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 452
452
어설프게 침입했다가 내 팔만 빗금으로 새까매진 이후, 기억소거를 방지하려면 특수한 물품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잡화점 2층과 3층을 오르고 내려가고 있을 때였다. 정신방어든 뭐든 상관없이 일정 기억을 지운다는 그 자체만으로 골치가 아프지만, 다행인 것은 영향력이 그렇게 높지 않아서 조금씩 조금씩 전진했다. 3번 앞으로 가면 2번 후퇴하는 식이라고 해야 할까?
사소한 변화를 알아차리고 갈 수 있다는 것은 가장 중요한 것인데, 오른팔을 깨끗하게 닦아내고 나서 다른 방향을 제시해야 하는데, 과거로 가서 그 물품에 대한 정보를 알아내는 방법이 있지만, 티아가 언급한 시간의 파수꾼이라는 존재는 매우 강력하다고 말했으니, 어쩔 수 없이 현실의 문제는 현실에서 해결해야 했다. 혹시 모를 위험이라던가 변수에 대한 존재는 확실히 배제하고 살아가야 하는 것이 안전이기 때문에, 2층과 3층에서 쓸만한 물건을 찾으려고 했지만, 결국 40분째 허탕만치고 감옥에서 노인이 줬던 그 보석이 내 눈길을 끌어당겼다.
“생각을 해보면 이곳의 물품이 죄다 뭐에 쓰는 물건인지 모르는데, 엘티노스는 이것들에 대해 설명이라도 하지 않았구나.”
애초에 정신오염에 영향을 받지 않아서 내가 잡화점의 주인으로 된 것 같지만, 어째서인지 시체협회 근처에 가려고만 하면 정신방어와는 상관없이 기억이 지워진다. 최면과 세뇌에 효과가 없는 나에게조차, 기억소거가 가능하다고 한다면 이것은 신보다 더한 존재가 만든 것이 아닐까?
“그 독백이 진실이라면 참으로 기대가 되는 군. 주인은 창조신보다 위에 있는 존재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불가능했다면 트리니티가 억지로 자신을 초월체로 만들어서, 창조신을 제거하려고 들지 않았겠죠. 그 초월체야 말로 창조신을 잡아먹고 더 위에 있는 상위 존재가 되기 위함일지도 몰라요. 예를 들어서 젤나가들도 결국 자신의 피조물들에 의해 죽고 그러잖아요?”
“그 예를 꼭 들어야 하는지 짐은 묻고 싶지만, 지금은 그냥 넘어가도록 하지. 마침 고양이 꼬리가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노라. 고양이 꼬리는 개처럼 살랑거리지 않지만 짐의 경우에는 한 가지의 징조를 감지하고 움직이지.”
뒤를 보며 레시아를 보았을 꼬리가 그렇게 많이는 아니고, 아주 조용하게 좌우로 바람에 흩날리듯 움직였다. 우선 나는 징조에 대해 묻지 않고 근본적인 문제부터 다가가기로 하자.
“대체 그 고양이 꼬리가 움직이는 설정은 어디다가 집어 넣으신 거에요?”
“오늘 집어넣었다. 어떤가? 잘 어울리는가?”
“아뇨. 전혀.”
“역시 주인은 부끄럼쟁이니라. 항상 좋다고 말하고 싶지만 부끄러워서 아니라고 말하는...”
“아뇨. 전혀 안 어울린다니까요?”
침묵의 바람이 나와 레시아 사이를 가로지르고 나서, 검은 고양이 귀가 서서히 내려가기 시작했다. 작은 체구와 달리 잡화점을 뒤덮는 어마어마한 살기를 내뿜으며 레시아는 당돌하게 입을 열기 시작했으니.
“오호. 주인. 아무래도 짐이 잘못 들은 것 같노라. 애석하게도 짐은 마왕이기에 무엇이든 하면 잘 어울리고 귀여우니, 이걸 하면 인기가 더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을 하며 고안해낸 것이다. 다만, 아무래도 짐의 고상한 성격과 카리스마가 넘치는 분위기에 잘 안 어울린다고 그리 상세하게 말하려는 것을 함축적인 의미로 표현하려는 의도는 잘 알았지만, 짐은 그래도 주인의 사역마이자 신랑이다. 신부 앞에서는 언제나 재롱을 떨고 싶어하는 이 소녀의 마음을 어떻게 그리 무참히 짓밟는다는 말인가?”
“이렇게요. 전혀 안 어울려...우아악!”
본능적으로 고개를 숙이자마자 섬광 하나가 내 머리 위를 지나갔다. 2층에 있는 빈 서랍장이 버터가 잘려나가듯 깨끗한 단층을 그리며 떨어져 나갔고, 단숨에 하나의 서랍으로 이루었던 목재는 이제 목재조각이 되어버렸으니, 겨우 살았다는 안도감보단 아직 포식자 앞에 있는 초식동물마냥 덜덜 떨 수 밖에 없었다.
“주인은 한가지 실수하는 것이 있군. 자신의 여자를 위해서라면 가치관을 바꿔서라도 달콤한 말을 속삭일 줄 알아야 하느니라. 주인에게 이런 소리를 하는 이유라고 한다면, 오직 주인만 그런 말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겠지. 따라서 짐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자 한다. 첫 번째로는 짐과 단 둘이 있을 때 꼭 붙어있을 것, 두 번째로는 짐과 단 둘이 있을 때는 주인의 몸을 만지는 것에 있어서 제한을 두지 말 것. 세 번째는 늘 짐을 기쁘게 하는 말만 골라서 사용할 것.”
“자, 잠깐만요. 두 번째와 세 번째는 허용할 수 없거든요? 그리고 뒤늦게 따지는 거지만 남자가 신랑이지 왜 신부에요?”
“달라붙는 건 되는 거였구나!”
“어째서 그거에 놀라는 거야!”
물건 정리를 하면서 소리치고 있을 때. 나는 정신방어 쪽이 아니라 육체에 직접간섭을 해서 기억상실을 일으키는 거라고 생각했다. 마법적인 세뇌는 정신방어에 영향을 끼치지만, 직접적인 육체적 세뇌는 자연스럽게 따라오도록 유도하는 것뿐. 대표적으로 동전과 실만 있으면 최면을 빠뜨릴 수 있는 경우가 그것. 전혀 마법과 마나가 관련이 없어도 쉽게 지배당한다.
“잠깐만...레시아. 우리가 그 주변에서 봐왔던 것 모두 알려줄 수 있어요? 아니, 3층에 있는 시나도 불러와보세요. 우리가 뭔가 놓친 것이 하나 있으니까.”
시나까지 내려오면서 “마스터. 저도 단 둘이 있을 때 달라붙어도 됩니까?”라는 질문을 받아서 당황스럽지만, 가볍게 무시를 하고 천천히 그 주변을 짚어보기 위해 안리아스의 수정구를 내 이마와 접촉했다.
안리아스 수정구가 빛을 발하기 시작하면서, 잡화점 2층을 시체협회가 있는 이름없는 도시로 비추기 시작했다.
“그렇군. 이곳 풍경은 수많은 마법진이 띄고 있었지, 그런데 이게 무슨 의미라도 있는 건가?”
레시아의 질문에 나는 시나에게 고개를 돌려서 입을 열었다.
“우리가 기억을 잃고 있는 동안, 너만큼은 기억을 유지하고 있었지? 우리가 계속 반복해서 말하는 것에 대해서 말이야.”
“그렇습니다.”
시나가 들지 않는 이유라면 우리는 마법진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아주 사소한 것부터 집고 넘어가야 했다.
“아무래도 우리는 계속해서 빛에 의한 최면을 당한 것 같아요. 강한 빛으로 기억을 일부 잃고 다시 우리는 똑같은 말을 반복한 거죠. 하지만 시나는 창세의 여신과 더불어 침식하는 빛인 만큼, 물리적인 빛에도 면역력이 있어서 우리와는 다르게 기억을 잃지 않은 거에요. 설령 잃었다고 말했어도 잃은 척만한 것뿐이죠.”
레시아는 하얀 올빼미를 보며 경악했다.
“그럼 저 비둘기가...”
“올빼미라고요. 냥캣.”
“아무튼! 저 비둘기가 우리를 보호한다면 시체협회까지는 쉽게 돌파할 수 있다는 소리가 아닌가?”
“다만...저는 마스터에게 빙의를 해서 마스터를 보호해줄 수 있어도, 냥캣과 성질이 상극이라서 지켜드릴 수 없습니다. 유감이지만 말이죠.”
유감이라고 말해놓고 매우 기뻐 보이는 듯한 어조로 내 오른쪽 어깨에 날아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레시아는 그런 올빼미에게 코웃음을 치더니, “단순이 물리적인 빛에 의한 공격이었다면, 오히려 돌파하기 쉬우니 신경 쓰지 말거라.”라고 큰 소리쳤다.
“그러면 다시 갈 생각입니까?”
“아니. 또 다른 것도 찾아야지. 빛뿐만이 아니라 소리, 향에 대해서도 쉽게 기억을 잃어버릴 수 있으니까. 심지어는 기억을 지우는 약물까지 있으니 그 주변에 공기까지 신경을 써야겠네요. 아니면 지상 말고 지하로 가는 통로가 분명 있을 거에요. 시체협회의 건물은 밀봉상태라고 봐도 적절할 테니까요.”
아무도 살지 않는 여러 집들 사이에서는 6층 높이의 거대한 건물이 자리잡았다. 검붉은 빛을 띄는 뾰족한 깃털이 장식 되어있는 탑. 층마다 각각 다른 넓이를 가지고 있고, 밑으로 내려갈수록 점점 넓어지다가, 3층 미만부터는 같은 넓이가 유지 되었다.
“그런데 무슨 이유로 그 지역 전체를 전부 기억소거 하는 것인가? 마법진도 정상적으로 기억소거만을 위해 작동하고 있다면, 제가 전해준 물품과 관련이 있다는 거에요. 아니면 엄숙한 봉인을 위해서라도 그 지역을 전부...”
내가 말을 하는 도중에 끊어진 이유라고 한다면 모순점을 느끼기 시작했기 때문, 이건 마치 옛날부터 시체협회가 몰락한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인데, 예전에는 시체협회의 회장이 나와 루니아 누나를 시기해서 저주를 내리다가 역으로 난장판이 되었다는 신문기사도 본 적이 있다.
“그런데 왜 지금에 와서 이 사실을 깨달은 거지?”
“혹시 그 봉인을 하는 이유가 아르트리옴이 있는 장소이기 때문이 아닌가? 예로부터 신들은 숭배를 하는 신도를 모으는 것이야 말로 자신의 힘의 원천이기 때문이니라. 자신을 기억해주는 것만으로도 힘이 돌아오기 시작하니까. 우리가 지금 이렇게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마신이라는 존재는 계속해서 힘을 키워 나아가고 있노라.”
그렇다면 언젠가는 아르트리옴이 부활할 것을 깨닫고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잊어버리도록, 한 도시를 희생시켜서 아르트리옴의 부활을 늦추고 있는 것인가?
“그렇게 따지면 가봐야 할 이유가 좀 더 생기는데...”
보통 다른 사람들은 무엇 때문에 위험을 감수하냐고 물어본들, 나에게는 지금 이유가 생겼다. 스스로 위험에 빠져서라도 가야 할 이유라고 한다면, 아르트리옴이 봉인 되어있는 장소에 롱기누스를 꽂아버리면 모든 일이 한방에 해결...
“그 독백은 짐은 윤허하지 않는다. 너무 단순한 생각에는 너무 많은 변수가 존재한다.”
“저도 마스터에게 그런 일을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거기 밑에 아르트리옴이 있든 뭐가 있든 저는 일단 확인을 해봐야 직성이 풀린다고요? 두 사람 다 제 말에 따르시죠. 사역마가 주인의 말을 듣지 않고 반론을 제시하다니!”
이렇게 말은 했지만, 내 머릿속에 그나마 정상적으로 남아있는 이성은 “그래도 몸이 고생할 건데 꼭 가야 하겠냐?”라는 말만 돌고 있었다. 그래서 추가적으로 나온 나의 말은 다음과 같았으니.
“솔직하게 말하자면, 시체협회에서 숨겨놓았던 비밀이 무엇인지 그건 확인만하고 나올 거에요. 따로 해가 될만한 일은 하지 않을 테니 걱정은 하지 마시죠?”
검은 고양이와 하얀 올빼미는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동시에 크나큰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다고 지금 당장 가는 것은 아니니까. 물품을 찾는 것은 그만두고 1층으로 내려가서...
“아~ 카일! 오늘 저녁 완료되었어요오.”
“제길! 도망가!”
생각을 해보니 잊고 있었는데 루니아 누나도 잡화점에 살고 있었구나. 2층의 방문을 걸어 잠가놓고 천천히 한숨을 돌리고 있을 무렵.
-파직!
“카일~? 오늘은 누나가 직접 만든 양고기 구이를 먹어야죠오?”
“그거 재료가 무지개 빛의 양이던가요?”
“아니요오? 정상적인 양인데요오?”
“그럼 왜 양고기가 무지개 빛으로 빛나고 있냐고요!”
그날 이후 잡화점이 또 다시 폭주를 하면서 파이론에는 10분간 재앙이 찾아왔다고 한다. 그 이유라면 결국 2층의 문을 국자 하나로 깨부수고 와서, 우리에게 형용할 수 없는 양고기인지 무지개인지를 억지로 집어넣었으니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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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럼프는 힘든 시기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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