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멜롯 마법학원의 비서 - 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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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몬드에게 고백을 받고 답장을 줘야 한다고 생각은 하지만, 막상 내 상황으로 되고 보니까 받아들이거나 거절하는 것이 상당히 껄끄러운 선택지였다. 다른 곳에서는 “왜 저런 남자가 좋아한다는데 거절을 하는 거지?”라고 생각을 한 날도 있었는데, 내 차례가 되고 보니 이제서야 납득이 가기 시작했다.
“아리엘 씨도 저를 좋아하시나요?”
이렇게 당황해본 적은 내 인생에서 없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에 와서 처음으로 당황하고 있었으니, 나의 언동이 레이몬드에게 이상하게 보이지 않을까? 아니면 이미 이상하게 보일 거라 생각한다. 리첼이 나에게 기습적으로 고백을 한 것은 여자끼리이기도 하고 장난치기 위해서 그런 거니까 안 받아주는 것이 가능해도, 지금 레이몬드의 경우에는 너무 진지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고백 안받아주면 울 거야.”라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애절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건 잘 모르겠어요.”
애초에 나는 이상형도 생각한 적이 없고, 인간의 정기를 흡수하는 몽마라서 생각을 하는 거지만, 지금 레이몬드와 교제를 허락한다면 기필고 레이몬드가 위험하게 될 테니까. 나는 그저 준비가 안 됐다는 말을 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지금은 제가 해야 할 일이 많이 남아있어요. 어쩌면 위험한 일에 매번 뛰어드는 제 성격상 먼저 죽어버릴지도 모르죠. 그래도 이건 레이몬드를 싫어해서가 아니라 걱정하기 때문에, 지금은 그 고백을 받아드릴 준비가 안 된 거에요.”
레이몬드의 표정은 그리 어둡지는 않았다. 의외로 거절을 예상했는데 보류처리를 한다는 나의 말을 듣고 안심을 한 모양.
“저는 아리엘이 곧바로 거절할 줄 알았는데 가능성이라도 있다는 사실이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해요.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본다는 조건으로 따지면 저도 연인이 될 수 있겠죠?”
나는 멋대로 생각을 하라는 의미로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은 그나마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위기를 벗어났다고 생각하니까. 사실상 크로우가 나를 무자비하게 범하려고 들었던 것보단, 누군가의 좋아한다는 고백으로 고민하는 것이 더 좋다고는 생각한다. 적어도 고백을 거절한다고 해서 생명에 지장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
“멋대로 생각하세요.”
서류를 모두 정리해서 레이몬드에게 넘겨주고 켈모리아가 있는 도서관에 다시 같이 올라갔다. 다시 도서관으로 올라가는 이유야 레이몬드를 다시 행정학원으로 돌려보내기 위한 마법진을 가동시키기 위해서였다. 그런 와중에도 레이몬드는 나에게 끝까지 확인할 것이 있는지 입을 열기를….
“아리엘은 아까 저의 모습이 어른스러웠다고 생각하나요?”
“아까 고백한 거 말이죠? 저번에 아이 같다는 말 때문에 약혼까지 생각한 거로군요.”
과연.
어째서 약혼 이야기와 더불어 고백을 한다고 했더니, 레이몬드는 어른스러움이란 것을 자신이 더욱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방향을 삼아, 말하고 행동한 것에 대해 해답을 찾으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제가 어른스러워지기 위해 마음에 없는 고백이나 약혼을 하는 사람은 더더욱 아닙니다. 오히려 저는 아리엘을 놓치고 싶지 않거든요.”
“그건….”
“헤에. 그렇구나.”
나와 레이몬드가 느닷없이 끼어든 제 3자에 의해 비명을 지르고 목소리가 나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을 때, 흥미진진한 눈으로 보고 있는 켈모리아는 느닷없이 나의 손목을 붙잡아 끌어당겨서 입술을 겹치기 시작했다. 그보다 꼭 키스를 할 필요가 있냐!
“지, 지금 미쳤어요? 뭐 하는 거에요!”
내가 폭언을 퍼부어도 능글맞은 얼굴표정으로 레이몬드를 바라보며 도발하듯이 켈모리아가 소리쳤다.
“하지만 아리엘은 누구에게 주지 않는다고 마음 먹었는걸? 행정학원장의 아드님께서는 나에게서 아리엘을 빼앗을 수나 있을까나? 당연히 아리엘은 우리 집에 살기 때문에 접촉시간이 많은 것도 나고, 이렇게 가다가는 레이몬드에게 승산이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레이몬드는 꽤나 충격적이었는지 한번에 대답을 하지 못하고, 잠깐 사고가 마비가 된 듯 눈을 크게 뜨고 보고 있다가 겨우 정신을 되찾아서 입을 열기 시작했다.
“켈모리아 학원장님은 쾌락주의자라고는 하지만 남녀를 불문할 정도였군요. 하지만 저는 반드시 아리엘을 되찾을 겁니다. 저에게 있어서는 가장 잘 어울리는 방법으로 말이죠.”
“그래. 좋아. 하지만 실패하면 나에게 장가와야 하는데. 어때?”
판이 너무 커지고 있다.
이쯤에서 둘 다 아예 없는 일처럼, 아니 농담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선수를 치도록 하자.
“모두 그만둬요! 난 누구의 장난감도 물품도 아니니까!”
둘 사이에서 내가 그렇게 소리치자 레이몬드는 잠깐 고개를 흔들어서 아직까지 찾지 못한 이성을 되찾기 시작했고, 켈모리아는 “왜 그래? 아리엘?”이라며 제차 물었다. 아무 말을 하지 않는 레이몬드를 놔두고, 켈모리아에게 고개를 돌려서 나는 물음에 답을 했다.
“저를 조건으로 내기를 걸지 말라는 소리에요! 이 변태 학원장아!”
“헤? 그래도 변태라는 소리를 들으니 이건 확실하게 집고 넘어가도록 하지. 나는 변태가 아니야. 신사일 뿐이지.”
“무슨 신사에요! 다 큰 여자가 헛소리를 3중주로 하지 마세요!”
당차게 소리치면서 항의하고 있는 나에게 검은 뱀의 형태로 찾아온 세피르가 내 몸을 휘감고 올라와 내 팔에 똬리를 틀었다. 세피르가 나에게 찾아왔다는 것은 정찰임무가 끝났다는 소리가 된다.
[오늘도 아리엘의 품은 포근하구나.]
[왼쪽 팔에 똬리를 틀고 자리잡았으면서 어느 걸 착각하는 거야?]
내가 세피르에게 텔레파시를 보내는 동안 레이몬드는 작별인사를 하기 시작했다.
“그럼 저는 이만 가보도록 할게요. 아리엘. 만약 꿈에서 볼 수 있다면 만나도록 하죠.”
“우와. 소름 끼치는 이별의 대사다.”
레이몬드가 나에게 작별을 고하는 동안, 켈모리아는 닭살이 돋는 나머지 몸을 움츠리고 머리카락과 드레스까지 떨고 있었다. 마법진 위에 올라서서 서서히 형체가 사라지고 있는 레이몬드의 마지막 모습까지 본 뒤에서야. 세피르는 텔레파시가 아닌 직접 입을 열어 말하기 시작했다.
“레이몬드라는 사람은 아리엘을 너무 좋아해서 탈이네. 그보다 몽마라는 사실은 말해둔 거야?”
“말해도 듣지 않으니 어찌하겠어.”
언젠가는 이 우유부단한 성격을 고쳐야 할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다른 일에 집중을 하는 것이 더 좋다고 판단하고 켈모리아에게 입을 열었다.
“따로 할 일은 없어요?”
“응. 없어. 다 끝내놨으니 조금은 쉬어도 괜찮을 거야.”
세피르는 어느 사이에 내 팔을 붙잡은 소년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붉은 눈을 하면서도 순진한 얼굴을 가진 소년은 뭐가 그리 좋은지 웃으면서 내 팔을 놓지 않았고, 세피르에게 다음과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그래서 빅터와는 어디까지 진도가 나간 거야?”
“그걸 네가 어떻게 아는데?”
“나와 아리엘은 사역마의 관계로 일부는 공유하고 있거든, 그래서 지금 아리엘에게 가득 차있는 정기를 추측 하는데, 현실은 아니더라도 꿈속에서는 끈적하게 맺어졌나 보네?”
“시끄러워. 더 이상 추측하려고 들면 네 날개를 뜯어서 닭과 같이 튀겨버릴 거야.”
세피르는 나의 한마디로 전혀 다른 주제의 말을 꺼내기 시작했으니.
“오늘은 아리엘과 같이 쉬고 싶은 걸? 나의 응석은 받아줄 거지?”
이렇게 보면 세피르는 인큐버스를 떠나서 그냥 응석을 잘 부리는 남동생과 같은 이미지였다. 뭐만하면 붙어있으려고 하고 끌어 안고 있으려고 하니까. 게다가 내 무릎을 베개로 삼아 자는 걸 좋아하는 걸로 보면 그냥 어린애가 아닐까?
본 모습은 키도 크고 멋진 미남이었는데.
“아리엘은 인기가 많으니까 이렇게 같이 있는 것도 힘드네.”
내 허리를 붙잡고 나를 위로 올려다보는 세피르는 천진난만하게 웃으면서 내 체취를 힘껏 들이마시는 듯 고개를 내 몸에 파묻었다. 이렇게 보면 정말 어린아이가 따로 없군. 나는 세피르와 같이 도서관에 있는 쇼파에 앉았고, 세피르는 쇼파에 누워서 내 무릎 위에 머리를 올려놨다.
“얼마나 그리웠는지 몰라. 떨어지니까 하루가 1년 같이 느껴져.”
“아직 하루는 안 지났어.”
나도 누워서 쉬고는 싶었지만 지금은 나를 대신해서 고생한 세피르를 먼저 쉬게 해주고 싶었다. 정찰임무는 본래 내가 나가야 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비와 세피르가 내 대신 나갔으니까.
그런데 이비는 어디 있지?
“삑삑!”
내 오른쪽 어깨에 언제 왔는지 모르는 작은 뱁새가 울기 시작하면서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있었다. 이비는 내 볼에 자신의 머리를 문지르면서 친밀감을 확인하듯 다시 울기 시작했고, 지금에서야 쉴 수 있다는 안도감이 나의 눈을 천천히 내리기 시작했다. 무거워진 눈 때문에 잠깐 감겼을 뿐인데. 커다란 종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하면서 다급하게 눈이 떠지자, 푸른 하늘은 어느덧 노을이 자리잡아 주변을 주홍빛으로 물들이고 있었고, 내 무릎 위에서 자고 있는 세피르와 내가 눈을 뜨자 동시에 일어난 이비가 내 옆에 있었다.
“아르트리옴. 뭐해요?”
“그야 너도 피곤하니까. 네가 쓰러지지 않게 어깨를 빌려주고 있었지. 어떠냐? 이 오라버니의 지극정성이? 너도 곧 나에게 시집오고 싶어할 거야.”
“그런 쓸 때 없는 말만 하지 않았어도 아주 조금은 감동받았을 거에요. 그보다 실례했….”
분명 실례했다는 말을 하기 위해 오른쪽으로 쏠린 몸을 일으켜 세우려고 했는데, 아르트리옴은 오른손으로 나의 머리를 살며시 누르면서 더 기대라고 무언의 허락을 했다.
“지금은 이게 편하니까 이러고 있는 거 아냐? 너도 가끔은 쉴 때도 있어야지. 그렇게 몸이 상하도록 일하면 누가 봐도 걱정이 될 거야. 그리고 검은 높새바람은 늘 가까이 있으니까 무리하면 그 빈틈에 찔려서 당할지도 모르니까. 언제까지 이 오라버니가 너를 지키고 있을 보장은 없으니, 제대로 관리하면서 충분한 휴식을 취하도록 해.”
“충고는 고맙지만 이미 저는 충분히 쉬고 있어요. 다만, 검은 높새바람은 이번 학원제를 통해 또 한번 나올 것 같으니 문제네요.”
“체육대회 이후에 학원제니까. 보통은 체육대회를 더 노리겠지.”
혼란스러운 틈을 타서 이곳에 무슨 일을 할지도 모르니까. 지금 하고 있는 미래에 대한 걱정을 덜어주는 건지 증폭을 시키는 건지. 아르트리옴은 나의 말을 듣고 덧붙여서 말하는 것을 반복했다.
세피르를 깨우고 켈모리아의 집으로 돌아온 나는 따듯한 물이 자동으로 채워져 있는 욕조 안에 들어가서 피로를 풀고 있을 때였다. 여전히 매끈거리는 피부를 적셔가면서 천천히 확인을 하고 있을 때.
“아리엘! 들어갈…아아악! 이건 뭐야!”
신기루의 병사를 미리 배치시켜서 세피르의 접근을 성공적으로 막아낸 모양이다. 현실에서는 마나를 써야 하고 꿈에서는 정기를 소모해서 기적을 이루어내는 나는 한 가지를 생각한다.
꿈속에 있는 환상을 만약에 불러낼 수 있다고 한다면.
“꽤나 무시무시한 일이 일어나겠지.”
“어떤 게?”
“그야 당연히…우아악!”
언제 내 옆에서 몸을 담그고 있는 켈모리아에게 벗어나려다가, 켈모리아의 얇은 팔이 내 목을 휘감으면서 탈출을 저지했다. 켈모리아는 나의 몸을 잠깐 보더니 음흉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며 입맛을 다시며 말하기를…….
“오호라? 그 동안 안본 사이에 많이 성장한 것 같은데? 일단 눈과 손으로 직접 확인을 해볼까?”
“그만! 그만둬어어!”
비명을 사방에 울리도록 지르고 질렀지만 도와주는 사람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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