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둔탁한 통증에 눈을 서서히 떴을 때 류하 씨는 부드러운 손으로, 내 얼굴을 침범한 은색의 머리카락을 다시 귀 옆으로 올려주고 있었다. “고생했구나.”라는 말 한마디와 함께 아침 해를 맞이하고 있는 동안, 꿈속에서 맞은 후유증이 현실에서도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시계는 9시를 가리키고 있으니까 분명 아침 9시겠지. 조금 더 자도 상관은 없을 것 같

 

지각이잖아!!!”

 

지 않았다. 다급하게 몸을 일으키려고 했지만, 내 몸은 그제서야 축적해놓은 데미지를 개방하듯이 온 몸에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아파오기 시작했다. 꿈속에서 맞은 니킥의 일격이 현실을 뚫고 나와 지붕까지 날아오를 것 같은 고통에, 침대에 다시 쓰러지듯이 누워야 했던 내 몸을 보고는 류하 씨가 입을 열었다.

 

꿈속에 있었던 카일은 연기라고는 하나, 연기는 실감나야 한다면서 죽을 각오로 찼을 것이니라. 정말이지 이런 소녀에게 마지막까지 못되게 굴면 안 되는 것을.”

 

류하 씨도 꿈속에 있던 카일 씨가 일부러 그런 거라고 알고 있었나요?”

 

애초에 카일은 등을 훤히 드러내는 빈틈 따위 만들지 않는다. 그는 과거에 위험한 일을 항상 해와서 그런지 평상시에도 경계가 철두철미한 성격이니까.”

 

류하 씨도 마지막에는 의도를 알아차린 건가.

 

확실히 꿈에서 깨고 나면 행복했던 생활은 덧없는 것이 맞다. 현실의 생활보다 꿈속의 생활이 더 좋게 된다면, 현실에서는 너무 무기력해지니 말이지. 그렇게 생각을 해보았을 때, 켈모리아에게 의뢰를 하기 전과 별반 다를 것이 없노라.”

 

크나큰 교훈을 얻었는지 류하 씨는 눈을 감고 읊듯이 말했다. 현실이 불행하다고 해서 꿈에서야 말로 행복하고 싶다는 말은 잘못된 것이 아니지만, 행복한 꿈에 의존을 하게 되면 현실에서 더욱 더 벌어지게 되는 것. 결국 현실에서 버틸 수 있는 힘이 사라지게 된다.

 

그럼 몽마에게는 어떨까?

현실이든 꿈이든 인지하며 나아갈 수 있는 나에게 있어선….

 

그보다 아침도 못해줬는데 굶어서 학교에 갔나요?”

 

레이나인지 누구인지 모르겠지만 그 여자가 요리를 만들어 줬는데, 다른 사람들은 아침생각이 없다면서 쏜살같이 밖으로 나갔다. 여는 주변에 눈치를 보며 아리엘이 해준 음식만 먹겠다.”라고 말을 했노라. 그 여자가 요리를 만들면 피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맛이 그렇게 없는 건가?”

 

맛이 아니라 영혼이 없어지는 맛이라서 그렇죠.”라고 말하려고 하다가, 레이나 씨의 체면을 어떻게 하면 올려줄지 생각을 좀 해야 했다. 아무리 사람이 근처에 없다고 해서 흉을 보면 안 되니까.

 

레이나 씨는 음식을 자주 만들 기회가 없어서 서투르거든요. 그러니 나중에 제가 레이나 씨의 음식을 먹어도 된다고 할 때까지 피하시면 될 거에요.”

 

그렇군.”

 

어느 정도 납득을 하면서도 레이나 씨를 존중하는 듯한 문장으로 선정을 했으니, 하란국의 여제가 레이나 씨로 인해 독살을 당하지는 않을 거라 생각했다. 만약 독살이라도 당했다면 충분히 전쟁하고도 남았겠지. 고통도 어느 정도 사라진 것 같아서 슬슬 침대에서 일어나기로 했다.

 

여도 아리엘이 일어났으니 슬슬 돌아가도록 하지. 언제든지 하란국으로 와서 여를 기쁘게 해줬으면 좋겠구나.”

 

기쁘게 하다니 무슨 소리에요?”

 

꿈에서도 술을 입으로 전해주지 않았느냐?”

 

그건 더 이상 없을 거니까 알아서 해결하세요.”

 

술이 너무 약한 것도 있지만, 그렇게 쓰디쓴 술을 입안에 넣고 싶지도 않았다. 류하 씨는 켈모리아의 집 안에 있는 공간이동 마법진에 들어가서 아우리온과 하란국의 국경 근처로 갔을 것이라 생각했고, 나 또한 켈모리아가 있는 도서관으로 찾아가기 위해 마법진에 들어갔다.

 

어라?

작동을 해야 하는데?

류하 씨는 그대로 공간이동이 되었잖아?

 

뭐야. 어째서?”

 

그러게. 무시무시한 일이야. 어느 누군가가 개입을 해서 순간이동을 못하게 만든 것일지도. 이것은 분명 아리엘에게 흑심을 품고 다가가려는 사람이 벌인 일이야. 그러니 이 오라버니가 그 사람으로부터 지킬 수 있게 집안에만 있도록 하자. 오늘은 켈모리아 학원장에게 너무 아파서 아리엘은 쉬어야 한다고 전했으니까. 느긋하게 오라버니의 품에서 천천히 쉰다면….”

 

-파악!

 

아프잖니! 아리엘! 숙녀가 멋대로 신사의 정강이를 차면 안 된단다!”

 

범인은 당신이었나요! 아르트리옴!”

 

아르트 오라버니라고 불러야지?”

 

시끄러워! 발정 난 강아지 같으니!”

 

정강이를 붙잡고 있는 아르트리옴의 머리를 밟으면서 소리를 쳤지만, 오히려 그게 더 행복한지 아르트리옴의 입에서는 고통으로 숨이 찬 것이 아니라, 묘한 흥분으로 숨이 차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렇게 숙녀가 함부로 사람들 밟으려고 하면, 오늘의 행운의 색깔에 맞춰서 입은 속옷을 다 알게 될 텐데 괜찮아?”

 

-파악!

 

아르트리옴의 얼굴을 발로 차버린 뒤에서야 어느 정도 진정할 수 있었다. 저 멀리 날아가서 나에게 도달하는 시간이 좀 걸릴 줄 알았으나, 내 뒤에서 어깨를 붙잡고는 다음과 같이 말하기를….

 

그래도 어제는 고생을 많이 했으니까. 하루 정도는 쉬어도 좋다고 생각해. 아니면 내가 억지로 레이나의 요리를 받아와서 하루 종일 재우는 일도 할 수 있지. 아리엘이 의식을 잃었을 때 벌어지는 일에 대해서는 나도 감당 못하겠지만?”

 

현행범으로 잡혀가라….”

 

회색의 후드티는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는지, 항상 입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어서 더욱 익숙했다. 마신이 아니라 그냥 동내에 돌아다니는 아는 사람으로 말이지. 그래도 하루 정도는 쉬면 어떻겠냐는 유혹은 내 마음을 뒤흔들기 시작했다. 어제는 그렇게 고생까지는 하지 않았지만, 몸에 데미지가 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러면 켈모리아에게 연락을 해야…….”

 

이미 내가 다 했지. 오라버니는 항상 일 처리가 빠르단다?”

 

뭐지.

이 불길함.

 

그러면 이제 집에서 쉬는 거구나. 이 오라버니는 이 날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르겠구나!”

 

이 불길함은 마치….

현관에서 합체로봇처럼 있는 남매를 보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아니. 예시가 매우 적절하지 못했으니 다른 말로 말하자면, 지금 아르트리옴의 불길한 계획 중 일부가 성사된 기분이었다.

 

무슨 꿍꿍이에요?”

 

그야 당연히 데이트지.”

 

사악하게 미소를 짓고 있는 아르트리옴은 내 손목을 낚아채면서 손가락을 튕겼다.

 

***

 

이곳이 어디냐고 물어봐도 알려주지 않는 아르트리옴 때문에, 자세한 위치가 어떤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래도 한가지 확실한 것은……

 

냐앙!”

 

고양이 카페였다.

 

고양이 카페에 왜 온 거에요? 그거나 물어보죠.”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고양이 한 마리쯤은 있어야 하잖아? 그보다 아리엘에게는 그닥 고양이가 많이 오지 않네. 전부 암컷인가?”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고양이 카페까지 공간이동을 할 필요까지는 없는데, 어쨌든 유일하게나마 영롱하게 나를 바라보고 있는 페르시안 고양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듣기로 했다.

 

무슨 이야기죠?”

 

아리엘은 카일이 신경 쓰이지?”

 

그야. 당연히.”

 

신경 쓰인다는 의미는 남자로서 신경 쓰인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 사람의 정체에 대해서 계속 위화감을 느끼고 있었다. 주변에 여성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그런 강인한 정신력을 가질 수 있는 거지?

 

아무래도 내가 신경 쓰는 것과 아리엘이 신경 쓰는 포인트가 다른 것 같은데, 내가 신경 쓰인다는 것은 어째서 카일이라는 남자가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불가능한 일들을 해결하냐는 거지.”

 

불가능한 일?”

 

불가능한 일이라고 한다면 무엇이길래?

 

마왕을 소환하는 것도 그렇고 창세의 여신을 소환한 것도 그렇고, 사역마를 소환할 때 주변환경에 따라 다르다고는 하지만, 그때 당시에는 초보자라고 불려야 마땅했던 카일이 부를 수 있는 존재들이었을까?”

 

“…뭘 말하고 싶은 거에요?”

 

아르트리옴은 홍차를 느긋하게 들면서 입을 열었다.

 

아리엘의 기억은 내가 봉인시켰으니. 나중에 모든 것을 받아들였을 때는 전부 알려줄 거야. 다만, 카일의 경우에는 평범한 인간이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 많은 일을 해왔어.”

 

나는 카일 씨가 자세히 무엇을 해왔는지 알 수 없었지만, 아르트리옴의 얼굴에는 장난기가 싹 빠져버린 진지한 얼굴이어서,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는 바보 같은 짓을 해버렸다.

 

게다가 카일에 대한 예언은 자주 흐릿하게 보인다고 말한 경우가 많고, 카일이 성장하고 있음에 따라서 데모르테의 예지능력마저 천천히 빗나가고 있지. 카일이 죽어야 하는 운명임에도 불구하고 비니스 여신을 통해 다시 살아나기도 했지. 비니스의 여신은 비록 자신을 해치려는 사람일지라도 살려주는 이상한 여신이긴 하지.”

 

? 카일 씨가 비니스 여신을 해치려고 해요?”

 

그래. 그렇다니까. 지금 검은 높새바람의 배후가 비니스 여신이라고 심증은 잡아놨지만, 물증이 없는 상태라서 골치가 좀 아픈 모양이야. 하지만 비니스 여신이 기묘한 일을 저지르기 위해 오늘도 잡화점에서는 초기진압을 실시하려고 하겠지.”

 

아직까지 물증이 없다는 소리는 비니스 여신이 아니라는 소리일 수도 있겠네요?”

 

아르트리옴은 나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며 만족한 얼굴로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마치 어린아이가 정답을 말했을 때 칭찬을 너무 과도하게 하는 선생님의 모습처럼.

 

그래서 말인데 아리엘이 카일에 대해 좀 알아봐줬으면 좋겠어. 그의 과거를 넘어서 전쟁에 대체 무엇을 했는지. 인간이라면 하늘에서 내려온 0.01%의 천재라고 봐도 돼. 하지만 그게 아닐 경우에는 카일의 몸 속에 들어있는 진짜 영혼의 정체를 알게 되는 거지. 애초에 일반인이 월식에게 잠식되어서 아무런 후유증도 없이 사지가 멀쩡한 체로 나올 수 있을 것 같아? 너의 친구인 룬을 봐도 월식의 파편으로 인해, 이미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로 변형되었잖아.”

 

월식의 파편을 이어받았기에 불안정한 각성을 하게 되면 그 자체로 월식의 일부가 되어버린다. 하지만 카일 씨는 온전한 월식을 받아들이고도 보통사람으로 인식이 되는 이유가 있는 것일까?

 

그래도 카일 씨를 조사하라니. 그건….”

 

이건 너를 위해서야. 꿈속에 있는 카일도 네가 만들어냈지만, 실제 카일을 바탕으로 만들어졌어. 응용력은 항상 뛰어나고 남을 위해 희생할 줄 아는 그런 정다운 모습과, 잠재적으로는 상당히 흉악하고 잔인하며 냉정한 성격이 들어가있지.”

 

아르트리옴은 나의 표정을 살피면서 . 그 이야기는 별로 안 좋아하네? 어차피 아리엘의 자율적인 선택에 맡길 거니까. 하지 않는다면 흘려 들어도 돼.”라고 말했다. 그래도 카일 씨의 과거를 넘어 전생을 조사한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배덕적인 행위인 것 같아 마음이 좋지 않았는데. 다행이라고 생각

 

다른 이야기를 하지. 다음 악신 후보가 어쩌면 카일이 될 수도 있겠는걸?”

 

했는데……대단히 충격적인 결과물을 나에게 말해놓고 느긋하게 이야기 할 줄은 몰랐다. 다음 악신이 카일 씨가 될 수 있다니?

 

어떻게 카일 씨가 다음 악신이 되는 거에요? 카일 씨가 아르트리옴처럼 귀축이고 몹쓸 사람과 결혼을 하는 것은 말이 안 되잖아요!”

 

은근히 나에 대해 안 좋은 소리를 하는 구나…. 나는 남자에게 관심 없어. 적어도 내 신부는 아리엘 아니면 안 되거든.”

 

그것도 싫어요.”

 

뭐 아무튼. 가능성이 없는 이야기는 아냐. 나는 1%라도 가능성이 있다고 하면 가능하다고 생각하거든. 신과 여신은 지상의 인간들에게 지지를 받아야 해. 그런데 그는 많은 사람들에게 많이 추앙 받고 있잖아?”

 

추앙을 받다니?”

 

하얀 각설탕을 들면서 나지막하게 말했다.

 

백장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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