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 486
486
세계는 멸망해도 나를 여장시키겠다라는 발상은 어디서 나왔는지 몰라도, 제발 부탁이니 그 이상 나를 곤란하게 만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시나가 힘을 공급받기 위해 자신의 분신을 수거하려는 듯 어느 사이에 사라진 동안, 검을 들고 루니아 누나와 대치하고 있었다. 보통 검사에게 검을 드는 사람의 의도는 결투라고 생각하지만, 내 경우에는 날개 옷을 찢어서 태워버리겠다는 심산이었으니까.
“카일도 참. 그렇게 고양이처럼 앙칼지게 있지마세요오?”
“그 옷을 이 세상에서 분자단위로 만들어야 제 속이 좀 풀어질 것 같습니다만!”
저 옷을 이룬 실 하나를 절대로 남기지 않겠다는 각오로 잔뜩 긴장하고 있었지만, 카운터 위에서 하품을 늘어지게 하고 있는 검은 고양이가 말 같지 않은 소리를 했다.
“어째서 주인은 그렇게까지 싫어하고 거절하는 것인가? 그냥 한번 입고 나서 벗으면 빨리 해결될 것을? 강아지가 장난감을 물고 있을 때 억지로 뺏으면 더욱 더 놓지 않는 법이니라. 그러니 반대로 생각하거라‘입어도 좋다.’라는 생각. 언제나 관점을 반대로 생각해보면 남자에게 있어서 여장이 잘 어울리는 것 또한 기적이니라. 어째서 주인은 21세가 되면서도 루니아보다 키가 작고, 수염이 하나도 없으면서도 피부가 매끈한 건가? 주인도 혹시 여자로 그려놓고 남자로 우겨서 남자가 된 케이스인건가?”
“여긴 글밖에 없으니까. 그리 자세하게 설명한다고 한들 우리의 존재에 대한 상상력을 더 불어넣는 것뿐이잖아요.”
결국 레시아는 나보고 입으라는 말을 고무줄처럼 늘린 것뿐이다. 여장을 하는 것이 대체 무슨 즐거움을 선사해준다는 건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이런 사사로운 것보단 눈 앞에 당장 닥쳐온 위기에 집중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적어도 유랑극단에게 당하지 않으려면, 각본가를 찾거나 날아간 시간을 찾아야 하잖아요. 날아가버린 시간을 찾는다는 그 자체가 좀 이상하긴 하지만, 제발 이런 거에 힘을 빼지 말자고요!”
나의 짜증이 섞인 외침이 잡화점에 울려 퍼져도, 주변에 있는 검은 나무가 다 흡수해서 들리지 않는 건지, 아니면 귀가 꽉 막혀버린 건지 알 수 없는 상태였다. 루니아 누나는 여전히 먹이를 노리는 매의 눈빛으로 바라만 보고 있었고, 루시피나는 내 빈틈을 찾기 위해 눈치를 보고 있었다.
“카일이여. 첩이 생각한 바로는 그냥 입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마지막이 될 수 있다면 이 시간을 좀 더 즐겨야 한다.”
“마리아가 없는 동안 당한 게 얼만데 뭘 즐겨요! 이렇게 질긴 사람들 사이에서 얼마나 고생했는데!”
-야! 손님 받아라!
이젠 손님을 알리는 종까지 나에게 시비를 거는 건가? 그보다 손님이 아니라 아리엘이잖아.
“어머나? 마왕님은 잡화점이 부활하자마자 이곳에서 쭉 쉬고 있는 거에요?”
“릴리스. 항상 성안에서만 박혀있는 줄 알았는데, 세상이 이렇게 되니 그대도 다른 몽마처럼 꿈의 미로에 인간이 없어서 직접 나온 것인가?”
색욕의 공작이라고 불리는 몽마들의 여왕. 릴리스. 아리엘과 같은 은발이지만, 물기를 머금은 보라 빛 눈동자가 나를 그윽하게 바라보면서, 살며시 입술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내 입에서는“아냐. 난 맛없어. 콜레스트롤 수치가 높다고!”라는 말을 자동으로 내뱉을 뻔했지만, 꾹 눌러 삼키고 꿈의 미로에 사람이 없는 이유를 생각해보았다.
꿈의 미로는 사람의 의식을 붙잡아놓는 장소. 어처구니 없게도 모든 대륙에서 혼수상태로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이야 말로 몽마들이 꿈의 미로로 안내하여, 영원히 정기를 흡수당하고 생을 마감하는 것과 같다. 당연히 릴리스가 만든 꿈의 미로이기에 무시무시한 살상력을 보이고 있지만, 천칭들의 모임에서 과장된 이야기이다.
최근 릴리스에게 들은 이야기로는 2일이나 3일정도 되면 알아서 풀어주는데, 꿈의 미로에 갇혔던 사람이 다시 자야 한다고 억지로 꿈나라에 가려는 기이한 노력 때문에, 멀쩡한 사람이 일을 안 한다는 문제점이 더 크긴 했다.
아무튼 꿈의 미로에 사람이 없는 이유라면, 지금은 마왕이 모든 인간을 지배하고 있는 포지션이라서 가둘 필요가 없어졌다고 하는 게 좋겠지.
형식상 지배이지만 일시적으로는 인간과 마물이 공존하는 형태다.
“제 방에 들어오고 싶다는 인간이 너무 많아서 말이죠. 당분간 이곳으로 몸을 대피하려고 한 것뿐입니다. 그보다 자기는 잘 있었어?”
천연덕스럽게 내 옆에 달라붙으면서 친근하게 대했지만, 찰나의 순간에 살기가 내 등을 찔렀고, 레시아가 못마땅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주인에게 붙지 말거라!”
“저도 반지를 받아서 잡화점의 멤버라고요? 카일을 독점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말이죠?”
“그러기엔 릴리스가 독점하고 있잖아요.”
뒤에 있는 아리엘이 말하고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왜 그래? 빅터와 안 좋은 일이라도 있었어?”
내가 아리엘에게 말을 걸자. 아리엘은 나와 시선을 마주하면서 입을 열었다.
“아뇨. 빅터를 찾았으니 다행이었는데 300년이 지난 시점이니 결혼을 했다고 하더라고요. 어차피 시간이 날아가버린 터라 신체나이가 정지된 상태에서 지냈어도, 오히려 300년동안 아무일 없었던 게 더 이상한 거에요. 게다가 빅터는 귀족이 협박을 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혼인을 했다고 하고...”
“이상한 거 물어봐서 미안하다.”
“아니에요. 어차피 스트레스를 풀 요소는 많으니까요.”
아리엘이 과거의 연인을 포기하고 태연하게 있는 것은 자랑스러웠지만, 내심 걱정되는 것은 스트레스를 풀 요소가 많다는 말이었다.“스트레스가 한 가득 쌓였으니 각오해라.”라는 듯한 협박은 곧 현실이 되기 시작했는데.
“루니아 언니! 지금이에요!”
“와아~!”
“이런 망할!”
아리엘의 외침으로 순식간에 루시피나와 루니아가 점프를 하기 시작했고, 릴리스가 놔주질 않아 그 상태로 충돌이 일어났다. 번개가 번뜩거리는 시야반전과 사방에서 난잡하게 옷을 잡아당기는 기분. 그게 3분정도 지나면 내 옷이 어느새 바뀌어 있는 놀라운 마법이 아닌 마법을 경험하고 있었다.
“제길. 이번엔 날개 옷까지...”
“와아~ 선녀가 따로없네요오. 카일. 여기 좀 잠깐 보세요오.”
“신랑! 정말 잘 어울려!”
루시피나의 감탄이 내 가슴에 비수가 되어 심장을 가루로 만들고 있을 때. 루니아 누나는 어디서 꺼내왔는지 사진기를 내 앞에서 들이밀고 있었다. 너무하다고 생각을 하면서 아래를 보니, 릴리스는 내 무릎에 머리를 올려놓고 쉬는 모습이었다. 과거에서는 릴리스와 레시아가 같이 지냈으니까 사이가 좋을 거라 생각했는데...
“릴리스.”
“왜 그래?”
“우선 제 허벅지를 만지는 것부터 그만해줄래요? 옷 위에서 만진다고 하지만 형용할 수 없는 수치심이 지금 목구멍 밖으로 나오려고 하고 있으니까. 안 그러면 당장이라도 창문에다 내던질 거에요.”
요염한 손짓으로 쓰다듬고 있는 내 허벅지를 릴리스의 손부터 멈추게 한 뒤에 질문을 하도록 하자. 그래도 릴리스는 내 말에 순순히 알았다고 하면서 릴리스의 양손이 배쪽으로 가지런히 놓여졌다.
“예전에는 레시아와 어떤 관계였어요?”
질문이 이런 이유는 레시아에게 릴리스와의 과거를 한번도 물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예전에 마왕님이라...순진무구하고 귀여웠지. 지금은 자신을 떠난 선생님에게 발전된 모습을 보여주겠다면서, 마왕이 된 이후에 선생님을 찾겠다고 했지만, 그 때 당시에는 질서가 바로잡혀있는 마계를 마왕이 다스려야 하던 시기였기 때문에, 내가 극구 말린 결과가 이런 거지. 그 사람도 어째서 저 아이를 나에게 떠넘기고 사라졌는지 모르겠지만...”
쓸쓸해 보이는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너무 빨리 지나가서 보통사람이라면 알지 못할 정도. 그러고 보니 내가 레시아의 선생님이었다는 말은 루시피나만 알고 있는 사실일 뿐. 레시아의 낚시질 때문에 말해버린 진실이지만, 그 사실을 루시피나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는지, 꼭꼭 숨기고 있는 듯 보였다.
“선녀의 날개 옷을 입히니 정말 선녀이지 않는가? 카일이여.”
“이 가발은 대체 어디서 났는지가 더 궁금하지만, 자세한 건 안 물어볼게요. 그리고 마리아. 비어있는 무릎에 머리를 올려놓고 사탕을 먹으면 안 되죠?”
레몬 맛 사탕인지 밝은 노란빛의 사탕을 입에서 빼고는“첩은 프로니까 괜찮다.”라고 말한 뒤에...
“레로레로레로레로...”
“그거 하지마!”
내 입에서 소리치게 만들었다.
아리엘은 루니아에게 도망치고 있는 모습을 보아, 남장을 당하기 싫어서 사방팔방에 뛰어다니고 있었고, 루시피나는 과자를 내 입에 넣어주면서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있었다. 이런 난장판 속에서도 검은 고양이는 엎드린 체 눈을 감고 있을 뿐.
내가 생각하라고 할 때는 엉뚱한 말을 하면서도, 정작 내가 바빠지거나 이런 일에 휘말리면 레시아가 문제에 대해 해결책을 생각해주기도 한다.
세상이 망해도 잡화점 안에만 있으면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릴리스?”
“응?”
“지금 뭐해요?”
당연히 세상이 망해도 잡화점 안에만 있으면 하루에 한번 꼴로 사고가 터져서 문제지.
“그야 치마 안에 들어가려고 잠깐 들추고 있었는데?”
“거길 왜 들어가요! 두더지도 아니고!”
“괜찮아. 잠깐만 들어갔다가 30분 뒤에 나올 거니까.”
“제가 안 괜찮으니까 당장 손때요!”
그리고 나를 가만히 두지 않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솔직히 용병으로 일했던 것보다 더 힘들다.
“그렇군. 그거이니라!”
모두가 레시아의 외침에 전부 시간정지라도 당한 듯이, 고개를 돌려 검은 고양이에게 집중되어있었다. 카운터에서 날렵하게 내려온 한 마리의 맹수...처럼 보이는 고양이가, 내 앞으로 천천히 다가오면서 자연스럽게 내가 입은 치마 속으로 들어...
“들어가지 마!”
“냐아아아아!”
너무 자연스럽게 들어가길래 3초만 더 늦었어도 큰일날 뻔했다. 그 사이에 아이언 클로가 잡아내서 레시아를 허공으로 인도하고 있었고, 방금 전까지 무슨 생각을 했길래, 아르키메데스가 목욕하다가 외치면서 뛰쳐나오는 톤과 비슷하게 외쳤는지 질문을 해야만 했다.
“대체 지금까지 무슨 생각을 한 거에요?”
“그야 당연히 주인에게 붙어있는 이들보다, 더 가깝고도 친근하게 접촉할 수 있는 명당자리를 찾고 있었노라. 릴리스의 파렴치한 행동이 짐에게 가장 큰 영감을 주었으며, 짐은 단순한 검은 고양이가 아니라, 마왕이기 때문에 언제나 그렇듯 아무렇지도 않게, 주인의 치마폭에 감싸이며...니야아아아앗!”
남자의 치마폭에 감싸면 여자는 좋아하던가?
아니, 고양이는 좋아하던가?
“저는 여태까지 레시아가 이 상황에 대해 빠르게 해결할 수 있는 답을 내놓은 줄 알았더니, 지금 이 사람들 사이에 껴서 뭘 하려고 했던 거에요!”
“아프다! 아프다! 주인! 어째서 마법이 봉인 됐는데도 이렇게 아픈 것이냐! 놔라! 노아라!”
결국 레시아는 아이언 클로로 인해, 내 어깨 위에서 축 늘어진 상태로 가만히 있었지만, 여전히 선생님을 그리워하는 레시아에게 언제쯤 말해야 할지, 머릿속에서는 계속해서 가늠을 하며 기회를 뒤로 미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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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이 안와서 뒤척이다가 아침에자서 늦었어요.
핳핳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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