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 216
216
“비무대회에 내가 나오라고? 지금 들은 소리는 내 귀가 이상한 것이 아니지?”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분명, 하란국의 비무대회는 모든 참가자가 여성이라는 규칙이 첫 번째 규칙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런데 지금 남자인 나에게 와서 비무대회에 나오라는 소리는 대략적으로...
1. 농담이다.
2. 나를 놀리는 것이다.
3. 뭔가 일이 터졌다.
“...아니. 비무대회에서 우승이나 그런걸 하란 소리는 아니고, 요즘 급증한 참가자들이 좀 수상해서 말이야.”
“참가자들이 이상하다고? 뭐 죽은 사람이 느닷없이 나타나서 비무대회에 참가하는 것도 아니고, 참가자들이 얼마나 이상하든 간에 내가 여장을 하면서 비무대회까지 나갈 이유는 없어 보이는데?”
“네 말이 맞아. 하지만...네 말이 전부 맞아서 탈이지.”
...
뭐라고?
“잠깐. 진짜 죽은 사람이 나타나서 비무대회에 참가하고 있다는 소리야?”
초량은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 천천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200년전에 있었던 하란국의 영웅인 ‘해연’이라는 사람이야. 이 사람이 해치운 몬스터만 네 자리숫자는 가뿐하게 넘어간다고?”
“아니. 개인프로필은 상관없고, 그 해연이라는 사람이 느닷없이 부활해서 비무대회에 참여했다는 소리야? 200년전이라면 동명이인도 많을 것이고, 사칭을 하는 그런 부류도 있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지.”
“하지만...그날 보여준 그 기술은 진짜였다고! 비무대회에 느닷없이 나타나서 “소인과 싸워야 할 사람들이 이렇게 허약해서는!”이란 분노가 서려있는 외침과 함께, 맨 바닥에서 거대한 파도가 일어나더니, 줄을 서서 참가신청서를 쓰고 있는 사람들이 전부 날려버렸다고!”
...바닷물이라면 분명 소금물과 비슷한 그거 말하는 건가?
그보다 메마른 땅에서 바닷물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소리가 너무 인상적이었다. 그러니까 바닷물을 땅에서 부어버리는 일이 아닌 이상...그건 확실히 마법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정보만으로는 200년전의 사람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어. 게다가 후손이 있었다면 그 후손이 벌인 일이라고 생각해. 그냥 사칭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마음 편하게 내가 비무대회에서 조사를 하지 않아도 끝날 수 있다니까?”
하물며 지금은 루비아 씨가 되살아 난 것도 신경이 쓰일 정도로 머리가 아프다. 루비아 씨의 경우에는 후손이 없을뿐더러, 지금은 루니아 누나만 그 혈통을 유지하는 셈이 아니던가? 어쨌든 더욱 확실한 조사와 진행을 위해서는, 바닷물이든 강물이든 우물이든 200년전에 죽었을 법한 수령사의 존재는 내 머릿속의 우선순위를 바꾸지 못했다. 이 세상이 아무리 난장판이라고 할지라도, 당분간 나도 조금은 쉬면서 천천히 진행을 하고 싶은 마음만 굴뚝...
“너. 여장하기 싫어서 일부러 기나긴 독백으로 빙빙 돌리는 거지?”
들켰네.
그러면...우선 초량을 설득시켜야 하려나...
“음...저기 초량? 내가 남자로 태어나서 20년이라는 기나긴 세월을 살아본 결과...”
“20년이면 길지 않은데?”
“아. 좀! 들어! 아무튼...내가 남자로 20년이라는 세월을 살아온 경험을 토대로, 나는 여장이 무척이나 안 어울린다고 생각을 해. 그러니 내가 여장을 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금지돼야 할 일 중에 하나...”
초량은 나에게 백장미 7호집을 꺼내 들며 보여줬다.
이 젠장! 간호사 복장이라니!
...잠깐 루니아 누나는 내 모습을 찍지 않았을 텐데...
아! 윈디구나...나중에 그 정신 나간 얼굴에 아이언 클로를 그냥...
“이렇게 잘 어울리는데...애초에 너는 그냥 여장을 하면서 살아도, 누가 직접 확인하지 않는 이상 계속 여자로 볼 거야.”
“...좋아. 우선 그래...너의 주관적인 시점에서는 엄청 잘 어울리겠지. 하지만...”
“잡지까지 나올 정도면 내 주관적인 시각에 의한 일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대다수가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니까. 잡지에 너의 사진이 수록된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말 하는데 끊지마!”
잠깐 심호흡을 50미네랄과 150베스핀 가스를 주고 두 번 정도 쉰 이후에, 집정관으로 합체를 시켜놓고 다시 입을 열었다.
“좋아. 대다수가 그렇다고 치자...”
“아니 그렇다고 치자는 말이 아니라, 대다수가 그렇게 생각을 한다니까? 현실을 부정하려는 너의 눈부터 고쳐야 할거라 생각하는데.”
“난 현실 부정 따위 하지 않았어! 그리고 남자가 왜 여장까지 하면서 비무대회에 나가야겠냐? 물론 다른 이들에게 있어서는 뭔가 목표의식이라던가, 아니면 보상이 상당하게 좋다거나 하면 내가 한 번쯤은 생각해볼 수 있는 문제이지만, 지금 나에게 해달라는 것은 200년전의 영웅인지 아니면 사칭하는 녀석인지, 그것부터 확인해달라는 거잖아? 게다가 나도 바닷물이란 것을 살짝 들이켜봐서 알겠지만, 그거 너무 짜다고? 싸울 때마다 바닷물을 들이켜야 하는 입장에서,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네가 상상이라도 해봤어?”
“아직 싸우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바닷물에 잠식당하는 소리를 하네...후우...”
초량은 어처구니 없다는 표정으로 이내, 미네랄 125와 가스 125를 소비해서 한 숨을 두 번 쉬고 집정관으로 합체시켜놓은 뒤에, 앵두 같은 입술이 다시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여장을 하라는 것은 너의 신변을 지키기 위함이고, 굳이 싸우지 않고 비무대회장을 청소하거나 아니면 접수원이라도 되어서, 최대한 가까운 거리에서 조사를 해달라고 하는 걸 부탁하려는 거야. 확실히 비무대회에 참가해달라는 말은 너의 생각대로 싸워달라는 소리로 들리겠네. 그럼 정정해서 비무대회에 관련해서 일을 해주고, 해연에 대해서 조사를 해줘. 분명 숨기고 있는 것이 존재한다니까?”
분명 일리가 있는 말은 맞다.
비무대회에 참가해달라는 말은 말 그대로, 대회에 나와서 싸워달라는 소리고 첫 번째 규칙인 여성만 참여한다는 말이 적용되지만, 그냥 비무대회에서 접수하는 것만 받고 아니면 청소라던가 그런 것은 딱히 남자가 와도 상관이 없다는 것.
그 다음에 전혀 말도 안 되는 말을 뽑자면...
“어째서 내가 여장하는 것이 신변을 지키기 위함이라고 말할 수 있는 거야? 그건 아무리 봐도 아니라고 생각을 하는데?”
“음...그 얼굴로 하란국에 잠깐이라도 돌아다니면, 곧바로 다른 여성들에게 납치당할걸?”
...
좋아. 그 나라에서 돌아다니기 위해 그리고, 내 신변의 안전을 위해 여장이 필요하다는 건 알았군.
하지만 지금 이 상황에는 정말 안타깝게도 내가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이 있었으니...
“나는 잡화점에서 저녁에 일을 해야 한다고? 아침에 일찍 일어날 수가 없어. 보통 비무대회에 있는 도우미들은 아침 일찍 일어나서 준비를 해야 하잖아? 나는 눈을 감고 다시 눈을 뜨면 이미 해가 중천에서 웃고 있다고.”
“음...그것도 그러네.”
잠깐만...정보 습득에 가장 활발하게 움직이는 것은 윈디가 있잖아?
다만...윈디가 어디에 있는지 영문도 모르는 체, 어디선가 느닷없이 나타나주기를 기다릴 수도 없는 일이고...
“누구ㄱ...꺄아아악! 어째서 아이언 클로의 반응속도가 0.1초도 안 되는 겁니까!”
다음부터는 독백이라고 해도 바보 같은 말을 읊으면, 바보 같은 일이 나타난다는 것을 노트에 적어두자. 아무튼 아까부터 내 쇼파 뒤에서 이상한 인기척이 나타났길래, 윈디의 손이 내 눈을 가리기 직전에, 먼저 선수를 치면서 아이언 클로가 들어갔다. 윈디는 서둘러서 내 팔을 붙잡고 빠져나가려고 발악을 했지만, 결과적으로 다시 축 늘어지면서 쇼파 위에 걸려있는 신세가 되었다.
“이 여자애는 누구? 혹시 숨겨놓은 비밀친구?”
“요즘 비밀친구가 그렇게 인기더냐? 하지만 난 비밀친구 같은 건 만든 적이 없거든? 아무튼 이쪽은 정보 상인으로 사방팔방에 재앙을 뿌리고 다니는 윈디 메르아라고...”
음...그러고 보니...
“너 이브센티아에서 내가 간호사복장입고 있는 모습을 몰래 찍었겠다!”
다시 윈디의 얼굴을 붙잡은 오른손이 울부짖기 시작하면서, 다시 몽화관 안에서는 한 차례 비명소리가 들렸다. 주변에 손님에게는 2분동안 미안한 상황이지만, 이 기회를 놓친다면 두 번 다시 집행을 할 수 없기에...
“앙~! 너무 격렬해요! 아이언 클로가!”
“이상한 소리 내지 말라고!”
다시 쇼파에 축 늘어진 윈디의 밝은 회색을 띈 머리카락은, 중력의 법칙으로 밑으로 쏟아져 내렸고 거기서 밝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반가워요! 저는 윈디 메르아에요! 그나저나 당신은 하란국의 1등급 첩보원인 초량이 아니던가요?”
“오! 신기해! 머리카락이 말했어!”
초량의 바보 같은 반응에 잠깐 뭐라 태클을 해야 되는데...둘이 대화하는 것에 끼어드는 것 같아서 가만히 보리차를 삼켰다.
“저는 말하는 머리카락이 아니지만, 세상을 바람처럼 떠돌아다니면서 어느 사이에 당신의 곁에 다가와 사진을 찍고 떠나가는, 이 대륙 최고의 바람을 피우는 여자. 윈디 메르아라고 합니다만...여기 카일 씨하고는 여러 모로 잘 지내고 있는 사이죠. 흐흐...”
“어이. 이상한 말 붙이지 말고. 초량의 의뢰는 이미 다 듣고 있었겠지?”
윈디는 아직도 쇼파에 축 늘어진 상태로 “흘흘흘!”하며 기분 나쁘게 웃은 다음 입을 열었다.
“그럼요. 그럼요. 그거 정말 이상한 일이로군요. 200년전에 죽은 해연이라는 하란국의 영웅은 사실상, 대륙 최고의 수령사라고 봐도 과언이 아닐 정도지요. 만약 제대로 정령사 밑에서 실력을 갈고 닦았으면, 물의 정령왕 목에다 개목줄을 채우고 질질 끌고 다닐 만큼이나 엄청난 친화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독자적으로 자신의 전투 스타일에 맞게, 천직은 정령사임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체술은 덤이라고 하는데...근데 왜 제가 이런 말투로 이야기를 해야 하는 거죠? 이건 마치 신파극에 맞는 대사인듯한...”
“네가 그렇게 말하고 있었으면서 나에게 의문을 표하지마. 아무튼 네가 그 정도로 잘 알고 있다면 다행이네. 네가 지금 당장 초량하고 따라가서 비무대회에 스텝이든 뭐든 나가면 되겠다.”
윈디는 순간 고개를 들어올리더니 “비무대회라고요?!”라며 큰 소리로 외쳤다.
“그럼 비무대회에 출전해도 상관 없다는 말씀?”
...뭔가 나와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는데?
“비무대회에서 적절하게 맞고 탈락하는 역할이라면 제가 특기지요~!”
아무래도 특이한 동기가 윈디의 호박에 가까운 눈이 반짝이며 빛나기 시작했다. 뭐랄까 남들은 투기장이나 비무대회에서 우승을 목표로, 혹은 자신의 힘이 어디까지인지 시험해보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윈디의 목표는 우선 정보가 많으니까 그쪽으로 향하는 것 인줄 알았건만, 아무래도 맞기 위해서 출전하려는 모양인 듯하다.
“그래도 카일은 여러 사람을 잘 알고 있네? 너에게 상담했던 것이 도움이 되었어.”
초량의 미소가 번지면서 온화한 분위기로 만들었다.
“그나저나 카일 씨? 어째서 초량과 몽화관에 같이 있는 건가요? 혹시 숨겨놓은 비밀친구? 어머. 어머. 이걸 정보로 팔면 스캔들을 중요하게 여기는 왕국신문에서 나에게 두둑한 보상이...”
“너는 초량과 같이 하란국으로 갈 준비나 해!”
-덥썩! 꽈아아아악!
“끄아아앗! 어째서 아이언 클로를! 하란국이 아니라 먼저 사신부터 만날 준비를 해야 하잖아요오오오!”
대략 2분동안 시끄럽게 떠들었던 우리들은, 몽화관에 있던 직원이 나가달라고 부탁을 하기 전까지, 나는 윈디를 붙잡은 아이언 클로를 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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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쓰고...
다시 자러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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