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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리스가 잡화점을 감시한다는 명목으로 찾아온 지 1주일이 되었을 무렵. 그간 많은 일이 있다고 생각했으리라 예상했지만, 오히려 180도 다르게 평소와는 다를 것이 없는 일상을 살고 있었다. 그러니까 평소와는 다를 것이 없는 일상이라고 하는 것이 대표적으로 뭐가 있냐면...

 

주인! 짐의 음식을 먹어보거라!”

마스터. 저의 음식을 드시면 됩니다.”

 

늘 내 목숨은 사소한 이유로 나락에 빠지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다른 점이 있다면 데모르테는 자신이 쫓기고 있는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매우 여유롭게 루시피나가 따라주는 차를 마시면서 오후를 만끽하고 있는 것이었다. 양 옆에서 소녀들이 음식을 가지고 와서 자신의 것부터 먹어달라는 상황은 그 음식의 상태가 먹고 죽지 않는 전제 하에 낭만적이겠지.

 

지금은 전혀 낭만적이지 않으니까 문제다.

 

이래서는 카일이 정말 곤란하겠네.”

 

데모르테는 대체 레시아 교육을 어떻게 시켰길래 이 모양이 된 거에요.”

 

자신의 딸과 결혼한 사위가 장모에게 이런 말을 듣는다면 무슨 기분일지는 잘 모르겠지만, 데모르테의 경우에는 매우 유연하게 받아 친다는 선택지를 골랐나 보다.

 

그때 당시 레시아는 아주 어렸으니까. 스파르타식으로 가르칠 수 밖에 없거든. 마계는 약육강식의 세계인 만큼, 어린 마족이 살아가기에는 너무 힘든 시기였어. 게다가 레시아는 워낙 어여쁘니까 다른 흑심을 품고 다가오는 마족도 많았지. 그래서 나는 어쩔 수 없이 사자새끼가 벼랑 끝으로 내몰아서 던져버리듯이 혹독하게 가르쳤단다. 그래서 상당히 강해진데다가 마왕까지 되는 기적을 지금에서야 확인했지만, 강해지는 것에는 역시 대가가 있듯이 가여운 레시아는 요리를 전혀 할 수 없는 몸이...흐읍!”

 

마지막은 울먹거리면서 눈물을 훔치고 더 이상 말을 잊지 못하는 데모르테를 보며, 나는 전혀 다른 이유로 말을 잊지 못하고 바라보기만 했는데. 그 이유는 황당했기 때문이다. 어느 만화에서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다 잃은 대신 주먹 한방에 대부분 적을 몰살할 정도로 강해졌다는데.

 

확실히 지식의 괴물이라고 불리는 마족이 요리를 못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생각을 하는데, 애초에 요리를 못하는 것이 아니라 이상하게 하는 것이라고 표현하는 게 더 좋은 말이라 본다.

 

레시아도 처음 사역마로 소환한 당시에 요리가 취미라고 했으니까.

 

레시아에 대한 고찰은 이 정도로 하고 시나를 바라보며 이야기를 하자면, 음식에 수은이라도 부었는지 너무 눈부시게 빛났다.

 

시나. 그거 대체 뭐야?”

 

육포입니다.”

 

육포가 뭐 그리 빛이 나냐! 횃불로 써도 상관 없겠다!”

 

빛이 난다는 것은 그만큼 에너지가 많이 존재한다는 소리이고, 그 에너지는 빛과 열, 그리고 강력하면 강력할수록 소리에너지로 변환하는 무지막지한 상태가 있는데,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육포가 엄청난 빛을 내보이면서 웅웅!’하는 진동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분명 저건 집기만 해도 내가 타 들어가서 죽어버릴지도 몰라.

 

그 이전에 시나의 음식은 입에 넣고 사경을 헤맸다면, 지금의 시나가 나에게 주려고 하는 음식은 잡기만 해도 내가 살아있을지 의문이다.

 

나중에 루시피나에게 제대로 요리를 배우세요.”

 

안 먹겠다는 것인가!”

마스터. 실망입니다.”

 

아니 그럼 그거 먹고 죽으라고?

 

만화책에서 나오는 남자주인공은 아무리 여자주인공이 음식을 못 만들어도 먹어준다! 주인은 어째서 그런 상냥함이 없는 건가! 여자의 자존심을 나락으로 떨어뜨릴 생각인가!”

 

그건 먹고 죽지 않으니까 가능한 일이잖아요. 그리고 언제나 현실을 만화처럼 생각하면 안 되죠. 레시아는 루니아 누나의 요리를 담담하게 먹고 살아남을 수 있어요?”

 

. 그건 아니다.”

 

레시아의 요리가 지금의 루니아 누나가 한 요리와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되요. 시나의 요리도 마찬가지고.”

 

우우...”

 

시나까지 한꺼번에 그룹으로 지정해서 요리에 관해 한 소리를 했다. 시나는 곧 울먹이는 표정으로 바뀌면서 분한 감정을 볼을 부풀려서 표현했고, 나는 한숨을 길고 가느다랗게 쉬면서 다른 걸 생각하도록 하자.

 

마리아에게 아르트리옴에 관한 정보를 모아달라고 해야겠네요.”

 

나는 분위기도 바꿀 겸 다른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지금은 사키엘과 접촉할 수 없다면 마신에게 직접 들을 수밖에 없다. 목표는 크게 잡고 노는 것은 크게 노는 것이 좋으니까.

 

마신에게 이야기를 직접 듣는 것은 규율에 어긋나지는 않으니 말이지. 하지만 최근에는 마신이 어디에 있는지 행방불명이라는 소리도 있고, 아직 동면에서 깨어나지 않았다는 소리도 있으니까. 아르트리옴을 찾는 것은 꽤 오래 걸릴 거라고 생각해. 찾는다고 해도 정확하게 인지 할 수 있을까?”

 

찾기 힘들다면 찾기 힘든 거지만, 어째서 인지를 할 수 없다는 거지?

나는 데모르테에게 들은 말을 되물을 수 밖에 없었다.

 

마신을 보려면 특수한 의식이라도 해야 하나요? 신생아를 제물로 받치는 그런 거? 아무리 생각해도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 말이죠?”

 

그건 애초에 어디에서 나오는 끔찍한 방법이야?”

 

데모르테는 찻잔을 놓고 나를 어이없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평균적인 마신의 이미지라면 분명 엄청 사악하거나, 세상을 부수거나 멸망밖에 모를 줄 알았는데.

 

마신을 인지할 수 없는 이유는 자신이 원할 때, 그리고 원하는 상황에만 모습을 보일 수 있는 기묘한 능력 때문이야. 그건 단일이 될 수도 있고 전체가 될 수도 있지만, 그 능력이 껄끄러운 이유 중 하나가, 상급신 중에 일부만 아르트리옴을 찾아낼 수 있거든. 어떻게든 찾고 싶다면 방법이 없는 건 아니지만 상당한 희생을 해야 해.”

 

희생?

 

희생이라면 어떤 희생이죠?”

 

데모르테는 나를 천천히 바라보고 섬뜩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아르트리옴은 여자를 좋아하니까. 관심을 가지게 만들어야겠지?”

 

. 그냥 사키엘을 빼내보죠. 그게 더 편할 것 같은데.”

 

이상한 흐름으로 가기 전에 서둘러서 차단했다. 마신이면서 여자를 좋아한다는 소리를 듣는다면, 데모르테가 애초에 나를 바라보면서 이야기를 했다는 그 자체가 무시무시한 계획을 숨기고 있다는 소리니까.

 

그보다 어떤 사람이 아르트리옴을 감지할 수 있는 건데요?”

 

우선 천계의 1인자인 아우리스는 기본이고 생명의 여신인 비니스. 최근에는 의식과 무의식을 다스리고 있는 엘티노스가 있네. 어처구니 없게도 마신 아르트리옴을 위한 종교가 없으니 인간 중에서 아르트리옴을 탐지할만한 사람이 없어.”

 

마신에게 흥미를 보이고 이곳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무슨 일을 해야 하는가?

 

확실히 지금은 별 다른 방법이 없네요. 그보다 데모르테? 여장은 안 할거니까 음흉한 눈으로 보면 안 돼요?”

 

데모르테는 아쉽다는 표정으로 하얀 찻잔을 다시 들어서 입을 적시기 시작했다. 천천히 맞이하는 따듯한 햇빛은 봄이 이곳을 장악하고 있다는 기분을 확실하게 느끼게 해줬지만, 외출준비를 위해 회색이 잘 퍼져있는 코트를 오른손으로 집었다.

 

레시아. 시나. 따라와야죠. 켈모리아가 보낸 의뢰를 할 시간이니까.”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된 것인가?”

지금은 오전 11시이니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있을 거라 예상합니다만.”

 

레시아와 시나는 동물상태로 변해야 그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관찰하기 편할 거에요. 저는 이프리트와 윈디를 동화시켜서 켈모리아를 만나러 갈 테니, 검은 높새바람이 나타났다 싶으면 먼저 서로 알려주는 걸로.”

 

회색모자까지 쓰면서 내가 입을 열자. 레시아와 시나는 한 마음으로 이렇게 말했다.

 

남자 옷은 안 어울린다.”

남자 옷이 안 어울립니다.”

 

어째서!!!”

 

남자에게 남자 옷이 안 어울린다는 평가를 들을 줄은 몰랐다. 이게 전부 저주받아 마땅할 백장미 때문이야.

 

봐요. 오늘은 셜록홈즈 패션으로 입었다고요.”

 

짐은 그렇게 키가 작은 홈즈는 본적이 없노라.”

 

실물로 봤어! 봤냐고요! 제 키가 작은 걸 어쩌라고!”

 

최근 마리아가 가져다 준 드라마에서 셜록 역할을 맡은 배우의 키가 매우 컸습니다.”

 

제길. 키 큰 것들은 다 죽어야 해.

마리아는 내가 부재중일 때만 오는 건가? 나중에 잡화점 멤버들에 대한 행동을 제대로 조사해보자.

 

레시아와 시나는 먼저 가 있어요. 저는 이프리트 좀 깨워야 하니까.”

 

검은 고양이와 하얀 올빼미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면서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3층으로 올라가서 사키엘의 문 뒤쪽에 이불을 돌돌 말아서 자고 있는 이프리트였다.

 

이프리트. 이제 슬슬 일어나요. 가만히 놔두니까 2주를 그냥 내리자고 있잖아요.”

 

이프리트는 멍한 눈으로 나를 올려다 보면서 내 목을 감싸 안았다. 잠을 깨기 위해서는 이렇게 끌어 안아야 한다고 하지만, 정령왕이 인간의 모습으로 유희를 보낼 때는 겉모습으로는 정말이지 인간과 너무 똑같다.

 

“2주만이야.”

 

윈디는 어디 있어요?”

 

실피드는 카일이 부르면 언제든지 나타날 거야. 오늘은 내 힘이 필요해?”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노을이 생각나는 주홍빛의 머리카락이 내 볼을 간질거리고 있을 때. 이프리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내가 없는 사이에 무리하는 건 용서하지 않아. 다급할 때는 항상 날 부르도록 해.”

 

그때는 부르고 싶어도 적이 준비를 많이 했더군요. 그래서 맨 처음부터 도움을 요청하려고 왔으니까. 동화해주세요.”

 

이프리트는 내 몸 속으로 스며들어 사라지기 시작했고, 안에는 따듯한 온기가 서서히 퍼지기 시작했다. 정령을 몸에 담으면 징후가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이프리트의 경우에는 여름에는 더위를 느끼지 못하게 하고, 겨울에는 한기를 느끼지 못하게 하는 적응능력이 기본이라고 한다.

 

엘티노스가 적은 자서전에는 그렇게 적혀있었으니 그대로 말한 것뿐.

 

그럼 슬슬 출발해야지.”

 

다시 사키엘의 문 앞으로 다가가서 문고리를 잡고 비틀자. 내 앞에 펼쳐진 것은 마법학원에서 날아온 폭죽이 그대로 나와 부딪쳤다.

 

-! 파파팡!

 

불로 이루어진 보호막이 폭죽의 열기를 흡수하고 서서히 사라지면서, 마음속으로 이프리트에게 고맙다는 말을 남겼다. 나는 도서관으로 발걸음을 옮기면서 주변을 둘러보았는데, 수많은 인파는 각자 개인이나 단체의 목적을 위해서, 체육대회와 학원제를 관람하기 위해 온 것인데.

 

마법학원에 체육대회라고 해도 80%는 전부 마법에 관련된 종목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어서 와. 오늘은 마왕과 여신이 아니라 정령왕을 품고 왔나 보네?”

 

검은 드레스를 입고 가슴에는 거대한 꽃이 피어난 듯이 장식이 되어있는 세련된 모습이었다.

 

근데 그건 체육대회에서 꼭 입어야 할까?

나를 천천히 훑어 보면서 바라보는 녹안의 여성은 웃으면서 이런 말을 했다.

 

안 어울려.”

 

신경 끄시죠.”

 

나는 켈모리아가 보낸 쪽지를 던져주면서 신경 끄라고 이야기 했다. 켈모리아는 수리검처럼 빠르게 날아가는 쪽지를 손가락 2개로 낚아채면서 붉은 머리카락을 쓸어 내리더니, 은근히 나에게 기대하는 눈빛으로 말을 걸었다.

 

조만간 못 나와서 내 의뢰도 거절당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나를 많이 좋아하나 봐?”

 

그 동안 잡화점 멤버에게 반 강제적으로 갇혀 살았던 것뿐이에요. 이상한 소리 하지 마시고 검은 높새바람이 이곳에 숨어있는 것은 확실하죠?”

 

켈모리아는 확신에 가득 찬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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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 하세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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