을 세워야만 하는 걸까? 우선 상황을 간략하게 설명하며 5명에게 진실을 전했다. 그리고...
“세뇌가 뭐야?”
“어...남을 조종하기 위한 준비단계라고 해야 하나?”
“남을 왜 조종해?”
“음. 자신이 편해지려고.”
“왜 편해지려고 해?
“그거야 움직이면 귀찮으니까.”
“왜 귀찮아?”
“그, 그건 자고 일어나면 피곤하고 지치고 그러잖아?”
“왜?”
“제발 그만 좀 물어봐 이 왜가리야...”
대략 이런 흐름으로 무한의 질문을 받아야 했다. 아무래도 지금 내 정신연령과 현재 내가 상대하고 있는 소녀들의 평균 정신연령에 차이를 극심하게 느끼고 있으니, 저들이 눈높이를 높일 수 없기에, 내가 눈높이를 낮췄다.
“그럼 숨바꼭질이라 생각하자. 너희들은 아까 자리에 가만히 서서 인형처럼 있는 거야.”
“인형? 인형놀이야?”
키가 나보다 살짝 큰 소녀가 눈을 크게 뜨면서 물었다. 그보다 10대 후반으로 보이는데 어째서 너는 그런 질문을 하는 거냐? 나는 분명 키가 작은 소녀에게 눈을 맞추며 이야기 하고 있었는데...
“그래. 단 가만히 무표정하게 있어야 해. 그리고 리제로트가 들어오게 된다면 그때부터 우리가 술래가 되면서 그 애를 잡는 거야. 그럼 나중에 내가 밖에서 사탕을 줄게.”
“응! 알았어!”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했고, 미끼를 물기만을 기다리도록 하자. 리제로트가 이곳에 왔을 때 놀란 모습을 생생하게 볼 수 있는 생각에, 마음속에선 웃음 꽃이 만개하여 가슴 한 가득 뒤덮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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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곤해서 손이 자동으로 쓰고 있는데...
보면 볼 수록 이게 대체 무슨 개판인지...
집 오면 평균 새벽 2시인 경우가 많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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