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멜롯 마법학원의 비서 - 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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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구경거리가 많은 체육대회에서 피구도 결승에 올라왔는지, 불꽃을 이루며 날아온 피구공은 내 등 뒤에 있는 창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이곳에 통키라도 있을까? 하는 마음에 창문을 넘어 바라봐도 붉은 머리를 한 소년은 있을 리가 없지. 지금은 켈모리아가 있는 도서관이 아니라 마법 기동반에서 대기하고 있는 중이었다. 탈로스 씨도 어디론가 일을 나가서 그런지 아무도 없어야 할 한적한 공간에, 초콜릿 복근을 자랑하는 밝은 회색의 머리카락을 빗으로 쓸어 올리고 있었다. 한동안 하늘을 향해 솟아오른 머리카락을 보면서 나는 입을 열었다.
“의외로 카를로스는 제대로 꾸밀 줄 알고 있구나. 그렇게 하니까 더 양아치 같아.”
“뭐냐? 칭찬이냐? 고맙다.”
카를로스의 답변에 잠깐 멍하니 있다가 생각의 톱니바퀴가 다시 움직였을 때. 진홍빛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칭찬이야? 그거?”라고 되물을 수 밖에 없었다. 검은 망토는 몸에 두르고 있지만 상의 단추는 전면 개방한 카를로스가 입을 열었는데.
“그야 너는 제대로 된 칭찬을 할 리가 없잖아. 당연히 양아치 같은 말을 듣는다면 평소에는 화를 내겠지만, 지금은 양아치처럼 보이기 위해서 꾸미고 있는 거야.”
“어째서?”
“그야. 요즘 마법 기동반에 들어가고 나서 나를 무서워하는 사람이 별로 없거든. 애초에 발록이라는 것은 상대방을 압도해야 하는 마족이야. 언젠가 내가 발록으로 각성을 하게 되면 모두가 공포로 비명을 질러야지. “오늘도 너무 멋있어! 카를로스!”라던가 “발록이 되니까 더욱 안겨지고 싶어!”라는 소리는 듣고 싶지 않아!”
여난이로군.
카를로스는 하멀 아저씨가 목표로 하는 상남자의 표본이 아닐까? 나중에 서로 만난다면 재미있을 것 같지만, 그건 그거 나름대로의 재미를 위해 아껴두도록 하자. 서슴없이 다가가서는 카를로스의 머리를 쓰다듬는 나와 카를로스는 “머리 망가지잖아! 뭐 하는 짓이야!”라고 불같이 화를 냈다.
“역시 무섭지 않아.”
“뭐?”
“무섭지 않다고. 카를로스.”
“그런 웃음 그만둬. 내가 비참하게 보이잖냐.”
카를로스는 얼굴이 붉어진 채로 고개를 돌려서 내 손을 다급하게 치웠다. 나는 비웃은 것도 아니고 어린 아이가 열심히 노력하는 듯한 포근한 모습에 나도 모르는 미소가 번진 것뿐. 카를로스는 의외로 어른스러운 사람에게 약하나 보다. 그럼 나는 생긴 것에 비해서 어른스러운 것일까?
“그런데 학원장님과 같이 있어야 하는 거 아냐?”
“서류작업은 이미 다 끝났어. 그리고 너는 대체 여기서 뭐하고 있는데?”
“그야. 귀빈들을 경호하거나 외각경비를 서는 것에 대해 금지령을 내렸어. 내가 생긴 것이 너무 강해서 오히려 불안을 느낀다고 하던가? 그래서 무슨 일이 있기 전까지는 여기서 집이나 지키고 있는 거지.”
“그러면 온화하게 바꾸면 되잖아?”
카를로스는 어처구니 없다는 듯이 “하!”라고 발성을 했다. 나의 말이 뭐가 잘못 되었길래 저렇게 싫어하는 것일까?
“온화하게 바꾸면 사람은 얕보기 시작한다고.”
“오히려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이 있을 것 같은데? 이 참에 플레이보이로 전직하는 건 어때?”
“너는 여자애가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서슴없이 말하고 있냐? 걸 크러쉬도 정도껏 해야지. 안 그러면 정말 바삭하게 구워버린다?”
카를로스는 남을 압도하기 위해 협박을 하는 것도 서슴없이,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행하고 있었다. 카를로스의 오른손에 피어 오르는 진홍빛의 불꽃은 서서히 커지기 시작했지만, 내가 주눅들거나 겁을 먹지 않고 담담하게 가만히 있자, 재미없다는 듯이 혀를 차고 인상은 화가 난 상태에서 서서히 냉정해지기 시작했을 무렵. 나는 냉정하고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나는 딱히 걸 크러쉬를 하려는 게 아냐. 마법 기동반의 반장으로 너에게 충고를 하는 거지. 애초에 나는 몽마로 이미 각성한 상태야. 그런 불꽃으로 나에게 위해를 가한다면 나는 너의 꿈에서 엘리온과 함께 침대로 보내버리는 악몽을 선사해주겠어. 거기서 깊고 어두운 판타지를 찍게 될 거야.”
“생각만 해도 끔찍하니까 제발 그만해라.”
이비는 내 허리 쪽에 있는 주머니 속에서 얼굴만 빼꼼하고 내민 체 “삑삑!”하고 울었고 나는 땅콩을 꺼내서 이비 입에 넣어줬다.
“내가 여자에게 인기가 있다는 것은 어떻게 알았어?”
나는 단정지어서 입을 열었다.
“페로몬. 너에게는 여성을 끌어당기는 짙은 페로몬이 한 가득해. 발록의 피를 이어받아서 강한 남자로 행동하지만, 그만큼 여자를 끌어당기는 무언가가 있다는 거야. 몽마는 매혹하고 최면을 걸어서 사랑에 빠지게 하는 수단도 있지만, 발록은 말 그대로 힘이 곧 여자를 끌어당기는 신기한 구조로 이루어졌지. 너도 자동으로 지식이 쌓이는 마족의 피를 이어받았다면, 이 정도는 응용해서 생각할 줄 알아야 하는 거 아냐?”
확실하지는 않지만 카를로스 주변에 흩뿌려진 페로몬은 주변의 이성을 끌어당기고도 남을 만큼 강했다. 모든 생명들은 자손을 번식해야 하기 때문에 갖춰진 체계라고 생각하지만, 카를로스는 그 설명을 듣고 나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너도 다른 여자들과 같은 생각이냐? 나에게 관심 있어서 온화하게 바꿔보라거나 그런 말을 하는 거지?”
나는 카를로스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글쎄. 과연 어떨까? 확실히 네 성격만 제대로 고쳐진다면 의외로 관심이 갈지도 몰라. 내가 물어볼 것은 네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지. 적어도 카를로스에게 있어서 나는 전혀 이상형이 아니잖아?”
“당연하…흐억!?”
나의 얼굴이 가까이 다가오자 헛바람을 들이키며 다급하게 고개를 뺀 것은 카를로스의 쪽이었다.
“너 그러고 보니 몽마로 각성했다고 했지! 너무 무시무시하네! 네가 가까이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놀라서 달아나려고 하잖아!”
나는 고개를 다시 들어올려서 카를로스와 거리를 벌렸다.
“카를로스의 몸은 정직하네. 내가 이상형이 아니라고 카를로스의 이성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만, 정작 몸은 나에게 반응을 한다라……. 그래서는 여자들에게 휘둘리고 사는 삶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야. 힘만으로 압도를 하는 것이 아니라, 매너와 분위기로 압도하는 방법이나 기르렴.”
카를로스는 나보다 키가 크지만 끝까지 어린아이처럼 대했다. 다른 이들이 오기 전까지 이곳에서 잠깐 쉬어볼 생각으로 마법 기동반 안에 있는 침대에 누워서 이비와 놀고 있을 무렵. 밀리아가 마법 기동반 안에 들어오면서 상당히 피곤한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아리엘. 학원장님의 일은 다 도와드린 거야?”
“별도의 지시가 있기 전까지는 대기하라고 했어. 그런데 왜?”
1인용 침대에서 2명이 누워있으면 비좁다고 느껴지는데. 밀리아는 서슴없이 내 옆에 누워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30분 뒤에 나 좀 깨워줘. 지금은 누구에게 들키고 싶지 않을 만큼 숙면을 취하고 싶어.”
“다른 침대가 있는데. 어째서 내 옆에 누워야 하는 건데?”
“끌어 안고 자는 베개로 좋으니까.”
이비는 밀리아로 인해 자신의 자리가 빼앗긴 것이 화가 난 듯 “삑삑!”하면서 작은 날개를 빠르게 퍼덕거리기 시작했다. 밀리아가 빨리 잠들 수 있도록 금빛의 파도물결처럼 되어있는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얼마나 피곤했는지 3분안에 새근새근 잠이 들기 시작했다. 밀리아가 방금 전까지 무슨 일을 했는지 궁금해서 꿈속으로 들어가 기억을 들췄는데.
정작 우리에게 와야 했던 서류의 산들이 학생회실에 옮겨진 것 이였다. 범인은 보나마나 켈모리아가 꾸민 일이겠지. 대체 무슨 일로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이 전부 학생회실에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그 많은 일들을 다 하느라 밀리아는 초췌한 얼굴로 그나마 나에게 위안받으면서 자고 있는 듯했다.
이비에게 부탁해서 껴안고 자는 베개로 변형하라고 한 뒤. 몰래 자리에서 나와 켈모리아가 있는 도서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켈모리아는 붉은 색의 묘한 차이나 드레스를 언제 갈아입었는지 잘 모르겠지만, 웃는 얼굴로 도서관에서 술을 마시고 있는 중에 나와 눈이 마주쳐서 흥얼거리던 콧노래가 끊어졌고, 성큼성큼 켈모리아에게 걸어오면서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어째서 저희가 처리해야 할 서류들이 전부 학생회실에 보내진 거에요!”
“그야. 일시적으로 권한을 줬으니 괜찮아. 그 많은 서류를 처리하려면 반반씩 나눠서 처리할 수 밖에 없거든.”
“반반이 아니라 20:80으로 배분해버렸잖아요! 학생회실은 거의 죽어나가는 분위기라고요!”
“그래도 이 술을 기다리느라 참지 못했다고? 아리엘도 마실래?”
“웃기지 마요! 이 술고래가! 그러니까 아직까지 시집을 못 가지!”
내가 말을 끝마치는 순간 서슴없이 날아온 푸른 손들이 나를 붙잡고 벽으로 몰아붙였다. 등에 거대한 충격으로 눈물이 핑 돌아서 “아팟!”이란 말이 자동으로 나오는 사이에, 어마어마하게 화가 난 켈모리아가 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내가 싫어하는 단어 중에 하나를 꺼냈구나? 뭣 때문에 시집을 못 가? 응?”
“마, 맞잖아요! 맨날 그렇게 일이나 떠넘기면서 술이나 좋아하니 남자가 좋아할 리가…. 어라?”
켈모리아는 나의 표정을 읽은 듯이 소리치며 외쳤다.
“너의 복장은 집사복장이다!”
“언제 옷을 바꾼 거에요! 당장 돌려놔요! 이 노처녀가!”
켈모리아는 나의 외침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의외라는 표정으로 얼굴을 가까이 대서 내 몸과 얼굴을 훑어 올라가기 시작했다.
“어라라? 저항이 오늘따라 더 심하네? 반항이 심한 집사는 주인님이 친히 벌을 내려야 하는 것이 맞겠지?”
어느 책에서 본 상황극을 이곳에 실현시키려는지 잘 모르겠지만, 애석하게도 켈모리아가 소환한 손들에게 붙잡혀서 포즈가 강제로 고정되기 시작했다.
“레이나가 흑장미를 찍을 만한 소재를 가져다 달라고 했는데, 곧바로 촬영할 줄은 몰랐어. 그러니까 예를 들어서 와이셔츠의 단추를 하나씩 풀며 찍는다면….”
몸 안으로부터 복받쳐오는 수치심에 눈물이 나기 시작하면서 나는 절규하듯 외쳤다.
“싫어! 제발! 그만 찍어!”
“무슨 소리야 아리엘? 나에게 험한 말을 한 벌은 받아야지.”
그에 비해 켈모리아는 웃는 얼굴로 내 옷에 손을 대려고 할 때.
-끼이이이익
회색 빛의 코트를 입고 멍하니 나와 켈모리아를 바라보는 카일 씨가 잠깐 동안 멍하니 있었다. 그리고 상황이 파악 되었는지 나를 구하기 위해…….
“실례했습니다.”
“구해줘야지! 어딜 가는 거에요! 카일 씨!”
독백은 구하기 위해 움직였다고 말을 하려고 했는데, 세상은 역시 내 생각대로 되지 않는 것이 법칙인가보다. 사실상 카일 씨는 상당히 귀찮은 표정으로 연관되지 않기 위해 자리를 피하는 쪽으로 선택했지만, 켈모리아는 “그러게. 남자가 어린 소녀를 버리고 가면 안 돼.”라고 나의 말에 동조해줬다.
켈모리아는 나를 놔주고 카일 씨에게 가서는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진전이 없나 보네? 이런 곳으로 찾아올 줄은 꿈에도 몰랐어.”
그러고는 카일 씨와 이야기를 하는 와중에도 켈모리아는 이리저리 카일 씨의 몸을 만지면서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기 시작했을 무렵.
“하멀 씨가 준 사진에 이상한 남자가 찍혀있었거든요. 그런데 지금 뭐하세요?”
“음. 대략 잘 알았어.”
-따악!
느닷없이 바뀌어버린 카일 씨의 복장은 순백의 메이드 복과 금색의 긴 생머리를 하고 있었다. 아까 나의 복장을 바꾼 마법을 카일 씨에게 시전한 모양이지만, 정작 본인은 알아차리지 못하고 “뭘 잘 알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손가락은 왜 튕기시는….”이라고 어벙벙한 얼굴로 말했다.
그건 그렇고 매끈한 다리에 하얀 스타킹은 너무 매력적인 것 같고, 아직까지 미숙한 메이드의 모습이 카일 씨에게 나타나는 것 같아서 군침이…아니. 어째서 군침이 나는 걸까?
“너의 복장은 메이드 복이다!”
“멋대로 내 옷을 바꾸지 마! 가발도 씌우지 마!”
당혹스러운 얼굴로 켈모리아에게 소리치는 모습이 내 눈에 비춰지자, 너무 귀여운 나머지 지금 당장이라도 집에 데려가서 봉사를 시키고 싶었다. 그렇네. 우선 마사지부터 해달라고 할까?
“자. 아리엘! 이제 흑장미에 나갈 포즈를 찍을 거니까. 카일을 쇼파 위에서 덮쳐 누르도록 해.”
흑장미에 나갈 포즈라니. 그래도 평화와 평온한 일생을 사랑하는 카일 씨에게는 너무 크나큰 상처가 되지 않을까? 이렇게 망설이는 와중에 켈모리아의 텔레파시가 불쑥 나를 찾아왔다.
[이번 백장미 18호도 같이 찍는 건데 내가 덮쳐 누르기 전에 하는 것이 좋을 꺼야.]
켈모리아에게 지금의 카일 씨를 넘겨줄 바에는 내가 직접 하는 것이 좋을 거라고 마음을 먹었을 때. 메이드 복을 입은 카일 씨가 두려운 얼굴로 자세를 낮추면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정말이지…….
“카일 씨. 너무 반칙적으로 귀엽잖아요!”
“잠깐! 뛰어들지마! 으아아악!”
지금의 카일 씨를 1분이라도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덮쳐 누른 이후, 귀에 바람을 불거나 핥으면서 정신 없는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나의 끊어진 이성의 끈이 다시 이어져서 수복했을 때는 세상이 살기 싫어진 듯한 얼굴로 허공만 바라보고 있는 카일 씨의 얼굴을 직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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