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 정신이 출타한 추석특집
Out Story – 달 토끼 전설! 루나링★
밤하늘에 떠 있는 저 달이야 말로 모든 이들을 위해 존재한다.
언제나 뒷모습을 보여주지 않지만,
밝은 면을 보여주며 모두의 기분을 가라앉게 만드는 힘.
이것이야 말로 진짜 보름달의 매력이 아닐까?
-콘서트 장에서 하늘을 바라보는 루나의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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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름달이 가장 큰 계절은 따로 있지만, 지금 이 가을이야 말로 어마어마한 달이 뜨기 시작한다. 이 일은 그리 좋은 일이 아닌데 달이 크면 클수록 몬스터들이 미쳐날 뛰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보름달마다 몬스터들의 뜨거운 에너지를 진정시켜주는…. 미소녀…. 아이돌…. 그러니까….
“제길! 내가 독백하면서 시공간에 빠져드는 말을 하다니 꿈에도 몰랐다! 왜 나에게 나레이터를 부탁한 거야? 본래 팔랑크스라던가, 하멀 씨에게 부탁하면 되는 일이잖아? 나보다 목소리가 굵고 멋진 인간들이 한 가득 쌓였는데!”
어마어마한 양의 대본뭉치들을 보다가 진저리가 나버린 나는, 내 인생 역사상 최악의 무리수를 눈 앞에 마주하고야 말았다. 아무래도 콘서트 초반부분에 내가 나레이터를 하면, 루나를 포함한 5명이 나와서 맞추는 것처럼 보였는데, 이 부분은 솔직히 내가 안 해도 되잖아?
“그래도 주인님밖에 없다고요? 달 토끼들이 백장미에게 밀려서 이런 일까지 할 줄을 누가 알았겠어요?”
연분홍 빛의 부드러운 실들이 뭉쳐있는 듯한 머리 위로는, 뾰족하고 긴 분홍빛 토끼귀가 솟아올랐다. 여전히 온 몸을 주체할 수 없이 화를 낼 때도 몸을 가만히 하지 않고, 작은 점프로 뿅뿅 튀어 오르는 모습. 그렁그렁이는 커다란 연녹색 빛의 눈망울을 보며, 밑으로 내리자마자 커다란 백장미에 여장을 한 남자가, 정해진 각도와 수치스러운 붉은 얼굴로 카메라를 노려봤다.
하긴 느닷없이 여장을 시키는 것도 모자라서 생크림으로 막 뿌려댔는데, 어느 누가 당당하게 일어설 수 있겠는가? 이런 상세한 사실까지 알고 있는 이유라면, 저 백장미는 내가 찍었으니까. 어처구니 없이 미소녀로 둔갑하듯 여장을 당해버린 카일. 그게 바로 나다.
“백장미 찍는 내가 잘못이지...”
한숨밖에 쉬어지지 않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과 몸을 가지고 있는 나는 시야를 돌렸다. 더 이상 저 앞에 있는 백장미를 본다면 찢고 싶은 충동이 일어나, 온 몸에 있는 마나들이 요동칠지도 모르고, 이곳은 루나의 거주지인 달 기지이기 때문에 괜한 소란은, 자동화 골렘과 더불어, 이 안에 있는 달 토끼들이 겁을 먹거나 환호를 하게 된다.
“다음 콘서트 때는 이걸 하겠다는 거야? 애초에 맨 끝에 ‘루나링★’이란 글을 보아, 공기화가 되는 마법의 주문 아닐까? 다른 곳에서는 투명화 마법을 사용할 때 외치는 말로는 목록<Index>이 아카…. 뭐시기가 있잖아.”
“그건 투명화가 아니라 공기화라는 거에요. 주인님. 좀 있어 보이는 말이라면 ‘승화’라는 단어를 쓰기도 하죠.”
“아니. 유식해 보이는 단어로 그걸 가져오지는 않잖아.”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는 둘째치고, 카렌은 등쪽에 검을 소지하면서도, 오른팔에 걸려있는 핸드백으로 화장품들을 가지고 다니고 있으니, 루나 옆을 따라다니면서 매니저 역할을 하나보다.
“카렌도 루나를 많이 따라다니느라 힘들겠네.”
“괜찮아요! 아버지!”
내 유전자로 태어난 호문쿨루스이지만, 머리카락과 눈동자 색은 청색으로, 뒷머리가 사방에 흩날리지 않도록 묶은 것처럼 보였는데, 중간부분과 끝부분을 한번씩 묶어서 깔끔했다.
“아버지께선 저에게 무릎베개만 해주시면 되니까요.”
“그 전에 루나에게 돈을 받고 살아.”
아이돌 스타의 옷과는 전혀 다른 평범한 느낌의, 분홍빛 가디건과 청바지. 그 안에 하얀 블라우스가 전부 다인가?
“아무리 편하다고 해도, 너도 이제 슬슬 꾸미고 다닐 때가 되지 않았니?”
“제가 꾸미고 다니는 것은 아버지와 데이트 할 때 말고는 없어요?”
“평상시에도 꾸미고 다니라고! 실제 호문쿨루스라서 2살정도 되었어도, 너의 신체와 정신적 나이는 이미 20세를 돌파했단 말이야!”
“그럴 거라면 아버지도 꾸미고 다니시죠?”
딸아이에게 말문이 막혀버린 21세 청년은 고뇌를 해야만 했다. 아무리 내가 말을 해도 듣지 않는 이 딸아이에 대해서 말이지!
“나도 나중에는 꾸미고 다닐 테니 너부터 꾸미고 다녀.”
“정말? 그럼 아버지 365일내내 여장을 하는 거야?”
“내가 왜 여장을 1년 내내 꾸미고 다녀야 하는데! 저주냐? 차라리 여자로 사는 게 더 좋겠…. 아니! 아냐! 더 나빠! 그 편도 나쁘긴 하지만, 여장도 하지 않을 거야.”
실제로 몇 개월간 살아본 기억이 있으니 말을 함부로 하면 안 되는 부분이었다. 남자가 느닷없이 멋대로 여자가 되는 건 나쁜 일이 아니나, 내가 여자로 변하면서 혹은 여장을 당하면서 잡화점 멤버에게 당해온 이력이 있으니, 지금도 한 곳에는 트라우마가 되어 내 정신을 갉아먹고 성장하고 있다.
“어쨌든 오늘 보름달에 해야 하는 이 일…. 정말 괜찮겠지? 몬스터들이 다 떠나거나 그런 거 말이야.”
“루나링의 팬은 루나링을 버리지 않아요!”
항상 자신감이 넘치는 루나는 양손에 주먹을 꼭 쥐었다.
그야 아이돌에게 눈이 멀거나 콩깍지가 씌워진다면 무엇이든지 예쁘고 재미있겠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번 계획은 조금이나마 태클을 걸어야만 했다.
“대마왕 기가데스라던지 이런 이름들 말이야. 좀 이상하다고? 넌 콘서트 첫무대부터 세상을 구한 용사가 되는 게 꿈이냐? 그리고 기가데스는 어떤 센스야? 1024메가단위로 죽음을 맞이하는 대마왕이야?”
“루나링의 이번 콘서트 컨셉이라면 달의 수호자라고요? 그래서 달 토끼 전설이라고 쓰는 거고요.”
“너는 전설의 리그에서 북두 백열권쓰는 모습을 보고 싶은 거냐? 청학동이란 차원에서 회초리 맞으면서 정신차리고 올래?”
“가끔 이런 것도 필요하다고요!”
아이돌 무대는 루나가 프로이기 때문에 내가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일반인이 보기에는 너무 심각할 거라 예상했다.
“플로니아는 놔두고 우리랑 놀면 안 돼?”
“이곳에도 달 토끼들은 많다고?”
“하트, 다이아. 너희들은 걱정이 안 되는 거냐?”
자신들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도 모르면서, 은백색의 달 토끼와 끝에 하얀색으로 탈색된 흑발의 달 토끼가, 각자 달의 수호복장을 입고 나타났다. 스커트 끝부분은 반투명하게 되어있는 것도 흠이고, 몸매를 다 드러낼 정도로 타이트한 상의도 무시무시했다. 게다가 장갑이 길어서 팔꿈치 바로 밑까지 덮었고, 스타킹인지 긴 양말인지 정체를 알 수 없는 것 또한, 무릎을 올라서고 있을 때였다.
“클로버와 스페이드가 불쌍하네. 물론 만난 적은 없지만 미리 애도를….”
“클로버와 스페이드는 오늘 다른 곳에 출장인데요?”
뜬금없는 소식에 내 속이 뒤집어지는 줄 알았다. 앞으로 8시간 뒤에 있는 행사잖아?
그럼 남은 두 자리는 비어버리잖아?
“그럼 이 두 자리는 누가 하는데?”
“그야 당연히 카렌 아가씨와 주인님이죠.”
또 다시 한번 뜬금없는 소식에 내 속이 뒤집히기 직전까지 갔다.
여장을 하지 않겠다고 내가 좀 전에 말하지 않았던가?
“아니, 생각을 해봐? 카렌은 그렇다고 쳐도 나는 남자야. 여장까지 하면서 이 일을 어떻게 하겠니? 상식적으로 생각을 해서….”
“헤에? 남자라서 못한다는 그런 편견은 어디에 있는 건가요?”
끈적하게 달라붙은 루나 하트가 내 입술을 가느다란 손가락 하나로 봉쇄했다. 그리고 귓가에 녹아 내리는 듯한 숨결과 함께 나온 단어가….
“할.수.있.죠♥”
“없어! 뭘 해! 나더러 소름 끼치는 이벤트에 참여하라고 하다니!”
“아잉~ 그러지 말고~”
“시끄러워!”
하트에게 소리지르면서 거절을 하고 있지만, 그 옆에서 보고 있던 은백색의 루나 다이아가 한마디 했다.
“만약 같이 이벤트에 동참하지 않는다면, 루니아 언니가 따로 백장미를 촬영한다고 하던데?”
진퇴양난이 바로 이런 것일까? 어느 누가 만들었는지 몰라도 뼈저리게 잘 느끼고 있으니, 안심하고 있어도 좋다는 말을 전해주고 싶었다. 그보다 루나 하트는 이성을 홀리고 다니는 캐릭터라면, 루나 다이아는 냉철하게 사고 판단을 한 뒤에 거침없이 팩트를 죽창처럼 찔러 넣는 캐릭터인가?
“죽창을 찔러 넣다니. 주인님은 음란하네요.”
“너의 뇌만큼은 음란하지 않으니까 조용히 있어봐.”
루나 하트가 내 독백을 또 읽은 듯했지만, 가뿐하게 무시하도록 하자. 지금 이 상황에서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라면, 도망을 치는 것이 정공법이지만, 상대는 내가 살고 있는 행성을 내려다보는 달 토끼와 루니아 누나라는 초인이다.
결국 카렌은 어린 달토끼들에게 이끌려서 루나 클로버로 분장을 하고 있는 동안, 아직까지 백장미를 찍는 것과 이런 한심한 이벤트에 참여하는 것 중에서, 어느 쪽이 덜 창피하고 기억나지 않을지 계산하고 있는 와중에, 또 다시 루나 하트가 내 뒤에서 팔을 걸어 목을 휘어 감기 시작했다.
“우리 조금이라도 더 좋게 생각하면 안 되요~? 나는 주인님과 멋진 추억을 만들고 싶은데~?”
“그거 단순히 내가 여장한 모습을 보고 싶을 뿐이잖아. 어째서 달까지 백장미가 퍼졌는지 모르겠지만, 루나 스페이드가 나오는 걸로 알고 있는 몬스터들에게도 실례야.”
“그거라면 걱정하지 마세요. 주인님. 여장을 할 필요는 없으니까요.”
연분홍 색 달 토끼. 루나 플로니아가 천천히 걸어와서 전단지 하나를 줬다.
“달의 연휴 특집. 달 토끼 전설! 루나링★ feat.카린?”
이 이름이 왜 여기서 나와…?
그럼 모든 게 계획된 일이잖아!
그보다 내가 예상한 상황보다 152%정도 더 악화되었어!
분노로 인해 거침없는 나의 오른손으로 플로니아의 귀를 잡아 늘리려고 했지만, 어마어마한 힘이 나의 움직임을 막고 있었다. 달 토끼들도 하나 같이 힘은 강한지, 내 목을 붙잡고 놔주질 않는 루나 하트와 더불어, 서늘하게 웃고 있는 루나 다이아가 작은 입술을 천천히 움직였으니….
“자. 우리와 하나가 되는 겁니다. 주인님. 어서 카린으로 변신해주시겠어요?”
“싫어! 너희들! 당장 안 풀어!”
게다가 카린은 내 의도대로 변신하는 것이 아니라, 반 강제로 변하는 거란 말이다!
“그보다 어떻게 하면 카린으로 변하시나요?”
“그걸 알려줄 리가 없잖아.”
“그럼 어쩔 수 없네요. 달의 기술을 이용해서 바꿀 수 밖에.”
자동화 골렘이 천천히 걸어오기 시작하더니, 기이한 액체가 뚝뚝 떨어지고 있는 바늘이 보이기 시작했다. 저게 무슨 약물인지는 모르겠지만, 공포로 다가오는 나의 표정을 즐기는 듯한 루나 다이아. 그리고 내가 저 약물을 맞고 어떻게 변할지 기대하는 루나 하트. 모든 것을 꾸미고 계획대로 진행되는 것에 따라 흐뭇하게 웃고 있는 플로니아에게 한마디는 해야만 했다.
“너희들 내가 깨어나면 정말 가만 안 둬! 그 놈의 토끼 귀를 다 뽑아버리든지 해야…. 큭!”
아직 말을 끝까지 못했는데.
목 부근에 따끔한 통증과 약물이 비좁은 혈관을 들어가면서, 의식은 점점 가라앉기 시작했다.
***
느닷없이 정신을 차렸을 때는 격리실로 보이는 장소였다. 어디 탈출할 장소도 없고, 밖에서 감시를 하는지 시선이 느껴지기도 했다.
인생은 새옹지마라고 했던가?
좋은 일이 있으면 나쁜 일이 있다고는 하지만, 오직 나에게 있어서 나쁜 일이었다. 전신 거울에 달 수호자 스페이드 복장이 입혀진 나의 모습. 짧고 검은 흑발은 여자로 변하면서 짙은 청색이지만 광택이 나는 듯한 머리카락. 누가 내 뒷머리에 거대한 리본으로 고정시켰는지 모르겠지만, 흑진주와 같이 부드럽고 깨끗한 흑안은 어이없음에 생기를 잃어가고 있었다.
“그보다 너무 짧아. 그리고 너무 꽉 끼고 있잖아.”
거울에 보고 있는 내 몸을 바이올린으로 만들려는 생각인지, 매끄러운 굴곡과 뽀얀 피부가 사방으로 노출되고 있었고, 스커트는 이제 짧은 것도 놀랍지 않았다. 그런 내 모습에 루나 하트는 감탄을 하는 듯했다.
“우아아…. 카린이에요! 카린!”
“쉿! 목소리 낮춰. 하트. 보기 드문 광경이라고!”
“그래도 다이아! 얼굴의 생김새와 스타일이 전부 달 토끼를 능가하잖아요? 우리도 저 모습으로 바꿔 달라하면 어때요?”
“하지만 저 독자적인 신비로움과 몽환적인 분위기는 따라 할 수 있는 달 토끼가 있을까?”
뒤에서 시끄럽게 떠드는 소리가 들리긴 하지만, 저 멀리서 소근거리는 소리가 너무 가깝게 들려서 탈이었다. 그 이유라면 내 머리 위에 있는 청색의 토끼 귀 때문일까?
“플로니아. 나에게 주사한 약물의 정체는 뭐야?”
그러자 스피커를 통해 내 귀를 어마어마하게 때리기 시작했다.
“그거야 말로 저희 달 기지의 신비의 영약! 달 토끼로 의태 할 수 있는 약이랍니다! 당연히 주인님의 경우에는 여성화가 진행되고 나서, 그 모습으로 변하는 것 같지만, 평상시에는 저의 외모와 비슷한 달 토끼로 의태가 되지요.”
저 말을 듣는 내내 토끼 귀가 반정도 접혀서 방음하려는 시도를 했지만, 철저하게 쓸모 없는 일이라는 경험을 했다.
“제길! 소리가 너무 커!”
“아직 주인님은 민감한 귀에 대해 적응이 필요할 거라 생각해요. 그보다 아이돌이니 ‘제길!’이라던가 남자다운 단어를 쓰면 안 되요? 소녀다운 단어를 사용해야 한다고요.”
“소녀다운 단어가 뭔데?”
“예를 들어서 길가다가 넘어지면 “아이고, 삭신이야….”라던가?”
“그게 뭐가 소녀다워! 그런 말은 보통 노인들께서 자주 쓰시잖아!”
소녀에서 단숨에 늙어버린 경우인가?
“우선 시간은 4시간밖에 남지 않았지만, 인트로에서 고생만 하시면 되기 때문에 빨리 대사를 외워주세요~”
분명 초반에는 나레이터로 끌려와서 닭살 돋는 말을 몇 마디만 해줬으면 되었으나, 지금 루나 스페이드의 대사를 보니, 죽은 사람이 자살을 할 정도였다.
“저기. 무슨 필살기 이름이 ‘스페이드 손톱 강화’ 같은 기이한 이름이야? 토끼가 손톱을 강화해서 맹수를 처단하는 일이 실제로 있어? 애가 사실 나무늘보였던 거야?”
“사소한 것은 넘어가세요. 주인님.”
결국 이 초기 이벤트의 시나리오라면, 맨 처음부터 마왕이 콘서트를 방해한다는 식으로 시작이 되어, 달의 수호자들이 멋지게 등장하고, 마왕에게 멋지게 맞으면서 위기에 봉착하다가, 가면을 쓴 미남에게…. 어떻게 가면을 쓴 그 사람이 미남이라는 걸 아는 거지? 어쨌든 기회를 만들어서 필살기를 사용하고 승리. 라는 개념이었다.
그 외에 엑스트라가 A부터 AZZ까지 있는 게 말이 되냐? 대본부터 뜯어고쳐줘라.
“이거 누가 쓴 거야? 그것 좀 물어보자.”
“아이니스가 쓴 거에요.”
“그 땅꼬마에게 대본을 왜 맡긴 거야!”
어쩐지 필살기의 이름부터 엑스트라의 말도 안 되는 숫자까지 터무니 없다 생각했는데, 루나는 이걸 검수도 안하고 그대로 낙찰한 건가?
“그나마 어린 소녀가 이렇게 썼다면, 그 환상을 가진 소녀들은 전부 통한다는 거잖아요?”
“관객은 몬스터야. 소녀 감성을 지닌 몬스터가 있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쇼를 진행하기 앞서서 소녀의 마음을 간직한 몬스터의 분포도부터 알아보고 와!”
오크가 떨어지는 낙엽을 보고 울 수 있다면, 고블린이 푸른 하늘을 올려다보며 미소를 지을 수 있는지부터 확인해보고 해야 할 거 아냐. 엉망진창인 대본을 보면서 대체 뭘 하라는지. 완전히 망했네….
“그냥 대본 안보고 망하길 기다려야 하나.”
“음. 그냥 전부 애드리브로 갈까요?”
“처음부터 제대로 하던가!”
스피커에서 나오고 있는 플로니아의 목소리는 한 없이 밝기만 했다. 검게 타 들어가기 시작한 내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리고 이 쇼는 최종적으로 네가 기획한 거잖아. 너도 출현하는 거고? 대충하면 안 된다는 생각은 안 들어?”
“그래서 어떤 상황에서도 대충하지 않도록 캐스팅을 해왔답니다? 대본을 전혀 안 봐도 그 분들 앞에서라면 자연스럽게 행동하고 대사를 내뱉게 될 거에요.”
캐스팅을 했다니? 이런 쓸 때 없는 일을 한다는 사람이 더 나왔다고? 게다가 캐스팅이면 뽑는 거 아냐? 대체 누가 뽑힌 거야? 가위바위보에서 이기기라도 했나? 커다란 소리와 함께 격리실 문이 열리면서, 그 앞에는 루나 하트와 루나 다이아가….
“카린이다!”
“와아-“
미사일처럼 나에게 날아와 안겼다. 무엇보다 카린을 알고 있는 것이 더 신기할 따름이지만, 무엇보다 그녀들 손에는 이상한 대본이 들려있지 않았다.
“대본은 다 본 거야? 그보다 얼굴을 너무 많이 비비는 거 아냐?”
하트와 내 볼의 마찰열을 합친다면 불을 피울 수 있지 않을까에 대한 생각은 잠시 접어두고, 카렌마저 루나 클로버 의상을 입고 찾아왔는데. 옷의 바탕이 되는 색상과 문양이 구문을 할 수 있게 도와줬다. 루나 하트의 경우에는 빨간색 바탕에 하트 문양이 상의 가운데에 있었으니까. 노골적으로 한 곳에 시선을 집중시키려는 설계에 한숨만 나왔지만, 나의 경우는 짙은 청색에 스페이드, 루나 다이아의 경우에는 은백색에 다이아 문양, 카렌의 경우에는 녹색의 클로버 문양이었다.
그 외에 다른 바탕색이라면 검은색으로 이루어졌다고 해야 할까?
“루나 레인져인가…. 가면 갈수록 태산이네.”
생각하면 할수록 더 하기 싫어지는 일이 이곳에 있었으니, 지금이라도 도망가면 되지 않을까?
“그보다. 어머니는 언제나 위화감 없이 잘 어울리네요?”
문 밖에 있던 카렌이 부럽다는 듯이 보고 있지만 하나도 기쁘지 않았다. 그리고 대망의 루나 플로니아는 분홍색에 토끼가 그려진 아이콘을 보았는데, 유난히 돋보이게 검은색과 더불어 하늘색 파스텔 톤까지 섞여있는 옷.
“자. 그러면 리허설 없이 한번 가볼까요?”
“너희는 왜 리허설을 안하고 바로 뛰는 건데? 적어도 리허설 할 시간은 있잖아?”
“음, 그러면 리허설 한번 할까요?”
그나마 안도의 한숨을 내쉰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리허설을 하겠다고 하면서 리모컨을 들은 루나가, 버튼 하나를 누르자 격리실인 줄만 알았던 이 방이, 넓은 무대로 변하기 시작했다.
“잡화점에도 시뮬레이션을 위한 방이 있지만, 그건 전투모의연습이잖아요? 제 경우에는 무대를 위한 모의연습을 하기 위해, 이렇게 꾸밀 수도 있답니다.”
간단한 설명을 하면서도 믿겨지지 않는 것은, 공간과 모든 질감이 현실과 똑같기 때문이다. 지금 밟고 있는 땅의 질감도 현저하게 다른데, 관객들의 열기까지 생생하게 표현해서 나도 모르게 기분이 붕 뜨기 시작했다.
“저, 저기? 잠깐만….”
도무지 버틸 수 없는 실전의 압박감 속에서 나는 정지요청을 했는데….
“나, 나는 이런 거 제대로 해본 적이 없어. 지금 이 상황도 긴장되는데 실전을 어떻게 해?”
“주인님이 그런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을 하니 감회가 새롭네요?”
“내 말에 신경을 쓰라고! 나에게 신경을 쓰지 말고!”
기왕이면 한다고 했을 때 제대로 하고 싶다는 마음이 순간적으로 겁먹게 한 결과. 하지만, 루나는 그러는 편이 더 귀엽다는 듯 내 머리를 쓰다듬기 시작했다.
“이렇게 쓰다듬고 보니 주인님도 꽤나 귀여우시네요?”
“시끄러워.”
“치사해~ 나도 쓰다듬을래~”
“그럼 저도.”
그만 쓰다듬어.
내가 소원을 빌어주는 수정구냐?
결국 리허설 연습으로는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되어가고 있을 때. 놀라울 정도로 플롯대로 진행하고 있었다. 다만, 필살기라던가 미흡한 부분은 수정을 하면서, 계속해서 진행을 했고, 그럭저럭 재미있을 법한 모습으로 끝을 맺게 되면서, 체력을 전부 앗아감에도 불구하고 루나 플로니아는 노래를 준비하고 있었다.
“너는 대단하네. 그렇게 힘든 일을 했음에도 춤과 노래를 할 수 있다니.”
“그거야 익숙해지면 가능하죠. 주인님은 전투에 익숙해졌으니 전투에서의 지속력이 높은 것은 체력뿐만이 아니잖아요?”
전투의 경우에는 싸움을 지속할 수 있는 체력과 동시에, 쓸 때 없는 동작을 줄여서 체력낭비를 줄이는 움직임을 노하우로 배우기에, 어느 정도 오랫동안 전투를 한다면, 루나의 경우에는 매번 힘차게 움직이고 노래를 부르기에, 솔직히 체력만으로는 안 되는 부분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움직일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네가 움직일 수 있는 원동력은 팬들이야?”
“당연하죠! 저는 몬스터들의 관심과 사랑 속에서 움직일 수 있다고요? 아무리 힘들고 지치더라도 사람들을 생각하면 힘이 나요!”
기특한 소리를 들으니 나도 모르게 미소를 그려버렸다. 루나는 내 얼굴을 보고 눈이 서서히 커지더니, “방금 전에 그 미소! 정말 예뻤어요!”라고 말하기 전까지 알아차리지 못했다. 다시 미소를 지우고 다른 곳을 바라보는 동안, 루나가 웃어달라는 요청을 얼마나 했는지 잊을 정도로 많이 요구했으나, 실전을 뛰기 전에 걱정거리가 있었는데….
“그러고 보니, 이번 잡화점은 누가?”
“팔랑크스가 한다고 했어요. 어머니.”
뒤에서 카렌이 찾아와 내 왼쪽에 앉으면서 기대기 시작했다. 왠지 모를 온기가 왼쪽 어깨에서 전해지고 있지만….
“어머니라는 소리를 들으니 인생을 살아갈 희망이 없구나.”
본래 나는 남자이니까.
고개에 힘이 없어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부러울 때가 많아요. 본래 남자인데 여자로 변하면 전부 이렇게 미녀가 되는 걸까요?”
순진한 의구심이 들었는지 카렌이 말한 질문에 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답했다.
“그건 아닐 거야. 아직까지는 잘 모르겠지만 모든 남자를 전부 여성화시켜야 알 수 있는 통계니까. 게다가 그런 일은 우주가 15번정도 무너져도 불가능한 일이고.”
“그러면 어머니가 특별한 걸까요?”
“그런 특별함은 필요 없어.”
정말 버리고 싶은 특별함이다.
“그러면 이제 실전을 위해 준비를 해야 하니까, 다시 메이크업도 하고 대본도 완벽하게 외우도록 하죠~”
루나 하트가 뒤에서 진흙과 같이 끈적이는 목소리를 냈다. 그래도 함께 모여서 이런 걸 한다는 것이 즐거운 일이 될 수 있다니. 함께 고생하고 그에 만족하는 결과물이 나온다는 것을 알려준 루나에게 감사하도록 할까?
***
방금 전까지 감사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내가 생각해도 그 말은 후회가 한 가득 남을 말 중 하나였다. 왜냐하면…….
“크흐흣! 짐 레프리시…아니, 이게 아니라. 기가데스를 빼놓고 연회를 즐기려고 하다니! 너희들은 모두 몰살이니라! 하하핫!”
“왜 대마왕 역할에 진짜 마왕을 집어넣었냐!”
무대 뒷편에서 연보라 빛의 마왕이, 날카로운 붉은 눈으로 이리저리 휘둘러보면서, 모든 몬스터들의 무릎을 꿇게 만들고 있었다. 이 상황에 대해 모르는 몬스터들은 정말 마왕이 화가 난 줄 알고, 잔뜩 겁을 먹고 있었으니 말이다. 레시아를 말할 것 같으면 언제나 예외성이 너무 높아서, 어디로 튀어나갈지 모르는 마왕 중 하나다. 검은 드레스를 입고 손짓을 한번 휘두를 때마다, 몇만이나 되는 몬스터들의 고개가 움찔거리고 있으니, 지금 당장이라고 뜯어 말리러 가고 싶으나, 루나 하트와 루나 다이아가 내 팔을 붙잡고 있었다.
“언제나 쇼를 위해 준비를 기다리는 거라고요~? 히어로는 원래 늦는 법이니 조금만 참으세요~”
“루나 스페이드. 지금은 참아.”
“너희들은 지금부터 상황극에 돌입한 거야?”
이해가 안가도 어쩔 수 없나.
“짐을 막을 자는 없노라! 그러니 이번 콘서트는 짐의 이름으로 폐쇄를…….”
“멈춰라!”
모두 같이 멈추라는 말을 했고 공중에서 내려오는 밧줄을 붙잡고 내려오는 것부터 시작한다. 아이돌이라면 밑에서 올라오거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멋진 포즈로 등장하는 것이 맞겠지만, 지금은 밧줄을 붙잡고 빙글빙글 내려오면서 곡예를 펼치고 있….
“케윽! 켁켁! 콜록!”
“다이아? 너는 왜 교수형을 당하고 있는 거니?”
모두가 내려온 시점에서 루나 다이아 혼자 몸을 부들부들 떨고, 목에 있는 밧줄이 풀리지 않아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시점이었다. 마법화살<Magic Arrow>을 쏘아서 밧줄을 풀어주고, 카렌이 받아주는 식으로 달 토끼가 자살토끼로 변하는 걸 막았을 무렵.
“어라? 주인? 거기서 뭐 하는 것인가? 게다가 항마의 축복의 부작용도 없을 터인데?”
“레시아야 말로 뭐하고 있는 거에요?”
“짐은 레시아가 아니다! 대마왕 기가데스이니라!”
“그럼 저도 지금부터 주인이 아니에요. 루나 스페이드지….”
그런 말을 내뱉자마자 레시아의 눈빛이 변하기 시작했다. 등골이 한 순간에 서늘해져서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 사이에 나의 턱을 붙잡은 레시아가 흥미진진한 붉은 눈으로 보고 있었으니까.
“그런가? 루나링에게 이런 귀찮은 일을 떠맡으면서 대충하고 가려고 했는데, 진심을 다해 할지도 모르겠노라.”
“진심을 보이지맛!”
무의식적으로 휘두른 손은 보호에 의해서 휘둘렀지만, 그 짧은 사이에도 저 뒤로 순간이동을 한 레시아를 바라보며……지금은 기가데스라고 불러야 하나? 애매하구나.
“그렇군. 거래를 하도록 할까?”
“거래?”
루나 플로니아가 과장한 포즈와 목소리로 레시아와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짐에게 루나 스페이드를 넘기거라. 그리하면 이번 연회를 허락해주도록 하지.”
애초에 이런 전개라면 “흥! 루나 스페이드는 우리들의 동료다! 악의 손아귀에 넘겨줄까 보냐!”라는 듯한 대사가 정공법이다. 나는 그걸 믿
“좋다!”
“야! 너희! 동료 아니냐!”
……고 있었던 게 바보지.
흔쾌히 승낙하는 루나의 대답을 듣고 태클을 거는 동안, 몬스터들은 연회를 좀 더 오래 즐기기 위해서 “넘겨라! 넘겨라!”라는 합창을 내지르고 있었다. 결국 이 녀석들은 원하는 게 뭐야? 루나를 보기 위해 동료 하나를 소모하는 건 일도 아니더냐?
결국 대본에도 없는 애드리브를 머릿속에서 미친 듯이 생성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달의 수호자잖아! 그 동료를 넘길 셈이야? 5명이서 하나가 되는 그런 존재가 아니었냐고!”
어떤 영웅이 자신들의 동료가 버리려고 하는 것을 멈추기 위해 설득할지.
“그러네. 음, 그럼 지나가는 미남가면을 5명으로 채울까요?”
“미남가면을 채우면 안 되지!”
그보다 미남가면으로 때울 생각이야?
“그래도 지금은 오히려 마왕님께 넘기는 걸로 이익이 많이 나오는 걸.”
“다이아. 그 주판 당장 내려놓지 않으면 부셔버린다.”
수치상으로 이익을 점하려고 하고 있잖아?
-찰칵! 찰칵!
어디서 셔터가 터지고 있는지 불빛이 반짝이고 있었는데….
“오오! 카린! 너무 예뻐요오~ 마왕님! 꼭 스페이드를 타락시켜주세요오.”
루니아 누나가 저 멀리서 엄청난 움직임으로 찍어대고 있었다. 그보다 마왕에게 타락시키라는 요청을 왜 하는 거야. 진짜 잡화점으로 돌아가면 모두 설교 1시간씩 해야겠어.
“크흐흣. 아무래도 승부는 난 것 같군 스페이드.”
어느새 나 혼자만의 싸움이 되어버린 마왕토벌 이벤트에서, 정신을 차리고 지금부터 대본에도 없었던 실전 애드리브를 하기 위해, 마나를 끌어 올리기 시작하자 짙은 바다 빛의 마나가 지면에서 상승하기 시작했다.
“어느 사이에 내 동료를 세뇌했는지 모르겠지만, 지금부터 동료를 받아가도록 하겠어.”
그러니까 설정상 마왕이 달의 수호자들을 타락시키고 세뇌해서 내 적이 되었고, 나만 유일하게 정상적인 사고가 가능하다는 설정으로 대본을 수정하기 시작했다. 그런 말을 내배자마자….
“들켰군. 모두 마왕님을 보호해라!”
루나 플로니아의 빠른 움직임을 시작으로, 카렌까지 전부 레시아 옆에 서서 전투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지금 남들에게 있어선 연기라고 생각하고 있겠지만, 나는 정말 화나고 있는 얼굴로 내 앞에 있는 사람들을 바라봤으니.
“어째서 대본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건데!”
“인생은 대본대로 흘러가지 않기 때문이니라.”
보통 대본이 존재하는 이유라면, 그 틀에서 작품을 표현하기 위함이 아닐까? 하지만 레시아는 내 질문에 인생을 담아 이야기를 한 것처럼 보였다. 그 말을 듣고 나도 모르게 이를 갈았는지, 내 마이크를 통해 ‘으드득!’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어라? 주인? 주인은 지금 정의의 편이니라. 오히려 위기를 봉착해야 하는 것은 주인인 편이?”
“닥쳐! 지금 당장이라도 이 회장을 전부 날려버리기 전에!”
레시아가 나를 뜯어말렸지만 분노로 일그러진 자아는, 오히려 악당이 되어가고 있는 모습이었다.
“어…그래! 드, 드디어 본색을 드러냈구나! 기가데스!”
루나 다이아가 외친 소리에 레시아의 동공이 잠깐 흔들리기 시작했다. 분명 자신이 맡은 배역은 대마왕 기가데스였지만, 나에게 지금 기가데스라고 말하고 있으니, 정체성에 혼란이 오게 된 것인데. 루나 하트가 한술 더 떠서 레시아의 머리를 혼란 시켰다.
“루나 스페이드! 지금이야 말로 늦지 않았어! 세뇌에서 풀려나!”
“자, 잠깐만? 짐은…….”
“맞아요! 스페이드! 어서 달의 수호자로 각성하세요!”
“뭐, 뭐가 어떻게 된 것이냐? 주인?”
뭐긴 뭐겠어. 느닷없이 악역과 선역의 위치가 변경된 거지. 이상하다. 분명 내가 3번째로 마왕의 필살기를 맞아서 쓰러져야 할 타이밍에, 내가 마왕이 되어있었으니까.
어쨌든 레시아는 무슨 일인지 이해하기도 전에 달의 수호자가 되어버렸고, 대마왕이 되어버린 나는 무슨 일을 해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
“지금부터 이 콘서트 장에 불을 끄겠다!”
대마왕치고는 정말 할일 없는 것 같은 공격이지만…….
“안 돼! 나의 루나링이!”
“이 날을 위해 직장도 때려 쳤는데! 그만둬! 이 악마야!”
“이렇게 될 바에 내가 불을 뿜어서라도 밝혀주겠어!”
전부 격렬한 반응을 보이기 시작하면서, 어느 정도 몰입한 듯한 모습을 보였다.
“이 악마! 콘서트장의 불을 끄려고 하다니! 제정신인 건가!”
“레시아……아니, 스페이드가 말하니까 뭔가 잘 안 맞네요.”
그보다 마왕이 나더러 악마라고 할 정도라니.
레시아는 완벽히 루나 스페이드로 정착했으니, 지금의 경우에는 설정을 완전히 뜯어고쳤지만, 그나마 자연스럽게 흐르는 부분인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팬들이 소리를 질러준다면 기가데스가 꺼버린 조명을 켤 수가 있어!”
루나 플로니아가 이 말을 하자마자 관객들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모두 다 같이! 루나링★”
“““루나링!!!”””
소리가 너무 커서 내 토끼 귀를 붙잡고 흔드는 것과 같은 충격이었다. 소리가 너무 커서 귀가 아픈 건 둘째치고 속이 울렁거리려고 해. 어쨌든 조명이 천천히 밝아지기 시작하면서 다시 이곳 저곳에 환호성을 일으키기 시작했지만. 나는 마나를 끌어올려서 또 다른 마법을 준비했다.
“이렇게 된 이상! 모두 없애주겠어!”
단순히 마법의 바람이 퍼지면서 레시아를 제외하고는 눈치껏 “꺄악!”하고 쓰러졌지만, 레시아만 멀뚱멀뚱하게 나만 바라보면서 입을 열었다.
“아, 짐도 쓰러져야 하는 건가?”
그걸 이제서야 깨달은 걸까?
“연출이니까요. 쓰러져야죠…….”
“아. 그렇군. 그럼……으아아.“
너무 성의 없는 목소리로 쓰러지잖아.
“아이고 아프다. 뒷목이 나간 것 같노라. 위생병. 위생병을 부르거라.”
“그런 애드리브는 안 넣어도 돼요!”
마차끼리 추돌사고 나서 뒷목잡고 눕는 아저씨들도 아니고…. 그 전에 목뼈가 나가면 생명이 위험하잖아. 어쨌든 클라이맥스에 다 왔을 무렵 내 앞으로 빛의 창 하나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잠깐? 빛의 창?
-콰지직!
“무슨! 누구 죽일 셈이야!”
“어라? 마스터? 우연이군요. 지금은 기가데스라고 불러야 할까요?”
“미남가면…아니! 시나! 왜 네가 미남가면이 된 거야!”
“가면의 외모가 미남일 뿐입니다. 사실 안에 있는 것은 귀여운 미소녀였다는 것이 반전 포인트였는데 어떻습니까? 놀랍지 않습니까?”
이미 설정은 모두 다 박살이 난 상태로 백은의 눈동자로 날 바라보는 시나는, 사무적인 얼굴로 눈보다 흰 머리카락을 옆으로 쓸어 내리기 시작했다. 어린 소녀가 가면을 쓰고 있는 것은 어떤 남자 사진을 그대로 오려서 붙인듯한 기분이 들었는데?
“어쨌든 마스터는 마법진에 들어왔으니 움직이지 못하실 겁니다.”
“그거 연출이잖아. 그리고 빛의 창을 이런 곳에 던지는 건……어라?”
모, 몸이?
“모, 몸이 안 움직여! 바보 같은!”
“짐이 움직임을 멈췄다.”
“시나가 멈춘 거겠지!”
어디서 기묘한 패러디를 하려고!
“어떤가 주인? 짐이 이렇게 다가오는데 움직일 수 없어서, 도망치지도 못하고 직면해야 하는 그 기분은?”
“크윽! 무슨 짓을 할 생각이야!”
“지금부터! 주인을 이 콘서트 장에서 지우는데 1초도 쓰지 않겠다!”
“지우는 건 잘 모르겠다만, 지금 저는 기가데스라고요!”
제발 캐릭터는 지켜줬으면 좋겠어.
결국 대마왕 기가데스로 낙인을 찍힌 나는, 달 수호자들의 필살기였던 문 스트라이크를 직격으로 맞고, 콘서트 장에서 사라지듯이 시공간이동을 했다. 문 스트라이크라고 한다면 마법의 바람이 살짝 나와서 연출만 준 것뿐이었지, 별 다른 피해는 없이 끝났었지만, 시공간이동을 할 때 무의식적으로 잡화점에 이동했나 보다.
“원래 내가 정의의 편인데…….”
이렇게 생각을 하자니 눈에서 알 수 없는 설움과 억울함으로 빚어진 눈물이 만들어졌다. 가슴이 먹먹해지고 코 끝이 찡해지면서 지금에 와서 울어본 적도 없지만, 지금은 훌쩍거리고 있는 내 모습을 우연히 옆에 걸려있는 거울을 통해 보고 있었는데.
“신랑. 고생 많았어.”
여전히 앞치마를 하면서 밝은 얼굴로 나를 반겨주는, 레드 드래곤 일족의 폴리모프 다운, 붉은 머리카락은 요리를 위해 포니테일로 묶여있었고, 포근한 눈웃음으로 나를 맞이했으나, 내 기분은 여전히 늪지대마냥 알 수 없는 억울함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었다.
나는 말 없이 루시피나를 끌어 안고 마음이 진정되기까지 기다렸지만, 루시피나는 오히려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면서 내 눈에 눈물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나를 달래주느라 바쁜 와중에도 시간을 써준 루시피나에게 고마움을 느끼면서도 울기 시작했고, 정신차려보니 울다 지쳐서 잠이 들은 모양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정말 바보 같은 이유로 울었다.
그럼에도 보름달은 나를 비추기 시작하면서,
토끼들의 연회는 끝날 줄 모르는지, 이곳까지 몬스터들의 함성이 들리는 듯 했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마왕님은 왜 신랑을 따돌린 거에요! 그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제가 분명 대본을 읽고 가라고 했죠!”
“아니, 루시피나. 짐은 그저…….”
“시끄러워요! 신랑이 얼마나 괴로웠으면 3시간이나 울다가 지쳐서 쓰러지겠어요! 공개적으로 신랑이 맡은 배역을 꼭 뺏어야만 만족했던 거에요?”
“그, 그게 분위기를 너무 탔다고 해야 하나…….”
“뭐라고요?”
“아, 아니다. 짐이 잘못했노라.”
거의 폭주하다시피 화를 내고 있는 루시피나에게, 혼나고 있는 레시아와 무릎을 꿇고 있는 어두운 기색을 하고 있는 시나와 카렌이 보이면서 나는 살며시 방문을 닫아 엿보는 걸 그만두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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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보름달이 나온다고 해서 쓰게 되었습니다만...
생각을 안하고 쓰다보니 이런 것들이 나와버렸습니다.
아무래도,
추석연휴를 보내고 있는 분들에게 작은 외전을 쓰고 싶은 마음만 앞선 것 같습니다.
진짜 이게 어떻게 써진건지 저도 잘 모르겠는데...
카일이 300년 뒤로 넘어가서 무난하게 살고 있는 듯 하여,
기이한 방법으로 굴려보았습니다.
모두 추석 잘 지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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