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 177
177
지금 대략적으로 22시간 정도 남았던가?
몬스터의 숲에서 가장 높은 고지대로 올라와 내려다본 결과, 마나로 강화 된 내 눈에 비춰진 것은, 구역마다 살고 있는 몬스터들의 종류들이었다. 아까 같이 풀숲이 우거져 있는 곳에서는 고블린이나 코볼트들이 돌아다니고 있었고, 다른 곳에서는 오크들의 마을이 보이기 시작했다.
웨어울프도 간간히 보였지만, 실베스 씨는 없는 것으로 확인 되었는데, 애초에 몬스터의 숲이 있는 이유는, 이곳에서는 합법적으로 인간을 죽여서 물품을 뺏을 수 있는 구역이기 때문이며, 인간은 이 장소에서 몬스터들을 합법적으로 무차별 처단이 가능하다. 아니...솔직히 합법이고 불법이고 없이, 저 곳에는 법이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덤으로 법이 적용되지 않는 지역은, 몬스터의 숲 이외에 5곳이나 더 있으며, 그 중에 한 곳이 하피의 언덕이라고 볼 수 있다. 전에 라인하르트 맥커드와 같이 징표를 얻으러 갔다가, 죽을 뻔한 경험이 얼마 되지도 않는 나에게 있어서, 잊지 못할 곳이라고 확신할 수 있지.
“아까는 고블린 정찰병들만 이루어진 무리라, 다행히도 살았을지 몰라도, 이제 주력으로 전투부대가 나오면, 아까와 같은 해프닝은 없이 모조리 목숨을 잃을 각오를 해두셔야 해요. 그러기 위해서 첫 번째와 세 번째의 규칙을 만들어 놓은 것이고...근데 뭐해요?”
나는 설명도중에 맛있는 냄새가 나서 뒤를 돌아보니, 하르커스와 에르단이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게다가 언제 또 텐트를 쳤는지 몰라도, 야영 준비까지 한 것을 보면 슬슬 시간대가 저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애초에 시나론에서 출발했던 시간대가 좀 늦은 오후였으니까.
숲은 밤이 빨리 찾아오기 마련.
“애초에 이곳에 올라오는데 시간과 힘을 다 썼으니까, 배가 고플 것 같아서.”
하르커스는 실실 웃으면서 그리 입을 열었다. 뭐가 그리 좋은 건지는 몰라도 지금은 피로를 풀어놔야, 다음에는 빠르게 실버 크라운까지 돌파할 수 있겠지.
“그나저나, 카린 양은 전투에 있어서 꽤나 일가견이 있는 모습을 보여줬는데, 방금 전에도 그 권총으로 무심결에 쏜 것 같지만, 하르커스에게 붙은 고블린들을 전부 명중 시켰고 말이야. 마법사의 길을 걸어오면서 예전에 무슨 일을 했는지 알 수 있을까?”
음...
이를 어찌 말한다?
“용병을 좀 했어요. 대략 B급정도.”
그러자 에르단은 고개를 끄덕이며 뭔가 납득을 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첫 번째와 세 번째에 대한 규칙을 서슴없이 말했군...”
“응? 에르단. 그게 무슨 소리야?”
하르커스는 대체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모르는, 닭다리로 추정되는 부위를 손으로 잡고, 우악스럽게 뜯으며 입을 열자, 에르단은 그 모습을 보고 한 숨을 내쉬더니 답을 해줬다.
“애초에 용병들은 돈으로 움직여도, 자신의 목숨이 더 소중하다는 것을 알아. 그러니까 카린 양도 우리가 만약에 발목을 잡는 행동을 한다면, 우리 둘을 서슴없이 버리고 갈 수 있다는 소리지. 비록 그게 용사답지 못하고 잔인한 행동이라고 할지라도, 한 명이라도 더 살아남을 수 있다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가는 것이 현실적으로 더 바람직한 행동이란 소리야.”
어째서 이들은 용사라는 이름으로 영웅심에 불타있었는가? 물론 그것에 대한 질문은 나중에 묻기로 해보자. 에르단이 건네준 스튜를 받아 들고 먹은 뒤에는, 가까운 곳에 개울가가 있기에 그 장소로 향하기로 했다.
물론, 당연히 여행을 하는 도중에도 몸을 청결히 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그 기회를 놓치지 않는 것이 좋기 때문. 특히 앞으로 2주 정도 뒤에는 본 모습으로 온다고 할지라도, 여성의 몸으로 되어있는 나에게 있어선 불쾌함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짜증나는 리스트에 이름이 올려져 있다.
하르커스가 좀 걱정은 된다만, 에르단이 있으니까 걱정 없겠지.
귀환마법을 이용해서 잡화점에서 씻고는 싶으나, 잡화점에 가서 내가 은빛 송곳니 때문에 긴급 퀘스트를 한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잡화점에 있는 대부분이 다 따라서 나오겠지. 지금 레시아와 말을 맞춘 것은, 유랑극단의 위치를 알기 위해 조사를 나간 것으로 되어있으니까.
수면파가 퍼지면서 달의 모양을 일그러뜨리고 있을 때, 우연히 비춰진 내 얼굴을 보고야 말았다. 분명 나르키소스는 자신의 모습이 너무나도 아름다운 모습에, 사랑에 빠져서 물에 빠졌다고 했던가, 아니면 탈수에 죽어버렸다고 했던가. 뭐 여러 가지 엔딩은 많다고는 하지만, 아무튼 지금의 내 모습을 내가 보았을 때, 너무 반칙적인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하긴...이 얼굴로 짧은 시간 동안 어떤 꼴을 당했는데...”
물이 차가운 것도 잊을 정도로 신비한 분위기가 나오는 얼굴과 머리카락이고, 남자들의 마음을 8.1의 강진으로 흔들어버리는 스타일을 가진 몸. 그냥 마치 물에서 태어난 존재처럼...조만간 이 모습은 대체 어디서 튀어나온 것인지 알아내야 할까? 나중에 과제로 생각을 해두고 우선 평온한 시간을 만끽하기로 했다.
***
자고 있는 사이에 눈이 갑자기 떠진 적이 있는가? 그런 경우는 대략 2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그냥 자다가 정해진 시간이 되었으니 눈이 떠진 것과, 다른 하나는...
“대체 뭐가 추격을...설마 웨어울프인가?”
이런 짧은 시간에 올라올 만한 몬스터를 생각했을 때, 웨어울프가 가장 적임자라고 생각했다. 애초에 이런 고지대에서 올라오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고, 불침번을 세우지 않았는데, 하마터면 큰일날 뻔했다.
“하르커스! 에르단! 적습이에요!”
하르커스와 에르단이 나의 외침에 허둥지둥 일어나서 무기를 챙길 무렵, 다가오는 진동이 서서히 가까워지는 것으로 보면, 이제 남은 거리는 대략 15M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서서히 진동이 강해질수록 드레이크까지 생각을 했지만, 막상 내 시야에 비춰진 것은...
“하하하! 가자! 아지 다하카! 저기서 맛있는 냄새가 나는구나!”
...식욕의 공작 그리티스와 그의 애완용 아지 다하카였다. 이 연보라 빛이 달밤에 반사되는 슬라임은 나를 보면서 입을 열었다.
“오오! 오랜만이군! 마왕님께는 항상 잘 듣고 있다네, 터무니 없는 일을 당해서 정말 유감이야.”
아지 다하카도 나를 한 눈에 보자마자 알아차린 듯 입을 열었다.
“흐음...내가 지금 신부가 없어서 곤란하거든? 그러니까...끄아아아악!”
처음 나를 보자마자 하는 말이 왜 신부가 없어서 곤란하다는 것인지 몰라도, 아지 다하카의 얼굴 수에 맞춰서 아이언 클로를 집행하는 손을 만들어 보냈다. 그 거대한 삼두룡이 아이언 클로에 어쩔 줄 몰라 하면서 버둥버둥 거리고 있었고, 그 모습을 보면서 하르커스와 에르단은 멍한 얼굴로 보고 있었다.
“저기 카린 양? 이 몬스터들은 우리들의 적이 아닌 거야?”
하르커스가 오늘 뭔가 제대로 잘못 본 얼굴로 사색이 되어서, 나에게 슬금슬금 다가와 물었다.
“적어도 제가 없었을 때는 강대한 적이 되었을 거라 생각해요. 애초에 마계공작이 이곳에 산책까지 나갈 정도면, 이 고지대에서 자리 잡는 것도 위험하겠네요.”
그리고 그리티스를 향해 얼굴을 돌리자...
“내가 한 때, 다른 이들의 머리도 만져줬는데, 역시 자네를 맨 처음 봤을 때부터, 머리를 올리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지.”
에르단의 머리 위에서 “자라나라 머리머리.”를 시전하고 있었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슬라임이 머리카락을 만져주고 있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아이언 클로를 풀어주고 아지 다하카에게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이런 달밤에 체조라도 나가는 것은 아닐 텐데, 어째서 이런 곳까지 산책을 하게 된 거야?”
그러자 아지 다하카는 나를 보며 입을 열었다.
“그거야 마왕님의 명령이기 때문이지. 20분 전에 마왕님께서 그리티스에게 몬스터의 숲을 정찰하고, 네가 제대로 잘 지내고 있는지 확인하라고 했거든, 그나저나 이 몸에게 아이언 클로를 할 정도면, 상당히 잘 지내고 있던 것이라 생각해.”
그리티스가 내 왼쪽 어깨 위에 올라와서 입을 열었다.
“마왕님은 너도 걱정하는 것도 있지만, 또 한가지 걱정하는 것이 있다고 하더군, 물론 그 직접적인 원인은 반대쪽 어깨에 있는 올빼미겠지만.”
시나가 오른쪽 어깨에서 입을 열었다.
“마스터는 제가 반드시 지키고 있다고, 그 냥캣에게 말해주세요. 아니 조금 더 과장을 하자면, 이대로 사랑의 도피를 하겠다고도 말해주시고 말이죠.”
“무슨 사랑의 도피야. 긴급 퀘스트만 해결하고 돌아갈 건데.”
시나의 어처구니 없는 소리에, 나는 태클을 걸을 수 밖에 없었다. 오히려 태클을 걸지 않는다면, 그 다음 전개는 상당히 위험하게 비틀릴 수 있으니까. 예를 들어 느닷없이 레시아가 찾아와서 “은빛 송곳니를 처단했다. 그러니 긴급 퀘스트는 종료다.”라는 소리가 나올지도 모른다. 혹은 그와 비슷한 상황이라던가.
“그래도 다행히 적습이 아니었구나.”
긴장한 만큼 안도감이 찾아오기에, 그 자리에서 풀썩 주저 앉았다. 만일 웨어울프가 약 30마리씩 찾아왔다면, 일정이 크게 뒤틀릴 뻔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저 둘을 살릴 자신은 있어도, 상처하나 없이 멀쩡하게 지킬 자신이 없다.
“몬스터의 숲 주변에는 우리가 하나하나 돌아다니면서, 내일 일정에는 약간이나 순탄하도록 내쫓아주겠네.”
그리티스 씨는 뿌요뿌요가 생각날만한 움직임으로 나에게 말했다. 그나저나 슬라임이 대체 어디에 발성기관이 있길래, 말을 할 수 있는 건지 알 수는 없으나, 아무리 생각해도 그리티스 씨만큼은 집중조명이 필요할 지경.
“그럼 제군들. 지금 새벽 4시니까, 부지런하게 움직여야 하지 않는가! 아하하하!”
귀엽고 작은 크기에 비해, 내 어깨에서 도약했다고 믿겨지지 않을 만큼, 공중 위로 솟아오른 그리티스 씨는 그대로 뒤늦게 아지 다하카가 빠르게 비행하면서, 그리티스 씨를 태우고 순식간에 모습이 사라졌다.
“새벽 4시?”
그러면 16시간 정도인가??
“당장 출발하죠. 지금 출발 안 하면 실버 크라운에서 쉬지도 못하고, 전설의 용병을 상대해야 할 테니까요.”
“아니...잠깐? 카린 양? 지금 출발하겠다는 거야?”
“준비하세요.”
에르단은 이미 모닥불을 끄고 있었고, 하르커스는 늘어지게 하품을 하면서 볼일을 보러, 다른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나도 주저앉은 몸을 일으키며 시나가 공중에 날아올라, 주변을 정찰하러 오는 동안 에르단의 일을 도와줬다.
“그나저나 어제 이야기를 하는 도중에 카린 양은 용병을 했다고 말했던가? 사실 나는 드워프에게 대장간 일을 많이 해와서, 세상에 대해 그리 경험이 없다만...은빛 송곳니라는 용병은 대체 어떤 용병인가? 그 자가 대체 무슨 이유로 프리트론의 공주님을 납치해서, 이탈리아 배관공까지 불러오게 만드는 건지 이유를 알 수 없군.”
...댁도 슈퍼 마리오를 알아요?
“자세한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심심했다거나, 아니면 중년의 몸으로도 외로워서 그런 일을 저질렀겠지요.”
이유를 생각해보니, 여전히 무슨 생각으로 이런 일을 저질렀는지 알 수 없었다. 그냥 하멀 씨에게는 긴급 퀘스트인데 공주님이 이상한 아저씨와 결혼하는 모습이 보기 싫으니, 당장 구출해오라고 했고, 퀘스트 내용도 별 이상한 내용밖에 없던데.
대체 무슨 이유인지...
어째서 내가 이런 고생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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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즈하게 흘러가도 어쩔 수 없어요.
손이 알아서 쓰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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