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멜롯 마법학원의 비서 - 36
36
아까 노예 사냥꾼에게 문짝이 뜯겨나간 마차를 타고 가도 될 법했다. 말이 죽은 것도 아니고 인명피해는 이쪽에서 나온 것이 아니기 때문에, 마부도 살아있었으니 그냥 자연을 바라보며 가는 것도 나쁘지는 않았으나. 언제 니아 씨가 불러왔는지 모르겠지만 새로운 마차가 도착했다. 다시 마차를 타고 30분동안 이야기를 했을 무렵. 니아 씨는 온화한 미소로 내 쪽을 향하면서 질문을 던졌다.
“아리엘 씨는 따로 피부관리라도 하시는 것이 있으신가요?”
“아니요. 딱히.”
켈모리아가 그 이상한 검은 오일을 바르기 위해 날뛰는 것조차, 모두 피하면서 살고 있는 사람이다. 피부의 건강을 위해 오일을 바르던 뭐던 다 좋지만, 켈모리아가 한다는 그 자체에서 문제가 항상 돋보이기 마련. 피부 관리를 위해 팩을 하거나, 다른 시간을 들이기 위해 가만히 있는 시간이 존재하는데, 그 틈을 노리고 켈모리아가 항상 습격해오는 바람에, 요즘은 피부를 관리할 틈이 없다고 봐야 했다.
“그래도 매끄럽고 보드라운데 말이죠. 한번 팔이라도 잡아봐도 될까요?”
“네…. 뭐.”
나는 간단히 내 팔을 뻗어줬고 고스란히 잡은 뽀얀 양손이 내 팔을 쓰다듬듯이 움직였다.
“아. 역시 제가 생각한 감촉이 맞았어요. 부드럽고 매끈한 이 좋은 감각.”
“니아 씨의 손이 부드러운 것뿐이에요.”
허락하지 않았지만 어느 사이에 니아 씨의 뺨 위로 올라간 내 손의 체온을 느끼면서, 뭔가 행복한 표정이 되어가고 있었다.
“제가 여우 정령의 힘을 쓰다 보면 마음이 불안정해져서, 가끔 이렇게 품어주고 보듬어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거든요. 오늘은 아리엘 님께서 저와 함께하시니 정말 다행이에요. 안 그랬다면 불안증세가 심각하게 터져서 여우 정령이 폭주하기 때문이니까요.”
그거 왠지 다루기 너무 어려울 것 같은데, 대체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온 겁니까? 그러니까 여우 정령의 힘을 사용하면 마음이 불안정해지니까. 안정시켜주는 누군가가 필요하다는 소리라고는 한다면, 그게 안정제와 같은 약도 사용할 수 있지 않을까?
“어라?”
내 발 쪽에 뭔가 한 가득 있다고 감지할 무렵. 수 많은 여우 정령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흰색의 여우 머리를 하고 앞발이 있지만 그 뒤에는 연기처럼 피어 오르는 모습의, 작고 귀여운 정령들이 내 무릎, 어깨, 다리 등. 여러 곳에 포진을 하면서 내 몸을 점령하려고 했다. 세피르마저 [이 녀석들! 저리 가!]라고 텔레파시를 쏘았지만, 말을 듣기는커녕 나에게 더 달라 들었다.
“여우 정령들도 아리엘 님을 마음에 들어 하는 모양이네요.”
“니아 씨. 너무 마음에 들어 하는 거 같은데 이제 슬슬…….”
“아, 실례했습니다. 너무 오랫동안 하고 있었네요.”
내 손을 니아 씨가 놓아주자, 모든 여우 정령들이 전부 니아 씨의 몸 속으로 동화되듯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여우 정령에 대해 잠깐 생각을 한 나는 다음과 같이 물었다.
“니아 씨는 여우 정령을 소환하는 사람인데, 어째서 브레체투스 가문의 메이드로 일하고 있는 거죠?”
단순히 궁금해서 물어봤지만, 니아 씨는 밝게 웃으면서 그저 자신을 받아들여준 곳이 브레체투스 가문이라는 말만 했을 뿐. 어떤 연유로 들어오게 된 지에 대해선 자세하게 듣지 못했다. 거대한 저택이 보이고 곧 도착한다는 말을 들으며, 나는 곧 내릴 준비를 했는데 니아 씨는 나를 막으면서 입을 열었다.
“아직, 브레체투스 가문의 경비실일 뿐이랍니다. 이곳을 지나고 20분 정도 더 지나야 해요.”
잠깐, 경비실이라니?
저 커다란 저택이 전부 수비대를 위한 휴식실이란 소리인가? 아무리 봐도 저 테라스 밖에서 우아한 공작 부인이 차를 마실 것 같은 분위기인데? 애초에 경비실이라는 단어도 잘못 쓴 것 같다. 그냥 저택 하나처럼 보이는 거대한 규모를 방 하나 취급을 받는다니?
“그보다 여기서 또 얼마나 멀길래 20분이 더 걸린다는 소리죠?”
“조금만 가면 도착합니다.”
20분이라는 시간은 절대로 조금이라는 시간이 아니지만, 그래도 대화를 하면서 같이 나아가면 언젠가는 지나게 되어있다. 아무튼, 또 다른 하얀 저택이 나오고 나서 마차는 멈췄고, 브레체투스 가문의 문양은 행정학원의 문양과 동일한 금화동전. 성이 아니라 저택이란 점이 더 신기했고, 가장 신기했던 것은 저택의 크기가, 아까 경비실이라고 부른 막사처럼 생긴 수비대의 시설보다 더 작게 느껴졌다.
“어서 오세요. 아리엘 씨.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레이몬드는 하늘색의 와이셔츠와 회색의 정장바지, 그 위에는 검은 색의 정장조끼를 입은 상태로 웃는 얼굴로 나를 마중 나왔다.
“이번에는 사적으로 부른 이유가 뭔지 모르겠지만, 저는 여기서 무엇을 하면 되는 건가요?”
“제 작품의 모델이 되어주셨으면 합니다.”
그림을 그리기 위해 나를 부른 건가.
운영자금을 얼마나 받았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내 몸을 감싸고 있던 로브를 벗어 잘 포개어 접고 난 뒤에, 옆에 있던 니아 씨가 보관해주기로 했다. 레이몬드에게 인도를 받으며 올라갔다. 커다란 캔버스와 붓과 물감이 놓여져 있는 2층 방에서, 내가 앉아야 할 의자에 천천히 앉으며 입을 열었다.
“마법 무투제에서 저번에 카린 씨와 춤을 추셨죠? 꽤나 근사하게 잘 추던데요?”
“아. 감사합니다. 카린 씨가 저의 리드에 잘 따라와준 것도 있긴 하죠.”
내가 말한 의도를 아직까지 파악하지 못한 것인지, 아니면 일부러 대답을 안 하려는 노력인지 애매하게 대답한다면, 나는 더 이상 포장하거나 돌려 말하지 않고 직설적으로 질문을 해야 했다.
“그럼 레이몬드. 당신이 그때 카린 씨에게 준 목걸이는 뭐죠? 프로포즈를 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아닐 테고…….”
레이몬드는 내 앞에서 온화한 미소로 입을 열었다.
“하하! 카린 씨에게 프로포즈를 하는 순간 모든 국가에서 저희 가문을 제거하려고 할 겁니다. 엘티노스 잡화점에 의뢰할 물품인데, ‘영겁의 노래’라고 불리는 루멘의 마지막 유작이라고 불릴 수 있는 목걸이죠. 다만, 지금은 저희가 보관하기에는 너무 위험한 단계까지 와서, 어쩔 수 없이 카린 씨를 통해 잡화점으로 전달해 달라는 말만 한 것뿐입니다. 저희들이 잡화점을 찾으려고 해도 무슨 영문인지 찾지 못한 체 그냥 오는 경우가 다반사였거든요.”
“어째서 보관할 수 없는 단계까지?”
레이몬드는 그림을 그려나가면서도 나와 평온하게 대답을 해주었다.
“보관을 하고 있던 수비대원들이 요즘 이상현상을 겪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서요. 누군가가 자신에게 말을 걸고 있다거나, 환영이 보인다고 하는 그런 경우가 있다고 하더군요. 자신의 몸을 찾고 있다는 그런 소리만 남긴 체 말이죠.”
“몸을 찾는다고요? 그 보석에 망령이라도 들어가지 않는 이상, 그런 호러 소설 같은 이야기는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요?”
밑그림을 다 그렸는지 유연한 손목으로 팔레트에 물감을 섞고, 나를 다시 바라보면서 천천히 말하기를…….
“호러 소설의 이야기가 현실로 된 것은 아니지만, 보석에 망령이 들어간 것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군요. 기존의 망령이 들어갔다면 니아가 잘 처리했을 거라 생각합니다.”
나는 레이몬드의 부드러운 목소리를 듣다가, 드디어 정말로 물어볼 것이 생각나서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니아 씨는 여우 정령을 이용하던데, 어째서 이곳에 메이드를 하고 있는 거에요? 분명 이곳에서 메이드를 하는 사람은 아닐 것 같은데…….”
“저희 아버지가 니아 씨를 구한 것뿐입니다. 그 은혜로 저희 집에서 메이드를 하는 것뿐이고요. 게다가 니아 씨의 진짜 본 모습은 여우 수인입니다. 예전에 아랑이라는 여우 신령을 수호하던 사람 중에 하나라고 하더라고요. 엘티노스에게 봉인 된 이후로 여우무녀들은 뿔뿔이 흩어졌지만, 지금 니아 씨는 저렇게 보여도 꽤 오랫동안 살아온 분이십니다.”
얼마나 살아온 거지.
최소한 나보다는 오래 살아왔을 거라 생각하지만.
그럼 실제 나이는 몇 백을 넘었다는 것일까?
“그런데 어쩌다가 구해줬다는 거죠?”
“아버지께서 굶어 죽어가던 니아 씨에게 유부를 주셨거든요.”
먹을 거로 은혜를 입고 메이드가 되었다는 소리는, 정말 기가 막힐 정도로 어처구니 없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그래도 생명을 살렸다는 그 하나만큼은 변하지 않는 진실이니까, 그래도 좋게 좋게 만났다고 생각이 들었다. 인연이라는 것이 알고 보면 신기하기도 하고, 우연이라는 것이 생각 외로 가까이 있기 마련이니까.
“그보다 아리엘 씨는 옛날에 무엇을 하며 지냈나요?”
“애석하게도 전 과거에 대한 기억이 없어서.”
레이몬드는 나의 대답에 잠깐 말을 멈췄다.
“이거 실례했군요. 여성의 과거를 함부로 파해 친다는 것은 신사로서 도리가 어긋나는 행동인 게…….”
레이몬드는 나에게 사죄를 구하기 위해 입을 열었지만, 오히려 그것은 다른 의도가 있음을 파악하고 말을 잘라서 답했다.
“시치미는 때지 마세요. 남의 과거를 듣는 것만큼 친밀도를 확인할 수 있는 방법 중에 하나란 것은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제 과거를 파해 친다고 해서 기분이 나쁘거나, 제가 화를 낼 일은 없어요. 정말 저에 대한 과거가 단 1%도 기억이 나지 않는 것뿐.”
레이몬드는 진심이 담긴 “죄송합니다.”라는 말과 함께, 잠깐의 침묵의 시간이 찾아왔고 계속해서 붓을 휘두르며, 빼곡하게 색상을 채워나가기 시작하고 있던 시간은, 결국 모두다 지나가기 시작하면서 작품이 완성 되었는지, 크나큰 한숨을 내쉰 레이몬드의 표정을 바라보곤 나는 입을 열었다.
“다 끝났나요?”
“네. 조마조마 했지만, 다 끝났습니다. 고생하셨어요.”
“아뇨. 그림을 그린 것은 제가 아니니까요.”
언제나 정중하게 오고 가는 말을 한 뒤에 아직까지 1시간이나 남은 시간을 바라보며, 한동안 굳어있던 몸을 깨우는 듯이 기지개를 크게 피기 시작했다. 마법학원에 가기 전까지 남아있는 시간 동안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던 중…….
“그보다 아리엘 씨는 빅터 씨와 무슨 관계죠?”
나를 잠깐 휘청거리게 할 정도로 놀라운 질문이 심장을 뚫고 지나갔다.
“빅터는 왜?”
레이몬드는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사귀고 있는 것은 아니죠?”
“그건 아닌데…….”
설마 레이몬드로부터 나에게 고백을……할 일은 없고, 비장한 눈은 사랑고백을 위한 눈이 아니라, 진실을 토로하는 눈이라고 생각했다. 빅터가 나에게 숨기는 것을 알고 있듯이 해가 움직이면서 레이몬드의 머리카락을 황금빛으로 반사시키자, 레이몬드는 천천히 입을 열기로 했다.
“그 사람은 아직까지 행방불명이 된 약혼자를 찾고 있는 사람이에요. 자신의 입으로는 죽었다고 말을 하고 다니는지 몰라도, 저희 가문에 엘리트 정보원들이 말하는 결론으론, 그 여성은 아직까지 살아있다고 합니다.”
“그럼 다행이네요.”
나는 그리 말했다.
“다행이라고 말하신 의미는?”
뭔가 나를 이상한 눈으로 보고 있는 레이몬드에게, 눈을 마주하면서 확실히 말해둬야 할 것이 있다.
“말 그대로 다행이라는 의미에요. 행방불명 되던 사람을 추적하는 의미는, 그 사람이 어딘가에는 꼭 살아있다는 이정표를 남겼기에, 빅터는 지금까지 고생해서 유능한 수색대원이 되었잖아요? 당연히 빅터와 같은 남자에게 사랑을 받는 것은, 모든 여자들에게 있어서는 꿈과 같은 이야기지만, 빅터는 신념이 굳은 남자에요. 자신의 약혼자를 찾을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지 물불을 가리지 않고 찾으려고 할 테니, 저는 그 옆에서 응원을 해주던, 같이 찾아주던, 밟아주던 도와줄 마음이 있어요.”
“아리엘 씨? 밟아주는 건 어떻게 도움이 되는 거죠?”
“잊어요. 실언이니까.”
나는 나에게 약속한 것이 한 가지가 있었으니, 내가 나에 대해 정확히 정체를 알기 전까지는, 어는 누구의 사랑도 받을 수가 없다는 것. 다른 관점으로 말하면 내 진짜 모습을 알기 전까지는, 어느 누구와도 친구의 의미로 우정을 쌓을 수 있다는 소리다. 만약에 내가 투명 드래곤이었는데, 연애하고 결혼까지 하다가 진정한 모습으로 각성해서 투명해지면, 그 날로 이제 평범한 생활에서 안녕이라는 소리다.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해 그런 예시를 든 거지, 그렇다고 진짜 투명 드래곤이란 소리는 아니다.
그만큼 인간 관계를 많이 구축해 나가되, 너무 깊게 들어가면 골치 아파지는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라는 소리. 따라서 나는 빅터가 생사를 모르는 약혼자를 필사적으로 찾는 것에 대해 별 다른 생각은 없다.
그저 도와달라면 도와줄 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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