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 577
577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하는 개념은 무엇일까? 그것도 사람이 정한 것이기 때문에 경계선이 애매하다. 비정상이 한 가득 있으면 정상이 된다고 했던가? 결국 바라보는 객관적인 시점에 따라 변동될 수 있는 유동적인 언어가 된다. 인간은 끊임없이 진화하고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적어도 해야 하는 일과 하지 말아야 하는 일을 나누고 있는데,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했을 경우. 그건 비정상으로 취급되어 세간의 눈에 안 좋게 비춰진다.
예외적인 경우에는 비정상적인 일을 했는데, 그게 커다란 이익과 성공을 안겨줄 경우, 그제서야 그 비정상은 정상으로 취급되어 많은 사람들을 열광시킨다.
그렇다고 한들...
“카일 씨도 먹어보세요. 맛있다니까요?”
어떤 녀석이 돼지고기를 포도주스에 볶아서 먹는 거냐. 기괴한 냄새와 돼지고기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가며 타 들어갔고, 지옥도가 펼쳐지는 프라이 팬을 보며 싱글벙글 웃고 있는 레인. 루니아 누나의 경우 요리를 할 줄 모르는데, 무지개 빛의 음식이 태어난 경우라면, 레인의 경우 음식은 할 줄 아는데 기괴한 실험정신으로 다 말아먹어버리는 경우다. 스테이크에 딸기주스를 부어버리는 건 뭐고, 돼지고기에 포도주스를 부어버리는 건 뭔가?
그리고...
“고기를 올려놓은 지 1분도 안 됐는데 다 타버렸잖아. 네 능력은 여전히 조절할 수 없는 거야?”
“뭐. 어쩔 수 없죠. 저는 실시간으로 폭주하고 있으니까요.”
허구한날 기괴한 행동을 하고, 지루하다면서 일을 벌리고 자기 스스로 수습하며, 음식까지 제대로 못 먹는 초능력자라. 옛날에 어린 아이들은 자신에게 초능력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겠지만, 레인을 보고 나면 초능력자도 먹고 살기 힘들다는 현실을 단숨에 깨우치리라.
“엘티노스 씨가 왜 뛰쳐나왔는지 이해가 되려고 해.”
“그런데 카일 씨.”
가면을 쓴 주제에 음식은 어떻게 먹는 건지, 포크에 있던 숯 덩어리 같은게 레인의 가면 근처에 가자마자 사라졌다. 하나의 신 기술인가? 아니면 먹는 척을 하고 냅다 버리는 건가? 프레임단위까지 쪼개서 볼 수 있는 나에게 눈속임을 피할 수 없지만 아니나 다를까...
정말 가면 근처에 가자마자 사라졌다.
잡화점보다 더 신기할 따름일세...
“유랑극단이라는 거 아직도 잡아 다니려고 해요?”
“내 일기를 가지고 있다면 더 잘 알겠지. 그렇지 않아?”
“뭐. 그렇긴 하죠. 제가 이 질문을 드리는 이유는 그렇게 질문을 할 시간이기 때문이었어요. 일기장의 내용은 그대로 진행되는 거니 말이죠. 어쨌든 카일 씨는 한숨을 내쉬는 거에요.”
“그런 헛소리 하지 마. 정말로 한숨을 내쉴뻔했잖아.”
“거기까지가 일기장에 적힌 내용이에요.”
“이 녀석이?”
내가 그렇게 세세하게 적을 사람이 아닌데.
남에게 미래를 읽힌다는 건 괴로운 일이긴 하구나.
“음. 유랑극단을 잡지 말고 그냥 지금 떠나시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텐데.”
“그럼 네가 유랑극단을 막을 거냐?”
“그건 아니죠. 재미있는 애들이라 좀 더 난동을 부려야 수습할 맛이 나거든요.”
“수습할 맛으로 이 세상이 지우개에 사라질뻔한 사실을 모르는 거냐?”
극한의 쾌락주의를 보아하니 켈모리아 마그누스와 성격이 닮았다. 세린은 어쩌다가 이런 녀석을 선택한 걸까? 레인의 특이한 성격으로는 오히려 잡화점에 대한 악소문에 흥미가 끌려서 자기 멋대로 침입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어디까지나 추측이지만 이 녀석은 초능력이 멋대로 폭주하니까. 크로우 바를 들기만 해도 전설의 그분이 생각날 법한 위력으로 문을 날려보낼 녀석이니까.
“세상이 사라져도 해결할 방법은 여전히 남아있죠. 그 방법은 세린이 늘 알려준답니다. 그렇지 세린?”
허공을 바라보며 당당하게 외친 레인. 시선이 고정된 상태로 웃고 있는 얼굴을 보아하니, 남들이 보면 이 녀석은 단단히 미친 게 확실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조용히 한숨을 내쉬면서 잡화점 멤버 중엔 레인보다 더 한 사람들이 있다는 게 고민거리로 급부상하고 있을 때였다.
“그런데 카일 씨는 정말 안 드세요? 맛있는데?”
“안 먹어. 너 혼자 많이 먹어. 그보다 윈디 메르아라고 알아?”
“아. 바람의 정령왕이요? 당연히 알죠.”
직접 알게 된 것은 아니고 분명 내 일기장을 통해 알았을 터.
“직접 만나본 거야?”
“뭐.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는데...좀 미안한 일을 벌이는 바람에...”
윈디가 레인을 꺼려하는 모습을 본적이 있는데, 무슨 일인지는 한번 떠볼까?
“좀 미안한 일을 어떻게 벌였는데?”
고기인지 참숯인지 이제 그 누구도 모르는 정체불명의 물질을 들고, 레인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카일 씨를 못 만나게 하려고 방해공작을 했거든요. 목적은 바람의 정령왕이 어느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느냐였지만...애석하게도...”
애석하게도? 무슨 일을 벌인 거냐?
궁금증이 끝도 없이 올라갈 때, 씁쓸한 어조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제 아이스크림에 ‘하나 더!’가 나오고 바람의 정령왕에겐 나오지 않았거든요.”
“그게 대체 무슨 경쟁이냐!”
“그야 당연히 피도 눈물도 없는 경쟁이죠! 이게 얼마나 중요한 건데!”
“어쩌라고!”
윈디의 표정이 안 좋았던 이유는 그저 공짜 아이스크림이 당첨되지 않았던 것뿐이냐? 웃기지마! 세상은 그렇게 만만한 게 아니라고!
“바보 같은 말은 어디서 가져왔는지 모르겠지만, 제발 부탁인데 제대로 된 이유부터 말해줄래? 아무리 네가 정신이 산만해서 안드로메다와 이곳을 10분주기로 왕복한다고 해도, 분명히 타당한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해.”
내 진지함을 듣고 알아줬는지 다음과 같은 말이 레인의 입에서 나왔다.
“이건 비밀이지만 바람의 정령왕은 아이스크림을 먹고 막대에서 ‘꽝!’이 나왔고, 제 아이스크림 막대에는 ‘한 개 더!’가 나왔기 때문에, 말도 안 된다면서 저에게 어마어마한 태풍을 날렸다고요. 어떻게 보면 저는 막강한 피해자인데! 너무 억울...”
“그러니까 너희 둘은 왜 아이스크림 하나로 싸우냐고!”
이 녀석들 분명 아이스크림 때문에 싸운 게 아냐. 말을 하지 않겠다면 나중에 윈디에게 찾아가서 진짜 이유를 들을 수 밖에 없겠네.
“좋아. 이 일은 나중에 따로 조사하도록 하지.”
“그러지 않는 게 좋아요.”
“시끄러워! 이걸 알아내야 네가 읽고 있는 내 일기장 페이지가 사라지지 않을 거 같아!”
주제를 좀 돌려보자.
“너는 유랑극단이 더 날뛰도록 나뒀다고 했지?”
“그렇죠. 엘티노스 잡화점을 운영하는 잡화점 주인은 정의의 사도가 아니니까요. 그렇다고 해서 범죄를 막 저지르는 악당도 아니고...그냥 어중간한 정도?”
“그래. 우리는 어중간한 세력에 속하고, 혹은 어느 누구의 편도 아니지. 그런데 문제라면 잡화점이 2개가 되어버려서, 유랑극단이 세상을 멸망시키는 속도보다, 우리가 모든 평행차원을 붕괴시키는 속도가 더 빠를 거야.”
“음. 그건 세린에게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카일 씨가 돌아가면 유랑극단이 세상을 붕괴하기 전에, 제가 이 빨간 버튼을 눌러서 모든 곳을 날려먹겠죠. 5초 안에 100만km가 사라지는 마술은 원래부터 하고 싶었으나, 그러기엔 카일 씨의 후손들이 싹 다 날아가겠죠?”
매우 즐겁다는 듯이 웃고 있구나.
가면을 쓰고 있어도 다 보인다! 요놈!
“그러면 널 잘 따르는 아이리스는?”
아이리스에 대해 언급을 하자 레인은 살짝 움찔했다.
그 뒤에 한숨을 내쉬더니 귀찮다는 듯이 입을 열기를...
“제가 유일하게 이 빨간 버튼을 지금 당장 못 누르게 하는 사람이죠. 제가 아무리 미쳤다고 해도 소중한 사람이 다 있어요. 아무리 못되고 사악하다 한들 그 사람에게도 소중한 사람은 있죠. 그 결과로 벼룩의 간만큼 커다란 인내심과 좁쌀만큼 넓은 이해심을 바탕으로 아직까지 누르지 않고 있어요.”
벼룩의 간과 좁쌀은...뭐 그래, 바이러스보단 크지...
“비유가 좀 이상하긴 하지만, 그나마 내가 널 바로 제거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추가로 더 생긴 거 같구나.”
적어도 아직까진 내가 레인을 죽여야 할 상황까진 아닌 것 같다. 무턱대고 저 빨간 버튼을 누른다면 모두 피할 수 없는 죽음을 직면해야 하니까. 정신이 오락가락한 사람에게 그런 위험한 물건을 엘티노스는 무슨 생각으로 준 걸까?
“카일 씨도 기대하는 거 아니에요? 저와 목숨을 걸고 싸우는 순간을? 마치 소년만화처럼 언젠가 대립하여 다투게 되고, 바다로 나가 해적질을 하면서 위대한 항로의 보물인...”
“잠깐만! 너무 나갔어! 기어 포스까지 쓸 작정이냐!”
언제부터 서로 대립하고 싸우는 게 소년만화가 된 거야? 소년만화의 키워드는 우정, 노력, 승리잖아.
아니, 그건 다른 건가?
뭐 다르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고...
“그럼 카일 씨는 나선환 쓰실래요?”
“너 그림자 분신술로 맞고 싶은 거냐?”
그림자 분신술은 사용할 수 없지만, 거의 그 수준으로 빠르게 움직일 수 있긴 하니까.
“이 참에 약속을 하나 하죠. 저는 카일 씨가 허락하기 전까지는 이 버튼을 누르지 않을게요.”
“약속? 너 나에게 조건을 걸어놓을 생각이야?”
“그렇죠.”
태연하게 즉답하는 레인을 보고 허탈함이 폐를 가득 채웠다.
조건을 건다니? 나에게 뭘 시키려고?
“리제로트를 죽일 미끼가 되어주시면 되요.”
“설마 나더러...아냐. 안 돼. 못해. 그냥 그 빨간 버튼이나 눌러. 지금 당장!”
“뭐. 그렇다면야.”
아니! 진짜로 누르지는 말고!
“잠깐! 잠깐! 아냐! 멈춰! 누르지마!”
“그럼 리제로트를 죽일 미끼가 되어주시는 건가요?”
“아니, 그전에 내가 어떻게 리제로트를 끌어당길 미끼가 될 수 있는데? 그 이유부터 설명해봐.”
“단순하게 말하자면 한번 놓친 먹이가 눈앞에 다시 나타났다는 거. 어떤 기분일 거 같아요?”
사냥꾼이라면 충분히 짜증나거나 의욕이 넘치는 상황이겠지. 말 그대로 두 번 다시 없는 기회가 바로 앞에 찾아온 것이 아닌가? 그러니까 내가 소녀로 변한 상태에서 걸어 다니면 미끼를 물것이다?
“아냐. 네가 생각한 것처럼 리제로트는 그리 단순하지 않아. 오히려 치밀하니까 자기 발에 걸려 넘어질 작전을 생각해야지. 그 애가 무슨 붕어인줄 알아? 네가 상대하지 못해서 잘 모르겠지만, 그 녀석이 왜 유랑극단의 단원인지 생각을 좀 해야 할 거야.”
아직 리제로트의 제대로 된 실력을 본 적이 없다.
“그런가요? 어린애라서 단순한 줄 알았는데요?”
“모습만 그렇게 보이는 거야. 어쩌면 시공간이동을 너무 많이 한 나머지, 후유증으로 영원히 어린 아이의 모습으로 사는 기괴한 현상을 보일지도.”
“아니. 잠깐만요. 다른 곳의 설정을 이곳까지 끌고 오면 안 되죠. 그보다 포키는 캡슐 안에 갇혀서 지금까지 못나오고 있잖아요.”
이 녀석 마더3를 해본 거냐?
어떻게 알고 있는 거야?
“아무튼 사람을 겉모습으로 판단하는 무의식적인 행동은 주의해야 해. 나야 많은 일을 겪어와서 알고 있지만, 너는 지금도 성장하는 중이잖아. 인생의 선배로서 말하자면...”
“선배보단 이미 은퇴할 나이가...”
“시끄럽고 좀 들어! 어쨌든 리제로트는 네가 생각했던 것보다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리제로트를 죽이고 싶어하는지 그 이유를 말해.”
레인은 내 말을 듣고 담담하게 말했다.
“아이리스가 인형이 되어버렸어요. 그러니 그 복수를 하는 겁니다.”
담담한 목소리와 평소와 다를 바가 없는 어조 때문에 더 소름 끼치기 시작했다. 복수로 사람을 죽인다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할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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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일가냐고요?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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