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 513
513
혹시나 300년 뒤에 살아있을 법한 후손을 만나러 가는 경우가 있다면, 준비해야 할 물품이 따로 있어야 할까? 기본적으로 그 기계는 부모님이 왔을 때 따로 호출하지 않고, 비밀리에 만나러 가는 왕족들이 사용하는 거라고 한다. 혹은 폴리모프 중인 드래곤이라던가...그런데 지금 폴리모프를 하고 있는 니드호그는, 나와 루시피나의 유전자로 반응해서 호출이 되어버렸으니, 유전적으로 보았을 때는 후손이 맞는 모양. 하프 드래곤이라도 성장속도는 빠르지만 수명은 일반인들보다 길기 때문에, 지금은 20대 중반의 외형으로 나를 매섭게 내려다 보고 있었다.
“흠? 이 인간이 내 아빠라고?”
“말이 안 되는 것 같지만 맞을 거야.”
내가 한 말에 니드호그는 피곤함을 무릅쓰고 고개를 다시 휘저어서 입을 열었다.
“아니. 의심하고 있다는 소리는 아니야. 그저 내가 봤을 때는 좀 더 어른스러운 면이 있었다고 해야 하나? 그리고 늘 아빠가 이야기를 하면서 언젠가는 과거의 내가 찾아 오니까 죽이지 말라는 말을 들었거든.”
“네가 얼마나 난폭했으면 그런 소리까지 했겠냐!”
미래의 내가 지금의 나를 배려하고 있었다니.
어떻게 보면 감동적이긴 하네. 루시피나는 홍옥 같은 두 눈을 반짝이면서, 니드호그 주변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관찰하고 있었다.
“신랑과 나의 아이라니...킁킁...체취도 같아! 이건 확실해!”
체취까지 맡을 수 있는 기이한 후각을 가진 루시피나가, 친자확인을 끝내고 니드호그를 끌어안았다. 매우 안정적인 모습을 지니고 있었지만, 니드호그는 여전히 다크서클이 무성한 눈으로 나만 바라보고 있었는데.
“왜 그래? 뭐라도 묻었어?”
“아니. 용돈이라도 주나 해서.”
“너는 선생일 하면서 돈 받고 있잖아!”
“하지만 백장미 모델인 아빠가 더 많이 벌거든.”
난 미래에도 백장미를 찍고 있냐?
그런 충격적인 미래는 알지 않아도 되는데, 먼저 절망적인 운명을 상기시켜줘서 고맙다고 해야 할지.
“그나저나 데이트를 하다니 정말 사이가 좋네. 당연히 상대적인 미래의 아빠와 엄마도 사이가 좋았지만, 지금은 둘 다 많이 바쁘거든.”
“어라? 내가 아직도 살아있어?”
“용족혼인의 문양의 비술은 인간의 수명을 늘리니까. 솔직히 인간이 시간이 지나면 죽는 이유가 노화 때문이잖아? 그러니까 인간의 노화를 방지만 해준다면, 수명은 계속해서 늘어나는 건 당연해. 불노불사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니까.”
기이하네. 용족혼인의 문양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하지만, 자신의 파트너를 컨트롤하기 위해 맺어놓는 것처럼 보였는데. 내 경우에는 정신방어가 너무 강해서 듣지도 않았지만, 결국 이 문양으로 내 수명은 한 없이 늘어나는 건가?
“그나저나 한가지 알아야 할 것이 있는데 도와줄 수 있어?”
니드호그가 루시피나를 살짝 떨어뜨려놓고 내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잔뜩 비장한 눈을 하며 나에게 다가오는 그 압박감이 얼마나 무서웠는지, 내 발이 자동으로 뒤를 걷기 시작했을 무렵, 뒤에 있던 쇼파에 걸려 앉아버렸다.
그때를 놓치지 않고 네메시스가 공중으로 뛰어오르기 시작하고...
“우음~이게 아빠의 무릎베개구나. 오랜만에 베니까 역시 마음이 편안해지네. 시간대가 다르긴 해도 이 편안함과 쾌적함은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지.”
얼마나 편안하게 있는지 니드호그의 다크서클이 줄어들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니드호그라는 이름은 누가 지은 걸까?
“저기, 니드호그라는 이름은 내가 지은 거야? 아니면 루시피나가?”
“지금 살아계시는 루체른 할아버지야. 손녀가 태어나자마자 차원을 찢고 나타나서 더 놀랐다고 했거든.”
앞으로 더 놀랄 일이 남았다는 건가?
“이거야...내 남자친구는 무릎베개를 못해서 잠을 제대로 못 잤는데, 아빠가 이렇게 있으니 잘 수 있겠어. 그러니 20분 뒤에 깨워줘, 점심시간이 끝나고 수업을 하러...가야...하니...쿨...”
설마 그 다크서클이 전부 무릎베개를 제대로 안 해준 남자친구 때문이라니, 그건 그렇고 남자친구가 제대로 있을 정도면 제대로 살고 있구나.
“우리 그러면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는 거야? 손주를 봐야 하는 시간대잖아?”
루시피나가 옆에서 니드호그가 자고 있는 얼굴을 바라보며, 크나큰 걱정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우리는 매일매일 신혼인 줄 알았는데, 언제 이렇게 할머니, 할아버지로...”
“상대적으로 보면 그 호칭이 맞을지도 모르죠. 그보다 그렇게 충격 받지는 마세요. 왜 울려고 하는 거에요?”
결국 내 손이 나가서 루시피나 볼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고서야, 훌쩍거리던 루시피나는 다음과 같이 입을 열었다.
“그래도 신랑과 제대로 이어졌다는 걸 확인했더니 안심이 된다고 해야 할까...미래의 나도 많이 힘낸 것처럼 보여서...훌쩍...”
아직까지는 최종단계로 성장하지 않은 루시피나가 겪기에는 의젓하게 지날 수 없는 감동이 밀려왔나 보다. 20분 뒤에 니드호그를 보내고 나서, 루시피나의 목표 중에 가장 우선시 되는 것을 달성한 모양인지, 그 다음에 무엇을 해야 할지 나에게 고르라고 했다.
“달 기지에 가봐야지. 카렌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알아야 하는 것도 있고, 달 토끼의 개체수가 왜 줄어들고 있는지도 알아야 하거든요”
“신랑. 그건 레인을 보냈다고 하지 않았어?”
“보냈으니 가봐야죠. 제대로 일은 처리하고 있는가에 대해서...”
불길한 생각이 돌고 돌았을 때, 루시피나의 마법진이 내 발 밑으로 퍼지기 시작하면서, 주변에 있는 환경을 바꾸기 시작했다. 공간이동을 하면서 좌표에 따라 익숙한 기계들이 보이기 시작했는데, 밝은 빛이 전부 꺼지고 나서야 고요함을 느끼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자동화 골렘들이 내 주변을 포위하고 있다는 사실만 빼면, 제대로 공간이동을 한 것 같아서 좋아해야 할 때이지만...
“식별. 식별. 잡화점의 주인으로 확인. 유전정보 일치.”
“너희는 이제 말까지 하니?”
“지정된 대답만 가능.”
“너희들의 관리자는 어디 있어?”
“지정된 대답만 가능.”
어디서 겪어본 패턴인데? 그래도 나를 적으로 인식하지 않는 걸 보니, 아직까지 내 정보가 이 안에 남아있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그러면 달 토끼들의 현 개체 수는?”
“현재 3개체 활성 중. 남은 6만 개체는 동면.”
동면? 남은 6만 개체의 달 토끼가 전부?
“거기 누구세요?”
뒤를 돌아보니 연분홍 빛의 토끼귀가 눈에 먼저 띄었다. 검은색제복으로 입고 있는 루나 플로니아가 나를 바라보자마자 반가움을 금치 못하고, 커다란 연녹색의 눈망울이 일렁임과 동시에 내 품으로 뛰어들었다.
“주인님! 보고 싶었어요! 으아아앙!”
울고 있는 루나를 달래기까지는 좀 시간을 할애했지만, 루나 하트와 루나 다이아는 플로니아 옆에서 계속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
“카렌은 어디에 있어?”
“카렌은 달을 떠나서 여행하고 있어요. 아마 80년째 계속 여행하고 있지만, 언제 돌아올지는 모르겠어요.”
“그래도 주인님은 이곳이 걱정이 되어 루시피나와 같이 찾아오신 거군요.”
루시피나에게 고개를 돌리는 루나의 말에, 루시피나는 웃음을 보이며 그 말에 긍정을 표했다.
“그전에 6만 개체를 동결한 의미가 뭐야? 혹시 다른 곳에 침략을 받았다거나, 아니면 몬스터의 아이돌로 살아가기 어려워서?”
나의 말을 들은 루나는 어두운 표정으로 입을 열기 시작했다.
“어린 루나들이 자꾸 납치가 되는 바람에, 어디로 끌려가는지 모르겠고, 로봇들을 보내서 조사를 해봐도 너무 감쪽같이 사라져요. 그 애들은 아직 그곳의 환경으로 살아가기에는 너무 여려요. 그래서 방금 전에 이곳에 찾아온 레인이라는 사람에게 부탁했어요. 그 사람이 또 다른 잡화점의 주인이 도와달라고 해서 보냈을 때야 말로, 주인님이 이곳으로 돌아왔다는 확신을 가졌으니. 일말의 희망을 가지고 이곳의 좌표를 개방한 거에요.”
그래서 루시피나의 마법이 통했던 건가? 하지만, 레인이 달이 오기 전까지만 해도 좌표를 개방하지 않았다면, 레인은 무슨 수로 달까지 도달한 거지? 아무리 사키엘의 문이라고 해도 달의 좌표를 개방하지 않으면 힘들 텐데?
“레인은 어떻게 왔길래? 네가 있는 위치까지 도달할 수 있는 거야? 좌표를 열어달라는 요청을 계속 한 거야?”
“아뇨. 잡화점이 이곳으로 떨어졌어요.”
그게 무슨 타디스냐?
잡화점은 애초에 움직일 수 없는 존재라고.
극대노해서 손과 발이 나오기 전까지만 빼면...
“잡화점이 달까지 날아왔다고?”
“네. 5층정도의 잡화점으로 보이는 건물이, 밑에는 로켓추진기 마냥 변형된 모습으로 이곳에 날아와서 충돌했어요. 고치느라 좀 고생했지만 재미있는 사람은 확실해요!”
멀쩡한 잡화점이 행성의 대기권을 뚫고 달까지 찾아온 게 재미있긴 하겠다. 그 전에 레인의 능력은 도구를 무기화 하는 거지만, 집 하나를 기이하게 바꿔놓을 줄은 상상도 못했는데.
“주인님은 이제 여기서 계속 사는 거에요?”
“아니. 나는 이 시간대에서 계속 사는 것이 아니라, 과거로 돌아가는 방법을 찾고 있는 거야.”
“흠. 그러면 상대적으로는 지금의 주인님은 과거라는 거네요?”
“그렇지. 미래지향적인 나는 이미 과거로 가서 숨어 살고 있는지, 무슨 일에 휘말렸는지 알 수 없어. 애초에 내가 이곳에만 나타나도 타임 패러독스는 밥 먹듯이 일어나지만, 이게 우연인지 장난인지는 몰라도, 시간의 파수꾼들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을 보아, 내가 이러고 대화하는 것은 필연적인 요소 같아.”
“시간이라는 것은 복잡하네요...”
시간이란 요소는 인간이 만들어낸 것뿐이다.
일의 경과에 따라 구분을 짓기 위해 나눈 것뿐.
실제 시간이라는 요소야 말로 다양하게 변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어쨌든 레인이 해결하러 갔으니 다행이지. 무슨 수로 해결을 하러 가겠데?”
그러자 루나가 난감한 표정으로 입을 열기 시작했다.
“그, 자신이 달 토끼가 되어 납치당할 테니, 흔적을 남기면 구하러 오라고 말했거든요.”
왜 이리 일을 위험하게 만드는 거야!
“잠깐만! 달 토끼가 되는 비약이 아직도 남아 있었어?”
“그야 여분을 준비하고 있었지요. 귀여운 달 토끼가 되어보는 것은 팬 서비스라서...”
“맙소사. 할 말이 안 나와서 지금 머릿속이 일하고 있으니까, 말이 완성되기까지 기다려봐.”
나와 레인의 성격상 나는 위험한 요소를 줄여서 천천히 일에 접근을 한다면, 레인은 목표를 빠르고 확실하게 해결하기 위해서, 위험한 일을 마다하지 않는 목숨이 아깝지 않는 녀석이었다.
같은 사람이면서 나는 목숨이 하나고, 저 녀석은 목숨이 4개가 되는 건 아닐 텐데.
게다가 내가 이곳에 올 것을 알고 미리 잡혀갈 테니 구해달라는 말까지 한걸 보아...
“루시피나. 지금 당장 내려가 봐야겠어요. 루나. 레인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어? 달 토끼가 되는 비약을 사용했다면, 그 위에서 알아낼 수 있을 거야. 어린 달 토끼들이 사라진 장소와, 레인이 지금 가고 있는 위치의 흔적이 일치하면 나에게 바로 연락해줘.”
“네? 하지만 연락할 수단이 없는데요?”
나는 품 안에 있던 안리아스의 수정구를 복사해서 루나에게 건네줬다.
“이러니까 옛날 생각이 나?”
양손으로 받던 루나의 토끼귀가 위아래로 흔들리기 시작하더니.
“당연하죠!”
기쁨인지 자신감인지 큰 목소리로 나에게 화답을 했다.
루시피나의 도움으로 다시 지상으로 내려가는 동안, 밝은 루나의 표정을 봤다는 사실이, 뒤늦게 기쁨으로 돌아오기 시작했을 무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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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화점을 로켓으로 변형시켜버린 레인...
당신은 도데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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