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 249
249
흑역사는 사람이 살다 보면 1년단위로 최소 10개 이상을 만든다. 물론 크고 작은 흑역사를 마음에 품고 사는 사람이 어디 없겠는가? 지성이 있는 사람이라면 똑똑해야 하는 데도, 흑역사가 멋대로 조성되는 그런 경향도 있고, 자신도 모르게 남들에 의해 알게 모르게 흑역사가 나오기도 하며, 흑역사라는 존재는 어디 공포소설에서나 나올 법한 무시무시하며, 악명 높고, 지우고 싶지만, 잊혀지지도 않는 그런 존재다. 나 또한 살다가 여러 가지 흑역사를 품었지만...시나에게 가장 확실하게 말하고 싶은 것은...
“절대로 내가 그 사람을 연모했다는 게 아냐. 첫사랑은 어차피 깨지라고 있는 거라면, 난 시작도 하지 않았다는 그것만은 알아둬. 그 사람은 나에게 검의 기초만 처음으로 알려준 그런 사람일 뿐이니까.”
“하지만. 마스터? 그럼 그때 당시에 마스터가 느낀 감정과 확실하게 일치하고 있는 저의 감정은, 연심이 아니라고 부정하실 생각이신지요?”
“동기는 달라...결과가 어쩌다 보니 같아 보이는 것뿐. 게다가...분명...”
그 사람은 이브센티아에서 태어난 사람이었으니까.
적대적인 살기...그녀가 지금 나에게 증오를 품는 것은 어떻게 보면 일도 아니지만...
“마스터. 저는...마스터를 슬프게 할 생각은...”
나는 시나의 머리 위에 손을 올려놨다. 왠지 분위기로 위축되어있던 하얀 올빼미가 잠깐 나를 보았고, 이내 작게 떨었던 몸이 진정되는 듯 안정을 되찾고 있었다. 레시아는 나에게 다가와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래서...그 자에게 검을 배우기 위해서 턱걸이를 하며 고백을 했다? 정말 어디 순정만화에서 나올법한 사랑고백 방법도 아니고...”
“레시아!!!!!”
-5초 후.
싸늘하게 바닥에 누워있는 검은 고양이가 “으으...”라는 소리와 함께 신음을 흘리며, 바닥에 덩그러니 싸늘한 검은 털 뭉치마냥 쓰러져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사역마와 주인의 존재는, 서로간에 대한 비밀이 없고 신뢰를 하는 존재라고는 하지만, 나에게는 비밀이 없어지기 시작하고, 오히려 사역마들의 비밀만 이리저리 쌓여만 갈까? 나는 뭔가 소환사를 하면 안 되는 사람이라도 된 것일까? 아니면 내가 소환한 사역마들이 나보다 더 강해서 그런 걸까?
“그나저나 이거 걸작이로군...크흐흐...이 사실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주면...”
-다시 5초 후
시나가 부리로 기절해버린 검은 고양이를 툭툭 건들이고 있을 때는, 시나가 회복마법을 걸어준 덕에 모든 상처가 서서히 아물어가고 있을 시점이었다. 하지만 내가 아끼는 옷이 앞으로 발 걸레로 사용해야 할지, 대걸레의 일부가 되어 사용되어야 할지, 혹은 재활용이 정말로 가능한지에 대한 여부를 계산하고 있었다.
“여어. 평민? 꽤나 화려하게 당했군. 일으켜 세워줄까?”
“하멀 씨? 권총을 붙잡고 일어나는 사람은 없다니까요? 그리고 어째서 총구가 제 머리 방향이에요?”
황금의 수사관인 하멀 씨는 아무래도 소동이 일어난 것 같다는 페이 씨의 무전을 듣고, 자신의 수색구역에서 여기까지 뛰어온 것인지, 날아 온 것인지 하얀 입김이 거칠게 튀어나오고 있었다. 그건 그렇고...
“보아하니 호문쿨루스들에게는 습격 당하지 않았나 보네. 하긴 호문쿨루스들이 먼저 습격을 했다면, 눈에서 빔 맞고 소멸했을 텐데 말이야.”
그러니까 왜 ‘호문쿨루스=눈에서 빔’ 상태로 만드냐고요? 얼마나 빔에 대해 집착할 거에요? 그리고 호문쿨루스에게 습격 당하지 않았다는 것은 어떻게 알아낸 거지? 페이 씨가 그 정도로 상세하게 알려줬을까?
“아무튼 그 죽은 고양이 시체나 들고 잡화점으로 돌아가. 아무래도 그 상태로는 나를 도와주는 것은 둘째치고, 밖에 돌아다니는 것도 불가능해 보이니까.”
그렇게 하멀 씨로부터 해방되어 레시아를 들고 잡화점으로 돌아갔다. 귀환마법은 시나가 펼쳐줬는데, 오랜만에 천장에서 떨어지지 않고 바닥에 안정된 귀환을
-콰앙!
할 수 없었고 여김 없이 천장에서 떨어져서 충격에너지가 온 몸을 짜릿하게 강타하고 있을 때, 레시아는 정신이 들었는지 다시 일어나고는 내 모습을 보며 꼬리를 살랑 흔들었다.
“흠...역시 주인이군.”
“뭐가요?”
“주인과 주인과 똑같은 호문쿨루스를 구분하는 방법은, 잡화점으로 귀환마법을 사용하게 만들면 확실히 주인을 고를 수 있겠노라.”
“요 조그만 고양이가!”
손을 휘둘러서 레시아를 잡으려고 했지만, 이미 한 번의 도약으로 3층 선반까지 올라가버린 말도 안 되는 점프력을 보여주며, 천천히 일어나기 시작한 나에게 다시 한번 더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 여자에 대해 이야기를 해 보거라.”
“그 여자라뇨? 아까 저를 습격했던?”
레시아는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시나도 레시아의 옆에 앉아서 가만히 있었다. 그러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입을 열어야 할까? 초기에 만난 것은 13살 때 동내 깡패들에게 두들겨 맞고 있었던 시절.
나약했던 나에게 처음으로 구원의 손길이 찾아온 순간은 아직까지 잊지는 못했으니, 나중에는 내가 어린 나이에도 용병을 하게 만들어준 사람들 중에서, 은빛 송곳니가 정신적인 지주라고 한다면, ‘세레나’ 씨는 나에게 있어선 스승과 같은 존재라고 보면 된다. 나이로는 3살 연상. 천부적인 검의 재능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검을 처음 잡은 나에게는 상당히 혹독하게 가르치고, 그 이후에는 끊임없는 조언을 해주던 사람이기도 했다.
예를 들어서...몽골리안 웜의 필살기는 몽골리안 춉...아니 잠깐? 이건 조언이 아니잖아?
단순히 말장난이었...
“설마...내가 태클 캐릭터가 되어버린 계기가 그 사람 때문인가!”
“주인...이야기를 잘 하다가 어째서 바보 같은 말이 튀어나오는 건가?”
“이야기를 하다가 머릿속에서 느닷없이 태클할 거리가 생겨나서...”
이야기를 하는 도중에 깨달음을 얻는 것은 그만두고, 나는 다시 시나와 레시아에게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이야기를 한 내용은 어릴 때 내가...아까 레시아의 말 그대로 턱걸이를 해서 세레나 씨에게 검술지도를 받은 것과, 용병으로 지낸 후에도 자주 세레나 씨 근처에 서성거리면서, 오늘 내가 한 일에 대해 자랑거리를 늘어놓거나, 혹은 의뢰를 실패한 뒤에 좌절하지 않고 세레나 씨에게 “이 일은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에요!”라고 투정을 부리는 등. 자주 의지를 해온 것뿐이지 따지고 보면 이건 연심은 아니다.
막상 다른 사람이 볼 때는 그런 것 있지 않은가? 남녀가 사이 좋아 보이면 다 커플로 착각하거나 그런 거. 그래서 츤데레 미소녀가 좋아하는 남자 주인공과 같이 붙어있을 때, 다른 엑스트라가 “어라? 너희들 사귀는 거 아냐?”라고 하면 미소녀는 “그...그런 거 아니거든!”이라고 하고, 남자 주인공은 “맞아. 우리는 그저 ‘친구’일 뿐이야.”라고 남자 주인공이 둔탱이로 변하는 클리셰가 자주 쓰이는 것도.
“마스터?”
이야기를 하던 도중 시나가 나를 불렀다.
“어라? 왜?”
“이야기와는 다르게 독백부분에서는 츤데레 미소녀의 이야기 전개 방향으로 입을 열고 있습니다. 이야기를 하실 때 쓸 때 없는 생각으로 방해가 되실 것 같아서...”
“아...그렇구나. 알았어. 주의할...”
“올빼미여. 지금 주인은 자신이 연심을 품지 않았다고 속이기 위해, 저런 장황한 말을 늘여놓고 억지로 웃어 넘기려는 속셈이니라.”
“시끄러워!”
레시아의 바보 같은 단어들이 비수가 되어 날아와, 내 마음을 벌집으로 만든 시점에서 남자답게 인정을 하는 부분이 있다면, 검술도 좋지만, 같이 지내온 날마다 예뻐지는 모습에 눈을 감아도 생각날 정도였다. 그래서 더욱 강해지고 싶고, 그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 노력한 결과는...
이브센티아에 있었던 대재앙 월식의 포식이었다.
무작정으로 내 명성을 멀리 퍼트리기 위해, 이미 A급으로 올라간 세레나 씨와 동등하게 올라서기 위해서 B급 용병으로 생활하고 있는 나는, 좀 더 위험하고 막대한 일이 필요 했기에 내가 죽지 않을 것들만 계산해서 의뢰를 막 받고 있을 무렵에 일어난 일이다.
세레나 씨의 고향은 이브센티아인데, 내가 그 곳에서 벌여온 만행은...이미 다 알 것이라 생각한다. 근데...그게 벌써 2년이 지났구나.
“흠...한 때, 주인의 넋을 나가게 한 여자라니...괘씸하군. 어째서 짐이 그렇게 대쉬를 하는데도 넘어가지 않는 이유가 있더라니, 결과적으로 주인은 마음속 어딘가에 첫사랑을 짊어지고 사는 것이다.”
“지금은 뭐...첫사랑이건 뭐건 관심은 없고...적대를 하는데 해명을 할 수는 없겠네요. 월식 반은 어릿광대가 모조리 흡수해버렸고, 남은 반은 시나가 전부 제거해줬으니까. 이야기는 이걸로 끝이에요.”
“그나저나 주인. 한가지 궁금한 것이 있노라. 어째서 과거에 대한 회상으로 좀 더 구체적으로 알려주지 않는 것인가? 주인의 말을 듣는 것도 어느 정도 간편하고 이해하기 쉽지만, 그냥 짐과 시나가 주인의 회상으로 들어가서 과거에 무슨 일이 있는지 알면 될 터이거늘?”
“레시아와 시나가 투더문에서 나오는 박사들이에요? 그리고 둘이 또 들어가다가 싸울 것 같기도 하고, 지금 과거편으로 회상해서 보여줘 봤자, 사람들이 헷갈려 한다고요? 일방적으로 시간은 앞을 향해 나아가고 있고, 절대적으로 뒤를 되돌아가지 않아요. 그리고 나중에 또 한 번 멋대로 제 기억을 들추면, 그때는 풀어달라고 해도 안 풀어주는 아이언 클로를 각오해 두시죠.”
“...알겠다.”
“알겠습니다.”
레시아와 시나에게 각자의 대답을 듣고 난 뒤에, 천천히 시계를 올려다 본 결과로는 오후 4시를 넘어가기 시작할 무렵. ‘조금 자고 난 뒤에 일어나서 잡화점을 운영할까?’라는 생각으로 아직 이불이 걷혀지지 않는 내 자리에 몸을 누웠다. 눈을 감았는지 얼마나 되었을까? 무게가 살짝 느껴지는 것으로 보아 이불이 두꺼워서 그런 걸 수도 있
“오호라. 카일의 몸은 이렇게 되어있는가? 마른 체형처럼 보여도 의외로 다부지지 않는가? 첩은 또 하나의 감동을 했노라.”
지 않고!
“마리아! 어딜 또 올라온 거에요! 그리고 그 옷은 또 뭐고!”
마리아는 느닷없이 내 셔츠를 위로 올려놔 내 복부를 노출시켰다. 그보다 대체 내가 얼마나 깊게 잠들었길래 몰랐던 거지?
“괜찮다. 어차피 닳는 것도 아니고.”
“안 괜찮아! 당장 자리에서 비켜요!”
셔츠를 다시 내려서 배를 따듯하게 덮고, 아직까지 내 허리 쪽에서 올라타 내려오지도 않고, 계속 내 얼굴만 바라보고 있었다.
“...대체 뭘 원하는 거죠?”
“데이트를 원한다.”
“거절하...”
“거절은 거절한다.”
칫...선수를 빼앗겼어.
“내일 오후에 시간을 비워두거라. 물론 호문쿨루스에 관련된 이야기니까, 카일에게도 그리 나쁜 이야기는 아니지 않는가?”
아무래도 무언가 정보를 또 알아낸 듯이 말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내일은 마리아와 함께 돌아다니게 될 것 같다. 그런데...
“어째서 흰색 가터벨트?”
“승리 속옷이라는 것이다. 어떤가? 마음에 드나?”
“...여기 분명 장르가 개그는 맞죠? 아니면 제정신이 아닌 거에요?”
연한 초콜릿피부를 더욱 돋보이는 흰색 가터벨트가 특징인 속옷을 입고는, 그걸 또 자랑스러운 얼굴로 사탕을 물면서 입을 열었다.
“나중에 첩에 카일과 잠자리를 들 때 입어야 할 코스튬 중 하나다.”
“어째서 제가 마리아와 잠자리를 같이 든다는 전제로 이야기하는 지 몰라도, 애초에 어린 아이는 어린 아이답게 마당으로 뛰어 놀면서 크는 거라고요?”
“어린 아이가 아니라고 몇 번을 이야기 하는가! 합법로리라고 불러야 하지 않는가! 아니면 지금 당장이라도 첩이 성인이라는 것을 증명해야...”
“하지 마요!”
“낑낑.”
“하지 말라고!”
결과적으로 아이언 클로가 다시 출격을 한 뒤에, 마리아를 제압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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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낑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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