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 89
89
루나가 온지 2일 정도 더 지났을 무렵, 여전히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세상에 고민이 단 하나도 없다는 표정으로 밤에 손님을 끌어 모으기 위해, 열심히 노래와 춤을 추면서 시끄럽게 떠들었다. 물론 마리아나 루시피나 씨도 의상을 맞춰서 안무 연습과 노래연습을 한 성과가 빛을 발하기 시작하면서, 몬스터는 물론이고 사람들까지 자주 오게 될 정도로, 제법 유명해지기 시작할 때쯤.
북적북적한 잡화점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쳐다보는 레시아와, 바쁜 와중에도 정신 차리며 계산을 하고 있는 나의 모습을, 앞에 정면거울로 통해 보고 있었다. 하지만 넋을 놓고 있다가는 계산에 실수가 나기 쉬우니까, 일단 40실버를 거슬러주고 서술을 시작하도록 하자.
“여기 40실버 받으세요.”
“이번 잡화점 주인은 살이 마른 것 같아서 먹을게 없어 보이는구먼...”
잠깐 먹을게 없어 보인다고? 그보다 전 잡화점 주인은 광기에 미쳐서 감옥에 있을 텐데? 무슨 소름 끼치는 말을 하는 거냐? 설마 잡화점 주인들 중에 하나를 그대로 잡아먹어서 행방불명이 된 원인인가?
아무튼 내가 잘못 들었나 생각되어 “네?”라고 다시 되묻자, “호호호...! 농담이여. 농담.”이라고 웃으면서 수세미를 사가는 기묘한 할머니가, 잡화점 밖에 나가는 것을 본 후에 안심을 할 수 있었다.
만일 혼자서 운영을 했다면, 식욕이 강한 몬스터에게 잡아 먹히는 것은 인간이 되겠지. 어째서 잡화점 규칙에 사역마와 같이 일을 해야 하는 가에 대한 것은, 이런 상황에서도 적용이 된다.
몸은 알아서 지키라는 것.
지금 기묘한 할머니의 사례를 통해 오늘도 하나 배워갔다.
애초에 잡화점에는 쓸모 있는 기능은 많은데, 왜 하필 침입자를 요격하는 기능이 없는지 이해를 할 수 없을 때쯤. 잡화점에 온 손님은 밤 11시인데도 불구하고 60명이 다녀왔다. 이 정도면 카페로 개조하지 않아도, 충분히 잡화점에 손님을 받은 체, 물품을 팔아서 생계를 유지해야 할지도...
그러면 그 빌어먹게 짝이 없는 여장모델을 하지 않아도 된다.
루니아 씨의 마수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되는 것이, 가장 큰 이득이자 목표인 나에게는 어느덧 이룰 수 있는 소망으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이렇게 기쁘고 바쁘게 살아가는 것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내 머릿속에 자리를 잡은 레이비스 씨의 조언. 레이비스 씨는 애초에 루나에 대한 존재를 어떻게 알고 있으며, 루나가 왔다는 달에 무슨 안 좋은 일이 터진 것까지 알아차린 것을 보면, 괜히 수석 수사관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루나는 지금도 말해주지 않았다. 가끔가다 불안한 눈빛으로 나의 눈치를 살피는 것도 있지만, 처음에 만났을 때보다는 확실히 줄어들었다. 아마 슬슬 같이 살면서 많이 편해졌다는 의미겠지만, 그래도 자신의 비밀을 캐내지 않을까? 혹은 그 비밀을 알면 자신을 버리지 않을까? 그런 초조한 마음이 느껴지는 건 변하지 않았다.
슬슬 오늘 알아낼까? 아니면 조금 더 입을 열기를 기다릴까?
계속해서 선택지를 이리저리 반복하는 것도, 이제 슬슬 지칠 무렵에, 내가 또 루나에게 질문을 해서 울리게 된다면, 그걸 귀신같이 알아차리는 3인방에게 멍석으로 말려서 구타를 맞아 죽고 싶지 않기 때문에, 지금은 마냥 기다리고 기다릴 수 밖에.
그래도 저렇게 기뻐하는 얼굴을 보면, 레이비스 씨의 조언을 왠지 머리에 잊고 싶...
“감히 내 조언을 머릿속에서 잊으려고? 음...곤란한 걸?”
-철컥!
순식간에 회상 속의 레이비스 씨가 권총으로 겨누자, 나는 레이비스 씨의 조언을 다시 각인 시키며, 머릿속의 회상을 빠르게 지워버렸다. 무서운 인간...남의 생각 속에서도 나와서 위협을 가할 줄이야. 이쯤 되면 정말 레이비스 씨가 어째서 인간으로 태어났는지. 그리고 어째서 마왕으로 등극하지 않는 지. 이것도 시간이 나면 아이니스 집에서 파는 육포를 분석하면서 고찰을 해보도록 하자.
“오늘 루나는 정말로 힘냈어요!”
루나의 분홍빛의 토끼 귀는 위 아래로 흔들거렸다. 마치 효과음을 넣고 싶다면, ‘뿅뿅!’이런 효과음이 있지 않는가? 하지만 여기는 글이라 효과음은 넣을 수가 없고, 그래도 많이 기쁜지 귀엽게 낮은 점프를 반복하면서, 귀도 따라 같이 움직였다. 루나 덕에 매출이 늘어난 셈이 되니까, 루나도 이 잡화점에 살면서 1인분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는 셈. 따라서 머리를 쓰다듬어 달라는 듯 나에게 살짝 고개를 숙여서, 그 기대에 부흥을 하듯 머리를 쓰다듬어 주
“어디서 루나링의 머리를!”
-파앙!
지 못했다. 검은 마탄이 나에게 날아온 것으로 봐선, 마리아가 오늘도 검은 성배를 꺼내서 마탄을 내 쪽에다가 발포를 한 것이 틀림없지. 내가 루나와 가까이만 있어도 라이더 킥...아니 레시아 킥을 날리는가 하면, 루시피나 씨는 오히려 자신이 더 달라붙으려고 루나에게 정중하게 비켜달라고 하며, 마리아는 그냥 ‘발로 차! 싸커!’라는 노래 구절이 생각날 정도로 힘차게 차거나, 검은 성배를 소환해서 마탄을 쏴버린다.
덤으로 마리아가 발로 차는 것 또한, 상당량의 마기로 강화된 발차기이기 때문에, 최근에는 보호마법<Protection>과 마법방패<Magic Shield>의 전개속도가 0.3초 안으로 모두 전개할 정도. 물론 그렇게 전개를 빠르게 한다는 것은 좋은 것이지만, 문제는 그렇게 전개를 해도 아픈 것은 매 한가지다.
이번에도 마법방패로 막았으나, 오히려 가소롭다는 듯이 송곳처럼 뚫어버리는 마탄을 막지 못한 체, 오늘도 카운터에 쓰러져있는 나는 한숨을 쉬며 천천히 일어섰다.
“마리아...제발 쏘지 말라고 했잖아요...”
“루나링은 루나링이지만, 첩도 힘을 냈는데 어째서 머리를 쓰다듬어주지 않는가!”
“루나 다음에 머리를 쓰다듬어 달라면 쓰다듬어 줬을 거에요! 그보다 너무 급하게 쏘잖아요! 그 드릴같이 생긴 마탄은 또 뭡니까!”
“아 그거 ‘나노 드릴 브레이커’라는 기술이다.”
“하하. 기가 드릴 브레이커는 상당히 크니까, 나노는 작다? 그거 완전 기술 표절 비슷한 거 아니에요?”
“벤처 마킹이다. 아웃 소싱이다.”
“말은 잘해요...아무튼 다 쓰다듬어 드릴께요. 그러니까 다음부터 그 기묘한 마탄 날려서 제가 다시 일어나게 하지 말아주세요.”
결국 루나와 마리아. 그리도 뒤늦게 정리하고 온 루시피나 씨까지 머리를 쓰다듬어 줬다. 레시아는 항상 쓰다듬고 있으니까 불필요 한 듯, 가만히 카운터 위에서 조용히 눈을 감고 있을 뿐...애초에 밖에서 선전하는 것은 몇 시 까지가 아니라, 그냥 하고 싶은 데로 하라고 말을 했기에, 오늘도 30분만 공연을 하고 끝이 났다.
물론, 몬스터들과 인간이 섞여서 루나의 노래와 춤을 보고 난 뒤에, 정신을 차리자마자 “아이 깜짝이야! 이게 뭐야!”라는 듯한 소리를 지르더니, 그냥 없던 일로 묵언의 약속이라도 하듯 아무 소란 없이 돌아간다고...
이러다 몬스터와 인간이 공존이라도 하는 시대가 오기라도 하면, 릴리 기사단은 해체가 되는 걸까? 그것도 나름대로 기대해보도록 하...안 돼. 그러면 루니아 씨가 하루에 한 번씩 찾아와서 나를 괴롭히게 될 꺼야.
부디 릴리 기사단은 이 행성이 망할 때까지 영원하기를...
그래도 아직까지 시간은 남아있고, 정말 루나의 효과가 대단하다고 느낀 중에 하나는, 루나가 공연을 마치자마자 잡화점에 찾아오는 손님은 없어진다. 조만간 이 잡화점이 카페로 개조하기 전에, 콘서트 장으로 개조되는 것을 먼저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저도 같이 옆에서 도와드릴까요?”
루나는 멀뚱멀뚱 나를 보며 입을 열었다. 새벽을 보내야 하는 내 입장에서 말동무가 생기는 것이 정말 고맙지만, 그래도 괜찮은 건지 물어봐야, 나중에 날아온 그 나노 드릴 뭐시기를 안 맞지.
“공연하느라 힘들었을 텐데?”
“괜찮아요! 루나는 끄덕 없어요!”
두 손에 불끈 주먹을 쥐어, 자신은 아직까지 생생하다고 귀엽게 어필을 했다. 뭐 그렇다면 본인이 좋다고 하니까 나는 허락을 해야지.
“알았어. 그보다 레시아 어디가요?”
레시아가 느닷없이 자리를 비켜줬다.
아무래도 레시아는
“잠깐 마계에서 할 일이 있기에 짐은 이만...”
이라고 변명을 말하고 텔레파시를 보냈다.
[주인. 이제 슬슬 루나링의 비밀을 알아내도록 하라. 이쯤 되면 슬슬 괜찮을 지도 모르니까.]
[레시아도 루나가 뭘 숨기는 건지 눈치를 채신 건가요?]
[짐은 그 잘난 마왕이다. 아무리 루나링이라고 해도, 지금의 루나링은 무언가를 두려워하고 숨기고 있는 것쯤은 처음부터 눈치를 채고 있었다. 허나, 우리 셋보다는 주인을 더욱 신뢰를 하고 있으니, 이 일은 주인에게 맡기도록 하마.]
그렇게 레시아는 3층으로 올라가서 당분간 나타나지 않았고, 나와 루나 둘만 남은 체, 루시피나 씨와 마리아는 자러 들어갔다.
그나저나 이 거북한 분위기는 뭐지?
레시아와 같이 있는 것이 많이 익숙해서 그런가?
“저기...? 허브티 끓일까요?”
“그렇게 해주면 나야 고맙지.”
“네! 주인님!”
...그 주인님이라는 단어 정말 익숙하지 않아서 다시 소름이 오를 때, 루나는 허브티를 끓이면서 아까 밖에서 부른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리듬도 박자도 신세대라서 그런가? 중독성이 있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기에, 슬슬 나는 루나를 떠보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루나? 달은 어떤 곳이야?”
“예? 어째서? 설마 주인님도 달에 이주할 마음이 생기셨나요? 그거 정말 다행이에요. 올해로 시집을 못 가는 줄 알았는데! 아 참! 저와 주인님은 주종관계였죠. 그래요 메이드는 절대로 주인님을 사랑할 수 없는 존재에요. 아아! 이런 비극적인 운명을...”
“멈춰! 어디서 혼자서 애증극이야? 내가 묻고 싶은 것은 달이 어떤 곳이냐고 물어봤지, 내가 거기에 이주하면서 너와 같이 결혼하고 살 것은 아니라고!”
여전히 몇 단계를 생각하는 루나의 머릿속이 궁금하던 찰나, 루나는 토끼 귀가 축 쳐지더니, 고개를 숙이면서 “이걸 말해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 그것이 문제로다.”라는 듯한 고민을 하는 표정으로 말 없이 서 있었다.
포트가 삐이이! 하고 김을 내뿜으며 소리를 지르자, 루나는 잠깐 멍해있던 의식을 되찾았고, 그 이후에 허브티와 빈 찻잔을 두 개를 가져와서, 카운터에 있는 내 앞에 하나를 살며시 놓고 허브티를 따라주었다.
“제가 있던 세계가 궁금하시군요...그리 유쾌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이상한 곳은 절대 아니랍니다.”
쓸쓸한 기운이 감도는 루나의 말에 허브티가 식어가는 착각을 느끼며, 계속해서 루나의 말을 듣기로 했다.
“달에는 저와 같은 달 토끼들이 아이돌을 꿈꿔요. 물론 아이돌 밖에 길이 없기 때문에 직업은 한정적이고, 달에서 규율을 어기면 영원히 절구질을 하여 떡을 만들어야 하는 형벌에 처하죠. 게다가 저희들은 수명도 길답니다. 사실 제가 주인님보다 몇 세기는 더 살았을 지도 모르죠.”
달 토끼들은 수명이 많고, 형벌을 내린다는 시점에서 법과 그 위에 통솔자가 있다는 것을 추측했다.
“저는 달 토끼들이 알아서는 안 되는 비밀까지 알아버렸죠. 저희들을 관리하는 관리원의 정체를...”
관리원이라고 알 수 없는 것에 루나의 찻잔에 있던 허브티는 파문을 그리며 떨었다.
“관리원의 정체를 아는 순간, 저희들은 사형에 처한다는 규정이 있어요. 따라서 저는 죽기 싫은 나머지, 마침 만월의 연회를 열어야 하기 위해 열려있던 공간이동장치로 도망갔고, 정신을 차려보니까 제가 자주 온 곳이라, 다른 몬스터들은 저를 알아보고 싸인해달라고 마구 몰려왔고, 레버를 조작한 대점프를 이용하여, 이 잡화점 문에 부딪친 거에요.”
레버 대점프?
그건...아냐 됐다. 태클 걸지 말자.
아무튼 그래서 검열삭제네 뭐네 라고 말한 것이구나.
“그럼 그 관리원의 이름은? 얼굴이나 특징 같은 것은 말해줄 수 있어?”
“그건...불가능 해요. 말하자마자 관리원은 그걸 듣고 쫓아올 거에요.”
이미 관리원을 안 시점으로, 그 관리원은 루나를 찾기 위해 달에서 긴급발령이 나지 않았을까? 아무튼 이렇게 보면 조만간 침공이나 납치를 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래도 지금까지는 그렇지 않았지만, 아까 루나가 잡화점에서 선전하는 것으로 보아, 빠른 시일 내에 달에 있는 그 무언가가, 이곳을 향해 찾아오겠지...
루나는 벌벌 떨면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런 루나에게 할 수 있는 것은, 거짓말이라도 좋으니까.
“걱정하지마.”
그래. 거짓말이라도 좋으니, 안심을 시키는 것.
내가 우선적으로 루나에게 할 수 있는 일은 이것 밖에 없었다.
“네?”
갑자기 고개를 들며 더욱 눈이 커진 체 나를 바라보며, 의문을 입으로 표현하는 루나.
그리고 나는 대담하면서도, 침착한 표정을 유지하며 입을 열었다.
“걱정하지 말라고. 여기에 있는 3인방은 다 나보다 강하거든, 나까지 도와주면 분명 네가 걱정하는 그런 일은 일어나기 전에 막을 수 있겠지.”
더 고개를 숙인 체, 떨어지는 눈망울들은 기뻐서일까? 슬퍼서일까? 조용히 숨죽이고 우는 루나에게 머리를 쓰다듬으면 그나마 진정을 하게 될까? 여전히 자신의 죄가 죄가 아니라는 것을 모르는 체, 죄악에 벌벌 떨고 있는 루나의 마음의 짐을 덜어낸 것일까?
여전히 달은 뜨고 있고, 그 달을 뒤로한 체 루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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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곳 사장님은 정말로 선하신 분이라 다행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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