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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기적인 여장이 끝나고 난지 2시간정도가 흐른 뒤였다. 잡화점은 장사를 해야 하니까 비울 수 없다는 것은, 사건을 해결하는 것에 방해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는 부정적인 사고를 잡화점에게 쏟아 부어버렸다.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 자신을 달래봐도, 지금 이 순간에 할 수 있는 일이 많을 것이다.

 

적어도 가위바위보에 져서 하늘로 날아오르는 일보다 더 좋은 그 무언가...

 

-파지직!

 

내 밑에 책상이라도 있었는지 몸을 받아내지 못하고, 연약하게 부러져버린 나무의 잔재들이 주변 넓게 퍼졌다. 여전히 승률은 0%정도를 기록하고 있는데, 과거로 가서 어린 레시아에게 가위바위보를 이겼던 것을 생각하면 정확하게 0%는 아니지만, 1%가 안 될 정도로 승률이 처참하다.

 

주인은 여전히 가위바위보를 잘 못하는군. 지금쯤이라면 벌써 수천, 수만 번의 목숨이 날아갔으리라 생각하노라.”

 

분명 1/3확률로 이기고, 지고, 비기는 것이 가능한 놀이에서, 이기는 것은 전혀 없고 지고 비긴 것만 있는지 나도 의문. 그보다, 내가 1년동안 레시아에게 무슨 사기라도 당하고 사는 게 아닌지 의심이 갈 정도였다. 아무튼 모두가 자고 레시아가 내 옆을 지키고 있는 사이에, 마왕이라서 잠을 적게 자도 된다고 하지만, 잡화점에서는 항상 눈을 감고 자는 듯한 검은 고양이의 목소리가, 졸리지도 않는지 생생하게 내 귀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주인은 왜 시간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지 잘 모르겠다. 짐이라면 잡화점을 뜯어고쳐서라도, 이 바보 같은 차원을 벗어나는 길을 물색했을 터인데, 주인은 이곳에서 벗어나는 것을 꺼리는 것인가?”

 

차원이동에 대해서 레시아가 너무 낙관적으로 보는 거 아니에요? 다른 장소로 가서 자원이 있다고 한들, 이곳처럼 마법이 발달되어있는 장소가 아닐지도 모르고, 이곳과 비슷한 곳이 아니라 전혀 맞지 않는 환경이라면, 거대한 중량에 못 이겨서 짓눌려버리거나, 원인도 모르는 병에 걸려서 죽어버리거나, 자기장이 너무 강하거나 약해서 몸에 이상현상이 올 수 있다고요?”

 

짐은 마왕이니 괜찮다.”

 

기본적으로 저부터 생각하고 발언하면 안 될까요?”

 

레시아도 이곳이 그리 싫지는 않을 것이다. 여기처럼 마왕의 입장이 옅고 인간과 함께 공존하기 위해 노력하고 결과를 얻어낸 장소도 많지 않으니까. 이곳이 살기 좋은 이유라면, 어처구니 없게도 내 앞에 있는 검은 고양이가 만들어낸 업적이다. 사실상 인간들은 마물에 대해 부정적인 틀로만 보고, 천계와 마계는 오래 전부터 싸워왔으니 인간이 천계의 편에 붙는 걸 기회로, 마족을 모조리 몰아낼 생각을 했으니까.

 

내가 모르는 시간 속에서 레시아가 얼마나 많은 노력과 결정으로...당연히 그 방법이 좀 날로 먹는 방법이긴 했지만, 어쨌든 공존을 이루어낸 결과물을 모조리 버리고, 이 땅에서 벗어나 새로운 땅을 찾아본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당연히 병적인 이유라던가 환경적인 면에서는 마리아가 비슷한 차원을 몇 개 알고 있다고 하니, 그곳으로 날아가도 상관은 없지만, 한 때 레프리시아의 선생님으로서 조금 더 노력을 하고 발상의 전환을 겪게 해주고 싶었다.

 

조금이라도 더 생각을 좀 하죠. 시간을 없애도 시간을 찾으면 그만이잖아요?”

 

없어진 시간을 어떻게 찾는가? 주인은 언제나 이상한 말을 한다. 나중에는 이상한 양이 되는 것이 아닌가?”

 

거기서 대체 왜 양이 나오는...아니. 진짜! 정말로! 재미없으니까! 제발 좀 그 바보 같은 말장난 그만해요!”

 

대체 누구에게 배워온 거냐.

누군지 몰라도 그 쓸 때 없는 말을 알려준 녀석의 혀부터 뽑아야지.

 

그래서 주인은 방법이라도 있는 건가? 없지 않는가? 이곳은 결국 멸망하기 마련이니 다른 곳으로 가는 것이 좋다.”

 

레시아의 선생님은 불가능한 문제가 있으면 포기하고 다른 곳으로 도망가라고 하던가요? 어떻게 마왕이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정말 웃기네요?”

 

나도 모르게 이런 말을 해버렸다.

뭐라고 해야 할까? 비아냥거리는 태도와 이미 모든 게 다 끝났으니, 뒤집어 엎어버리자는 모습을 보아하니 욱해서 나왔는데...

 

주인. 선생에 대해서 거론하지 말거라.”

 

정말 어처구니 없지 않아요? 아니면 레시아를 가르친 선생님의 교육방식이 잘못 됐거...”

 

-파아악!

 

내가 나를 욕하는 것도 웃겼지만, 레시아의 발톱이 내 옆에 있는 벽을 잘라버리면서, 어마어마한 살기를 뿜어냈다. 나를 거의 죽일뻔한 어릿광대를 처음 마주했을 때, 이 모든 것을 다 날려 버릴만한 양이 그대로 나에게 직격코스로 날아오고 있었는데, 사실상 지금까지 용사 중에 단 1명만 레시아 앞에 서 있는 이유를 알게 된 순간이다.

 

선생에 대해서 거론하지 말지어다.”

 

나도 모르게 침을 꿀꺽하고 삼켰다. 지금까지 보여줬던 어떠한 분노보다 지금 것이 가장 컸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시아는 화만 낼 줄 아는 검은 고양이가 아니라, 남의 생각까지 고려할 줄 아는 이상한 마왕이다.

 

주인이 더 이상 짐의 선생을 모욕하지 않는다면, 짐도 주인의 생각에 맞춰서 불가능할 법한 시간을 원래대로 돌려놓는 법을 생각하도록 하지. 생각을 하면 할수록 이곳을 그냥 버리기에는 너무 아까운 곳이니라. 대부분 마물과 인간은 전쟁을 해야 하니 말이다. 기껏 찾아온 평화로운 삶을 부수는 것은 주인이 싫어하는 것인지 않는가?”

 

그래도 냉정하게 거기까지 생각해주니 감사할 따름이네요. 저도 레시아의 선생님을 모욕하지 않도록 하죠.”

 

순순히 인정할 것은 인정했다. 그러자 레시아는 언제 화를 냈냐는 듯이 작은 앞발을 핥았다. 그 전에 자학을 하는 것은 내 스스로가 그만둬야 할 항목 중에 하나이기에, 계속해서 말한다면 어느 순간 자괴감이 들어서 인생살기 싫어지지.

 

그런데 주인은 이런 일을 어째서 짐과 같이 해결하려고 하는가? 루시피나와 루니아, 마리아도 있노라. 오히려 시공간마법에 관련된 것은 티아라는 요정도 있다.”

 

시공간에 문제가 생겼다면 오히려 티아가 이쪽으로 달려왔겠죠. 하지만 지금은 티아가 없다는 것을 보아, 티아가 있는 장소와 우리 쪽의 장소가 단절되어버린 거에요. 단순히 시간만 멈췄다면 티아가 나타날 수 있지만, 우리는 완전히 시간이 없어졌으니까요. 어렵게 말하면 우리는 완전한 3차원이 되어버린 것이며, 시간까지 같이 있는 티아의 공간은 4차원이란 소리에요.”

 

선은 1차원, 면은 2차원, 그리고 공간이 3차원이며, 시간까지 같이 있는 것이 4차원. 억지로 시나가 밖에서 우리를 움직일 수 있게 도와주고 있지만, 빠른 시일 내에 해결하지 않으면 우리도 저 앞에 있는 동상처럼 멈춰버릴 것이다.

 

“4차원에 대해서는 모두가 생소하지 않는가? 시간축을 보면서 통제할 수 있는 자들은 없으니까.”

 

마왕이 어떻게 그걸 알아요?”

 

잊었느냐? 짐은 운이 좋게도 마왕이니라. 주인이 심심풀이로 마리아에게 잡다한 책을 받고 있으나, 사실은 짐이 그걸 먼저 읽고 주인에게 해가 되지 않는다고 인정하면, 그때야말로 주인이 읽을 수 있는 것이니라. 그보다 시간을 4차원으로 두는 것은 한가지의 예시일 뿐. 솔직히 짐도 모르는 좌표이기 때문에 설명할 방법이 없노라. 우리가 귀환마법을 사용하거나 좌표마법을 사용할 때도, 3차원을 기초로 하지 않는가? 만약 시간까지 가능했다면, 그것은 이미 시간여행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지금 상황에서는 시간을 임시로 4차원의 마지막 부분으로 대입을 해서 해결해야겠지?”

 

무슨 마왕이 저래?

나중에 상대성 이론까지 나오는 거 아냐?

 

대입을 해서 해결하던 아니던...아무튼 문제는 시간을 찾는 방법이겠죠? 그러면 이제 잡화점의 물품에 시간과 관련이 있는 것이 있어야 할 텐데. 모든 땅에 마나와 마기, 신성력을 합친 새로운 에너지로 한 가득 채운다거나.”

 

그런 일을 하다간, 우리가 전부 죽어도 해결할 수 없을 거라 생각한다.”

 

하긴. 마법석도 못 이기고 다 부셔졌는데.

지금에 와서 증폭기라던가 제어장치로 어떻게 할 수 있을 만한 에너지가 아니지.

그렇다고 내가 희생하기에는 무리가 보인다.

 

아마 잡화점 멤버가 생각할 때. 이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사용할 방법은 2가지인데.

첫 번째는 각본가를 찾는다.

두 번째는 다른 공간에서 시간을 찾아서 쓴다.

 

지금 당장이라도 이곳 외각에서 시간을 움직이게 하는 시나에게 감사해야 할 지경이네요. 그런데 시나가 만약 시간을 움직이게 하지 않고 멈췄다면, 오히려 각본가도 같이 멈춰서 종말을 맞이했을 텐데. 유랑극단인지 뭔지 하는 애들은 생각이 있는 애들이래요?”

 

말 그대로 그냥 다같이 죽어버리자!’라고 말도 안 되는 행동을 하고 있으니,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어이가 없어졌다. 고민의 늪에 빠져서 한참을 허우적거렸을 때. 배에서 뭔가 기이한 압박감이 전해져서, 시야를 밑으로 내려다 보고 있자니, 검은 앞발을 이용해서 꾹꾹 누르면서 붉은 눈을 지닌 레시아가 올려다보았다.

 

레시아. 그 모습으로 계속 있으니까 종종 자신이 고양이라고 생각하는 거 아니에요?”

 

하지만 고양이들은 자신이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겐 이러지 않는다. 애초에 인간형으로 변하면 주인이 부담스러워서 긴장하지 않는가? 부부인데도 불구하고 붙어있어야 하는 모습은 동물형태라니.”

 

인간형이라던가 동물형이 있다면, 마왕상태는 따로 있는 거에요?”

 

기본적으로 인간형태가 1단계 변신이고, 짐의 경우에는 총 5단계까지 변신할 수 있다.”

 

아무리 변신합체 로봇이라도 5단계는 못해.

어떻게 변신을 하면 5단계까지 할 수 있냐?

어디 5층석탑이라도 되는 거냐?

 

차고로 짐의 본 모습은 꽤나 흉측한 모습이니 보이고 싶지 않으니, 변신하라고 재촉하지 말지어다.”

 

안 할게요. 하기 싫은 걸 억지로 하라고는 안 해요.”

 

그래야 짐의 신부지.”

 

남자는 신랑이라고 몇 번을 말해야...”

 

나는 남자이지만 여자에게 신부라고 불려지고 있는 게 전혀 익숙해지지 않는 새벽에, 느닷없이 잡화점에 노크소리가 울려 퍼졌다.

 

화들짝 놀란 자동으로 움직이는 몸을 이끌었고, 내가 일어나려고 하자마자 레시아는 내 배에서 카운터로 빠르게 이동했다.

 

이런 시간에 손님이 있다는 것은 당연해야 하지만, 워낙 사람이 잘 안 와서 그런지 내가 더 긴장이 되었을 무렵. 문은 자연스럽게 문고리가 비틀리고, 위에 있는 종은 손님이라고 확인했는지 맑은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귀여운 어릿광대가 왔습니다!”

 

당차게 들어온 어릿광대는 여전히 자신의 얼굴을 가리는 가면을 쓰고 나타났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머리가 기나 긴 고민에 빠지는 동안, 어릿광대는 나와 레시아의 눈치를 살피더니...

 

귀엽지 않으니 나가겠습니다!”

 

아냐! 들어와! 나가지마!”

 

유랑극단의 한명인 어릿광대가 제 발로 찾아왔다는 뜻이라면, 무언가 전할 말이라도 있는 것이 당연한 법.

 

마침 찾고 있었는데 잘 되었군. 유랑극단 중에서 사회자가 시간을 날려먹었다는 건 알고 있겠지?”

 

당연히 그것에 대해 찾아온 거야. 자기야.”

 

그 호칭은 제발 한 명만 써줬으면 좋겠는데.”

 

릴리스도 나를 부를 때 그렇게 말하고 있으니까.

하지만 아랑곳 하지 않고 어릿광대가 깔끔하게 3바퀴 돌고 정확하게, 나와 시선이 마주하며 멈춘 뒤에 건방진 목소리가 입에서 터져 나왔다.

 

첫 번째로 호칭을 바꾸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야. 왜냐하면 자기와 나는 운명의 붉은...소방용 도끼로 이루어져있는 걸!”

 

운명의 소방용 도끼는 뭐냐? 우리의 운명은 화재를 진압하는 거냐?”

 

그리고 두 번째는...”

 

내가 태클을 걸어도 아랑곳 하지 않고 말을 이어나가는 어릿광대.

 

앞으로 3일 뒤에는 공간이 사라질 거 같아. 그걸 전해주러 온 거야. 비록 이곳은 시간이 멈추고 있다고 해도, 억지로 시간을 움직이는 여신님에게는 반갑지 않는 소식이겠지?”

 

끔찍한 소식은 늘 예상하지도 못한 상황에서 터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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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와서 춥네요...

얼어죽을 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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