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 357
357
제자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알 수 없었지만, 4시간 뒤에는 치유고 뭐고 없는 충격과 공포의 현장에서, 몸도 마음도 갈기 갈기 찢겨나가는 기분과 함께, 잡화점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누군가는 말했다.
‘모든 경험이 너의 발자취가 되어줄 것이다.’라고...
하지만 루니아 누나의 기사단 숙소에서 겪은 일을 생각해보니, 그 말은 확실하게 틀렸다는 말이 확실했다. 모든 경험이 발자취가 되다가, 나락으로 떨어지는 이정표가 되기 전에, 나는 다시 정신을 차리고 이성을 되찾아야만 했다. 목에 붉게 물들어진 키스마크를 우연히 내 앞에 걸려있던 거울을 통해 알아차렸지만, 지금은 그게 문제가 아니라 그런 꼴사나운 모습까지 백장미에 찍어서 실어 보낸다는 헛소리가, 직접적인 정신 공격을 자행하고 있는 까닭에 새해에 선물로 받았던 ‘신년 한숨 패키지’를 풀고 한숨을 내쉬어야만 했다.
“그래 놓고 뭐가 “아슬아슬하게 찍어서 내보내는 것뿐이에요오.”냐. 완전히 지배를 당한 꼴이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 대륙에서는 카멜롯을 통틀어 조심해야 할 여성이 3명인데, 하나는 루니아 누나고, 한 사람은 켈모리아, 그리도 또 다른 사람은 하멀 씨의 아내인 레이나 레이비스라고 불리는 여성이다. 이들은 귀여운 것을 보게 되면 매우 강한 소유욕구와 함께, 남녀를 불문하고 귀여운 대상을 엉망으로 만들고 싶어하며, 성희롱의 빈도수가 매우 높아지고, 최후에는 습격한다고 전해지는 정체불명의 환상체들이다.
“주인. 아무리 충격이 강했다고 한들 어디 회사에서 나올법한, 괴물들을 지칭하는 말을 사용하지 말거라. 그건 그렇고 남들이 하지 못할만한 경험을 했다고 생각하고, 자신이 좀 더 특별한 존재라는 사실을 부각하는 것으로, 천천히 마음을 달래고 위로한다면, 나중에는 짐과 잤을 때도...냐아아아아아앗!”
“아주 그냥 불에 타고 있는 집에 운석이나 떨어뜨려라! 같이 자긴 뭘 자! 따지고 보면 레시아가 이 모습으로 바꾸고 고양이 귀까지 덤으로 씌워버리는 바람에, 평생 경험하지도 않아도 될 일을 ‘체험! 삶의 현장’마냥 당해버렸잖아!!!”
언제부터일까? 내가 레시아의 귀나 꼬리를 잡아당기지 않겠다고 맹세를 한 것이. 나는 마음속으로부터 그 맹세를 깨버리고 검은 고양이의 귀를 잡아서 늘리기 시작했다. 계속해서 울부짖는 레시아의 목소리가 초음파를 뛰어넘어도, 1분간 집행을 계속하면서 시나는 뭐라 말을 걸기 위해 가까이 갔지만,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가만히 내 옆에 멀뚱멀뚱 보기만 했다.
“당장 로보토미에 연락해서 루니아 누나를 가둬달라고 해야지.”
“마스터. 이 곳에는 로보토미란 시설이 없습니다.”
땅바닥에 쓰러져있는 레시아를 뒤로하고 시나에게 고개를 돌렸다.
“따지고 보면 너도 아무것도 도와주지 않았잖아!”
“마스터. 아픕니다. 그만해 주세요.”
하얀 올빼미를 덮는 바다 빛의 손 하나가 아이언 클로를 시전하는 동안, 담담하게 통증을 호소하는 시나는 말과 다르게 날개를 이리저리 파닥거리고 있었다. 다시 1분의 시간이 지나자 검은 고양이와 하얀 올빼미는 보기 좋게 쓰러진 상태였고, 천천히 불어오는 미풍을 감지하며 전방을 주시했다.
“이야! 카린 씨! 카린 씨의 모습을 루니아 씨에게 바로 보여줬더니, 4시간째 행방불명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왔습니다. 그나저나 마왕님하고 여신님은 왜 바닥에서 자고 있을까요?”
“글쎄? 바닥이 더 좋아서가 아닐까?”
윈디는 내 살기를 감지하고 잠깐 뒤로 몸을 이동했다. 내 눈을 마주한 여린 호박 빛의 눈이 서서히 떨리기 시작하면서, 아주 천천히 뒤로 이동하기 시작했지만, 나는 공간을 접어서 윈디의 바로 앞에 도달한 뒤에, 더 이상 뒤로 도망가지 못 가도록 내 오른손은 윈디의 어깨에 놓고, 더 이상 뒤로 도망가지 못하게 붙잡았다.
“내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를 못하는 것이 단 한가지가 있어. 그게 뭔 줄 알아?”
“저기. 카린 씨!”
“내 이름은 카일이란 말이야!!!”
“우아아아아아악!
-2분 뒤.
“큿! 카린 씨! 안 돼요...그 이상은...그 이상 저를 밟으시면...아흑!”
“어머나~ 밟히는 것이 그렇게도 좋은 걸까나? 여전히 칠칠치 못한 변태 정령왕이네!”
“카린 씨! 절 좀 더 매도해 주세요! 더 강하게 밟...”
-다시 2분 뒤.
분노로 인해 머리가 장악 당하는 사이에, 내가 무슨 말을 내뱉었는지 모르겠지만, 정신을 차려보니 윈디의 허리를 밟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강하게 짓밟은 것도 아니고 그냥 꾹꾹 눌러서 괴롭힌 모양이었는데, 윈디에게는 오히려 그게 마사지라도 되었는지, 행복에 젖어서 해롱거리고 있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무튼 최종적으로 일을 꼬아버리게 만든 3명이 사이 좋게 바닥에 쓰러져있었다.
어느 정도 기분이 풀렸는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지만, 맨 처음부터 베니를 불러서 껴안고 있었으면 좋았을 것을.
“베니. 이리로 와.”
베니는 내가 부르는 소리에 특유의 마찰음을 흘리며, 공처럼 튀어오기 시작했고 마침 거대한 몸을 가진 팔랑크스가 쿵쿵거리며 오기 시작했다.
“카린. 오늘 방어작업도 완료했음.”
방어작업? 보수작업이 아니라?
여전히 입 위는 철 덩어리로 이루어진 얼굴을 보며 나는 말했다.
“방어작업이라니? 네가 항상 하던 것은 잡화점의 보수작업과 재고정리였잖아?”
“오늘. 어린 아이들이 잡화점에서 돌을 던지며 놀고 있었음. 카린이 없는 그 4시간동안 나는 그 아이들과 처절한 사투를 해야만 했음.”
“고작 어린 아이가 돌을 던진 것 가지고 잡화점이 무너지지 않아. 그냥 무시하거나 겁을 줘서 내쫓으면 그만이었잖아? 뭘 그리 어려운 일이라는 듯이 나에게 보고를 하는 거야?”
팔랑크스는 눈에 불빛이 나더니 이윽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 꼬마들은 잡화점에 돌을 던지는 이유가, 귀신이나 괴물을 자극시키면 나온다는 속설로 온 것이었기 때문임. 따라서 나는 그 아이들에게 문을 열고 다가가 마나를 모아서 포격마법으로 대응함.
...?
“그러니까 너는 아이들이 돌을 던진단 이유로, 아이들 앞에 다가가서 영거리 포격마법을 그냥 날려버렸단 소리네?”
“정확함. 역시 이해력이 높음.”
나는 베니를 안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머릿속에 비상이 걸린 듯이 소리쳤다.
“어린 아이들 상대로 영거리 포격마법을 왜 날려! 그 애들 지금 살아있기는 하냐! 어째서 잡화점에 돌을 던지고 있는 어린 아이들에게 삼도천 편도 티켓을 끊어줬냐고 묻잖아!”
팔랑크스는 무감정적으로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괜찮음. 살아있음. 포격마법이라고 해도 비살상으로 설정했었음. 그런 어린아이들 상대로 나의 전력을 다 할 필요도 없음.”
“애초에 살상이든 비살상이든 애들이 다치는 것은 똑같잖아. 다음부터는 그냥 겁만 줘. 포격마법을 사용해서 피해를 줄 필요는 없으니까.”
“숙지했음.”
그래도 다행이 인명피해 없이 끝났다고 해서, 허브티를 마실까 생각을 하던 찰나에, 레시아는 천천히 카운터 위로 올라와서 입을 열었다.
“그보다 주인의 제자들은 어째서 루니아에게 진 것인가?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짐의 예상은 적어도 20분동안은 버틸 줄 알았는데?”
“그거야 기세에 눌려서겠죠. 루니아 누나는 전적이 궁금해질 정도로 진 적이 없는 최고의 검사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라니까요? 언제 연습했는지 모르는 클레이모어를 그렇게 자유자재로 휘두르는 사람은 처음 봤어요. 물론 누나의 검과 옷에 중급마법피해 무효라는 어디서 꺼냈는지 모르는 코팅까지 해왔으니. 제자들의 마법은 상급마법위주로 해야 하는데, 애석하게도 그런걸 맞아 줄 리가 없잖아요?”
나도 몇 번 루니아 누나와 검을 부딪쳤지만, 대련만큼은 절대로 봐줄 리가 없다. 마치, 거대한 성 하나를 혼자서 돌파하는 기분을 맛보게 되는 절대적인 방어와, 한 번이라도 맞으면 명계로 이사가야 할 법한 공격, 신조차 속일 수 있는 뛰어난 속임수은 어떻게 이겨야 하는 것일까?
“말 그대로 루니아 누나는 이상한 성격만 빼면, 제대로 이길 수 있는 사람이 얼마 없을 거에요.”
나도 대련을 했을 때는 지기만 했으니까.
-딸랑딸랑!
손님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시나와 윈디까지 일어났다. 나는 베니를 머리 위에 올려놓은 상태에서 손님을 맞이하려고 보았더니, 왠 괴상한 새 부리 가면을 쓴 검은 코트를 입은 사람이 입을 열었다.
“약 하나만 주시오. 페니실린이라고 했던가? 그게 좀 필요하오.”
애초에 흑사병을 치료하러 떠나야 할 것 같은 의사가, 왜 여기서 페니실린을 찾고 있는 것일까? 문제는 이 잡화점에 있는 물품이 대체 어디서 가져왔는지 모르겠지만, 페니실린이라는 의약품마저 팔고 있다는 것이 사실이다.
“항생제가 필요할 정도로 위급하나 보네요. 4골드입니다만...”
“골드? 오! 이런! 이곳에는 통화가 좀 다른가 보군요. 그보다 당신은 어떻게 우리나라 말을 사용할 줄 아는 거죠? 처음 보는 환경과 처음 보는 여성분임에도 불구하고, 고양이 귀는 진짜 같은데?”
“고양이 귀는 놔두고 거래되는 돈이 다르다면, 이 페니실린과 맞교환 할 수 있는 물품을 주면 되요.”
그 의사는 음산기운을 내뿜으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약물이 가치를 정확하게 알고 있는 의사는, 자신의 소중한 것을 품속에서 서서히 꺼냈다.
“그대에게는 이 수술용 칼을 선물로 주겠습니다. 그리고 질병을 막아준다는 가면도 말이죠.”
나는 페니실린이 담겨있는 조그마한 플라스크를 건네줬다.
“지금 당장 어떤 구조가 되어있는지 당신을 여기서 해부하고 싶지만, 아쉽게도 너무 바쁜 나머지 두 번 다시는 만날 수 없을 것 같군요. 그래도 만일 중대한 환자가 생긴다면, 이 명함으로 저를 찾아주시길 빕니다.”
“아니. 날 해부한다는 그 자체부터 이미 부르기 싫어지는데요?”
명함이라기 보단 그저 역병의사의 새 부리 모양의 카드 하나, 예리하게 생긴 수술용 칼, 여분의 하얀색 새 부리 가면을 남기고는 잡화점을 떠났다. 떠난 직후에 알 수 없는 음산한 기운은 뒤늦게 죽음을 몰고 다니는 사람이란 것을 깨달았고, 뒤를 쫓아서 밖에 나가려고 했을 때는 이미 아무도 없었다.
“이상하네.”
가끔가다 생각하는 거지만, 이 잡화점은 몬스터와 사람 이외에도 다른 차원의 존재까지 끌어들이는 것이 아닐까? 내 뒤에 잇는 팔랑크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잡화점의 설립된 목적은 단 하나. 필요한 자에게는 필요한 물품을 언제든지 줘야함. 그것이 설령 사람을 살릴 수 있는 약물이든, 사람을 죽일 수 있는 흉기든, 엘티노스 잡화점에서 들리는 모든 자들은, 그 물품이 간절히 필요하기에 방문할 수 있는 것임.”
나는 팔랑크스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렇다고 해도, 다른 차원에 있는 사람과, 애초에 페니실린이라는 약물을 이곳에서 찾을 줄은 몰랐는데? 연금술사인 티르가 마지막으로 발견했던 것이 페니실린이라는 소문도 있지만, 만일 페니실린이란 약물은 존재할 수 있어도, 아직까지 그 항생제의 존재를 아는 사람은 이 대륙에는 없어.”
“잡화점에는 수많은 물품과 수많은 손님이 다녀감. 하지만 그 손님이 지금 시대와 지금 대륙에 있는 손님이라고 가정한 적은 없음. 손님이라는 규격은 종족, 차원을 가리지 않고 나타남.”
나는 어딘가 사라져버린 의사를 찾는 것을 그만두고, 착잡한 마음에 잡화점의 문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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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공의 잡화점 속으ㄹ...[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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