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멜롯 마법학원의 비서 - 82
82
빅터가 단검을 잡은 손이 점점 약해지면서 이내, 힘 없이 쇳덩어리가 바닥에 나동그라지기 시작했다. 내 품 안에 고개를 박고 울고 있는 빅터의 고개를 살며시 감싸 안으며 위로해주는 것이 얼마쯤 지났을까? 겨우 진정한 빅터는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미안. 내가 너무 감정적이었어.”
“괜찮아. 남자도 사람이잖아. 감정이 있어야지. 오히려 빅터의 풍부한 감수성을 보며 다시 일어날 수 있다고 확신을 했으니까. 그 전에….”
그 전에 빅터가 나를 위해서 꼭 해줘야 할 일을 말했다.
“내 위에서 좀 비켜줄래?”
“어?”
-파악!
항상 우선적으로 생각해야 할 것이 있다면, 나는 아직 이상형에 대한 존재도 잘 모르겠고, 그렇다고 좋아하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도 아니었다. 빅터는 나에게 은인이라서 연애의 대상으로 볼 수 없으니까. 나는 빅터가 정신을 차리도록 도와주러 온 목적을 가지고 천천히 일어났다.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생각이었어? 다른 사람이 빅터를 봤다면 감옥으로 갔을 거라고?”
내가 매정하게 입을 열자 이제서야 빅터는 제정신으로 돌아온 듯. 얼굴이 살짝 굳어지면서 입을 열었다.
“확실히. 조금만 더 있었다면 나는 범죄자가 되었을 거야. 꼬마 아가씨의 외모는 평상시와 다를 것이 없는데 분위기가 다르다고 해야 할까? 뭔가 이상한 위화감이 나를 속박해버렸다고 해야 할까? 꽤나 복잡한 상황을 지금의 내 머릿속에서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네.”
“단순하게 매료되어 버린 거잖아. 그만큼 빅터는 정신적으로 너무 약화가 되어있어. 그리고…….”
쓰러진 의자를 다시 세웠다. 빅터는 이제 무릎을 꿇지 않고 침대에 앉아 마주보며 나의 말을 계속 기다리고 있었다.
“또 한 가지로는 내가 몽마가 된 것에도 영향이 있을 거야. 외견으로는 별 다를 것이 없다고 하지만, 내부적으로는 너무 많이 바뀌는 바람에 나도 머리가 아파. 나 또한 산전수전으로 다 겪으면서 고생하고 있어도 이렇게 나와서 움직이고 있잖아. 켈모리아의 비서라는 입장이기도 하고, 마법 기동반의 반장역할을 하는 것도 있고, 나는 나대로 힘내고 있어. 다음에는 어떤 부조리한 일로 인해 나에게 불행이 찾아올지 모르겠지만….”
“몽마라고?”
켈모리아가 릴리스에게 그 바보 같은 부탁만 하지 않았어도, 그나마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희망이 나에게도 있었지만, 지금 그 희망을 산산조각 내버리고 그나마 이런 몸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편하게 살지 생각하고 있는 중이다.
어쨌든 빅터는 나를 보며 눈이 커지는 것은 당연했으니, 대부분의 사람은 몽마라는 것은 대부분 꿈에서 나오기 때문이라고 굳게 믿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몽마의 고유능력 중 하나는 “몽마는 현실에서 존재하지 못한다는 고정관념을 사람들에게 심는 것.”이 다른 관점에서는 몽마의 최대 메리트가 아닐까?
“하지만 꼬리도 없고, 날개도 없고, 뿔도 없잖아.”
“시끄러워. 빅터는 그런 매니악한 사람이었어?”
“매니악하다기보단 보통은 다 그것부터 생각할 것 같아서.”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은 빅터의 상태가 계속 호전되고 있다고 하지만, 자신의 약혼자가 죽어버린 것이 대해선 트라우마로 남을 수 있었다. 따라서 적절하게 조치를 취해야 할 것 같으니 슬슬 본론으로 넘어가기로 했다.
“어떻게 해줬으면 좋겠어?”
“뭐가?”
“어떻게 하면 그 사람을 보내줄 수 있겠어? 마지막 말이라도 하고 싶다면 이루어줄 수 있는데. 마음속으로 담아두고 싶은 말을 한 번쯤은 해보고 싶지 않아?”
“하지만 현실이 아니잖아?”
나는 조금이라도 빅터가 이해했으면 해서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
“꿈이라서 가능한 거야. 지금의 나라면 빅터가 하지 못했던 그 마지막을 장식하기 위해 도와줄 수 있어. 분명 만나서 하고 싶은 말이 있을 수도 있고, 하고 싶은 일이 존재할 거야. 그 기회를 현실에서 하지 못하니까. 꿈에서라도 할 수 있게 도와주겠다는 소리지.”
“대가가 뭐야?”
빅터는 진지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며 물었고 미리 예상을 한 나는 단호하게 입을 열어 답한다.
“꿈에서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사람이 된 것처럼 돌아와줘.”
새로운 사람이 된 것처럼 돌아와달라는 나의 말 한마디에 빅터는 침대에 누워 입을 열었다.
“몽마는 내가 잠을 자야 본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거겠지. 하지만 애석하게도 나는 이미 잠에서 깨어버렸거든. 트릭스가 노크만 하지 않았어도 좋았을 텐데 말이야.”
능청스러운 빅터의 말과 행동에 단숨에 위화감이 들기 시작했다. 당혹감이 마음속을 먼저 지배하려고 할 때. 나는 천천히 물어봤다.
“요점은 뭐야.”
“날 재워달라는 거지. 동화책이든 자장가든 꼬마 아가씨가 할 수 있는 걸 다 동원해서 말이야. 하지만 꼬마 아가씨의 체격이라던가 내 이미지로 보았을 때는 다른 건 무리라고 생각해. 혹시나 다른 동료가 그걸 보기라도 한다면 나는 잡혀가는…커헉!”
빅터가 말을 하다가 고통의 목소리를 높인 이유는 내가 침대 위로 올라가서 배를 밟았기 때문이다.
“나를 꽤나 가벼운 여자로 보고 있네? 빅터!”
분노로 억누르고 있는 나의 목소리가 빅터의 방을 조용히 가로질렀다.
“쿨럭! 쿨럭! 저기…? 그런 난폭한 방법으로 재워주는 건 사양인데?”
빅터가 용서를 구하듯이 부드럽게 웃어가면서도 배를 강하게 밟힌 탓인지 기침을 하고 있었고, 다시 빅터의 배를 거칠게 쓰다듬는 듯이 내 왼쪽 발바닥으로 쓸어 내리는 동안 천천히 입을 열기로 했다.
“확실히 최면으로 재우는 방법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지만, 의외로 빅터는 기사라면서도 소녀를 보면 그것부터 생각하는 거야? 빅터는 자신이 슬픔과 절망에서 여자가 기운을 복 돋아주는 행동을 뭐로 생각하고 있는 거람!”
-파악!
“커흑! 잘못했어! 알았으니까! 최면이든 뭐든 재워줘!”
빅터의 말을 끝으로 빅터의 배에서 내 발을 치우고 그 옆자리 속으로 이불에 들어갔다. 거대한 꼬깔모자는 눕는 것에 방해가 되니까 침대 위로 치우고, 나와 빅터는 같은 베개를 베면서 눈이 마주치기 시작했다.
남녀가 서로 같은 침대에 있을 때 먼저 얼굴이 붉어지는 쪽은 남자일까? 여자일까?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둘 다라고 생각한다.
“최면을 걸어서 재우는 건 너무 난폭한 것 같아서. 빅터가 잠들기 전까지는 내가 이렇게 봐주고 있을게. 껴안고 자는 베개로 쓸 거라면 그렇게 해도 좋아.”
내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빅터는 나를 조심스럽게 안고 귓가에서는 “고마워. 아리엘. 정말로 고마워.”라는 말을 계속했다. 빅터가 잠든 것을 확인한 것은 5분정도의 시간이 흐를 때였을까. 나는 서서히 정신을 집중해서 빅터의 꿈으로 침입하기 시작했다. 본체는 현실로 놔두면서 빅터의 꿈으로 침투할 때. 서서히 시야가 밝아지고 내 눈동자에 비춰진 것은.
이름을 모를 묘비를 세우고 있는 빅터의 모습이었으니까.
“이곳에 또 오게 될 줄은 전혀 몰랐어.”
사람은 꿈을 꾸고 있을 때는 자신이 꿈이라고 잘 인식하지 못하는 이유는 나도 솔직히 잘 모르겠다. 다만, 이게 꿈이라고 인식을 하려면 상당한 정신력이 필요하고, 정신을 차릴 때는 현실을 받아들이는 눈동자가 본래 세계에 있는 천장을 바라볼 뿐이다. 다만, 몽마가 침입을 하면서 꿈속의 주도권을 빼앗아 가버리기 때문에, 정신을 차려도 꿈에서 깨어나올 수 없다는 것이 내 개인적인 생각이다.
꿈의 주도권은 ‘의지’가 강한 쪽이 잡는 거니까.
“그게 빅터의 상처니까. 이제 그 여자에게 이별을 말할 준비는 됐어?”
“그보다 어째서 꿈속의 아리엘은 성인처럼 성장을 한 거야?”
“그러게? 이건 빅터의 음흉한 사념이 모여서 나를 이렇게 변화한 것이 아닐까? 어쩐지 빅터를 바라보는 시선이라던가 어깨가 무거운 것은 성장을 했기 때문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는데, 어쨌든 이것도 결국 거짓된 모습이라고 생각해.”
빅터는 한 곳으로 시선을 집중하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얼굴을 붉히면서 고개를 돌려 서투르게 말하기 시작했다.
“아, 아리엘도 나중에 크면 그만한 장래성이 있다는 소리겠지. 다른 남자들이 그 모습을 보면 서로 차지하기 위해서 전쟁도 벌이겠는걸?”
“칭찬은 고맙지만 이미 몽마라서 성장하지 않는 그 외견대로 살아야 하거든. 어쨌든 기억을 살짝 엿본 뒤에 빅터가 이별준비를 할 수 있도록 준비해줄게.”
정기를 쏟아 부어서 만들어낸 진짜와 같은 가짜. 한 여성이 나타나서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좌우를 바라보다가 끝내 빅터를 바라보고는 반가운 기색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런 모습에 빅터는 쓴 웃음을 지으면서도 차분하게 다가가서 이야기를 하는 듯 보였으니. 나는 그 뒤에서 온 몸으로 덮쳐오는 한기를 인내해야 했다. 사실 빅터에게 껴안고 자도 된다고 말을 한 이유는 정기부족으로 고통을 받는 본체를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추울 줄은 상상하지도 못했는데.
결국 정기를 잃은 한기는 외부적인 요소가 아니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깨닫고, 꿈속에서라도 추위를 피할만한 도구나 장소를 찾는 건 포기하기로 했다. 몽마들이 자신의 정기를 일부 소모해서 다량의 정기를 얻는 삶을 사는 동안, 나는 다량의 정기를 잃어서 다른 이들이 꿈속에서나마 소원을 이루어주고, 소량의 정기를 받아가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이거 완전히 적자네.”
나는 쓸쓸하게 혼잣말을 하면서 빅터의 꿈속에서 제대로 하고 있는지 살짝 보았을 때. 서로 끌어 안으면서 뭐라고 속삭이고 있는진 모르겠다. 이미 쏟아낼 눈물이 없는지 빅터는 부드럽게 웃는 것이 전부였고, 내가 기억 속에서 끄집어냈던 그 여성은 서서히 사라지고 있었다.
지금은 내가 나를 걱정하는 것이 최선일까?
“아리엘? 괜찮은 거야?”
“괜찮아…. 그보다 잘 말한 거지? 이별에 관해서 말이야.”
“덕분에 잘 말했는데…. 고개 좀 들어서 말을 해봐? 아무리 봐도 괜찮아 보이지 않는다니까?”
어깨를 붙잡고 있는 빅터의 손으로 인해 내 몸이 불이 탈 정도로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이미 차갑게 식어버린 내부에서 외부에서 가져오고 있는 온기를 열렬하게 환영하는 반응. 지금 나의 몸이 말할 수 있다면 분명 “저 남자의 정기를 원해.”라고 소리치리라.
분명 여제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꿈속으로 들어간 후에, 초량 씨가 홀려버린 사고로 정기를 흡수했을 때는 빠르게 이성을 되찾아서 도중에 그만뒀지만, 지금은 빅터라서 그런지 내가 먼저 이성을 잃어버릴 것만 같았다. 몸이 갈구하면 정신은 점점 약해지기 시작하고 어느덧 허락해버리는 상황이 나오기 전에….
“지금은 내가 힘을 사용했기 때문에 잠깐 부작용이 생긴 것뿐이니까. 지금은 가만히 놔둔다면 괜찮아 질 거라고 생각해. 그러니 내 눈을 보려고 하지마. 큰일나니까. 지구용사 선가드가 널 잡으러 올지도 몰라.”
“선가드? 그게 대체 뭔데? 아리엘. 이상한 소리 하지 말고 고개를 들어.”
내 고개를 들어서 빅터와 눈이 마주했을 때.
꿈속에서라도 시간이 정지할 것만 같은 숨막힌 긴장감은 여전했다.
빅터는 나의 얼굴을 보며 느긋하게 말하기를…….
“괴롭다면 괴롭다고 말을 할 것이지. 너도 의외로 고집이 강하네.”
천천히 내 뺨을 쓸어내려 나의 턱을 붙잡은 빅터는 그대로 얼굴을 가져와서 나에게 입맞춤을 하기 시작했다. 꿈속에서 벌어지는 일은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이 아니니. 설령 그 이상이 진행된다 하더라도 어느 누가 알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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